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0

더좋은래일 | 2023.10.19 08:52:31 댓글: 2 조회: 305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056


10

선장이 어머니가 저녁반찬으로 튀각을 만들려고 무명치마의 말기같이 넓고 두꺼운 다시마를 한 함지박 담아서 토방에 내다놓고 혼자 앉아 펴고 비비고 베고 하는데 반쯤 열려있는 사립문안에 낯모를 젊은 남자 하나가 들어섰다. 선장이 어머니가 보니 그 남자가 키는 크지 않으나 호리호리하고 희고 야월사한 얼굴은 청수한데 오목한 두눈은 흑산호같이 빛이 났다. 카키색책가방을 손에 든 그 남자가 선장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인사를 하고

<<저 여기가 서선장이네 집입니까?>> 하고 물어서 선장이 어머니는 한손에 다시마를 또 한손에는 가위를 든채 의아스런 얼굴로

<<녜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하는데 그 남자가 웃으며 몇발자국 앞으로 나와서

<<녜 저는 저 선장이 담임선생입니다. 어머니시지요?>> 하고 인사를 하여 선장이 어머니는 황망히 손의것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아이구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어서 안으루 좀 들어오십시오, 집이 너무 루추해서...>>

말하며 부지런히 행주치마의 끈을 끌렀다.

주인마누라가 청하는대로 방안에 들어와 책가방을 내려놓고 또 모자를 벗어놓고 자리에 앉은 뒤에 선장이의 학급답임 김영하선생은

<<선장이는 어디를 갔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녀석이 언제 집에 있을 새가 있습니까, 들개처럼 밤낮 나돌아다니는 녀석이.>>

김영하선생이 하하 웃고

<<집에서두 장난이 심한 모양입니다.>> 하니 선장이 어머니는

<<천생 굴레멋은 망아집지요. 도무지 말을 안 듣습니다.>> 하고 하소연하듯 아들을 타박하였다.

<<아직은 철이 덜 나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겝니다.>>

<<글쎄요.>>

<<두구보십시오, 그런데 선장이 아버지는 어디를 가셨습니까?>>

<<바다에 나갔습지요, 래일낮전에나 아마 돌아올겁니다.>>

<<식구가 모두 몇분이나 되십니까?>>

<<그 녀석의 손우 누이 하나가 있지요.>>

<<아 녜, 식구가 단출하십니다... 네식구면.>>

<<녜, 식구는 많지가 않아요.>>

<<말씀드리는게 좀 뒤늦었습니다만.. 저는 오늘 가정방문을 다니는중입니다. 새루 맡은 학급이라서... 가정상황을 좀 료해하려구요.>>

<<녜, 그렇습니까, 선생님께서 수고를 너무 많이 하십니다. 철없는것들 데리구.>>

<<그러데 선장이가 작문을 아주 잘 짓습니다. 그 방면에 소질이 있습니다.>>

<<그깟 녀석이 웬 그런...>>

<<아닙니다. 정말 잘 짓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작문집을 하나를 냈는데... 그 맨 첫머리에 선장이의 작문이 실렸습니다.>>

말하고 김영하선생은 책가방을 열고 그속에서 프린트한 책 한권을 꺼내들며

<<제가 한번 읽어드릴테니 어머니께서 좀 들어보십시오.>>하고 목청을 가다듬더니 찬찬히 읽기 시작하였다.


거짓말

서선장

지난번 태풍으로 많은 고기배가 파선하여 또 숱한 배군들이 목숨을 잃었다. 길을 가다가 참외를 사먹으러 원두막에 들리는 사람에게 점순이 할아버지가 그때의 이야기를 하였다. 나도 옆에 서서 들었다. 점순이 할아버지 말이, 숱한 송장이 물밑에 가라앉은것을 미처 건지지 못하여 가재미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파먹었다. 가재미를 잡아다 배를 따니까 그속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다 나오더라. 이와 같이 허풍을 쳤다. 참외 사먹던 사람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고 고개를 외치니 점순이 할아버지는 서슴없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켜보이며 바로 저 아이네 집에서 있은 일인데 설마 그렇게까지란 다 뭐요, 내말이 못 미덥거든 저 아이한테 당신이 직접 물어보시구려 하고 말하였다. 점순이 할아버지가 이렇게 능청스러운줄은 전에는 몰랐었다. 그 사람이 더욱 놀라 나를 돌아보고 너의 집에서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느냐 하고 묻는데 나는 체면에 몰리여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할수가 없었다. 그래 할수없이 고개를 까댁까댁하였다. 그제는 그사람도 믿어지는 모양으로 입을 딱 벌리며 저런 끔찍스러운 일 있나 하고 점순이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점순이 할아버지가 신이 나서 그것 보지 하고 코구멍을 벌름벌름하는데 나는 낯이 뜨뜻하여 죽을번하였다. 나는 어찌하여 그런 거짓말을 하였을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다 읽고나서 김영하선생이

<<자 어떻습니까?>> 하고 자랑스럽게 선장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선장이 어머니는

<<글쎄요, 난 듣구두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말하여 머리를 흔들었다.

