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4

더좋은래일 | 2023.10.16 10:13:01 댓글: 2 조회: 278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09272

4

바다가에 몰켜선 사람들이 제각기 목을 늘이고 발돋움을 하고 바라보는 가운데 물이 들어와 거의거의 가라앉게 된 배에서 기운이 탈진하여 가로세로 쓰러진 사람들이 겨우 고개를 쳐들고 눈이 빠지게 지켜보는 가운데 씨동이가 죽을힘을 다하여 헤여나가다가 벌린 입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간물 한모금을 착실히 먹고 물속에서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칼물고 뜀뛰기였다. 어쨌든 조난한 배에까지 헤여가 닿아야 하였다. 씨동이가 젖먹은 힘을 다하여 헤여나가다가 사람 공기 눌리듯하는 격량속에서 기운이 진하여 죽은 물고기 모양으로 배를 우로 하고 물우에 벌렁 자빠졌다. 잔교끝에서 연방 줄을 주며 긴장해 지켜보던 원동이가 저의 동생이 위태롭게 된것을 알자 곧 뒤에서 거드는 동무들에게 소리쳐서 서넛이 함께 달려들어 주던 줄을 도로 사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감고 물우에 자빠져서 숨을 돌리던 씨동이가 허리에 맨 로프가 갑자기 팽팽해지는것을 느끼고 얼른 다시 몸을 뒤치여 물우에 엎드린 뒤 고개를 비틀고 뒤를 돌아보며 한손을 쳐들어 연신 흔들었다. 그러자 팽팽하던 로프가 금세로 느슨해지는것이 알리였다. 원둥이가 동생의 신호를 바로 리해하고 사리던 줄을 얼른 다시 주기 시작한것이다.

이때 뭍에서는 눈도 깜박 않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쌍년이가 필시 무슨 사고가 난줄 알고 어마지두에 씨동이 어머니 곁에 와 딱 달라붙었다. 정실이 아까부터 저편에 붙어섰던 까닭에 각성받이 로소 세 녀자가 저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데 뭉치였다.

씨동이가 물결에 복대기며 간신히 한손을 뻗치여 요동치는 배전을 붙잡으니 배안에 지쳐서 늘어졌던 네 사람중의 두 사람이 일시에 손을 내밀어 씨동이의 미끈미끈한 팔뚝을 부여잡고 끌어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 두사람은 접순이 작은삼촌과 점순이 오래비였고 또 기신을 못하는 두사람은 점순이 아버지와 점순이 큰삼촌이였다. 씨동이가 그제는 두손을 다 써서 배전을 부여잡고 몸을 불쑥 솟구쳤다. 그통에 배가 휘뚝하여 하마트면 뒤집힐번하였다. 씨동이가 배에 기여오르는결에 우선 먼저 허리에 동여맨 로프부터 끄르는데 물에 젖은 로프가 좀처럼 잘 끌러지지를 않았다. 점순이 작은삼촌과 점순이 오래비가 번갈아 달려들어 애를 무진 써 보았지만 종시 끌려지지 아니하여 마침내 끄를것을 단념하고 그대로 로프를 대여섯발 잘되게 더 사려서 제각기 팔에다가 감고 또 허리에다도 둘렀다. 네 사람이 한줄에 묶인 죄인 모양이 되여가지고 다시 엎드린 뒤에 씨동이가 로프를 오라지듯이 진채 두다리를 든든히 버티고 잔교를 향하여 손을 흔드니 잔교끝에서 대기하던 원동이와 그외의 서너 사람이 성수가 나서

<<이여차, 이여차!>>

줄들을 당기기 시작하였다. 바다가에 몰켜서서 간을 졸이던 남녀로소가 이것을 보자 우 달려들어 장관의 줄다리기를 하는데 선장이를 비롯한 크고작은 아이들은 물투성이가 되며 잔교로 내달아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줄들을 당기였다.

