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3

더좋은래일 | 2023.10.20 16:38:51 댓글: 2 조회: 249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411


13

먼산줄기의 천엽속같이 첩첩한 굽이를 돌아내려 넓지 않은 들을 지나 남산을 반달모양으로 끼고 돌다가 꾸불텅거리며 바다로 들어가는 시내를 한물이라고 불렀다. 그 시내가에서 숱한 녀자들이 공사장에서 쓸 자갈을 추고있는데 서선장이의 누이 정실이도 벌써 근 한달째 그 일을 하고있었다. 이것도 역시 품삯은 하루에 얼마가 아니고 한립방에 얼마 즉 푼빵이였다. 날마다 저녁때 일이 끝난 뒤에 떼여주는 전표의 금액이 추은 자갈의 분량에 따라 많아지고 적어지고 하는 까닭에 다들 기를 쓰지 않을수 없었다. 개중에는 당장 저녁거리가 없어서 전표를 타가지고 돌아가는 길에 싸전에 들리여 전표는 맞돈이 아니라고 십일조를 떼우며 쌀을 사가지고 가야 하는 불쌍한 아낙네들도 있었다. 단돈 몇십전에 목숨들을 걸고 종일 자갈밭을 헤적거리다보니 만물의 령장이라는 말을 듣기가 외람스러울 정도로 사람의 값이 떨어져 참말로 날짐승, 네발 가진 짐승-소, 말, 개, 돼지도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였다. 이날 해가 서산에 노루꼬리만큼 남았을 때 현장감독을 하는 십장이 전표를 한줌 쥐고 나와서 명단을 들여다보며

<<리탄실.>>

<<녜.>>

<<35전.>>

<<고복례.>>

<<녜.>>

<<40전.>>

<<박순녀.>>

<<녜.>>

<<30전. 좀더 빨랑빨랑해야지, 이게 뭐야!>>

<<김아지.>>

<<녜.>>

<<녜.>>

두 녀자가 동시에 대답을 하여 십장은 다시

<<작은 김아지.>>

<<35전.>>

그다음에

<<큰 김아지.>>

<<녜.>>

<<40전.>>

<<문봉임.>>

<<녜.>>

<<35전.>>

이름을 부르는 차례로 전표 한장씩을 건네주는데 정실이가 이름을 불리워 녜 대답하고 앞으로 나가 제 몫의 전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미니 피둥피둥한 얼굴을 한 사십객의 십장이 능글능글하게 웃으면서

<<45전. 정실인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강단이 있군그래.>> 하고 칭찬을 해주는데 말을 할 때 그 입안에는 금이투성이의 이발이 번쩍번쩍하였다. 정실이가 들을만하고 전표를 받아쥐고 돌아서는데 십장은 잇달아

<<채옥순.>>

<<녜.>>

<<40전.>>

<<성분옥.>>

<<녜.>>

<<35전. 어머니가 편찮다더니... 좀 나은가?>> 하고 전표를 건네주었다. 정실이가 따로 나와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서 온몸의 먼지를 탁탁 턴 뒤에 그 수건을 개켜서 갈피에 전표르르 끼우려다 다시 보니 거기 적힌것은 45전이 아니고 60전이다. 이게 웬 일일가? 정실이가 십장에게 말을 하려고 되돌아오는데 십장은 시치미를 떼고

<<민소녀.>>

<<녜.>>

<<45전.>>

<<배금련.>>

<<녜.>>

<<40전.>>

제 할 일만 하였다. 정실이가 망설망설하다가 고만 말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십장은 전표를 다 나눠주고 명단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은 뒤에 정실이를 돌아보고 한번 싱긋 웃고는 거드름을 부리며 출납창구가 달린 판자집-사무소로 들어가버렸다. 정실이는 개켜서 손아귀에 쥔 수건속에 60전짜리 전표가 들어있는것이 마치 독침으로 사람을 쏘는 전갈이라도 한마리 들어있는것 같아 마음이 송구스러웠다. 도든 점으로 보아 그자가 일부러 15전을 더 붙여준것은 틀림이 없어다.

(어떡하면 좋을가?)

마음을 질정할수가 없어서 정실이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이런 일에 들어서는 산전수전 다 겪었을 쌍년이를 찾아갔다.

