화랑전 6

나단비 | 2024.03.03 12:58:03 댓글: 4 조회: 194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1321
화랑전 6
화랑은 긴장 속에서 혼자 자리에 앉았다. 레스토랑은 부드러운 조명과 재즈 음악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에 화랑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마른 체형에 단정한 외모의 한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 아래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날렵한 얼굴  선에서 어딘가 꼼꼼하고 신중해 보이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전에 분식집에서 봤던 때와 또 다른 이미지였다.
화랑은 피식 웃고는 표정을 빠르게 정돈하고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정해영 씨.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 너무 죄송해요. 저 주차가 좀 말썽이어서요. 다음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화랑은 그가 정말로 죄송해 하는 게 눈에 보였으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요."
"네."
자리에 앉은 해영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화랑에게 물었다.
"저, 혹시 오늘 제가 고른 메뉴 괜찮으신가요?"
"네. 저는 음식 크게 안 가려요."
"아. 다행이네요."
갑자기 무슨 소개팅이냐고?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느닷없는 만남은 일주일 전에 서연과 분식집에 가서 밥을 먹은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가게 들어가서 앉은 뒤, 서연은 주변을 흘끔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너에겐 깜빡하고 말 못했는데 저번에 이연 선배가 나한테 네 번호 물어봐서 알려줬었어."
"야. 너 왜 나한테 물어도 안 보고 막 알려줘?"
"왜? 너 이연 선배 정도면 땡큐지. 너 어떻게 했길래 그 선배한테 잘 보인 거야?"
"그런 거 없는데? 도움을 받은 적이야 있지. 사소한 거."
"사소한 거 뭐?"
화랑은 캐고 드는 서연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맞네. 관심 있는 거."
"뭐라고?"
"이연 선배 철벽으로 벌써 소문 났어. 다른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했는데 다 거절했어. 바쁘다고 하던데 너 밥 사줄 시간은 있었네. 하하."
"그런 거 아니야."
화랑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내가 보기엔 되레 좀 이상하달까. 그런 설레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원래 당사자는 잘 모르는 거야. 아유. 우리 지화랑 좋겠다."
서연은 화랑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쿡쿡 웃었다.
화랑은 고개를 젓고는 시선을 돌렸다.
"여기요. 주문 할게요."
몇 걸음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키 큰 알바생이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다가왔다.
"네. 메뉴 뭐로 주문하실 건가요?"
"비빔밥이랑 원조김밥 한 줄이요."
"네. 따뜻한 물 드릴까요?"
"네? 네. 감사합니다. "
화랑은 주문을 마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보였다.
"여기 장사 잘되네. 알바생이 잘생겨서 그런가?"
"뭐?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화랑은 생뚱맞게 들리는 서연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조금 전에 주문받은 알바생 좀 잘생겼잖아. "
"아. 그랬어?"
화랑은 그 알바생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다. 왠지 인상이 흐릿했다.
"너는 그런 걸 잘도 보네."
"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서연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야. 칭찬으로 하는 말 아니야."
"디자인과의 심미안이랄까?"
"뭐래?"
둘이 떠드는 사이로 불쑥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메뉴 나왔습니다."
화랑은 의식적으로 알바생을 쳐다보았다. 훈훈한 스타일이긴 했다. '이연 선배에 비하면 잘생긴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던 화랑은 그런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몇 걸음 채 걷지 못하고 멈춰 섰다.
"저기요. 손님 물건 두고 가셨어요."
"네?"
돌아보니 좀 전의 그 훈훈한 알바생이었다.
"뭔데요?"
"이거 손님 물건 맞죠?"
그 알바생이 건넨 물건은 화랑의 핸드폰이었다.
"헉. 내가 왜 이걸. 감사합니다. "
"하하. 네. 아니에요. 저 혹시."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화랑은 말을 덧붙이는 그 때문에 다시 돌아섰다.
"혹시 뭐요?"
"제가 번호 알려드려도 될까요? 이런 적 처음인데요. 너무 제 스타일이어서요."
"와."
옆에 서 있던 서연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죄송한데. "
"네. 알려주세요. "
냉큼 답을 한 서연은 화랑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더니 패턴을 풀어서 그 알바생에게 건넸다.