일직선으로 끌려오는 배가 파도속을 마구 꿰뚫으다싶이 하는데 배우의 물초가 된 사람들은 로프를 놓칠가봐 죽으라 하고 매달렸다. 꺼칠꺼칠한 로프에 마구 쏠리여 껍질이 벗겨져서 피가 나는것도 다 몰랐다. 상사말처럼 날뛰는 조난선을 배군 여럿이 달려들어 가까스로 잔교옆댕이에 끌어다 매놓고 반죽음이 된 사람들을 하나씩하나씩 끌어올렸다. 맨나중에 로프에 매인 씨동이가 힘겨웁게 잔교에 올라서서 비틀비틀하ㅣ 원동이가 두팔을 벌리고 달려들어 동생을 얼싸안았다.

아차아차하게 목숨들을 건진 점순이 아버지-리서방네 네식구가 이웃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또 씨동이가 젊은 배군들의 도움을 받아 로프를 끌러놓고 저의 형 원동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 한진사가 씨동의 아버지를 불렀다.

<<여보게 양서방, 나 좀 보세.>>

<<녜.>>

대답하고 양서방은 앞으로 나와서 허리를 굽실하였다.

<<자네가 아들 하나 잘 두었네.>>

<<원 별말씀을 하십니다 진사님.>>

<<아니야, 참말이야. 공부를 시켰더면 좋았을걸... 그리되지 못한게 유감일세.>>

양서방은 말없이 그저 허리만 한번 또 굽실하였다.

<<자네 아들을 이따 내게루 좀 보내게.>>

<<녜 진사님.>> 하고 양서방은 황송하여 또 한번 허리를 굽실하였다.

한진사가 먼저 집에 돌아와 작은사랑에 앉아서 돋보기를 쓰고 기차로 550리를 오느라고 하루 늦게 배달되는 그날 신문-<<조선일보>>를 보는중에 일군들을 데리고 물에 젖은 마닐라로프의 뒤거둠질을 하느라고 지체된 아들이 돌아와서 곧바로 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안사랑으로 나왔다. 한진사가 돋보기를 벗어서 신문과 함께 장판바닥에 내려놓으며 벽쪽으로 모 꺾어 앉은 아들을 보고

<<뒤거둠을 다하고 들어오는거냐?>> 하고 물으니 아들은

<<녜, 대충 다 치우구 들어왔습니다. 우선 그렇게 해두었다가... 날이 들면 다시 널어 말려얍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한진사가 불콰한 얼굴에 만족한 빛이 가득해지며

<<이 애. 돈 50원으로 인명을 넷이나 구했다. 이보다 더 보람찬 일이 또 어디 있겠니.>>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아들은

<<왜 50원 입니까, 로프의 손료를 안 치십니까?>>

말하고싶은것을 꿀꺽 참고

<<녜, 아버님께서 활인적덕을 하시면 자손들에게두 여택이 미칩지요. 다행한 일입니다.>>

입에 발린 수작을 하였다.

<<내가 아까 양서방더러 아들을 이따 좀 보내라구 말을 일렀다. 그 아이가 오거든... 무어라더라 그 아이 이름이?...>>

<<씨동이, 양씨동입니다.>>

<<오, 그래 씨동이. 씨동이가 오면 내가 손수 상급을 주어야겠으니... 미리 네가 준비를 좀 해두어라.>>

<<녜, 알았습니다. 빨락빨락한 새돈으루... 5원짜리 열장을 마련합지요.>>

새 돈이나 낡은 돈이나 화페로서의 가치는 매일반인데 같은 값에 다홍치마로 아버지의 기분을 더욱 좋게 해드리자는 생각에서 아들이 이렇게 말하니 한진사는

<<그러면이야 더욱 좋지.>> 하고 희색이 만면하였다. 한진사가 다시

<<그 녀석이 억척스럽더라. 난 꼭 잘못되는줄만 알았다.>> 하고 감탄하여 말하니 그 아들은

<<아 50원이 어딥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려구 않겠습니까.>>하고 가볍게 말을 받았다.

