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6

더좋은래일 | 2023.10.31 08:46:47 댓글: 1 조회: 317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3343


36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이 주방이고 오른쪽이 식당인데 식당에는 헌 각탁이 두개 덩그렇게 놓였을뿐 걸상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두 상에 각각 국 한소래기, 반찬 네접시씩 벌여놓였는데 밥을 담은 우에다 나무주걱을 올려놓은 대멱서리는 두 상 사이의 땅바닥에 놓였었다. 밥은 풀기 없는 쌀밥으로 제각기 떠먹게 되였으나 반찬은 제한이 되여있었고 또 그 질도 변변치 못하였다. 고기반찬은 하나뿐이고 그외는 모두 두부, 당면, 무우, 시금치 따위였다. 급기야 식당에 모인 전원이라는것을 보니 선장이까지 쳐서 모두 여덟 사람뿐이였다. 조경산이 지도원의 자격으로 여러 사람에게 간단히 새로 온 서선장동지를 소개한 뒤에 곧 한상에 넷씩 둘러서서 식사를 하였다. 선장이는 난생처음 서서 밥을 먹어보았다. 후일 군대에 들어가 반찬그릇을 땅바닥에 놓고 먹을 때에야 비로소 상에다 놓고 서서 먹는것쯤은 신사놀음이라는것을 깨달았지만 이때는 속으로 여간만 우습지가 않았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을 때 씨동이를 보고 조용히

<<여기선 걸상 하나두 없어서 다들 그렇게 밥을 서서 먹소?>> 하고 물었더니 씨동이는 가장 재미나는 질문을 받은것처럼

<<임마, 선술집이란게 있는 세상에 선밥집이라구 왜 없겠니?>> 하고 하하 웃었다. 씨동이가 선장이가 한 말을 큰소리로 옮겨들리니 다른 사람들도 하하 웃고 제각기 흩어져 낮잠들을 자러 갔다. 씨동이가 자신의 거처하는 방으로 선장이를 데리고 들어가 임자없는 침대 하나를 가리키며

<<이제부턴 저게 네 침대다, 우선 한잠씩 자구나서 보자.>> 하고 눕는 길로 곧 잠이 들었다.

선장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침대우에 번듯이 나가누웠다. 눈이 말똥말똥해가지고 보꾹에 걸기설기한 거미줄을 쳐다보았다. 어떡하다가 소르르 잠이 들어 꿈같지도 않은 꿈을 꾸는데 쌍년이가 원산바다가 잔교다리목에 서서 빨리 오라고 손길을 치길래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쫓아가보았더니 쌍년인줄 알았던것이 쌍년이가 아니고 송일엽이였다. 어찌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중에 송일엽이 상끗 웃으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깜짝 놀라 잡힌 손을 뿌리치다가 뿌리치는 손이 무엇엔가 부딪치는통에 잠이 깨였다. 눈을 뜨고 옆의 침대를 보니 씨동이는 그저 자는데 코까지 골고있었다. 선장이가 삐걱거리는 침대우에서 벽을 향하고 돌아누워 잠을 청하였으나 잠은 영영 달아나버리고 다시 오지 않았다. 이윽고 마당에서 호르래기소리가 호르르 나는것이 아마 기상신호인 모양이였다. 씨동이가 벌떡 일어나 줄에 걸린 세수수건을 벗겨들며 선징이더러도 나가자고 하였다. 마당에 나서니 이 방 저 방에서 사람들이 세수수건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도랑에 나가 세수를 하여 잠기를 가셔버린 뒤 다들 멋없이 길고 우뚝한 집으로 들어가는데 선장이도 따라 들어갔다.

