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고뇌의 표준

더좋은래일 | 2024.04.24 14:05:44 댓글: 2 조회: 105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3669


소설


고뇌의 표준


1

저명한 건축설계가 지비운이 마당에 내려와 거닐고있다. 청명을 하루 앞둔 일요일, 날씨가 여간만 화창하지 않았다. 그의 안해가 애완 겸 부업 겸 기르는 단 한마리의 토색암탉이 병아리를 깐지도 벌써 두주일... 털빛이 각기 다른 예닐곱마리의 병아리들이 어미를 따라다니느라고 분주하였다. 오래간만에 설계도와 착잡한 선들에서 해방된 지부운의 눈에 그것은 한폭의 <<춘유도>>로 비치였다.

<<옳아, 서우천이를 보러 가야지.>>

문득 걸음을 멈추며 그는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명한 소설가 서우천은 그의 중학시절의 동창으로서 그와는 막연한 사이다.

지비운이 집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마침 밖에서 그의 막내아들 랑림이가 들어왔다. 랑림이는 예술학교 미술관에 재학중이다.

<<어째, 또 무슨 일이 있었니? 울상을 해가지구...>>

아버지가 묻는 말에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만 외쳤다.

<<벙어리야?>>

아버지가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채쳐물은즉 그제야 볼에 밤을 문 소리로

<<학교... 선생이...>>

하고 떠듬거린다.

<<학교 선생이 어째?...>>

<<맘이 비틀어져서...>>

<<선생이 맘이 비틀어져? 어떻게?>>

사연을 들어본즉 교내 미술전람에 제가 그린 풍경화가 겨우 3등으로 입선이 되였다는것이다. 줄잡아도 2등은 되는것을 선생이 다른 아이에게 두남을 두어서 제 점수를 깎았다는것이다.

<<심사라는건 어느 누가 혼자서 하는게 아닌데 어떻게 그럴수있니? 심사하는 선생이 모두 맘이 비틀어질수는 없잖니?>>

아들은 점점 더 앵돌아져서 대답도 안하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잘 생각해봐.>>

한참만에 아버지가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아들을 타일렀다.

<<예술을 하려면 첫째 겸허한 품격부터 길러야 해.>>

지비운이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 아들은 낯이 벌개서 아버지 등뒤에다 대고 눈만 흘기였다. 아버지에게서마저 동정을 얻지 못하는것이 못내 분하였던것이다.

지비운이 찾아가는 소설가 서운천의 집에서는 이때-

2

반백의 머리가 텁수룩한 서우천이 망연자실하여 마당에 서있었다. 그 발밑에는 원고지를 무더기로 사른 재가 수북이 쌓여있다. 이태동안 집필에 심혈을 기울여온 장편소설 <<거짓과 참>>이 끝장이 난것이다. 고골리의 <<죽은 넋>> 제2부의 비극이 되풀이된것이다. 급기야 탈고를 해서 머리를 식혀가지고 다시 몇번 일어본즉 그 <<거짓과 참>>에서는 거짓도 거짓이요, 참도 또한 거짓이라. 작가의 량심을 경매에 붙이기전에도 도저히 발표하고도 허위의 화산이라는 조명을 안 듣게 된다면 그건 기적이랄수 밖에 없을것이다. 하여 여러날을 두고 고민을 한 끝에 그는 마침내 비장한 결단의 한걸음을 내디딘것이다-화장!

서우천은 고뇌에 차서 입은 옷 그대로 신은 신 그대로 지비운을 찾아나섰다. 마음의 고통을 호소할 사람을 찾아가는것이다. 그가 막 일각대문을 나서려는데 마침 그의 무남독녀 혜경이가 찾아왔다. 혜경이는 지난해에 시집을 갔는데 그 남편은 세균학을 전공하는 연구생이다.

<<어째, 또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울상을 해가지구...>>

서우천은 사랑하는 딸의 얼굴에 수심이 진것을 보자 자기의 고통을 잠시 잊어버리고 이렇게 묻는데

<<엄마는?...>>

딸의 입에서 나온것은 대답 아닌 대답이다.

<<좀 있으면 올게다. -어서 들어가자.>>

어비딸이 집안에 들어와서 자리잡아 앉은 뒤에 근심스럽고도 궁금하여

<<어서 말해봐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재쳐물으니 딸은 눈물이 글썽해지며

<<아버지., 난 이젠 끝장이예요.>>

<<아니,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냐?>>

사연을 들어본즉 남편이 현미경에 미쳐서 안해를 돌볼 사이가 없다는것이다. 제 친구들은 극장이나 영화관 같은데도 다 내외가 함께 다니는데 저만은 외톨로 다니게 되니까 다들 소박데기라고 뒤손가락질을 한다는것이다.

