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50

더좋은래일 | 2023.11.06 15:52:03 댓글: 1 조회: 253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5359


50

선장이가 리정호와 함께 조직의 소개장을 가지고 한구에 있는 총정치부에서 몰수한 일본신문사의 활자를 보러 왔다가 시간이 늦어 나루를 건느지 못하여 태화거리숙소에서 하루밤을 드새고 이튿날 늦은 아침때 시계탑이 서있는 강한관으로 도선을 타러 나왔다. 무창-한구 사이의 도선은 이삼백명씩을 태울수 있는 작은 기선 두척이 30분 간격으로 종일 오갔었다. 배삯은 20전, 군인은 반할인하여 단돈 10전이였으나 그나마 표를 사고 배를 타는 군인은 거의 없었다. 배회사에서는 군인하고 쌈을 해보았자 이길 승산이 없으니까 아예 단념하고 표를 사라고도 안하고 또 표를 사자고도 아니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군인망나니들>>을 거저 태웠다. 선장이와 리정호가 강한관을 바라보고 오는중에 맞으편에서 느럭느럭 걸어오는 괴상한 행렬과 마주쳤다. 무언가 해 가까이 오는것을 여겨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일본포로병들의 행렬이였다. 무적황군의 위풍과 사무라이의 정신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가련하고도 초라한 몰골들이였다. 그런데 가관인것은 다리를 다쳐서 잘 걷지 못하는 놈들은 인력거에다 태워서 우리 사람들이 끌고 오는것이였다.

<<저런! 아 왜 저희끼리 끌라지 못하고 우리가 끌어?>>

<<애당초에 인력거가 왜 필요해? 저희끼리 업구 가래지!>>

선장이와 리정호가 분개하여 서로 지껄였다.

<<노예근성!>>

<<민족자존심이 없는 놈들!>>

<<책임진 놈이 친일파가 틀림없어.>>

<<하응흠이란 놈이 명령을 내렸는지두 모르지, 저의 상전이라구.>>

<<일본개!>>

<<늙은 일본개!>>

이렇게 욕을 해놓고 우스워서 선장이와 리정호는 마주보고 웃었다.

강한관 도선장에는 도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남녀로소 뒤섞이여 와글와글하였다. 선장이와 리정호가 한옆에 와 서서 강한관의 시계탑을 쳐다보니 8시 20분 조금 지났었다. 선장이가 손목시계를 벗어가지고 바늘을 맞추는중에 까만색승용차 한대가 스르르 달려와 저 바로 앞에 서더니 높은 량반들 같아보이는 사람 둘이 차에서 내리는데 하나는 회색중산복을 입었고 또 하나는 령장을 달지 않은 군복을 입었었다. 리정호가 선장이의 옆구리를 직신거리며 귀가에 입을 갖다대다싶이 하고

<<보라구, 주은래다!>> 하고 속삭였다. <<주은래>>소리에 귀가 번쩍 띄여 선장이가 얼른 눈을 들어보니 아니나다르랴 사진에서 본것과 똑같은 얼굴이 지척에 있었다. 이때 진보적인 지식층사이에 주은래의 인기는 에베레스트의 정상과 같아 비길 사람이 없었다. 선장이는 주은래를 가까이에서 보는 행복감에 잠기여 잠시 넋을 놓았다.

<<그런데 이쪽의 저 군복을 입은건 누구야?>>

선장이가 귀속말로 물으니 리정호는 가볍게 머리를 가로 흔들며

<<모르겠어, 누군지 나두.>>

역시 귀속말로 대답하였다.

주은래가 아는 사람 하나를 만나 악수를 하고 마주서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있을 때 뒤에 섰던 얼굴빛이 음침한 군복 입은 주은래의 동행이 슬그머니 인총중에 끼여들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그 해괴한 행동을 보고 선장이와 리정호가 다같이 괴이쩍게 여기는중에 주은래가 하던 이야기를 마치고 무심히 뒤를 돌아보았다. 군복 입은 동행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주은래는 사람을 찾느라고 두리번두리번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람은 없었다. 종적을 감춘 사람이 있을리 없다.

