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친구 소개로 나는 지금 맞선 보러 나왔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커피숍에 도착했다. 혼자 앉아 있는
남자가 없는 걸 보아 맞선남은 아직 도착 전 인거 같아 나는 녹
차 라떼 한잔 주문하고 구석 조용한 자리에 앉았다.
오늘까지 하면 올해 들어 10번째 맞선이다.
20대의 나는 우연히 만난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 하겠다고 했
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우연 같은 건 없는 것임을 깨달
았고, 운명 같은 사랑도 없다는 걸 30대 되서야 깨달았다.
< 미안합니다. 차가 막혀서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담배 냄새와 함께 내 앞에 나타난 한사람. 큰 키와 미안한 기색
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눈매를 가진 낯 선 남자가 아
주 편한 자세로 내 앞 자리에 앉았다.
< 네. 좀 늦으셨네요 >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살짝 미소만 지어 인사했다.
그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과 차 키를 테이블 위에 올
려놓더니
< 오늘 차가 너무 막히죠? 퇴근시간 이라 그런 가?>
< 저는 지하철 타고 와서....>
< 그죠 지하철은 막히지 않죠, 대중교통 이용 안한지가 오래돼서 허.허.허.>
그 남자의 어이없는 말에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차 키를
슬쩍 쳐다보았다.
동그라미 네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남자는 말이 많은 사람이 였다.
어느 동네 집값이 많이 올랐고 어느 주식이 어떤 지 어제는 주
식이 많이 떨어져 서 속상했 다는지에 대한 얘기로 내 앞에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모두 내뿜고 있다.
그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셔츠 안에 감춰
져 있던 뱃살들이 단추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앉아서 그 남자의 얘기만 듣고 있자니 나의 소중한 시간이 아
까웠다. 차라리 방구석에 누워 드라마나 볼 걸 그랬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벗어 날수 있을지 고민 하다 친구한테 SOS를 보
냈고 나는 그렇게 친구가 걸어온 한통의 전화로 그곳을 벗어
날수 있었다.
이름 윤하나
나이 31
직업 간호사
강아지상 얼굴, 의학의 힘을 빌어 만들어낸 반달 눈, 오똑 한
코, 통통한 입술, 섹시 라곤 찾아 볼수 없는 저렴한몸매. 욱하
는 성격에 4차원 두뇌를 가진 다소 철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정 많고 책임감 있는 마음 여린 여자다.
주말
집구석 방바닥에 들어 누워 치코(강아지)랑 뒹굴뒹굴 거린다.
작년 까지만 해도 주말에 친구들 만나 커피숍에 앉아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맛집도 찾아 다니고 했는데......,
나쁜 기집애 들 연애한다고, 결혼했다고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
더니 남편이랑 남친이랑 싸우는 날 만 나 한 테 찾아
오는 나쁜 년들 지독 하게 나쁜 인간들.
-나도 사랑 싸움 하고 싶다.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 주말에
맞선 그만 보고 데이트 하고싶다.-
말도 못하는 치코 랑 혼자 중얼거린다.
< 찌이잉~~찌이잉~ >
발 밑에 있는 핸드폰 주워 오기 조차 귀찮아서 발가락으로 핸
드폰을 주어 간신히 전화를 받았다.
- 자매님~ 뭐하나요? -
- 치코랑 심각한 얘기 중이다 왜? 오늘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
더니 전화할 시간은 있나 보네? -
- 흠~ 말투가 맘에 않든 다. 남자 소개 시켜 주려 그랬 는데. 패
스 할께 -
- 자매님~~ 제 말투가 어때 서요? 하려던 얘기 계속 쭉~~ 내
가 귀 쫑긋 듣고 있은데요.-
- 다음주 주말 소개팅 할래? 남편 친구가 너 사진 보고 자기 이
상형 이래 -
- 풉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
- 내가 얘기 했어 사진보고 실물보면 실망한다고 -
- 너 그러고도 친구냐? 내 실물이 어때서? 송혜교 닮았다는 말
은 못 들어 봤어도 비슷하단 말은 듣고 다닌다 왜 그래? -
- 그래서 결론은? 만나 볼껴? 어쩔껴? -
- 어떤 사람인데? -
- 괜찮은 사람이니까 소개하는거 지. 매너도 있고, 농담도 잘하
고 목소리도 좋아 나이는 너보다 세살 이상이고 직장은 우리
남편이랑 같은 회사 -
- 어제 같은 남자는 아니겠지? 다음주는 안되고 그 다음주면
않될까? -
- 아! 깜박했네 너 다음주 궁상 맞게 혼자 여행 간다 그랬지?
그래 다녀오면 보는 걸로 얘기 할께 -
- 야~~~~-
뚜 뚜 뚜 뚜
친구는 그렇게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행 당일
오전 근무 마치고 떠나야 하기에 나는 캐리어를 끌고 병원으
로 출근했다. 혼자 흥얼거리며 들어오다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이어폰을 빼고 슬쩍 그쪽에 귀 울렸다.
<결혼 축하해요~>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청첩장을 하나씩 들고 누군가를 축하해
준다.
- 이런 또 남자 한명이 줄어 드는구나. -
혼자 말로 중얼거리다 나는 쏠로 지옥에서 탈출하는 그 사람
이 누군지 궁금해서 회의실 안으로 몸을 아예 집어넣었다. 그
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축하를 받고 있는 그 사람을 보았고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5년전 나와 알콩달콩, 아카시아 벌꿀 보다 더 달콤한 사이였
던 그 사람이 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한발짝 내 앞으로
다가와 디자인이 참으로 예쁜 하얀색 청첩장을 건넨다.
기분이 묘하다.
분명 내가 먼저 이별을 선언했고, 후에도 몇 번 다시 잘해보면
안되냐는 고백에도 흔들리지 않았었는데....... 나는 지금 표정
관리가 안된다. 입은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얼굴 근육이
살짝 떨리고 손은 얼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점점 차가워 진다.
나는 청첩장 만 건네 받고 급하게 회의실을 빠져 나왔다.
그 사람이 결혼한다는 말에 그 상대가 다른 여자라는 것에 그
리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 말하고 이재 와서 질투를 느끼고 있
는 이기적인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불쌍하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고 떠나는 이번 여행이 5년전 헤어진
옛 남친 아니 몇일후면 유부남이 될 그 사람을 내 기억속에서
지우는 여행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래전에 써 놓았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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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밋게 잘 읽었습니다.다음 내용도 기다려 집니다.추천 합니다.
산동신사님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우~1회부터재밌는데요 ~쭉 기대하겠습니다 .
추천..꾹..잼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