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24~25

단차 | 2023.12.02 20:20:01 댓글: 0 조회: 18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4130
 24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을 때, 아오에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복도를 걸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가이메이 대학의 기리미야입니다.” 상대가 말했다. “아오에 교수님이시지요?”

  “예에.”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네, 짧게 부탁해요. 지금 강의 들어가는 길이라서.”

 
 “알겠습니다. 그러면 얼른 말씀드리지요. 오늘 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두 시간쯤 걸릴 텐데요.”

  “용건은?”

  “그걸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얘기가 길어집니다.”

  “지난번 일의 대답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어요?”

  “네,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아요. 일정은 어떠세요? 장소와 시간은 교수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오후 6시면 일이 끝나요. 장소는 그쪽에서 정해주시죠.”

  “그럼 7시에 지난번 ‘타지마할’ 앞은 어떨까요?”

  “알았어요. 7시라고 했지요? 뭔가 준비해 가는 게 좋을까요?”

  “괜찮습니다. 소지품을 검사할 수도 있으니까 번거로운 물건은 되도록 가져오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소지품 검사? 그런 걸 왜 하는데요?”

  “와보시면 알아요. 자, 그럼 오늘 저녁 7시에.” 그렇게 말하고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아오에는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전원을 꺼버렸다. 강의 중에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두는 게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긴 그런 규칙을 지키는 학생은 거의 없지만.

  그렇게 시작한 강의는 도시에서의 대기오염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내용이었다. 교단에 서서 칠판에 두 개의 빌딩 그림을 그려놓고 아오에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처럼 길이 큰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를 스트리트 캐니언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수한 바람이 발생한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바람이 어떤 식으로 부는지는 건물의 높이, 밀도, 도로 폭, 그때그때의 날씨 등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일반적으로 도로와 직각으로 바람이 불 때, 가장 전형적인 상태를 보입니다.” 아오에는 칠판 그림에 여러 개의 화살표를 덧붙였다. 그러는 동안, 한 가지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흰 스모크가 뱀처럼 흘러 내려오는 모습이다.

  지금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눈의 착각이었거나 꿈이라도 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런 술수도 트릭도 없는 순수한 물리 현상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기체의 행방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도 대략적인 것이다. 이 칠판에 그려진 화살표처럼.

  퍼뜩 정신이 들어 아오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학생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린 얼굴도 있었다.

  아, 미안, 이라고 아오에는 말했다.

  “며칠 전, 집 근처에서 빌딩풍風을 정통으로 맞은 할머니가 넘어져 골절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 실려 가던 중 고소를 하겠다고 분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할머니, 누구를 고소할 생각일까요?”

  몇몇 학생을 가리키며 의견을 발표하도록 했다. 빌딩 시공주, 도시계획 담당자 같은 의견들이 나왔다. 이윽고 빌딩풍은 자연현상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가, 라는 토론에 들어갔다. 그런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한 단어가 수치예보數値豫報였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수치예보 기술로는 어떤 바람이 발생하는지 용이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니 할머니의 부상은 인재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아오에의 의식은 다시 그날 밤의 일로 내달렸다. 하지만 물론 마도카는 그런 컴퓨터는 갖고 있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보니 이런, ‘타지마할’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매장을 장식한 것은 양파 같은 모양의 지붕이 줄줄이 늘어선 성이었다. 빨강, 초록, 노랑 같은 환한 색깔을 사용해서 실로 화려한 모습이었다. ‘성바실리 대성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 등 뒤에 다가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풍겨 온 향기로 아오에는 누구인지 알았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있는 건물이군요.” 기리미야 레이의 해설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여러 성당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고 있죠. 실제로 장엄함이 가득하더군요.”

  아오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본 적이 있어요?”

  “멀리서 봤을 뿐이지만 네, 가본 적이 있어요. 업무차 갔었거든요.”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7시군요.”

  아오에는 그녀의 등 뒤로 시선을 던졌다. “오늘은 파트너가 안 보이네?”

  “그는 그대로 할 일이 있어서요. 자, 가실까요?”

  “어디로 가지요?”

  “차에 타시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쇼핑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 눈에 익은 세단이었다. 아오에는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약속대로 아리스가와노미야 공원에서 본 것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나카오카 형사에게도.”

  기리미야 레이는 앞을 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저희도 교수님이 경솔하게 행동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떻든 그 예민한 마도카가 마음을 열어준 분이니까요.”

  “그 아이가 사람 보는 눈이 확실하다는 뜻인가요?”

  “누구보다 확실합니다. 어떤 인간보다.”

  너무도 단정적인 말투에 아오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무턱대고 마음을 놓을 일은 아니죠. 기록은 분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그날 밤 일을 모조리 기록해뒀어요. 그 텍스트 데이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보낼 수 있어요. 그뿐인가,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게 세팅해두었어요. 지금부터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은 꼭 기억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완전 거짓말이었지만 애써 진실인 듯한 느낌을 말투에 담아보았다.

  그러자 기리미야 레이는 미소 짓는 입가를 보여주려는 듯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렸다.

  “걱정하시지 않아도 교수님을 납치하는 일은 없어요.”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혹시나 해서.”

  “네, 잘 알겠습니다.”

  차는 수도 고속도로를 타고 잠시 달린 뒤에 일반 도로로 내려섰다. 그리고 다시 계속 달렸다. 아오에도 행선지가 어딘지 점점 감이 잡혔다.

  “혹시 가이메이 대학으로 가는 건가요?”

  네, 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단 일반 캠퍼스 쪽은 아니에요.”

 
 “그건 무슨?”

  “이제 곧 아시게 됩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세단은 하얀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오에는 차에서 내려 기리미야 레이가 안내해주는 대로 정면 현관으로 갔다. 내걸린 작은 명패에는 <수리학 연구소>라고 적혀 있었다.

  자동문을 지나자 로비 같은 공간이 있었다. 소파와 테이블이 줄지어 늘어섰다. 하지만 진짜 입구는 더 안쪽에 있는 것 같았다. 보안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기리미야 레이가 말없이 끈이 달린 카드를 내밀었다. 내객용 패스인 모양이었다. 아오에는 그것을 받아 목에 걸었다.

  “소지품 검사는?”

  기리미야 레이는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검사해보는 게 좋을까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면 생략하기로 하지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뗐다.

 
 게이트를 통과해 복도로 들어갔다. 연구실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 이따금 연구원인 듯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다들 바쁜 기색이어서 아오에와 기리미야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여기서는 어떤 연구를 하지요?” 걸음을 옮기면서 물어보았다.

  “다양합니다.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굳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능에 관한 연구예요.”

  “지능? 인공지능이라든가?”