그동안에 도선이 와닿아 내릴 사람 다 내리고 또 오를 사람도 다 올랐다. 짧은 기적 일성을 울리고 배는 다시 안벽을 떠났다. 하회를 보느라고 선장이와 리정호도 덩달아 한배를 놓치였다. 승용차에서 운전사 같은 사람 하나가 내려와 주은래에게 나지막이 말 몇마디를 하더니만 주은래는 사람 찾을것을 단념한듯 아무말없이 도로 차에 올라 온 길을 되돌아갔다.

선장이와 리정호는 무슨 영문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였다. 처소에 돌아와 다른 친구들에게 목도한 사시를 그대로 옮기고 무슨 판국인지 알만한가고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납득이 갈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였다.

이삼일 지나가지고 <<소탕보>>를 비롯한 각 신문들에 장국도가 국민당편으로 넘어왔다는 보도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그래도 선장이와 리정호는 자신들이 강한관 도선장에서 목도한 해괴한 일을 그것과 련관시켜 생각하지는 않았다.

9월초에 동호반의 숙영지를 철거하고(발진티브스가 돌아서) 전원 하구로 옮겼다. 구름다리밖 이전 일본인들의 고급주택구역에 집들을 노나들었다.

선장이들 대여섯에게 차려진 집이라는것은 아래층이 반지하실로 쓰이는 아담한 2층양옥인데 출입문, 창문 할것없이 문이라는 문에는 다 풀색뼁끼칠을 한 쇠그물덧문(방충망)이 달려있어 성가신 파리, 모기와 완전히 격리가 된 별천지였다. 한구 무슨 주식회사의 일본인사장이 살던 집이라는데 보관이 어찌나 잘되였던지 서가에는 일문판 <<세계문학전집>> 36권 한질이 고대로 꽂혀있고 또 피아노에는 악보가 펼쳐진채로 세워져있는데 선장이가 들여다보니 그 파이노의 임자는 마스네의 <<엘레지>>를 탄주하다말고 불시에 집을 버리고 한구를 떠난 모양이였다.

선장이가 얻어들은 말에 따르면 1937년 8월초, 국민당정부의 군사위원회는 군사충돌에 비추어 양자강 하류의 병목인 강음을 봉쇄하여 양자강안에 들어와있는 일본군함과 일본상선들을 모짝 다 나포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군사위원회 위원중의 한 친일파가(몸에 지닌 무전기로) 회의결정을 적에게 직통한 까닭에 강음에 기뢰가 부설되기 48시간전에 한국 일본령사관에 철거명령이 하달되였다고 한다. 한구에 거류하는 일본사람들에게 한시간 이내에 전부 양자강에 대기중인 구축함에 승선하라는 벼락명령이 내린것은 바로 정오-점심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급살이 난 일본지류민들은 입은 옷 입은채로 먹으려던 밥들을 바께쯔에 쏟아넣어가지고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강가로 달려나왔다고 한다. 거류민들을 만재하고 전속으로 내리닫는 일본군함들은 강음포대밑에 기뢰부설이 완료되기전 2시간에 아슬아슬하게들 호구를 벗어났다고 한다. 상해에 도착한 한구 일본난민들이 중국당국의 처사를 비난하는 보도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은 <<상해신문>>은 선장이도 당시 대장거리에 주둔하고있으며 읽어보았다. 그 신문에는 <<의지가지없는 난민들의 비참한 정경>>이라는것을 찍은 사진들도 여러장 곁들여 실었었다. 적에게 정보를 제공한 매국적은 후에 들추어나 남경 우화대에 끌려나가 총살을 당하였는데 그 가족들까지 씨알머리를 없앴다고 한다. 고중에 다니는 딸이 그 아비의 언결로 형장에 끌려나와 총살을 당하는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후부터 군사위원회가 열릴 때면 무전기를 몸에 지니고 입장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위원장인 장개석이 먼저 문앞에서 두손을 쳐들고 자신부터 몸뒤짐을 시키는 까닭에 회장에 들어가는 놈들은 누구나 다 몸뒤짐을 당하고야 들어간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다 선장이가 주어들은 이야기들이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덧보탬인지는 알수 없다. 가족끼리 씨알머리를 없앴다는 대목과 장개석이가 두손을 들고 몸뒤짐을 시킨다는 대목은 선장이가 듣기에 신빙성이 너무 좀 부족한것 같기는 하나 그렇다고 또 아니라고 반박을 할만한 반증도 없는 까닭에 선장이는 그저 <<참고>>로 삼기로 하였었다.