허술한 륵목, 철봉, 륜, 목마, 고리틀, 모래주머니 따위를 갖춘 체육관 명색이였다. 철봉대에 매달리는 사람에, 줄뛰기를 하는 사람에, 모래주머니에다 주먹벼락을 안기는 사람에... 제각기 운동들을 하는중에 씨동이가 선장이의 팔죽지를 잡아끌고 열려있는 뒤문으로 해서 뒤곁으로 나왔다. 산밑에다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모양의 과녁을 서너개 세운외에 또 말장 서너개를 벌려 박고 상중하 세층으로 빨래줄 같은 줄을 건너매였는데 그 줄들에는 각각 손바닥만한 널쪼각 하나씩 매달렸었다. 그 널쪼각들로 여러겹의 동그라미가 그려진것이 역시 과녁인 모양이였다. 여러개의 도르래에 걸린 줄들은 맨끝의 말장에 늘어뜨린 줄을 잡아당기면 널쪼각을 단채로 왔다갔다하게 되였었다. 씨동이가 시범동작처럼 그줄을 당겨보이면서

<<여기가 사격장이다. 그리구 이것들은 과녁이다... 가동과녁. 사격련습을 할 때 저 고정과녁을 쏠라면 그냥 쏴두 되지만... 이과녁... 이 움직이는 과녁을 쏠라면 꼭 사람 하나가 옆에 와 붙어서서 이 줄을 잡아당겨줘야 한다. 이렇게...>> 하고 설명을 해주는것이였다.

<<대단한 원시적이구려.>>

<<원시적이라니?>>

<<락후하단 말이요. 현대적이 못된단 말이요.>>

<<경비가 부족하니 할수 있니. 다 제 나라가 없는탓이다.>>

선장이는 잠자코 씨동이의 한 말을 속으로 되새겨보았다. 씨동이가 중동 끊긴 설명을 마저 하였다.

<<처음엔 고정과녁으루 련습을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는 가동과녁으루 해야 한다. 난 벌써 그전에 졸업을 했다. 그렇지만 상해에서 하이알라이를 떨다가 한번 붙잡힌 까닭에 놈들에게 얼굴을 알려놔서 인제 당분간 제일선엔 나서지 못하게 됐다. 그래 여기서 림시 보조원노릇을 하구있다.>>

<<그럼 형님이 날 가르쳐주우?>>

<<처음 한동안은 아마 내가 가르치게 되겠지.>>

<<그럼 우리 지금 당장 시작을 해봅시다, 실탄사격을 못해봐 손이 근질근질하우.>>

<<급하기는 우물에 가 숭늉 달라겠다. 지금 당장은 몸단련부터해야 하니까. 들어가자. 들어가 줄뛰기부터 해보라.>>

선장이가 이날 오후 한나절을 줄뛰기와 철봉에 매달리는것으로 보내였다. 저녁에는 새로 온 동지를 환영한다고 별찬을 장만하고 또 술을 받아다가 환영연 명색을 베풀었는데 정작 잔치의 주인인 선장이는 독한 술내가 싫어서 한모금도 아니 마시고 다른 사람들이 권커니작커니 실컷들 마셨다. 술들이 거나해진 뒤에 마당에다 모기불을 놓고 둘러앉아 쪼각달을 쳐다보며 노래들을 부르는데 선장이로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애원스럽고 비장한 노래였다.

풍산로숙 몇몇해냐 이역의 하늘아래

애된 테너가 망명생활의 신산을 하소연하면

꿈에도 그리운 고국산천은 의구하련만

씩씩한 바리톤이 남아대장부의 기개를 떨치려는데

이족의 철제밑에 신음하는 겨레들아

풍상 겪은 베이스가 탄식해마지않으니

이 노래를 듣느냐 이 원한 맺힌 노래를

높고낮은 목소리들이 서로 얼싸안고 사나이의 울음을 터뜨린다.

