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2회)

죽으나사나 | 2023.12.21 02:09:13 댓글: 0 조회: 292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2172
따스한 봄날이 올까 (12회) 다미의 초대

“아.. 씨 x. 오늘 일진이 왜 이러냐. 이거 못 놔?!!”

힘으론 안되니 이발 빠진 호랑이처럼 소리만 큰 박태진이 고래고래 가게가 떠나가라 웨친다.  그런 기세에 눌릴 도진이가 아니니 박태진이 그냥 가소롭기만 했다.

“다른 손님들도 계시니 조용하시죠.“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가 사장이야?!  난 손님이 아니냐고!!  어데서 저딴 걸 종업원이라고 데리고 와 갖고 내 일을 망치냐고!!! 어떻게 수습할 건데!!“

미친놈처럼 식을 줄  모르는 박태진의 분노에  도진은 오히려 더 차분하게 그를 경시하면서 쏘아붙였다.

“저희 가게가 불륜 아지트로 이용됐다는 거 어느 정도 알고는 있어요. 그동안 우리한테는 별 탈이 없었으니  신경을 안 썼던 거고요. 오늘부로 다신 오지 마시고 꺼져주세요. ”

“뭐??! 너 지금…”

“그리고!, 여기 보는 눈 많습니다. Tv에 대문짝만한 이혼 뉴스 뜨고 싶지 않다면 빨리 가서 상처받은 부인 달래는 게 더 살 길 같은데, 아닌가?”

아무리 악을 써도 흐트러짐 없는 도진의 태도에 박태진은 혼자 분이 안 풀려 씩씩 거리더니  소동 때문에 모인 직원들을 한 번씩 노려보고는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털썩.”  소리와 함께 시선이 간 곳은 박태진한테 맞을 뻔했던 유나가 많이 놀랐는지 넋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유나 씨. 괜찮아요?”

도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유나한테 다가갔다.

그러나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유나를 보고 도진은 뒤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화영 씨. 유나 씨를 안정 취할 수 있게 2층까지 데려다줘요!“

”아. 네, 네!“

갑작스러운 혼란 속에 어쩔 줄 몰라하던 화영이도 도진의 부름에 깜짝 놀라며 주저앉은 유나한테 뛰어갔다.

도진은 사실 자기가 직접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은지라 괜한 오해까지 살까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먼발치에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거 같은, 어딘가 많이 불쾌해 보이는 다미의 표정을 보았다.

괜히 별거 아닌데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미는 도진의 예상대로 유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 길래 도진이가 신경을 쓰는 건지, 다미밖에 모르던 도진이가 똑같은 얼굴로 딴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꼭 알아야 했다.

**어느 술집,

“다미 언니, 왜 저만 따로 이렇게 만나자고 하신 거예요?”

다른 동료들도 같이 오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달랑 다미랑 둘이서 식당에 마주 앉은 화영은 살짝 당황했다. 더군다나 다미랑 잘 모르는 사이라 더 그랬다. 그녀의 의문을 아는 다미는 웃으면서 안심 시키는 말을 꺼냈다.

“서로 친해 지려고 그러죠. 도진 선배 가게에 다른 사람들은 다 제가 잘 알아요. 화영 씨랑 유나 씨만 처음 보는 얼굴이라 친해지고 싶어요. 원래는 유나 씨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오늘 낮에 그 손님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아서 나중에 따로 보려고요. 제가 실례가 된 건 아니죠?”

그럴듯한 변명을 잘도 방긋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 다미다.

“아니요! 실례는 아니죠. 저도 다미 언니가 궁금했었어요. 저희 사장님 후배 시라고 들었어요.”

화영은 다미의 목적이 뭔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기뻐했다.

”후배시고, 예전엔 연인 사이였다는 거까지요.“

화영은 숨길 일도 아닌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미한테 속삭이듯 말했다.

”맞아요. 그럼 도진 선배랑 다시 잘해 보려고 오는 것도 알겠네요?“

”네. 알죠. “

”우리 짠해요. 앞으로 제가 가게에 한 달은 있을 거니까 서로 친해지죠. “

”네.”

”화영 씨가 내 동생 같으니까 말 놔도 되죠? 우리 언니 동생 해요. “

잔을 쟁그랑 부딪히면서 다미가 친한 척 더 밀어붙였고 화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네. 언니! 좋아요.”