일본인사장의 딸(뒤져낸 앨범에서 피아노를 치던게 딸인것을 알았다. 희세의 미인이였다. 하긴 항시 이성에 대한 만성적기근상태에 처해있는 총각들의 눈에 그렇게 비치였는지는 모르지만서도 하여튼) 마끼노 사나에양이 두고 간 물건들중 일기장 한책이 드러난것이 아연 인기를 끌었다. 그 일기장은 대번에 조선의용대 총각들의 애독서, 필독서로 되여 머리가 커다란 총각녀석들이 서로 제가 먼저 보겠다고 쌈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가장에 적힌 간단간단한 글들중 특히 입입이 애송된것은 다음 같은 한구절이였다.

<<아이 귀찮아, 또 월경이 왔네.>>

조선의용대가 정식으로 발족하기 직전에 중공대표 주은래동지가 와 축하의 뜻을 표하고 또 보고를 하였다. 그것은 후일 태항산항일근거지에서 팽덕회동지가, 여러겹의 봉쇄선을 뚫고 들어온 조선의용대동지들에게 환영의 뜻을 표하고 또 보고를 한것과 아울러 조선의용군사에 특기할 대사였다(조선의용대는 후일 해방구로 넘어가 조선의용군으로 확대되였다).

머리를 막 깎은 주은래동지가 강소성북부의 사투리가 약간 알리는 말씨로 보고를 하는 동안 완전히 매혹된 청중-조선의용대대원들은 개개 다 저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였다. 주은래동지는 2시간에 걸친 정치보고가운데서 사회혁명과 민족해방의 관계 등 일련의 문제들을 풀이한 끝에 장국도가 도망친 전말에도 언급을 하였다.

그 전말을 듣고 선장이는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옆자리에 앉았는 리정호를 돌아보니 리정호도 역시 입을 딱 벌리고 선장이를 마주보는것이였다. 선장이와 리정호는 우연하게도 한 력사적 사건의 목격자로 되였던것이다. 알고보니 그날 강한관 도선장에서 본, 주은래와 함께 승용차에서 내렸다가 이내 종적을 감춰버린 군복 입으 낯 모를 사람은-장국도였었다!

-장국도는 제멧대로 섬북을 떠나 무한으로 왔다. 주은래동지는 한구에 설치되여있는 팔로군판사처에서 장국도와 여러차례 간담하였다. 주은래동지는 장국도에세 무산계급을 저버리지 말고 또 스스로의 신세를 조지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그리고 당분간 조직을 떠나가지고 자유로운 립장에 서는것도 무방하니 제발 덕분 반동파에게 리용만 되지 말라. 이런 말까지 하였다. 이튿날 주은래동지는 장국도와 함께 장개석을 보러 갔다. 이때 장개석의 림시대본영-행영은 무창에 설치되여있었다. 두 사람이 강한관 도선장에 와 도선을 기다리는중에 주은래동지는 아는 사람 하나를 만나 몇마디 한훤수작을 나누게 되였다. 그런데 그 짧은 몇분동안에 등뒤에 서있던 장국도가 종적을 감추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장국도는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선객을 만재한 도선은 배줄을 감고 안벽을 떠났다. 이삼일후에야 주은래동지는 비로소 소식을 듣게 되였는데 당시 장국도는 혼자 몰래 뒤구멍으로 빠져가지고 장개석이를 보러 갔었다. 그 결과 장국도는 매수를 당하여 혁명을 배반하였다.

이삼일후에 곽말약청장이 와 보고를 하는데 선장이 머리속에 오래도록 남은것은 그가 소시적에 처음 일본으로 건너갈 때 상해에서 배를 타고 간것이 아니라 기차로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조선반도를 종단하여 부산과 시모노세끼 사이를 련결하는 관부련락선을 타고 갔다는것이였다.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그 직위의 높고낮음을 막론하고 한달 급료가 일률적으로 20원이다. 물가가 오른데 비하면 거의 <<기아임금>>이였다. 국민당군대에 단독으로 나가 복무하면 여러갑절 많은 급료를 받을수 있었으나 그런것을 헤아리는 <<수전노>>는 조선의용대 대원들중에 하나도 없었다(하나는 없다는것은 좀 어페가 있다. 그 얼마 안되는 급료를 꽁꽁 모아두었다가 더러운 목적에 쓴 추물하나가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될것이다).

