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60

더좋은래일 | 2023.11.12 11:06:31 댓글: 2 조회: 293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6903


60

상무촌에 홀애비늙은이가 하는 우동집 하나가 있는데 이 늙은이가 성질이 어찌나 괴퍅한지 마음이 내키면 문을 열고 마음이 들이키면 문을 닫아버리는 까닭에 그 우동 한그릇을 사먹기가 마치 무슨 제비를 뽑아 경품을 맞추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단간방에 헌 각탁 하나와 긴걸상 두개 그리고 밀가루를 반죽하는 안반들과 우동을 삶는 솥 이런것들도 다 한옆에 붙어있고 걸려있고 하였다. 밀은 제 손으로 심어서 제 손으로 빻은것이라 밀가루가 희지는 못해도-우동발을 손으로 쳐서 늘이는 까락에-질기기는 고무줄같이 질겼다. 고기붙이고 남새붙이고 무슨 붙이고간에 고명이라는것은 애당초부터 없고 또 간장과 소금도 고추가루도 다 없는 맹탕 우동인데 단 한가지 쳐먹는게 있었으니 그것은 곧 식초였다. 이 식초도 역시 그 령감태기가 제 손으로 담근것이다. 값도 싸지가 않아 40전-거의 돼지고기 3냥 값이였다. 이런 장관의 우동집으로 반해량과 안해 전보경과 송일엽 그리고 선장이를 데리고 와 회식을 하는데 이 네 사람이 이렇게 한상에 둘러앚아보기는 상해 애린리 42호에서 있은이래 여덟해만에 처음이였다. 마주않게 되리라고 8년전에야 어느 누가 꿈이나 꾸었으랴.

<<남시는 어떻거구 이렇게 혼자 오셨습니까?>>

선장이의 묻는 말에 전보경은 웃으며

<<석정선생 부인이 데리구 연안으로 갔지요. 김두붕선생이 가시는 편에 딸려보냈에요.>> 하고 그 남편을 한번 돌아보았다.

<<`이모`를 떨어지려구 해요?>>

<<그래두 어떡해요? 이모는 갈수 없구...>>

말하는 전보경의 얼굴에 애처로와하는 빛이 스치였다.

<<올해 몇살인가요?>>

<<일곱살이예요. 인제는 학교 갈 나인데요.>>

<<헤, 일곱살! 벌써 그렇게?...>>

<<그러면이요. 인제 학교 갈 나인데요.>>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괜찮아.>>

반해량이 안해를 안심시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데 송일엽이 옆에서

<<언니 오빠라니요?>> 하고 물어서 전보경이 남편 대신으로

<<두붕선생댁 해연이, 방부사령댁 애련이, 석정위(정치위원)댁 룡문이... 그리구 우강선생댁 동수...>> 하고 주어섬겼다. 송일엽이

<<응 그럼 괜찮긴 하겠구먼 친구가 많아서.>> 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반해량은

<<괜찮잖구, 괜찮잖구. 그러구 또 석정 부인이 어떤이라구.>> 하고 극력 념려없음을 내세웠다. 그래도 전보경이

<<그렇지만 량쪽이가 다 벌레가 먹어서... 치과엘 다니다말았는데...>> 하고 얼굴빛을 흐르니 반해량은 짐짓

<<사람두 참... 걱정두 팔자지. 연안엔 왜 치과두 없나? 굴속에서들 산다니까... 아주 사람이 못살덴줄 아는 모양이군.>> 하고 너스레웃음을 웃는것으로 안해를 놀렸다.

