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59

더좋은래일 | 2023.11.11 19:28:31 댓글: 0 조회: 213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6781


59

이날 제1, 제2, 제3 혼성지대 전원은 한시간 앞당겨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서둘러 끝내는 길로 또 부랴부랴 행장을 수습하여 길떠날 차비들을 하였다. 지대본부에 큼직한 공물상자 서넛이 있었는데 그것들도 드다르기 쉽게 얽어매가지고 몇 사람씩 패를 갈라 번갈아가며 목고를 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전원이 마을밖 와지에 집합을 하자 방지대장이 정식으로

<<오늘밤 우리는 전원 보초망을 뚫고 해방구로 넘어간다.>> 하고 선포를 하는데 그 의용은 엄숙하기 짝이 없었다.

모색이 창연한 가운데 전대가 숙연하여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중에 선장이옆에 서있던 키가 호리호리한 영화배우출신의 최채가 긴장한 동작으로 코허리의 안경을 바로 썼다.-행군의 시작되였다.

길잡이는 팔로군(기실은 제18집단군)총사령부에서 지하련락망을 통하여 파견해온 조선동지-김봉구 일명 호철명이였다. 달도 없고 별빛도 안 보이는 침침칠야에 의용대는 모두 세겹의 보처선을 통과해야 하였다. 어둠속에 은신하고있는 보초들이 느닷없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군호를 물을적마다 선두에 선 김봉구는 웅글고 두드러진 목소리로 대답하는것이였다.

<<흐렸다 개였다!>>

그것이 바로 이날 밤 방병훈집단군 적군의 군호였다. 관군의 철비를 열수 있는 합법적이면서도 비법적인 무형의 열쇠였다.

밤새도록 기구한 산길을 더듬고 또 더듬은 끝에 마침내 먼동이 텄다. 그리고 얼마 오래지 않아 동녘하늘에 등적색구름에 싸인 아침해가 서서히 떠올랐다. 선장이는 그제야 비로소 산아래 골짜기에 100여명도 더되는 초록색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의용대가 서있는 산등성이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고 또 모자를 흔드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오, 저것은 팔로군. 우리의 마중을 나온 팔로군이다!)

선장이는 난생처음 자유로운 땅을 디디였다. 왜나면 나의 조국이 망하던 그해에 그의 어머니도 겨우 열다섯살 홍안의 부끄럼 타는 소녀였으니까.

(아, 태항산! 세상에서도 빈궁하고 또 세상에서도 부요한 태항산아. 우리는 그예 네 품속에 뛰여들었다!)

긴장하게 건밤을 세우고나니 죽을 지경 고단하여 다들 밥술을 놓는 길로 촌사무소 뜰안에 가로세로 쓰러져가지고 세상모르고 잠들을 잤다. 실컷 자고 눈을 떠보니 해가 한낮이라 목이 타는것같아 말라 끓여식힌 물을 군용컵으로 셋소처럼 들이켰더니 비로소 정신기가 돌았다. 선장이는 박문이하고 둘이서 미역을 감으러 떠났다. 세면주머니 하나씩을 들고 마을을 나와 개울가에 다달으니 경치가 아름답기라니 금강산과 거의 맞먹을 정도다. 개울물은 산중의 공기처럼 맑고 또 깨끗하였다. 그러나 물이 너무 얕아 발목이나 겨우 잠길가... 시원히 미역을 감긴에는 적당찮은것이 흠이라면 흠이였다. 두 사람이 개울가의 오솔길을 따라 슬렁슬렁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가 다행하게도 깍아지른듯한 석벽밑에 아주 리상적인 목욕탕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개울을 향한 면을 돌로 쌓은 반천연, 반인공 타원형목욕탕으로서 크기는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잠그기에 알맞춤하였다. 그리고 물은-맑기가 곧 레몬사이다였다! 두 사람은 너무도 기뻐 땜배인 옷들을 후닥닥 벗어팽개치고 다짜고짜로 뛰여들었다. 심장이 막 얼어드는것처럼 쩡하였다...

5분이 채 못되여 그 맑던 레몬사이다는 뜨믈빛갈의 비누사이다로 변하였다. 금세 감은 머리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박문이가 두눈을 씀벅거리며 흥이 나가지고 건의를 하였다.

