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7회)

죽으나사나 | 2024.01.24 09:09:47 댓글: 0 조회: 166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2714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7회) 10월 8일 엄마의 행적.
"남주혁!  주혁아! 정신 차려!"
또 눈이 번쩍 떠졌다. 눈앞에는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민수가 있었다.
여긴...
지태의 집이다.
벌써 돌아왔다.
과거에 물러있는 시간은 얼마인지 정해지지 않는 거 같다.
그나저나 유지태는?
"지태는 어디 갔어??"
벌떡 일어나서 민수를 다그쳤다.
"몰라, 네가 그놈들한테 맞고 쓰러지는데 내가 따라 나갈 수도 없고..."
민수가 말끝을 흐렸다.
젠장. 서울시장까지 나선 거야. 지금?

사라진 지태를 찾을 수가 있을까. 

주혁이와 민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지태의 집에서 우선 나왔다. 

지태의 번호는 생각대로 꺼져있었다. 

“하… 그 USB는 무슨 소리지? 어떤 USB 길래.”

“약한 동영상 아닐까.”

“근데 그걸 왜 혜주한테서 찾냐 그 말이지.”

답답함에 주먹을 꽉 쥔 주혁을 보며 민수는 더 이상 말을 안 했다. 

“띠리리리링.”

민수의 차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혁이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이 사람은…

휴대폰 화면에는 <심건희> 라고 떴다. 

***

“유지태. 너 그 자식들 피해도 모자랄 판에 집까지 끌어들이더구나.”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한적한 별장. 지태가 방금 어두운 양복을 입은 자들한테 끌려온 곳이다. 

유성렬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칼날이 바짝 서있었다.  그걸 또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아는 지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폭풍전야다. 

“남주혁이 어디까지 아는 거니.”

질문이 아니었다. 당장 다 뱉어내라는 압박. 

지태는 뭐라도 말은 해야겠는데 애꿎은 엄지손톱만 잘근잘근 뜯었다. 

“잘그랑-“

유성렬 앞에 놓여있던 커피잔이 지태의 얼굴을 스쳐 벽에 부딪히며 처참히 깨져버렸다. 

”주둥아리가 있다면 말을 좀 해! 유지태. 남주혁한테 뭘 어디까지 말한 거야! 네가 죽였다고 말했어??!“

폭발했다. 자상해 보이는 그 가식덩어리는 이제 벗겨지고 무서운 독기만 남은 유성렬의 본성이 드러났다. 

”그… 그게. 아빠. 저 김혜주 안 죽였어요. 그때도 말했듯이…“

지태가 벌벌 떨었다. 

“그때도 말했듯이?”

지태의 말을 또박또박 반문하면서 유성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아빠. 도와주세요. 금방 기사가 떴는데  오늘 새벽에 동창 한 명이 죽었는데  어젯밤 제가 그 집에 찾아갔었어요.]

[네가 죽였냐?]

전화기 너머엔 놀라지 않는 느린 템포의 굵은 목소리였다. 

[아니. 그건 아닌데… 그 집에 USB가 있어요. 날 협박하던 동영상이 담긴 USB.]

[뭐?]

다짜고짜 이른 아침에 전화 와서 울며 사정하던 그날 지태의 모습이 생각나  성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들이 갓 입수한 CCTV 영상은 바로 확보하고 폐기를 했다. 확인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태가 말하던 USB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지태는 성렬한테는 참 아픈 손가락이다. 그렇게 막고 막아도 또 어떻게든 사고를 치는. 다른 아이들처럼 옆에서 보다듬어줄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 맨날 바쁘고 엄격한 아빠만 있어서 그런가. 화내면 그렇게 벌벌 떨면서 뒤에서는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골라서 하는 지태가 참으로 골치 덩어리였다. 

그래서  CCTV를 폐기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면서 지태한테 호통을 쳤다. 

[차라리 죽지 그러냐. 약을 한 것도 모자라 그걸 동영상까지 찍혔다고? 미친 새끼.]

성렬의 막말에 머리만 푹 숙이고 있던 지태가 갑자기 머리를 바짝 쳐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걸 느꼈다. 

[왜. 내가 틀린 말을 했냐? 네가 언제 나한테 한 번이라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냐고!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자랑스러운 아들?? 저한테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뭐? 이 자식이…]

성렬이는 지태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끌어올렸다. 그 힘에 딸려 하체를 일으킨 지태는 성렬이보다 훌쩍 큰 몸이었다. 