선장이와 장준광이 강안욕지라는 규모가 상당히 큰 목욕탕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 장준광이 주제넘게

<<대중탕은 너무 좀 저급이야. 독탕에 들어가자구.>>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과람한 제의를 하여 선장이는 좀 미타히

<<아무려나.>>

끄는대로 끌려들어갔다. 독탕은 침대가 둘에 뽀트모양의 사기를 올린 양식모욕탕이 둘에 거울이 붙은 세면대가 하나에 또 깨끗한 욕의가 한벌씩에-한마디로 말하여-고급이였다.

차주전자를 들고 들어온 뽀이가 곱게 보이려는것처럼 웃는 얼굴로 물었다.

<<등을 밀어드릴갑쇼?>>

<<아니 고만두어.>>

목욕을 하고나서 침대에 드러누워 쉬는데 또 들어와 물었다.

<<발톱을 깎아드릴갑쇼?>>

<<아니 고만두어.>>

<<안마를 해드릴갑쇼?>>

<<아니 고만두어.>>

<<그럼 구두를 닦아드릴갑쇼?>>

<<아니 고만두어.>>

다 방색하였다. 더 말할것도 없이 돈이 들가봐서였다. 뽀이가 이 두 거지 같은 욕객에게서는 우려낼 건데기가 없다는것을 깨닫고 덜 좋아하는 기색으로 물러나갔다. 옷들을 다 주어입고나서 장준광이 뽀이를 불렀다.

<<계산서.>>

차물까지 모두 해서 90전이였다. 장준광이 1원짜리 한장을 꺼내주고 거스름돈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손짓을 하였다. 팁 10전이 좀 약소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또 뭐 안될것도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뽀이는 입을 실쭉하고 곧 제 위생복호주머니에서 돈 10전을 꺼내여 앞상우에다 탁 놓으면서

<<우린 이런 팁을 받을줄 모릅니다.>> 하고 비양스럽게 말하는데 그 말뒤에는

(다랍게 10전을 내놔? 체!) 하는 뜻이 포함되여있었다. 선장이가 미처 입을 열기전에 장준광이 재치있는 깎아치기 한대를 안겨주었다. 그는

<<오 그래? 거참 잘됐군!) 하고 앞상우에 거스름돈 10전을 얼른 집어 호주머니에 도로 넣으니 선장이를 돌아보고

<<자, 가자구.>>

말하고 태연스레 앞을 서서 걸어나가는것이였다.

선장이와 장준광은 감주먹은 고양이상을 하고 섰는 뽀이를 본체만체하고 현관까지 나오자 곧 배들을 그러안고 한바탕 웃어대였다.

(가소로운 뽀이놈!)

대무한을 보위하는 시민들의 사기를 고무하기 위하여 한구청년회관에서 연극공연들을 하는데 조선의용대에서도 단막극 하나를 올리기로 하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 선장이가 각본을 쓰고 리정호가 연출을 맡았는데 녀자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남성극>>이 되여버렸다. 그래도 <<서광>>-이름만은 그럴듯하였다. 극의 종말에 혁명군에게 통쾌하게 총살을 당하는 특무역을 담당할 사람이 마땅찮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물색하던 끝에 진경성이라는 중앙군교 광동분교(황포)출신의 친구 하나를 선정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대번에

<<못해 못해! 특무역은 못해! 용사역은 해두 특무역은 못해. 죽어두 못해. 못한다면 못하는줄 알아!>> 하고 머리를 송충이 대가리 내두르듯하여 그것을 설복하느라고 숱한 사람이 입을 낧리였으나 막무가내였다.

진경성이는 원 사람이 좀 여덟달이라 축에 못 들기는 하였으나 특무역에는 안성맞춤이였다. 언젠가 한번 선장이가 놀리느라고 진경성이에게 짐짓 물어보았다.