<<야, 이거 기분이 정말 좋구나. 우리 징건히 들어앉아 로독을 좀 풀자구.>>

<<두말하면 군말이지. 난 이런 물에 빠져죽어두 한이 없다니까.>>

역시 그세 감은 머리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짝패-선장이가 두 눈을 씀벅거리며 시원스레 동의를 하였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그리 오래지가 못하였다. 미구에 나이 지긋해보이는 촌사람 하나가 빈 물통이 대롱거리는 멜대를 메고 이쪽으로 걸어오는것이 눈에 띄웠다. 그 사람은 선장이들의 화청지-양귀비의 목욕탕-앞까지 오자 깜작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뿐아니라 멜대를 내려놓을것마저 잊어버린 모양이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 무슨 영문을 모르는 까닭에

(시골뜨기란 하는수 없군!)

속으로 못마땅히 여겼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번개같이 깨달았다.

(아불싸!)

두 사람의 향락을 누리던 나머지에 빠져죽어도 한이 없겟다던 그 화청지... 그것은 마을사람들이 기대여 생명을 유지하는 샘터였다!

두 사람은 허둥지둥 비누물에서 뛰여나와 물이 흐르는 몸을 닦을 겨를도 없이 황망히 옷들을 주어입고는 백배사죄를 올리고 또 올리고 하였다. 그 사나운 몰골을 촬영기로 촬영을 하였다면 아마 채플린도 탄식을 하고 제가 졌다고 일등 희극배우의 영예를 물려줄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그 일장의 희극도 그후에 잇달아 빚어낸 가지가지 희극의 한낱 서막에 불과할줄이야.

10여일후,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전이다. 팔로군총사령부소재지인 태항산중의 동용거리 자그마한 광장에서는 심상찮은 집회가 열렸다.

<<조선동지 환영대회.>>

대회에 참가한것은 총사령부직속의 각 기관 일군들외에도 일본인, 윁남인, 필리핀인 등이 있어서 마치 무슨 국제적성질의 대회와도 같았다. 그렇지만 그 집회를 가진 목적은 국민당통치구역에서 봉쇄선을 뚫고 해방구로 들어온 조서의용대를 환영하기 위한것이다.

대회에서 환영사를 한것은 팽덕회동지였다. 선장이는 팽덕회동지의 검박한 옷차림과 강의한 용모 그리고 호매하고도 힘진 말소리에 넋을 놓다싶이 하였다. 공경하는 마음이 샘솟듯하였다.

<<...나는 18집단군 70만 장병을 대표해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우리 무기고의 문은 여러분앞에 활짝 열릴것입니다. 맘대루 고르구 맘대루 가져가십시오...>>

체구가 우람스러운 정치부주임-라서경동지는 선장이는 이날 처음 보았다.

환영대회가 끝이 나자 예정대로 의용대는 무기고로 가 신입대원들에게 나눠줄 무기를 골랐다. 그런데 그 무기고의 바로 이웃은 문틀만 있고 문짝이 없는 군량창고였다. 그 허술한 창고안에 통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중간을 널빤지 두어쪽으로 간막이를 건너질렀었다. 그 상징적인 간막이의 량쪽이 다 매한가지 통옥수수인데도 거기에 세워진 패말들은 각기 달라 하나에는 <<군량>>, 다른 하나에는 <<사료>>라고 뚜렷이 표시가 되여있었다. 의용대-해방구의 <<신입생>>들은 제각기 두석자루씩의 총을 메고 그앞에 서서 서로 돌아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놀랍기도 하고 또 우습기도 해서였다. 그래도 선장이는 감동적인 친절감을 느꼈다.

(과연 팔로군이 다르긴 하구나.)

(오직 고매한 품격을 지닌 인민의 군대만이 간고한 생활을 달게 받을수 있다.)

오후에 팽덕회장군은 조선의용대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네 사람앞에 고기반찬 한 양푼씩. 그리고 밥은 강조밥이고-술은 없었다. 그리고 <<신입생>>들을 정말 놀라게 한것은 <<연회>>에서 쓰는 식기와 수저 따위를, 밥공기와 저가락을, 고하를 막론하고 다 각자가 지참을 해야 하는것이였다. 국민당군대에서는 사단사령부나 려단사령부 같은데는 말할것도 없고 적군과의 상거가 불과 몇마장 밖에 안되는 전선의 대대본부와 련대본부에서도 장교들이 술과 고기에 묻혀 사는것은 선장이는 싫증이 나도록 보아왔었다. 그래서 다시한번 가슴속깊이 느꼈다.

(이거야말루 진정 혁명을 하는 군대로구나.)

의용대는 동욕거리에서 륙칠마장 떨어진 상무촌이라는 큰 부락에 자리잡게 되였는데 그 같은 부락에 또 다른 단위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곧 태항산 로신예술학교였다.

