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61

더좋은래일 | 2023.11.12 18:29:05 댓글: 1 조회: 301 추천: 5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063


61

찬환경내의 야초만은 태항산록에서 불과 10여리 떨어진 장거리인데 일본군은 거기다 태항산항일군거지를 겨낭하는 전초기지-거점을 구축해놓고 시시로 <<토벌대>>를 출동하여 근방의 촌락들을 교란하군 하였다. 팔로군에는 이때 항공기는 물론이요 례사 산포, 야포도 없는터이라 적의 가시철조망으로 둘린 포대를 공격하여 뿌리를 뽑아버리자면 엄청난 희생이 날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의용군 참모장 김봉구와 새로 편성된 제1지대를 령솔하는 지대장 반해량은 태항산중의 장거리 정욕에서 우군부대의 지휘원들과 함께 작전회의를 가지고 구체적인 방안을 짰다. 그 결과를 김참모장은 제1지대 전원을 마을밖 와지에 모아놓고 둔덕우에는 보초를 세워놓고 조선말로 설명을 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것은 작전계획이 혹시 밖으로 새여나가지 않을가 념려해서였다. 적군의 점령구역에서 가까운 장거리에 사는 주민들을 다 믿을수는 없었기때문이다. 적군과 내통하는 간세배는 백미에 섞인 뉘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원이 몽땅 일본군복, 일본무기로 몸차림을 해야겠습니다. 우군의 군수부문에 로획품 일본장비를 우리의 요구대로 공급해주겠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잠시 일본황군이 좀 돼보잔 말이지요...>>

김참모장이 이렇게 말하자 대원들속에서는 유쾌한 웃음보가 터졌다. 둔덕우의 보초는 그 웃는 까닭을 몰라 잠시 멍하니 와지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행동은 물론 야습입니다. 야초만거점과 찬황본대사이의 군용전화선을 절단하는것으로 시작되는데... 전화선이 끊기면 량쪽이 다... 야초만과 찬황이 다... 이변이 생긴걸 알게 될게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야초만의 적들은 곧 전투태세를 갖출게구 찬황본대에서 즉시 증원대를 파견할게 아닙니까. 적의 증원병력은 우군의 한개 대대 중도에서 저지하기로 이미 약정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전력을 다 야초마을을 습격하는데다만 기울이면 됩니다. 말하자면 도급을 맡은 셈이지요...>>

대원들속에서 또 유쾌한 웃음집이 터졌다.

<<...그러니까 우린 찬황본대에서 달려온 증원부대루 위장을 하구 정정당당하게 쳐놓구 놈들의 포대루 들어가잔 말이지요...>>

이 말에 대원들은 술렁거리며 서로 돌아보고 혹 팔도 뽐내고 어깨도 으쓱으쓱하였다. 구체적인 포치는 반지대장이 하는데 그도 역시 유쾌한 기분이 옮아서

<<증원대장 일본군중의 역은...>> 하고 대원들을 둘러보다가 서선장이에게 눈을 멈추고

<<서선장동무가 맡두룩...>>

말하고 다시 례사 말소리로

<<장교차림을 일없이 잘하십시오. 밤중이라구 대수 차렸다간 듵통이 나기 쉽습니다. 놈들두 바지저고리가 아니니까 반드시 탐조등으루 비춰보구 확인을 하구서야 받아들일테니까.>> 하고 덧붙였다.

며칠이 지나서다. 전투모 철갑모를 쓰고 일본군복을입고 그리고 38식을 들거니 메거니 한 제1지대 대원들은 서로 마주보고 포복절도를 하느라고 볼일들을 못 보았다. 군조(중사)차림을 한 장준광이 차렷자세를 하고 서선장이에게

<<나까무라(中村)쥬이도노(중위님)!>> 하고 경레를 붙이니 중위로 가장한 선장이가

<<아 다나까(田中)군소까(중사냐).>> 하고 거만스레 고개를 한번 끄덕여서 또다시 유쾌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우리 가장무도회나 한번 해보까?>>

<<녀자두 없이?...>>

<<총각, 홀애비무도회!>>

<<아니, 쪽발이무도회...>>

<<와하하!...>>

<<자, 춰라!>>

<<쿵차차 쿵차차...>>

<<하하하!...>>

<<쿵차차 쿵차차...>>

다들 신명이 난것이다. 형명적랑만주의는 언제나 조선의용군과 더불어 있었기때문이다.