이윽고 때가 끼고 이가 빠진 막사발에 수북수북 담은 우동이 네 사람앞에 제각기 한그릇씩 놓여졌다. 묵은 손때가 짙게 묻은 저가락 명색을 제각기 집어들고 먹기 시작하는데 전보경이 한입 먹어보더니 대번에

<<아이고.>> 하고 저가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반해량이 우동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왜?>> 하고 안해를 돌아보니 그 안해는

<<이거 어디 먹겠어요? 아주 맹탕인데.>>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반해량도 웃으며

<<혁명을 하려면 맹탕두 먹을줄 알아야지. 저는 뭐 별사람인가? 남두 다 먹는데...>> 하고 거짓으로 안해를 나무랄 때

<<자요.>> 하고 선장이가 성냥갑 하나를 상우에 꺼내놓으니

<<그게 뭐예요?>> 하고 전보경은 그 성냥갑과 선장이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선장이가 웃으며

<<나트리움과 염소의 화합물, 속칭은 소금, 솔트, 두 유 노우(소금, 아시오)?>>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속갑을 밀어내니 그속에 담긴것이 거무스름한 돌소금이라 전보경은

<<어머!>> 하고 기가 차하였다.

네 사람은 다같이 웃으며 선장이의 비상용돌소금 덕으로 우동 한그릇씩 달게 먹었다.

조선의용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강화발전된 뒤에 처음으로 하북성남부 선고산일대에 진출하여 활동하던 윤대성이 령솔하는 독립대대가 적국 점령하의 한단성안에 편복한 대원들을 잠입시켜가지고 조선청년 셋을 쟁취하는데 성공을 하였다. 그 세청년이 의용군지휘부에 도착한 다음날 밤 하늘을 찌를듯이 우뚝 솟은 해묵은 느릅나무밑에서 대낮까지 밝은 가스등을 켜달아놓고 신입대원들을 환영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세 청년은 걸머지고온 륙사크속의 선물들을 바치는데 그중의 둘-심청과 김파륜은

<<우린 항일군대에 약품이 결핍하단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이렇게 약품을 사가지구 왔습니다. 받아주십시오.>> 하고 륙사크에 그들먹은 각가지 약품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또 하나-양견은

<<저는 이런걸 가지구 왔습니다.>> 하고 갓 출판된 부피가 굉장히 큰 문세영사전-<<조선어사전>>을 꺼내놓았다.

(이 얼마나 갸륵한 마음씨들이냐!)

그들의 선물은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아들여졌다.

전사들의 웃음소리와 흥겨운 노래소리가 서로 어울려 들썩한중에 새 전우들은 황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무렵에 흥이 난 장난군들이 달려들어 김학무-서른이 가까운 구두솔같은 수염이 자란 지대 정치위원을 마구 끌어내왔다. 끌려나온 김학무는 재촉하는 박수소리속에 몹시 수집어하며 누구나 익히 아는 동요를 나직이 불렀다.

착한 애기 잠 잘 자는 베개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여도 꿰매여도 밤은 안 깊어
......

의용군전사들의 마음은 고요히 나래치고 삭막한 기억속에 아득한 어린 시절의 정경이 떠올랐다. 일년 열두달 밤낮없이 싸움터를 짓달려다니는 우둔쟁이들에게도 그리운 고향은 있었다. 잊지못할 혈육과 친지들은 있었다. 용장한 군가만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것은 아니였다. 선장이는 이름 못할 감격속에 가뭇없이 잦아들었다. 태항산중에서 아득히 먼 고향-원산바다의 간내 풍기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최재와 다른 몇몇 친구들은 태항산에 들어온 뒤 얼마 오래지않아 천연으로 된 훌륭한 수영장-소 하나를 얻어만났다. 반공에 솟은 석벽밑에 맑은 내물이 괴여 이루어진것인데 한복판은 물의 깊이가 한길이 넘었다. 그들은 오랜 가뭄끝에 물을 본 오리떼처럼 앞을 다투어 옷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물속에 뛰여들어 씻고 헤고 또 자맥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다음과 같은 의외의 사실을 부닥치게 되였다. 즉 그들이 불시에 뛰여드는통에 물속에서 한유를 하고있던 거물급메기-여메기들이 놀라 이쪽저쪽으로 갈팡질팡을 한것이다. 그놈의 여메기들은 개개다 크기가 거물급이라고 형용을 하는것도 오히려 부족할만큼 무지무지하게 컸었다. 최재는 난생처음 그렇게 큰 괴물을 눈앞에 보고 슬그머니 무섬증이 나기는 하였으나 다른 물덤벙술덩벙들이 환성을 지르며 날뛰는 바람에 덩달아 섭쓸려들게 되였다. 뒤죽박죽으로 포위토벌작전을 벌인 끝에 장난군들은 그예 부지스럽게 큰 여메기 두놈을 붙들어내고야말았다.