이날 저녁무렵 날씨가 여간만 시원하지 않았다. 선장이는 리정호, 오쎌로, 장준광들과 함께 시내가를 거닐었다. 그런데 마침 중도에서 이 역시 시내가를 산책하는 로신예술학교의 몇몇 녀학생과 마주치게 되였다. 그녀들도 거지반 다 자신들처럼 대도시에서 왔다는것을 알고있었기에 그들은 일부러 지꿎게 먼산을 바라보며 불렀다-

안해는 랑군을
전선으로 떠나보내네...

이때 널리 불리던 선성해의 노래중의 한대목이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리. 그 몇몇 고대의 녀걸 아닌 20세기의 목란들이 꼬물도 수집어하는 티가 없이 서로 눈짓을 하더니 아주 당당하게 맞불러댈줄을-

어머니는 아들더러
왜적을 치라시네...

선장이들은 손을 바짝 들었다. 과시 그녀들은 그들 <<신입생>>들의 선배임이 틀림이 없었다.

사람이란 생활수준이 높아지는것을 깨닫는데는 더디여도 낮아지는데는 민감한 모양이였다. 팔로군에서는 입쌀은 고사하고 좁쌀도 모자라 통옥수수를 삶아먹는 날이 계속되였다. 그리고 콩나물, 숙주나물은 고사하고 소금도 없어서 산나물맨삶이를 끼니마다 먹어야 하였다. 그제야 선장이는 지난날 자신의 식도관(食道观)이 얼마나 유치하고 천박하였는지를 깨닫고 복에 겨워 저지른 잘못을 뼈아프게 뉘우쳤다. 그리고 신사군의 그렇게 훌륭항 취사관리원을 <<비타민A-Z>>라고 타박한 죄를 톡톡히 받아싸다고 시원스럽게 자인을 하였다.

조선의용대가 태항산으로 들어온 뒤 얼마 오래지 않아 진기로예변구정부 즉 산서, 하북, 산동, 하남 변구정부가 건립이 되여 의용대는 그 경축대회에 참가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변구정부 초대의 주석은 양수봉동지인데 그는 남이 말하는것을 들을 때면 손바닥을 쪽박같이 오그려가지고 귀바퀴에 대고 유심히 듣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선장이는 양주석이 가는귀가 먹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이날 밤의 산골짜기는 설맞이기분으로 흥성흥성 들긇었다. 수없이 줄닿은 홰불들... <<양걸춤>>-중국식농악무-에 성수가 난 사람의 물결... 이것이 정말로 사면을 적군에게 에워싸인 적후사령부소재지 동욕이란 말인가-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경축기간에 로신예술학교의 사제들도 연극을 공연하였는데 산골에 전등이 없었으므로 가스등을 가지고 무대조명을 하였다. 그런데 그 기술이 어찌나 고명한지 효과는 아주 만점이였다. 그들이 무대에 올린것은 조우의 <<일출>>, 고골리의 <<검찰관>> 따위였다(<<검찰관>>의 주인공 흐레쓰따꼬브는 극의 내용에 따라 매번 다 무대에서 진짜닭다리 하나씩을 뜯어먹게 되므로 다들 그 역을 담당한 배우의 팔자를 부러워하였다).

무대에 올린것중에 국민당을 풍자한것 하나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여간만 우습지가 않았다. 중경 어느 요인의 관저에서 두 도련님이 복습인가 예습인가를 하고있는데 가정교사가 우리 중국에는 왜 공산주의가 맞지 않는지 그걸 말해보라고 한즉 큰도련님이란게 머리를 쥐여짠 나머지에 대답한다는 소리가

<<기후때문이 아닙니까?>>

그 대답을 듣고 선장이는 너무 우스워 자발없이 큰소리로 깔깔 웃었다. 그 바람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선장이를 돌아보았다. 그 선장이 바로 옆에 앉았던 강진세작은아씨가 무아하여 얼굴이 금시 홍당무가 되여가지고 팔꿈치로 선장이의 옆구리를 직신직신 건드렸다. 그렇지만 선장이는 기분이 날것 같이 거뜬하여 웃음이 절로 텨져나오는것이였다. 극의 내용이 워낙 우습기도 하려니와 그보다도 태항산의 자유로운 공기가, 해방구의 친절한 분위기기 샹팡처럼 상쾌한 향미를 갖다안겨 웃음이 절로 터져나오는것이였다.

의용대에서는 팽덕회동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로 하였다. 한마을에 사는 로신예술학고 사제들도 다 청해다 듣기로 하였다. 그들의 인수는 기실 그리 많지가 않아 모두 합해도 한 100명 되나마나하였다. 팽장군은 말을 타고 왔는데 뒤에 딸린것은 단 한명의 경위원뿐이였다. 선장이는 그토록 단출한 행차를 눈앞에 보자 가슴속에 경앙하는 마음이 들물처럼 벅차는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깨달았다.