선장이는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보꾹도, 걸상이 하나 없는 식당도, 허술한 체육관도, 원시적인 삭격장도 다 잊었다. 그따위 시시한것들은 귀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들어오는 노래소리에 허접쓰레기처럼 다 씻기여 떠내려갔다. 옆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대수로와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포장이 조잡한 상품처럼 값이 없어보이던 사람들이 개개 다 고상한 성품을 지닌 애국투사로 보이고 또 소박한 영웅으로 보였다. 가까운 벗으로 생각히우고 또 미더운 동지로 생각히웠다. 선장이는 인제 자신도 완전히 녹아서 그들속으로 스며들어가 섞인것 같았다.

노래가 일단 끝이 나고 한담들 할 때 조경산이 북벌전쟁에 참전하였던 이야기를 꺼내였다. 선장이가 북벌이란 말의 뜻을 몰라서 옆에 앉았는 씨동이에게

<<뭐요 북벌이라는게?>>하고 소근소근 물어보았더니 씨동이도 역시 가는 목소리로 소근소근 설명을 해주는것이였다.

<<지금으루부터 오륙년전에 있은 전쟁이다. 국민혁명군이 북경의 군벌정부를 타도하려구 일으켰던 전쟁이다. 광동서 출발을 해가지구 북으루 쳐올라왔다구 해서 북벌이라구 한다.>>

<<그 전쟁에 조선사람두 참가를 했더랬소?>>

<<참가하잖구. 들어보려무나 경산동무의 이야길.>>

<<제남성을 공격하는데 그 높은 성가퀴에 선등으루 기여오른게 바루 로을룡이란 말입니다...>>

조경산이 이야기하는 중간에 한 사람이

<<로을룡이가 누굽니까?>> 하고 물어서 조경산은 그 사람을 돌아보며

<<우리 사람이지요. 조선사람.>>

대답해주고 다시 말을 잇는것이였다.

<<이군이 어깨에 기관총을 엇메구 선등으루 바라오르더니 글쎄 그 기관총을 데꺽 벗어서 두손에 받쳐들구 냅다 갈기잖겠습니까. 이렇게 뻣뻣이 선재추 막 쏴재끼더란 말입니다.>>

선장이는 장쾌한 이야기에 끌리여 저도 모르게 엉뎅이를 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중에... 제남을 완전히 해방한 뒤에... 대대 전원이 정렬한 앞에서 대렬검사를 받았지요. 대대장이 `용감한 국제주의전사 로을룡동지를... ` 할 때 난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집디다...>>

<<그때 북벌군엔 조선동지들이 많았습니까?>> 하고 누군가가 물어서 조경산은

<<많았지요. 황포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학생들이 대부분 다 참가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광주봉기때 숱하게 희생이 됐습니다. 우리 사람이.>>하고 설명해주었다.

<<그럼 경산동문 용히 살아남으셨습니다그려.>>

<<용히 살아남은 셈이지요.>>하고 조경산은 빙그레 웃었다.

선장이는 이름난 윤봉길외에 이름없는 조선의 용사들이 숱하다는것을 알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어느날 조경산과 양씨동의 지도밑에 여럿이 권총으로 실탄사격을 하였다. 선장이처럼 고정과녁에다 대고 익히는 신참도 있고 또 가동과녁을 맞추는 고참도 있는데 가동과녁의 줄은 씨동이가 도맡아 당겼었다. 한순을 쏘고나서 다들 땅바닥에 퍼더앉아 우렬장단에 대한 강평을 조경산에게서 듣고있을 때

<<야웅.>>

지붕우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젖히고 지붕을 쳐다보니 무지스레 큰 도둑고양이 한마리가 노란 눈깔을 가늘게 쪼프리고 앙칼스럽게 아래를 노려보고있었다. 알란 포어의 탐정소설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를 방불케 하는 놈이였다.