이때의 태항산은 술도 없고 소금도 없는 더군다나 입쌀이나 맛내기 따위는 보고 죽을래야 없는 고장이였다. 하지만 그런것쯤은 이들 산 아귀들의 맹렬한 식욕에 추호의 영향도 끼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식인종처럼 벌거벗은채 내가 모래톱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그 두마리의 어획물을 기분 좋게 다 구워먹어버렸다. 기분이 좋았을 밖에!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이때 린근마을에 사는 농민 하나가 먼발치에 서서 이 야단스러운 모꼬지를 유심히 엿보았을줄을.

알고본즉 그 소속의 메기, 여메추들은 춘추 진문공 당년부터 세세상전으로 당지 토배기농민들에게 비, 는개, 눈, 우박 따위를 좌우하시는 하늘의 수도관리국장-룡왕님으로 보호와 존중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그들은 요절이란게 무엇인지 비명횡사란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았으며 따라서 개개다 천명을 누릴수가 있었다. 그들이 체포니, 고문이니, 전쟁이니, 학살이니 하는따위의 문명적행위와는 아무러한 인연도 없는 세외도원에서 유연자득하여 기름이 지고 살이 찌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것이다. 그러므로 최재들의 돌연적습격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미증유의 일대 재액이 아닐수 없었다.

최재들은 룡왕의 고기를 흡족하게 포식들 하고나서 무사히 하루밤을 지냈다. 그런데 이튿날 점심시간에 예상 못한 후과가 나타났다. 방효삼부사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내를 둘러보며 묻는것이였다.

<<어제 저아래 소에 나가 메기를 잡아먹었다는게 누구요?>>

최재는 그 묻는 말에서 심상찮은것을 감촉하고 마지못해 일어나 목구멍속에서 끌어당기는 목소리로

<<접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웬 영문을 몰라 좀 어리둥절하였다.

<<또 누가 있소?>>

최재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입을 합봉하였다.

<<대여섯 되더라구... 마을사람들이 주둔군사령부에 등장을 갔단 말이요.>>

어제 그 식인종아귀들이 마지못해 하나씩 둘씩 여기저기서 일어섰다.

<<식사가 끝나는대루 내게루들 좀 오시오.>>

방부사령은 옹긋쫑긋 서있는 룡고기추렴군들을 둘러보며 안온한 어조로 말을 일렀다.

<<이젠 고만 앉아 식사들이나 하시오.>>

메기잡이에 기세를 올렸던 어제의 용사들이 도로 앉아 밥을 먹기는 해도 입맛들을 제치여 밥이 모래알처럼 깔깔했을것만은 의심할바 없는 일이다.

<<동무들은 군중규률을 위반했소... 영향이 아주 좋지 못하오.>>

지휘부에서 방부사령은 물덤벙술덤벙들에게 엄숙히 말하는것이였다.

<<아까 오전에 려단사령부에 일을 보러 갔을 때 려단장이 친히 내게다 귀띔을 해준 말이요. 그가 비록 웃으며 넌지시 깨우쳐주기는 했지만서두... 난 송구해 몸둘바를 몰랐었소.>>

<<모르구 한 일이니까 더 말은 않겠소만... 금후에는 각별히 명심들 해주기 바라오.-민중이 아직 각성을 못했으니 어떻거우. 유심론의 시장은 아직두 넓단 말이요.>>

룡고기를 잘못 먹은 아귀들은 모두 자라목이 되여가지고 어떤축은 몰래 혀까지 내두르며 천천히 지휘부에서 물러나왔다.

일은 그것으로 일단락 지은것 같아보였다. 그런데 웬걸! 심청이 워낙 바르지 못한 룡왕님께서는 그예 최재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말 작정인상싶었다. 그는 유심론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온 여름 단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을 작정으로 천상의 수도꼭지를 아주 닫아버렸다.