<<난 갈라설래요. 아버지, 날 도로 데려와주세요. 난 못살아요. 죽어도 못살아요. 그따위 인간은 현미경하구나 같이 살라지요. 내가 왜...>>

서우천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끔벅끔벅하였다. 이윽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 알았구나.>>

하고 담배 한대를 꺼내 무니

<<그럼 이게 큰일 아니고 또 뭐가 큰일이예요?>>

딸은 발끈 성이 나서 애매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글쎄 그렇게 성부터 내지 말고 천천히 내 말을 좀 들어.>>

하고 천정에다 연기를 길게 뿜고나서

<<과학자가 제 연구사업에 몰두하는게 그래 무슨 잘못이라고 너는 그러니? 밤낮 제 계집이나 떠받들어 모시고 다녀야 그게 리상적인 남편이냐, 네 생각엔?>>

<<떠받들어 모시긴 누가 떠받들어 모시랬어요. 사람이 그래도 어느 정도 좀...>>

<<늬 엄마가 나 원고지에 파묻혀 산다고 시비하는것 너 들어본적 있니?>>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지! 구식하고 신식이 어떻게 같아요?>>

<<여보, 당신 어서 와서 이 벽창호 좀 떠맡아가우.>>

때마침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는 안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말하고 서우천이 자리에서 일어서니

<<넌 또 왜?>>

하고 그 안해는 불시에 찾아온 딸에게 먼저 한마디를 던진 다음 다시 남편을 보고

<<그런데 저 마당에 재더미가 웬 일이예요?>>

라고 물었다.

서우천은 모든것이 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잠자코 그대로 나와버렸다. 파김치가 되여서 엇갈아 디디는 제 발등만 내려다보며 지비운의 집쪽으로 몽유병처럼 걸어갔다.

3

<<어, 자네 이거 어딜 가는 길인가?>>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함께 누가 어깨를 툭 치는바람에 서우천이 꿈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본즉 앞에 서있는것은 지비운-바로 자기가 찾아가는 사람이라.

<<어, 자넨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어.>>

<<아, 자넬 찾아가는 길이야.>>

<<그럼 마침 잘됐군.>>

서로 찾아가다가 도중에서 만난 두 친구는 길거리에서 마주서서 잠시 의논을 하였다.

<<날씨도 좋고 한데 우리 오래간만에 공원에나 한번 가볼가?>>

<<좋겠지.>>

<<남호의 금잉어가 요새도 볼만한지 모르겠군.>>

<<글쎄, 아무튼 가보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두 친구는 키들이 다 보기 좋게 후리후리하다. 중학시절에는 둘이 다 롱구선수였었다. 그러나 현재는 같은 쉰넷이라도 소설가쪽이 건축설계가보다 퍽 더 겉늙어보인다.

<<자네 그 <거짓과 참> 인제 거의다 돼가나?>>

<<음... 아니...>>

<<공력이 무척 드는가보군그래.>>

<<아...>>

소설가의 대답은 요령부득이다. 무리도 아니겠지. 그는 바야흐로 파산을 선호한 기업주의 절망감, 허무감 비슷한것을 체험하는중이였으니까.

일매진 가로수가 멋지게 늘어선 문화궁전앞의 대통로-남호거리를 따라서 곧장 가면 두 친구가 목적하는 이름난 공원-남호공원이 나선다. 문화궁전 퍽 못미쳐 네거리가지 왔을 때 지비운이 불쑥

<<여보게 우천이, 우리 저 길로 둘러서 가세.>>

하고 소설가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둘러서? 왜?>>

서우천이 눈을 들어 먼곳까지 촘촘히 줄지어선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괴이쩍은듯이 물었다. 시내에서 가장 우아한 남호거리를 거니는것은, 동방의 샹젤리제라고 문인들이 칭찬해부르는 남호거리를 거니는것은-일종의 향락이였다.

<<그저...>>

<<그저라니?>>

서우천은 친구가 더 긴말을 하려 하지 않는것을 보고는

<<괴상한 성미로군.>>

군소리를 하면서도 순순히 그가 끄는대로 따라갔다.

둘러서 가는 길은 거의 곱절이나 멀기도 하거니와 운치없이 번잡하기만 해서 그러잖아도 염세증에 걸린 지경인 서원은 어지간히 기분이 상하였다.

4

호수가에 띠염띠염 늘여놓인 장의자들. 그중 한겻진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지비운과 서우천 두 친구는 거울 같은 호면을 바라보며 오래간만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였다. 인간이란 번잡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이런 아늑한 품속에 안겨보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담배 예 있네.>>

<<아.>>

두 친구는 한개비 성냥불에 담배 한대씩을 사이 좋게 노나 붙이고나서 이야기의 실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천천히 풀어나갔다.