쌍년이가 혼자 마루끝에 걸터앉아 저녁반찬으로 북어무침을 만들려고 북어를 뜯고있다가 정실이가 마당안으로 들어오는것을 보고 반색하며

<<어서 오나. 요새두 그저 일 다니니?>> 하고 묻는데 정실이는 조심스레 마루끝에 와 걸터앉아 방편으로 눈을 보내며 명토없이

<<안 왔니?>> 하고 무서운 일 물어보듯하였다. 쌍년이가 손에 든 북어를 내들어보이며

<<왔으면 내가 이걸 뜯구있겠니?>> 하고 웃었다. 야마다가 북어무침을 먹지 않고 사사미라는 생선회를 잘 먹는다는 말을 정실이도 언젠가 들은것 같았다. 쌍년이가 소쿠리에서 노르께한 북어 하나를 집어주며

<<옛다, 심심한데 하나 맛이나 봐라.>> 하고 말하니 정실이는 손바닥을 세워서 밀막으며

<<내가 어린애냐!>>

말하고 다시

<<저녁차비가 늦었구나?>> 하고 말하였다.

<<늦기는... 혼자서 무슨 밥을 짓겠니, 찬밥이나 데워 먹지.>>

<<너의 어머니는 요새 좀 어떠시냐?>>

<<그저 그래. 더하지두 않구 덜하지두 않구.>>

<<더하시지만 않아두 다해이다.>>

<<누가 아니래.>>

<<그런데 나 오늘 너한테 뭐 한가지 좀 의논해볼가 해서 왔다.>>

<<얘는 새삼스레... 뭔데?>>

<<우리 거기 윤 뭐라나 하는 피둥피둥한 십장 하나가 있는데... 나이 근 40한것이 금이투성일 해가지구... 얼굴 반반한 녀자들만 보고 징글맞게 느물거리지 뭐니. 그런데 그게 오늘 전표를 뗄 때 글쎄...>> 하고 정실이는 개킨 수건갈피에 끼웠던 전표를 꺼내여 쌍년이를 보이며

<<남들이 들으라구 입으로는 서정실 45전 하고 웨치면서... 뒤구멍으룬 이런걸 주잖겠니.>>하고 말하였다 쌍년이가 전표를 받아들고 들여다보니 거기에 적힌것은 분명히 60전이다. 쌍년이가

<<아니 그럼 이거 15전 공먹잖았니? 그 자식 선심 썼구나.>> 하고 고래를 젖혀들고 하하 웃으니 정실이는

<<얘는 웃기는...>>하고 눈을 샐쭉하였다. 쌍년이가 대수롭잖게 여기는 말투로

<<받아둬 받아둬, 얼마든지 받아둬, 사양할거 하나두 없어. 제가 주구싶어 주는걸 왜 안 받아?>> 하고 전표르르 당연한 권리처럼 돌려주는데 정실이는 주니가 나서

<<어떻게 그럴수 있니?>> 하고 고개를 갸웃하였다. 쌍년이가

<<개코같이 네 달랬니 어쨌니? 제가 내켜서 하는 일... 싫달게 뭐 있니? 그런 개망나닌 그렇게 골탕을 먹여줘야 해. 주는건 납작납작 다 받아먹구나서 나중에 헛물을 켜게 해주면... 그게 잘코사니가 아니구 뭐냐!>> 하고 신이야 넋이야 말을 하는것을 정실이가 듣다가 기가 막혀

<<이제 보니 제가 정말 험한 년이구나.>> 하고 웃으니 쌍년이는

<<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얘. 내가 우리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런줄 알았니? 헤!>> 하고 코웃음을 쳤다. 정실이가 마음을 질정 못하여 가만히 앉았는것을 보고 쌍년이는

<<얘, 그러지 말구 너 여기서 나하구 찬밥이라두 데워 먹고 좀 더 앉아 놀다 가라, 혼자 심심해 사람이 곧 죽을 지경이다.>>고 달래였다.

<<안되여, 집에서 기다릴테니까 가바야 해.>>

<<그럼 얼른 가 저녁을 먹구 오나, 나두 할 이야기가 숱하게 밀렸다.>>

<<그러다가 야마다가 오면 어떡하니, 허술한것이 드나든다구 또...>>

<<그런건 념려마. 야마다구 나발다구 오늘은 올리두 없지마는... 오면 또 대사냐? 한바탕 들었다놓지 까짓거!>>

<<아주 희구젖히는구나.>>

<<이젠 그런건 요거 마찬가지야.>> 하고 쌍년이가 손바닥을 한두번 뒤집어보였다.