  “네, 그것도 있죠.” 기리미야 레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한 연구실 앞에서 그녀는 발을 멈췄다. 문 옆에 마이크 달린 패널이 있었다. 그녀가 패널에 손을 대자 네에, 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리미야예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곧바로 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기리미야 레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아오에도 그 뒤를 따라갔다. 곧바로 눈에 뛰어든 것은 100인치는 될 만한 거대한 디스플레이였다. 화면에 무수히 많은 선으로 그려진 도형이 떠 있었다. 입체 지도 같기도 하고 우주의 천체를 표기한 것 같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른 몸집에 얼굴도 뾰족하다. 약간 넓은 이마에 백발이 섞인 앞머리가 내려와 있었다.

  남자는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연구소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우하라입니다.”

  “우하라 젠타로 박사님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아오에 교수님.”

  아오에는 악수에 응했다. 우하라의 손은 부드러웠다.

  “뭔가 마실 것이라도?” 기리미야 레이가 물었다.

  “난 됐어요.” 아오에는 즉시 답했다. “그보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은데요.”

  우하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이렇게 선 채로는 서로 간에 이야기 나누기도 힘드니까.”

 
 디스플레이 옆에는 마주 앉기 좋은 책상과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한쪽의 의자를 권해줘서 아오에는 그곳에 앉았다. 우하라도 자리를 잡고, 기리미야 레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자아, 우선 인사부터.” 우하라가 입을 열었다. “우리 딸이 이래저래 큰 폐를 끼쳤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쳤다기보다 좀 곤혹스러웠어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거든요. 모르는 게 낫다고 마도카는 말했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서.”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기리미야에게서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이 일에 관해서는 아오에 교수님은 전혀 아무 관계가 없어요. 괜한 일에 휘말리시지 않게 하자는 우리의 결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걸로 납득하라는 건가요? 그런 장면을 내 눈앞에서 목격했는데도?”

  아오에의 말에 우하라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스모크를 사용했다고 하던데요?”

 
 “깜짝 놀랐어요. 연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네, 놀라셨겠지요.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조종을 한 건 아닙니다. 그런 조건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그렇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 정말 수수께끼예요.”

  우하라는 책상에 양 팔꿈치를 짚고 얼굴 앞에서 두 손을 마주 꼈다.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의 블로그는 읽어보셨지요?”

  “예, 봤습니다.”

  “그렇다면 아마카스 겐토 군이 겪은 불행한 사건과 그 뒤에 그가 어떤 경과를 보였는지, 어느 정도는 아시겠군요.”

  “기적적으로 회복될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라는 곳까지는.”

  우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대한 디스플레이 옆에 놓인 태블릿 단말기를 들고 돌아왔다. 그가 그것을 터치하자 디스플레이 화면이 바뀌었다.

 
 영상에 한 소년이 등장했다. 십 대 중반쯤일까.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굴리고 있었다. 아오에는 소년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저건 아마카스 겐토 군?”

  “그렇습니다.” 우하라는 말했다. “수술하고 3년쯤 지났을 때예요.”

  “겨우 3년 만에…….” 아오에는 새삼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화면에 비친 소년에게서는 장애의 기미 따위는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앉은 자세여서 상반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동작은 실로 경쾌했다. 아카쿠마 온천에 자주 나타났다고 해서 현재는 일반인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이른 단계에 이만큼 회복되었다는 건 경탄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자 우하라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어요. 어느 정도 효과는 기대했지만 설마 완쾌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건 좀 더 대대적으로 발표해야 할 일 아닙니까.”

 
 “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지요. 분명 이렇게까지 완쾌된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다른 곳에 있었어요.”

  “진짜 기적?”

  “화면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리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하라가 태블릿 위에서 손끝을 움직였다. 그러자 디스플레이에서 겐토의 손맡이 확대되었다. 책상 위에 데굴데굴 굴린 것은 약간 큼직한 주사위였다. 한 변의 길이가 3센티미터 정도나 될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 오, 일, 육……. 겐토가 주사위의 숫자를 읽는 것이었다.

  “뭘 하는 겁니까?” 아오에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화면을 잘 봐주세요.”

  우하라의 말에 아오에는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돌렸다. 겐토는 주사위를 계속 굴렸다. 나온 숫자를 말하고 다시 주사위를 굴린다. 그 되풀이였다.

  아니, 그게 아니다.

 
 던져서 나온 주사위 숫자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목소리를 내는 건 주사위가 정지하기 전이었다. 아직 굴러가는 중에 그 숫자를 맞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번번이 적중하고 있었다.

  아오에는 우하라를 보았다. 입을 열기는 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셨군요.” 우하라가 말했다.

  “주사위 숫자를 예언하고 있어요…….”

  우하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언이 아니라 예측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겐토 군이 숫자를 말하는 것은 주사위가 손을 떠난 직후예요. 이걸 거꾸로 말하면, 주사위가 아직 손바닥 위에 있을 때는 겐토 군도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모릅니다. 손을 떠날 때 주사위에 작용하는 힘은 중력, 그리고 거의 무시해도 무방한 공기저항뿐이지요. 그리고 책상에 떨어진 뒤에는 낙하각도, 관성모멘트, 책상과의 반발계수, 책상 표면과의 마찰력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이윽고 정지합니다. 이런 일련의 물리 현상에는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요소는 일절 관여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주사위가 손을 떠난 순간에 정해집니다. 겐토 군은 그것을 입 밖에 내서 말하는 것이지요.”

  “설마 그런 일이…….” 아오에는 다시 한 번 디스플레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겐토 군은 하고 있어요. 아니면 저건 트릭 영상이라는 말씀인가요?”

  “아니, 그런 말은 아니지만.”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군요.”

  “나도 믿지 않았어요. 겐토 군이 실은 최근에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게 털어놓을 때까지는. 뭔가 비밀 장치가 있는 게 아닌가, 계속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마술도 아니고 트릭도 아니었어요.”

  “대체 어떻게 저런 걸 해낼까요?”

  “겐토 군에 의하면,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군요.”

  “저게 어떻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러면 잠깐 이런 상상을 해볼까요? 우선 한 변의 길이가 30센티미터쯤 되는 주사위가 있습니다. 소재는 나무로 하면 좋겠지요. 그 주사위를 6이라는 숫자가 위로 나오도록 양손에 끼워 들고 1미터 높이에서 판판하게 고른 모래 위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한 변이 30센티미터인 주사위를 모래 위에…….” 아오에는 미간을 좁히고 그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모래 위에 떨어진다면 주사위는 굴러가지 않겠지요. 반듯하게 아래로 떨어지면 6이라는 숫자가 위로 드러난 채 모래에 살짝 파묻히겠네요.”

  “그렇죠. 보세요, 조건이 갖춰지면 교수님도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과 이건 얘기가 다른데…….”

  “똑같습니다. 현상이 다소 복잡해지기는 해도 물리법칙을 바탕으로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이 영상을 촬영하기 전까지 겐토 군은 100번이 넘게 실제로 실행해봤어요. 처음에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지만, 50번을 넘어설 때쯤부터 적중률이 높아졌습니다. 주사위나 책상에 관한 물리적 데이터가 구비되었다는 얘기겠지요. 그러니 다른 주사위를 사용할 경우에는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참고로, 주사위가 이보다 작으면 적중률이 뚝 떨어져요. 겐토 군에 의하면 책상 표면의 위치에 따라서 반발계수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라는군요.”

