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25~27

단차 | 2023.11.15 07:15:55 댓글: 2 조회: 206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677
25


경민의 집을 나선 정규와 주영 역시 곧 길이 갈렸다. 두 사람은 간밤의 잠복을 통해 묘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혀 연애 감정은 아니었지만 외계인에게 함께 맞선 동지애나 인류애 같은, 혹은 남매 같은 끈끈함이었다. 그걸 쉽게 인정하기에는 둘 다 성격이 애교 있지 않았지만.

“아저씨는 이제 출근?”

“해야죠.”

“어제는 고마웠어요. 혼자 외계인 기다렸으면 심심할 뻔했네.”

“정말 갈 거예요?”

“응.”

“그냥 지구에 있지?”

“에이, 왜 그래요.”

“지구에 아폴로 말고도 괜찮은 사람 많을 텐데요.”

“누구요?”

“예를 들면…… 어, 글쎄?”

“연애 감정 같은 거 아니에요. 그것보다 훨씬 오래갈, 확신 같은 거예요.”

“그래도 가지 말죠.”

“아, 자꾸 왜요.”

“거기 가서도 멀리서 좋아하는 게 다일 거면, 여기서 해도 되잖아요? 주영씨를 아껴줄 만한 사람과 함께 밤하늘 보면서 응원하면 되지.”

주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같이 다니며 더 가까워질 순 있겠죠. 외계인들 사이에 있으면 같은 인간인 게 메리트일 테니까요.”

“또 모르지. 지구 출신 여행자들이 얼마나 많을지는요. 그, 원래의 경민씨도 있을 수 있고 실종된 사람들 다 거기 가 있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럼 이렇게 해요. 가봤다가 아폴로가 시시하게 느껴지면 돌아와요.”

“아폴로보다 더 멋진 외계인 뮤지션에게 반해버릴지도요.”

그러나 주영은 속으로 그런 일은 우주 끝까지 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우주에 영원히 불변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주영의 마음은 그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불량 총은 나한테 줘요. 어차피 외계에선 레이저 총 아니면 안 될 거 아냐.”

주영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 생각하면서 순순히 건넸다.

“자, 악수.”

정규가 손을 내밀었으나 주영은 좀 꺼림칙했다.

“엥, 악수는 좀 그렇다. 티켓이 가버리면 어떡해.”

“그런 원리는 아닐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모르니까 두 사람은 어깨를 서로 살짝 부딪쳤다.


“조심하세요.”

“가서 구할 수 있으면, 나도 티켓 보내줄게요. 휴가 와요.”

“올해 휴가 일수 안 남았기 때문에.”

주영과 정규가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둘은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그 만남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고 훗날 종종 서로를 생각하며 웃게 되었다. 그렇게 이상한 경험을 함께한 사람, 기억나지 않을 리가.

동시에 웃었던 적도 있다. 한 사람은 서울에서, 한 사람은 우주 투어 길에서.


26


예상치 못한 손님을 치르고 나서, 경민과 한아는 햇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특히 한아는 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아아, 이제야 긴장 풀리네.”

경민은 몸을 반쯤 일으켜 한아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어쩐지 코가 간질간질하다고 느끼는 한아였다. 무슨 빔을 쏘는 걸까, 이상한 외계인.

“제발 아까 같은 짓은 다시 하지 마. 총이었다고.”

“도심 한가운데서 번쩍번쩍하면 의심받잖아. 너야말로 그러지 마.”

“하지만, 네가 다치면……”

“생각보다 약하지 않아. 돌덩이는 아니지만.”

경민은 영 동의할 수 없는 듯했다.

“네가 없으면 내 여행은 의미가 없어져.”

한아는 망설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2만 광년이란 엄청난 거리를, 망설임 없이 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이 아니니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버리고 온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해? 빚도 많이 졌다며?”

“내가 외계인이라도 정말 괜찮아?”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구인 약혼자에게 걱정스레 묻는 경민이었다.

“외계인이고 지구인이고 2만 광년을 달려와주면, 아무래도 호감이 가지. 대단한 호감은 아니고, 기본적인 호감이지만.”

한아가 결국 인정했다. 그 말에 경민이 살짝 한아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려던 차, 한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유리다.”