[내가 죽였어요. 죽은 애 남자친구도 내 동창인데  걔가 좀 미친놈이거든요.  나를 잘 감추지 않으면  대선 출마가 아니라 지금 그 시장 자리도 위태로울걸요?]

처음으로 하는 지태의 미친 도발이었다. 

 김혜주 살인사건에 집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사건은 자살로 억지로 덮었지만 지태가 죽였던 말았던 그건 이제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집에서 아직 USB도 안 나왔고 문제는 남주혁의 행보였다. 뭘 하고 다니는지 주시해야 했다. 그러던 중 오늘 남주혁이 지태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급히 사람을 대동해서 여기로 끌어온 거다. 

“한동안 꼼짝 말고 여기 있어. 남주혁은 내가 처리한다.”

“어떻게 하게요? 죽이기라도 하게요?”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태를 힐끗 보던 성렬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필요하면 그럴 수도.“

”…!“

***

모 커피숍.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심건희 하면 화려함이었는데 지금 주혁의 앞에 어깨를 축 떨어뜨리고 있는 이 여자는 영락없는 아줌마였다. 

화장기 하나도 없는 모습을 하고 나타난 이 여자. 주혁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냥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주혁아. 힘들지?”

대답은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한다. 

내가 듣고 싶은 걸 얘기하라고. 그날 왜 혜주를 찾아갔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 조금 있다가 자수하러 가.“

”뭐?“

자수? 자수라니. 

주혁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화가 나서 혜주한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어… 미안해. 주혁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미치는 줄 알았어. 난…”

검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던 주혁이가 횡설수설하는 건희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어?“

주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날…”

심건희는 그날 혜주를 찾아가서 무얼 했는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야, 김혜주. 빨리 문 열어봐!]

초인종을 눌러도 별 기척이 없자 건희는 발로 현관문을 쾅쾅 찼다. 

[야! 김혜주!!]

초인종을 한 번 더 누르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집에 있을 줄 알았지. 내가. 

씩씩거리면서 현관을 지나 거실에 먼저 들어간 건희는 홱 돌아서서 뒤따라오는 혜주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나를 아주 무시하는구나? 네까짓 게 뭔데 내 전화를 씹어!! 내가 너보고 돈을 달라고 했니?? 내 아들한테 말 좀 해달라니까?! 진짜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구나. 네가.]

그러면서 또 한 번 손을 번쩍 들었다. 

[그만하시죠. 요즘 아줌마가 아니라도 머리 아픈 일이 있으니.]

이번에 혜주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맞아주지를 않았다. 거침없이 또 다가오는 건희의 팔을 꽉 잡아 비틀었다. 

[아! 너 이거 안 놔?!]

[죄송해요. 주혁이의 모친이신데 저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주혁이랑 오래 같이 있으면서 배운 게 있는데 남한테 당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더라고요.]

[뭐?]

건희의 비틀었던 손목을 홱 던지며 혜주는 건희한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곧 사기죄로 고소 당할 거라 했죠? 벌을 그대로 받으세요. 말도 안 되는 걸로 투자금을 받았으니 거기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죠. 뭐, 돈은 어쨌든 아줌마가 갖고 튄 게 아니니 너무 큰 벌은 안 받겠죠. 다행이네요.]

[야, 너!!!]

자기 할 말만 하고 혜주는 터벅터벅 거실로 향해 걸어갔다. 

혜주는 심건희가 벌써 몇 번째 이 일로 찾아오는지 이제 지긋지긋해졌다. 쉬고 싶었다. 오늘은  그냥… 

[이제 그러니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건희한테 돌아선 혜주의 이마에 묵직한 둔기가 내리 찍혔다. 

[내가 까불지 말랬지!!]

씩씩거리면서 분을 삼키지 못한 건희의 손에는 혜주의 피가 묻은 트로피를 들고 서있었다. 거실 장식장에 놓여있던 주혁이가 전에 대상을 받았던 트로피였다. 

혜주는 별안간 눈앞이 점점 흐려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건희는 몇 분 더 그 자리에서 씩씩대다가 미동이 없는 혜주를 보고는 머리털이 쭈뼛 일어섰다. 