(까짓거, 땅우의 곡식이야 되거나말거나 나하구는 상관이 없으니까.)

그러나 단 하루도 낟알이 없이는 살수 없는 땅우의 백성들은 죽을 지경이였다. 속들을 지글지글 끓이며 꼬박 한달을 기다렸어도 새파란 하늘에는 병아리 반쪽만한 구름 한점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니 살수 없게 된 백성들이 왜 룡왕님께서 노염이나 버력을 내리시는거라고 생각을 아니하게 되겠는가.

(살아서 펄펄 뛰시는걸 마구 잡아 구워처먹지를 않았는가!)

그 결과 필연적으로 기우제를 지내게 되였는데 근방 촌백성들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대사인 까닭에 거기에는 추호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아니되였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아래와 같이 결정을 하였다. 즉 촌백성들을 안무하기 위하여 함부로 룡왕님을 잡아먹은 죄인들을 기우제에 참례시켜 속죄를 하게 한다. 가련한 신세가 되여버린 그 몇몇 유물론자들은 쓰다 달다 말이 없이 그저 녜녜 하라는대로 할 밖에 없었다.

최재는 두손에 향연이 가물거리는 향로를 받들고 빈틈없이 착실히 비빌이행렬을 따라 산에 오르고 또 산을 내리고, 남들이 하라는대로 따로 국궁하고 절하고 또 무엇하고 무엇하고... 갖은 멍텅구리노릇을 다하였다. 제정신없이 그렇게 반나절을 하고나니 죽을 지경일 밖에. 그래서 그는 속으로 굳게 맹세하기를

(또다시 메기고기를 먹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어물전에서 파는것두 안 먹을테다.)

그리고 탄식을 하였다.

<<젠장할, 그 잘난것 좀 얻어먹구... 이게 그래 무슨 놈의 망신이람!>>

이무렵 윤대성이 령솔하는 독립지대는 석고산일대에서 맹활약을 하고있었다. 한단성안에서 조선청년 셋을 쟁취한데 기운을 얻어 이번에는 무안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의 헌병분견소를 료정낼 계획을 세웠다. 그 행동대의 골간으로는 로련한 테로분자들인 양씨동이와 마점산 오쎌로가 선정이 되였다.

허술한 각탁둘레에 군복차림을 한 세 사람과 농민복색을 한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사람 하나가 둘러앉아 쑥덕공론을 하고있는데 군복을 입은 세 사람은 윤대성, 양씨동, 마점산이고 그리고 농민복새을 차린 사람은 리명선이다.

<<어디 이 동무들두 다 듣게 료해한 정황을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윤대성의 말에

<<녜.>>

대답하고 리명선이는 당지의 농민식으로 머리에 썼던 때묻은 수건을 벗어가지고 얼굴부터 한번 닦고나서 자신이 가짜량민증을 달고 성안에 들어가 여러날 걸려 수탐해온 정황을 보고하였다.

<<헌병분견소를 들이친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루 그 맞은편... 길 하나 건너가... 보병중대의 병사란 말입니다. 보초가 스물네시간 지켜서있는 코앞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달리 료정을 내는수 밖에 없습니다. 그놈의 분견소는 헌병오장(하사) 한놈과 통역 한놈 그리고 서사 한놈... 이렇게 세놈으루 구성이 됐는데 통역은 조선놈이구 서사는 중국놈입니다...>>

말하는 중간에 양씨동이가

<<뒤문도 없는가, 그놈의 분견소에?>> 하고 지형지물을 물으니 리명선이는 머리를 가로 흔들고

<<뒤문? 없어.>>

대꾸하고 다시 중둥무이된 말을 잇대여 하였다.

<<...무안성밖에 며칠거리루 장이 서는데... 그 장마당을 세놈이 가끔 나와 돌아보는 일이 있습니다. 장마다 나오는건 아니지만. 그런데 나올 때는 세놈이 다 편복을 하구 나옵니다. 그러니 해치우려면 장날 대낮에 큰길에서 해치울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대낮?... 대낮두 좋지 뭐.>> 하고 오쎌로가 어깨를 으쓱거리니

<<그렇다면 사로잡을수도 있잖겠나?>> 하고 양씨동이는 먼저 리명선이를 쳐다보고 다시 윤대성을 돌아보았다.