몇 시간 후 유리는, 친구 커플이 산에 가서 버섯을 잘못 뜯어 먹은 게 아닐까 고민했다. 앞에 앉은 두 사람은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하고 있었지만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한아는 고집스럽게 반복했고, 경민은 중간에 조용히 일어나 샌드위치를 사오기까지 했다.

“그래서 경민씨가 뭐라고?”

“경민이가 사실은 경민이가 아니라고. 외계인이라고.”


유리가 경민을 쳐다보자, 경민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유리가 두 사람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건 동공 크기였다. 병원에 보내야 할지, 당장 위세척 같은 걸 받게 해야 하지 않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근처 무인 택배함에서 마약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걸 할 친구들이 아니었지만 누가 몰래 먹였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한테는 말 못하지만, 너한테는 해야 할 것 같았어. 넌 내 가장 가까운 친구고…… 아니, 친구 이상으로 가까운 자매나 다름없는 존재고.”

유리는 한아의 눈을 까뒤집어보고, 이마도 짚어보고, 맥박도 재어보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남의 일에 오지랖 부렸다가 괜히 헛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살짝 후회되긴 했다. 성격에 맞지 않는 짓을 했군, 유리가 손톱으로 작업대에 말라붙은 물감 찌꺼기를 긁어냈다.

“그래서, 프러포즈는?”

한아가 손을 내밀어 보석이 빙빙 도는 반지를 보여주었다.

“아, 그럼 됐어. 축하해.”

“그게 끝이야?”

“그럼?”

“내가 초록색 반광물 외계인이랑 결혼해도 넌 안 말려?”

“……버섯인지 뭔지 효과 날아가면 다시 얘기하자.”

유리의 담담한 반응에 어째선지 뒤늦게 화가 나는 한아였다.

“친구면 좀 진지하게 듣고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보다 사실은 부추긴 거에 가깝잖아! 너 진짜!”

경민은 한아의 반응에 당황하며,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아니, 뭘 또 말리라고 화를 내고 그래, 한아야.”

유리는 이 대화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몰라. 외계인이든 뭐든 난 예전의 그 싹퉁머리 없는 놈보다 지금 경민씨가 좋아. 뭐가 변했는지 몰라도 이쪽이 좋다고. 너한테 훨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 역시 유리씨 최고야. 고마워요.”

경민이 헤벌쭉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바닥을 내밀었지만 유리가 무시했다.

“뭔가 섭섭해. 뭔가 맘에 안 들어.”

한아는 콕 짚을 수 없는 이유로 감정이 끓어올랐다.

“자꾸 알 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해. 하루 놀고 왔잖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경민씨도 들어가요.”

경민이 가게를 나서자 한아가 유리창 밖의 경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민은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멀어져갔다. 뭐야, 다 괜찮구만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한아를 다독이며 유리는 인생 자체가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한아는 재봉틀을 돌리다가 꿍얼거리다가 돌리다가 꿍얼거리다 했다.

유리는 소음 차단 이어플러그를 끼고, 조용히 새 한 쌍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앙을 그리기 걸맞은 날인 듯했다.


27


외계인 남자친구와 공식적인 첫 데이트 장소를 고민하다가, 한아는 놀이공원을 선택했다. 수많은 장소를 생각해봤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복잡해져만 갔고, 대체 가장 지구스럽고 또 한국스러운 곳이 어딘지 지구인이자 한국인인 한아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이라면 적당히 이것저것 섞여 있고, 특유의 신나는 분위기 속에 어색함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화가 끊기면 뭔가 뱅뱅 도는 걸 타면 될 거란 전략과, 사람이 복작거리니까 경민이 조심스러우리란 계산도 있었다.

“놀이공원 와본 적 있어?”

어안이 벙벙한 채 미아처럼 서 있는 경민에게 한아가 물었다. 낯선 환경을 살피느라 양 눈이 따로 놀기 직전이었다.

“아니, 하지만 다른 별들에는 종종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어제 조사는 미리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또 다르다.”

“진짜 처음이구나. 뭐 타보고 싶어?”

“여기 무슨 우주여행 비슷하게 만든 놀이기구가 있다던데 그거 타보고 싶어.”

“아, 그거. 나도 타본 지 오래됐다. 타러 가자.”