(지도자급인물의 위신이란 틀을 차려 세워지는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반비례한다.)

그전에 선장이는 팽덕회장군을 우스개소리란걸 통 할줄 모르는 엄격하 장군으로만 알고있었다. 그런데 팽장군은 뜻박에도 첫시작부터 웃음이 만면하여 해학적인 어투로 말머리를 떼는것이였다.

<<이제 내가 오다가 길에서 우리 전사 둘을 만났는데 내가 누구인지를 뻔히 알면서두 경례를 안하고 그저 히쭉 웃기들만 한단 말입니다. 깃두 여미지를 않아 헤벌쭉한데다가 걸음새두 씩씩하지가 못하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 팔로군은 규률이 너무 물러 야단입니다. 적군에 비해 퍽 못하지요. 적군의 규률은 엄격하기가 뭐 여간만 아닌데...>>

선장이는 얼른 제 깃을 어떤가 손으로 더듬더보았다. 강진세가 눈결에 선장이의 하는짓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팽장군은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죽 한번 둘러보았다. 그 모습은 위엄스러운 장군이라니보다는 순박한 노인이라는게 더 얼맞을것 같았다.

<<그렇지만 하지만.>> 하고 팽장군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적을 이겨낼 신심을 가지구있습니다. 그건 어째서? 적군의 엄격한 규률은 강박적으루 세워진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병들사이에는 근본적인 리해충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화할수 없는 모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규률은 무릅니다. 확실히 무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하가 일치합니다. 우리의 전사들은 자신의 해방을 위해 싸우구있습니다. 이것이 바루 우리가 반드시 이길 힘의 원천입니다!...>>

팽장군은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이한 끝에 이런 우스개 소리까지 하는것이였다.

<<여러분은 내 등이 이렇게 굽은것을 보구 아마 속으루들 웃을겁니다-사령원이란게 왜 저 모양이야!...>>

사람들속에서 집이 금세 떠나갈듯한 폭소가 터졌다.

<<우리 집은 살림이 너무 구차해 나는 여라문살적부터 힘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밤낮 무거운 짐을 지구 메구 하다나니 사람이 어디 자랄 새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모양이 된겁니다...>>

선장이의 가슴속에 다시한번 격앙된 난류가 벅차는것을 느꼈다.

조선독립동맹의 전선인 화북조선청년련합회가 결성이되자 선장이는 그선전부에서 일을 하게 되였다. 선전부에는 남다른 특권 하나가 있었으니 그는 밤에 석유등잔을 무제한 맘대로 켤수가 있는것이였다. 다른 단위나 기구들에서는 일률적으로 취침전 반시간 동안 평지기름불을 켜야 하였다. 그것이 팔로군 전군에서 시행이 되고있는 내무규정이였다. 팔로군의 생활이 얼마나 간고한지는 여기서도 가히 그 일단을 엿볼수가 있었다.

선전부의 석유등잔은 류신이 <<깽깽이>>가 도맡아 건사를 하였다. 날마다 기름을 붓고 또 등피를 닦고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출장을 갔다가 칠팔일만에 돌아와본즉 그 언제나 깨끗이 거두어 새말갛던 등피가 새까맣게 그을어 똑 마치 무슨 굴뚝과도 같았다. 그는 하도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웃으며 그 등피를 뽑아들고 일변 닦으며 일변 선장이들더러 묻는것이였다.

<<내가 영영 돌아오잖았더라면 어떻걸번했지?>>

선장이들은 웃으며 이구동성으로 단언을 하였다.

<<어떻거긴 뭘 어떡해? 안 켜구 살지!>>

이때부터 자곡가 류신동지는 일언반구의 군소리도 없이 종신직 등잔관리대신의 영예로운 칭호를 달게 받았다. 그는 선전부장겸 당소조의 조장이였다.

한번은 선전부가 들어있는 주인집에 불상사가 생겼다. 그 집에서 놓아먹이는 면양중의 한마리가 산에 올라가 풀을 뜯어먹다가 실족하여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져 죽은것이다(꼭은 모르겠지만 실련이나 생활고 또는 염세에 기인한 자살은 아닌상싶었다). 그래 집주인은 류신이에게 교섭을 하기를-고기값을 절반만 치러주면 제가 맡아 깨끗이 손질해먹도록 해주겠다는것이였다. 류신이는 흐름 따라 배몰기를 선심을 썼다. 어서 그러라고 선선히 동의를 한것이다. 선장이들은 중대장급 즉 대위급이였으므로 급료가 매달 3워 50전 기남은행권(하북성 남부은행권)이였는데 그 돈으로는 적사탕(홍탕) 반근 즉 여덟냥을 겨우 살수가 있었다. 그래서 선전부성워들은 호주머니를 톡톡 털어모아 그 양고기값을 치러주었다. 늦은저녁때 집주인이 소래기로 여러 소래기 담아내온 낭에서 투신자살을 한 양의 고기를 보니 온데 푸릇푸릇 멍이 들어 여간만 가관스럽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출출한김에 산해진미 맞잡이로 포식들 하였다.

