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6회)

죽으나사나 | 2023.12.23 19:00:56 댓글: 0 조회: 36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3250
따스한 봄날이 올까 (16회)유나는.


21년 전,

<행복 보육원>

[아가야, 우리랑 같이 갈래?]

[누구... 세요?]

[우리?]

짧은 단발머리를 한 6살 여자애가 낯선 이들을 보며 경계를 한다. 그러자  40대 중년 부부가 서로 마주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린 아가의 엄마 아빠가 되고 싶단다. 아가는  우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려움도 당연히 있었지만 여자애는 변함없이 항상 잘해주던 원장 선생님의 긍정의 머리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 좋아요.]

그렇게 어느 한 겨울에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버려진 이 가련한 어린 여자아이는 6살 되어서야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맞이 한 엄마 아빠는 너무 나도 자상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여자아이를 꼭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처럼 그렇게 이뻐해 주었고 몇 년 뒤 부부들 사이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여전하였다.

특히 엄마 아빠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그러나, 행복은 여자아이가 이 집에 온 지 9년이 되던 해에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아빠, 제가 말했던 이 케익 가게 종류가 진짜 많죠? 여기서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할 거 같은 거로 찾아요!]

각이각색 모양의 케이크을 진열해놓은 어느 케이크 가게에 들어선 여자아이와 아빠. 아이는 자기가 말한 게 증명이라도 되었다는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 케익 좋아하는 네 엄마가 엄청 좋아하겠는데? 우리 어떤 걸로 할까~?]

[음~... 엄마는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니까... 일단 딸기 올린 거 하고요.]

그렇게 한참을 신중하게 고른 아빠와 여자아이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케이크 가게를 나섰다.

[위이잉~]

차디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라 뼈를 스며드는 추위가 목으로부터 들어왔다.

[앗, 추워!]

여자아이는 온몸이 저리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면서 아까 케이크 가게서 가방 속에 넣어 둔 목도리를 꺼내 들었다. 이때 아빠는 앞으로 이동하면서 여자아이의 행동을 못 보고 그냥 걸어간다.

[아앗!! 내 목도리!!]

비명소리와 함께 아빠는 뒤를 돌아 보았고 바람에 날아간 목도리를 주우려고 도로로 들어가는 여자아이를 보게 되었다.

[빵----!!!]

큰 경적소리가 울렸다.

[유나야!!!! 안돼!!!!!]

아빠는 여자아이를 구하려고 차도에 뛰어 들었고 아이는 아빠가  밀어서  도로 끝에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아이는 그냥 타박상으로 깨어났지만 아빠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것도 엄마의 생일날에...

"아빠... 아빠... 아빠!!!"

기억하기 싫은 그날을 꿈에서 또 보게 된 유나는 눈물이 범벅인 채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레스토랑 2층이다.

유나는 침대 옆 테이블에 물이 없는걸 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갔다. 레스토랑 마감이 이미 끝났건 지라 누구도 없는 어두운 홀에서  전등을 켰다.

컵에 찬 냉수를 받아든 유나는 바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의자에 앉았다.

아빠 꿈을 꿔서 그런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완전히 바뀐 집 분위기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죄송해요... 흑... 저 때문에 아빠가... 아빠가...]

장례식장에 있는 내내  서럽게 우는 유나와 달리 엄마는 슬픈 기색이 없는 덤덤한 얼굴을 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아직 어린 동생은 그런 엄마 옆에서 칭얼칭얼하기만 했다.

엄마는 갑자기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아빠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일을 놔 버렸고 아빠의 회사도 이사라는 작자한테 모든 걸 맡겼다가 눈을 뜬 채 모조리 다 뺏기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그때 엄마는 처음으로 미친 사람처럼 유나한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다면 울 남편이 그렇게 안 죽었을 거고! 너만 그때 입양을 안 했더라면! 난 이렇게 불행하지 않을 거야!  다 너 때문이야!  너!!]

엄마는 실성한 사람처럼 갑자기 유나한테 달려가  목을 졸랐다.