<<조런 발칙한 놈의 고양이 또 왔네.>>

<<조 눈깔 좀 봐.>>

<<에이 그저...>>

이런 소리들이 지껄일 때 맨뒤에 처져앉았던 씨동이의 손이 피뜩 쳐들리는것 같더니 야무진 총소리 한방이 나며 동시에 지붕의 고양이가 양 하고 껑충 뛰였다가 곧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이것을 보자 강평은 듣다말고 서넛이 후닥닥 뛰여일어나가더니 곧 죽어뻐드러진 고양이를 집어들고 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양이를 보고 선장이는 징그러워 소름이 끼칠 지경인데 옆에서 고참중의 덜렁쇠야만인 하나가

<<야 고놈 먹음직스럽다.>> 하고 입맛을 다시여 사격장은 웃음판이 되였다.

<<어서 껍질을 벗겨라 삶아먹자.>>

<<전기가 찌륵찌륵하는 고기 좀 먹어보까.>>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전기띠기률(대전률)이 높은 동물로 알고있다.

<<개고기하구 어떨가?>>

<<개고기보다 퍽 더 고소하다, 노랜내가 좀 나 그렇지.>>

<<아 고양이두 먹을라네.>>

<<그야 그렇지.>>

<<어서 도랑에 가지구 나가 손질을 해야지.>>

중구난방으로 지껄여대는 바람에 강평은 자연히 뒤전이 되였다. 조경산이 웃으며 일어나 바지궁둥이에 묻은 흙을 터는것으로 이를 묵인하여 실탄사격은 흐지부지 고양이추렴으로 번졌다. 씨동이가 선장이더라

<<너 저아래 구멍가게에 가 술 두어근만 받아오나, 고기추렴에 술이 없어 쓰겠니.>>하고 심부름을 시키여 선장이는 두어마장 떨어진 구멍가게로 술을 받으러 가며 속으로 괴이히 여기기를

(술을 되로 되여 팔지 않고 저울로 달아 팔아? 야 그거 참.)

이날 저녁에 선장이는 자신이 받아온 술만 마시지 않았을뿐아니라 남이 손질을 해 먹음직스럽게 해다주는 고양이고기도 입에 대지 않았다. 께근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양이고기안주를 놓고 술들을 마시며 흥이 나서 서로 지껄이고 웃고 하는것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선장이는 <<로빈손 크루소>>에 나오는 생번들 같다고 속으로 웃었다. 저녁이 끝난 뒤에 또 마당에 모기불을 놓고 둘러앉아 이야기장을 폈다. 선장이가 술기운에 얼굴이 벌개진 씨동이를 돌아보고

<<전기가 찌륵찌륵하잖우?>> 하구 웃음의 소리를 하니 씨동이는

<<찌륵찌륵은 커녕 자릿자릿두 안한다. 정전인 모양이다.>>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사람이 고양이고기를 어떻게 먹소.>>

<<야 얼빠진 소리 좀 하지 말아. 광동사람들은 고양이고기, 뱀고기, 쥐고기, 원숭이고기... 안 먹는 고기가 하나도 없다. 네발 가진건 책상, 걸상만 빼놓구 다 먹구 날아다니는건 비행기만 빼놓구 다 먹는단다. 무슨 소릴 하니.>>

