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51

더좋은래일 | 2023.11.07 11:13:25 댓글: 0 조회: 162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5571


51

서선장이 소속한 제1지대는 악양을 경유하여 막부산전선으로 진출하게 된 까닭에 강한관근처에서 기선에 올라야 하였다. 막부산은 호남성과 호북성의 성계를 이루는 장산으로 무창을 점령한 적군이 국도를 따라 장사로 내려오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군사 요충지대였다. 선장이가 맨나중에 배에 오르려고 막 발판에 한발을 올려디뎠을 때 아까부터 지팽막대를 짚고 멍하니 바라보고 섰던 백발이 성성한 로인 한분이 몇걸음 지척지척 앞으로 나오더니 선장이를 보고

<<당신네가 떠나가면... 우리는 어떻거라는거요?>> 하고 갈린 목소리로 묻는것이였다. 원망하는것 같기도 하고 나무라는것 같기도 한 그 말 한마디에 선장이는 부끄럽고 또 한스러워 어찌할바를 몰랐다. 자신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돌보지 않고 제 한목숨만 살겠다고 도망질을 치는 비겁쟁이로 생각되였다. 혼자 뒤에 떨어져가지고 들이닥치는 일본놈들과 한바탕 시가전을 벌리다가 죽어버렸으면 통쾌할것만 같았다.

<<로인님, 우리는 곧 다시 돌아올겁니다.>>

이런 말로 로인을 위안하는외에 다른 도리가 선장이에게는 없었다. 로인은 강바람에 허연 수염을 불리우며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전란간에 기대서서 차츰 멀어지는 고성락일(孤城落日)의 무한삼진을 바라보는 선장이는 통곡이 금세 목구멍에서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왜?..>> 하고 리정호가 와 어깨를 건드렸다. 선장이는 심란하여 대꾸를 아니하고 그저 고개만 저었다. 리정호가 선장이의 마음속을 헤아리고

<<이게... 전쟁이라는거여.>> 하고 위로하듯 말하는 그 말속에 두슨 철리가 담겨져있기라도 한것 같았다. 선장이가 침울한 얼굴로

<<또 남경 같은 도륙이 벌어지면 어떻거지?>> 하고 걱정하니 리정호는

<<아니아니... 그렇지는 않을거야. 한구에서 프랑스조계가 있으니까... 외국사람들의 눈을 꺼려... 그렇게는 못할거야. 못하잖구!>> 하고 잘라 말하는것이였다.

<<글쎄... 그렇다면야 오죽이나 좋을가.>>

<<두구보라니... 내 말이 맞잖나. 남경서처럼 그렇게 못해.>>

악양에서는 또 하나의 사기 떨어지는 소식이 제1지대 성원들을 기다리고있었다-<<광주 함락!>>

무창의 황학루와 더불어 세상에 그 이름 높이 난 악양의 악양루는 동정호의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드는 물목에 우뚝 서있는데 그 루다락에 올라서서 앞을 바라보면 하늘 끝간데까지 구불거리며 뻗어올라간 양자강의 은띠 같은 물줄기가 한눈에 안겨왔다. 참으로 웅대한 전망이였다. 그 악양루란간에 홀로 기대서서 선장이는 차탄해마지않았다.

(이런 큰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다니!)

(왜놈들이 광주를 점령하는데 하루밖에 안 걸렸다구?)

선장이는 입을 썼다. 무능한 국민당군대 장령들에 대한 경멸감으로 속이 곧 메스꺼울 지경이였다.

(밥벌레 같은 놈들!)

악양거리는 가게문들이 거의다 굳게 닫혀있어 죽음의 거리화하였었다. 적기가 빈번한 폭격만 해도 견뎌내기가 어려운데다가 적의 함정들이 양자강을 거슬러올라온다는 뜬소문-민족반역자들이 류포하는 류언비어까지 겹쳐 민심이 흉흉하여 모두들 가근방촌마을로 소개를 해버린것이였다. 이곳저곳으로 먹을것을 뒤지러다니는 개들까지 갈배대가 앙상하게 드러났는데 빈 가게방 빈지짝밑으로 새까만 고양이가 새노란 눈으로 바깥동정을 살피는 모양은 공연히 보는 사람의 몸에 소름이 끼치게 하였다.