  우하라는 한 가지 더 보여주겠다면서 태블릿을 터치했다. 바뀐 디스플레이 화면의 영상은 어딘가 운동장인 것 같았다.

  체격이 좋은 남자 한 명이 양궁 장비를 들고 서 있었다. 스테빌라이저가 몇 개나 달린 활은 오른손에 들었다.

  돌연 화면이 세 개로 나뉘면서 남자의 모습은 중앙 화면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양쪽 화면에 과녁이 나타났다. 중심은 노란색이고 빨강, 파랑, 검정, 흰색의 동심원으로 구성된 과녁이다. 오른쪽 화면에 보이는 건 실제 과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왼쪽 화면의 과녁은 실제가 아니라 액정 화면에 그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아오에는 물었다.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우하라가 입가를 풀고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현에 화살을 메기고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잠깐 정지해서 노릴 곳을 정하더니 손을 놓았다. 발사된 화살은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직후, 왼편 화면에 손이 나타나 과녁의 일부를 검지로 딱 짚었다. 그곳에 초록색 점이 찍힌 것과 실제 과녁에 화살이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화살은 시계 방향으로 2시 위치, 즉 빨강 범위에 꽂혔다. 액정 화면의 과녁에 찍힌 초록색 점과 거의 동일한 위치였다.

  남자가 다시 화살을 메기고 발사했다. 다시금 왼편 화면에 손이 나타나 과녁을 짚었다. 이번에는 6시 방향의 파랑 범위에 초록색 점이 찍히고, 거의 같은 타이밍에 실제 화살도 그 위치에 꽂혔다.

  “과녁까지의 거리는 90미터, 과녁의 크기는 직경 122센티미터, 이 남자는 국가대표 수준의 양궁 선수인데 항상 한복판을 노리고 화살을 쏘아달라고 미리 부탁했습니다.” 우하라가 말했다. “이미 다 아셨지요? 왼편 화면에 나온 손의 주인은 겐토 군입니다. 그는 선수가 화살을 쏜 직후에 과녁의 어느 위치에 맞을지 예측한 거예요. 물론 그러기 위한 데이터는 필요합니다. 실은 이 실험 전에 선수에게 몇 번 화살을 쏴달라고 했습니다. 겐토 군은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발사된 화살의 탄도 경향, 바람의 영향 등을 뇌에 입력해나갔죠.”

  아오에는 새삼 화면을 응시한 뒤에 긴 숨을 내쉬었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네요.”

  “기적이라고 말했던 것도 그다지 과장은 아니었지요?” 우하라는 태블릿을 터치해 영상을 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역시 수술의 영향인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잠깐 다른 얘기를 해야겠군요. 예전에 우리 연구실에서 다루었던 엑스퍼트 브레인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엑스퍼트 브레인? 뭔가 난해한 얘기 같군요.”

  “교수님이라면 간단히 이해하실 겁니다. 나는 당시 뇌의 고차 기능을 분자와 세포 수준에서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 결과, 뇌의 신경 활동과 기억 및 학습의 관계에 대해 상당한 단계까지 해명하는 데 성공했죠. 그래서 그다음으로 주목한 것이 공예품이나 재료 가공 분야에서 수작업을 통해 초인적인 기술을 이뤄낸 명인, 이른바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뇌였어요. 몇몇 달인의 협력을 얻어 조사해본바,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복수의 뇌를 갖고 있었어요.”

  예에? 하고 아오에는 몸을 뒤로 젖혔다. “복수의 뇌라니, 설마…….”

  “물론 이건 비유로서 한 말입니다.” 우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부학적으로는 일반인의 뇌와 전혀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그들은 약간 복잡한 작업이라도 대뇌의 극히 일부밖에 쓰지 않았어요. 깎고 구부리고 조립하는 등의 작업을 할 때, 보통 사람들은 대뇌를 광범위하게 써야 합니다. 약간 복잡한 작업이라면 뇌의 거의 전역을 써야 해서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지요.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하면 듣기야 좋지만, 요컨대 정보처리 능력이 한계에 달한 상태인 거예요. 그런 점에서 명인이나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정보처리 능력에 여유가 있어서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것을 관찰하고 생각해가면서 그것을 작업에 피드백하는 게 가능합니다. 게다가 좀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들 자신이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정보처리가 무의식중에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들이 ‘직인의 감感’이라고 표현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아오에는 끄응 신음 소리를 냈다. 명인이나 달인이라고 불리는 직인들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을 듣고 보니 또 다른 박력이 있었다.

  “그건 역시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겁니까?”

  “훈련은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적 요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복적인 훈련으로 뇌는 효율성이 뛰어난 신경 회로를 만들어내지만, 그 속도나 성과에는 분명 개인차가 있는 것이지요.”

  그 점은 아오에도 이해가 되었다. 스포츠 등의 재능도 비슷하다. 똑같은 노력을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다시 겐토 군 얘기로 돌아갈까요.” 우하라가 말을 이었다. “그의 경우, 새로운 신경 회로가 형성되는 속도가 현격하게 빠릅니다. 이를테면 어떤 정보를 뇌에서 처리할 경우, 처음에는 약간 시간이 걸려도 몇 번 거듭하는 사이에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는 것이지요. 조사해보니 그 처리를 하는 데 사용하는 대뇌의 범위가 필요 최소한으로 좁혀져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달인들과 마찬가지로 뇌에 여유가 있어요. 그렇게 남아도는 부분으로 전혀 다른 정보를 처리할 수 있지요. 한때는 식물인간 상태에 떨어졌던 겐토 군이 기적적으로 완쾌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정보처리 능력을 어디까지 높일 수 있는가. 그 점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겐토 군을 우리 수리학 연구소에서 맡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겐토 군은 매일매일 다양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물론 본인도 승낙한 일이었죠. 이윽고 그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금씩 밝혀졌어요. 그것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래 상황을 거의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감을 통해 수집되는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를 즉각 즉각 분석해서 그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해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 주사위 숫자나 양궁의 화살이 어디에 맞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우하라의 말을 들으면서 아오에는 몇몇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비슷한 일을 그 역시 몇 차례나 목격했다. 스모크뿐만이 아니다. 볼링장의 핀, 크레인 게임 ……. 아니지, 하고 머리를 저었다. 그 이전에도 목격했었다. 아카쿠마 온천의 여관 로비에서였다. 테이블에 흘린 액체의 행방을 정확히 예측해냈다. 단지 그 일을 한 사람은 아마카스 겐토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다.

  “혹시 마도카도?”