조선의용군에서는 조직부성원이건 선전부성원이건 할것없이 다 전투에는 일반대원들과 같이 참가를 하기로 되여있었다. 뿐만아니라 돌격으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지도원이 전투서렬앞에 나서서

<<공산당원은 두발자국 앞으루!>>

명령하여 공산당원들을 앞장세우는것이 관례로 되여있었다. 공산당원들은 그것을 당연한 일로 알고있었다. 솔선하여 적진에 뛰여들지 않는 공산당원은 두었다 무엇할것인가! 그런것은 공산당원의 자격이없는것으로 그들은 알고있었다.

한개 지대의 조선의용군과 한개 대대의 팔로군의 협동작전이 시작되였다. 쪼각달이 헌 이불솜 같은 쪼각더미구름-편적운속을 드러갔다 나왔다 하며 숨박곡질을 하는 초가을밤, 찌륵찌륵 풀벌레 우는 소리가 마냥 구슬펐다. 팔로군분대는 찬황에서 륙칠마장 떨어진 다리목 좌우에 매복을 하고 어김없이 쏟아져나올 증원대를 요격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조선의용군은 야초만에서 네댓마장 떨어진 곳에서 전화선을 절단해놓고 한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찬황본대에서 증원을 온것처럼 속여가지고 포대의 문을 열게 하자는 꾀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전화선을 끊어놓고 때를 기다리는중에 희미한 달빛아래 큰길을 따라 한마리의개가 야초만쪽으로 쏜살로 달려오는것이 눈에 뜨인것이다.

<<저거 군용견 아니야?>>

<<맞다.>>

<<쏴라!>>

칠팔명 사람이 그 군용견을 향하여 란사를 하였으나 개는 맞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살살 기다가 별안간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큰길을 벗어나서 들판으로 내달았다. 눈 깜박할 사이에 군용견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고거 참, 훈련이 제대루 됐는걸.>>

<<놓쳐버렸으니... 이걸 어쩌지?>>

<<찬황본대루 쪽지를 전하러 간게 틀림이 없는데...>>

여럿이 지껄이는중에 동쪽-찬황쪽에서 불시에 총성이 크게 일어났다. 보나마나 우군의 대대가 찬황에서 쏟아져나온 적의 증원병을 족쳐부시는 소리일것이다. 콩볶듯하던 총성이 뜨음해지기를 기다려가지고 서선장이를 선두로 한 의용군의 대오는 야초만포대를 향하여 급행군하는 시늉을 하였다. 불안에 싸여 증원대가 와주기만을 고대하던 포대의 보초장이 큰길에서 차츰 가까와오는-일부러 들으라고 내는-뭇사람의 발자국소리를 듣자 급히 탐조등을 켜가지고 비추어보며

<<다레까(누구냐)?>> 하고 날카롭게 수하를 하였다. 탐조등의 광망에 눈이 부신 서선장이가 손채양으로 눈을 가리며 일본장교의 위엄스러운 목소리를 꾸며가지고

<<이상 없느냐?>> 하고 빈틈없는 일본말로 꾸짖듯이 되물으니 포대우의 보초장은 반가운 목소리로

<<녜. 이상 없습니다. 상관님!>>

여공불급하게 대답하고 잇달아서

<<잠간만 좀 기다려주십시오, 곧 소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하고 분주히 서두르는 눈치였다. 탐조등불빛에 제 눈으로 확인을 한 일본국복과 일본총칼 그리고 제 귀로 분명히 들은 장교의 거만스럽고 위엄스러운 일본말에 보초장은 이것저것 더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지 않은 모양이다. 고마운 증원대로 믿어의심을 하지 않는것이다.

지체없이 소대장의 지휘로 포대의 육중한 문이 안으로 열리며 곧 병사들이 나와 통로를 가로막았던 장애물(가시철조망바리케드)을 들어옮겼다. 증원대가 들어올 길을 틔워놓은것이다.

<<이거 밤중에 수고 많으십니다.>>

말하며 반가이 앞으로 나와 맞아들이려는 소대장을 선장이는 제잡담하고 권총으로 쏘아눕혔다. 그것이 돌연적습격의 신호로 되였다.

불의의 습격을 받고 경황망조하면서도 완강히 저항하는 적병과의 육박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휘관이 선등으로 거꾸러진 까닭에 그들은 대가리 없는 룡이 돼버렸던것이다.

접전이 끝난 뒤에 보니 생포된것은 중상자 하나와 경상자 둘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장렬한 개죽음들을 하였었다. 장렬한 개죽음이라고 밖에는 달리 더 어떻게 형용을 할수가 없는 죽음들을 하였었다. 주관적으로는 장렬하였지만 객관적으로는 너절하였으니까.