악양서부터 막부산전선까지는 륙로로 도보행군을 해야 하는 까닭에 군사물자를 실어나를 말 몇필을 우선 구해야 하였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로 말을 사러 나가는데 선장이도 뽑히여 따라가게 되였다. 몇몇 기병과출신과 포병과출신이 말을 잘 아는 까닭에 주역들이 되고 선장이 같이 말을 잘 모르는축들은 보조원노릇을 하였다. 중국은 자래로 남선북마(南船北马)였으므로 강남에서는 주요한 교통수단이 배였다. 말은 북방에 비하면 퍽 희귀한편이였다.

여러군데 돌아다녀보았으나 말이 시원찮아 맘에 들지 않거나 또는 말은 맘에 들어도 값이 너무 틀려 흥정이 되지를 않아 공연히 반나절이 좋이 헛다리품들만 팔았다.

<<제기, 천리마를 구하는거야? 짐이나 싣구 다닐 복마를... 아무런거면 어때!>>

<<가만두어라, 기병대장이 되구싶은 모양이다.>>

<<부죤뉘? 챠빠예브?>>

<<아니, 칭키스칸.>>

<<쥐뿔도 모르면서... 입들이나 닥치구 좀 가만있어.>>

<<이제 그놈... 순 도둑놈이다. 300원이 뭐야 글쎄? 날도둑놈 같으니!>>

<<칼을 들구 저 고개밑에 가 앉았으라지.>>

<<국민당군대에 걸렸으면... 눈에 불이 번쩍 나게 따귀를 떨린지두 벌써 옛날일게다.>>

<<따귀만?... 말은 거저 끌어가잖구?>>

<<그러게 말이지.>>

<<우리가 점잖게 대해주니까 넘봐서 그러는거여.>>

<<그런건 처음부터 으르딱딱걸여놔야 한다니까.>>

대여섯이 씩둑꺽둑 지껄이며 다음 동네에를 오니 오는 날이 장날로 그 동네 리사무소 앞마당에서는 마침 도시사람들로는 좀체로 보기가 어려운 행사가 벌어졌었다.

한데다가 단을 모으고 또 휘장을 둘러치고

<<입대하는것은 영광이다!>>

<<정부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향응하자!>>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장위원장을 옹호하자!>>

이런따위의 표어들을 죽 붙여놓고 대위 징병관이 립회하에 제비뽑기들을 하고있었다. 징병은 적령자를 전부 뽑는게 아니고 그중 일부만을 뽑는 까닭에 제비를 뽑히는것이였다. 각탁우에다 큰 꽃병만한 첨통 하나를 올려놓고 그속에다 첨대 같은것을 가뜩 꽂았는데 그것이 곧 제비였다. 시골생장의 적령자들이 대개는 얼굴이 해쓱해져가지고 부들부들 떨며 조심스레 그 운명의 대가지들을 뽑는데 개중에는 씁쓸한 얼굴로 대수롭잖게 덤썩 뽑는축도 더러는 있었다.그런축들은-짐작하건데-농촌구석에서 억년 해보았자 그식이 장식으로 신통할게 하나도 없는 농사를 짓고있느니 차라리 군대에 나가 총을 메고 우쭐렁거리며 바깥바람을 좀 쐬여보는것도 해롭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였다. 사랑하는 아들이 불행하게 <<응(应)>>자를 뽑았다고 질금질금 눈물을 흘리며 앞치마자락으로 코물을 닦는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병정이 되여보려던 기대가 어그러져

<<제기.>> 하고 뒤통수를 긁으며 돌아서는 적령자도 있는 가운데

<<자 300원! 현금 300원... 누가 우리 아들 대신 나가겠나?>> 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가지고 왔던 돈뭉치를 내흔드는 살림이 오붓한 집 아버지도 있었다. 이때 잘사는 집들이 장정을 사서 제 자식 대신 내보내는것은 합법적이였다. 그리고 아들을 여러 형제 둔 못사는 집에서 몸값을 받고 아들 하나를 대신 내보내는것도 보통 있는 일이였다. 국민당통치구역다운 징병제도였다. 그런데 비참하것은 일단 뽑히기만 하면 압송되는 죄인처럼 모두 한줄에 묶여 가야 하는것이였다. 압송하는것은 물론 징병관과 그 수하의 무장한 병사들이다. 도타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선장이는 불현듯 두보의 시 한귀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신혼을 못 잊어 말고
어서 군대에 나가주소서

비참은 하여도 이 군대에는 나가야 하였다. 군벌들끼리 서로 잡아먹기를 하는 전쟁이 아니고 이족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한 민족전쟁이기때문이다. 생리사별하는 혈육들의 울음의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선장이가 이와 같이 생각을 하였다.