  “그 얘기는 나중에 해드리도록 하지요.” 우하라가 제지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교수님은 조금 전에 왜 이런 일을 발표하지 않느냐고 의아해하셨어요. 우선 그 점부터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유 중의 하나는, 수리학 연구소가 가이메이 대학만이 아니라 정부 연구기관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겐토 군에 대한 일은 당연히 후생노동성*이나 문부과학성**에도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청에도.”

  (* 사회복지, 사회보장, 공공 위생 및 환경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

  ** 교육과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행정기관.)

  “경찰청?”

  “이제 정보공학은 범죄 수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우하라는 말했다. “그런 정부 행정기관에서, 겐토 군의 일에 대한 발표는 연구가 진척되어서 어느 정도 기술을 확립한 뒤에 검토해볼 것이고, 그때까지는 극비 사항이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극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어떻든 일종의 천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섣불리 발표했다가 여기저기서 인체 실험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지요. 물론 획기적인 연구를 우리 나라에서 독점하고자 하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연구는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습니까?”

  우하라는 어깨를 으쓱 치켜들고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겐토 군이 처음 연구소에 왔을 때는 그 능력이 수술에 따른 영향인지 아니면 그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능력인지조차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수술을 받은 환자가 꽤 있었지만 겐토 군 같은 케이스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이윽고 몇 가지 힌트를 포착해서 역시 수술의 영향이라는 것은 밝혀냈지만, 문제는 재현성이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데는 아주 큰 장애물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겐토 군과 완전히 똑같은 뇌 부위에 완전히 똑같은 수술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는 환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요. 그래서 해결책으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윤리적인 면에서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게 되는 금단의 실험이었습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혹시 건강한 사람에게 수술을?”

  우하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맞히셨어요. 뇌에 아무 장애가 없는, 게다가 세포 재생 능력이 높은 어린아이를 데려다 겐토 군의 뇌 손상 부위와 똑같은 자리에 수술을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상이 생기면 즉시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얘기였지만, 어떤 일에나 완벽이라는 건 없는 법이지요. 수술로 인해 중증 장애가 남을 위험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그런 위험한 수술을 하셨군요.” 아오에는 말했다. “딸 마도카에게.”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당연한 말씀이지요.” 그리고 우하라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실제로 반쯤 미쳤었어요. 나도, 주위 사람들도.”

 
 “아니, 그건 아니에요.” 갑작스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리미야 레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니라니, 그건 무슨 말이죠?” 아오에가 물었다.

  “기리미야.” 우하라가 나무라듯이 만류했다. “그런 얘기는 할 거 없어.”

  “아뇨, 이건 아오에 교수님께서도 알아두시는 게 좋아요.” 기리미야 레이는 천천히 이쪽 자리로 다가왔다. “마도카에 대한 수술은 우하라 박사님이 처음 말을 꺼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도카 본인이 나서서 실험대가 되기를 희망했던 일이에요.”

  아오에는 흠칫 몸을 물리며 엇 하는 소리를 냈다. “설마.”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마도카에게서 들었으니까요. 왜 그런 수술을 받으려고 하는지 마도카 본인이 내게 얘기했습니다.” 기리미야 레이는 숨을 가다듬으려는지 잠시 가슴이 들먹거린 뒤, 마치 중대한 고백이라도 하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라플라스의 마녀가 되고 싶다, 라고 했어요.”

  “라플라스?”

 
 “마도카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토네이도입니다.”

 




 25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눈을 떴다. 잠깐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도카는 몸을 일으키며 나이트테이블의 시계를 보았다. 오후 8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 틈새로 바깥 상황을 살펴보았다. 맞은편 파친코점 옆에 왜건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 그 차일 거라고 내심 짐작했다. 어제까지는 노란색 경자동차였다. 날마다 똑같은 차를 세워놓으면 너무 쉽게 눈에 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기리미야 레이의 지시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마도 다케오 자신의 판단일 거라고 마도카는 생각했다. 그가 주의 깊은 성격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에서 아오에를 만난 뒤 택시를 잡아탔다. 그 택시 안에서 곧바로 미행하는 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공원에 갈 때는 뒤따라오는 차가 없었으니까 미행자는 아오에 교수를 추적해 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기리미야와 다케오 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따돌려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서는 그쪽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모르게 된다. 미행을 한다는 건 지금 당장 데려갈 생각은 아닌 거라고 짐작하고, 마도카는 일부러 자신의 숙소를 노출했다.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이다. 그날부터 수상쩍은 차가 호텔 앞 도로에 주차하고 있었다. 호텔 현관을 감시하는 것이다.

  편의점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갈 때, 손거울을 이용해 차 안을 슬쩍 훔쳐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운전석에 앉은 다케오의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다.

  왜 감시만 하고 데려가지는 않는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마도카의 목적을 이미 다 알고 그 추이를 지켜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쪽의 행동 모두를 묵인해줄지 말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 순간에 끼어들어 방해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그러나 목표로 삼은 방향은 마도카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즉 아마카스 겐토가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창가를 떠나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가에 되살아나는 것은 겐토를 처음 만난 날의 일이었다.

     

  식물인간 상태였던 소년을 아버지가 획기적인 수술로 깨어나게 했다, 라는 이야기는 그 전부터 듣고 있었다. 하지만 마도카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얘기는 굳이 귀담아 듣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 화제는 자신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추억으로 곧장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란 다름 아닌 엄마와의 일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목숨을 앗아 간 토네이도.

  건물 잔해에 묻힌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미소는 그 뒤에도 줄곧 마도카의 뇌리에 낙인으로 찍혀 있었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엄마는 딸의 안부만을 걱정했던 것이다. 딸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안도했던 것이리라. 그 마지막 미소가 생각날 때마다 마도카는 가슴이 울컥해지곤 했다.

  다정했던 엄마, 따스했던 엄마, 누구보다 강했던 엄마—. 마도카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을 토네이도는 단 한순간에 앗아 가고 말았다.

  등 뒤에서 검고 거대한 원기둥이 덮쳐들던 그 광경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마도카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그 모습은 나중에 돌이켜봐도 이 세상 일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누군가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토네이도는 자연현상이다. 그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지 않았다면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 아버지 젠타로는 그 자리에 없었던 덕분에 재난을 피했다. 그는 도쿄에 있었고, 그래서 토네이도라는 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외할머니 댁에 마도카나 엄마와 함께 가지 못한 것은 병원 일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니면 안 되는 중요한 수술이 있어서 그 준비로 바쁜 상황이었다. 이번 연휴에는 마도카의 외가에 다녀오자, 라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아빠였는데—.

  그렇다고 아버지를 나무랄 마음은 없었다. 만일 아버지까지 함께 갔다면 마도카는 부모님을 동시에 잃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수술을 예정대로 강행한 것에도 마도카는 오로지 감탄했을 뿐이다. 아버지가 엄마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는지는 아주 잠깐만 곁에 있어도 충분히 느껴졌다.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영정 사진 앞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세상 떠난 아내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마도카의 귀에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도한 수술 자체에는 흥미가 없었다. 수술에 성공했다니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저 그것뿐이었다. 젠타로도 수술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집에서는 일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그런 얘기는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배려일 것이다.

