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

더좋은래일 | 2023.10.15 15:38:30 댓글: 2 조회: 257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09090
3

한진사댁은 기와를 잇고 회벽칠을 한 담으로 둘렀는데 솟을대문이 으리으리하였다. 권세가 가근방에 뜨르르하건만 사람들에게 별로 뒤욕을 먹지 않는것은 그 집의 인품이 좋아서일것이다. 한진사 본인은 인제 나이 70여세라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서 알음하는 것은 그 장남인 선진이였다. 성진이는 근 50한 사람으로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는데 맏아들 정희는 소문난 무정부주의자로 그 아버지와 갈등이 나 집을 뒤쳐나갔고 딸 선희는 미국녀자가 설립한 이름난 학교-류씨녀학교에 재학중이였다. 그리고 막내-작은아들 은희는 아직 나이 어린 소학생으로 서선장이와 한학급이였다.

이날 다저녁때 선장이가 배곳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비로소 끼니때가 괸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마주오는 동급생 한은희를 만났다. 은희는 저의 누이 선희와 함께 어디를 갔다오는 모양으로 하얀 반소매 운동샤쯔에 무릎까지 내놓은 깡둥바지를 입고 또 머리에는 하얀 일모를 씌운 교모를 쓰고 그리고 발에다는 역시 하얀 정구화를 신었었다. 그 누이 선희는 하르르한 깜장치마에 모시적삼을 입었는데 한쪽 손에 바이올린케스를 들었었다.

선장이는 해마다 여름방학 마흔날을 노상 바다에 나가 벌거벗고 사는 까닭에 뙤약볕에 잔등이 새까맣게 타서 두어주일에 한차례꼴로 허물을 벗어서 세번을 벗으면 개학날이 온것을 알게 되여 있었다. 이날도 종이 바다물속에서 해를 지운지라 웃통을 벗은 몸뚱이와 팔다리 그리고 얼굴은 숯더미에 서리가 내린것처럼 허옇게 소금이 내돋았다.

다 큰 녀학생 선희가 먼저 알은체를 하였다.

<<너 선장이 아니냐. 왜 요새 통 볼수가 없니?>>

묻는 말에 대답을 않고 선장이가

<<그 깡깽이는 콩나물을 알아야 배우잖우?>>

엉뚱한 말을 물으니 선희는 호호 웃고

<<그래. 너두 배울라니? 배우구싶거든 와. 내 가르쳐주께.>> 하고 상냥하게 말하였다.

<<콩나물이.. 일이삼사보다 배우기 어렵소?>>

<<일이삼사? 오, 아라비아수자... 오호호!...>>

<<어렵소?>>

<<글쎄... 그리 어려울것두 없겠지 뭐.>>

선장이가 그 말은 그쯤 접어놓고 다시 옆에 섰는 은희를 향하여

<<우리 아버지가 낼 왜관에 올라가... 나 고구라양복 사준댔다... 멋이 있는걸루.>> 하고 자랑을 하니 은희 당자는 아무 말도 안하는데 그 누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이고 그럼 선장이가 래일부턴 아주 멋쟁이남학생이 되겠구나.>>

말하고 잇달아서

<<그럼 놀러 와요.>> 하고 고개를 까댁여보였다. 남매가 몇발자국 아니가서 동생이 누이더러

<<헤, 무슨 돈이 있어서 양복을 다 사줘, 술군이.>> 하는 소리가 선장이 귀에까지 들려왔다. 선장이가 몹시 귀에 거슬리며 무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는데 그 누이는

<<그런 소리 하면 못써! 좀스럽게.>> 하고 나무라며 제 동생을 한번 탁 때렸다.

선장이는 속이 적이 풀려서 집을 향하고 걸음을 성큼성큼 떼여놓았다. 누나가 보면 또 빙글거리며

<<배꼽시계가 오늘은 좀 빨리 가잖았니?>> 하고 놀릴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장마당으로 통하는 골목어귀까지 왔을 때 골목안에서 쬐꼬만 계집아이 하나가 갑자기 내달아오며 급한 목소리로

<<선장아, 선장아!>>

부르는것이였다. 선장이가 발을 멈추고 돌아보니 머리가 쑥바구니 같은 점순이다.