<<자식은 아예 응석으로 기를게 아니라니까.>>

<<누가 아니래.>>

<<우리 막내녀석은 글쎄 제 그럼이 3등으로 입상이 됐다고 심사한 선생들을 모두 맘이 비틀어졌다는 판일세.>>

<<흐흥... 우리 집 혜경이란 년도 마찬가지야. 외동딸이라고 너무 귀엽게 길러놔서 이 세사엔 저 하나밖에 없는줄 안다니까.>>

<<그래도 우리 집 그년은 제 사내가 저를 떠받들어 모시지 않는다고 울고불고 야단이야. 현미경에 미친 인간하고는 같이 살수 없다고 리혼을 하겠대.>>

한동안 잠잠하다가 지비운이 다시

<<그러고보면 우리가 다 부모노릇을 잘못했나보이.>>

탄식하는조로 말을 한즉

<<동감이야.>>

서우천도 감회 깊은 어조로 대꾸하였다.

<<우리는 젊었을 때 그렇지들 않았던것 같은데...>>

하고 건축설계가가 기억을 더듬으니

<<안 그렇다마다. 우리야...>>

하고 소설가가 맞장구를 쳤다.

또 한동안 무료하게들 담배만 피우다가 지비운이 불쑥

<<자네 그 <거짓과 참>에서는 주인공의 결말이 어떻게 나나? 죽나, 사나? 아니면...>>

하고 궁금증을 나타내는데 서우천은 손을 홰홰 내두르며

<<화장, 화장. 화장했어!>>

<<화장? 화장이라니?>>

<<다 살라버렸어.>>

<<살라버리다니... 뭘?>>

<<원고, 원고. 이태동안 쌓은 공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돼버렸어!>>

<<아니, 그게 웬 소리야?>>

<<말 말게. 지금 속이 부질부질 끓어서... 살고싶은 생각도 없네.>>

<<저런!>>

<<알았나, 인제? 그래서 하소연을 하려고 자네를 찾아오던 길이야.>>

<<도대체 어떻거다 그런 일이 생겼나? 어서 속시원히 얘기나 좀 하게.>>

<<청맹과니노릇을 하던 작가의 량심이 눈을 떴어. 거짓말로 저 자신을 속여온 전비를 뉘우쳤단 말이야. 독자들을 우롱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쳤단 말이야.>>

<<......>>

<<나의 허위의 화신이였어. 알겠나? 허위의 화신!>>

<<여보게.>>

하고 동정을 금치 못하는 건축설계가가 친구의 어께에 손을 얹으며 부드러운 말로 안위를 하였다.

<<자네의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리해하네. 하지만 너무 그렇게 격동할건 없어. 생각해보게, 한 자가가 자기의 공력들인 작품을 부정한다면 그건 그 작가의 일보 전진을 의미하는게 아니겠나?>>

절망감에 사로잡힌 소설가는 아무러한 반응도 보이지를 않았다. 지비운이 잠시 끊긴 말을 다시 이었다.

<<나는 자네의 이번 그 결단을 정상적인 성장과정에서의 한 전환점으로 보네. 다시말해서 자네는 보다 높은데로 한번 크게 뛰여 오른거란 말일세. 자네의 이번 실패는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인게 아니라 실상은 공든 탑이 무저지랴일세. 다음에 쓸 작품의 성공을 위해서 미리 튼튼한 터닦이를 한거란 말일세. -이왕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기실 나는 자네가 여간만 부럽지 않네.>>

소설가는 의아한 눈으로 자기를 부럽다는 친구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왜, 곧이들리지 않나?>>

하고 건축설계가는 자조하듯 쓴웃음을 한번 웃고나서

<<나도 크게 공력을 들인 제 설계도가 막상 철근과 콩크리트로 완성이 돼갈 때 왕왕 뒤늦게 결점을 발견하고 자기의 미숙함을 깨닫는 일이 있다네. 그러나 어떻거나? 자네처럼 결단을 내려서 살라버리겠나? 그것은 원고지가 아니라 철근콩크리트야, 그 결점은 내 일생 살아생전에는 지워버리지를 못해. 내가 죽어도 그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어. 나는 백년을 살지 못하네. 하지만 내 그 작품들의 수명은 백년, 이백년, 길고도 또 길거든. -그래서 나는 자네같은 작가들을 부러워한다는 말일세, 맘에 안드는 원고는 아무때고 살라버릴수 있으니까. 화가나 조각가도 다 그렇지. 그들도 맘에 안 드는건 아무때고 찢어버리고 깨버리고 할수 있거든. -자네. 알아듣겄나, 내 이 말하는 뜻을?>>

소설가의 얼굴에 놀라와하는 빛이 현연히 떠올랐다.