<<이봐 `오델로`, 그 녀자하구 갈라지던 이야기나 한번 더 하라구.>>

옆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청하니 그 오델로라고 불리운 사람이

<<그게 무에 그리 좋은 이야기라구 되풀이루 듣겠나.>>하고 방색하는것을 또 다른 사람 하나가

<<그 잘난 이야기 하나 가지구 비싸게 굴것 무어 있어? 못 들은 사람두 있는데... 한마디 하라면 할게지?>>

타박을 주어 이야기임자는 더 비쌔지 못하고 버릇으로 헛기침 한번을 하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거기서 례배당엘 다니다가 눈이 맞아가지구 서루 죽자살자하게 됐었는데... 이 기집애가 갑자기 맘이 변했거든. 전문학교 다니는 목사 아들의 사각모에 반했지 뭐야. 치마앞에 찬바람이 도는것 같이 쌀쌀하게 구니 내맘이 어떻겠나. 그래 최후의 담판을 하려구 전에두 가끔 다니던 다방엘 갔지. 가서 피차에 툭 터놓구 한번 이야길 해보자구 했지. 그렇지만 이미 맘이 변해버린 기집애하구 툭 터놓으면 무슨 속시원할게 있어. 내 속만 뒤집혔지. 정말이지 눈에서 불이 나더군. 기집애는 새침해가지구 딱 잘라 말하는거야, 이젠 고만 손을 끊자구. 더 뭐 말을 해볼나위두없어. 그래 난 일이 이왕 이렇게 된바엔 작별인사나 한번 톡톡히 해보자 하구 얼른 상우의 빈 맥주병을 거꾸루 집어들구 세멘트바닥에다 한번 탁 치니까 중둥이 뭉청 나가는거야. 그걸루 해끔한 상판대기를 한번 콱 찍어주었더니 기집애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싸쥐고 폭 엎드러지지 뭐야. 피투성이가 됐지. 난 그길루 고향을 하직하구 곧장 중국으루 도망쳐들어왔으니까 모르지 뒤일은 어떻게 됐는지. 그렇지만 그 흉터는 죽는 날까지 가실리가 없으니... 목사 아들두 아마 손을 끊었기가 쉽지.>>

<<나 같으면 작별키스를 하자구 해놓구 코를 꽉 물어떼놓겠다.>>

<<이 식인종 좀 봐라.>>

<<개를 잡으면 날간으루 회를 쳐먹는 인간인데... 능히 할거야.>>

<<잡소리 좀 작작을 지걸여라.>>

한 친구가 목청을 돋우어가지고 수심가조로

코 떨어진 색시라두 하나만 있었으면
이내 신세 이다지 처량하진 않으련만...

하고 노래체것을 불러 이야기판은 웃음판으로 변하였다.

두어주일 지나서 선장이가 가동과녁에다 대고 실탄사격을 하게 되였을 때 개별지도를 해주던 조경산이 이런 말을 해들리는것이였다.

<<이 자동권총은 조선에서 흔히 말하는 륙혈포라는건데... 우리 여기선 주루 암살용으루 사용하지요. 그 리유는 이렇습니다. 이자동권총은 사격을 할 때 탄피를 튀기지 않는 까닭에 혹시 불발탄이 있더라두 격발기를 당겨 총신강에 탄약을 물어내는 동작이 필요 없습니다. 격발기 한번 당겼다 놓는데 무에 그리 어려운가구 생각들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암살이란 일반적으루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눈 깜박할 사이에 해치워야 하는거니까 격발기 한번을 당겼다 놓는다는 군동작이 여간만 큰일이 아닙니다. 왕왕 그런 단순한 군동작 한번에 일이 랑패보는수가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이 자동권총은 불발탄이 있건없건 방아쇠만 당기면 탄알이 나간다는 특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백분의 1초, 천분의 1초를 다투는 위급한 경우에 이것이 얼마나 유리합니까. 뿐만아니라 또 자동권총으루는 보십시오 이렇게... 담담탄을 쓸수도 있습니다. 담담탄... 납탄입니다. 이놈을 한방만 맞으면 제아무리 목숨이 질긴 놈이라두 살기가 어렵지요. 물렁물렁한 납탄이 몸속에 들어가 확 퍼지는데 어떻게 삽니까. 관통을 하면 상처가 나팔모양이 됩니다. 들어간 구멍은 좁지만 나간 구멍은 나팔아가리처럼 돼버린단 말입니다. 그리구 또 연독은 없습니까 연독. 한마디루 말해 살 생각 고만두고 곧장 저승행차를 하라는거지요. 그래서 우린 자동권총을 흔히 암살용으루 씁니다. 그러니 서동무두 자동권총으루 익힐때는 이런 래력을 알구 익히는게 좋습니다.>>

