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7

더좋은래일 | 2023.10.17 18:07:21 댓글: 1 조회: 308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09703
7

선장이가 깨묵을 얻어먹으러 갔다. 기름짜는 집은 점포가 즐비한 좁은 거리에 서향으로 앉은 게딱지같은 초가집인데 참깨포대를 쟁이는 고간까지 모두 합해서 댓간밖에 안되였다. 여기서 네댓명의 일군이 복작거리며 수공업적방식으로 깨를 볶는다 기름을 짠다 하는데 그 근처에만 가면 깨 볶고 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렀다. 기름을 짜고난 뜨끈뜨끈한 깨묵은 도래방석에 담아서 점포앞에 내놓아 말리는데 아이들이 심심하면 이것을 와 집어먹는것이다. 이때는 아직 인심이 순후한 때라서 아이들이 술집에 가 멍석에 널어말리는 꼬들꼬들한 지에밥을 좀 움켜다 먹거나 기름방에 가 고소한 깨묵을 몇쪼각 집어다 먹거나 또는 북어가리를 가리는데 꼬챙이를 가지고 가 북어눈깔을 빼먹거나 하는것따위는 말하자면 합법적인 행위로서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장이가 잠자코 도래방석에 수북한 깨묵가운데서 큼직한것으로 한쪼각을 집어드는데 가게안에서 깔때기로 초롱에다 기름을 채우던 일군 하나가 웃으면서

<<이놈, 또 왔니!>> 하고 크게 혼동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선장이가 생글거리며 얼른 집어들고 몸을 돌쳐서 달아나니 그 일군이 등뒤에다 대고

<<네 이놈 또 왔다봐라, 다리마댕일 퉁겨놓을테다!>>

소리를 지르고 다른 일군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웃었다.

선장이가 고소한 깨묵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으며 오는데 맞은쪽에서 일본사진관집아들이 달래달래 걸어왔다. 그놈은 심상소학교라 일컫는 일본아이들만 다니는 소학교에 다니는데 이제 열한두살 밖에 안된 놈이 저의 애비를 닮아서 벌써 몸집이 눈에 띄게 가로퍼졌다. 선장이가 인심 좋게 깨묵 한쪼각을 뚝 떼여 그 녀석 코앞에 들이밀며

<<옜다, 먹어라.>> 하고 말하니 그 자식이 되지 못하게 손을 내밀어 받기는 고사하고 도리여 눈을 흘기고 고개를 외치면서

<<돼지.>>

내뱉듯이 입속말로 욕을 하였다. 선장이가 빨끈하여

<<뭐라구?>>

시비를 붙이려고 드니 그놈은 아주 업신여기는 투로

<<요보꼴에.>>하고 입을 비쭉하였다. <<요보>>는 왜놈들이 조선사람을 욕으로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조선사람이 저들을 쪽발이라고 하듯이. 선장이가 분을 참지 못하여 내밀었던 깨묵쪼각을 그대로 그놈의 얄미운 상판대기에 콱 던지니 그놈은 곧 얼굴을 싸쥐며 사람들 들으라고

<<요보가 사람친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하였다.

선장이가 더욱 골이 나서 발길을 날리여 그놈의 배때기를 콱 걷어차서 그놈이 얼굴 싸쥐였던 손으로 배때기를 부둥키고 주저 앉는것을 보고 이젠 내 볼일 다 봤다 하고 날쌔게 몸을 빼치여 뺑소니를 쳤다. 그런데 일 안될 때라 마침 맞은쪽에서 패검을 절렁거리며 순사 하나가 오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담당구역을 순찰중이던 그 순사가 얼른 두팔을 벌리고 서장이의 앞을 막아섰다. 총알같이 달려오던 선장이가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팔 벌린 순사의 배를 들이받으며 꼼짝 못하고 붙들렸다.