제1지대가 악양을 떠난 다음다음날 초경에 남강교에 다달아보니 무창에서 장사로 통하는 국도는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불빛으로 대도시의 번화한 거리처럼 휘황찬란하였다. 낮에는 국도를 따라 저공비행을 하여 목표물을 이 잡듯하는 적의 비행기를 피하느라고 쥐죽은듯 위장그물을 들쓰고 숨어있어야 하는 군용자동자들이 어둠의 장막만 내리덮이면 일시에 살아나가지고 길들을 조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괴이한것은 그 숱한 자동차들이 싣고 온 탄약상자를 어느 일정한 장소에 부리는게 아니라 전선인 막부산방향에서 후방인 평강방향으로 량쪽 길섶에다 줄을 대다싶이 부리는것이였다. 선장이가 괴이스레 여기여 앞서가는 방효삼을 따라잡아가지고

<<대장동무, 저건 어쩌자구들 저러는겁니까?>> 하고 물어본즉 방효삼은 말이 없이 그저 쓴웃음만 웃었다.

<<까닭을 모를 일이 아닙니까?>> 하고 선장이가 잼쳐 물으니 방효삼은 그제야

<<뒤걸음질을 치며 쓰러지는거지.>>

말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미리 퇴각할 준비부터 한단 말입니까?>>

<<이 부려놓은 탄약들이나 다 쓰구 퇴각을 하면 또 괜찮게.>>

<<그 지경입니까?>>

방효삼은 서글픈 얼굴을 하고 더 말을 아니하였다. 국민당군대의 전투력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길가에는 버리고 간 비집들이 숱하였다. 사람은 달팽이가 아니므로 피난을 가도 집을 떼메고 가지는 못하였다. 숙영을 하는데 선장이네 분대에 차례진것은 주인 없는 지물전이였다. 전방에를 들어가보니 주인이 쓰고 사는 집뿐만아니라 재산까지도 즉 지물까지도 다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었다. 원래는 자물쇠가 잠긴것을 어느 무지스러우 손이 비틀어뜯고 들어와 벌써 하루밤을 드새고 간 모양으로 방바닥에는 침대 대신, 요 대신 깔고 잔 백로지축들이 랑자하였다. 집안은 어디를 가나 온통 종이천지였다, 새하얀 종이우에 시커먼 신발자국들이 어지러이 난것을 보는 선장이의 마음은 흡사 마구잡이에게 릉욕당한 처녀의 알몸을 보는것과도 같이 애처로왔다. 아까와 가슴이 쓰릴 지경이였다.

새벽같이 또 행군을 시작하여 전선으로 향하는데 길가에 군데군데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첨성대모양의 포대들이 서있었다(첨성대는 신라시대 천문대로서 경주에 있다). 포대와 포대 사이의 간격은 오륙백메터씩인데 마주난 총으로 맞바라보게 되여있어 개미새끼 한마리 새여나가지 못하리만큼 완벽한 봉쇄선을 이루고있었다.

<<저 포대들은... 뚱딴지같이... 무어하는거야?>>

<<글쎄 말이야.>>

<<그래두 무슨 용도가 있어서 세웠겠지? 한두개도 아니구 저렇게 숱하게... 끝이 없구먼그래.>>

대원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귀결에 듣고 앞서 가던 방효삼이 뒤를 돌아보고 웃었다.

<<저게 대체 무어하는겝니까? 대장동무?>>

<<그게 바루 장개석의 걸작이요. 이른바 포대정책의 산물이요. 쏘베트구역을 봉쇄하느라구 세웠던거요. 이 일대가 바로 내전시의 상악공(湘鄂赣)혁명근거지였소.>>

<<이 지랄을 하느라구 일본놈들이 나라를 떠가는것두 내버려두었었구먼요.>>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받으니 방효삼은

<<먼저 안부터 다스린다는게 당시의 구호였으니까.>> 하고 한마디 주를 달았다.