<<그럼 내 갔다오마.>>

<<기다리겠다, 얼른 와. 아니 가만 좀 있거라.>>

쌍년이가 얼른 일어나 앞자락을 털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길고 납작한 껌 두래를 찾아들고 나왔다(이때 원산에서 파는 껌들은 거의다 미국 리글레회사의 제품이였다).

<<옜다 이거 선장이 갖다줘라.>>

<<말 말아, 언젠가 네가 준 그 건포도... 아까와서 다 먹지 못하구 아직두 한 반갑 착실히 어디다 감추어두었을게다.>>

<<천생 구두쇠로구나, 그 녀석!>>

정실이와 쌍년이가 이렇게 지껄이고 서로 보며 깔깔 웃고 잠시 갈라졌다.

쌍년이가 부엌에서 간단한 저녁밥을 얼른 먹어치우고 방에 들어와 앉자 얼마 아니하여 마당에 발자국소리가 나기에 정실이가 그새 오는줄 알고

<<벌써 먹구 오니?>> 하고 일어나가 장지를 여니 대돌에 성큼 올라서는것이 정실이가 아니라 씨동이라

<<가요 가요, 이제 곧 정실이가 와요.>> 하고 들어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씨동이가 군말없이

<<그래? 그럼 가지.>> 하고 도로 마당에 내려서다가 고개를 돌이키고

<<그 점쳐본다는거... 쳐봤어?>> 하고 물었다 쌍년이는

<<이담에 이야기할게.>> 하고 빨리 사라지라는 뜻으로 또 손을 내저었다.

씨동이가 나가자 번을 갈아들기라도 하듯이 정실이가 들어왔다.

<<글쎄 이놈의 두상이 개미새끼가 환생을 했는지... 무슨 반찬이구 다 설탕을 쳐서 달달하게 만들어야 처먹으니 어떡하니? 그놈의 두상이 와있는 동안은 난 반찬이 싱거워... 밥을 통 못 먹을 지경이지 뭐냐.>>

정실이가 들어와 앉자마자 쌍년이가 웃으며 이와 같이 하소연을 하면서

<<그러게 일본사람들은 모두 밸이 얇다더라. 리질만 걸리면 락자없이 죽는대. 우리 조선사람이야 어디 그렇니? 그 매운 고추가루를 꽝꽝 먹는데.>> 하고 정실이도 맞장구를 쳤다.

<<고추가루이야기가 났으니 말이다만... 지난번에 엄마가 담가다준 고추장을 알단지에 담아놓구 몰래 조금씩 꺼내다 먹다가 그놈의 두상에게 들켰지 뭐냐. 수상하게 여긴 모양으로 그게 뭐냐구 묻더라. 내가 얼른 딸기쨤이라구 둘러댔더니... 어디 보자 하구 대들어서 단지를 빼앗다가 저가락끝으루 조금 찍어 혀끝에다 대보더니 대번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뛰여나가 양치질을 골백번이나 하는거야. 그리구는 곧 `게끼야꾸(극약), 게끼야꾸!` 하구 호들갑을 떨면서 단지를 집어들더니 부랴부랴 잔교끝으루 달려나가 제 손으로 물속에다 처넣구 손을 털잖구 뭐냐. 아마 내가 저하구 살기가 싫어서... 극약을 먹구 죽을라는줄 알았던 모양이야.>>

쌍년이와 정실이가 허리를 잡으며 한바탕 웃고나서비로소 진담으로 들어갔다. 정실이가 속이 상해

<<그런데 우리 십장녀석은 어떻거면 좋겠니? 난 골머리가 아파 죽겠다. 그나마 좀 벌어먹자니까 이런 재앙이 드는구나. 네가 훈수를 좀 해다우.>> 하고 청을 드니 쌍년이는 생글거리며 샐없이

<<눈 끔벅하구 한번 받아주면 되잖아? 한강에 배 지나간 자국 있다던?>> 하구 놀려주었다. 정실이가 주먹을 쥐고 대들며

<<이년의 기집애가.>> 하고 때리려 드니 쌍년이는 얼른 몸을 피하고 두손으로 싹싹 빌면서

<<잘못했다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마.>> 하고 깔깔거렸다. 쌍년이가 다시 거짓으로 눈이 샐쭉해지며