<<큰아버지가 저기서 말 울구 야단이다.>>

점순이가 손을 들어 장마당쪽을 가리키며 말하는데 서장이는 좀 어리둥절하여 점순이의 알락고양이 같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큰아버지? 어느 큰아버지?>> 하고 물었다.

<<너의 아버지 말이여.>>

<<너의 아버지 말이여.>>

<<우리 아버지?...>>

<<그래여, 저기서 지금 막 울구 야단이다. 얼른 가봐라.>>

<<저기 어디?>>

<<술집이지 어디여.>>

선장이가 두주먹 불끈 쥐고 곤두박질쳐 달아갔다.

장마당모퉁이의 그 술집은 두칸 통방에 10여명 사람이 마주대하고 앉을만한 좁고 길다란 상-목로를 놓고 술을 먹게 되였었다. 선장이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와보니 아버지 서서방은 어지러운 토방에 퍼더버리고 앉아 술군들이 벗어놓은 형형색색의 고린내나는 고무신짝 미투리짝들을 두손으로 그러모아 벌린 가랑이사이에다 더미를 지으며 엉엉 울고있었다. 그러다가 또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넉두리를 하였다.

<<고기가 안 잡히면 안 잡혀서 못살지... 잡히면 또 잡혀서 못살지... 이런 제길한 놈의 세사을 어떻게 산단 말이...>>

고등어가 일시에 들이밀리는 바람에 시세가 똥값으로 떨어져서 잡는데 들인 밑천도 건지기가 어럽게 된 까닭에 서서방은 처자식 거느리고 입에 풀칠할 일이 아득하였던것이다. 선장이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눌러씻고 토바에 뛰여올라가

<<아버지, 아버지!>>

부르며 술이 억병으로 취한 아버지를 붙들어 일퀘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열한살 먹은 아이가 제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실장정을 무슨 수로 붙들어일을킬것인가. 방안에서 아래목 상머리에 앉은 술장사녀편네가 한손에 술구기를 든채 밖을 내다보며

<<저 랑반이 오늘 왜 저러시여.>> 하고 대수롭지 않게 뇌까리는데 목로에 두줄로 마주 대하고 앉았는 술근들이

<<내버려두우, 울다가 싫으면 고만두겠지.>>

<<우는것도 무리는 아닐세.>>

<<사내자식이 이왕 그리 된바에... 울며불며 할게야 뭐람.>>

<<아니야. 난 남의 일 같잖아.>>

<<세상에 불쌍한게 우리 배놈들이지.>>

<<속상하이, 어서 술들이나 더 먹세.>>

제각기 한마디 지껄였다.

선장이가 육중한 아버지를 붙들고 누군가가 쩔쩔매고있을즈음에

<<비켜라.>> 하고 누군가가 억센 손으로 쓱 밀어내서 선장이가 아버지를 놓치고 밀려나며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보니 어느결에 거머무트름한 양씨동이가 옆에 와 서있었다.

<<아저씨 왜 이러시우. 자 어서 얼어서시우. 내 모셔다드릴테니.>> 하고 씨동이는 곧 등뒤에서 량쪽 겨드랑이밑에다 손을 넣어 서서방을 붙들어일으킨 뒤 한팔로 그 허리를 껴안고 또 남은 손으로 팔죽지를 단단히 붙잡고 조심조심 토방을 내려 천천히 걸음을 떼여놓았다. 선장이가 일단 토방아래 내려섰다가 다버지의 맨발 멋을것을 보고 <<아버지 신발!>> 소리치고 곧 다시 뛰여올라가 허리를 구부리고 고기비늘이 더덕더덕 말라붙은 고린내나는 신발짝들을 부산히 헤쳐보았다. 씨동이가 한발자국한발자국 힘을 들이며 걸어가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

<<아무거나 그중 나은걸루 두어컬레 집어들구 오나.>> 하고 말을 일렀다. 선장이는 놀라서 누가 혹시 듣지나 않았나 얼른 방편으로 눈길을 보냈다. 방안에서는 술먹는 사람들이 서로 지껄이고 떠들고 또 술장사녀편네는 제나름으로 해해거리며 만수받이하느라고 밖에서 하는 말은 모두 못 들은 모양이였다. 선장기는 씨동이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유표한 아버지 고무신을 찾아내였다. 얼른 두손가락을 갈구처럼 꼬부리고 신코를 꿰여들고 부지런히 앞선 사람을 따라갔다.