<<아니 가만들 좀 있으시오. 내 이 문제를 먼저 우군부대 대대장과 한번 좀 의논을 해보구, 그러구 우리 다시 토의를 하기루 합시다.>>

윤대성은 이렇게 말하고

<<어떻습니까?>> 하고 양씨동이와 오쎌로의 의향을 물었다. 두 사람이 좋다고 고개 끄덕이는것을 보고 윤대성은 다시 리명선이를 향하여

<<수고했습니다. 어서 돌아가 푹 쉬십시오.>> 하고 위로해 말하였다.

다음다음 장날이다. 사복차림을 한 일본헌병오장 사까이가 역시 사복차림을 한 조선인통역 류동호와 중국인서사 왕가를 데리고 장마당을 돌아보러 나왔다. 사까이와 류동호는 겉으로 보이지 앟게 허리춤에 권총들을 찼었다. 사람이 워낙 잔약하게 생긴 왕가가 산정이를 모시고 장마당 한바퀴 돌아보고 무슨 낌새를 채였는지 공연히 불안해하며 빨리 성안으로 돌아가기를 조이는 눈치라 무사도정신으로 도야가 된 사까이오장과 호걸풍의 류통역은 서러 돌아보고

<<저 겁쟁이 좀 봐라.>>

<<정말 못난녀석입니다.>>

비웃고 둘이 같이 껄껄 웃었다. 3등국민인 왕가는 1등국민인 오장과 2등국민인 통역이 뒤에서 비웃거나말거나 혼자 앞서서 부지런히 걷기만 하였다. 그 고집스레 서두르는 모양이 마치 무엇에 쫓기는 놈과도 같았다.

<<지나인이란 할수가 없군.>>

오장의 말에

<<누가 아니랍니까.>>

류통역은 맞장구를 쳐 비위를 맞춰가며 두 사람은 례사로이 느럭느럭 걸었다. 왕가 못난이에게 본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더 천천히 걸었다. 대낮의 큰길이건만 장이 아직 파할 때가 멀어서인지 행인이 드물다느니보다 거의 없었다. 오장과 통역이 산책기분으로 얼마를 왔을즈음 불시에 잔등패기에 무엇인가 딱딱한데 쿡 와 닿는것 같더니

<<우꼬꾸나(꼼짝 말아)!>> 하고 무시무시한 경고가 귀전을 대렸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엉겹결에 고개를 돌이켜보니 두억시니같이 험상궂게 생긴 머리에 수건을 쓴 두놈이 등뒤에 바싹 붙어서서 목자를 부라리는데 잔등패기에 들이댄것은 권총부리가 틀림이 없었다. 무사도정신으로 도야된 사까이오장이 대번에

<<으악!>>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닫는데 불 채인 중놈 달아나듯하였다. 그러자 두 두억시니중의 형님벌이 되여보이는 놈이 제 잡담하고 권총 한방을 내갈기니 뒤통수에 명중탄을 얻어맞은 사까이오장은 두팔을 쩍 벌리며 앞으로 푹 고꾸라져 그만 끝장이 나 버렸다. 앞서 가던 왕가는 이 무서운 광경을 한눈 돌아보자 곧 저혼자 걸음아 날 살려라 뺑소니를 쳐버렸다. 류동호는 얼혼이 빠져가지고 동생벌이 되여보이는 두억시니가 달려들어 저의 허리춤에 지른 권총을 잡아채는데도 남의 일같이 그저 덤덤히 서있기만 하였다.

<<걸어라!>>

놀랍게도 그 두억시니가 이번에는 또렷한 조선말로 명령을 하였다. 류동호의 머리속에는 바로 며칠전에 사까이가 하던 말이 피뜩 떠올랐다.