<<이봐 진경성, 자동차하구 자전거하구 어느게 빨라?>>

<<그야 물론 자동차가 빠르지.>>

선장이가 일부러 다른 친구들을 돌아보며

<<어 이것들 좀 보라구. 이치가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더 빠르다는거야!>> 하고 큰소리로 떠드니 다른 친구들이 알아차리고 능청스레

<<저런 팔삭둥이, 자동차가 빨라?>>

<<야, 이 바사기, 정말 자동차가 더 빠르냐?>>

눈짓코짓 다해가며 타박들을 주었다. 진경성이는 얼굴이 시뻘개져가지고

<<자동차가 더 빠르잖구! 자전거에다 비해? 더 빠르잖구!...>>

기가 나 제가 옳다고 우기는것이였다. 이런 위인이다보니 그 고집을 녹이기란 이만저만 힘이 들지가 않았었다.

장관의 연극을 청년회 무대에 올려놓고 관객석에 쪼그리고 앉아 보다가 선장이는 얼굴이 뜨뜻해나 몸둘바를 몰랐다. 형편이 없었다. 그러나 항일전쟁에 외국벗들이 참전하였다는 정치적의의를 평가해주어 이튿날 신문에 좋다는 극평이 자그마하게 한토막 실리기는 하였었다.

<<야 그 잘난 연극을 또 괜찮다구 했다야.>>

<<중국사람들이 워낙 대륙성이 돼놔서 야박스럽겐 굴잖아. 커치(客气)몰라, 커치?>>

<<남은 대사를 잊어먹구 쩔쩔매는데... 생전 어디 뒤에서 깨우쳐줘야 말이지 넨장할!>>

<<말 말아, 그놈의 대사가 어떻거나 중간 한장이 떨어져나갔지뭐야. 그걸 찾느라구 나두 땀을 뺐다야.>>

<<저런 태덩이!>>

<<아하하!... 뒤죽박죽이군!...>>

극평이 실린 신문을 들여다보며 받고치기로 지껄이고있을즈음 별안간 또 공습경보가 다급한 소리를 질러대였다. 하지만 대피호를 찾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조계는 프랑스제국주의를 덧들일가봐 폭격을 삼가하고 또 일본조계는 저희들의 재산이라고 아까와서(다시 또 와 살아야겠으니까) 폭격을 아니한다는것을 다들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저런저런... 저게 어느 바루야?>>

<<강안정거장 아니야?>>

<<비슷해.>>

<<저 지랄 좀 봐. 아주 막 미쳐날뛰잖나!>>

공중비적들의 광란하는 꼴을 바라보다가 경보가 해제되기가 바쁘게 대여섯이 주먹을 불끈 쥐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집중폭격을 받은것은 과연 강안정거장이였다. 오히려 역사건물은 별로 손상을 입지 않았으나 구내에 서있던 군용렬차가 참혹하게 당하였었다. 온데 송장천지고 부상병천지였다. 숱한 들것들이 동원되여 부상병과 일반인부상자들을 실어나르는데 선장이가 보니 그중의 한 들것에는 몽땅 끊어진 피투성이의 발목을 신음소리를 내는 그 임자와 함께 담아가지고 갔었다.

(저 발목은 갖다가 무얼 하려나?)

선장이가 괴이스레 여겼다. 아마 담아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경황 없는중에 그저 그사람의 소요물이니까 의당 함께 담아다주어야지쯤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역전에 꽤 넓은 잡목림 하나가 있는데 그속에 들여매였던 군마들이 사오십필 거의 전멸된 참상은 선장이를 뒤흔들어놓았다. 채 죽지 않은 말들이 땅바닥에 드러누워(고삐가 나무에 매인 까닭에 고개들은 쳐들고) 물똥 피거품똥을 내갈기며 안깐힘을 쓰고있는 모양은 차마 눈을 뜨고 볼수가 없었다. 자신의 꼭 죽을 운명을 모르고있는 말의 피발선 눈과 눈이 마주칠 때 선장이는 눈길을 피하였다. 일본강도에 대한 원한과 분격이 새삼스레 선장이 가슴속에서 룡트림을 쳤다.