그는 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
싱그럽게 미소를 지은 그는 급히 가게로 들어갔다.
"야. 서연. 너 뭐 하는 짓이야? 왜 네 마음대로 자꾸."
"너 아직 연애 한 번도 못 해봤잖아."
"뭐? 나 아니거든. 중학교 때."
"그거 거짓말인거 다 알거든. 여튼 너도 연애 해보려면 기회가 오면 다 잡아보라고."
서연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화랑은 서연에게 놀림당한 기분에 분하기도 하고 처음 있는 일에 얼떨떨하기도 했다.
"하. 오늘 대체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이긴. 지화랑 도화운 트인 날이겠지."
서연은 짓궂은 표정을 짓고는 먼저 걸어갔다.
핸드폰을 보니 그 알바생은 자기 이름까지 야무지게 입력해 놓았다.
"정해영?"
혼잣말을 중얼거린 화랑은 앞서 걷는 서연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날 저녁에 해영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었고 가볍게 식사나 하자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었다.
정작 식사 자리에 나와보니 가벼운 식사 자리 같지 않았다. 대체 이게 뭐람? 화랑은 문득 이연과의 첫 식사를 떠올렸다. 그때도 여기와 비슷한 곳에서 밥을 먹었었지. 머릿속에서 딴 생각을 하던 화랑은 해영의 질문을 놓치고 말았다.
"죄송한데 좀 전에 무슨 말을 했었죠?"
"아. 네. 죄송하실 건 없고요. 혹시 만나는 사람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훅 들어온 질문에 당황한 화랑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는 어때요?"
"네?"
화랑은 수저를 들려다가 내려놓았다. 이건 또 무슨 경우야? 너무 급발진하는 거 아닌가. 화랑은 그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서 흘렀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화랑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선배는 여긴 무슨 일이에요?"
"그러게. 우연이네? 나도 합석해도 되지? 설마 둘이 데이트라도 하는 건 아니지?"
"네?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잘됐네. 친구와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약속 펑크 내서 혼자 먹기에 애매하던 참이었어."
이연은 태연스럽게 대꾸하더니 화랑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화랑도 해영도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저 두 사람 어떤 사이에요?"
눈치를 보던 해영이 화랑을 보며 물었다.
"그냥.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뭐라 설명하기 애매해서 대충 둘러대고 말았다.
"너 섭섭하게 왜 이래?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우리 꽤 가까운 사이 아니었어?"
"네? 저기 선배."
"그래. 너 내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이거 좀 실례 아닌가요?"
화랑은 조금 표정이 굳어진 해영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뭘? 저기 앞에 앉은 분. 제가 와서 좀 불편하신가요?"
해영은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좀 불편하네요. 일부러 방해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따로 약속을 잡으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두 사람 식사 자리 방해 안 하고 갈게요."
이연은 쓰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랑. 너 끝나고 연락 좀 해."
그는 유유히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한차례 돌풍이 지나간 듯 그가 남긴 여운이 오래갔다. 남은 두 사람은 조용히 남은 식사를 마무리했다.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
가라앉은 듯한 해영의 표정을 살피던 화랑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이런 일 저도 예상을 못 했어요."
해영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화랑 씨라면 이런 일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식사 다하신 거 같은데 우리 카페 갈래요?"
"네. 제가 커피 살게요."
"좋아요. 사주세요."
해영은 조금 전과 다르게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밥만 먹고 헤어지고 싶었는데 윤이연때문에 미안해서 2차 카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5 11:28:02

너의마음속에 내가산다면 에서 서연도 소극적인데 여기서 화랑도 조신한 성격이네요.
손님한테 헌팅하는 알바생도 대단하고 서연이는 화랑의 연애코치이고 ㅋ

두남자의 기싸움이 팽팽햇고 그걸 2차커피로 수습하려는 화랑의 배려심.

나단비 (♡.62.♡.175) - 2024/03/05 16:36:00

진전을 위해서 엮일 수밖에 없는 여주의 운명이죠.

뉘썬2뉘썬2 (♡.203.♡.82) - 2024/03/05 21:24:53

모든 드라마에서 이쁜여주한테 남자두명이상 엮이죠.ㅋ

나단비 (♡.252.♡.103) - 2024/03/05 21:29:46

소설에서도 이게 트렌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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