<<아니야. 그럼 왜 다른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내니, 가난하기는 다 매일반인데.>>

아들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한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그럼 전 이제 바깥사랑엘 좀 나가봐야겠습니다. 서사가 기다리는데.>>

말하고 곧 일어나 큰사람으로 나왔다. 큰사랑은 원래 한진사가 썼었으나 살림을 아들에게 쓸어맡길 때 저레 큰사랑까지 내주고 아들이 쓰던 작은사랑으로 거실을 옮겼었다.

씨동이는 어머니가 끓여다주는 뜨거운 토장국뚝배기에 조밥 한사발을 다 말아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뒤에 어머니가 갖다 덮어주는 헌 이불쪼각을 푹 뒤집어쓰고 아래목에 누워서 코를 골며 잠 한숨을 옳게 잤다.

씨동이가 눈을 뜨고 덮었던 이불을 젖히려는데 팔꿈치에 부딪치는것이 있어서 고개를 돌려본즉 옆에 형 원동이가 눈을 뜨고 번듯이 누워있었다.

<<어떠냐 좀. 괜찮냐?>>

형의 묻는 말을

<<이젠 괜찮소. 아까는 꼭 죽을것만 같더니.>>

씨동이가 대답하며 보니 빨아 손질한 헌 적삼을 앞에 놓고 앉았는 웃방의 어머니와 아래방 웃목에 앉아서 그물바늘을 깎는 아버지 사이에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 애 적삼이라구 이것밖에 없으니 어떻거면 좋아요?>>

<<그럼 적삼두... 내걸 입혀 보내지.>>

<<아무려나 그렇게 합시다. 대가리가 커다란 녀석이 고의적삼 한벌이 없어서 아버지걸 얻어입고 다녀야 하다니... 참.>>

<<양말은 있겠소?>>

<<그 애가 언제 양말 신어본적 있나요? 동삼에두 맨발로 달아다니는 녀석이.>>

<<양말두 안 신구 렴체 어떻게 진사님댁엘 들어간담?>>

<<누가 아니래요.>>

<<큰애구 작은애구 당신 어제 양말 사신겨본적 있으세요?>>

아버지가 쓴듯이 입맛으 쩍 다시니 어머니는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씨동이ㅏ 벌떡 일어앉으며 웃방에 앉았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엄마, 아버지하구 지금 무슨 의논들 하우?>> 하고 물었다.

<<너 한진사댁에 가는데 입혀보낼게 마땅찮아 그런다.>>

씨동이가 대번에

<<미쳤소. 한진사댁엔 왜?... 난 안 가우.>> 하고 왼고개를 치니 아버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뭐라구?>>

묻고 어머니는

<<너 정신이 나가잖았니?>> 하고 어이없어하였다. 누워있던 원동이가 벌떡 일어나앉아 동생을 얼굴을 들여다보며

<<너 정말이냐?>>

미심쩍어 물었다.

<<치사스레 거긴 무엇하러 간단 말이요.>>

<<치사스럽긴 뭐가 치사스러워? 좋은 일 하구 상급을 타는게 치사스러워? 그 자식 장히 어쭙잖다.>>

아버지가 나무라는데

<<이 녀석아, 너 언제나 지각이 좀 나겠니. 50원이면 입쌀이 여덟가마야, 입쌀이 여덟가마, 일년 열두달 쌀구경을 못하구 사는 주제에 또 들어오는 복을 차던져? 에미가 밤낮을 가리잖구 뼈빠지게 일해서 너희들 뒤치닥거리하느라구 시집온지 20여년에 이날 여적 주사니것 한벌 못 얻어입어봤다. 에미 불쌍한 생각두 좀 못하느냐.>>

어머니가 푸념을 섞어가며 긴사설을 늘어놓으니 원동이는 말 참녜를 아니하구 한옆에 잠자코 앉아서 눈만 끔벅끔벅하였다.