<<못된 놈 같으니라구.>>

순사가 뇌까리며 곧 선자이의 귀때기를 잡아끌고 일보나이가 주저앉아있는 사고현장까지 오는데 한손에 깨묵쪼각을 들고 또 한손으로는 꺼둘리는 귀를 누르며 끌려가는 선장이의 꼴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흡사 깨묵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힌 좀도둑 같았다. 선장이가 순사에게 붙들려온것을 보자 사진관집아들놈은 갑자기 뒤줄이 든든해져서 깨쪼각에 하번 얻어맞고 발길에 한번 걷어채인것을 마치 살인강도에게 죽을 욕을 보다가 천우신조로 간신히 목숨 부지하기나 한것처럼

<<가만있는 사람 괜히 치구차구... 아이구 가슴이야, 아이구 배야, 창자가 켕켜서 사람 죽겠소...>>하고 엄부럭을 떨었다. 순사가 끌고 온 선장이의 귀를 놓고 그놈을 붙들어 일으켜서

<<울지 말아 울지 마, 괜찮아.>>

달래고나서 다시 선장이를 쏘아보며

<<망나니 같은 놈, 벌써부터 사람이나 치러 다니구...>>

불문곡절 욕을 하는중에 일본아이의 에미가 뉘게서 들었는지 소식을 듣고 진동한동 달려왔다. 아이놈은 저 어미를 보자 와락 달려들어 그 가슴에 매달리며 금세 죽어가는 시늉을 하였다. 그에미-사진관집마누라는 아들을 얼싸안고 전장이를 곧 잡아먹을듯 한참 노려본 뒤 순사에게

<<조런 망나니녀석을 한번 단단히 혼을 좀 내줘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써 한두번이 아니거든요.>>하고 대바람에 선장이를 상치밭에 똥싼 개를 만들었다. 순사가 고개를 끄떡끄떡하면서

<<녜 알았습니다, 념려 마십시오.>>

일본말로 대답할 때 둘러섰던 구경군들중에서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순사를 보고

<<내가 마침 지나다가 자초지종을 다 봤는데- 실상 이 아이는 별로 잘못한게 없습니다. 이 아이가 제 손에 든 깨묵을 한쪼각 떼여주면서 먹으라구 하니까 저 아이가 받지 않구 대바람에 욕을 합디다. 돼지새끼라구. 그러니까 이 아이가 골이 나서 발루 한번 툭 차는체하구 달아납디다. 그것뿐입니다.>>

조선말로 변호를 해주었다. 사진관집마누라는 필시 저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저의 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것이려니 지레채고 곧 순사를 향하여

<<저 사람이 뭐랍니까?>>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나이 젊은 조선인순사가 저의 사람의 편을 들어서 일을 잘못 처리할가봐 념려가 되여서였다. 순사가 일본마누라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그저

<<안심하십시오. 안심하십시오.>>

일본말로 말한 뒤 곧 선장이를 돌아보고

<<걸어.>>

조선말로 명령하였다. 순사가 선장이를 앞세우고 주재소로 왔다. 출입문밖에까지 와서 서라고 해놓고 비로소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선장입니다.>>

<<선장이? 어떻게 쓰니?>>

<<배선자 긴장자.>>

<<그 이름이 참 주제넘다... 선장이, 아버지가 배군이냐?>>

<<녜.>>

<<발동선이냐, 목선이냐?>>

<<목선- 야거립니다.>>

<<집이 어디냐?>>

<<저아래...>>

<<저아래 어디? 주소를 말해야지.>>

<<주소... 잘 모릅겠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주소도 모르구. 그래 집엔 누구누구 있니? 식구가 몇이야?>>

<<엄마하구 아버지하구 누나하구 나하구... 네식굽니다.>>

<<누나 이름이 뭐야?>>

<<정실이.>>

<<성이 뭐냐?>>

<<서정실.>>

<<몇살이야?>>

<<열한살.>>

<<이놈아, 너의 누나가 몇살이냐 말이다.>>

<<큽니다.>>

<<몇살인지 몰라?>>

선장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생각해보다가 쑥스러운듯이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하니 순사가 혼자 싱긋 웃고 다시 한참 생각해보다가 입이 쓴듯이