가짜일본군-의용군 대원들은 얼굴에 피가 튀고 군복이 피에 젖고 또 날창에 피칠들을 하여 서로가 보기에도 무시무시하였다. 선장이는 죽어넘어진 적병들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한놈의 집낭속에서 수지본(문고본) 책 한권을 얻어보았다. 무조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태항산에는 책이 여간만 귀하지가 않았기때문이다.

적군의 증원대를 물리쳐서 작전임무를 완수한 우군부대가 큰 손실을 입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렇게 깔끔한 승리는 극히 드문 일이였다. 실전에서는 주도세밀하게 짠 작전계획도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때문이다. 두 부대가 함께 달려들어 포대를 철저히 파괴한 연후에 불까지 콱 질렀다. 리정호는 두어사람을 데리고 거리안을 온데 돌아다니며 대(对)적군삐라를 붙이느라고 분주하였다. 철퇴할 때 팔로군의 한개 소대는 포대에서 초간히 떨어진 부속건물에서 위안부 너덧을 붙들어가지고 갔다. 그것들도 침략자로 간주하는 모양이였다. 로획한 무기, 탄약 및 기타 장비가 몇무더기 잘되는것을 적아 량군의 부상병들과 함께-량민증을 앞가슴에 단 야초만의 백성들을 운력을 시켜가지고-들것, 멜대 따위로 다 실어날랐다.

밝는 날 코가 비뚤어지게 실컷 자고 눈들을 떠보니 다저녁때다. 선장이가 생각이 나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로획품 수진본(문고본)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그 표지에 찍힌것은 일본글이 아니고 한글이다. 김동인이 단편집이였다. 표지를 번져보니 안표지에 네모난 도장 하나 찍혀있는데 한문자로 넉자 김전학성. 선장이가 기가막혀 머리가 떨떨해졌다.

(그럼 그게 조선사람이였나? -지원병이였구나!)

(아무리 모르구 한 일이라두... 이역만리에서 동포를 죽이다니!)

선장이는 야릇한 비애에 잠겼다.

이틀날 그 단편집중에서 <<발가락이 닮았다>는 매우 기발한 제목의 단편 하나를 우선 읽어보았다. 선장이는 읽으면서도 또 읽고 나서도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성병으로 생식기능을 상실한 한 남자가 행실이 부정한 그 안해의 낳아놓은 아이를 자기 아이로 믿으려고 애를 쓰는데 닮은데가 하나도 없어서 무진 고민을 한 끝에 마침내 아이의 발가락이 저를 닮았다고 내 아들이 틀림없다고 좋아하는 내용이였다. 선장이는 망국의 비운을 아랑곳없이 너절한 소설을 써가지고 민중의 의지를 마비시키는 부르죠아문인들의 소행이 가증스러웠다. 선장이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고있을즈음에 불시에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일어나 나가보니 우군부대에서 야쵸만습격때 붙들어온 위안부넷을 조선의용군에 떠맡기로 왔었다. 몸에 야한 색갈의 화복-일본옷을 입고 머리는 쑥바구니가 된 녀자 넷이 어줍은 모가짐으로 마당가에 서있었다. 일본녀자인줄 알고 붙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조선녀자드이라는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맡으라는것이였다. 뜻밖의 선물에 반지대장이 어이가 없어 한동안 쓴웃음만 웃고 섰다가 할수없이 인수를 하는데 마지못해 인수증까지 써주었다. 상대방이 그것을 요구해서였다.

<<싱거운 자식들, 부질없이 저런건 무엇하러 붙들어오누!>>

<<글쎄나 말이지. 저희가 붙들어왔으면... 구워먹든 삶아먹든... 저희가 할게지...>>

<<저 주체궂은것들을 데려다간 어떻거지?...>>

<<낸들 아나? 대장이 어떻게 처리할테지.>>

<<아야야, 인물이 어쩌면... 저 지경들 못났니?>>

<<메주야 호박이야... 절구통이야?>>

선장이가 다시 보니 아닌게 아니라 개개다 추녀였다. 추녀도 이만저만한 추녀가 아니였다. 박색중의 상박색들이였다. 옆에 섰던 리정호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선장이와 마주보고 쓴웃음을 웃었다.

<<적의 포대를 치러 나왔다가... 이런 덤을 받게 될줄을 누가 알았어?>>

<<세상사란 다.>> 하고 선장이는 생활의 철리를 깨닫기라도 한것 같은 대꾸를 하였다.