씨동이는 선장의 어머니와 정실이가 선장이 아버지를 받아서 눕히는것을 방밖에 서서 보다가 문설주에 붙어섰는 선장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한번 툭 갈기고 아무말없이 가버렸다.

저녁밥을 먹은 뒤에 선장이는 어둑컴컴한 토방끝에 혼자 걸커 앉아 갈래 많은 생각에 잠기였다. 무릎우에 팔꿈치를 세워서 두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울타리에 핀 희끄무레한 박꽃을 바라보며 이런 궁리 저런 궁리 하였다. 놋단추가 번쩍번쩍하는 고구라 양복도 이젠 다 틀렸다. 모표 달고 일모 씌운 새 모자도 이젠 다 틀렸다. 아름다운 꿈은 산산쪼각이 나버렸다. 모든것은 물거품같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개학날 은희가 보면 무어랄가. 괜히 자발적게 자랑이나 말았을걸.)

(고기가 안 잡혀두 구차하구... 고기가 많이 잡혀두 구차하구... 도대체 이건 어찌된 까닭일가?)

선장이로서는 도저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 수수께끼의 의문표는 선장이 머리속에 쓰지 않는 낫처럼 오랜 세월을 더 걸려 있어야 하였다. 운명은 선장이로 하여금 곡절 많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수수께끼를 풀게 하였다.

그러나 배군들을 못살게 구는것은 고기만이 아니였다. 사람만도 아니였다. 하늘마저 심청 사납게 짝자꿍을 놀아서 사라을 못살게 굴었다. 이때 원산에는 라지오라는게 없었다. 신문도 지방에서 발간하는것은 왜관의 일자신문 하나가 있을뿐이였다. 따라서 배군들은 일기예보니 기상통보니 하는따위의 말 자체를 모르고 살았었다. 다만 물고기란 큰 배로도 잡고 작은 배로도 잡고 또 먼바다에 나가 잡고 가까운 바다에서도 잡아야 한다는것을 조상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경험으로 알고있었을뿐이였다. 원산은 태풍이 북상하는 <<간선항공로>>에서 어지간히 외진 까닭에 그 피해를 비교적 적게 받으므로 기후적으로도 말하자면 천연의 량항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발편잠을 자라고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등덜미가 허물을 세번째 벗어서 개학 이삼일밖에 안 남은 어느날 밤에 선장이가 곤히 자다가 지동치듯 불어대는 바람소리와 거세찬 파도소리에 놀라 잠을 깨였다. 집이 금세 떠나갈듯이 흔들리고 방바닥이 우르르우르르 떨리는중에 눈을 떠보니 옆에 누웠던 어머니가 어느 틈에 일어나 어둑컴컴한 방안에 옷으르 다 주어입고 앉았는데 그옆에 붙어앉은것은 웃방에서 자던 누이다.

<<너 깨였니?>>

어머니의 묻는 말을 대답할 대신에

<<아버지는?...>> 하고 되물으며 선장이가 자리에 일어앉았다.

<<아버지 배 보러 나가셨다.>>

어머니가 말하는데 정실이가 옆에서

<<선장인 일어나 무어 하오. 더 자래지.>> 하고 말하여 그 어머니는

<<누가 일어나랬니, 제가 일어났지.>>

되받고 선장이더러

<<어서 넌 더 자거라.>> 하고 말을 일렀다. 아들이 드러눕는것을 보고나서 어머니는 다시 딸에게

<<너두 내려가 자. 괜히 온 집안 식구가 다 건밤을 세울건 뭐니.>> 하고 말하였다. 이때 방문에 어른어른하는 불빛이 비쳐서

<<아버지 들어오신다.>> 하고 엄머니가 벌떡 일어서니 딸도 얼른 따라일어섰다.

선장이 아버지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손에 든 선등을 부뚜막에 내려놓고 물이 줄줄 흐르는 가빠를 벗어서 풋나무단우에 펼쳐 널었다. 그리고 고무장화를 한짝씩 한짝씩 벗어서 벽밑에 세워놓았다. 그런 연후에 다시 선등을 집어들고 안해와 딸이 열어놓고 서서 기다리는 부뚜막옆의 외짝미닫이문으로 방안엘 들어섰다.