선장이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나서

<<그렇지만 그건 너무 좀 참혹하잖습니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니 조경산은

<<참혹? 일본강도가 우리 민족을 대하는건... 자비롭습니까? 참혹하지 않습니까?>>

되묻고 잇달아서

<<토벌대를 풀어서 부락을 에워싸구... 온 마을에 불을 질러놓구... 불구뎅이속에서 살겠다구 기여나오는 어린것들을 총창으루 찍어서 불속에 들이뜨리는 야수들에 대해... 우리는 인도주의를 베풀어야 합니까?>> 하고 선장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선장이는 그 눈길을 피하여 고개를 숙였다. 귀밑이 빨개졌다. 짧게 단호하게

<<잘 알았습니다.>>

잘못을 뉘우쳤다. 조경산이 비단옷갈피에 끼인 비수 같은 사람이라는것을 선장이가 이때 비로소 똑똑히 알았다.

선장이가 사람이 달리는 속도로 움직이는 가동과녁들을 15메터 밖에서 어지간히 명중시킬만큼 숙달되였을 때 사전에 예고없이 손님 둘이 강녕별장을 찾아왔다. 씨동이가 데리러 와 선장이는 그뒤를 따라 조경산이 거처하는 집으로 갔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운데 <<사로니까행동>>이라는 구절이 귀에 설었다. 들어가보니 남경에 도착하던 날 금릉려사로 선장이를 보러왔던 두 사람이 조경산과 담화를 하고있었다. 30전후의 중국옷차림을 한 여윈 사람을 윤대성이라고 하고 그리고 스물서너살 가량의 양복입은 고수머리를 리정호라고 하였다. 피차에 만난 인사를 나누자 조경산이 바로 선장이를 향하여

<<불일내루 서동무는 여기서의 수업을 마치구 상해루 돌아가야합니다. 그리구 돌아가면 이 두분과 행동으르 같이하게 됩니다. 사로니까행동의 콤피... 조직에서 무어준겁니다. 아무쪼록 잘해서 성공을 거두십시오.>> 하고 말하는데 선장이는 사로니까행동의 뜻을 몰라 좀 어리뻥하였다. 고수머리 리정호가 그 눈치를 채고 웃으면서

<<신영호를 아시지요? 찰스 신... 핀센트 찰스. 그자가 사로니까호의 선장놈하구 결탁을 한 결과 시가 1천만원어치의 엄청난 혜로인이 지금 암시장에 범람을 하구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신영호를 징벌하는 행동을 하로니까행동이라구 이름지은겁니다.>>하고 설명해주는데 옆에서 명태같이 빼빼 마른 윤대성이

<<이번 행동두 총책임자는 역시 리춘근동무지만... 표면에는 나서지 않기루 했습니다.>> 하고 그 말에 동을 달았다. 씨동이가 옆에서

<<나두 가 한바탕 해봤으면 좋겠는데 제기!>> 하고 탄식을 하고 조경산이 웃으며

<<갈아놓은 비수에 녹이 쓸가봐요?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때가올테니.>> 하고 위로하였다.

선장이가 강녕별장을 떠날 일을 이삼일 앞두고 씨동이가 걱정을 하였다.

<<너 꽤 해볼만하니?>>

씨동이 눈에는 선장이가 아직도 원산바다가에서 알몸으로 자맥질하며 뛰놀던 장난꾸러기로 보여 마음이 덜 놓이는것이다.

<<걱정 마우. 능준히 해낼테니.>>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상대편두 다 살아있는 놈들이야. 죽은 송장이 아니란 말이야. 나 잡아잡수 하구 가만있지를 않아. 빈틈없이 짠 계획도 뜻밖의 저애가 생겨가지구 틀어지는수가 여간 많잖아.>>

<<글쎄 괜찮단데두... 두구보구려.>>

선장이가 미지의 모험활동을 앞두고 가슴이 부풀어 하도 패기만만해하니까 씨동이는 더 말을 못하고말았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식의 단계는 씨동이도 거쳐왔었다. 권총 한자루 차고 나서면 세상이 돈짝만해보이던 철부지세월은 씨동이도 거쳐왔었다.