<<임마, 깨묵인지 나발인지 먹을라거든 제나 먹을게지 남더러 먹어라 말아라... 그따위 부질없는짓은 왜 하니? 싱거운 녀석!>>

말한 다음 다시

<<할수 없아, 거기 한옆에 섰거라. 거리쪽을 향하구... 꼼짝 말구 서있어.>>

명령을 하였다. 순사는 곧 안으로 들어가고 서장이는 혼자 밖에 남아서 손에 커다란 깨묵쪼각을 들고 벌을 서게 되였다. 오가는 행인들이 모두 무슨 일인가 해서 흘끔흘끔 보는 가운데 선장이가 반시간 착실히 벌을 섰다. 처음에는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될대루 돼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손에 든 깨묵을 입에 덥석 베물었다. 선장이가 한입 베문 깨묵을 막 다 먹었을 때 홀자에

<<선장아 너 거기 왜 서있니?>> 하는 귀에 익은 은방울목소리가 들려와서 선장이가 눈을 들어보니 한손으로 연두색책보를 가슴에 받쳐안은 한선희가 걸음을 멈추고 서있었다. 선장이는 선희를 보자 갑자기 목이 메여 말이 아니 나오고 눈에서 눈물이 왈콱 쏟아졌다. 영문을 모르는 선희가 얼른 쫓아와 손에 든 책보를 출입문앞 세멘트바닥에 놓고 저고리소매속에서 하르르한 손수건을 꺼내여 선장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말해, 여기 왜 와 서있어?>>

선희가 눈물과 흙먼지로 얼룩지 선장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서있는 까닭을 묻는중에 출입문이 안으로 열리면서 아까 그 젊은 조선순사가 나타났다. 순사가 말없이 선희를 한번 보더니 곧 선장이더러

<<이젠 고만 가라.>>

말하고 한옆에 비켜서서 선희가 선장이를 데리고 가는것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선희가 한팔로 선장이의 목을 감아안듯이 하고 데리고 가면서

<<벌은 왜 섰었니?>> 하고 물으니 선장이는 고대 다 죽었던것이 금세 살아나서

<<왜놈애를 패주었소.>> 하고 생글거렸다. 선희가 킥 웃고

<<우리 선장이가 아주 대단한데... 권투선수 아니야? 그렇지만 벌을 서는데 깨묵쪼각을 들구 서는 놈은 난 처음 보았다. 개코망신이다.>> 하고 치살리다가 시까스르니 선장이는 얼굴이 지지벌개 지면서

<<이거 놓우. 목이 비뚤어지겠소.>>

퉁명스럽게 말하고 목에 감긴 선희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웃몸을 뒤흔들었다.

<<지금 나하구 같이 우리 집에 가자.>>

<<싫소. 이거 놓우!>>

<<좋은거 보여줄게 있어.>>

<<싫단데두.>>

<<그럼 이따 저녁때 누나더러 좀 왔다가래라.>> 하고 선희가 목감았던 팔을 풀어주니 선장이는

<<모르우.>> 하고 깨묵을 든채 들고뛰였다.

선장이가 달랑달랑 걸어오다가보니 곱사등이네 구멍가게앞에 쪽걸상을 내다놓고 곱사등이가 웬 사람의 머리를 깎아주는데 그 머리르 깎이우는 사람이 선장이를 보고

<<어디 갔다오니?>>

알은체를 하였다. 선장이가 다시 보니 만국지도처럼 얼룩이 진 허연 헝겊을 앞에 두른 사람이 곧 씨동인지라

<<머리깎으러 왔소?>>

묻고 잇달아서

<<상고머리는 왜 깎소?>> 하고 물으니 씨동이가 미처 대꾸를 하기전에 곱사둥이가 말을 가로채여서

<<어째, 상고모릴 깎으면 주재소에서 붙잡아간다디?>> 하고 빈정거렸다. 이 곱사등이는 가게를 보는 한편 부업삼아 영업허가없이 도둑머리를 깎아주는데 하이칼라나 상고머리는 10전씩, 막 깎는 머리는 5전씩, 리발소의 절반값을 받는 까닭에 머리를 깎으러 오는 사람이 끈히 있어서 수입이 짭짤할거라고 말들하였다. 선장이는 방금 주재소에서 놓여나오는 길인데 방정맞은 꼽추가 방소꺼리는 말을 하는것이 못마땅하여 눈살을 찌프리고 대꾸를 아니하는데 그 눈치를 모르는 씨동이가