  그래서 그날 젠타로가 스마트폰을 세면대에 깜빡 잊고 출근한 것은 우하라 부녀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날, 이라는 건 지금부터 4년 전의 어느 가을날이다. 평일이지만 마도카는 집에 있었다. 왜냐하면 개교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재단이라서 중학교에 올라가도 개교기념일은 초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즉 토네이도의 습격을 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4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스마트폰을 발견한 마도카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전해주려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직장인 가이메이 대학병원에는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그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걷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날씨가 수상쩍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마도카는 우산을 들고 나왔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처에서 아버지의 소재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오늘은 병원에 없고 수리학 연구소에 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장소를 물어보니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추울 정도의 날씨는 아니어서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길 곳곳에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겨났다.

  수리학 연구소—. 아버지가 왜 그런 곳에 가 있을까. 뇌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는 수리학이라는 말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도카도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아버지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어쩌면 집에 깜빡 잊고 온 것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왼편 앞쪽에 하얀 건물이 나타났다. 그 앞까지 가보니 <독립행정법인 수리학 연구소>라는 팻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도카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예각이 두드러지는 디자인이 수리학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입구는 스모크 유리문이라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도카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건넸다. 돌아보니 한 남자애가 이쪽으로 뛰어오는 참이었다. 그가 급하게 소리쳤다. “우산을 펴!”

  “응? 뭐라고?” 마도카는 당황스러웠다.

  남자애는 곁으로 다가와 마도카의 손에서 우산을 빼앗았다. 그러고는 잽싸게 펼쳐 들더니 마도카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빨리 앉아!”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마도카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자마자 트럭 한 대가 바로 옆을 휘익 지나갔고, 다음 순간에는 흙탕물이 우산에 촤아악 튀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남자애는 후우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이다, 라면서 우산을 접었다.

  “운전을 진짜 난폭하게 하더라고. 내 예상대로, 물웅덩이를 피하지도 않았고 속도도 줄이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자아, 라면서 마도카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산을 받아 든 마도카에게 남자애는 통로를 가리켰다. 길가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마도카는 이해했다. 트럭 타이어가 빠른 속도로 물웅덩이를 밟고 달려가는 바람에 그 물벼락이 이쪽으로 튄 것이다.

  “웅덩이 물이 나한테 튄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남자애는 난처한 듯 눈썹 끝을 내려뜨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그 질문이 제일 괴롭더라. 그냥저냥, 이라는 말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래?”

  똑같은 질문을 받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라고 마도카는 내심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 우선 마도카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물벼락을 피했어.” 그리고 마도카는 남자애의 면바지 자락이 젖은 것을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그보다 하얀 옷에 진흙탕이 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는 마도카가 입은 하얀 파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애는 자그마한 몸집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마도카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콧날이 우뚝하고 눈은 가늘고 길어서 서늘한 인상이었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겠다고 마도카는 생각했다.

  “연구소에 무슨 볼일이 있어?” 남자애는 건물 쪽에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아빠가 잊어버리고 간 게 있어서 전해주려고 왔어.”

  “그래? 너희 아빠가 누군데?”

  “우하라 의사 선생님…….”

  남자애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가이메이 대학의 우하라 박사님?”

  “너도 알아?”

  “물론이지, 나의 은인이신데.”

  “은인?”

  남자애는 자신의 머리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수술해주셨어. 4년 전에.”

  마도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흠칫 놀라서 새삼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혹시 너,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된 그 기적의 소년이야?”

  맞아, 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내 얘기야. 그러니까 우하라 박사님은 나의 은인이야. 생명의 은인.”

 
 마도카는 깜짝 놀랐다. 수술이 성공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회복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뭔가 후유증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남자애는 어디를 어떻게 봐도 보통 사람이었다. 아니, 조금 전에 보여준 민첩한 행동은 마도카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건강해졌어?”

  그녀가 솔직한 느낌을 말하자 그는 씨익 웃었다. “다 박사님 덕분이야.”

  내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말을 듣고 기분 나쁠 사람은 없다. 마도카도 저절로 뺨이 풀어지면서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곧바로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근데, 이름이?”

  마도카가 물어보자 그는 “아마카스 겐토”라고 이름을 알려주었다. 희귀한 성씨였다. 마도카도 자기소개를 했더니 겐토가 말했다. “마도카, 예쁜 이름이네.”

  “근데 아직도 병원에 다녀? 겉으로 보기에는 다 나은 것 같은데.”

 
 겐토는 웃음을 머금은 채 턱 끝을 건물 쪽으로 향했다. “여기, 병원 아니잖아.”

  “아, 그런가?” 마도카는 건물 입구를 쳐다본 뒤 겐토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겐토 군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

  “볼일이 있다기보다…….” 그는 자신의 머리칼을 만졌다. “나, 여기서 살아.”

  “그럼 여기가 집이야?”

  “집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하긴 다른 거처도 없으니까 결국 여기가 집인가.”

  “왜 이런 데서 살아?”

  그러자 그는 약간 미심쩍다는 눈빛을 던져 왔다.

  “나에 대해서 우하라 박사님에게 아무 말도 못 들었어?”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마도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집에 와서는 병원 얘기는 전혀 안 해.”

  “그렇다면 나도 말하면 안 되겠다.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하셨거든.”

 
 “비밀인 거야?”

  “뭐, 그런 셈이지.” 그는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공연히 더 궁금해진다.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해도 안 돼?” 마도카는 한 번 더 버텨보았다.

  그는 웃음이 담긴 얼굴로 말했다. “안 되지. 그런 약속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대꾸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갈래? 내가 안내해줄게.”

  “와아, 고마워.”

  그는 익숙한 몸짓으로 건물 입구로 향했다. 마도카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빛의 양을 약간 줄여둔 듯한 조명 아래, 소파와 테이블이 여러 개 줄지어 있었다. 남자 한 명이 구석 자리에서 잡지를 읽고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역의 자동 개찰기 같은 것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옆의 카운터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겐토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뭔가 얘기했다. 여자가 웃는 얼굴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도카를 보았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를 마치자 그녀는 겐토에게 뭔가 얘기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도카 쪽을 돌아보며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우하라 박사님이 지금 일 때문에 나오시기 어려운 모양이야. 스마트폰은 여기에 맡겨두면 돼. 나중에 박사님께 전해주겠대.”

  “그렇구나.” 마도카는 호주머니에서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응, 꼭 전해드릴게.”

  여자가 스마트폰을 챙겨 넣는 것을 확인하고 마도카는 겐토와 함께 카운터를 떠났다.

  “고마워.”

  “별일도 아닌데 뭘. 그보다 연락처 같은 거, 물어봐도 될까?”

 
 “응응, 완전 괜찮아.”

  마도카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호감은 가질 수 있었다. 어딘지 수수께끼 같은 부분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했다.