<<내가 왜 아까 자네를 끌고 문화궁전을 피해서 먼길을 에돌아왔는지 아나? 내가 그 문화궁전의 설계자인걸 자네도 알지. 그런데...>>

홀제 등뒤의 아주 가까운 나무에서 딱따구리가 급촉한 <<따다다닥...!>> 소리를 내였다. 두 친구는 일변 놀라기도 하고 또 일변 신기하기도 해서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멋지게 생긴 딱따구리 한놈이 나무줄기를 안고 잽싸게 돌다가 파드닥 날아가는것을 보고 서우천이 픽 웃으며

<<저놈은 저렇게 몹시 쪼아도 뇌진탕이 안 걸리는 모양이지.>>

하고 고개를 흔드니

<<익조라서 하늘이 굽어살피는게지.>>

하고 지비운이 받았다.

웃음의 소리를 하는 두 친구의 얼굴에는 잠시 화기로운 미소가 어리였다.

<<그런데...?>>

하고 소설가가 딱따구리로 해서 중둥무이된 말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하고 건축설계사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공사가 거의 준공에 가까왔을 때, 다시말해서 준공전야에 이르러서 나는 자기 설계에서 큰 결함을 발견했네. 그것은 일반사람의 눈으로는 보아내지 못하는 그런거였지만 한 건축예술가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보지 않을수 없는 그런거였네, 나는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걸 어쩌지 못했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진렬장 모양으로 깊이없이 해바라진, 기생처럼 겉치장만 반지레한... 그런 안가한 건물이였네. 내가 숭상하는 미껠란젤로의 풍격과는 천만리 동떨어진 졸작이였네. 거기에는 고시크의 수려함도 없고 희랍의 전아함도 없고 그리고 로마의 웅숭깊음 또한 없었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뉘게다 보이기도 창피할 정도의 실패작이였네.
그래서 나는 병탈을 하고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네. 신문과 라지오가 새로 일떠선 문화궁전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때 나는 곧 울고만싶었네. 쥐구멍을 잦고만싶었어. 사람들의 치하를 받을적마다 나는 낯이 간지러워서 몸둘바를 몰랐네. 한데 그 문화궁전으로 날마다 수천명 사람이 드나들거든. 그 숱한 사람들을 우롱하는것 같은 자격지심에 나는 살이 내릴 지경이네. 문화궁전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네. 해서 나는 문화궁전에를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뿐아니라 그 근처에도 얼씬을 안하네. 문화궁전앞을 지날 일이 있으면 일부러 길을 에돌아다니네, 아까 자네를 끌고 에돌아온것처럼 그렇게. 내가 자네 같은 소설가라면 그래 이런 평생을 두고 량심의 가책을 받을 실패작을 그대로 놓아두고 밤낮 속을 썩이겠나, 어느 옛날에 벌써 속시원히 살라버렸지. 인제 내가 자네의 처지를 부러워한다는 소이연을 알만한가?>>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건축설계가의 얼굴에는 서글픈 웃음이 떠올랐다. 소설가는 묵묵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친구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끝없는 친애와 신뢰의 빛이 흘렀다.

이때 나이 젊은 엄마의 손에 끌려서 남호의 금잉어구경을 온 네댓살짜리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가 장난감나팔을 입에다 대고 <<뚜- 뚜- >>불었다. 그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별나게 우습강스럽게 들렸다. 지비운이

<<저 어린 예술가도 지금은 미숙하지만 장래는 훌륭한 트럼페트연주가로 될걸세.>>

하고 웃으니

<<아무렴.>>

하고 서우천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우리처럼 허다한 고뇌의 계단을 거쳐서...>>

<<손님들, 기념사진 안 찍으시겠습니까?>>

하고 웃는 낯으로 다가와서 권유하는것은 공원사진관의 약삭바른 청년사진사.

<<좋겠지.>>

두 친구는 호수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자연스럽고도 기분좋게 웃음을 지었다.

<<제사를 넣으시지요? 여기다 적어주십시오.>>

젊은 사진사의 서비스가 아주 능란하다.

<<좋겠지. -자네가 쓰게.>>

하고 지비운이 밀맡긴즉

<<글쎄... 뭐라고 쓴다?>>

하고 서우천이 선뜻 원주필을 집어들고는 고개를 한번 비튼 뒤에

<<고뇌여, 잘 가거라!>>

라고 가로썼다.

건축설계가와 소설가 두 친구는 서로 마주보며 명랑하고도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머리우의 사월의 하늘은 여전히 온화하고 여전히 맑았다.


1981년 연길

추천 (3) 선물 (0명)
IP: ♡.245.♡.77
타니201310 (♡.163.♡.118) - 2024/04/27 16:32:35

<<예술을 하려면 첫째 겸허한 품격부터 길러야 해.>>


잘 읽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

더좋은래일 (♡.208.♡.247) - 2024/04/27 18:48:07

좋은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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