<<나 래일부터 노가다판엘 나가기루 했다. 돈을 벌러. 그래서 지금 좀 다듬는중이다.>>

말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어느 노가다판엘?>>

<<저아래 석유회사에서 부두공사를 하잖니.>>

이때까지 원산항 남쪽끝에 자리잡은 라이징썬회사의 석유저장고에는 부두시설이 되여있지 않아서 유조선들은 물 깊은 바다 가운데다 닻을 내려야만 하였다.

<<거길 가면 돈을 얼마씩이나 버우?>>

<<글쎄, 하루 60전 아래야 없겠지. 잘하는 사람은 한 1원각수씩두 번다더라.>>

선장이가 입을 막 열려는데 입이 잰 곱사등이가 또 앞질러서

<<60전이면... 쌀이 한말 아닌가.>> 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 말을 듣고 씨동이가

<<어째 부럽소? 부럽거든 이 가게 다 걷어치우구 래일부터 나를 따라나서우.>> 하고 엇먹이니 곱사등이는 다 쓴 가위와 빗을 리발기구 담는 궤뚜껑우에 놓고 솔을 집어들면서

<<자네가 이젠 우스개소리두 곧잘하네그려. 장가갈 때가 됐나베.>> 하고 지껄였다.

<<그렇소? 그럼 이왕 말이 난김에 마땅한 자리가 있거든 중신애비노릇이나 좀 하시우.>>

<<아 돈만 잘 벌어보지. 색시감이 없을라구.>>

<<돈을 못 벌면 그럼 생전 총각으로 늙어야겠구려?>>

<<어렵지, 배 곯으라구 딸을 주겠나... 어느 정신빠진 부모가.>>

<<이거 큰일 났구려.>>

<<그런데 자네 지난번엔... 그거 무슨짓인가?>>

<<한진사가 일껏 서사시켜 갖다주는 돈을... 싫다구 도루 갖다 굴러메쳤다며?>>

<<그래서 뭐 안된게 있소?>>

<<이 사람아, 50원이 어딘가. 50원이면... 우리 같은 사람에겐 한밑천이야. 자네가 지각이 있나 없나, 받은 밥상은 왜 차던져?>>

<<남이야 지각이 있건말건 깎던 머리나 어서 마저 깎우.>>

<<가만 좀 있게, 이제 면도질만 하면 다되네.>>

헌장이가 한옆에서 서서 깨묵을 먹으며 두 사람의 받고차는 말을 듣고있다가

<<난 먼저 갈라우.>> 하고 말하니 씨동이가

<<이젠 다됐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같이 가자>>

말하구 잇달아서

<<너 울었구나? 얼굴이 왜 그렇게 고양이 잔치한것 같으냐. 누구한테 맞았니?>> 하고 물었다. 선장이가 생글거리며 고개를 가로 흔드는데 홀제 등뒤에서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서 해찰을 하구있구나.>> 하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저의 누이 정실이다.

<<아버지가 너 공부 안하구 종일 나가돌아다니기만 한다구 지금 회초리 꺾어놓구 기다리신다. 어서 가자!>>

정실이가 동생의 손몰을 잡아끌고 가면서

<<온갖군데 다 찾아다녔다, 말할 녀석! 어째, 종아리가 성한게 원쑤 같으냐?>>

종알종알 잔소리를 하는데 선장이는 듣는지 마는지 깨묵만 오물오물 먹으며 기운이 풀려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것처럼 일부러 늘어져서 애를 먹이며 끌려갔다.

