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0)

개미남 | 2019.06.11 18:51:55 댓글: 1 조회: 58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com/fiction/3935121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 - 20.

아자부쥬반 역에서 도보로 약 5분, 오래된 상점과 최신 디자인으로 꾸민 점포가 뒤섞인 거리에 그 양식당은 있었다. 건물 정면에서부터 완만한 커브를 그리는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 문짝이 달려 있지 않았다.
이곳이 <도가미 정>의 아자부쥬반 체인점이 들어설 곳ㅡ, 유키나리가 시즈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한 장소였다.
"발밑을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며 유키나리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파란 비닐시트가 둘러쳐진 통로를 빠져나가자 갑자기 눈앞에 널찍한 공간이 펼쳐졌다. 시즈나는 멈춰 서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와아, 넓다!"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이었다.
앞쪽을 걸어가던 유키나리가 돌아서며 하얀 이를 내보였다.
"아직 집기를 들여놓지 않아서 그래요. 사실은 좀 더 널찍했으면 했는데 이보다 더 큰 가게를 찾지 못해 여기로 결정했죠. 하지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유키나리의 말을 들으며 시즈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실내 공사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롭게 빛나 보였다.
작업원들이 사방으로 나뉘어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 시즈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묵묵히 작업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이 착착 새로운 양식당으로 태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때요? 이달 안에 실내 공사를 대충 끝내고 다음 달부터는 테이블이며 의자를 실어오면서 드디어 마감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만."
"정말 멋있어요. 몇 사람이나 들어올 수 있어요?"
"손님을 너무 꽉 채울 생각은 없어요. 많아야 한 번에 50명 정도일까? 손님의 숫자보다는 실내장식의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생각이에요."
시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여기저기 눈길을 보냈다. 건물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네 면 중 두 면이 창가였다. 그곳에 테이블이 늘어선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사오리 씨라면 어떤 자리에서 식사하고 싶어요?" 유키나리가 물어왔다.
"아, 어떤 자리로 할까‥‥‥." 시즈나는 창가로 다가가 그곳에서 내다보이는 풍경과 실내를 견주어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제 식당 내부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창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맨 끝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웃한 테이블과의 간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왜 그렇죠?"
"아무래도 창문 밖의 경치도 즐겨야겠지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다 보이는 자리는 좀 그렇고‥‥‥, 여기라면 처음 자리에 앉을 때도, 자리를 뜰 때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곧바로 곁에 있는 원통형 기둥으로 눈을 돌렸다. "이 기둥도 좋군요. 이것만으로도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듯한 마음이 들어요."
유키나리는 슬그머니 고개를 저으며 웃는 얼굴을 보였다.
"역시 사오리 씨를 데려오기 잘했군요. 내 감각에 자신을 가지게 됐어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시즈나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완전히 똑같은 이유에서 나 역시 이 자리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 기둥도." 그는 기둥을 툭툭 치며 실내를 둘러보았다. "이 가게, 유난히 기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 정말 그러고 보니‥‥‥."
"기둥이라는 건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감춰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리 굵은 것도 아닌데 이 기둥 하나가 서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왠지 마음이 놓이는 거예요. 물론 동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상당히 머리를 쥐어짜야 했지만."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실은 <도가미 정>의 맨 처음 식당에도 기둥이 정말 많았어요."
"맨 처음 식당이라면, 그 요코하마의?"
유키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넓지도 않은데 여기저기 기둥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나는, 저건 모두 거치적거리기만 한다고 생각했죠. 손님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나 혼자 은근히 걱정도 했어요. 근데 어느 날인가, 재미있는 광경을 봤습니다."
순수한 흥미가 일어서 시즈나는 가만히 유키나리를 바라보았다.
"어떤 젊은 커플이 왔을 때였어요. 그날 나는 카운터 자리에서 저녁 대신 주방 요리를 먹고 있었죠. 무심코 그 커플 쪽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남자 쪽이 뭔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라고요. 가만 보니 테이블 아래에서 조그만 상자 같은 걸 감춰들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주위를 살피듯이 둘레둘레 둘러보고는 그 상자를 슬그머니 테이블 위로 올려놓더군요. 그게 바로 반지 케이스였어요."
그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시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었다.