<<불량선인들이 요새 빠루(팔로)하구 부동해 별 지랄을 다하는데 우리두 정신을 바싹 차려야겠다니.>>

(아불싸, 내가 그 악당놈들에게 걸렸구나! 인제 나두 볼장 다봤다.)

류동호는 갑자기 다리맥이 풀려 걸음걸이가 허청허청해졌다.

두 두억시니는 죽을상이 된 류동호를 재촉하여 앞세우고 사까이가 엎어져 뻐드러진데까지 오더니 형님벌이 되여보이는 두억시니가 송장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뒤져내고 또 잊지 않고 그 손목에서 시계까지 벗겨내였다. 익숙한 솜씨였다. 늘 해본 놈 같았다. 류동호는 사까이의 대갈통에서 흘러나와 길바닥에 고인 선지피를 보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리고 또 어떡하나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보니 저를 랍치해가는 두억시니가 원래의 둘에서 어느새 곱절 넷으로 늘어났었다.

이날 밤 윤대성은 호젓한 초불밑에서 한놈을 사살하고 한놈을 생포해온 양씨동이와 마점산이와 다른 두 대원 그리고 리명선이의 공적을 지휘부에 보고하려고 부지런히 펜을 달리였다.

그러나 전쟁사에-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법이였다. 백주대낮에 무안성밖 대로상에서 사로잡은 헌병대 통역 류동호를 태항산중의 지휘부로 압송하는 일행이 동욕에 채 와닿기도전에 비보 하나가 꼬리에 달리다싶이 하여 뒤따라왔다. 한단성안에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삐라공작을 하는 한편 조선청년들을 포섭하고있던 마덕산이가 희생이 된것이다.

한단성안에 조선인개업의가 경영하는 <<평안의원>>이라는 병원이 있었다. 그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는 오가성 가진 조선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에게 맡겨두었던 삐라묶음을 찾아가지고 아지트로 돌아오다가 마덕산이는 그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황협군순찰대의 검문을 받았었다. 그는 그동안 일이 계속 순리로왔던 까닭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경각심이 풀려 좀 느슨해졌던것이다. 몸수색을 당하게 되자 마덕산이는 칼물고 뜀뛰기를 아니할수가 없게 되였다.

(몸을 뒤지면 빠라묶음이 나오구 또 권총이 나올것 아닌가!)

그는 번개같이 권총으르 빼여 막 옷자락에 손을 대는 놈의 배때기를 한방 갈겼다. 그놈은

<<악!>> 소리를 지르며 두손으로 배때기를 부둥키고 두무릎을 꿇으며 엎드러졌다. 마덕산이는 날쌔게 몸을 빼치여 칼박고 삼간뛰기로 도망질을 쳤다. 등뒤에서

<<저놈 잡아라!>> 소리와 호르래기소리 그리고 총성이 뒤섞여 일어났다. 죽어라 하고 뛰는중에 갑자기 앞길에 전투모를 쓰고 총을 든 일본병들이 나타났다. 마덕산이는 그놈들을 피하여 얼른 옆골목으로 빠졌다. 그러나 얼마 아니 가 가지고 또 골목이 메게 마주 달려들어오는 한무리의 적병과 맞다뜨렸다. 궁지에 빠진 마덕산이는 어느 길가집에서 지붕을 고치느라고 벽에다 사다리를 기대여놓은것을 보고 얼른 달아가 그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바라올랐다. 지붕우에서 얼쩡거리던 기와쟁이와 그 조력군이 권총을 손에 든 놈이 지붕으로 올라오는것을 보고 초풍하여 대번에 무릎들을 꿇고 부들부들 떨었다. 마덕산이는 손을 내저으며

<<겁내지 마시오, 겁내지 마시오!>>

안심을 시키고 곧 지붕으로 지붕으로 건너뛰기 시작하였다. 얼마동안 건너뛰다가 지붕이 다하여 아래를 굽어보니 거리와 골목이 일본군과 황협군 그리고 경찰과 구경군들이 바글바글 긇고있었는데 입입이 웨치는 소리가 다 자신을 잡으라는 소리였다. 옴치고 뛸데라고는 없었다. 지붕우에서 발깍 뒤집힌 한단거리를 내려다 보며 마덕산이는 자신의 운이 다한것을 깨달았다.