설마, 죽은 거야??

가까이 가기가 무서웠다. 
건희는 피가 묻은 트로피를 옷안에 감싼 채 허둥지둥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그게 다야? 목을 조른 적은.”

혜주를 찾아갔던 그날에 대해 조용히 듣던 주혁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건희의 어깨를 꽉 잡고 다그쳤다. 

“목, 목은 왜 졸라. 그 길로 무서워서 나왔다니까.”

아들이지만 이 순간만은 너무 무서웠다. 성나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김혜주 시체 부검 결과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사망. 욕조에 빠져서 익사로 사망한 걸로 발견되었지만 ..]

최반장의 말이 떠오른 주혁은 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혜주가 죽은 건 당신 때문이 아니야.“

”뭐? 왜 그렇게 생각해?“

분명히 피를 철철 흘리면서 꼼짝을 못 했다고!

건희는 속으로만 부르짖었다. 

”혜주는 질식사야.  누가 목을 졸라서 살해했어.”

뭐? 

자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는 말에  염치없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근데 질식사라니. 혜주가 그렇게 누군가한테 원한을 살만한 애였단 말이야?! 건희는 덤덤하게 말하는 주혁이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누가 그랬는데. 뉴스를 보니까 자살로 나오던데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나도 생각을 했어. ”

뭐가 뭔지 몰라 답답한 건희의 목소리가 급했다. 

“그건 찾고 있는 중이야.”

“띠링.”

이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주혁이의 폰에 메시지 한 통이 들어왔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주소를 보낼 테니 거기로 와. 둘이서만 만나자. -지태.>

“…!”

문자를 받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주혁을 놀라 잡은 건 건희였다. 

“어디 가?”

문자 내용이 뭔지는 모르지만 왠지 불안해. 가지 마. 아들아. 

”범인을 찾아야지.“

주혁은 시선을 문쪽에 고정한 채 목소리를 낮췄다. 자신의 옷깃을 잡은 건희의 손을 풀고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커피숍 밖을 나갔다. 

건희는 그런 주혁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너한테 느끼는 이런 불안한 기분은  처음이야. 아들아. 무사해야 돼. 

그리고 미안해. 엄마가 이런 사람밖에 못 되어서…

정말 미안해. 

항상 독해 보이기만 하던 건희의 눈가에 이슬이 머금기 시작했다. 

***

주혁은 심건희의 연락을 받고 가버렸고 홀로 남은 민수는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소주를 들이켰다. 평소 소주를 잘 안 마시는데 오늘은 너무 잘 받는다. 소주가 원래 이렇게 물 같은 술이었나 싶다. 

자신을 보며 항상 잘 웃어주던 혜주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게 친구를 향한 미소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여왔다. 자주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혜주도 이런 자신을 봐줄 거라고.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모를 리는 없는데, 그걸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아는데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자신을 친구가 아닌, 남자로 봐주었으면 했다. 

굳이 같이 안 있어도 좋으니 남자로 봐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이런 혜주가 죽어나가는 비극도 없을 거라 생각되었다. 이쯤 되니 모든 게 주혁이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맨날 혜주한테서 어린애처럼 받기만 했지 정작 혜주한테 물질적인 걸 빼고는 해준 게 없는 자식이다. 

그딴 물질적인 거? 그 열배 백배는 나도 해줄 수가 있는데…

잔으로 따라 마시던 민수는 소주 병을 들어서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한 병을 또 비운 민수가 입가에 남은 소주를 엄지로 슥 닦으면서 지나가는 종업원을 불렀다. 

한편, 

살기가 넘치는 둘의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집에 가서 조용히 기다리기엔 너무 신경이 쓰인 민서는 아까부터 한참이나 민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집에 가서 쉬라고 했지만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둘의 틀어진 관계를 자기가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해 민수의 오피스텔 아래에서 한참이나 서있었다. 

전화를 할까 말까 애꿎은 휴대폰을 빈 화면에 터치를 했다 잠갔다가를 반복하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하민수> 라고 떴다. 

“어! 민수야. 너 어디야?”

1초도 지체를 안 하고 민수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는 너무 고요하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 정도?

그러다 깊은 숨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민서야….“

민서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는 딱 그 세 글자에 민서는 직감을 했다. 

하민수, 취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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