이튿날 학교에서 도시락들을 먹고난 뒤의 일이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집에 가 먹고 오지만 집이 먼 아이들은 대개 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는데 그 도시락의 반찬들을 볼작시면 열에 일곱여덟은 가재미 말린것을 밥솥에 넣고 쪄서 끈적끈적해진것을 손으로 뜯어서 쪼각을 낸것이였다. 닭알반찬이나 소고기장졸임 따위를 싸오는 아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것을 극히 적은 몇 아이 즉 한은희 같은 부자집아이들에 한하였다.

그래서 보통 원산토배기아이들은 도시락반찬이라는 말을 가재미 찐것과 혼동을 할 지경이였다. 선장이가 도시락을 후딱 먹어 치우고 은희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제기를 차는데 저쪽 철망란간에 붙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던 홍돼지가

<<얘들아, 저거 좀 와봐라.>> 하고 소리쳐 불러서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선장이와 은희가 제기를 차다말고 그리로 가게 되였다. 선장이가 홍돼지의 두둑한 어깨를 툭 치고

<<또 무슨 발견을 했니? 사령관마누라 탄 배가 또 나타났니?>> 하고 시까스르니 홍돼지는 못 들은체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거 보이니? 저 석유회사앞에서 아물아물하는것을...>> 하고 말하였다. 선장이와 은희가 눈을 들어 그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과연 까마득한 서유회사 매축공사장에서 딱정벌레 같은 밀차와 개미새끼 같은 사람들이 가물가물 움직이고있었다.

<<저건 무얼 할라구 저러는지... 너희들 아니?>> 하고 홍돼지가 저의 아는것을 자랑하고싶어서 떠보듯이 묻는데 은희가 속으로 가소로운것을 참고 겉으로 시치미를 떼고

<<모르겠다. 무얼 할라구들 저러니?>> 하고 되물으며 선장이에게 눈을 끔벅해보였다. 선장이가

<<홍돼지 잡아가둘 우리를 만드는게 아니야?>> 하고 엇먹이는데 홍돼지는 저의 아는것을 자랑할 마음이 급해서 그 말은 탄할 겨를도 없이

<<저기다 석유배를 갖다대구 뽐프루 석유를 뽑아올리려구 저러는거다. 아니?>> 하고 뽐내였다. 은희가 짐짓 놀라는체하며

<<그래? 그런걸 난 또...>>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데 선장이는 놀림조로

<<그담엔 또?...>> 하고 부추겼다. 홍돼지가 놀림가마리가 된것을 깨닫고 골이 나서 푸하고 가버린 뒤에 둘이 서로 돌아보며 한바탕 깔깔 웃고나서 은희가 먼저

<<너 이따 일하는데 한번 가보잖겠니? 우리 형님도 거기서 여느 사람들이랑 같이 일을 한단다.>> 하고 의논을 하니 선장이도 씨동이의 돈벌이하는것을 한번 가볼 생각이 나서

<<가자, 가보자.>>

선뜻 대답하여 두 아이의 의논이 손쉽게 맞았다.

하학후 두 아이는 책보들을 끼고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석유회사로 향하는데 도중에 길가 구멍가게에 들려서 은희의 돈으로 땅콩 두되를 샀다. 껍데기 까지 않은 땅콩도 되로 되여 파는것이 이 고장의 습속이였다. 둘이 각각 호주머니가 불룩해지도록 노나넣고 까먹으며 걷는데 지나간 길우에는 땅콩껍데기가 점점이 떨어져 널렸다. 두 아이는 신작로를 따라 에돌지 않고 아름드리로송들이 빽빽이 들어선 사대-지금은 쓰지 않는 사형장을 가로질러 지름길을 걸었다. 급기야 다닫고보니 너르고도 어수선한 공사장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는데 흙을 파는것도 사람이요 밀차를 미는것도 사람이요 또 삼판선이르 돌덩어리를 실어다 붓는것도 역시 사람이였다. 누가 누군지 분간을 못할 그 숱한 사람들중에서 저의 아는 얼굴을 찾아내려고 두 아이는 발돋움을 해가며 자꾸 두리번거렸다. 밀차 하나에 두 사람씩 달라붙어서 미는데 그중의 하나를 어울러 미는 두사람이 바로 은희의 형 한정희와 선장이가 찾는 양씨동이였다. 씨동이는 얼굴이 거머무트름하지만 그보다 나이 대여섯살 우인 한정희는 뙤약볕에 아무리 쪼여도 얼굴이 언제나 백옥같이 희였다.