히틀러가 돌연 배신적인 반쏘전쟁을 발동하였다는 소식이 태항산을 진감하였다. 첫단계에 쏘련군대는 구풍같이 맹렬한 전격전의 예봉을 막아내기가 어려워 부득이 자꾸만 뒤로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나치스의 전차들은 쏘련국토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이때 일본제국주의강도는 아직 그 광망한 태평양전쟁을 발동하지 않았었다. 의용대는 비록 태항산에서 긴장한 전투의 나날을 보내고있었으나 그들의 초조한 마음은 밤낮없이 머나먼 쏘독전쟁 제1선에 날아가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대한 레닌이 창건한 최초의 사회주의공화국 하나만의 운명에 관한 일이 아니기때문이다.

의용대는 정치공세의 한 부분으로 <<일본군병사들에게 고함>>, <<조선동포들에게 고함>> 따위의 일본글과 조선글로 된 삐라를 대량적으로 찍어내였다. 그런 연후에 그것들을 지하련락망을 통하여 적점령구역에 갖다 살포를 하였다. 그런데 이때 근거지안에는 인쇄설비라는게 마련이 없이 다들 부득이 원시적인 석파인쇄에 매달려야 하였다. 비록 인쇄는 그렇게 어설퍼도 그것이 거두는 효과는 매우 신통하였다. 많은 조선 청년들과 학도병들이 그 원신적인 방법으로 찍어낸 삐라에 끌리여 죽음을 무릅쓰고 항일부대로 넘어온것이다. 그러한 삐라들을 기초하는 일은 김학무가 총적인 책임을 졌었는데 그것은 그가 지대의 정치위원이였을뿐아니라 일어, 영어, 한어에도 다 능통하였기때문이다.

선장이는 <<일본병사들에게 고함>>의 초안을 잡을 때 의도적으로 독일군사사상자의 수를 10퍼센트 가량 불려놓았다. 그것은 쏘독 량군 사이의 공방전의 격렬함과 태항산의 락후한 석판인쇄 그리고 또 그것이 살포될 때까지의 속도의 비례를 감안하여 한노릇이였다. 하긴 보다 결정적인 동기로 된것은 선장이의 가슴속에서 불타는 사랑과 미움이였다. 그러나 심사때 김학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선장이가 맞갖잖으 어투로

<<왜?...>> 하고 물으니

<<공보의 수자대루 하지.>> 하고 김학무는 미소를 머금고 대꾸하는것이였다.

<<이 맹추야, 석판인쇄가 굼벵이 천장하듯하는데다가 찍어낸걸 아지트까지 날라가재두 두주일은 좋이 걸려. 그동안에두 독일놈들은 계속 무리죽음을 할텐데... 안 그래? 그렇다면 삐라가 적의 손에 쥐여질 때는 이미 력사적문헌으로 돼버리잖구 뭐야!>>

선장이는 기가 나서 제 주장을 내세웠다. 그와 김학무는 중앙군교의 동기동창으로 너나들이하는 사이였으므로 다급한 모퉁이에서는 <<맹추>>소리가 입에서 튀여나오기가 일쑤였다.

<<이봐, 내 말을 좀 들어. 임자두 괴벨즈가 천하에 황당한 놈이라구 웃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지? 그런데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놈들을 억지루 저승장부에 올리면 그게 뭐가 돼? 우리두 괴벨즈의 아류가 돼버리잖는가! 하물며...>> 하고 김학무는 웃으며 초고의 마지막 줄을 가리켜보이는것이였다.>>
<<이게 있잖은가!>>

거기에는 또렷이 <<1941년 8월 30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전국이 쏘련에 대단히 불리하게 되였을 때 선전부에서는 한빙동지에게 목전의 세계형세를 분석해줄것을 요청하였다. 한빙동지는 로씨야태생으로 중앙군교때의 교관이였다. 이야기는 밤저녁에 선전부에서 회의가 끝난 뒤에 시작이 되였다. 선전부의 몇몇 젊은축은 책상가에 둘러앉아 전심치지 이 지구가 도대체 어느 길을 어떻게 걸어서 래일로 넘어가는가 귀들을 기울였다. 책상우의 밝은 등잔불(류신이가 출장을 가지 않은 증거)은 선장이들의 엄숙한 얼굴을 조용히 비추고있었다.