<<맺주끊은듯이 가쯘하겐 되지를 않는 모양이지?>>

주체궂은 네 녀자는 곧 등용지휘부로 호송이 되였다.

제1지대는 달포가량 찬황일경을 전전하다가 길가 풀덤불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을무렵 일단 동욕지휘부에 귀환을 하였다. 동욕에 당도해보니 석고산에 나가있던 독립지대도 사나흘 먼저 돌아와있었다. 그동안에 네 녀자는 김위와 장옥연 그리고 전보경과 송일엽이 주로 맡아 교양을 하였다. 또 무안에서 붙잡아온 헌병대통역 류동호는 박문이가 책임지고 또 교양을 하였었다. 네 녀자의 이름은 무슨 순이 무슨 옥이... 거의다 비슷비슷하여 까딱하면 섞갈렸다. 그 이름이 서로 비슷비슷한 녀자들에 대하여 장옥연과 송일엽은 선장이와 리정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아주 불쌍한 녀자들이예요. 두메산골에서 자라서 소학교두 못 다녀봤다지 뭐예요. 가난에 쪼들리다 못해 팔려나온 녀자들이예요. 인물이 미우니까 후방에선 팔리지 않구... 그래 전방으로 밀려나온거래요. 전방에선 기갈이 들어가지고 인물을 가리구 사리구 할 계제들이 못된다나요. 그 무지스런 녀석들을 하루에 이삼십명씩, 삼사십명씩 치르구나면 허리를 통 쓸수가 없다잖아요. 밥먹을 틈두 없어가지구 누운채 주먹밥으루 끼니를 에우는 때가 종종 있다는거에요. 이게 그래 인간생지옥이 아니구 뭐겠에요. 지내보니까 어찌나들 순박한지... 곧 산속에서 자란 도리지나 더덕이예요. 그렇게들 꾸밈없구 직실하구... 천연스럽단 말이예요.>>

장옥연의 이야기에 송일엽이 발을 달았다.

<<그러구 일들을 어찌나 잘하는지...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어느 상머슴군이 따라오겠어요. 우리따위는 애당초에 두름으루 엮어두 안된다니까요.>>

<<일본강도놈들에게 무참히 짓밟힌 희생양이 아니겠어요? 그런 녀자들을 인물이 좀 못생겼다구 해서... 천하구 배운게 없다구해서... 우리가 업신여겨 차별대우를 한다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예요. 안 그렇게들 생각하세요?>>

<<나두 절대루 그 녀자들편이예요. 모두들 성병이 있어가지고 하루 걸러루 병원에를 다녀야 하니,,, 얼마나 가엾어요... 정말이지.>>

선장이과 리정호는 인간수업에서 한 과를 더 배운것 같아 숙연들해졌다.


몇해후, 류동호가 화선입당을 할 때의 술회

<<...저는 정말이지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노릇을 하는데 부끄러운 일이라는걸 몰랐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일본헌병대의 통역노릇을 하는걸 영광으루 생각하고 자랑으루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게 처음 붙들려왔을 때는 반감과 증오심으루 가슴이 막 터질것 같았습니다. 금세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팔로군의 군복을 보나 미투리를 보나 또 무기를 보나... 깔보이기만 했습니다.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저 꼴을 해가지구두 또 전쟁을 하겠다구?) 다 온전한 사람으루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정말 무슨 비적떼 같아만 보였습니다.>>

(이때 조선의용군의 군복과 무기도 팔로군과 똑같았었다. 단지 기발-깃발-만은 태극기를 들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습니다. 시사보고란걸 한다구 저더러두 같이 앉아 들으라구 해... 머리를 수굿하구 한옆에 가 앉아 들었습니다. 무슨 개나발을 부나 어디 한번 좀 들어보자 하는 속셈이였지요. 그런데 놀랍게두 그렇게 하찮아보이던 사람의 입에서 다아다넬즈해협이 어떻구 비시정권이 어떻구 하는 소리가 튀여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분석이 명확하구두 또 세밀하지 뭡니까. 론리가 정연하지 뭡니까.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의외로와... 혀를 홱홱 내둘렀습니다. `저런거 다 여기 있었는가!` 하구 말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고패를 빼기 시작했습니다. 차차차차 그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교양을 거쳐가지고 자신의 전비를 뉘우치게 됐습니다. 철저히 뉘우치게 됐습니다. 아는것이 힘이였습니다. 혁명대오는 정말루 못쓸것을 녹여서 쓸것으루 만드는 도가니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자기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씻어버리려구 항일전쟁에 용감히 뛰여들었습니다. 물불을 헤아리지 않구 전투서렬에 섰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태항산은 감고장일뿐만아니라 호두고장이기도 하였다. 산과 골짜기가 온통 감나무와 호두나무로 뒤덮여있었다. 그리고 집들은 거의다 평지붕이였다. 집집마다 그 평지붕에다 감을 널어 말릴때는 온 마을이 빨간 지붕천지로 변하여 마치 무슨 동화의 세계에라도 들어선것 같은 정취를 자아내였다. 그렇지만 산서군벌 염석산의 통치시기에 세금을 10여년분씩이나 앞당겨 징수를 당한 백성들의 살림은 마련이 없었다.