<<아주 엉뚱합니다. 이걸 소학생의 작문이라구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김영하선생이 입에 침이 없이 제자의 칭찬을 하는중에 밖에서

<<엄마.>>

소리가 나서 방안 두 사람이 다 마당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맨머리 맨발에다 속잠뱅이 바람의 선장이가 손에다 무엇을 들고 사립문으로 들어오는데 그뒤에 함지를 머리에 인 큰 처녀-정실이가 따라 들어갔다. 정실이의 입은 깜장치마는 방금 물에서 건진것처럼 호졸곤하였다. 녀자는 바다물에 들어갈 때 치마를 입은해로 들어가는것이 이고장의 풍습이였다. 김영하선생은 선장이의 누이로 짐작되는 그 처녀의 낯선 사람을 보고 수태를 머금는 얼굴과 꾸미지 않은 몸매를 보자 불현듯 야생의 백합꽃간이 청초하구나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선장이가 뜻밖에 선생님이 방안에 앉아있는것을 보고 놀라서 무춤 발을 멈추는데 그 어머니는

<<선생님이 와계신데 저 주제를 해가지구.>>

나무라고 잇달아서

<<어디들 갔다오는거냐?>>

책망하듯 물었다. 선장이가 발명하듯

<<누나가 가자구 끌어서... 조개 잡는데 따라갔댔는데.>> 하는것을 그 어머니

<<냉큼 들어와 옷들 갈아입지 못해. 선생님을 뵈여야지.>>

말하며 웃바을 가리켰다. 남매가 부지런히 손에 든것과 머리에 인것을 토방에 내려놓고 웃방으로 들어가더니 잠간동안에 마른옷들을 갈아압고 아래방으로 올라와 새판으로 김영하선생에게 인사를 하였다. 한동안 더 앉아 담화를 하다가 김영하선생이 회중시계를 꺼내보고나서 선장이를 돌아보며

<<너 은희네 집을 아니?>>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선뜻

<<녜 압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김영하선생이 꺼내서 읽던 작문집 한책은 방바닥에 그대로 놓아두고 벗어놓았던 모자와 책가방으르 집어들면서

<<그럼 네가 집을 좀 가르쳐다우, 거기두 오늘 좀 들려봐야겠다.>> 하고 일어서니 선장이 어머니가 좀더 앉아 노시다가 찬 없는 저녁진자나마 잡숫고 가시라고 붙들었다. 김영하선생은

<<오늘은 들려볼 집들이 아직 여러집 있으니 이담에 또 옵지요.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인사하고 주인 모녀의 배웅을 받으며 선장이를 앞세우고 골목을 나섰다.

김영하선생이 선장이를 앞세우고 한은희네 집으로 향하다가 얼마 아니 걸어서 눈에 띄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녀자 하나와 맞다들었다. 애티를 벗지 못한 그 녀자는 우아래 다 보라색주사니것을 휘감고 하얀 버선에 옥색고무신을 받쳐신었는데 까만 머리는 곱게 기름을 발라 쪽지고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였었다. 그 녀자가 한옆으로 비녀서는듯 웃으면서

<<선장이 너 어디 가니?>> 하고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알은체를 하는데 그 빨간 입술사이로 드러나는 흰 이가 김영하선생에게는 눈이 부실 지경이였다. 그 녀자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또 무엇을 하는 녀자인지는 몰라도 첫인상은 매우 강렬하여 김영하선생은 어느 소문난 정원에서 가꾼 모란같이 농염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선생님 모시구... 한은희네 집으로 가우.>>

선장이의 대답하는 말을 듣자 그 녀자는 곧 대담하고도 능란하게 김영하선생을 향하여 고개를 까댁하고

<<선생님이신걸 모르구 실례했습니다. 저는 선장이의 누이벌되는 사람입니다.>>하고 또 한번 고개를 까댁하였다. 김영하선생은 적이 놀라서 얼른 한손을 머리에 쓴 모자에 갖다대며

<<아 그렇습니까? 그러세요.>>하고 황망히 인사를 맞았다.

