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9

더좋은래일 | 2023.10.18 17:01:13 댓글: 3 조회: 300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09956

9

선장이가 새 학년에를 올라가니 국사, 지리, 리과 세 과목이 늘었다. 그런데 교과서를 타고보니 그중의 국사라는것은 조선력사가 아니고 일본력사였다. 국사교과서에 딸리는 국사부도라는 채색으로 찍은 그림책도 탔는데 거기에 할빈역두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의사가 불령선인 즉 불량배 악한으로 그려졌었다. 그리고 지리교과서에 딸리는 지리부도에는 조선이 일본과 같은 색갈-빨간 색갈로 찍혔었다. 아이들이 분개하여 모두 국사교과서의 나라국자를 날일자로 고치는데 선장이도 물론 그 축에 빠질리가 없었다. 한창 나라국자를 날일자로 고치는 역사를 하고있을즈음에 학급담임 김영하선생이 교실을 한바퀴 돌아보다가 눈결에 이것을 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교장한테 들키면 큰일난다, 조심들 해.>>

이는 곧 담임선생이 묵인한다는 말이다.이에 고무되여 아이들은 가만가만 하던 일을 도리여 드러내놓고 하게 되여서 한학급 50명 생도 전원이 불과 하루사이에 국사책을 모두 일사책으로 고쳐버렸다. 그중에는 물산회사 사장의 아들도 있고, <<참나무방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린색하기짝이 없는 지주의 손자도 있고, 또 의사, 변호사의 아들도 있고, 지어는 별순사 즉 순사부장의 아들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일본인교장 호소가와의 귀에는 이러한 변고가 입문이 되지를 않아서 호소가와는 이 일을 캄캄히 모르고있었다.

어느날 국시시간 즉 력사시간에 김영하선생은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있는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 신무천황(神武天皇)을 가르칠 대신에 교과서에 없는 조선력사를 가르쳤다. 김영하선생은 몸속의 피가 끓어번져 정 참을수가 없어서 탄로가 나면 목이 달아날것을 각오하고 가르친것이였다. 도저히 아니 가르칠래야 아니 가르칠수가 없어서 가르친것이였다.

<<우리나라는 그러니까 우리 조선에는 지나간 500년 동안에 임금이 모두 스물일곱분이 계셨다. 나리님 즉 왕이 계셧단 말이다. 우리가 조선사람으로서... 조선민족... 조선백성으로서... 적어두 자기 나라의 임금이 어떤분들이였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오늘은 교과서는 덮어놓구 이것을 배우기루 하자.>>

<<초대의 임금이 대조대왕이시구 두번째 임금이 정종대왕... 그 다음 임금이 태종대왕이신데... 외기 쉬우라구 첫 글자 한자씩을 떼서 일곱자씩 일곱자씩... 태(太)정(定)태(太)세(世)문(文)단(端)세(世),예(睿)성(成)연(燕)중(中)인(仁)명(明)선(宣), 광(光)인(仁)효(孝)현(显)숙(肃)경(景)영(英)... 이렇게 외기루 하자. 그러나 맨나중은 정(正)순(纯)헌(宪)철(哲)고(高)순(纯)... 여섯분밖에 안 계시니까... 없는 그대루 여섯 글자를 외기루 하자. 다들 알았느냐?>> 하고 물었따. 아이들의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김영하선생은 다시

<<모두 스물일곱분... 그럼 이제부터 나를 따라 외워라.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하고 선창을 하였다.

스물네살에 나는 총각선갱 김영하는 그렇게 하는것으로 아이들의 가슴속에다 조선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애국심을 심어주려고 하였던것이다.

평소에 공부하기를 즐기지 않은 선장이도 이날만은 열심히 그 시물일곱자를 외웠다.

점심시간에 선장이가 옥상에 올라가 뒤짐을 지고 왔다갔다하면서 혼자 시벌시벌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고있는데 누가 뒤에와서 어깨를 탁 쳐서 돌아보니 약방집아들 뺑덕할미였다.

<<다 외웠니?>>

<<스물일곱자 횅하다. 눈감구 쓰래두 쓸만하다.>>

<<그런데 또 뭘 외우니?>>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려구 단단히 다지는 판이다.>>

뺑덕할미가 씩 웃고

<<지도는 어떻게 했니?>>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였다. 뺑덕할미가 묻는것은 조선지도의 빨간 색갈을 어떻게 하였느냐는것이였다.