어느날 장준광이가 뒤산 골짜기에 흐르는 실도랑으로 내복가지를 빨러 나갔다. 이때 동욕거리에 나가면 세수비누는 파는것이 없어도 빨래비누는 파는것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 그 <<일광표>>빨래비누는 세수비누로도 쓰이였다. 치솔은 다 모지라진것에다 웃돈을 얹어주면 재생품 하나를 바꿀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슨 회가루 같기도하고 또 귀리가루 같기도 한 정체를 알수 없는 치분명색도 파는것이 있기는 하였다. 장준광이가 화장, 세탁 량용비누로 빨래를 다하고 일어서니 출출한지 허전한지 아무튼 배속이 좀 공허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또 바로 맞은켠 산밑에는 먹음직스러운 감들이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서있지를 않은가. 기회를 노려고있던 요사한 악마가 옳다구나 하고 장준광이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괜찮다니까. 슬쩍 몇개 따먹으면... 누가 알거라구?>>

<<서우기>>에 나오는 저 유명짜한 조연배우-저팔계도 왕왕 이런 악마의 속삭임에 마음이 흔들리군 하지 않았던가. 장준광-20세기의 저팔계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고만 깜박 속아 아차실수로 계률을 깨뜨리게 된것이다. 팔로군부대에서는 백성들의 지푸래기 하나도 건드려서는 아니된다는 군률이였다.

장준광이가 감을 따먹을 마음이 골똘하여 실도랑을 훌쩍 건너뛰여 감나무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손을 뻗쳐보았으나 나무가지가 생각밖에 높아 손이 잘 닿지를 않았다. 그래 그는 몸을 바짝 움츠렸다가 풀떡 뛰여오르며 번개같이 한개를 움켜땄다. 멋진 동작이였다. 완전한 성공이였다.

의용군에서는 매 토요일날 밤마다 각 분대별로 생활회를 가졌었다. 다들 자신의 지난 한주일 동안의 잘못을 내놓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날 장준광이는 별로 내놓을만한 거리가 없어서 그저 씁습한 얼굴로 앉아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까 맞은편 앉았던 <<가물치>> 림평이가

<<준광동무는 뭐 말할게 없습니까?>> 하고 재촉하는 어투로 묻는것이였다. 장준광이는 사람이 워낙 좀 데면데면한축이라 그 묻는 뜻을 한번 새겨보지도 않고

<<녜 뭐 별루 말할게 없습니다.>>하고 례사롭게 대답하였다.

<<그럼 내 한가지 좀 물어보겠습니다. 내가 빗봤는진 모르겠지만... 지난 화요일날 낮전에 어떤 사람이 저 뒤산 실도랑 건너 감나무밑에서... 롱구려습을 하는것 같던데...>> 하는 림평이의 익살맞은 말에 장준광이는 비로소 깨도가 되여

<<아 녜.>> 하고 얼굴이 대번에 홍당무우가 되였다.

어느날 서선장이가 머리를 좀 감으려고 내가에를 나오보니 거기에는 벌써 먼저 나와 머리를 감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땅딸보>> 문명철이였다. 선장이가 다시 보니 아 이런. 그 보기 좋던 반고수머리를 홀딱 깍아 민대머리가 돼버리잖았나!

<<아니 어떻게 된 셈이야? 갑자기 속세가 싫어져 중이라도 돼볼 생각인가?>>

선장이가 웃으며 물어보니 문명철이는 막 삭도질하여 새파랗게 돈 중머리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며

<<겨울엔 더운물이 없는데... 머리 감기가 귀찮잖아?>> 하고 게면스레 쓴웃음을 웃었다.