얼마 후, 술안주를 집어먹던 다미는 술이 들어가니 살짝 기분이 업 된 화영이를 보면서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하나도 안 취했지만 이제 술기가 올라온 척 목소리 톤을 높였다.

“오늘 유나 씨 많이 놀랐겠다. 그치? 그 손님 배우라며??“

“네에~ 저희 가게 자주 오는 단골인데 글쎄  거의 매달 여자를 바꿔서 데리고 왔었어요. 공인인데 세상이 무섭지도 않은지. 이번에 지 마누라 데리고 온 건 처음이에요.“

”어머. 그래? 진짜 나쁜 사람이네!”

다미가 맞장구를 쳤다.

“괜히 유나 언니한테 생 지 x을 떨어서… 헙, 죄송해요. 제가 흥분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네요.”

화영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자기 입을 두 손으로 꼭  틀어막았다.

“아니야~ 욕먹어도 싼 놈이더구만. 도진 선배가 오늘…”

“맞아요! 사장님 오늘 얼마나 멋있던지! 언니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반할 뻔했다니깐요. 저번에 땅콩 사건으로 유나 언니한테 많이 미안했었나 봐요. 이번엔 아주 손님을 혼쭐을 내시던데…”

“땅콩 사건이라니…?”

자기 말을 확 끊어 버린 화영이한테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다미는 애써 웃으면서 자기가 몰랐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아… 그게요.”

화영은 신나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미한테 줄줄 털어놓았다.

“…그렇게 유나 언니가 쫓기고 제가 얼마나 미안했던지… 제 잘못이었는데 그 언니는 알면서 말도 안 했더라고요.“

화영은 술 주정인지 또 그때가 생각나 거의 울려고 했다.

”근데 도진 선배가 다시 넣어줬다 이거지?“

”네. 맞아요. “

“유나 씨는 어떤 사람이야? 알아? 어디서 뭐 하다가 온 건지… 그런 거라던가. ”

다미의 다른 질문에 화영은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 언니…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음… 아, 맞다!!”

화영은 중요한 걸 생각 해냈는지 자기 무릎을 팍 내리쳤다.

“그 언니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서 그날 듣고도 잊을뻔했어요. 유나 언니 어릴 적에 보육원에서 자랐나 봐요. 그러다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고요. 회식날 살던 곳 말하다가 말이 나왔는데 도원동에… 행복 보육원 이랬나…? 암튼 우리만 살짝 충격이었어요. 그런 건 보통 숨기기 급급하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더라고요. ”

“보육원? 입양아…란 말이야?”

“네. 그렇대요.”

‘이 언니 궁금한 게 참 많네.’

화영은 마른 오징어를 질근 질근 씹으면서 다미가 이상한 거 같아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걸 아는지 마는지 다미는 이제 이 자리를 끝내도 될 듯싶어서 화영이한테 자기 폰을 내밀었다.

”화영아. 네 번호랑 그리고 나 유나 씨가 오늘 일로 너무 걱정되는데 혹시 유나 씨 전화번호 알고 있어?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괜찮은지. 네 번호도 줘. ”

“아, 번호 있죠. 드릴 가요?  저도 좀 이따가 전화를 해 봐야겠어요. ”

“응. 지금 줘.”

고작 종업원인 유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다미는 휴대폰 번호까지 받아 내고서야 많이 마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같이 일어났다.

다미는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유나의 전화번호를 한참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계획하는듯했다.

한편,

유나는 혼자 레스토랑 옥상에서 아직 불이 다 안 꺼진 동네를 덤덤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엔 아까 도진이랑 통화했던 게 생각났다.

[괜찮아요? 오늘 많이 놀랐죠.]

[네.]

[저녁은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 사장님. 저 피곤해서 오늘은 일찍 자고 싶어요.]

[아. 미안해요. 그럼 빨리 쉬세요. 이만 끊을게요.]

[네. 내일 봬요. 사장님.]

그냥 평범한 전화 통화였다. 자지도 않을 거면서 빨리 통화를 끝낸 건 도진이가 귀찮아서도 아니었다.