<<엄마가 아무리 불쌍해두 인끔이 떨어질 일은 난 못하겠소. 죽는 사람을 구하는데 상급은 다 뭐야, 개코구멍같이! 상급이 없었더면 사람이 죽는걸 눈앞에 보구두 가만히 서있었겠구먼.>>

<<동이 닿지두 않는 소리 지껄이지 말아. 듣기 싫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편을 들어 아들을 누르려 하니

<<동이 닿지 않긴 뭐가 닿지 않아요. 그래 아버지는 내가 그 잘난 돈 50원 바라구 목숨을 건줄 아시우? 내 목숨이 고작 쌀 몇가마 값어치밖에 안 간단 말이요? 긴말 할것 없이 난 그런 치사한 상급은 타러 가지 않을테니 그런줄들 아시우.>>

잘라 말하고 씨동이는 훌쩍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원둥이가 뒤에서

<<어딜 가니?>>

물어서

<<나가서 바람이나 좀 쏘일라우.>>

씨동이가 대답하니

<<그럼 좀 가만있거라. 나하구 같이 가자.>> 하고 원동이도 따라 일어났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은 좀 뜨음해졌으나 하늘을 뒤덮은 헌 이불솜 같이 어지러운 그름장들은 여전히 뭉텅이가 졌다. 쪼각이 떨어졌다 하면서 북으로 북으로 계속 밀려가고있었다. 땅이 워낙 모래땅인데다가 이르는 곳마다에 조가비들이 깔려있어서 비가와도 발에 흙 한점이 묻지 않는 까닭에 왜관의 포장도로가 부러울것이 없을 정도로 정취 그윽한 어촌풍경이건만 이날은 바다가를 헤매는 로인네와 아낙네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듣는 사람의 창자를 끊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부르면 무엇 하고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울면 무엇 하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면 무엇 하랴. 그 소리가 듣기에 너무 애처로와서 씨동이가 미간을 찌프리고 발길을 사대쪽으로 돌렸다. 사대는 락락장송이 빽빽이 들어서서 바람이 부는 날은 송도소리가 더우기 처량하였다. 사대는 이 나라가 이족의 철제하에 망하기전에 묵은 통치계급이 죄수들을 끌어내다 목을 자르던 곳-사형장이다. 그래서 솔가지를 건너는 바람소리가 원귀들의 울음소리와도 같이 처량한가? 사대를 지나내려가면 유명한 석유회사-라이징 썬의 성곽같이 어마한 석유저장고들. 거기를 지나서면 백사청송에 해당화거 점점한 명사십리다.

원동이가 한동안 잠자코, 키도 저보다 귀에서 우 하나 더 크고 몸집도 월등 더 우람한 동생을 따라오다가 명토없이

<<너 잘 생각해봤니?>> 하고 물어서 씨동이는 노량으로 걷는 걸음을 멈추지 낳고 고개만 조금 돌이키며

<<뭐 말이요?>> 하고 되물었다.

<<상급 타러 가는거 말이다.>>

<<나 아까 다 말했는데 무슨 말을 또 하라우.>>

<<넌 엄마가 불쌍하지두 않니?>>

씨동이는 못 들은체하고 그냥 걸어가기만 하였다. 한동안 기다려도 아우가 대척을 않는것을 보고 그 메돼지 같은 곧은목성질을 잘 아는 원동이가 제풀에 마음을 눙쳐서

<<모르겠다. 똥집대로 해라. 네 일인데 네가 알아 하겠지.>> 하고 펼쳤던 책장을 도로 덮어버렸다.