<<형님-!>>

<<형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일시에 이쪽으로 고개드를 돌리키더니 이내 아이들을 알아본 모양이였다. 그러나 밀고 가는 밀차는 세우지 않고 계속 밀고 가면서

<<왜 왔니?>>

<<거기서들 좀 기다려라!>>

각기 소리 한마디씩을 질렀다.

두 아이가 나무그늘에 퍼더앉아 다리들을 쉬며 기다리는데 곡식 익히는 오후의 가을볕이 마냥 따가왔다.

씨동이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는 길로 쌍년이를 보러 갔다. 오늘부터 매축공사장에 돈벌이를 나간다고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서였다.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키 얕은 노가주나무산울타리를 훌쩍 뛰여넘어서보니 마루우에 생각지 않은 사람이 서있다. 일본주인 야마디가 굵은 격자무늬의 유까다를 걸치고 두손을 검정색명주띠에 지르고 마루끝에 나서서 해뜨기전의 현란한 하늘을 바라보고있는것이다. 꼴을 보아하니 오래간만에 밤에 와 잔 모양이다. 씨동이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였다. 앞이마에 땀이 흐를 지경이였다. 한편 야마다는 식전에 남의 집 산울타리를 뛰여넘어들어오는 놈이 있는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으나 다시 보니 씨동이라

<<너 요놈의 자식이 무어 하러 또 왔나, 나쁜 놈의 자식이.>>하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몹시 난처하게 씨동이는 하릴없이 비위를 팔았다.

<<사람의 집에 사람이 와서 못쓰우?>>

마루우를 쳐다보며 배짱을 내미니

<<누가 네놈더러 오라더냐?>>

마루우에서 내려다보며 야마다가 게먹었다.

<<오라긴 누가 오래... 내가 오구싶어 왔지.>>

<<콩밥을 먹어보겠니? 나쁜 놈의 자식이.>>

콩밥은 류치장이나 형무소에서 죄수들에게 먹이는 밥이다.

이때 야마다 등뒤의 반쯤 열린 장지뒤에서 쌍년이가 눈을 끔적이며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콩밥이 먹구싶거든... 당신이나 먹우.>>

대꾸하고 씨동이는 산울타리를 도로 훌쩍 뛰여넘어 나왔다. 야마다는 벌써부터 쌍년이가 딴짓하는것을 눈치채고있었다. 딴짓을 못하게 하자면 저의 심복으로 될만한 할멈 하나를 구해서 갖다두면 되겠지만 그러자면 또 군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또 11세기 십자군의 기사가 아닌바에 정조대를 채울수도 없는노릇이였다. 그래서 여러날 두고 수판알을 튕겨본 끝에 마침내 갈보를 데리고 사는 셈 잡고 딴짓하는것을 알면서도 저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눈감아주기로 마음 먹었었다. 구경은 계집의 정조보다는 금전이 더 중하였던것이다.