<<우리 선장이가 말을 안 들어... 얼마나 속을 썩이십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전보다 퍽 나아졌습니다.>>

<<그것두 다 선생님의 덕분입지요. 고맙습니다.>>

<<아니 천만에.>>

<<저의 집이 예서 얼마 안되니... 잠간 좀 들렸다 가시지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담에 들리지요, 오늘은 돌볼 집들이 있어놔서.>>

<<그럼 이담에 오실 때는 꼭 한번 들려주십시오.>>

<<녜.>>

손쌍년이와 김영하선생이 길거리에 마주서서 이와 같이 수작하는 동안 선장이는 너무도 기가 막혀 두눈이 말똥말똥해가지고 쌍년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쌍년이가 선생님앞에서 저의 친어머니, 친누이가 다된것처럼 노는것이 희한하고 놀랍고 또 우습강스러워서였다. 쌍년이가

<<선장아.>>

부르며 펼친 다섯손가락으로 선장이의 머리를 움키듯이 하여 얼굴이 자기쪽으로 향하게 돌려놓으면서

<<이제부턴 선생님 말씀 좀 잘 들어... 알았냐?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시냐.>>하고 같잖게 타이른 뒤 잇달아서

<<너 줄라구 내 건포도 한갑 류념해두었다. 미국거다. 이따 저녁에 누나하구 같이 오나.>> 하고 김영하선생이 보는 앞에서 특별스레 자애로운 정을 드러내였다. 선정이가 어이없는중에도 건포도란게 무었하는것인지 알고싶어서 쌍년이를 쳐다보며

<<건포도가 뭐요?>> 하고 물었다. 궁금증을 풀지 않고는 견뎌배길수가 없는것이다. 쌍년이가 여느때 같으면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 웃을것인데 오늘은 입을 동글고 작게 벌리고 호호 웃고

<<건포도 몰라? 포도 말린것 몰라?>> 하고 손을 내밀어 선장의 고슴도치 같은 머리를 한번 내리쓸었다. 여느때 같으면 이럴때 의례히 어깨를 탁 치거나 등줄기를 절썩 우려주며

<<촌놈!>> 하고 놀렸을것인데 무슨 까닭인지 오늘은 그런것을 전부 제례하였다.

쌍년이가 김영하선생에게 그럼 안녕히 다녀가시라고 깍듯이 인사한 다음 선장이를 보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그럼 이따 와, 응.>>

다정스레 말하고 치마자락을 휩싸잡고 한드작한드작 걸어갔다.

선생과 제자 즉 김영하선생과 서선장이가 다시 걷기 시작하였을 때 김영하선생이 선장이를 보고

<<이제 그 색시가... 너의 사촌누이야?>> 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외사촌누이냐?>>

<<아닙니다.>>

<<그럼 륙촌누이겠구나?>>

<<아닙니다.>>

<<륙촌도 아니면... 그럼 몇촌이야?>>

<<아무 촌두 아닙니다.>>

김영하선생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뭐라구...?>> 하고 곧 다시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는 누나냐?>> 하고 물었다.

<<우리 누나의 친굽니다.>>

<<누나의 친구? 그뿐이냐?>>

<<녜 그뿐입니다.>>

<<성은 같으냐?>>

<<안 같습니다.>>

김영하선생은 여태껏 선장이의 일가로만 알고 정중히 가장 대접한것을 생각하니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 색시 성이 뭐냐?>>

<<손쌍년입니다.>>

<<손쌍년? 이름이 왜 그리 듣기 흉하냐?>>

선장이가 대답을 아니하고 선생님만 한번 쳐다보았다.

<<무어 하는 색시냐?>>

<<아무것두 안합니다.>>

<<시집은 갔겠지?>>

<<녜.>>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

<<야마다입니다.>>

<<뭐시? 야마다?... >>

<<녜.>>

<<야마다가 뭐냐?>>

<<일본사람입니다.>>

<<일본사람?!>>

웨치듯이 한마디 뇌고 김영하선생은 다시 더 말을 묻지 아니 하였다. 그녀의 유난스러운 몸단장에 은근히 품었던 의혹이 일시에 해혹이 된것이였다. 김영하선생은 그 손무어라나 하는 녀자의 주제넘고도 우습강스러운 행동을 머리속에 되살려보고 쓴입을 다셨다. 그러나 또 한편

(선장이를 몹시 귀여워하는것만은 사실이다, 악의는 없어.) 하는 생각 들어 량해하는 뜻으로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김영하선생이 다시

<<이제 그 색시 동생이 여럿이냐?>> 하고 물으니 선장이는 머리를 가로 흔들며

<<하나두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손우에 오빠나 언니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외동딸이냐?>>

<<녜.>>

김영하선생은 다시한번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 그의 외람스러운 행동을 너그럽게 량해하여주었다.