<<빨간데다 퍼런 잉크를 칠했더니... 아주 새까맣게 돼버렸다. 경성이구 원산이구... 글자는 하나두 안보인다.>>

<<우둔하지.>>

<<넌 어떻게 했니?>>

<<난 하얀색의 파스텔을 살짝 칠했다. 아주 멋있다.>>

<<나두 그럭할걸. 이제라두 해볼가?>>

<<임마, 새까만데다 하얀색을 덧칠하면 뭐가 되니? 고만둬라.>>

<<제기.>>

하학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장이가 어떡하다보니 뺑덕할미가 쓴 학생모의 한쪽 귀퉁이가 무엇에 걸려서 찢겼는지 아가리를 벌렸었다. 선장이가 뺑덕할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직신직신하면서

<<임마, 네 그 새 모자... 가시줄에 걸리잖았니? 찢어졌다.>> 하고 일깨워주었더니 뺑덕할미는 씩 웃고

<<시굴뜨기란 할수 없다.>> 하고 업신여기는 투로 뇌까렸다.>>

<<누가 시굴뜨기야?>>

시비조로 다우치니 뺑덕할미는

<<네가.>> 하고 비양조로 대꾸하였다.

<<어째서?>>

<<새 모자를 쓰구 좋아하는건 햇내기라구... 지금 전국적으루 헌 모자를 쓰는게 류행이다. 너 아니? 이건 영국식이야. 영국신사들은 절대로 새옷을 안 입어. 새 모자두 안 쓰구 새 양복을 지으면 그대루 입지 않구 며칠밤씩 입은채로 침대에서 딩굴어 헌것을 만들어가지구야 입구 나와. 이것이 영국풍이래. 그래서 지금 서울서는 학새들이 새로 산 교모를 찢기만 하는게 아니라 아예 와셀린을 발라가지구 마루바닥을 닦기까지 한대, 헐어지라구. 다들 그렇게 헌털뱅일 만들어 쓰구 다니는게 류행이래. 서울 가 공부하는 우리 외삼촌이 방학에 와 다 가르쳐주었다. 그래 나두 일부러 이렇게 찢어쓰구 다니는거다. 알았니, 이 촌놈아?>>

선장이는 크게 감동이 되여 그 즉석에서

<<너 칼 없니?>> 하고 물으니 뺑덕할미 선선히

<<응 있다. 옜다.>> 하고 호주머니에서 접칼을 꺼내주었다. 뺑덕할미는 동당을 쟁취한것이 마음에 흡족한 모양이였다. 선장이가 그 칼을 받아가지고 저의 모자를 벗어서 한군데 북 찢었다. 그러고도 좀 부족한 생각이 들어 한군데 더 북 찢어서... 아가리가 둘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선장이는 그것을 쓰고 마치 월계관이라도 쓴것 모양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교내에 모자를 찢어쓰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극소수의 얌전이들을 빼놓고는 거의다 학모를 찢어쓰는중에 선장이는 승벽이 있어서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치렬한 경쟁을 벌인 나머지 선장의 모자는 찢기다 찢기다 못해 마침내 완전히 수습할나위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날 뺑덕할미가 선장이를 보자 대뜸

<<선장이 너 어제 나 없는 새... 우리 집에 왔댔지?>>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의아해하며

<<갔댔다. 그런데 내가 간걸 너 어떻게 아니?>> 하고 되물었다.

<<내가 어제 외가집엘 갔다오니까... 우리 엄마가 날 보구 `아까 걸레같이 너덜너덜한 모자를 쓴 아이가 찾아왔더라.` 하기에 난 대번에 네가 왔던걸로 짐작을 했다.>>

선장이가 청줄어람으로 그 선배를 릉가함이 대개 이러하였다. 이와 같이 선장이의 걸레같이 너덜너덜한 모자가 소문을 놓은중에 또 한가지 일이 생겼다. 엿방집아들 홍돼지란 녀석이 놓은 팔뚝에다 반달 하나를 자묵(刺墨)을 해가지고 와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뽐낸것이다.
<<봐라 내 이 반달. 이걸 해야만 죽어서 저승엘 가두... 염라대왕이 혀바닥을 쇠갈구리루 꿰지 않는다. 이걸 안하면... 푸주간에서 갈비를 걸어놓는것처럼 갈구리루 혀바닥을 꿰서 매달아놓는다. 난 이젠 맘놓구 살수 있다. 저승엘 가두 아무 일 없다.>>

홍돼지의 말을 듣구 선장이는 속으로 슬그머니 겁이 났다.