아들이 처음으로 돈벌이를 나간다고 어머니가 사발우에 사발하나를 덧놓은것만큼 수북이 담아주는 밥한그릇을 말끔히 부시듯이 먹어치우고 점심밥 싸주는것을 한손에 들고 씨동이가 일터를 향하여 성큼성큼 걸음을 떼여놓았다. 이때, 믿음성 없는 수공업적방식의 고기잡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어려운 사람들이 나가는 길은 대개 이와 같았다. 씨동이가 점순이 할아버지네 원두 놓았던 밭머리를 돌아서 소로길을 따라 로송들이 우중충한 사대옆을 지날 때, 지금 길을 걷느라고 사대를 가로질러나오는 한떼의 사람과 한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막로동 해먹은 사람들이란게 한눈에 알리는 그 사람들의 수효는 한 30명 될가, 모두다 모양이 각기 다른 점심밥그릇들을 끼고 들고 큰소리로 서로 지껄이며 오고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군계일학으로 두드러져보이는데 호리호리한 몸매며 길게 기른 머리며 해사한 얼굴이며가 어느 모로 보든지 막벌이군이 아니였다. 그 사람이 씨동이를 보자.

<<너 씨동이 아니냐?>> 하고 알은체를 하였다.

<<아 도련님!>>

씨동이가 반겨 내달으며 소리치는데 같이 오던 사람들이 <<도련님>>소리에 놀라서 모두 돌아보았다. 그 젊은이가 동행들을 돌아보고

<<앞서들 가시우.>>

말을 일러서 다들 앞서 보낸 다음 혼자 뒤에 처져서 씨동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너두 공사장에 일 나가니?>> 하고 물었다. 씨동이의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그 젊은이는 다시

<<이제부턴 도련님이라구 부르지 말아.>> 하고 말을 일렀다. 씨동이가 앞으로 어떻게 부를것을 몰라서 말없이 그 입을 바라보니 그 젊으이는 가볍게 한마디

<<형님이라구 불러.>> 하고 말하였다. 씨동이가 얼른

<<형님, 그런데 형님은 무엇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시우?>> 하고 그속을 도무지 알수 없다는 어투로 말하니 그 젊은이의 깨끗한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리였다.

<<먹구 살아야지.>>

<<아니 그래 형님집에 먹을게 없어서 그러시우?>>

<<내 집이 어디 있니?>>

<<한진사댁이 형님 집이 아니구 뉘 집이요?>>

<< 그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집이다.>>

<<못 들어볼 소리가 다 없소.>>

<<사내로서 부모에게 얹혀사는건 수치란 말이다.>>

<<처음 듣는 소리요. 난 못 알아듣겟소.>>

<<차차 알게 될게다.>>

<<도대체 우리 이 원산바닥에... 서울 가서 사각모 쓰구 학교 다닌 사람이 몇이나 되우?>>

한진사의 맏손자인 한정희는 서울 가서 전문학교까지 다닌 사람이다.

<<다른 이야기나 해라.>>

<<다른 이야기 무슨 이야기?>>

<<그래 배군노릇은 안할 작정이냐?>>

<<배군? 끼니 굶기 꼭 알맞소... 그놈의 배군.>>

한정희가 씨동이를 새삼스레 한번 돌아보고나서

<<역시 그렇구나.>> 하고 한숨섞어 말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이제 그 사람들은 형님이 데리구 일하는 사람들이요?>>

<<같이 일하는 동무들이지.>>

<<형님이 그 사람들의 대장이라면서요?>>

<<누가 그러디? 우리 여긴 대장, 소장 그런게 없다. 다 똑같지. 인간은 고하가 있어선 안된다. 높고낮은 등급이 있어선 안된단 말이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급기야 공사장이란데를 와보니 숱한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드는것이 정이 하나도 붙은데가 없는-글자 그대로의 란장판이였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물추기를 하는것과는 너무도 동떨어졌었다. 일이란것도 알고보니 하루 품삯이 얼마인것이 아니라 한 도로꼬에 얼마였다. 흙을 퍼서 도로꼬라고 불리는 밀차에 그들먹이 실어가지고 울룩불룩한 철길우를 줄지어 밀고 가서 바다물속에 퍼넣고 쏟아넣고 해야만 감독하는 십장이 때묻은 패쪽 하나를 주는데 그 패쪽 하나에 5전이다. 두 사람씩 두 사람씩 어울려서 하는것이므로 매 사람당 2전 5리 꼴로 풍기는 셈이다. 삯전을 이런 식으로 주는것을 로동판에서는 푼빵이라고 하였다.