<<땅딸보가 다르긴 하다.>> 하고 선장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럼 봄에 나가선 어떻걸 작정이야?>>

<<봄에 나가선? 봄에 나가서야 또 기르지 뭐.>>

<<가을이 되면 홀딱 깎구 본이 되면 또 기르구?>>

<<응.>>

<<인제 알구보니 네가 사람이 아니라 락엽교목이구나. 감나무따위, 호두나무따위.>>

<<감나무, 호두나무두 좋지그려, 나만 편하다면.>>

두 사람은 마주보고 껄껄 웃었다. 국민당통치구역에서는 더운물 걱정을 아니해도 되고 또 끼니마다 조다짐, 옥수수다짐을 아니해도 되였다. 그렇건만 그들은 자진하여 이 태항산으로 들어왔고 또 태항산의 빈궁을 달게 받았다. 아니, 오히려 그 빈궁을 자부심을 가지고 대하였다, 영광스럽게들 생각을 하였다.

태항산의 농민들의 가을걷이는 말 그대로의 일대 전역이였다. 신문은 련일 적의 <<토벌>>이 림박했으니 일손을 다그치라고 경종을 울리고 그리고 일을 도와나선 군대들은 손에 손에 낫을 들고 곡식밭으로 내달았다. 나무잎과 풀이 무성할 때 적들은 감히 태항산 깊은 골짜기를 넘겨다보지 못하였다. 우거진 숲속에서 날아오는 저격탄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기때문이다. 하여 잎이 지고 풀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쳐들어오는것이였다. 그러므로 가을걷이는 반(反)<<토벌>>작전의 서막이였다. 농민들은 군대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번개같이 타작한 곡식들을 모두 자신들만이 알고있는 산속 은밀한 동굴속에다 갖다 감추었다. 적들이 쳐들어와서도 들추어내지 못하게. 실상 열에 아홉쯤은 들추어내지 못하였다. 곡식을 다 치우고나면 젊은 농민들을 민병으로 일변하여 총을 메고 교련을 하고 사격련습을 하였다. 그리고 쇠물을 부어서 지뢰를 만들었다.

조선의용군의 각 지대도 각 군분구로 갈리여 떠나갔다. <<집중된 적의 력량에 대하여 재빠른 분산으로>>-이것이 팔로군과 의용군의 유격전법이였다.

의용군의 각 지대는 정도에 오르기전에 들고 나갈 기발(깃발) 문제로 한바탕 곡절을 겪었다. 혈기방장한 젊은축들이 망치와 낫을 수놓은 붉은기를 들고 나갈것을 강경히 주장해나섰기때문이다. 총사령 김무정과 정치위원 박일운은 단독으로 결정을 짓기가 어려워 팽덕회동지를 찾아가 함께 의논하였다.

팔로군총사령부에서 돌아온 박일운은 팽덕회장군의 의견을 자중하여 이렇게 강경파를 설득하였다.

<<팽장군의 의견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가 망하기전에 쓰던 기발이 무슨 기발이였는가구 물으시기에 태극기였다구 우리가 대답을 올렸더니... 그렇다면 지금두 그 기발을 써야지요. 그래야 호소력이 있을것 아닙니까. 조국을 광복하자면 민중이 익히 아는, 전민족이 익히 아는, 민족독립의 상징으로 될만한 기발을 내세워야 할게 아닙니까. 그래야 민중이 기꺼이 따라올게 아닙니까. 붉은기는 아무리 좋더라두 민중의 눈에는 설단 말입니다. 민중을 리탈하기가 쉽습니다. 조선의용군의 젊은 군들이 너무 좀 급진적이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구 팽장군은 허허 웃으십디다. 그리구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 홍군두 국민당과 통일전선을 뭇느라구 국민혁명군으루 개칭을 하구 붉은별 모표를 떼기루 했을때 숱한 전사들이 눈물을 뿌리며 불응했지요. 그렇지만 혁명의 길은 직선이 아니구 곡선이니 어떻겁니까. 그러니 돌아가 젊은 군들을 잘 설복해가지고... 태극기를 높이 쳐들두룩 하십시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나중에 할 일이구 우선 나라의 독립부터 쟁취를 해놓구봐야잖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며 팽장군은 답답한듯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십디다. 그러니 동무들두 머리를 좀 식혀가지구 다시한번 생각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조선의용군의 각 지대가 태극기를 높이 추켜들고

<<조선독립 만세!>>를 목청껏 웨치며 싸움터로 달려나간 리면에는 이와 같은 곡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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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신사 (♡.173.♡.19) - 2023/11/13 10:12:29

잘 읽었습니다.수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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