오늘 힘들었던 건 행패를 부리던 박태진 때문이 아니다. 유나를 힘들게 한 건, 도진이다. 낮에 박태진을 제지하던 도진이한테 고마움이 가득한데… 전화를 더 들고 있으면 더 이상 지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오늘처럼 그렇게 요동치는 가슴은 그 누구한테도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게 도진이면 더욱더.

아무리 설치고 어찌하여 봤자 그 끝이 어떨지 잘 아는 유나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해가 떠오르려고 할 때쯤 잠이 든 유나는 휴대폰 벨 소리에 눈을 떴다.

“ 여보세요?”

“저 다미인데 혹시 아시나 모르겠어요. 레스토랑에서 도진 선배 만나러 왔던,”

“아… 네. 알아요. 근데 무슨 일로 저한테….”

시계를 보니  점심이 다 되어 가는 한낮이었다.

“그게… 어제 레스토랑에 갔다가 봤어요. 많이 놀랐을 거 같아서 걱정되어서 전화를 했어요. 괜찮아요 지금은?”

“아… 네.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럼…”

유나는 별거 없는 문안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잠깐만요. 유나 씨!”

전화기 너머 다급한 다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오늘 약속이 없으면 저녁에 저희 집으로 올래요? 제가 초대할게요.”

“왜요?”

뜬금없는 초대에 유나는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저 한 달 휴가 내서 레스토랑에 자주 드나들 건데 다른 분들은 다 잘 알거든요. 근데 화영이랑 유나 씨만 제가 잘 몰라서 괜히 민폐가 아닌가 싶어서요. 어제 화영이랑 유나 씨랑 같이 만나려고 했는데 유나 씨가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화영하고만 만났었어요. 유나 씨하고도 친하고 싶어서요. 실례가 안된다면 저희 집에 꼭 초대하고 싶어요. 올 수 있죠?“

*늦은 오후.

어느 오피스텔 입구에서 한쪽에는 금방 산 딸기 케이크를 들고서 진짜 들어가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유나가 있다.
굳이 친해져야 하나 싶었지만  아까 잠을 덜 깬 탓인가 덥석 응해버린 자신한테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아니면, 마음 한구석에 유나도 다미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딩동~“

”어? 유나 씨. 빨리 왔네. 얼른 들어와요.“

집에서 입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기다란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누가 봐도 온몸을 잘 치장한 다미가 유나를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그냥 오기가 그래서 케이크를 사들고 왔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아. 케이크요?“

그제야 유나 손에 든 케이크를 발견한 다미는 아주 잠깐이지만 굳은 표정으로 투명 비닐 속을 들여다보더니 케이크를 덥석 받았다.

”고마워요~ 유나 씨는 역시 센스가 있네요.“

“유나 씨 어제 많이 놀랐죠~ 저도 멀리에서 보는 것만 해도 무서워 죽겠던데 유나 씨는 오죽하겠어요. 그렇죠?”

다미가 하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걱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청 호들갑을 떨었다.

“무서운 건 아주 조금이요.”

유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커다란 식탁에 자신이 손수 한 요리를 하나하나 차려 놓는 다미를 돕다가 유나의 시야에 들어온 게 있었다. 자리에서 멈춰 있는 유나의 시선을 따라 보던 다미는 약간 오버하듯이 시야에 잡힌 물건을 재빨리 집으면서 웃었다.

“아, 이거요. 저랑 도진 선배가 예전에 찍은 건데  부끄럽게 여기에 있었네.“

사진 속엔  도진과 다미가 꿀 떨어지게 서로  마주 보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다미는 유나 앞에 보여주면서

“이 집에서 그냥 심심할 때 찍은 건데 집에 이런 물건들이 많아서 이제 치우는 걸 포기했어요. 선배가 여기서 저랑 같이 살았었거든요.”

‘동거를 했었구나. ’

묻지도 않았는데 다미는 또 말을 이어 갔다.

“도진 선배가 이런 사진 찍기 진짜 싫어하는데 그땐 이렇게 같이 찍어주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마치 어제 일 같고 기억이 새록해요. ”

“근데… 누가 또 오나요?”

예전 생각에 취해 있는 다미의 말을 뒤로하고 유나는 양이 많은 요리와 수저를 보고  누군가가 더 오겠다는 걸 직감하고 다미한테 물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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