<<너의 누나하구는 가까우냐?>>

<<단짝입니다.>>

<<너의 누나 이름이 무어더라?>>

<<서정실입니다.-선생님, 저기 보이는 저 집이 은희네 집입니다.

선장이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데 김영하선생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기와를 이은 회벽담과 솟을대문이 으리으리하였다.

<<한진사댁입니다.>>

선장이가 주를 달았다.

김영하선생이 선장이를 따라 대문간에 들어서보니 넓고 깨끗한 바깥마당에서 큰 녀학생 하나와 소학생 하나-은희가 자전거타기를 익히고있었다. 안장에 엉거주줌 올라앉아 비뚤비뚤 위태롭게 손잡이를 트는것은 은희요 뒤에서 두손으로 짐받이를 붙들고 밀어주는것이 녀학생이였다.

<<괘찮아, 겁내지 말고 힘을 줘 디디란데... 애는?>>하는것은 꾀꼬리울음같이 고운 녀학생의 목소리요.

<<발이 닿지를 않는데... 어떻게 힘을 줘?>> 하고 밤을 문 소리로 대꾸질하는것은 은희였다.

김영하선생이 한은희를 소리쳐 부르려는 선장이를 얼른 제지하여 옆에 데리고 서서 남매가 자전거타기 익히는것을 구경하였다. 자전거가 비뚤비뚤하며 너른 마당을 반바퀴 돌아서 앞머리가 이쪽을 향하게 되였을 때 은희는 긴장하여 땅을 내려다보느라고 한눈 팔 겨를이 없었지만 뒤에서밀어주던 녀학생-선희는 대문간에 낯선 남자 하나가 선장이를 데리고 들어서는것을 눈결에 보았다. 선희가 놀라 얼른 자전거에서 손을 떼고 몸을 바로하여 헝클어진 옷을 두손으로 내리쓰다듬는데 태평 믿고 발거리를 힘주어 디딘 은희는 휘뚝 한쪽으로 실그러지며 곧 자전거와 함께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선장이가 그 꼴이 우스워서 하하 웃고

<<선생님이 오셨다, 은희야.>> 하고 소리치니 은희는 땅바닥에 엎드린채 흘끔 쳐다보더니만 손을 놓았다고 누나를 칭원할 겨를도 없이 후닥닥 뛰여일어나 무릎의 흙을 툭툭 털며 부지런히 쫓아와 김영하선생에게 꾸뻑 경례를 하였다. 한편 힘을 들여 자전거를 붙들어주고 밀어주고 한데다가 불시에 들이닥친 낯선 남자가 동새의 담임선생인것을 짐작하고 당황하기까지 하여 두뺨에 혼조를 띤 선희는 조용히 앞으로 걸아나와 김영하선생에게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김영하선생도 적이 당황하여 역시 말은 없이 고개마 숙여서 답례하였다. 둘이 다 창졸간에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벙어리놀음들을 한것이다. 그런중에도 김영하선생이 살펴보니 바라에 나붓긴 머리카락 몇오리가 수려한 란간이마에 흩어진 녀학생의 갸름한 얼굴모습과 날씬한 몸매가 향기 그윽한 울금향 같이 단아하였다. 김영하선생이 하릴없이

<<댁에 어른들이 계신가요?>> 하고 먼저 입을 여니 그제는 선희도 더는 수줍어하지 않고

<<녜 할아버지 계십니다.>>

대답하고 잇달아서 상냥하게

<<어서 이리 들어오세요.>>하고 큰사람으로 청해들이였다. 선희가 큰사랑 모서리방의 쌍창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는 최서사에게

<<아저씨, 나와서 손님 좀 모시구 들어가세요. 나 할아버지께 여쭙고 나올게요.>>

말하고 다시 김영하선생에게 목례를 보낸 뒤 종종걸음으로 큰 사람모퉁이를 돌아 안으로 들어갔다. 말쑥한 운동복차림으로 정구장에서 라케트를 들로 뛰노는것과도 같이 세련된 동작이였다.