<<지금 유럽은 초연과 먼지구름 속에 잠겨있어 들리는건 고함소리와 폭발성뿐입니다...>>

한빙동지는 등잔불을 잠시 지켜보고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전세계의 맑스주의자들은 그 초연과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뒤에 와륵더미로 화해버린 문명사회의 페허우에 여기저기 붉은기들이 나붓기는것을 내다봅니다. 다시말해 새 사회주의나라들이 일떠설것을 내다본단 말입니다...>>

선장이가 류신이를 쳐다보았다. 류신이도 선장이를 마주보았다. 그들은 가장 간난한 시각에 승리한 래일의 웅의롭고도 장려한 세계를 눈앞에 보는것 같았다. 그것은 인적기없이 괴괴한 태항산중의 한마을의 한집안의 외로운 등잔불밑에서의 일이였다.

문정의 수기(1)

1941년 가을, 팔로군락양사판사처(통칭 락판)는 비밀히 위립황장관사령부참모처 소위 참모 왕모(중앙군교학교 제 13기 졸업생)를 통하여 나더러 <<락판>>에 일이 있으니 오늘밤 좀 다녀가라고 전갈을 하였다. 밤에 내가 가본즉 <<락판>>일군이 전달하기를 조선의용군지휘부에서 무전이 왔는데 나더러 곧 락양을 떠나 태항산으로 들어오란다는것이였다. 나는 벌써부터 학수고대하던 일이 드디여 닥쳐온지라 너무도 흥분하여 건밤을 새우다싶이 하였다.(이때 방효삼의 부인 리수운과 반해량의 부인 전보경도 나와 동행하려고 락양에서 대기를 하고있었다.)

이튿날 나는 조선의용대 각 분대가 대부분 황하이북의 화북전선에서 활약하고있다는것을 핑게대고 시찰을 가겠으니 도하증과 통행증을 발급해달라고 곽기기참모장에게 신청을 하는 한편 짝을 무어 동행을 하기 위해 화북전선으로 떠나는 부대인원들을 물색하였다. 마침 방병훈부대의 대대장(할빈사람) 하나를 알게 되였는데 그 사람은 장관사령부에 와 군의 월급(현금)을 타가지고 부대로 돌아가려는 참이였다. 이때 그들의 집단군은 황하이북 림현부근에 주둔하고있었다. 림현은 산서, 하남 두성의 경계가 맞닿는 어름에 위치하고있는데 거기서는 태항산해방구가 지척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와 동행할 날자를 어림잡아 약정을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도하증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길을 떠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구에 내 증명서가 먼저 내려와 나는 곧 <<락판>>을 찾아가 떠날 날자를 알리고 또 조선의용군지휘부에 무전으로 통지해줄것을 부탁하였다. 한즉 <<락판>>일군은 가는 길에 중국동지 몇 사람을 좀 데리고 갈수 없겠느냐고 의논을 걸어왔다. 지난번에 떠나오라는 전보를 받았을 때 <<락판>>책임동지에게 나는 길을 잘 모르느데 혹시 <<락판>>에 누가 동행할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두말없이 쾌히 응낙을 하였다. 내가 그렇게 선뜩 응낙을 한것은 도하증이나 통행증의 기입란이 모두 공백인 까닭에 인수를 내 맘대로 기입을 할수가 있었기때문이다. 그저 덧거리도 기입된 사람들이 조선의용대 대원인체만 하면 되는 판이였다. 의논이 합치되자 그 <<락판>>일군은 곧 곽대광이란 사람을 불러다가 나에게 소개한 다음에 건의를 하기를-곽대광은 우리 판사처에서 태항산총사령부로 갈 20명 인원의 책임자다. 그러니 문정 네가 대장이 되고 곽대광은 부대장이 되라. 그리고 총책임은 너 문정이 지고 전대를 령솔하는것이 좋겠다. 그래 나는 그 즉석에서 곽대광과 떠날 날자와 시간 그리고 집합장소를 약정하고 갈라졌다.