<<망할 늧을 했었구먼요.>>

<<그러지만 않았더면... 오늘날 이 지경으루까지 몰리지야 않았겠지.>> 하고 방효삼은 괴탄을 하였다.

낮전에 오른손편 언덕배기 잔산밑에 포실해보이는 촌락 하나가 바라보였다. 대오는 일단 거기 들어가 숙영을 하고 그리고 지대장은 정치위원과 함께 부근의 국민당군대 군단사령부를 찾아가 일을 의논하기로 작정이 되였다. 대오는 큰길을 벗어나 촌길로 잡아들었다. 무심히 앞을 바라보니 마을뒤 잔솔이 듬성등섬한 잔산마루터기에 옹긋쫑긋 내민 사람들의 머리가 마치 호박산에 호박 열리듯하였었다. 그 사람들은 마루터기에 죽 엎드려 고개만 쳐들고 저의 마을를 향하고 들어오는 대오의 동정을 살피고있는 모양이였다.

<<대체 저것들이 저기서 무얼 하구있는거야?>>

<<우리를 구경하는 모양인가?>>

<<우리를 왜놈의 군대루 잘못 안게 아니야?>>

<<설마...>>

<<그럼?...>>

까닭들을 몰라하다 지꿎은 장난을 일쑤 잘하는 오쎌로가 짐짓 대오앞에 나서서 우르르 쫓아가는 시늉을 하니 잔산마루터기에 엎드려있던 사람들이 질겁하여 와 떼도망을 치는데 그 모양이 흡사 무엇에 놀란 떼꿩이 깃들을 치며 날아나는것 같았다.

연도에 대문짝만큼씩한 포고들이 나붙은것을 보며 왔는데 그 내용인즉 제9전구사령장관 진성이가 관하부대들에게 인부를 강제징용하지 말라고 신칙한것이였다. 위반하는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명시되여있었다. 그러나 전쟁판에 그런 포고에 찔끔하여 인부를 강제징용 못할 군대는 거의 없었다. 부적을 붙이거나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를 외는것쯤으로 귀신을 막아내지는 못하는 법이였다. 이때의 형편이 일단 인부로 끌려가기만 하면 몇달간 고생하다가 놓여나는것쯤은 약과요, 까딱하면 목숨마저 부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니 백성들이 군복 입은 사람만보면 상궁지조가 되는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대오가 마을안에를 들어와보니 어느 집에고 남아있는것은 모조리 늙은 녀자와 아이들뿐... 끌어다 부릴만한 장정은 하나도 없었다(장정은 모두 뒤산에 피신하여 수시로 떼도망칠 준비들을 하고있었다).

(허구한 날 이러구서야 사람이 어떻게 산담?)

선장이는 마을사람들의 고된 운명에 만강의 동정을 기울였다.

집들을 노나드는데 보니 담벼락 여기저기에 빨간 물감으로 또는 하얀 석회로 굉장히 크게 써놓은 표어들이 눈에 띄웠다.

<<장개석을 사로잡아라!>>

<<백색비적을 소탕하자!>>

<<쏘베트정권 만세!>>

<<적색비적을 토멸하자!>>

<<귀순하면 전도가 있다!>>

내전시기에 적아 쌍방이 들락날락하며 써놓은것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것이였다.

내전이 좀 뜨음해지니 이번에는 또 항전, 죽어나가는것이 백성이였다!

강제징용이 무서워 인가에 붙지 못하고 한데 나가 해를 지우는 딱한 사람들을 안심시켜 데려들어오는 일이 우선 급하여 정치위원은 숙영지에 남아가지고 그 일을 알음하기로 림시분공이 되였다. 지대장만 군단사령부로 가는데 선장이가 지명이 되여 부관의 역을 담당하게 되였다.

방효삼이 군단장을 만나 협동작전에 관한 일을 타협하는 동안 선장이는 부관실에서 대령하게 되였다. 끼끗하게 생긴 군단장의 대위부관이 붙임성 있게 선장이를 보고

<<우리 여기 일본포로병 둘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시겠소?>> 하고 말을 내여 선장이는 선뜻

<<일본포로요? 한번 좀 봅시다.>> 하고 흥미를 가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아직 자세한건 모르는데... 금명간 장관사령부루 올려보낼거요. 아무튼 데려다 구경이나 한번 하시우...>>

말하고 부관은 곧 호위병을 불렀다.