"실은 그때, 내 쪽에서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기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남자도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건 몰랐을 거예요. 만일 기둥이 없었다면 그 사람도 내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 드라마틱한 행동에는 나서지 못했겠지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습니다. 기둥이 도움이 되는 일도 있구나, 하고."
"멋진 이야기네요."
"하긴 그때 <도가미 정>에 기둥이 많았던 건 그 전 가게의 실내장식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었어요. 자금이 부족해서 기둥을 철거하지 못했던 거예요. 뜻밖의 수훈 선수인 셈이죠? 하지만 나는 그때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더군요. 내가 식당을 하게 되면 연인들이 선물을 교환할 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내내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코를 벌름거려가며 열심히 이야기하는 유키나리를 보며 시즈나는, 이 사람은 진심으로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양식 레스토랑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그 일로 가듣차서, 무엇을 보건 무슨 말을 듣건 곧바로 그것과 연결 짓는 모양이었다. 아무런 사념이 없는, 그런 그의 삶의 방식이 시즈나는 부러웠다.
작업원 중의 한 사람이 다가와 유키나리의 귓가에 뭔가 속삭였다. 유키나리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잠시 말을 나누더니 시즈나를 바라보았다.
"미안, 잠깐만 실례할게요."
네, 그러세요. 라고 시즈나는 대답했다.
유키나리가 작업원과 도면을 사이에 두고 뭔가 상의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실내를 둘러보며 공사가 완성되었을 때의 상태며 이곳에 손님이 들어왔을 때의 상황을 상상했다. 인테리어나 조명이 어떤 것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 나름대로 디자인하면서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유키나리는 커플이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식당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면 좋을까.
벽을 따라 걸으면서 뭔가 그림을 장식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무거운 분위기의 그림은 물론 안 된다.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그런 그림이 좋을 거야ㅡ.
거기까지 생각한 참에 시즈나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자신을 꾸짖었다. 이런 식당, 어떻게 되건 내 알 바 아니다. 유키나리가 장사에 실패하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구.
고이치가 <도가미 정>의 하야시라이스, 즉 <아리아케>의 하야시라이스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뒤, 셋이서 상의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게 주제였다.
어떻게든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고 고이치는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날 밤에 다이스케가 목격한 남자는 99퍼센트 도가미 마사유키야. 하지만 얼굴이 닮았다는 것만 가지고는 경찰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그자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하지만 <아리아케>의 레시피를 훔쳐갔잖아?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하는 거야?"
다이스케의 질문에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훔쳤다고만은 할 수 없어. 아니, 그보다 훔쳤던 게 아니라고 생각해."
"어째서?"
"레시피 기록은 내가 갖고 있는 노트뿐이야. 그 외에는 없어. 도가미가 <아리아케>의 하야시라이스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버지에게서 직접 말로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런 것이어도 상관없잖아? 어찌됐건 도가미 마사유키는 아버지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 사람을 나는 사건 날 밤에 목격했고, 그걸로 충분한 거 아냐?"
하지만 고이치는 수긍하지 않았다.
"하야시라이스의 맛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게 아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해. 예의 간장을 상요한다고 해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란 말이야."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어? 비슷하기는커녕 완전히 똑같은 맛이라고."
"그런 우연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찰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얘기야."
"도가미가 범인이라는 걸 보여줄 증거라니, 이를테면 어떤거야?" 시즈나가 고이치에게 물었다.
고이치는 팔짱을 끼고 끄응 신음을 올렸다.
"분명히 말하겠는데, 이제 와서 그걸 증명한다는 건 어려워. 아무튼 14년이나 지난 옛날 일이니까. 알리바이 같은 걸 조사할 방도도 없고, 가령 조사한다고 해도 도가미에게 알이바이가 없다는 것 따위로는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 게다가 경찰은 범인의 지문이나 유류품 같은 것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어."
"그럼, 그냥 포기하자는 거야?" 다이스케가 입을 툭 내밀었다.
"아니, 포기할 생각은 없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14년 전의 도가미 마사유키의 행적을 조사해보자. 아까 내가 말했던대로 도가미는 어딘가에서 <아리아케>와 연결 고리가 있었을 거야. 우선은 그것을 어떻게든 캐내야 해." 그렇게 말하고 고이치는 날카로운 시선을 시즈나에게로 향했다. "그게 모두 시즈나의 수완에 달려 있어."