(저승에 가 혀바닥을 꿰달면 어떡한다?)

선장이는 집으로 달아오는 길에 홍돼지가 가르친대로 부지바늘 하나를 얻어 굵은 무명실 한오리를 꿴 다음 먹물에 푹 적셨다. 그래놓고 팔소매를 걷어올렸다. 팔뚝을 꿸 작정인것이다. 그런데 시험적으로 살가죽을 바늘끝으로 한번 찔러보았더니 어찌나 아픈지 도저히 바늘을 다 꿰여서 먹 묻힌 실을 살속으로 끌어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바늘끝에다 먹물을 묻혀가지고 한번 꼭 찌르고말았다. 저승에 가 무서운 형벌을 받지 않을 목적으로 찌른 그 바늘끝은 선장이 팔뚝에 영원히 가시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파란 점 하나를 남긴것이다.

일요일이면 더우기나 무사분주한 선장이가 다리란간에 콜타르칠을 해서 검정다리라고 불리는 너비는 넓고 길이는 짧은 목교의 다리목에서 학교의 선생님들과 맞다들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예닐곱분인데 어느 잘사는 학부형네 환갑잔치에 초대를 받아가 대접들을 푸짐히 받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예닐곱분 선생님은 신작로의 폭을 다 차지하다싶이 일렬횡대로 벌려서서 서로 웃고 지껄이며 슬렁슬렁 걸어오고있었다. 이때 원산에는 자동차가 모두 합해 대여섯대가 되나마나하였는데 그 전부가 다 미국제포드로서 시커먼 풍을 친 이른바 오픈카였다. 발동을 걸 때는 엔진 앞코에다 꺾쇠모양의 쇠막대기를 들이밀어가지고 내둘러야 하였고 또 클랙슨이란것은 고무방울이 달린 나팔인데 손으로 쥐였다놓았다해서 소리를 내게끔 되여있었다. 자전거나 인력거 따위는 더러 있었으나 리야까니 트럭이니 하는것은-더구나 소방차니 살수차니 하는것은-시민들은 아직 본적은 물론이요 들어본적조차 없었다. 이렇듯 한적한 세월이였으므로 선생님들이 신작로를 독차지하다싶이 하고 걸어도 아무 지장이 없고 또 말썽도 없다. 선장이가 불시에 선생님들과 7대1로 맞다들리고보니 미상불 가슴이 팔딱팔딱 뛰였다. 1대1도 버거운데 7대1이니 어찌 아니 그러랴. 선장이는 걸레모양으로 너덜너덜하는 학모를 얼른 벗어 쥐자 부지런히 오른쪽 맨끝의 선생님께부터 달려가 꾸뻑 한번 경례하고 또 다음 선생님께 꾸뻑 한번 경례하였다. 이와 같이 내리매기로 경례를 하는데 서너번째부터는 걸어오는 선생님들에게 밀리여 뒤걸음질을 치면서 해야 하였다. 장관의 인사를 마치자 세번째인가 네번째를 걷고있던 담임선생-김영하선생이 선장이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선장아, 이담부턴 선생님을 여러분 만났을 때는... 경례를 도거리루 한번만 해라. 알겠냐?>> 하고 말을 일러서 선장이는 얼굴이 지지벌개져가지고

<<녜.>>

대답하였다. 선생님들이 계속 걸어가며 웃고 지껄이는중에 김영하선생이

<<저 아이가 장난은 심해도... 우리 학급에서 작문을 제일 잘 짓지요.>> 하는 소리가 귀결에 들리는지라 선장이는 좋아서 입이 헤벌어졌다.