<<그나저나 떠나기전에 실물사격을 한번 해봐얄텐데...>>

<<실탄사격을 그만큼 했으면 됐지 또 무슨?>>

<<이때까지 쏜것은 생명이 없는거... 죽은것들이야.>>

<<아무거든 척척 쏴맞추기만 하면 고만 아니요?>>

<<안 그래. 산거하구 죽은건 완전히 달라. 바깥세상은 강녕별장이 아니야.>>

가을볕이 따가운 잔디밭에 둘이 다 벌렁 나가누워 높고 푸른 가을하늘과 서서히 흘러가는 구름장을 쳐다보았다. 원산항 씨동이네 고기배우에서도 곧잘 이렇게 둘이 나가누워 하늘에서 나는 갈매기떼를 쳐다보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지껄였었다.

<<쌍년이누나가 보구싶잖소?>>

<<보구싶으면 소용있니.>>

씨동이가 두손을 깍지껴 머리밑에 받치고 번듯이 나가누운채 굵은 한숨을 쉬였다.

<<그 누나두 팔자가 험하구려.>>

<<누가 아니라니.>>

<<그렇지만 락심할건 없소. 조만간 나라가 독립을 할테니까... 그때 만나지.>>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 좋으랴.>>

<<왜, 희망이 없소?>>

<<희망이 없기야 왜. 시일이 걸릴것 같으니까 말이지.>>

씨동이가 머리밑에 받쳤던 손을 빼며 곧 벌떡 일어앉기에 선장이도 따라 일어났다.

<<속 상하는 이야기 인제 고만하구 딴 이야기나 하자.>>

<<딴 이야기 무슨 이야기?>>

<<너 그동안 상해에서 지내던 이야기나 좀 해라. 들어보자.>>

<<무어 또 할게 있소... 다했는데...>>

<<송일엽이가...>>

말을 하다말고 씨동이가

<<저놈의 개새끼!>> 하고 허리의 권총을 잽싸게 빼들어서 선장이가 그 눈길이 가는 곳을 바라보니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것이 눈에 띄웠다.

<<옜다 이 총... 어서 쏴라!>>

말하며 씨동이가 얼른 장탄을 해가지고 선장이 손에다 권총을 쥐여주었다.

<<남의 개를?...>> 하고 선장이는 권총을 받아쥐고 미심쩍은 눈으로 씨동이를 쳐다보았다.

<<쏘라면 쏴... 어서!>>

선장이가 마음을 질정하지 못한채 거의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나자 날벼락을 맞은 개가 한번 펄썩 주저앉더니 곧 다시 뛰여일어나 죽어라 하고 내빼는 배때기에 뚫어진 구멍으로 밸이 쏟아져나와 길우에 질질 끌렸다.

<<따라라!>>

소리치고 씨동이가 죽을둥살둥 따라가는데 선장이는 량심의 가책을 받으며 후회의 벌레에 마음을 좀먹히며 덩달아 뛰였다. 첫째는 남의 개를 임자의 허락없이 함부로 쏜것이 죄스럽고 둘째는 죄 없는 짐승을 불의에 해친것이 궂은고기 먹은것 같이 꺼림직하였다. 그리고 셋째는 난생처음 살생을 하는것만도 손이 떨릴 일인데 그 결과가 또 너무 참혹하였기때문이다. 개는 쏟아져나온 밸을 끌며 줄곧 뛰여 두어마장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향하더니 마을초입 외따른 농가의 생울타리안으로 사라졌다.

<<저런 망할 놈의 개새끼... 아무데서나 뒈질게지... 꼭 집을 찾아들어갈건 무어람!>>

씨동이가 먼발치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온 선장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맞갖잖은듯이 혀를 쯧 찼다.