(에라, 이럴바엔 혁명전사다운 최후를 마치자!)

결심을 내리자 그의 눈앞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지하신 모습이 클로즈업되여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아직 미장가전의 로총각이였다.

마덕산이는 몸에 지녔던 삐라묶음을 꺼내여 잽싸게 노끈을 끌렀다. 그리고 길바닥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쳐다보며 술렁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삐라를 냅다 뿌렸다. 삐라가 확 퍼져 분분히 흩날리는것을 보고 마덕산이는 손에 든 권총을 피줄이 펄떡펄떡 뛰는 저의 관자노리에 갖다대였다. 이어 한방의 총성이 모든것을 앗아가버렸다.

남경 화로강에서부터 불러내려온 추도가 <<산에 나는 까마귀야>>는 쏘련인민들이 레닌을 추보하여 부르는 노래에다 가사만을 같아붙인것이였으므로 조선의용군의 독자적인 추도가를 제정할 필요가 있어 그 임무가 선전부에서 내려졌다. 서선장이가 가사를 맡아 짓고 류신이가 작곡을 담당하게 되였는데 딱한것은 악기명색이 하모니카 하나밖에 없는것이였다. 류신이가 그토록 소중히 간직하던 깽깽이-바이올린은 날벼락같은 반<<토벌>>통에 박산이 나버렸던것이다. 선장이와 류신이가 새 추도가를 온양하는중에 뜻밖에 마덕산이의 흉보가 날아들었다. 적들이 한단거리에 <<적비>>라고 쓴 패말을 세우고 그밑에다 마덕산이의 시체를 사흘동안 기시경중(弃市警众)하였다는 말을 듣고 선장이는 속이 얼얼하였다. 그는 마덕산이와 군교때부터 단짝이였다. 강남전선에서도 줄곧 같이 화선을 넘나들었었다. 마덕산이는 경상남도 창원사람으로 <<새타령>>을 사투리말로 <<새까 새까 날아든다>>하고 잘 불렀었다. 그는 락천가였다. 혁명적랑만주의자였다. 단작인 선장이에게 수삼차나 자신의 실련담-어떤 처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코빵맞던 이야기를 하고는 매번 다

<<고년의 가시내.>> 하고 쓴웃음을 웃군 하였었다. 그 딱친구 마덕산이의 추도회에서 부른 추도가를 자신이 짓게 될줄은 선장이가 어찌 알았으랴!

사나운 비바람이 치는 길가에
다 못 가고 쓰러지는 너의 뜻을
이어서 이룰것을 맹세하노니
진리의 그늘밑에 길이길이 잠들어라
불멸의 영령

동욕거리와 상무촌 사이에 자그마한 문루 하나가 서있다. 그 문루우에 올라가 나란히 앉아 류신이가 하모니카로 같은 절을 자꾸 되풀이해 불며 작곡에 열중하는 동안 선장이는 턱을 괴고 깊은 회상에 잠겼다. 마덕산이와 함께 겪은 가지가지 일들이 그의 머리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태항산으로 들어오기전에 림현의 물귀한 마을에서 비물로 샤와욕을 하다가 갑자기 비가 그치고 해가나 온몸이 비누졸임이 된것을 보고 선장이가 배를 부둥키고 웃었다고 골이 나 눈을 흘기며 두덜두덜하던 마덕산이의 모습이 선하게 안겨왔다.

(그때 마덕산이는 나를 저렬한 인간이라구 타박을 했었꺼니.)

생각하자 선장이는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마덕산이는 더운 사람이였다. 정이 두터운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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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이야기 (♡.226.♡.47) - 2023/11/12 13:46:11

휴일에 수고 많으십니다..

로즈박 (♡.43.♡.108) - 2023/11/12 20:14:25

요즘 좀 바빠가지고 오늘에야 여유가 생겨서 몰아서 봅니다..
편안한휴일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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