  겐토는 입구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조금 전의 물웅덩이가 마도카의 눈에 들어왔다.

  “집은 가까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겐토가 물었다.

  “전차 타고 15분쯤? 역은…….”

  그녀가 말한 역 이름을 듣고 겐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재빨리 터치했다. 화면에 지도를 불러내고 있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12킬로구나. 역에서 집까지는 가까워?”

  “걸어서 7분쯤?” 왜 그런 걸 묻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좀 애매한데.”

  “뭐가?”

 
 겐토는 손끝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앞으로 25분 뒤에 비가 올 거야. 여기서 역까지 5분, 차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네가 전차에서 내릴 때쯤부터 비가 쏟아져. 그 우산, 또 쓰게 될 거 같다.”

  “날씨 예보에 그렇게 나왔어?”

  “날씨 예보에는 안 나왔지만, 틀림없이 그럴 거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마도카가 입을 다물자 “그럼, 잘 가”라면서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역까지 걸어갔다. 잠시 뒤에 들어온 전차를 타고 가다가 바깥이 조금 어둑어둑해진 것을 깨달았다.

  전차가 집에서 가까운 역에 도착했다. 마도카가 역을 나온 직후에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받쳐 들고 스마트폰을 꺼내 시각을 확인했다. 겐토가 예언했던 대로 정확히 25분이 지나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마도카에게 말했다.

  “덕분에 요긴하게 잘 썼어. 너한테 연락하려다가 거기까지 나오라고 하기도 미안해서 안 했는데. 그나저나 용케 잘 찾아왔더구나.”

 
 “병원에 갔는데 그쪽으로 가라고 알려줬어. 아빠, 요새는 계속 그쪽 건물에서 일해? 뭐라더라, 수리학 연구소라고 했던가.”

  “계속 그쪽인 건 아니고 가끔씩. 왜 그런 걸 묻지?”

  마도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마카스 겐토와 만난 일을 얘기했다. 그가 건물 안으로 안내해줬다는 것도.

  그러자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버렸다. “그 애가 뭔가 보여줬어? 아니면 뭔가 얘기했어?”

  그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아무래도 말하지 않는 게 좋았겠다고 짐작했다. 마도카는 고개를 저으며 건물 안에 안내해준 것뿐이라고 얼버무렸다.

  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미심쩍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날 이래로 마도카는 겐토의 일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왜 남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까.

  우선은 그에게 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그날 고마웠다는 인사, 그리고 그가 말했던 대로 비가 내려서 깜짝 놀랐다, 라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답신이 왔다. 생각지 못한 기회에 은인의 딸을 만나 반가웠다는 것이며, 이런저런 비밀이 많아서 힘들다는 것이 장난스러운 투로 적혀 있었다. 가볍게 읽히는 문장이었지만 실은 내면에 뭔가 무거운 것을 떠안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동안 무난한 내용의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의 글로 봐서는 마도카 말고는 메일을 주고받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사귀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비밀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부분을 읽고 실은 그도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거라고 짐작했다. 그걸 어떻게 하면 털어놓게 할 수 있을지 궁리해봤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참에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둘 중 누구랄 것도 없이 얘기가 그런 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가이메이 대학 옆에 시네마 콤플렉스와 쇼핑센터가 함께한 대형 복합몰이 있어서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한 달여 만에 만난 아마카스 겐토는 상당히 어른스럽게 보였다. 마도카는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밋밋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짧은 핑크색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베이지색 후드 재킷을 걸쳤을 뿐이다. 예쁘게 보일지 말지, 전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과일디저트 찻집이 있어서 거기에 가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만석이었다. 겐토는 매장 안을 쓰윽 살펴보더니 잠깐만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금방 자리가 날 거야. 창가에 앉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실제로 그 뒤 채 5분도 안 되어 가족인 듯한 세 사람 일행이 나왔다. 안에 들어가자 여점원이 창가 테이블을 치우는 참이었다.

  “어떻게 이 자리가 빈다는 걸 알았어?” 자리에 앉은 뒤에 마도카가 물었다.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야.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가 어렵거든. 근데 몇 가지 근거가 있었어.”

  “근거? 어떤 근거?” 마도카는 호기심이 나서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물었다.

  겐토는 어깨를 으쓱 치켜들었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한이 없어. 엄마 쪽은 주스를 끝까지 다 마시려고 했고, 이미 커피를 마셔버린 아빠 쪽은 답답한 듯 테이블을 손끝으로 툭툭 치고 있었어. 아들아이는 따분한 듯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었고, 그 세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어. 뭐, 대충 그런 거야. 그중 어떤 게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어.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감지한 거지. 인간이란 다음 행동으로 옮겨 갈 때, 반드시 일정한 신호를 발하거든. 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겠지만.”

  마도카는 눈을 깜빡거리며 겐토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세세한 것까지 다 관찰했어? 한번 쓰윽 쳐다보기만 했었는데?”

  “한번 쓰윽 쳐다보면 충분해.” 겐토가 입가를 풀며 웃었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표정이 약간 흐려졌다. “역시 저녁 5시쯤에 비가 올 것 같아. 우산 챙기자고 생각은 했었는데, 나올 때 깜빡 잊어버렸어.”

  “비?” 마도카는 스마트폰을 확인해보았다. “날씨 예보에 그런 얘기는 없는데?”

  “응, 날씨 예보는 그렇지. 하지만 비가 올 거야.” 겐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난번하고 똑같다고 마도카는 생각했다. 그때도 그는 비가 올 것을 정확히 예고했다. 내리기 시작하는 시각까지 딱 맞혔다.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고 물어보려다가 관뒀다. 그가 떠안고 있는 비밀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스를 마시면서 음악이며 학교 얘기 등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주로 마도카가 했고 겐토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역할이었다. 그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건 그간 메일을 주고받는 동안에 막연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그 수리학 연구소라는 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아마도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일 터였다. 그에게서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과일디저트 찻집을 나와서 둘이 나란히 게임센터로 갔다. 게임을 하고 싶다고 겐토가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겐토가 발을 멈추고 뭔가를 주웠다. 하트 모양의 종이처럼 보였다. 마도카는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별 모양과 함께 인쇄된 것은 인기 록밴드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처 이벤트 회장에서 조금 전에 그 록밴드가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콘서트 회장에서 뿌린 거겠지?” 겐토가 말했다. “요즘 이런 게 유행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종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발포스티롤 페이퍼야. 선물 대신 가져가던 팬이 깜빡 떨어뜨린 거 같은데?”

  “이런 걸 콘서트 회장에 뿌린다고? 왜?”

  “그야 분위기를 띄우려는 거지.”

  마도카는 하트 모양의 종이쪽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걸로 분위기가 띄워지나?”

  “응, 너도 보면 알 거야.”

  겐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에는 타지 않고 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현재 서 있는 곳은 3층이지만 통천장이라서 1층 매장까지 훤히 내려다보였다. 겐토가 몸을 숙여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좋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이 정도면 공기가 흐트러지지 않아 일이 잘될 거 같다.”