[커..억... 엄.... 마....]

유나는 숨이 끊기는 고통에 발악을 하다 차차 정신이 몽롱해져 갖고 그 매서운 눈빛으로  유나의 목을 조르던 엄마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엄마가 심장이 많이 안 좋으니 흥분되는 일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자상하고  착하기만 하던 엄마는 아빠가 가셨다는 걸 인정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꺼져, 이년아!!]

유나만 보면 흥분을 해서 같이 지낼 수가 없어서 집을 나오게 되었고 그나마 다행히 동생한테는 예전 같지는 않아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었다.

지금은 동생도 대학 공부를 한다고 하숙하고 있어서 집에는 엄마 혼자다.

작년 이때쯤에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길래 혁이가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갔었는데 시술로는 안될 정도란다. 너무 많이 안 좋아진 심장은 언제 어떻게 쓰러져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고 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심장 이식이라고 했다. 근데 연세도 있고... 중요한 건 돈이 없다.

그래서 유나는 최대한 지출을 줄이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유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엄마한테서 아빠를 뺏어 간 거는 본인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엄마도 연약한 여자일 뿐, 하루아침에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긴 너무 힘들었을 거라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을 거라고.

...

여기까지 생각한 유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급히 2층으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하고 내일 레스토랑 일은  하루를 비워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엄마한테 가야겠다.

날 미워하든 말든 이젠 정면충돌을 할 때가 된 거 같다.


** 다음 날,

“유나는 어데 갔어요?”

어머니의 부름에 집에 들렀었던 도진이가 레스토랑을 늦게 들어오면서 유나가 눈에 안 보이자 송 매니저한테 묻는다.

“아, 유나 씨 오늘만 빼달라고 사정을 하길래 빼줬어요. 어제 보니까  집에 뭔 일이 있는 거 같아서 원래 오늘도 쉴 수 있으면 쉬라고 말할 참이었지만.“

”… 그랬군요.“

도진은 송 매니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2층을 바라보았다.

“근데 사장님, 유나 씨가 짐을 싸고 나갔어요. 엄마한테 간다고 하던데요? 이제 거기서 살 거래요. ”

“네? ...”

***

“쾅쾅. 쾅쾅 쾅!!!“

끝날 줄 모르게 정신없이 두드리는 문이 한참을 지나 덜컹 열리자 유나는 안에서 뭐라 하던 기다릴 새 없이 쳐들어 갔다.

”… 누나!“

열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안 듣고 끝끝내 문을 열게 된 혁이였다.

유나는 그 길로 곧장 안방에 누워 있는 엄마의 방으로 갔다.

”엄마, 옷 입어. 우리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라도 해봐.“

몸에 힘주고 들어간 것치고는 목소리는 많이 추슬렀다.

무서웠다. 엄마가 또 발작할 가봐.

엄마는 예상대로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유나는 말이 없는 엄마를 쳐다보다 옷장을 열어 엄마의 외출옷을 마구잡이로 찾아 꺼내면서 엄마의 귀에 꽂히는 말들을 꺼냈다.

“ 나 이제 엄마 눈치 안 볼 거야. 엄마가 심장이 어느 정도 좋아지기 전까지 난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고 그게 싫으면 나랑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해보고 치료도 받아보자고.”

“…”

“날 그냥 미워해도 좋아요. 괜찮으니까 쫓지만 마요 엄마!”

유나는 손에 있던 옷을 툭하고 떨구면서 엄마의 침대에 쭈그리고 엎드렸다.

이렇게 무작정 쳐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어릴 적 쫓겨나 듯이 집에서 나오면서 형편을 잘 아는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동냥을 했었다.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했어도 배만은 곯지 않았었다.

엄마의 손길이 너무 나도 그리웠다. 엄마의 냄새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어릴 때는 꿈속에서라도 그 자상하던 엄마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근데 깨어난 현실에선 엄마가 자신을 목 조르던 그 장면이 자꾸자꾸 떠올랐고 그런 엄마가 사실 너무 무섭기도 했다.