선장이가 별로 이렇다할 소득도 없이 싱겁게 한바퀴 휘 둘러서 집으로 오는중에 앞길에 불시에 사람 두엇이 나타나서 마주 달음박질쳐왔다. 다시 보니 한선희와 한은희 두 남매라 무슨 일이 난줄로 짐작하고 선장이가

<<어딜 가니 은희야?>>

급한 말소리로 물으니 은희는 잠시 달음박질을 멈추는듯 헐레벌떡하면서

<<회관에... 쌈났다!>>

웨치고 다시 몸을 돌려 저의 누이와 함께 줄달음질을 쳤다. 그런 일에 빠질 선장이가 아니다. 선장이도 제잡담하고 두주먹 불끈쥐고 그뒤를 따랐다. 다 큰 녀학생 하나를 선두로 두 아이가 앞서거니뒤서거니 닫는것을 보고 길가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하였다.

청년회관앞 신작로와 정구장에는 벌써 구경군들이 백차일 치듯하였다. 선장이가 한서희네 오누이와 함께 사람들 틈바구에서 끼여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며 구경을 하는데 청년회관을 포위공격하는 한무리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청년회관의 유리창들은 이미 모두 박산이 나 성한것이라곤 거의 없는 형편이였다. 회관안의 사람들은 사전에 이러한 돌연적습격에 대응할 준비가 없었던 모양으로 유리창을 깨부시며 날아들어오거나 이미 깨여진 유리창으로 날아들어오는 돌들을 하나하나 주어모아 그것으로 반격을 가하고있다. 말하자면 투석전인데 공격하는 편은 인수가 월등-10여배나-많은데다가 돌이 얼마든지 있는것이 유리하였고 또 방어하는 편은 거고림하(居高临下)로 웃층에서 내리치는것이 유리할뿐더러 벽이 가려서 은신하기가 좋은 반면에 공격하는 편은 숨을데가 없어서 목표가 드러나는것이 불리하였다. 공격하는 사람들은 구루마라고 불리는 손수레에다 돌을 그들먹이 싣고 왔을뿐아니라 원시적이고 민족저긴 최루탄-고추가루-까지 한자루 싣고 왔었다. 그들이 사전에 주도하게 준비를 한것은 이것만 보아도 알수 있었다. 공격자중의 몇몇이 머리들을 한데 모으고 한참 수군수군하더니 곧 돌격대가 조직되여 칠팔명의 젊은축이 몽둥이들을 꼬나들고 일시에 으악 소리를 지르며 현관문으로 뛰여들어갔다. 이내 회관안에서 우당탕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한참만에 돌격대들이 우- 도로 밀려나왔다.

<<어떻게 됐나?>>

행동대의 대장인듯싶은 나이 서른나문살 된 허우대 큰 사람이 앞으로 쫓아나가며 성급하게 묻는 말을

<<안되겠소, 그냥은 안되겠소.>>

<<좁은 층층대의 꺾임목을... 빼트방망이 든 놈과 면도칼 든 놈이 지키는데... 짓치구 올라갈 재간이 없소.>>

<<그뒤에는 또 팔매질하는 놈들이 둘러섰으니... 어떡하우.>>

<<젠장 이럴줄 알았더면... 방패루 쓰게... 키를 갖구 올걸 잘못했어.>>

<<보이라간에서 쓰는 긴 쇠막대기두 필요한데.>>

돌격대원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대답을 하는데 그 말소리가 선장이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이때 별안간 회관 웃층에서 롱성하는 사람들이 마루장을 굴러대며 용장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전사들을 전투에로 불러 일으키는 노래인지 또 승전곡인지 아니면 결사전을 맞이하는 노래인지, 알수가 없으나 하여튼 용장하고 비장한 노래소리가 깨여진 창문으로 쏟아져나오는데 선장이는 몸속의 힘줄들이 팽팽히 켕기는것을 느꼈다. 그 노래소리가 그치며 곧 회관안에서 우르르 소리가 나더니 일단의 돌격대가 짓쳐나왔다. 손에손에 몽둥이, 빼트방망이, 쇠몽치, 면도칼, 자전거사슬 따위를 휘드르며 일렬종대로 돌진하는 그 10여명 돌격대원중에 창백한 얼굴에 길고 검은머리가 헝클어진 한정희가 있었다. 시커먼 소도둑놈 같은 양씨동이도 있었다. 선장이와 은희가 저들도 모르는 사이에 량쪽에서 선희에게 딱 달라붙었다. 선희는 두팔로 선장이와 은희를 꼭 껴안고 발발 떨었다.