예정한 날자에 우리는 방병훈부대의 그 대대장과 그가 령솔하는 수십명 병사들과 만나 동행하게 되였는데 우리 대오는 녀대원 셋씩이나 들어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황하를 건느고 또 적군의 봉쇄선들을 통과하여 조작현정부소재지인 중조산중의 한 대부락에 이르렀다. 물론 거기는 국민당의 통치구역이다. 동행한 대대장과 그의 부하들은 부락안에 사처를 정하였고 우리 30여명은 현정부에서 몇마장 떨어진 자그마한 마을에 려장을 풀었다. 그러나 나는 국민당정부인원들이 알게 되면 의심을 살것이 념려되여 즉시 곽대광과 의논한 뒤 내 전령병 한화성이와 <<락판>>사람 하나 를 데리고 자주적으로 국민당현장을 찾아갔다.

나는 현장을 만나 명함을 건네고 또 수인사를 마친 다음 우리 조선의용대가 당신네 현을 건네고 또 수인사를 마친 다음 우리 조선의용대가 당신네현을 거쳐 전선으로 대(对)적군공작을 나가는데 귀 현에 페를 끼치게 되여 미안하다고 얼렁뚱당하였다. 그러니까 현장은 매우 뜨겁게 나를 대해주며 귀한 손님들이 마을밖에 사처를 잡다니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어서 옮겨들도록 하라, 저녁에 박주나마 차려서 여러분을 모시겠다, 그래야 우리도 주인된 체면이 설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는 현장님의 호의는 매우 감사하다, 그러나 적의 봉쇄선을 넘느라고 일행이 모두 지쳐 이미 휴식들을 하고있으니 다시 옮기는 수선을 피울것은 없다고 그럴사하게 응수해넘겼다. 우리가 사처로 돌아와 얼마 오래지 않아 현장은 전인을 부리여 전선으로 나가는 외국벗을 위로한다고 로획품 소고기통졸임따위를 푸짐히 보내왔다.

여기서부터는 국민당군대가 관할하는 산로를 가야 하는데 방병훈부대의 대대장일행과는 동행할 필요가 없게 되여 우리는 우리대로 따로 행군로선을 선정해야 하였다. 나는 양계소와 손초를 행군참모로 임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행군로선을 선정하도록 하였다.

문정의 수기(2)

진성, 호관, 평순 등지를 지난뒤에 우리는 국민당군대의 방비구역을 벗어날 준비를 하였다. 보초선을 넘어 해방구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두메산골에 자리잡은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어가지고 우선 손초에게 길잡이-당지의 농민 하나를 딸려서 팔로군부대를 찾아가 련계를 하도록 하였다. 이튿날 그 길잡이 농민은 손초의 편지를 몸에 지니고 혼자 돌아왔다. 그 편지를 뜩어본즉 자기가 온 길이 국민당군대가 없어 퍽 안전하니 이 편지를 전하는 길잡이 농민을 앞세우고 곧 떠나오기를 바란다.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그 맞은바래기 산등성이가 곧 해방구인데 거기까지 마중하는 부대를 파견할테니 안심하고 행동하라... 이런 사연이 적혀있었다.

손초의 기별을 받고 우리가 막 길떠날 차비를 하고있을즈음에 불시에 국민당군대의 한 부대가 우리 마을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우리는 모두들 긴장해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즉시 덤비지 말고 다들 도로 들어가 누워자는체하라고 지시한 뒤 전령병을 데리고 자주적으로 그 국민당군대의 지휘관을 찾아갔다. 나는 그 지휘관(소좌 대대장)에게 명함을 건네고 또 자기소개를 한 다음에 그럴사하게 꾸며대기를 조선의용대의 일부 대원들을 인솔하고 방병후부대로 가는 길인데 동행하는 대대장일행의 걸음이 더디여 우리는 먼저 여기 와 휴식하며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중이라고 하였다. 그 지휘관은 내 말을 유시히 듣고나더니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며 락양장관사령부에 중앙군교 졸업생이 몇이나 있으며 그들의 이름이 무어며 또 직함은 무엇무엇인가고 바로 나를 떠보려 들었다, 나는 막히는데 없이 그가 묻는 사람들의 근황을 다 이야기하고나서 그도 중앙군교 졸업생인가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하기에 나도 역시 중앙군교 졸업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곧 서로를 동학 즉 동창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지휘관이 나를 집안으로 청해들이기에 나는 들어가 자리잡아 앉는 길로 다시 진일보하여 장관사령부에 있는 중앙군교 졸업생들의 근황을 소상히 이야기해들렸다. 내 이야기에 빈구석이 없을뿐아니라 내 군복가슴에 제1전구 장관사령부의 출입증이 붙어있는것을 보고 더는 의심할나위가 없는 모양으로 그의 미타해하는 기색은 현연히 풀렸다. 그제야 그는 군용지도를 꺼내여 펼쳐놓고 일일이 가리키보이며 너희가 택한 길은 대단히 위험하다, 산 하나만 넘으면 곧 <<팔로>>네 구역이다, 그러니 내가 우리 사람 몇을 파견하여 너희를 안전한 지대까지 인도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아니 번페스레 그럴 필요는 없다, 이젠 방향을 알았으니 우리끼리도 능준히 찾아갈수가 있다, 정 어려우면 당지의 길잡이를 얻어도 되니 념려 말라고 그의 호의를 밀막았다. 그는 제 사람을 파견하여 우리를 인도해주겠다던 주장을 더는 고집한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제야 비로소 실토하기를 자기들은 보초선에 교체를 하러 가는 부대이므로 중화(中火)만 하고 곧 다시 떠나간다고 하였다. 그가 점심식사를 같이하자고 붙들어 나는 하릴없이 그 자리에 물러앉아 점심 한끼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떠나가는것을 바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사처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사람들은 모두 꼼짝 않고 누워서 자는체를 하고들 있었다. 내가 다녀온 경과를 이야기하니 그제야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당일 오후에 우리는 다시 그 길잡이 농민을 앞세우고 깊은 골짜기 하나를 건너 맞은쪽 산등성이에 바라올랐다. 골짜기의 바싹 마른 내바닥을 달아건늘 때 우리는 국민당군대의 정탐 두놈과 맞닥뜨렸다. 그중의 한놈은 우리를 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뺑소니를 쳐버려 한놈밖에 못 붙들었다. 붙들린 놈도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있었다.