<<어떻습니까?>>

안해의 걱정스레 묻는 말에 선장이 아버지가

<<글쎄 배들이 서로 부딪치지 못하게 해놓구 들어왔으니까 일은 없겠지만...>> 하고 두리뭉실한 대답을 하는데 옆에서 딸이

<<그럼 바다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고 남의 일을 념려하였다.

<<글쎄 말이다. 날씨가 급작스레 이렇게 변덕을 부릴줄 누가 알았어야 말이지.>> 선장이 어머니가 남편의 손에서 선등을 받아서 깔아놓은 요의 머리맡에다 놓으며 남편의 말에 동을 달듯이

<<무사히 돌아와얄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날이 밝기가 바쁘게 근심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남녀로소 할것없이 륙속 바다가로 나와서 잔교께로 모여들었다. 성벽 같은 파도가 해안선을 덮치듯 밀려들었다가는 돌을 나지막하게 대충 땋아 만든 방파제(명색)에 부딪쳐서 산산이 부서지며 물러나고 또 밀려들었다가는 산산이 부서져서 물러나고 하는데 지축을 흔드는듯 육중한 소리와 함께 산탄처럼 비말을 뿌려서 멀찌막이 서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물투성이가 되였다. 항내는 광란의 물이랑 물고랑이 판을 쳐서 그 많던 물새들도 다 어데로 피신을 했는지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이렇듯 형세가 흉흉한 판에 광풍에 돛대가 부러진 하척의 고기배가 노질을 하여 간신히 목숨을 살리려다가 코끼리 같은 무서운 힘으로 후려갈기는 파도에 마지막 희망이던 노까지 빼앗겼다. 기진맥진한 네댓명의 사람은 배전을 붙잡고 엎드려서 뭍을 지척에 바라보면서도 사경을 헤매였다. 버들잎 같은 배가 산마루 같은 파도마루에 올리떴다가는 또 눈깜박할 사이에 파도골로 떨어져내려가고 또 올리떴다가는 떨어져내려가고 하는데 올리떳을 때마다 간간이 손을 내젓는것이 보이고 또 소리를 치는것이 들리는것도 같았다. 바다가에 모여선 사라들은 서로 돌아보며 속이 달아서

<<저걸 어쩌지.>>

<<저걸 어쩐다.>>

발들을 구를뿐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몇천톤급의 철갑선이나 있으면 모를가 목선따의 림시구조선은 도저히 구해낼수가 없는 형편이였다. 그렇다고 또 하늘에서 무슨 기적의 손길이 뻗어져내려올것을 바랄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남편이나 아들이 바다에 나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집 가족들중에는 벌써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우는이다 한둘이 아니였다.

이렇듯 위급한 시각에 사람들의 이목을 한몸에 끌며 사람 하나가 나섰다. 사람들이 죽어가는것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허옇게 센 풍채 좋은 채수염을 모진 바람에 흩날리며 고회가 넘은 한진사가 나선것이다. 한진사는 그 아들 성진이와 함께 벌써부터 바다가에 나와 서있었다. 손녀 선희와 손자 은희도 서로 손을 맞잡고 따라나와 서있었다. 한진사가 몰켜선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갈린 목소리로 호소를 하는데 뒤에 선 사람들은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많이는 손을 쪽박같이 오그려서 귀바퀴에 대고 들었다.

<<사람이 죽어가는걸 가만히 보구만 섰다니... 참으로 인사불성이요. 누구라도 좋으니 목숨을 걸고 나서서 저 사람들을 좀 구해주시오. 구해주는 사람에겐 내가 상급으로 50원을 주리다.>>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혹은 놀라서 입은 벌리기도 하고 혹은 감탄하여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도가 하도 어마어마한데 눌리여 감히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진사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고 또 갖은 경난을 당한 사람이라 <<중상지하필유용부(重赏之下必有勇夫)>>란 말의 뜻을 잘 알고있었다. 사람들을 위험한 일에로 불러일으키는데는 후한 상금이 왕왕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한진사는 자신의 호소에 선뜻 호응하는 사람이 없는것을 보고 실망하기도 하고 또 초조하기도 하였다. 50원 소리에 크게 놀란 아들이 나지막이