<<그 일본포로... 밥들 먹였나? 그럼 곧 가서 이리 데려오두룩.>>

호위병이 득돌같이 다 데리고 들어온 두 일본포로병은 상등병 하나와 일등병 하나인데 풀들이 죽어서 파김치가 된데다가 여러날 면도질을 못하여 수염들이 텁수룩한게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걸상을 밀어주고 앉으라고 하니까 어려워서 감히 앉지 못하고 주밋주밋하다가 선장이가 일본말로

<<오가께나사이(앉으시오).>> 하고 손짓을 하니 두놈은 귀에 익은 저의 나라 말에 귀들이 번쩍 띄우는 모양으로 여공불급하게

<<하이하이.>> 하고 허리들을 굽실거리며 걸상끝에 엉뎅이를 조금씩 붙이는것이였다.

선장이가 일본말로 말을 묻고 또 포로들이 순순히 그 묻는 말에 대답하는것을 보고 선장이옆에 앉았는 주인 부관과 문앞에 섰는 호위병이 다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의 눈에는 한낱 부관에 불과한 선장이가 갑자기 대단한 인물로 보이는 모양이였다. 최소한 일본류학생으로 보인 모양이였다.

<<저 상등병은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입대하기전에는 나고야시에 있는 어느 재봉회사의 기능공이였구 그리고 저 일등병은 스물세살인데 나가노현 어느양계장주인의 막내아들이라오. 목숨들을 붙여주느냐구 물어서 그 점은 안심해두 좋다니까 그렇다면 무어나 시키는 일을 다하겠노라구 좋아들 하오.>>

선장이의 설명을 듣고 주인 부관은 연송 고개를 끄덕이고 또 호위병은 입을 딱 벌렸다.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의 나라를 쳐들어온게 좋은일이라구 생각하는가, 아니면 나쁜 일이라구 생각을 하는가?>>

<<글쎄올시다. 저희야 그런걸 잘 모릅지요... 상관이 시키는대루 했을뿐이니까요 녜.>>

<<우리한테 붙들리면 코를 베고 눈을 도려낸다구 상관이 말하잖던가?>>

<<녜. 말합디다, 상관이 그렇게 말하니까... 저희야 무얼 압니까... 꼭 그런줄만 알았습지요 녜.>>

<<결혼들은 했는가?>>

<<아직, 아직 미장가전입니다.>>

<<저 사람은?>>

<<저두 아직... 멀었습니다.>>

<<좋아하는 녀자들은 있을테지?>>

두 포로병은 쑥스러운듯 서로 한번 쳐다보고 곧 고개들을 숙이더니 대답을 아니하였다.

<<집생각은?...>>

<<집생각은?... 안하는 날이 없습니다.>>

<<저두 마찬가집니다. 밤낮 집안식구들의 꿈을 꿉니다. 한달음에 뛰여가고싶은 생각뿐입니다.>>

방효삼이 타합을 마치고 작별을 고하여 군단장이 손님을 바래느라고 뒤따라나왔다. 밖으로 나가자면 부관실을 거치게 되여있었으므로 앉아있던 주인 부관과 손님 부관이 다같이 얼른 일어섰다. 두 포로도 황망히 일어나 한옆으로 비켜섰다. 주인 부관이 얼른 군단장에게 다가가 귀가에 대고 몇마디 속살속살하더니 배가 뚱뚱한 군단장이

<<좋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선장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선장이는 차렷자세를 하고 까딱없이 서있었다.

<<이름이 뭐지?>>

자신에게 말을 묻는 군단장이 강서사람이것을 그 말씨에서 선장이는 선뜻 짐작하였다.

<<서선장이라구 합니다.>>

<<몇살이지?>>

선장이가 나이를 대였다.

<<중앙군교졸업생인가?>>

<<녜 그렇습니다.>>

<<몇기?>>

선장이의 대답을 듣고 군단장은 바로 방효삼을 돌아보고

<<방대장, 어떨가요 저군을 우리게 좀 빌려주시면? 일본말에 능통한 인재가 없어 곤난이 적잖소이다.>> 하고 의논을 걸었다.