시즈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부러 말해주지 않아도 도가미 마사유키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그걸로 뭔가 증거가 잡히면 어떻게 하지?" 다이스케가 물었다. "경찰에 알릴 거야?"
"그 질문에 고이치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미간에 주름이 파인 채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형‥‥‥."
"그 내용에 따라 달라질 거야." 고이치는 말했다. "어떤 증거를 잡느냐에 따라 달라져. 만일 그게 누가 보더라도 도가미 마사유키가 범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익명을 사용해서라도 경찰에 알리면 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시즈나가 물었다. "절대적인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없을 때는 어떻게 해? 그래도 경찰에 알리는 거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잖아? ㅡ그렇지?" 다이스케는 형에게 동의를 청했다.
하지만 고이치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어중간한 증거로는 경찰이 움직여줄지 아무래도 애매해. 가령 움직여준다 해도 도가미가 빠져나가버리면 거기서 끝이야."
"만일 그렇게 되면 다시 찾아내면 되는 거 아냐?"
"아니,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
그러자 고이치는 다이스케와 시즈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경찰에 신고할 때는, 우리가 도가미 주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야. 생각해 봐. 뻔하잖아? 경찰은 반드시 신고자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할 거야. 그 인물이 도가미 마사유키의 주위에 있다고 추리를 하겠지. 요즘 들어 아들 유키나리에게 접근했던 젊은 여자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돼."
"그게 머, 안 좋은 건가?"
다이스케가 묻자 고이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명을 사용해서 유키나리에게 접근한 여자를 경찰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가짜 보석상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피해자의 유족이야. 도가미가 저지른 범죄의 꼬리를 잡기 위해 접근했다고 하면 되지, 뭐."
"왜 도가미를 점찍었느냐고 하면 어쩔 거지?"
"그거야 뭐, 어떻게든 둘러대면 되잖아."
"아니, 분명하게 대답해 봐. 경찰에 어떻게 설명할 거야?"
고이치의 추궁에 다이스케는 심통이 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사기팀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 언제 경찰의 눈에 띌지 모르는 처지야. 내가 무엇 때문에 현관에 다이오드 경고등을 달았는지, 몰랐어?"
"그거야 알지.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도가미가 범인이라는 절대적인 증거를 잡지 못했을 때는?"
"그때는‥‥‥, 그때는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 고이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최후의 수단?" 시즈나가 물었다. "뭐야, 그게?"
"그런 얘기는 아직 할 거 없어. 최후의 수단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 단계에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지금은 증거를 잡는 일만 생각하자."
그리고 고이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에게 다시 말해둔다. 작전을 전면적으로 변경할 거야. 타깃은 도가미 유키나리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도가미 마사유키야. 우리가 노리는 건 일천만 엔이 아니라 그자가 아리아케 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이라는 증거! 말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타깃이야. 랭크는 A. 아니, 초A클래스야. 반드시 성공시켜애 해!"

소리 높여 선언했던 고이치의 음성이 지금도 시즈나의 귀에 남아 있었다. 그의 기대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14년동안 쌓이고 쌓인 한을 풀 수 있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가장 먼저 밝혀낼 것은 도가미 마사유키와 <아리아케>의 관련이야." 고이치는 그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14년 전의 이야기를 철저히 알아내야 해. 반드시 어딘가에서 <아리아케>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시즈나는 다시금 자신에게 기합을 넣었다. 유키나리의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그의 상담에 진심으로 응해버리다니. 내가 한 일이지만 이건 머리가 어떻게 된 거다.
유키나리가 작업원과의 상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웃음을 띠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죠? 카운터의 소재가 지시한 물건과 달랐던 모양이에요."
"어머, 그거 큰일 아니에요?"
"별수 없죠. 누구라도 실수는 해요. 중요한 건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렇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유키나리를 보며 시즈나는 먹먹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추천 (1) 비추 (0) 선물 (0명)
IP: ♡.50.♡.0
연가99 (♡.234.♡.219) - 2019/06/11 20:36:53

너무 몰입해서 읽다보니 단숨에 다 ...
나머지도 좀 빨리 올려주셧으면 해요...
욕심쟁이라 미워마세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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