<<아버님.>>

부르며 두루마기소매를 지그시 잡아당기는것을 뿌리치고 한진사는 다시한번 목청을 돋우어서

<<없소? 아무도 없소?>> 하고 물으며 누구를 찾기라도 하는것처럼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이때다. 벌써부터 사나운 바다를 노려보며 우리안에 갓 갇힌 들짐승처럼 안전부절 못하던 씨동이가 아무말없이 웃도리를 훌떡 벗어서 땅바닥에 던지고 또 고의까지 땅바닥에 벗어던졌다. 그 아버지 양서방이 이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가지고 쫓아와서 팔죽지를 덥석 잡고

<<이놈아, 어쩔라구?>> 하고 소리치니 씨동이느 잡힌 팔을 심술스레 홱 뿌리치고 바로 한진사를 향하여

<<댁 어구창고의 마닐라로프를 좀 쓰게 해줍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진사가 그 의취를 선뜻 짐작하고

<<오냐 그래라.>>

대답한 뒤 곧 아들을 돌아보고

<<빨리 가 열어줘라.>> 하고 분부하였다.

한진사댁 어구창고의 바다를 향한 함석문이 지체없이 활짝 열렸다. 우 몰려들어간 사람들이 아름드리 바줄감개에 가득 감긴 신품 마닐라로프를 줄줄줄줄 풀어내왔다. 속옷바람의 씨동이는 잽싸게 로프끝을 받아쥐고 로프가 등판에서 서로 어긋나도록 량어깨에 갈라메고 또 허리를 한번 든든히 동여매였다. 긴 꼬리처럼 로프를 뒤에 끌며 파도의 비말이 탄막같이 뿌려쳐서 물판이 된 잔교끝에 잠시 섰다가 낮은 파도골이 밀려닥치는 순간 몸을 날려 첨벙 물속에 뛰여들었다.

양서방은 자기 아들이 파도마루에 높이 올리뜨는것을 보고

<<아!>> 하고 입을 딱 벌렸다가 금세 또 파도골에 떨어져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자 숨이 막혀서 헉 소리를 삼키며 눈을 꽉 감았다. 씨동이의 형 원동이는 여느 장정 서넛과 함께 로프를 소방대의 호스처럼 잔교끝까지 미끄러지며 자빠지며 끌어다가 두둑이 사려놓고 동생이 헤여나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연방 줄을 주었다.

선장이는 저의 숭배하는 선배와 행동을 같이 못하는것이 유감스럽고 또 념려스러워서 어린 속을 끓이며 왼새끼를 꼬았다. 선희는 씨동이가 파도마루에 올라뜰 때마다 아슬아슬하여 제 동생의 손을 으스러지게 꼭 쥐였다. 그리고 씨동이를 여적 보잘것없는 한낱 후보배군으로 보아온 자신의 생각이 얕고 얇았음을 깨닫고 뉘우쳤다. 한진사는 씨동이가 무사하기를 빌고 또 성공하기를 바랐다. 한성진은

(돈이 과연 무섭구나.) 하고 새삼스레 감탄해마지않는 한편 신품 마닐라로프가 물에 들어가 중고품이 되는것을 생각하고 가슴을 앓았다. 그것이 현금 50원보다 손실이 더 컸기때문이다. 정실이는 땅바닥에 벗어버린 씨동이의 고의적삼이 바람에 부대끼여 똘똘 말려서 굴러가는것을 따라가 잡아가지고 털어 개켜서 덜덜 떨며 서있는 씨동이 어머니를 갖다주었다. 쌍년이의 마음눈에는 시커먼 소도둑놈같이 생긴 씨동이가 옛이야기에 나오는 신라의 화랑과도 같이 잘나보이고 또 장해보였다.

한편 씨동이는

(내가 가닿을 때까지만 버텨다우.)

(제발 제발 배가 뒤집히지만 말아다우.)

이렇게 속으로 빌며 헤여나갔다.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구명용의 로프를 꽁무니에 길게 끌고 억척스럽게 헤여나갔다.
추천 (4) 선물 (0명)
IP: ♡.208.♡.156
로즈박 (♡.39.♡.172) - 2023/10/15 20:23:21

오랜만에 너무 잘 보고갑니다..
다음집 기대할게요..

산동신사 (♡.173.♡.19) - 2023/10/18 16:06:32

잘 읽었습니다.올려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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