<<좋두룩 하시지요.>> 하고 인심 좋게 허락하여 선장이는 팔자에 없는 <<수양아들>> 노릇을 하게 되였다. 선장이가 방대장을 모시고 일단 숙영지에 돌아갔다가 행장을 수습해가지고 다시 군단사령부로 오니 군단장의 부관-모래사자 사가성가진 부관이 반색을 하였다.

<<잘 왔소 잘 왔소. 나하구 둘이 한방을 씁시다. 어서 내려놓으시오. 침대두 다 준비해놓았소.>>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서 방효삼과 선장 사이에 아래와 같은 말이 주고받아졌다.

<<다른 동무를 보내시지요. 전 싫습니다.>>

<<군단장이 동무를 지명해 달랬는데 다른 동무를 바꿔보내면... 어디 인사가 되우?>>

<<남들은 다 일선으루 나가는데 저 혼자만 뒤에 떨어지면 제 체면이 뭐가 됩니까?>>

<<이런 일에 체면이 왜 있어? 이것두 중요한 혁명적임무니까 여러 말 말구 접수하시오. 그러구 내 보기에도 동무가 꼭 적임자요. 군단장이 바루 봤거든...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단 말이야.>>

사부관이 주인노릇을 하느라고 선장이에게 여러가지로 친절을 베푸는중에 시골구석에 보여줄만한 명승고적도 없고 하여 생각다 못해 나머지 사령부에서 초간히 떨어진 교회당으로 선교사를 보러 가지고 말을 내였다.

<<영국사람인데 중국말을 아주 썩 잘하우. 내 두어번 가 만나봤는데 인품이 그럴듯하더군.>>

<<아무려나. 그렇지만 좀 싱겁지 않소. 볼일두 없이 덜레덜레?>>

<<싱겁기는! 서형은 신앙이 뭐요... 예수교? 천주교...>>

<<난 불교요.>>

<<불교? 그런 안되겠구먼!>>

<<아니요, 웃느라고 한 소리요.>>

<<그럼?...>>

<<난 아무 교두 안 믿소. 무슨 교든 교라는건 도시 질색이요.>>

<<나하구 같구먼. 나두 교하구는 담을 쌓았소. 내가 믿는건 재록신 하나밖에 없소.>>

<<재록신... 아하하!...>>

<<그러지 말구 우리 예수교를 믿는체하구 한번 가봅시다.>>

두 가짜교인이 문을 두드리니 바로 선교사 본인이 조용히 나와 맞았다. 마흔의 고개를 넘어선 전형적인 금발의 앵글로색슨이다. 테블우에 등피를 맑게 닦은 탁상남포가 놓였는데 그 포근한 불빛에 정갈한 방안이 한결 더 안온해보였다. 전쟁통에 이런데도 있었는가싶었다. 사부관이 그럴사하게 선장이를 소개한 뒤 주객이 마주않아 한담하였다. 선장이가

<<이렇게 물정이 소현한 때... 선교사님은 귀국할 생각을 안하십니까?>> 하고 물어보니 선교사는 얼굴에 강개한 빛을 띠며

<<신도들을 놔두구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신도들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을겁니다.>>

말하고 자비롭게 두팔을 벌리며 경건한 눈으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우러러보았다(천정이 가리여 하느님이 직접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시... 일본군이 들어온다면... 조용할가요?>>

<<오 그건 념려없습니다. 우리는 대영제국의 국민이니까 일본군도 함부루 건드리지 못합니다.>>

선교사가 강한 긍지심을 가지고 대영제국을 들추는 바람에 선장이는 말머리를 돌렸다.

<<선교사님, 고국을 떠나 이렇게 이역만리에 와 사시기에 고적하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고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부관이 갈마들어 선교사와 수작하는 동안 선장이는 방안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생각해보았다. 그 살기 좋은 영국을 놓아두고 이런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고 다방도 영화관도 다 없는 락후한 고장에를 와 사는 놈의 심리를 암만해도 알수가 없었다. 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의 침략도구노릇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사부관하고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들으니 선교사는 전지를 사용하는 라지오를 가지고있어서 국제정세에도 밝았다. 런던의 BBC방송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꼭꼭 듣는다는것이였다.

