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3~4

단차 | 2023.11.15 13:05:18 댓글: 2 조회: 376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7750
3. 어떤 만남의 시작은 



서연은 카페에 들어서면서 내부를 슬쩍 훑어보았다. 

진회색 벽면에 크고 작은 그림 또는 사진 액자가 걸려있었고 중앙에는 노란색의 전구 모양 조명이 네모난 프레임에 걸려서 드리워져 있었다. 

카페 곳곳에는 부드러운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가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 불규칙적으로 놓여있었다. 
키가 큰 식물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어서 자연스럽게 테이블 간의 시야를 어느 정도 가려주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하은을 발견하고 걸어갔다.

“분위기 좋지? 언니 좋아하는 커피 내가 미리 시켜놨어.”

서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고마워. 그런데 만나서 해야 한다는 말은 뭐야?”

하은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언니, 성격 급하네. 잠깐만 기다려 봐.”

하은이 핸드폰을 들고 뭔가 확인하는 듯하더니 바깥을 흘끔거렸다.

자연스레 시선을 따라간 곳에 어떤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스타일의 옷차림에 적당한 길이의 연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곧이어 카페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하은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그 역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키오스크에 주문하러 갔다.

“여기 앉아.”

잠시 후 그는 가까이에 와서 하은이 옆자리에 앉았다.

“언니 인사해. 여기는 내 친구의 친구 재현이야.”
“친구의 친구? 아, 안녕하세요.”

서연이 어색하게 인사하자 재현이라고 불린 남자는 스스럼없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서연이 누나 맞죠? 만나서 반가워요.”
“아, 네. 네?”

서연이 그의 밝은 갈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밝은 헤어가 잘 어울리는 맑은 피부는 메이크업이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그녀는 그 남자의 옆에 앉아있는 하은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하은은 그저 눈을 깜빡거리고는 웃기만 했다. 묘한 정적이 흐르자, 하은이 괜히 헛기침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진동벨이 울리고 남자는 살짝 눈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언니, 저번에 내가 한번 소개팅 말한 적 있었잖아.”
“나 분명 그때 안 한다고 했어.”

“언니, 그냥 친구 한 명 더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아?”

다급하게 말을 잇는 하은을 보고 뭐라고 더 말하려던 서연은 커피를 들고 돌아오는 재현을 의식하고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커피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고 조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은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들더니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언니, 나 약속 생겨서 이만 가볼게. 김재현, 우리 다음에 봐!”

하은이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서 자리를 떴다.

삽시간에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 둘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는 어색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누나, 혹시 자리가 불편한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에요.”

서연이 뜨끔하며 커피를 마시려다가 내려놓았다.

“아, 진짜요? 다행이다. 저 사실 하은이랑 많이 안 친한데 부탁한거 거든요.”
“네? 왜요?”

재현이 잠깐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누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부담은 안 가지셔도 돼요.”
“그런데 아까부터 누나라고 하던데 몇 살이에요?”

“저 누나랑 딱 3살 차이에요. 별로 차이 안나죠?”
“아, 그러네요.”

그의 세상 무해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서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서연은 자기보다 어리고 밝은 사람에게 약했다.

초면에 대화가 길게 이어질까 걱정했지만, 재현은 첫인상대로 유쾌하고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재주가 있었다. 

마주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연은 그의 취미생활 및 최근 관심을 두는 주제까지 다 알아버렸다. 

적당히 끊고 돌아가려 했는데 그가 신나서 하는 말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의외로 그의 스스럼없는 태도가 그녀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있었다.

서연은 어느새 비어 버린 음료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쯤하고 돌아가야 겠다고 마음먹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재현의 폰이 울렸다.

“누나, 잠시만요.”

재현은 짧은 통화를 하고 나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노래 듣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혹시 인디고 노트라는 라이브 바에 가본 적 있어요?”
“아니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럼, 한번 같이 가볼래요? 오늘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서연은 문득 꿈에 나왔던 라이브 바가 떠올랐다.

“좋아요.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서 궁금하긴 했거든요.”

둘은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섰다.

가는 도중에도 재현은 대화를 이어가려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부지런히 대답을 해주던 서연은 다 왔다는 재현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서연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indigo note]

뭔가 익숙한 듯 아닌 듯 느낌이 묘했다.

꿈속에서 본 라이브 바 간판을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어째서인지 점점 형체가 흐릿해졌다.


4. 녹아내리기 시작한건


잔잔한 음악이 부드럽게 깔리고 있는 바는 분위기 있는 조명이 너무 어둡지 않을 정도로만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서연은 테이블에 앉아서 나온 맥주잔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처음 만난 사람이랑 술 마시러 오다니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무래도 재현에게 자연스럽게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은 처음 와보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네요.”