<<그렇지만 기집애가 뭐냐? 쪽을 찐 아낙네를 보구.>> 하고 나무라니 정실이는

<<남은 속이 상해죽겠는데... 자꾸 이렇게 시룽거리기야?>> 하고 정말로 원망을 내놓았다. 쌍년이가 그제야 웃음을 거두고 바로 앉으며

<<그러게 내 아까 말하잖던? 아무 소리 말구 주는대루 납작납작 다 받아먹으라구. 네가 이제 그 전표를 들구 가서 `이거 왜 이렇게 더 줬소` , `깎아주우.` 해봐라... 그놈의 낯바대기가 어떻게 되나. 만약시 그렇게 되는 날에는... 넌 거기서 더 견뎌배기지 못해. 그 자식이 어떻게 해서라두 앙갚음을 하구야말테니까, 그러니 거기ㅓ 단 하루라도 더 벌어먹을라거든... 그 자식을 덧들이지 말아야해! 이담에 시시한 수작을 또 걸어오거든... 치마앞에 찬바람이 도는것처럼 좀 못해? 그래두 억지루 제끼려 들거든 소리를 냅다 지르려무나. 그 자식이 제 입으로 내가 전표를 더 떼줬는데 소리는 죽어두 못해. 더 떼준게 탄로가 나면 제 모가지두 위태하니까. 그 자식 지금 제 살돈 안 들이구 선심을 쓰는 판이거든, 일본놈 청부업자 몰래. 그러니 너 일본놈의 구미(토목건축회사)돈 좀 뜯어먹어 안될게 뭐 있니? 걱정 말구 주는대루 다 받아두어. 세상이 온통 흐린 판에 너 혼자 맑은체해두 소용없어. 그저 나 하라는대루 해.>> 하고 말하는데 쌍년이 얼굴에 갓스물 나이답지 않게 풍진세계를 꿰뚫어본것 같은 초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때 가서 고분고분 안하면... 그 작자가 가만있을라구? 앙갚음을 하려 들지.>> 하고 정실이가 미타해하니 쌍년이는 테시근하게도 여기지를 않고

<<하라지, 걱정이냐? 기껏해야 쫓겨나는것밖에 더 있겠니! 지금 전표를 들구 가서 말을 해두 가만 안 뒤... 쫓아내지. 그럴바엔 하루라두 더 벌어먹구 쫓겨나는게 낫잖아? 어차피 넌 이제 거기서 더 오래 벌어먹진 못해.>>

말하고 잇달아서

<<네 낯반대기가 고렇게 반반하잖았더면 아무 일 없었지.>> 하고 상글상글 웃었다.

<<얘 속상하다, 웃지 말아.>>

<<우리 엄마 술장수노릇할 때 술군들 보구 하던 말투루... 인생백년에 시름 잊구 웃는 날이 몇날이나 되겠니. 식혜먹은 고양이상을 하구 앉았지 말구 좀 웃구 지껄여라. 앞에다 송장을 뻗쳐놓은것 같이... 뭐냐!>>

정실이가 할수없이 억지웃음을 따라 웃으니 쌍년이는 말머리를 돌리느라고 짐짓

<<선장이 껌 갖다주니까 좋아하디?>> 하고 물었다.

<<말 말아. 받아쥐는 길루 벌써 하나는 어디다 감춰놓구... 하나만 벗겨서 제 아가리에 쓸어넣더라. 단물을 다 빨아먹구나서두 짝짝 소리가 나게 씹는데 엄마가 이젠 고만 씹구 와 밥을 먹으라니까... 어떡했는지 너 아니? 입안 껌을 얼른 꺼내 벽에다 떡 붙여놓구 밥상으로 대드는구나 글쎄. 밥을 다 먹구나선 어떻거는가 보니까... 에이 더러운 녀석! 벽에 붙였던걸 도루 뚝 떼서는 그 아가리에 쓿어넣고 또 질근질근 씹는거야. 난 속이 올라와 죽을번했다. 세상에 그런...>>

정실이가 제 동생의 흉을 보는데 쌍년이는 손벽을 치고 대굴대굴 굴다싶이 하며 웃다가 눈물까지 내였다.

<<그래두 선장이만큼 귀여운 아이는 드물어. 나두 그런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앞으루 너두 아들 하나 이쁜거 낳아서 기르려무나. 그러면 되잖아?>>

쌍년이가 들을만하고있다가 다른 말을 꺼내였다.

