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2

더좋은래일 | 2023.10.20 09:11:14 댓글: 4 조회: 346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286


12

이때 일본에서는 반공개로 발간되는 <<아까하다>>라는 월간잡지와 <<젱에이>>라는 월간잡지가 있었는데 그 발행망이 차차로 확대되여 마침내는 조선반도 각지에까지 미치게 되였다. 원산에서는 적색로조가 그 잡지들을 특약판매하고있었는데 책값은 매우 싸서 국판 2백여페지 한책에 홀 5전이였다.(영리를 목적으로 하는것이 아니고 빈곤한 근로대중속에 널리 보급시키는것이 목적이였으므로) 그 대신에 원가를 낮추느라고 제본할 때 도련을 치지 않아 책장과 책이 서로 맞달라붙은 까닭에 독자들이 한장씩 한장씩 제 손으로 베야 하였다.

원산 무정부주의자들의 대본영인 청년회관에서 손꼽히는 인물인 한정희도 벌써부터 그가 정치리론서적들을 널리 설렵한다는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였다. <<지피지기자백전불태(知彼知己者百战不殆)>>라고 한 손자의 말의 뜻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싸우자면 우선 그들의 리론부터 연구하여 그약점이라든가 빈구석이라든가 또는 모순당착한 꼬투리라든가를 찾아내가지고 거기에 근거하여 반격을 가해야만 이길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다는 널리 알려진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은 한정희에게 들어맞았다. 워낙 두뇌가 명석한 한정희는 상대편의 흠을 잡으려고 애를 쓰다가 흠을 잡아내기는커녕 도리여 제편의 흠점을 발견하게 된것이였다. 그러므로 무정부주의에 대한 철석같던 신녕이 풍랑속의 돛대처럼 뒤흔들리기 시작한 한정희를 청년회관의 골간들이 변절자, 반역자로 보게 된것 또한 당연한 일이였다. 그동아에 한정희는 필연적인 추세로 공개 또는 반공개로 간행되는 맑스-레닌주의 서적들을 탐독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놀랍게도 마침내는 프로레타리아독재의 필요성을 긍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한정희의 머리속에서 맹렬한 동란이 일어나 무정부주의가 파산을 하는 바람에 프루동, 바꾸닌, 그로뽀뜨킨 등 무정부주의의 대가 제씨가 두벌죽음을 당하였다.

이날 식후에 한정희가 머리 질끈 동이고 앉아 일문판 <<국가와 혁명>>을 파고들어 읽는중에 일각문에 매달린 깡통이 딸그랑딸그랑 소리를 내더니 조금후에 함실아궁이쪽으로 난 창미닫이밖에서 나직한 기침소리가 나는데 듣기에 매우 조심하는 녀자의 음성 같았다. 한정희가 속으로

<<선희는 아닐텐데?>>

생각은 하면서도 책에서 눈을 들고 창미닫이를 바라보며

<<선희냐?>> 하고 물어본즉

<<아닙니다. 저...>>하고 대답하는것이 전혀 다른 녀자의 목소리다. 한정희가 괴상히 생각하고 손에 든 책을 내려놓고 얼른 일어나가 창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흘러나오느 불빛에 보니 뜰아리 섰는것이 소복단장을 한 조시원의 누이동생이다. 한정희가 적이 놀라며

<<아니 어떻게 이렇게 어두운데...>>

인사를 하고 곧 다시

<<루추한데지만... 잠간 들어오실가요?>> 하고 말하니 조시원의 누이동생은

<<아니 여기서 잠간 말씀드리구 가겠어요.>> 하고 사뿐 지대에 올라와 창미닫이안의 한정희를 들여다보며

<<지금 곧 어디루 피신을 좀 하시는게 좋을것 같아요.>>하고 속삭이듯 말하였다.

<<왜, 무슨 일이 났습니까?>>

<<저의 집 사랑에 회관분들이 여럿이 모여 쑥덕공론들하는것이 수상해서... 지가 몰래 안문뒤에 붙어서서 엿들었는데... 오늘밤에 이리루들 쏟아져올것은 틀림이 없에요. 그러니 불호광경이 나기전에 어서 자지를 뜨도록 하세요.>> 하고 말하는 조시원의 누이동생의 얼굴은 홍조를 띠였다.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데는 비상한 용기가 필요하였을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정희는 속으로 크게 감격하였디. 그래서 솔직히

<<그 일루 어두운 밤길을 전위해 오셨구먼요. 고맙습니다.>>하고 치사하였다. 조시원의 누이동생은

<<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말하고 마당에 내려서서 고개를 한번 까댁한 뒤 종종걸음으로 돌아서 나가다가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고

<<어서 피하세요.>> 하고 대답하여 녀자를 안심시켜 보내놓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무얼 잘못했다구 피신을 한담? 비겁하게.) 하고 앉아 당할 작정을 하였다.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벗어놓았던 로동복을 얼른 다시 주어입고 나와 지까다비라고 불리는 로동화까지 신어서 몸을 가뜬하게 차린 다음 딸그랑 소리가 나지 않게 일각문을 살며시 여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닌밤중에 공연히 주인집을 놀래지 않으려고서였다.