우리는 드디여 팔로군주둔지에 들어섰다. 한개 중대의 병력이 우리의 마중나왔었다. 우리는 모두 격동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너무도 기뻐 감격의 눈물만 자꾸 흘렸다. 오직 한 사람-내 전령병 한화성만이 무슨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우리는 사전에 우리의 행동과 목적을 그에게 알리지 않았던것이다. 동행한이들이 그에게 알아듣기 쉬운 말로 계급교육을 해서야 비로소 그는 사상이 소통되여 좋아라고 날뛰였다.(1942년 한화성이는 태항산항일대학에서 적의 <<토벌>>을 만나 일떠나 응전을 하다가 애석하게도 전사를 하였다) 거기서부터는 팔로군전우들의 극진한 보호밑에 아무 근심걱정 없이 행군을 계속하여 마침내 전원 무사히 태항산 동욕거리 조선의용군지휘부에 도착을 하였다.



근 반년동안이나 갈라졌던 두 친구가 참신한 환경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였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선장이는 반가운 나머지에 태항산의 명물인 감 몇개를 마련하여 <<전쟁할 때>> 문정이를 대접하였다. 말하자면 환영연인 셈이다. <<석상>>에서 선장이가 선배의 자격으로(오륙개월 먼저 태항산의 땅을 밟았으므로) 타일렀다.

<<여기서는 감을 먹을 때 껍질을 벗기잖구 먹는게 법이니 그리 알라구.>>

문정이는 군말없이(입향순속이란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으므로) 껍질채로 한입 베물더니 대번에 오만상을 찌프렸다.

<<어퉤, 법이구 나발이구 다 모르겠다. 넨장!>>

이렇게 뇌까리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접칼을 꺼내더니 벗겨서는 안된다는 감껍질을 제멋대로 벗기기 시작하였다.

연회가 끝난 뒤에 즉 감을 다 먹고나서 문정이는 군복자락을 떠들고 허리에 찬 권총을 자랑스레 드러내보였다. 전에 그가 차던것과는 달리 전연 생소한것이였으나 선장이는 짐짓 시치미를 따고 례사롭게 물었다.

<<그것두 또 언제 칼집처럼 빈껍데기나 아니야?>>

<<무슨 빈껍데기?...>>

<<속에 탄창이 없는...>>

례사로운 어투로 선장이가 주석을 달았다. 문정이는 제잡담하고 권총을 빼여 선장이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보구 말해. 눈을 비비구 똑똑히 보구 말해.>>

틀림없는 신품 콭드... 검푸른 빛이 섬섬하다.

<<훔친거지?>>

여전히 례사로운 어투로 선장이가 물으니 문정이는 업신여기는 태도로 입술을 비쭉하였다.

<<그럼 협잡을 한거구나!>>

선장이가 단정을 내렸다.

<<맹추 같으니! 남두 다 저 같은줄 알구... 뭐나 더럽게만 해석을 한단 말이야.>>

문정이는 분개하여 여지없이 선장이를 타박하였다.

<<품격이 저렬하기에 똑 뭐 같은게...>>

그래도 태항산의 맑은 추색은 의연히 매혹적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또 선장이에게 있어서 그리고 모든 전우들에게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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