돌격대의 예봉을 꺾기가 어려워 포위한 군들은 배머리에 헤갈리는 물결처럼 좌우로 쫙 갈라지며 길을 텄다. 돌격대는 이에 기운을 얻어 무인지경을 가듯이 한바탕 정구장과 신작로를 휘돌아친 뒤에 재빨리 도로 걷히여 들어갔다. 회관 이층에서는 또다시 마루장을 굴러대며 힘지고도 비장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더 말할것도 없이 그것은 포위자들에 대한 시위였다.

선장이는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씨동이의 편이였다. 하물며 그가 열갑절도 넘는 적들에게 포위를 당했음에야. 정의감이 있는 선장이는 만강의 동정을 포위당한 약자들에게 기울였다. 이 점에서 선희와 은희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오빠, 존경하는 형님이 거기 있음으로 하여... 그들의 초조한 마음은 오로지 롱성중인 회관안에 날아드어가있었다. 소리개에 쫓기는 새새끼처럼 작은 가슴을 팔딱이며 뒤늦게 소식을 듣고 진둥한둥 달려온 사람들이 먼저와 서있는 구경군들에게 말을 묻는 소리가 등뒤에서 나는것을 선장이도 선희도 은희도 다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란리판이요?>>

<<명석동조합에서 쳐내려왔다오.>>

<<명석동조합이라니?>>

<<아따 이 량반, 로동조합두 모르우? 적색로조.>>

<<아마 서루 맘이 맞지 않으니까 그러겠지. 자세한 속내는 나두 잘 모르우.>>

<<명석동하구 남산동하군 두주먹 불끈 쥐고 달아두 한참 걸리는데... 터쌈도 아닐테구.>>

<<아 왜 이렇게 자꾸 떠미우? 젠장 남의 발등까지 밟으면서.>>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소리가 잠시 동이 끊기자 번이라도 옆에서 차분차분한 다른 목소리가 사이에 끼여들었다.

<<아 빨갱이하구 까망이가 맘이 맞을리 있소? 앙숙이지. 개와 고양이두 맞다들기만 하면 아옹다옹하잖소.>>

<<빨갱이는 뭐구 까망이는 뭐요?>>

<<아 빨갱이야 로동조합 아니겠소. 적색로조.>>

<<그럼 까망이는?>>

<<까망이야 무정부주의패지요, 쩍하면 치구달구하는.>>

또 다른 막걸리중독에 걸린것 같은 갈린 목소리가 말참녜하였다.

<<그런데 저 주재소에서 왜 이렇게 큰 란리판이 벌어졌는데두 나와볼 생각을 안하구 가만히 엎드려만 있을가? 도시 모를 일이야.>>

<<쌈판이 하두 어마어마하니까 겁들이 나는게지.>>

<<예 여보, 그것두 말이라구 하우? 그 사람네가 전화 한번만 걸면... 본서에서 무장경찰이 쏟아져내려올판인데. 그러구 또 헌병대는 없나... 그 무서운 헌병대. 겁이 난다는건 다 뭐요.>>

<<그럼 왜들 유리창에 붙어서 내다보구만 있을가?>>

<<그 속내평이야 뉘 알겠소. 저들두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겠지.>>

<<그 녀석들 싱글싱글 웃으면서 서로 돌아보구... 뭐라구 지껄이구만 있습디다.>>

<<길거리에서 누가 다툼질만 좀 해두... 다짜고짜 붙들어다가 벌을 세우구 뺨을 치구 류치장에다 가두구 하던 놈들이.>>

<<너희들끼리 실컷 두드리고 패구 하란 수작인가?>>

<<아이구, 저것 좀 보우, 어디 가 사닥다릴 들구 왔소.>>

듣기 싫게 뻑뻑한 목소리가 호들갑을 떠는데

<<창문으루 기여들어갈라나베.>>

늘쩡한 목소리도 한몫을 보았다.