형제가 심심파적으로 거니는 길가에 원두밭 하나가 나섰다. 점순이 할아버지가 여름 한철은 원두막에서 노상 시묘(侍墓)를 살다싶이 하였으나 이날은 아들 삼형제가 맏손자가 거의 죽다가 살아오는통에 원두밭을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씨동이가 바로 저의 밭 드나들듯이 버젓이 드러내놓고 원두밭에 들어가 줄참외 대여섯개를 익은것으로 골라 따서 앞섶에 안고 나왔다. 둘이서 껍질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우적우적 먹으면서 서로 돌아보고 웃었다. 앞에서 발 가는대로 따라가는 씨동이가

<<점순이 할아버지 그 고불이가 나 참외서리한다고 혼 한번 단단히 내놓겠다구 벼른다더니... 인젠 벙어리 랭가슴이나 앓게 돼쏘.>> 하고 큰소리로 지껄이고 하하 웃으니 원동이도 따라 웃으면서

<<참외값을 아들값으루 엇셈하자지.>> 하고 같이 너덜거렸다.

정작 상급을 타러 갈 당자가 싫다고 도리머리를 흔드는데 곁다리들이 나서보았자 아무 소용없겠기에 양서방은 하릴없이 아들 대신 한진사댁에 가 사유를 말씀드리고 사과를 하지 않을수가 없게 되였다. 그들 내외는 작은아들의 외고집을 꺾지 못한다는것을 익히 아는터였다. 양서방이 주니가 나서 자꾸 망설망설하며 한진사댁 문턱을 넘어서 바깥마당에 들어서니 큰사랑 모서리방에서 미닫이문 한짝을 열어놓고 앉아 무슨 적바림을 하고있던 서사 최선생이 웃으며 내다보고 상가럽게 물었다.

<<양서방 왜 혼자 오시우? 아들은 안 데리구.>>

최선생은 나이가 한 마흔쯤 된 사람으로 홀쪽하 얼굴에 두귀가 유난히 발쪽하여 흡사 우승컵에 달린 손잡이 같았다. 양서방이 무춤무춤하면서

<<아... 녜... 저... 진사님 댁에 기신가요?>> 하고 어려운 말 묻듯이 물으니 서사는 손에 들었던 붓을 내려놓고

<<가만 좀 기시우. 부자분 다 지금 작은사랑에 기신데... 내 먼저 들어가 연통을 하오리다.>>

말하고 곧 일어나 나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해서 뒤채로 들어갔다. 잠시후에 최선생이 다시 나와 들어오라고 하여 그뒤를 따라들어간즉 작은사랑에 아들하고 엇비슥이 마주 대하고 앉아서 열어놓은 미닫이문으로 내다보던 한진사가 적이 괴이쩍은듯이

<<자네 어째 혼자 오나?>> 하고 소리하였다. 양서방이 뜰아래 서서 허리를 굽실하고 말이 나오지 않아 우물쭈물하니 한진사는 다시

<<어서 올라오게.>>

말한 다음 뜰아래 그저 서있는 서사더러 물러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양서방이 몹시 어줍은 태도로

<<여기서 그냥 잠간 말씀을 여쭙구 가겠습니다.>> 하고 또 한번 허리를 굽실하였다. 까닭을 모르는 한진사는

<<무슨 말인고?>> 하고 양서방의 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씀 여쭙긴 황송합니다만... 저의 그 작은 녀석의 말이... 상급을 바라구 한 일이 아니니까...>>

<<뭐시?>> 하고 한진사가 저의 귀를 의심하듯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비트니 양서방은 더욱 몸둘바를 몰라하며

<<죄송합니다.>> 하고 또 허리를 굽실하였다. 한성진이가 옆에서 듣고 속으로는

(이키, 50원이 굳나보다.)

생각이 들었으나 내색은 하지 않고 곧 출반좌하며

<<상급을 바라구 한 일이 아니니까-상급을 타러 오지 않겠다는 말이요?>> 하고 아버지 대신 말을 물었다.