재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여기가 좀 특별해요. 다른 곳도 다녀봤는데 여기만 한 데가 없더라고요.”

칵테일 잔을 들어서 살짝 마셔보던 재현과 눈이 마주치자, 서연은 가슴이 살짝 뛰는 걸 느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며 그녀의 마음마저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바의 조명 효과 때문인지 한동안 좋아했던 아이돌 멤버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서연은 내심 자책했다. 아닌 척했지만, 그에게 사심을 품고 여기까지 따라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왔고 서연은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서연, 너 드디어 미쳤구나? 이렇게 애기 같은 애를 두고 무슨 생각을.’

카페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에 서연은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누나, 너무 급하게 마시는 거 아니에요?”

당황한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못하고 얼마 안 남은 잔을 내려놓았다.

재현은 놀란 눈으로 바닥이 드러난 맥주잔을 보았다.

“다른 거 마셔 볼래요? 칵테일도 먹을 만하거든요.”
“지금 마시는 거 맛있어요?”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색도 이쁘죠? 여기 대표 메뉴에요.”

서연이 푸른 빛이 도는 칵테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쁘네요.”
“누나가 더 예뻐요.”

서연은 훅 들어온 그의 말에 놀랐지만,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예쁘게 눈웃음 짓는 재현을 보고 당혹감을 숨기고 담담하게 웃으며 받았다.

“아, 네. 감사해요.”
“지금 본인 예쁜 거 인정한 거 맞죠?”

“네?”

결국 화들짝 놀란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자, 그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소리 내 웃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그런데 예쁘다는 말은 진심이에요.”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재현 씨도 멋지신데요. 뭘.”

“저도 알아요. 그런데 누나한테서 들으니까 더 기분 좋네요.”

재현이 인사를 능청스럽게 받자,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아,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우리 서로 말 편하게 할래요?”

서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래, 재현아.”
“네, 누나. 편하게 불러주니까 더 낫다. 더 친해지는 기분도 들고.”

재현이 기분 좋게 웃었다. 

다시 주문한 칵테일이 나오고 서연은 조심스럽게 마셔보았다. 달면서 상큼한 맛이었다. 

넘어가면서 알코올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나기는 했지만.

바에 흐르던 음악이 바뀌자, 서연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런 서연을 지켜보던 재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여기 선곡 좋지 않아?”
“응, 듣기 좋네. 너도 음악 좋아해?”

재현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응, 나는 주로 힙합이랑 알앤비를 좋아해. 누나는 어떤 장르를 좋아해?”
“나는 알앤비도 좋아하고 자주 듣는 건 인디음악이야.”

“그렇다면 오늘 내가 누나가 좋아할 만한 아티스트 한 명 소개해 줄게.”

취향을 타는 가수만 좋아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추천받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왠지 자신만만한 표정의 재현을 보니 서연은 궁금증이 일었다.

“그게 누군데?”
“음, 아직 데뷔는 안 했는데 내 마음속에는 이미 슈스야.”

“설마 저기 저 사람은 아니지?”

서연은 마침 무대에 오르는 사람을 가리켜 보였다. 그는 멀리서 봐도 키가 커 보였다. 흘러내린 앞머리에 가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맞는데?”

무대의 조명이 바뀌고 그루브한 비트가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연한 블루 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그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조용히 마이크를 고정하고 섰다가 마이크에 가까이 입을 대고 첫음절을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을 조금씩 실으며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음악의 분위기에 완벽히 어울렸다.

술렁이던 바의 분위기가 그의 무대가 시작되자 서서히 잦아들고 오롯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서연도 어느새 그의 무대에 빠져들었다. 그의 음성과 어우러지는 멜로디는 부드러운 밀크티 같았지만, 가사는 공허감과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그는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좋지 않아?”

서연은 무대에서 내려가는 그에게 시선을 거두고 재현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잠깐만 기다려 줘.”

재현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연은 미소로 답하고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칵테일 잔을 내려다보았다.

진했던 파란빛이 연해지고 있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6:36:31

어린남학생이 대화를 리드하고 라이브바에 대해서두 잘알구 먼가 선수
같은데 뜬금없이 자기 좋아하는 형을 소개해주고 음 아직 갈길이 머네요.

단차 (♡.252.♡.103) - 2023/11/17 06:41:52

그래서 아직 어리다는거죠.연하의 당돌함은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한구석은 어설픈 매력이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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