김영하선생이 최서사의 안내로 큰사랑에 들어와서 앉아 한훤수작도 미처 하기전에 선희가 다시 나와 손님을 안사랑으로 모셔들이란다고 하여 김영하선생은 다시 선희를 따라 안사랑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풍신 좋은 한진사가 손님이 들어와 자리잡아 앉기를 기다려서

<<은희 애비는 마침 통천 고성땅에 추심을 나가구... 집에 없소이다. 어서 편히 앉으시구.>>

말한 다음 고급담배 시끼시마와 놋재떨이를 손님앞으로 밀어 놓으면서

<<담배를 붙이시우.>>하고 권하였다.

<<아니 저...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담배를 아니 피워... 늙은 사람앞이라구 사양을 해 그러는것 아니요?>>

<<아니올시다. 정말 피울줄 모릅니다.>>

<<허허 그거 참... 요새 젊은 량반치구는 쉽잖은 일이웨다.>>

김영하선생이 얼른

<<할아버님께서나 어서 피우시지요.>>하고 로인이 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입에 물기를 기다려 성냥을 그어 공손히 불을 붙여드리니 로인은

<<아 이런.>>

한마디 사양하고 그대로 받았다. 담배를 두어모금 빨고나서 한진사가

<<김선생이라지요?>> 하고 다시 물어서 김영하선생은 앉은채로 허리를 굽실하고 <<김영하라고 합니다.>>하고 송구스레 대답을 오렸다.

<<본은?...>>

<<경주올시다.>>

<<신라의 서울이로군.>>

<<녜.>>

<<한데 일전에 은희녀석이 학교에서 받아온 습자지를 보니까... 거기 선생의 필적이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로서 붓글씨를 그렇게 단정히 쓴다는것은 참으로 가상한 일이웨다.>>

<<천만의 말씀을 하십니다. 변변히 못한것을 너무 과찬을 하시니까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내 말이 조금두 지나친 말이 아니요. 한데 그 붓글씨는 뉘게서 배우셧소?>>

<<어려서... 저의 조부님이 생존해계실 때... 조부님께 배웠습니다.>>

<<조부님은 언제 타계를 하셧소?>>

<<이제 꼭 10년이 됩니다.>>

<<허허, 아지는 쳐야 하구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더니... 괴시 옳은 말이로고.>>

한진사와 김영하선생이 이와 같이 한담을 하는중에 선희가 심부름하는 녀편네에게 술상을 들려가지고 나와서 받아놓은 다음 은주전자에서 약주 한잔을 따라 손님인 김영하선생앞에부터 놓으니 김영하선생은 황망히 두손을 앞으로 내들고 흔들며 진땀을 빼였다. 선희에게

<<어서 할아버님께부터.>>

말하고 다시 한진사를 보고

<<저는 본시 술을 접구두 못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올렸다. 한진사는 의외로운듯 한쪽 눈섭을 쳐들며

<<순한 청준데두?...>> 하고 처지가 곤난해 쩔쩔매는 김영하선생과 은주전자를 손에 든채 어찌할바를 몰라 난처해하는 선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날 김영하선생은 담배도 못 피운다고 방색하고 또 술도 못 마신다고 방색을 하였는데 밥까지 먹을줄 모른다고 방색을 할 머리가 없어서 저녁대접한다는것을 두말 못하고 받아들였다. 떡 벌어지게 차린 저녁대접을 받고나서 간다는 인사하고 일어나올 때 한진사가 마루끝에 나와 서서

<<선희 어디 갔느냐?>> 하고 손녀를 불러가지고

<<김선생 가시는데 너희 남매가 내 대신에 배웅을 좀 해라.>> 하고 말을 일러서 은희 오누이가 대문밖까지 손님을 배웅하였다.

김영하선생이 한참 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땅거미가 기여드는 솟을대문앞에 크고작은 남매가 그대로 서있었다. 김영하선생은 그만들 들어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다시 발을 떼여놓으면서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선희... 한선희.>>



추천 (4) 선물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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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신사 (♡.173.♡.19) - 2023/10/19 10:24:09

오늘은 내가 먼저 읽었나 봅니다.장편소설 같은데 이렇게 시간,품들여서 올려주셔서 잘읽고 있습니다.

로즈박 (♡.39.♡.172) - 2023/10/19 22:53:00

옛날부터 다시마를 튀겨서 먹엇군요..나는 별로 맛이 없던데
.ㅎㅎ
오늘도 덕분에 잘 보고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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