<<녜. 말하자면 그런 뜻입지요.>>

양서방의 이 대답을 듣고 한진사부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진사는 생후 처음 당하는 경계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 아들은 50원이 확실히 굳은것을 알고 얼굴에 기뻐하는 빛이 나타날가봐 조심을 해야 하였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녕히들 기십시오.>>

양서방이 죽지 부러진 새 모양을 하고 얼음우를 건느는것처럼 조심조심 걸어나가는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았던 한진사가 꿈꾸다가 깬 때와 같은 태도로

<<개천에서 룡이 나는구나!>> 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옆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떻거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아버지는 아들을 돌아보며

<<어떻거다니?>> 하고 되물었다.

<<당자가 싫다는거야 할수 없잖습니까. 우리가 식언을 하는것두 아닌게구.>>

<<그게 될 말이냐. 사리를 밝혀 타일러서... 어떻든 받도록 해야지. 뺐던 칼을 그대로 꽂는건 사내로서 견모야. 세상에서 무어라구 하겠니.>>

아들이 더 말을 못하고 지수굿해 앉았는것을 보고 한진사는 다시

<<서사를 불러라.>> 하고 분부하였다.

씨동이가 형하고 둘이서 피천 한잎 없는 주제에 장마당까지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다가 장래 형수-원동이의 약혼녀-의 오래비를 만나서 형을 떼여놓고 저만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집근처에 거의다 와 골목안에서 나오는 한진사댁 서사 최선생과 마주쳤다. 최서사가 먼저 빙글거리면서

<<씨도이 너 이젠 다 컸구나. 색시감 하나 말해주랴.>> 하고 전에 없이 친근스레 굴었다.

<<어딜 갔다오시우?>>

<<네 색시감 말하러 갔다온다.>>

<<사람을 놀리지 마시우.>>

<<미덥잖거든 너의 집에 가 물어보렴. 내 말이 거짓말인가.>>

씨동이가 씩하고 고개를 외치니 최서사는 능갈치게 웃으며 가는 말소리로

<<인석아 조심해. 괜히 그러다가... 야마다 귀에 들어가면 너 졸경친다.>>

말하고 씨동이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 가버렸다.

씨동이가 집에 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치가 별나게 서먹하여

<<최서사가 여긴 왜 왔댔소?>> 하고 넘겨짚으니 어머니 아버지는 대번에 수그러지며 아버지가 나서서 실토를 하기를, 최서사가 한진사의 부탁을 받아가지고 와 중언부언 타이르며 억지로 떠맡기는 바람에 할수없이 받았다고 말하고나서

<<옜다. 네꺼니 네 맘대로 해라.>> 하고 개켜얹은 이불갈피에 끼웠던 돈봉투를 도로 꺼내주었다.

씨동이가 골이 나 혀를 쯧 차고 아버지가 건네는 돈봉투를 채듯이 받아쥐고 꼿꼿이 한진사댁으로 달아왔다. 대문간에서 마침 바스케트를 들고 나오는 한선희와 마주쳤다. 선희는 꿈 많은 시절의 녀학생이다. 선희의 눈에 어제까지도 한낱 후보배군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씨동이가 이제는 헤르쿨레스-희랍신화에 나오는 용사로 변하였다. 선희가 먼저 반색을 하며

<<할아버지 아버지 다 지금 안사랑에 기세요. 내 들어가 선통할게요.>>

말하고 손에 들었던 바스케트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되돌아 들어가니 씨동이는 얼굴이 지지벌개지면서

<<아니요. 아가씨, 잠간...>> 하고 불렀다. 선희가 발을 멈추고 돌아보니 씨동이는 손에 들고 온 돈봉투를 팔을 늘이여 바스케트우에 놓은 다음 선희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시적시적 걸어가다가 담모퉁이까지 와서는 무엇이 따라오기라도 하는것처럼 갑자기 들고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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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4) 선물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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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17 10:39:52

ㅎㅎ잼잇네요..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산동신사 (♡.173.♡.19) - 2023/10/18 16:22:25

올리는 수고에 비해 한집을 읽는게 너무 빠른거 같습니다.단숨에 4집까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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