나쁜 선택이었다. 첫 놀이기구로 지나치게 과감했는지 경민은 고함을 지르다못해 얼굴이 초록색으로 변해갔고 한아는 다른 의미로 공포에 질려야 했다. 입가와 감은 눈꺼풀, 심지어 귓속까지 녹색으로 변해가서 한아가 양손으로 막았다.

“안 돼, 빛 뿜으면 안 돼, 정신 차려! 뭐야, 거꾸로 돌지도 않는 이런 중간급 롤러코스터에 이러면 안 돼!”

스티로폼인지 뭔지 모를 조악한 합성수지로 만들어놓은 가짜 항성과 행성과 위성 들 사이로 빙글빙글 돌 때마다, 외계인은 놀랍도록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뒷줄에 탄 중학생들이 놀이기구에는 관심이 없고 경민을 보며 웃어댔다. 한아 인생에서 가장 긴 몇 분이었다. 다 타고 내려서는 경민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액체 없다며? 고체라며?”

“감각 변환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한참 제대로 서지도 못하게 된 경민 때문에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한아가 어이없음 반, 걱정 반으로 경민을 바라보았다.

“어우, 리얼하네.”

“뭐가?”

“우주여행을 아주 잘 재현해놨어.”

“에엥, 거짓말 마!”

“아냐, 진짜 저래. 완전 비슷해.”

“정말? 난 훨씬 쾌적한 걸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보면 냉동 캡슐에 들어가서 잘 자고 나오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고 그러던 걸.”

“물론 그런 우주선도 있지. 근데 내가 탄 건 그런 게 아니었어.”

“왜?”

“재산도 그만큼 없었고, 있었다 해도 지구는 아직 위험 지역이란 평판이라 노선이 부족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

위험 지역이란 말에 미묘하게 빈정이 상했다.

“왜? 위험하기는 외계인들이 더 위험하지. 맨날 불 뿜으려 그러고 더 폭력적이구만.”

“아니, 꼭 그런 문제 말고도 환경 자체가 좀 위험하지.”

“여기만큼 포근한 환경이 어딨다고 그러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른 생명체들이 탄소 대사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지구도 시점에 따라 굉장히 유독한 환경일 수 있어.”

지구를 사랑하는 한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모르겠고…… 여기 잠깐 앉아 있어봐.”

“어디 가?”

겁먹은 얼굴로 경민이 한아를 붙들었다. 한아는 피식 웃었다. 지난 몇 달간 이런 바보 같은 존재를 무서워했다니 아득했다. 지구 정복은커녕 롤러코스터도 하나 제대로 못 타는 녀석을.

“잠깐 있어봐. 금방 올게.”

경민은 같이 일어나려다가 실패했다. 인파 사이로 사라졌던 한아는, 잠시 후 솜사탕을 들고 총총 뛰어왔다.

“자, 상이야.”

“상?”

경민이 솜사탕의 촉감에 놀라 하며 물었다. 감각 변환기가 아주 고장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메슥거려 하며 수고스럽게 와줬으니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솜사탕을 떼어먹고는 경민이 아, 하고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어때?”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그치?”

“이거 말고 너.”

지나치게 달다고, 뭐라고 쏘아주려다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놀랍도록 직선적인 외계인이 그렇게 싫지 않다고 생각했다. 놀이공원의 들뜬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헬륨 풍선도 하나 사서 경민의 팔목에 매달아줬다. 풍선을 들고도 탈 수 있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만 타기로 했다.

자유이용권이 아깝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떠나보내고 없는 자유 여행권을 생각하며 참기로 했다. 기분이 좋은지 경민이 자꾸 풍선으로 장난을 쳤다.

날아가지는 마, 그런 생각을 혼자 하고는 다시금 놀라는 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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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5 22:24:37

한아한테 반하여 2만광년이나 달려온 경민이.달라도 너무다른
외계인과 지구인이 어떤 좌충우돌 기상천외한 러브스토리를 펼
칠지 기대되네요.

단차 (♡.252.♡.103) - 2023/11/15 22:26:25

저라도 이런 사랑이라면 쉽게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2만광년을 달려온 사랑이라뇨. 이건 정말 우주에 단 하나 뿐인 사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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