유나는 아픔과 그리움을 동반한 채 엄마의 다리 위에 얼굴을 갖다 댄 채 중얼거렸다.

“이제 난 엄마한테서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엄마도 쓸데없는 기를 쓰지 마요.”

엄마도 이젠 늙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자기만 보면 무서워하던 유나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놀랐던 걸까, 얼굴은 그렇게 내키지가 않아도 유나의 지휘하에 혁이랑 같이 옷을 챙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분 지금 상태가 안 좋긴 한데 입원해도 딱히 크게 할 거는 없어요. 갑작스레 오는 심정지 같은 거라… 약은 충분히 드릴 테니 집에서 약이라도 꼬박꼬박 드시게 하세요.”

담당 의사의 진단을 듣고 셋은 병원 밖으로 말이 없이 나왔다.

그러다 눈치를 보던 혁이가 입을 열었다.

“어… 누나. 나 요즘 시험이 끝났잖아. 요즘 우리 학과는 안 가도 되니까 내가 엄마를 집에서 좀 지켜볼게. 우리 둘 다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누나는 출근을 해도 돼.”

“… 일단은  우리 밥 먹으러 가자. ”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셋은 근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이것도 드세요.”

유나는 먹는 게 시원치 않은 엄마 접시 앞에 계란말이를 올려주었다.  엄마는 그런 유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계란말이는 안 먹었지만 국물을 조금씩 떠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가 없는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엄마는  먼저 집에 들어가고 혁이와 유나가 집 아래에서 대화를 나눴다.

“누나. 엄마는 너무 걱정 말고 그렇게 해. 응? 갑자기 집에 들어와도 엄마한테는 안 좋을 수가 있으니까 천천히 해. ”

“…”

“엄마가 어제 일을 좀  해보려고 식당에 갔었나 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된거고. 엄마도 사실 누나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거 같아. 몸이 안 좋아서 잘 안되었지만 말이지…엄마를 너무 뭐라 하지 마. 일은 못하게 내가 옆에 있을 거야. ”

유나는 항상 어린 애라고 생각되었던 애가 언제 이렇게 커서 자신을 위로하는지, 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도 이제 누나한테 쓸데없이 돈 뜯고 안 그럴게. 저번에 … 그 교재값은 사실 뻥이었어.“

”… 알아.“

”알… 아??“

혁은 이실직고는 하고 있었지만 유나가 알고 있었다는 건 의외라 말을 더듬었다.

”뭔 교재값이 50만이나 하겠냐. 누나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지식이 없지 바보는 아니란다.“

유나는 놀라 하는 혁이가 웃겨 저도 모르게 피식했다.

”어? 웃었다. 누나. 나 그 돈 쓰려다가 안 썼으니까 누나한테 돌려줄게.“

”혁아.“

혁이가 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하자 유나가 급히 막아섰다.

”너 엄마랑 있으면 밥도 매일 해먹어야 되고 돈이 더 필요해. 누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너는 돈이 더 필요할 테니까 누나가  좀 있다가 더 이체해 줄게.“

”… 누나.“

”응.“

”난 어려서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이게
다 누나 잘못이 아니라는 거. 너무 혼자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곧 졸업하면 누나처럼 돈 벌어서 부담을 줄여줄게. “

”… 알았어.“

동생이 진짜 컸다. 이제…

그나마 좀 안심이 되었다.

유나는 혁이한테 엄마를 부탁하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 생각엔 무조건 같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는데 혁이의 말도 맞다. 엄마의 상태가 불안정한데 유나가 옆에 그냥 있는다고 더 좋아진다는 법도 없었다. 다행히 혁이가 한동안 시간이 있다고 하니…

그리고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려면  차라리 레스토랑에서 먹고 자는 게  돈 절약이었다.  집이랑 가까우니까 엄마 상태를 보면서 잠깐씩 들여다보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정유나!!”

캐리어를 다시 끌고 터벅터벅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유나.

유나를 발견하고는 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옅은 한숨을 내뱉은 도진을 보았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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