 
 “뭘 하려고?”

  하지만 마도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는 주의 깊은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본 뒤, 손잡이 너머로 팔을 내밀어 하트 모양의 그 얇은 발포스티롤 카드를 살짝 떨구었다.

  깜짝 놀란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분명 아래로 뚝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트 모양의 카드는 수평 자세를 유지한 채 공중을 비스듬히 가르며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초소형 글라이더라고나 할까. 게다가 허공에 머무는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길었다.

  “콘서트가 한창 고조될 때 이런 카드가 몇백 장씩 쏟아져 내려오면 팬들이 좋아하겠지?”

  겐토의 말에 정말 그렇겠다고 생각하면서 마도카는 하트의 행방을 눈으로 따라잡았다. 어쩌면 팬들 사이에서 서로 카드를 차지하려고 다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도카가 다시금 깜짝 놀란 건 그 뒤였다. 하트 모양의 글라이더는 미묘하게 방향을 바꿔가면서 1층까지 내려갔지만 결국 착지한 곳은 설마, 안내센터의 책상 위였다. 그곳에 있던 담당 여직원은 돌연 눈앞에 나타난 물체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머뭇머뭇 집어 들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아보려고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겐토는 킥킥 웃으면서 마도카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잊고 간 물건은 인포메이션에 갖다 주는 게 맞지?”

  마도카는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금 자신이 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겐토는 처음부터 안내센터의 데스크를 향해 그 하트 모양의 카드를 날려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그리 쉽게 날아갈 수 있는 건가. 이곳에서 안내센터 데스크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멍해져 있는 마도카의 손을 잡고, 그만 가자면서 겐토는 걸음을 옮겼다.

  게임센터에서 둘이 다양한 게임을 즐겼다. 카레이스 게임, 배틀 게임, 리듬에 맞춰 큰북을 치는 게임 등이다. 그런 것들을 즐기는 모습만 보면 겐토는 평범한 남학생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특별히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때로는 마도카가 이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슬슬 게임센터를 나서려는 참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마도카가 무심코 크레인 게임의 유리 케이스 안에 있는 봉제 인형을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였다.

  겐토의 눈이 반짝 빛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인형? 몇 개나?”

  마도카는 케이스 안을 들여다보며 봉제 인형 세 개를 가리키고 그중 어느 것이든 좋다고 대답했다.

  겐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갑에서 백 엔짜리 동전 세 개를 꺼냈다.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동전을 기계에 넣을 때마다 차례차례 원하는 인형을 따낸 것이다. 마치 손으로 집어내는 것 같았다. 너무 간단해 보여서 그것이 게임이라는 걸 잊어버릴 뻔했다. 겨우 5분 사이에 마도카의 손에 인형 세 개가 들어왔다.

  “더 갖고 싶은 건 없어?” 겐토가 신이 난 듯 물었다.

  마도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하고 겐토가 물었다. 마도카는 좀 피곤하다고 대답했다.

  “그럼 잠깐 쉬자.”

  마침 게임센터 밖에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 나란히 앉았다. 창 너머로 근처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경치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늘이 좀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참에 곧바로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퍼뜩 생각나서 마도카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를 막 넘어선 참이었다.

  “우산, 어떡하지? 새로 사기는 좀 아깝잖아.” 겐토가 말했다. “하긴 8시에는 비가 뚝 그칠 거야.” 자신의 예측이 어긋나리라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말투였다. 마도카는 안고 있던 인형들을 옆에 내려놓고 겐토를 보았다.

  “너,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어?”

  겐토의 옆얼굴에 그늘 같은 것이 쓰윽 내달렸다. 마도카의 말이 그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자극했다는 건 분명했다.

  “그냥 되는 건 아니잖아.” 마도카는 말을 이었다. “날씨를 정확히 맞히고, 크레인 게임에서는 쉽게 인형을 집어내고, 그런 거.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야. 아까 하트 모양의 카드를 날려 보낸 것도, 처음 만났을 때 웅덩이의 물이 어떻게 튈지를 예상한 것도, 보통 사람은 못 하는 일이야. 근데 그거에 대해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겐토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마도카의 얘기를 듣지 못한 건 아닐 터였다. 그 나름대로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기척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이윽고 그의 입이 움직였다. “내가 좀 교활한 짓을 한 것 같다.”

  “응?”

  겐토는 창피한 듯 뺨을 풀며 피식 웃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궁금할 거야. 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 그럴 줄 뻔히 알면서 나는 내 능력을 숨기지 않았어. 숨기기는커녕 자랑하듯이 다 보여줬지. 네가 궁금해하도록, 네가 그런 질문을 하도록, 내가 작전을 쓴 거야. 난 정말 교활한 인간이야. 진짜 지겹다.”

  “겐토…….”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마도카 쪽을 보았다.

  “실은 털어놓고 싶은 게 있었어. 그래서 너를 만나기로 했어. 메일이 아니라 직접 보면서 얘기하고 싶어서.”

  마도카는 심호흡을 한 뒤에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나도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 겐토 군은 뭔가 큰 비밀을 갖고 있는데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할 거라고 예상했어. 그래서 나도 오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왔어.”

  “예상이 딱 맞았네?”

  응, 하고 마도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별로 감이 예리한 편도 아닌데, 이번에는 딱 맞혔어.”

  그러자 겐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슬쩍 고개를 저었다.

  “실은 그런 게 아니야. 네가 그렇게 예상하도록 내가 미리 수를 쓴 거야, 메일 주고받을 때.”

  “응? 그건 또 뭐야?”

 
 “연구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곳에서 사는 이유는 비밀이라고 했지? 근데 마음속으로는 너에게라면 털어놓아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다.” 겐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털어놓고 싶었어. 솔직히 말하면, 내내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했는데 그럴 사람을 찾지 못했어. 근데 너를 만났을 때,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날, 비가 내리는 시각을 일부러 알려준 거야. 네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그러면 그렇다고 좀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내 직감에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어. 그리고 메일을 몇 번 주고받는 사이에 역시 틀림없다고 확신했지. 그래서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메일을 썼어. 네가 방금 말한 것처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마도카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모두 다 겐토가 계산한 대로 흘러갔다는 얘기인가. 하지만 왜 그렇게 복잡한 짓을 할까.

  “잠깐 여기 좀 만져볼래?” 그렇게 말하며 겐토는 허리를 틀어 자신의 목 뒤쪽을 짚었다.

  마도카는 손을 내밀어 만져보았다. 살짝 눌러보니 손끝에 뭔가 위화감이 있었다.

  “어때?”

  “딱딱해. 뭔가 박혀 있는 거 같아.”

  “맞아, 속에 박혀 있어. 배터리와 펄스 발신기를 심어둔 거야. 발신기는 뇌에 심은 전극과 연결되어 있어. 둘 다 우하라 박사님이 심어주셨어.”