한정희가 우물가에 서성거리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얼마 오래지 않아 질서 없는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것 같더니 이어 칠팔명 사람의 그림지가 아리송하게 나타나 점점 뚜렷해지며 가까와왔다. 한정희가 잠자코 마주 나갔다. 여럿중에서 맨앞을 선 사람이 잠시 발을 멈추더니

<<거 누구요?>> 하고 미심쩍이 물었다.

<<나요, 한정희.>> 하는 한마디에 다들 놀란 모양으로 걸음들을 멈추고 웅긋쭝긋 섰는 사람들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동요가 일어났다.

<<마침 잘 만났소. 당신을 보러 오는 길인데. 우리하구 같이갑시다. 가서 물어볼 말이 좀 있소.>>

젊고 당찬 목소리가 이와 같이 비양조로 말을 걸어노는것을 한정희가 태연하게

<<갑시다. 어디루든지... 인도를 하시오.>>하고 받으니 젊고 당찬 목소리는 예기가 꺾인 모양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가까운데 아무데나 저 누에머리루 올라갈가? 거기가 조용해 좋겠지.>> 하고 건의 같기도 하고 명령 같기도 하게 말을 내였다.

한정희가 저승사자 같은 칠팔명의 사람과 함께 별빛아래 희미한 산길을 돋우밟아 남산 누에머리로 올라갔다. 남산은 말이 산이지 좀 높은 언덕 폭도 잘 못되여 소방서의 망루가 뉘 키가 더 큰지 내기를 하자고 덤빌만하였다. 누에머리끝에 나선 초군아이와 산밑 우물에서 물을 긷는 처녀아이가 서로 내려다보고 쳐다보며 례사언성으로 말을 주고받아도 다 들릴만하였다. 오르내리는 사람이 줄창 끊이지 않는 까닭에 산잔등의 잔디밭 명색도 비루먹은 나귀처럼 군데군데 잔디가 빠져 볼품이 없었다. 한정희까지 쳐서 팔구명 사람이 높낮이가 고르지 못한 잔디밭에 들쭉날쭉 아무렇게나 둘러앉은 뒤에 한정희 한 사람에게 질문들을 들이대게 되였는데 처음부터 그것은 시비가락이였다.

<<명석동 개종자들에게 보복을 할데 대한 고견부터 좀 말씀해주실가.>>

걸걸한 목소리가 이와 같이 첫불을 걸어오는데 한정희가 대답을 안하니까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됐는가?>> 하고 야무진 목소리가 옆에서 게먹는데

<<키케로두 무색할 열변을 또 좀 토해보시지.>> 하고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사시는것 같은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시까슬렀다.

<<우리가 경선히 보복행동을 취한다면... 좋아할건 일본놈들밖에 없소. 그러니까...>> 하고 한정희가 말을 하는 중간에 옆에서 야무진 목소리가 얼른 말끝을 가로채여가지고

<<그러니까 고만두자... 그 말씀이겠군?>> 하고 빈정거렸다. 이것을 신호로나 한듯이 독기어린 말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나왔다.

<<이 뺨을 치거든 저 뺨까지 내대라... 그런 수작인가?>>

<<로조 불한당놈들에게 몽둥이찜질을 좀 당해보니까... 꼬리가 저절루 사타구니에 끼이는 모양이지.>>

<<변절자들에겐 철권제재가 대접인걸 알아야 할걸.>>

<<그 꼴에 또 아나키즘을 신봉한다구? 아나키즘이 그래 뉘 집아이의 이름인줄 알았더냐?>>

<<네놈이 배심먹은건 벌써부터 다 알구있었다... 비겁한 놈.>>

<<좀 다듬어가지구 만지는게 좋지 않을가? 다들 의향이 어떤가?>>

<<좋겠지.>>

<<자, 그럼 행동 개시!>> 하는 호령일하에 한정희가 미처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사정없는 뭇매질-주먹질과 발길질이 시작되였다.

이때 별안간 별빛아래 시꺼먼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사람을 치기냐? 어디 맛들 좀 봐라!>> 하고 벽력같이 호통을 하였다. 뭇매질하던 사람들이 모두 그 소리에 놀라 무춤할즈음에 그 사람은 손에 든 자전거사슬을 냅다 휘두르며 매질군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람이 불에 덴 황소 날뛰듯하는데 아이쿠 지이쿠 소리가 여기저기서 련달아 났다.