<<저 자루, 저 자루!>>

<<고추가루를 뿌려서... 눈들을 멀굴 작정인가?>>

<<저러다간 까망이패가 아주 요정이 나겠소.>> 하고 막걸리중독에 걸린것 같은 목소리가 걱정을 하니

<<넨장, 밥처먹구 할 지랄들이 없던가!>> 하고 몸시 되바라진 목소리가 뒤받았다.

<<입들 좀 다물구 가만있소. 옆사람이 귀가 따가와 못 견디겠소.>>

누군가가 볼멘소리로 이렇게 핀잔을 주니

<<듣기 싫거든... 제 귀구멍이나 틀어막을게지... 웬 시비야?>>

몸시 되바라진 목소리가 뇌까리는데

<<고만들 두우. 이러다가 쌈나겠소.>> 하고 늘컹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말린즉

<<옳소, 고만들 두우.>> 하고 막걸리중독에 걸린것 같은 갈린 목소리가 동을 달았다.

이때 회관안에서는 도저히 더 지탱할수가 없게 된 롱성군들이 혈로를 뚫고 나가기로 작정한 모양으로 일시에 아우성을 치며 짓쳐나왔다. 물고를 터친것 같은 기세였다. 20여명 사람이 하다못해 부삽, 송곳바루랭이라도 다 하나씩은 손에 들었었다.

선장이는 면도칼을 비껴든 한정희와 자전거사슬을 내두르는 씨동이가 모두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것을 인총중에서 보고 깡총깡총 뛰다싶이 좋아하며 선희의 팔죽지를 움켜잡아 매무시 곱게 한 저고리를 헝클어놓았다.

적색로조사람들은 달아는 패들을 끝까지 물고늘어지지는 않았다. 추격을 하지 않고 달아나게 그냥 내버려두었다. 다만 등뒤에서 돌을 몇개 던져 배송을 냈을뿐이다. 그들은 이미 황성옛터로 되여버린 빈 회관 정문에다 널빤지 두쪽을 어긋매깨로 대고 못질을 하여 봉쇄를 한 다음 이번 행동의 총책임을 진상싶은 허우대 큰 사람이 일의 뒤수쇄를 하였다. 그 사람은 다 쓰지 않은 돌이 아직도 적잖게 남이있는 손수레우에 올라서서 구경군들을 둘러보며 경과보고 비슷이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우리 조합 로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해 투쟁을 벌리는... 조직적인 투쟁을 벌리는데... 여기 사람들이... 이 회관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자꾸 침투해 들어와 파괴를 일삼는단 말입니다. 통일된 조직의 힘이 없이... 개별적인 해동으로는 아무 일도 성사를 못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들과 여러차례 합의를 했습니다. 좋은 말루 타일렀습니다. 성의를 가지구 설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을뿐아니라 그들의 파괴활동은 날로 우심해졌습니다. 이렇게 실력행사를 하지 않구는 도저히 더 어떻게 할수 없을 지경에 까지 몰구 갔습니다.>>

그사람이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돌린 뒤에 다시

<<누가 저의 겨레끼리 싸우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피면하려구 갖은 애를 다 썼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도로 아미타불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실력행사는 부득이 한것이였습니다. 동포 여러분께 페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걷어가지구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말을 마치고 그 사람은 손수레우에서 깊이 허리를 구푸리여 사과의 뜻을 보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것은 이와 같이 큰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처음부터 끝까지-주재소는 쥐죽은듯 잠잠하였던것이다. 설령 우주의 다른 천체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내 알바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선장이는 몇해후에 서울서 이와 비슷한 괴사를 또 한번 겪어야 하였다.


추천 (4) 선물 (0명)
IP: ♡.50.♡.65
더좋은래일 (♡.50.♡.65) - 2023/10/18 20:03:53

글을 보시다가 혹시 틀린글자나 틀린구절이 있으면 지적해주기바랍니다. 바로 고치게요^^

로즈박 (♡.39.♡.172) - 2023/10/18 20:06:13

아니요..괜찮아요..
이 많은글들을 타자하시기도 힘드신데..
알아서 잘 봅니다..ㅎㅎ
너무 고맙습니당

로즈박 (♡.39.♡.172) - 2023/10/18 20:04:41

머지?왜 동포들끼리 싸웟을가요?
혹시 여기 국회서처럼???
아이고..정말..머가 먼지 모르겟네요..ㅎㅎ살기도 힘든데 왜 저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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