  “그때 그 수술에서?”

  “응, 이것 덕분에 나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고 얘기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어. 근데 얼마 뒤에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사실은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술에 의해 점차 의식이 또렷해지고 이윽고 바깥 세계와 교신할 수 있었다. 처음 목소리가 나왔을 때의 기쁨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윽고 팔다리가 움직이고 식사도 가능해졌다.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몸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그 몸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훈련은 즐거웠다. 하루하루 성장이 있었다. 학습하고 있다는 실감이 있었다.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수술을 받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희미하게 느끼기는 했지만 몸의 기능을 되찾는 일로 머릿속이 가득해서 그런 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위화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감이 예리해졌다’라는 것이다.

  다양한 일들에 대해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 어쩐지 알아버리는 것이다. 물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특히 더 뚜렷했다. 이를테면 공중으로 날아간 야구공이나 축구공이 어떤 궤도를 그리다가 어디에 떨어질지, 순식간에 예측할 수 있었다. 카펫 위를 굴러가는 골프공도 마찬가지다. 공을 친 순간, 어디쯤에서 정지할 것인지 미리 알아버렸다.

  물리 현상 외에도 예측 가능한 것들이 있었다. 병원 복도를 걷다가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된다는 것을 문득 알아버리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들 중에 다음에는 누가 일어날지, 어쩐지 척척 알아맞히곤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아 아무 말 않고 있었지만, 검진 때에 마침내 우하라 박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건 착각일 뿐이지, 라고 무시당할 각오를 했었다. 하지만 우하라 박사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 날, 우하라는 겐토를 대학병원 근처의 수리학 연구소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가지 트레이닝과 테스트를 하게 해주었다.

  이윽고 우하라는 겐토의 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겐토의 예측 능력은 단순한 감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현상을 반복해서 관찰하는 동안 그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결과를 예측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술이 시작되는 시간을 미리 알아버리거나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의 다음 행동을 짐작하는 일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평소에 간호사와 환자를 자주 봐왔기 때문에 그들의 무의식적인 동작을 통해 그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단 물리 현상은 아니라서 이건 항상 적중하는 건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겐토는 뜻밖이었다. 스스로는 그런 경험칙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생겨났는가. 이건 물론 지난번 수술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겐토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가이메이 대학병원 병실에서 수리학 연구소로 옮겨져 수많은 테스트와 훈련을 받게 되었다.

  우하라 박사 팀은 겐토의 능력의 한계를 탐색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준비된 것은 물리 현상에 관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였다. 그것을 머릿속에 주입해나가면서 점차 다양한 예측이 순식간에 가능해졌다.

  “크레인 게임은 물리의 초보 중에서도 초보에 속해. 인형을 따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트 모양의 카드를 목표점까지 날리는 건 좀 어렵긴 했지만, 공기의 흔들림이 적었던 덕분에 성공했어.”

  “와아, 대박!” 마도카는 겐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겐토 군, 초능력자가 된 거네?”

 
 “초능력하고는 약간 다른 거 같은데?”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투시를 한다거나 손대지 않고 뭔가를 움직이는 게 가능한 건 아니니까. 순간이동도 못해. 가능한 건 예측뿐이지. 그것도 물리 현상에 한정되어 있어. 당연한 일이지만 생물이 개입되는 경우에는 예측이 어려워. 길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졌느냐 같은 건 전혀 몰라.”

  “그래도 진짜 굉장하다. 왜 그런 걸 비밀로 해야 돼?”

  겐토는 팔짱을 끼며 끄응 신음 소리를 냈다. “이래저래 많아, 어른들 세계의 사정이라는 게.”

  마도카는 힝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깊은 내막을 알아봤자 따분하기만 할 것 같았다.

  “물리 현상이라면 어떤 것이든 예측이 가능해?”

  “아니, 그런 건 아냐. 못 하는 게 더 많아. 지진 예측 같은 건 아무리 데이터를 들여다봐도 도무지 안 돼. 아마 예측에 필요한 데이터를 아직 인간이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게다가 난류亂流의 예측도 너무 어려워.”

  “난류?”

 
 “한자로는, 어지러울 ‘란’에 흐를 ‘류’를 쓰는 단어야. 액체나 기체가 유동하는 상태의 일종이지. 이 난류를 예측하지 못하면 미래의 날씨도 알 수 없어.”

  “하지만 겐토 군은 예측했잖아, 저것도.” 마도카는 창밖을 가리켰다. “비 오는 거, 정확히 맞혔어.”

  겐토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별것도 아니야. 아직 멀었어.”

  “그래?”

  “요즘은 내 주위의 기후쯤은 분 단위로 예측이 가능해. 근데 비가 내린다든가 그친다든가 하는 정도야. 그런 걸로는 어림도 없어. 급격히 발생하는 국지적 현상을 예측해내야 비로소 난류를 제압했다고 말할 수 있지.”

  “급격히 발생하는 국지적 현상이라니?”

  “이것저것 많아. 뇌우라든가 다운버스트 같은 거. 그리고 토네이도.”

  “토네이도?” 가슴이 철렁했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현재의 날씨 예보에서도 그런 난류 발생에 대한 적중률은 지극히 낮아. 토네이도는 기껏해야 10퍼센트 정도야. 즉 열 번에 아홉 번은 틀리는 거야.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지.”

  마도카의 입안에 씁쓸한 것이 퍼져갔다. 이런 자리에서 그 악몽 같은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우하라 박사님을 비롯한 수리학 연구소 팀들은 슈퍼컴퓨터로는 불가능해도 나한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건 무슨 얘기야?”

  “그들에 의하면,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단순한 계산이 아니래. 좀 더 다른 뭔가가 있어서 이를테면 날씨를 예측할 때도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채택한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다나?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인류에게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 될 거래.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라는 게 있는데……. 아차, 넌 그런 건 모르지?”

  “나비에 스토크스? 처음 듣는 말이야.”

  “아직껏 해결되지 않은 물리학의 난제인데, 이 문제를 풀기만 하면 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돼. 근데 수리학 연구소 팀에서는 그 힌트가 바로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겐토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문제가 풀리기만 하면 토네이도의 예측도 가능하단 말이야?”

  “이론적으로는 그래.”

  “우와, 대박!” 마도카는 두 손을 부르쥐었다. “빨리 그 문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하지만 갈 길이 멀어.” 겐토는 어깨를 으쓱 치켜들었다. “나 혼자서는 너무 힘에 부쳐. 동료가 필요해.”

  “그러면 동료를 좀 더 만들면 되잖아. 아버지 연구 팀에서는 왜 겐토 군 같은 사람을 더 만들어내지 않아?”

  “그건 제약이 있기 때문이야. 나는 사고를 당해서 우연히 그 수술을 받게 됐어. 근데 그런 사고를 당하지도 않은 사람을 억지로 수술할 수는 없는가 봐.”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되는 데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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