조시원의 누이동생은 청년회관패의 젊은축들이 자기 집 사랑방에 모여 쑥덕공론들 할 때 안문뒤에 붙어서서 엿듣다가 저의 오라버니 조시원이 그 사람들을 충동이지는 않았지만서도 그렇다고 또 그사람들의 기획하는 일을 힘지게 달리지도 아니하여 한정희에게 뒤길로 통기를 해주었었다. 그러나 기이한것은 녀자의 예감이다. 그녀는 어쩐지 한정희가 입으로는 피하겠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럴 마음이 없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한정희가 하숙집을 나온 뒤에도 그녀는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근처 어느 집 싸리울바자뒤에 가 붙어서서 동정을 살피였다. 아니나다르랴 한정희는 피신할 생각을 아니하고 밖에 나와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그들에게 끌리여 산우로 올라갔다. 그녀가 숨어섰던 울바자뒤에서 나와서 개미 채바퀴 돌듯하며 왼새끼를 꼬는중에 일이 될 때라 마침 양씨동이가 덜레덜레 한정희를 보러 왔다. 그녀는 반가움김에 체면도 부끄럼도 다 잊어버리고 앞으로 내달아서

<<한선생- 안 기세요!>>하고 소리쳤다. 씨동이가 놀라서 무춤 발을 멈추고 별빛아래 소복단장한 녀자를 알아보았다.

<<어디 갔소?>>

<<이제 방금 여러 사람에게 끌려서... 저 산우로 올라갔어요.>>

씨동이는 다시 더 긴말을 묻지 않고 잽싸게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자전거사슬을 뽑아들며 남산 누에머리를 향하여 치달았다. 자전거사슬은 씨동이의 호신용무기였다.

눈에 불이 철철 흐르는 씨동이의 억센 손아귀에 쥐여져 휭휭 소리를 내며 바람개비 돌듯하는 자전거사슬의 기세가 어찌나 날카롭던지 칠팔명의 기운꼴 쓰는 매질군들이 어처구니없이 봉패를 하였다. 산우의 소동이 이처럼 커졌을 때 산밑의 이집저집에서는 무슨 란리가 났나 해서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 서서 산우를 쳐다보며 술렁술렁하더니 이윽고 구장의 분별인듯 회중전등을 든 사람으르 선두로 오륙명 사람이 쫓아올라오며

<<거 웬 사람들이요?>>

<<거기서 뭣들 하우?>> 하고 소리들을 질렀다.

일이 이쯤 되자 매질군중에서 시초에 첫불을 걸던 걸걸한 목소리가

<<이젠 고만들 거두자!>> 하고 철거령을 내렸다. 무지스러운 쇠사슬에 후두들겨맞아 골통이 터진 놈, 얼굴바닥이 깨진 놈, 한팔을 잘 못쓰는 놈, 발길에 걷어채여 다리를 절뚝거리는 놈... 이런놈들이 서로 붙들고 막 저편으로 도망쳐내려가자 이편으로 동네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씨동이가 자전거사슬을 얼른 도로 허리에 찬 뒤에 바닥에 두팔을 뒤로 짚고 앉았는 한정희를 와 들여다보며

<<내게 업히시우.>>

말하고 등을 돌려대니 한정희는

<<괜찮다. 좀 붙들어만 다우, 걸을수 있다.>>하고 씨동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앞서 올라온 사람이 전지불을 들이대며

<<대체 웬 일들이요?>> 하고 기찰하는 국로 물으니 씨동이는 무뚝뚝하게

<<아무것도 아니요.>>

대답하고 한정희를 부축하면서

<<형님 오늘 일수가 사납소. 그렇지만 젊은 과부덕에 목숨만은 건졌으니 그래두 다행이요.>>하고 말하였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한정희가 몸을 씨동이에게 실리다싶이 하며 걷다가 이렇게 물으니 씨동이는

<<아, 젊은 과부가 안 가르쳐주었으면... 형님이 이리루 끌려온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하고 빙그레 웃었다.

하늘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뭇별이 그저 눈만 끄먹끄먹 하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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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4) 선물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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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20 16:35:50

오늘도 바쁘신데 올려주셧군요..
매일 언제 올려주시나 항상 기웃거린답니다..ㅎㅎ
잘 보고갑니당~~

더좋은래일 (♡.162.♡.163) - 2023/10/20 16:39:29

감사합니다

산동신사 (♡.79.♡.155) - 2023/10/21 17:32:23

주말에도 올려주셔서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qjsrotqmf (♡.50.♡.175) - 2023/10/21 20:02:37

좋은 글을 잘 보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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