<<너 처음 해보지? 오늘은 나하구 짝을 뭇자.>>

한정희가 웃으며 말하니 씨동이는 선뜻

<<도련님하구... 아니 형님하구? 아무려나 좋두룩 합시다.>>

하고 마주 웃었다.

<<첫날은 아마 힘이 좀 들게다.>>

<<아무려면 형 같은 학사님이 해내는 일을... 내가 못해내리까.>>

씨동이는 평소에 우러러보는 한정희와 짝을 무어 일하게 된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마음이 벅찼다.

정신없이 열두고팽이를 하고나니 해가 한낮이라 점심참이 되였다. 여럿이 군데군데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싸기지고 온 밥들을 먹는데 씨동이가 보니 한정희가 싸온 밥도 저나 다른 사람들이 싸온 밥과 다를것이 없었다. 씨동이가 마음에 안되여서

<<형님두 그런 밥을 잡수?>> 하고 물으니 한정희는

<<그게 무슨 소리냐? 난 무슨 별사람이냐? 하숙집에서 싸주는 대루 가지구 오는게지.>> 하고 웃었다.

씨동이가 눈치를 보니 주위의 사람들이 다 한정희를 공경하는것이 그 말이나 행동에서 자연히 드러났다.

잠간 쉬고 곧 다시 오후일이 시작되였다. 한 도로꼬라도 더 해야 저녁에 받는 전표의 금액이 올라가는 까닭에 모두들 기를 썼다. 땀범벅, 흙범벅이 되여서 일에만 몰두하는데 누가 일을 해라말라 잔소리할것도 없었다. 저녁에 일을 거둘 때 도로꼬수에 따라 떼주는 전표는 한달에 두번-5일과 50일에-셈을 해주는데 그전에라도 싸전이나 푸주간 또는 포목점이나 잡화점 같은데 가서 전표로 물건을 살수가 있다고 하였다. 단 전표놀음에서는 십일제 즉 10전을 9전으로 써야 한다는것이였다. 그 떼여낸 1전은 현금을 받지 않고 외상을 준 변리 일체로 가게주인이 차지한다는것이였다. 역시 막벌이군들을 발라먹는 합법적인 수단의 하나였다.

짧은 쉴참에 한정희와 씨동이가 아이들에게로 쫓아왔다. 하야말쑥한 한정희가 거머무트름한 씨동이와 다같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여긴 뭣 하러 왔니?>> 하고 한정희가 먼저 저의 동생을 보고 말하고 잇달아서 <<얘는, 누구더라?...>> 하고 선장이를 보며 고개를 한편으로 기울이니 은희가 얼른

<<서선장일 모릅니까?>> 하고 알려주었다. 한정희가 깨도가 되여서

<<오 그렇지 서선장이. 너 컸구나. 네가 우리 집 고양이 수염을 깎았었지?>> 하고 웃으면서 선장의 밤송이 같은 머리를 한번 내리 쓰다듬었다. 선장이가 씨동이를 쳐다보며

<<형님 돈벌이가 잘되우?>> 하고 물으니 씨동이는 하하 웃고

<<그놈의 돈벌이에 사람이 괜히 뼈만 빠진다, 넨장.>>하고 한정희를 돌아보며 싱글거렸다.

말 몇마디 아니하여 쉴참이 어느새 끝이 났다. 일을 시작하자고 고함치는 소리를 듣자 땅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았던 두 사람은 후닥닥 뛰여일어나 두 아이에게 어서 고만 집으로 돌아들 가라고 말을 이른 뒤 뿔뿔이 밀차께로 달려갔다.

추천 (4) 선물 (0명)
IP: ♡.50.♡.67
로즈박 (♡.39.♡.172) - 2023/10/17 21:42:03

오늘은 많이 올려주신 덕분에 너무 잘 보고갑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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