<<이젠 고만 돌아갑시다.>>

<<돌아가기는 왜.>>

<<그럼 들어가 잘못했다구 사과를 할 작정이요?>>

<<미친 소리 말아.>>

<<그럼 여기 서서 무어하우? 괜히 의심이나 받기 쉽지.>>

<<그 권총 인다우.>>

씨동이가 권총을 받아 웃옷자락밑에 차고 겉으로 한번 쓰다듬어보고나서

<<시침따구 슬슬 한번 가보자.>>

말하고 앞을 서서 어슬렁어슬렁 걸아갔다. 할수없이 선장이도 간이 콩알만해 그뒤를 따랐다.

<<부질없는짓 하지 말구 고만 돌아갑시다. 예 형님.>>

<<잔소리 말구 어서 따라와.>>

그 다급한통에도 개는 저의 집을 잊지 않고 찾아와 마당에 엎드러져 죽었는데 피투성이 되고 또 흙범벅이 된 밸이 땅바닥에 얼기설기하였었다. 헛간에서 자귀질을 하던 주인이 손에 자귀를 든채 나와 서서 멍하니 죽은 개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웬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였다. 선장이는 광경이 너무 끔찍해 바로 보기가 어려워 슬쩍 외면을 하였다. 그러나 씨동이는 아닌보살하고 주인에게 말을 건네는것이였다. 아주 례사로운 음성이였다.

<<여보 주인, 닭 팔것 좀 없소?>>

왼쪽눈섭에 흠이 있는 근 50한 주인이 고개를 들고 씨동이를 한번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값을 달라는대루 줄테요.>>

주인이 또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씨동이는 그제야 비로소 죽은 개가 눈에 뜨인것처럼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아니 이게 웬 일이요! 그 개가... 죽잖았소? 어떻게 된거요?>> 하고 다우쳐물었다.

<<나두 모르우 어떻게 됐는지.>>

<<거참 아까운 개가 죽었구먼. 어디서 류탄에 맞았나...>>

<<모르지요.>>

<<그래 이 개를 어떻게 처치할 작정이요?>>

<<어떻게 처치하다니... 죽었는데... 내다 묻어야지. 어느 몹쓸놈이 이런짓을 했는지... 죄를 안 받을가.>>

강소성 농민들은 자고로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여보 주인. 내다 묻으려거든 내나 주오 약으루 쓰게. 개고기가 산증에는 당약이랍디다. 내가 산증으루 벌써 여러해째 고생을 하는중이요.>>

주인이 씨동이의 얼굴을 한동안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려나 하우.>>

허락하는데 눈앞에 서있는 두놈이 하수인인줄은 의심하지를 않는 모양이였다.

<<고맙소 주인.>> 하고 씨동이는 얼른 1원짜리 종이돈 두장을 꺼내가지고 주인의 손아귀에다 밀어넣어주며

<<약소하지만 이건...>> 하고 인사를 차리니 주인은 받지 않고 손을 뿌리쳤다.

<<그러지 말구 어서 받아넣으시우.>>

<<나더러 죽은 개를 팔란 말이요? 이 량반이...>>

<<그런게 아니라...>>

<<난 싫소.>>

<<자 어서...>>

씨동이가 우격다짐하듯 억지로 개값을 주인에게 떠맡겼다.

이날 저녁 강녕별장사람들은 푸짐한 개고기로 선장이의 송별연을 베풀었다. 술이 얼근한 씨동이가 선장이의 어깨를 툭 치고 충고를 하였다.

<<임마, 큰일을 하려거든 네 가당찮은 자비심은 일찌감치 빼내던져라. 개 한마리두 못 죽이는 놈이 사람을 죽여?>>

보잘것없는 강녕별장도 그동안에 정이 들었는지 막상 떠나려니까 아수한 생각이 들어 선장이는 마음이 좀 허우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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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31 22:15:24

드디여 큰 일을 하러 가시는군요
.부디 별탈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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