1938년 10월 10일에 조선의용대가 정식으로 발족하였는데 대장은 중외에 위명을 떨친 김청산이고 제1지대 지대장은 내전에 참전하지 않으려고 련대장의 자리를 내놓고 중앙군교 광동분교에 전술교관으로 갔던 방효삼이고 그리고 제2지대 지대장은 중앙군교에서 선장이들의 소대장을 담임하였던 리익산이였다. 제1지대의 정치위원은 왕통이고 제2지대의 정치위원은 김학무인데 이 두사람은 다 선장의 군교때 동기동창이였다. 그러나 정치적식견은 선장이또래보다 까맣게 높은 사람들이였다. 이날 발대식에 참석한 대원들중에 만록총중 홍일점으로 녀대원 하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김위라고 하였다. 이때 중국영화계에서 <<영하황제>>라고 불리던 조선사람인기배우 김염의 방년 23세의 누이동생이였다. 후에는 녀대원이 많이 늘었지만 이날의 창립대원중에는 녀대원이 김위 하나밖에 없었다. 식순의 하나로 대원들에게 배치 하나씩 달아주었다. 거기에는 <<조선의용대>>라는 한문글자 다섯자와 Korean Voiunteer 라는 영어글자 한줄이 새겨져있었다. 이어 제2지대에 각각 군기가 수여되였다. 그 군기밑에 서서 대원들은 멸적의 기세 드높이 선설르 함으로써 민족의 사업에 충성 다할것을 다짐하였다.

그후 대세가 기울어져 부득이 무한을 철수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을 때 조선의용대의 열혈남아들은 물색없이 그냥 물러나지 않고 적들에게 탁탁한 선물을 남겨주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 전말은 조선의용대와 끊을래야 끊을수없는 인연이 있는 곽말약선생더러 좀 서술해주십시사고 하자 곽말약선생은 그 저서 <<홍파곡>>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일본조계는 원래 다 폭파해치우기로 결정하였던 까닭에 주민들이 싹 이사를 가버려 더군다나 묘지같이 황페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것은 거리의 담벼락들과 길바닥에다 콜타르로 굵게 크게 일본글표어들을 써놓은것이였다.

[병사들은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재벌들은 후방에서 호사를 한다.]
또는
[병사들의 피와 생명, 장군들의 금까치(무공)훈장]

이런 글귀들은 바로 안날 내가 지은것인데 오늘 벌써 담벼락에 나타나고 급수탑에 나타나고 또 길바닥에 가로누웠다.

이것은 마땅히 조선의용대벗들에게 치사를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철수를 불과 며칠 앞둔 시각에 동원되여 이 일을 도맡았었다. 그들은 제3청에서 찍어낸 <<대적군표어구호집>>과 내가 림시로 지은 몇가지에 근거하여 한구시내에다 있는 힘껏 써제끼고있는것이였다. 조선벗들이 나서 주었기에 내 눈으로 본바 온 한구시내가 글자 그대로 정신의 보루로 변해버린것이였다.

내 이 말은 결토 허풍을 떠는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것이다. 후에 우리는 일본포로들의 공술에서 알게 되였는바 적들은 무한을 점령한 뒤 그 표어들때문에 여간 골머리를 앓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들은 옹근 사흘동안 야단법석을 해서야 겨우 그 표어들을 다 지워버렸다는것이다. 그러나 거리에 써놓은것을 말끔히 지워버렸다고 해서 머리속에 이미 들어박힌것도 말끔히 가셔졌다고는 말할수 없을것이다.

나의 탄 자동차가 후성거리를 지날 때 표어를 쓰는 사람들은 일에 열중하여 여념들이 없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들을 지어 콜타르통, 뼁끼통들을 들고 또 사다리를들 메고 촌분을 다투며 일에 몰두하고있었다.

그것은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막이였다. 그러나 동시에 또 그것은 나를 가장 참괴하게 만들어준 일막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조선의용대의 벗들이였다. 그가운데는 단 한명의 중국사람도 끼여있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었다. 우리 중국에도 일본말을 아는 인재는 적잖을것이다. 일본류학을 한 학생이 줄잡아도 몇십만명을 될테지? 그런데도 무한이 함락의 운명에 직면한 이 위급한 시각 우리를 대신하여 대적군표어를 쓰고있는것은 오직 이 조선의 벗들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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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1/06 21:47:30

오늘은 3편이나 올려주셧군요..
덕분에 잘 보고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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