선교사를 방문하고 돌아와서도 사부관은 흥이 미진하여 선장이에게 멜가방속의 사진들을 꺼내보이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부관은 항주사람이였다. 가죽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서호가에서 찍은 자기 사진도 보여주고 또 제 련인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사부관의 눈에는 클래오파트라로 보일지는 몰라도 선장이 눈에는 녀자의 인물이 그닥잖아보였다. 그러나 아주 현대적이고 또 반항적인 인상을 녀자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사진을 번드쳐보니 그 뒤등에 녀자의 글씨로 적혀있기를

공허공허 모두다 공허

이와 같이 적혀있었다. 선장이가 적이 웃으며

<<모두가 공허? 뭐가 모두다 공허란 말이요?>> 하고 사부관을 쳐다보니 사부관은

<<이 세상이 모두다 공허란 말이지.>>

정색하고 대답을 하였다. 선장이가 빙그레 웃으니 사부관은

<<왜 철학적이라구 생각잖소?>> 하고 자랑스레 묻는것이였다.

<<모두다 공허라면... 드럼 사형 당신두 공허요?>>

사부관은 선뜻 대꾸를 못하였다. 선장이가 잼쳐

<<모두다 공허라면 그럼 그 공허가 지금 전쟁하고있소? 우리가 모두다 유령같은 존재란 말이요?>>

묻고 하하 웃으니 사부관은 열적은듯이 뒤통수를 긁적거리는것이였다.

일본병정 두어놈을 사로잡은데 재미를 붙인 군단장이 장마다 망둥이 날줄 알고 미리 선장이를 신문관으로 붙들어두었는데 그후 산 일본놈은 고사하고 죽은 일본놈은 하나 생기는게 없어 선장이는 군단사령부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게 되였다. 포로의 혀바닥을 통하여 적정을 료해하자는 타산인데 그 혀바닥이 생겨주지를 않으니 답답한노릇이였다.

국민당군대의 장령들과 고급장교들이 전방에서 후방보다 더 잘 먹는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였다. 사실상 군단사령부나 사단사령부에서 먼 후방 도시로 장을 보러 다니는 자동차들이 길에 그칠날이 없었다. 군단사령부에서는 사부관이나 서선장 따위의 위급장교들이 먹는 상에도 언제나 꼭꼭 볶고 지지고 찌고 튀긴 반찬이 여섯 접시에 국 한그릇이 놓였었다. 조선의용대의 식사에 비하면 하나는 하늘이고 하나는 땅이였다. 조선의용대에서는 감자고 무우고 두부고 당면이고 또는 시금치고 고기고 다 한데 넣어 부글부글 끓이여 잡채도 아니고 전골도 아닌 뒤범벅 괴물탕을 만들어 먹었다. 그 괴물탕을 퍼담은 함석양푼을 맨땅바닥에 놓고 네댓씩 둘러앉아 퍼먹는것이 조선의용대의 식사였다. 헐벗고 굶주리는 겨레에 대하여 량심적으로 거리낄게 하나도 없는 민족해방전사들의 식사-풍찬로숙의 <<풍찬>>이였다. 군사령부에 옮겨온 뒤 선장이는 식사때마다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는 당지농민들의 정경이 머리속에 떠올라 마음이 언짢았다. 어린것들이 손에 들고 다니며 먹는 과자붙이라는것도-자세히 들여다보니-모두 고구마를 썰어 말린것이였다!

두보의 시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광채를 잃지 않았었다.

주문안에서는 술과 고기 썩어나고
길거리에는 얼어죽은 송장 늘비하다

이날 다저녁때 사부관이 방으로 뛰여들어와 호들갑스럽게 소식을 전하였다.

<<여보 서형, 당신네 사람들이 대사평에서 적군과 부딪쳤다오. 통성으로 내려오는 적들과 맞붙었다오. 이제 막 보고가 올라왔소.>>

망국노의 쌓인 한을 풀어보려는 조선의용대가 중국땅 막부산밑에서 숙적 일본강도군대와 결사전을 벌인것이다. 선장이의 마음은 금세 새매로 변하여 대사평싸움터를 향해 쏜살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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