<<내 그동안 점친 이야기할게 너 들어보련?>>

<<점을 다 쳤니?>>

<<하두 속이 답답해 한장 쳐봤다. 친지 이제 한 사날밖에 안된다.>>

<<어디 가 쳤니?>>

<<룡동에 용한 판수가 있다는 말... 너 못 들었니?>>

<<나 못 들었다.>>

<<복채가 30전 아래는 없어. 50전, 1원까지 놓는 사람이 다 있대여. 돈두 흔하지.>>

<<우리네 이틀 품삯 사흘 품삯이 아니야.>>

<<그래 넌 어떡했니?>>

<<눈 꾹 감구 30전 내놓았지 뭐.>>

<<그러니까?...>>

<<그러니까 판수가 점상을 앞에 놓구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한참 뭐라구 웅얼웅얼하더니만... 점상에다 닳아 반들반들한 엽전 한줌을 뿌리더라. 그걸 점돈이라구 한다나. 엎어지구 잦혀지구 한 점돈을 손끝으루 더듬어보구나서... 판수가 점괘를 풀이하는데... 점패괘가 아주 망측하지 뭐냐.>>

<<어떻게 망측해?>>

<<여름소가 개천에 든 형국이니까 당장 먹을것은 걱정이 없지마는...>>

<<없지마는... 그리구?...>>

<<그리구 그다음은 괘는... 까다로운 문자말이 돼서 고대루 잘 옯기진 못하겠지만... 무슨 적막강산의 길 잃은 나그네요, 공산명월에 외기러기 신세라나 뭐라나... 아무튼 남편덕이구 자식덕이구 그런건 다 보지 못할거라지 뭐냐. 내 기분이 상해서 참.>>

<<눈뜬 사람이 눈먼 판수한테 돈을 갖다바치면서... 점 좀 쳐줍시오 하는것부터가 우습잖니? 기분이 상하구 안 상하구가 왜 있어!>>

둘이 마주앉아 한동안 지껄이다가 너무 늦으면 어머니 사설한다고 정실이가 일어서니 쌍년이가 따라나오며

<<그저 나 하라는대루 해.>> 하고당부를 하였다.

이때부터 정실이가 다같은 자갈추기를 하면서도 남에 없는 삯전을 받게 되였다. 전표의 액면은 립방과 관계없이 여일히 55전에서 65전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런 상태가 얼없이 반달 좋이 지속 되였다. 십장량반은 제 맘에 드는 정실이를-나이가 근 20년이나 차이가 있어서 딸 폭밖에 안되는 처녀아이를- 뭉근하게 타는 볼에 오래 두고 폭 고아서 뼈까지 흐믈흐믈하게 만들어가지고 씹지 않고 그대로 후루룩 들이마실 작정인상 싶었다. 정실이는 언제 일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단 하루라도 더 벌어먹은만큼 리악이다 하는 속셈도 없지는 않았다. 쌍년이 같은 식견도, 쌍년이 같은 수단도, 쌍년이 같은 배심도 정실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위급한 경우에 부닥쳤을 때 써먹을 앙칼진 매의 발톱은 남이 모르게-실상은 저도 모르게- 간직을 하고있었다. 이날도 역시 자갈추기를 하는 녀자들이 부지런히 일손들을 놀리는데 일손을 놀리는것만큼 입들도 놀려서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시내가의 작업장은 부산하고 시끄러웠다.

<<제 눈에 드는건 어물어물 눈감아주구... 뭉근하게 제 맘에 안드는건 괜히 타박하구 트집잡구... 뭉근하게 망할 자식 같으니라구.>>

<<시보가 가랑잎으루 똥싸먹을 놈이지.>>

<<그러니까 색주가년이나 데리구 살지그려.>>

말밥에 오른것은 윤십장이였다. 여기서 한번 말밥에 오르기만 하면 그것이 년이든 놈이든간에 이발자국이 온몸에 고기바늘처럼 박히는것이 통례였다.

<<이번 녀편네는 색주가요? 난 몰랐지.>>

<<그런 본녀편네는 죽었수?>>

<<죽기는 왜? 갈라섰지!>>

<<갈라서? 왜?>>

<<녀편네가 아이낳이를 못한다... 그 꼴에 또 사박을 해 내쫓았다는갑디다.>>

<<그럼 이번 녀편네는 아이를 낳았나요?>>

<<색주가두 색주가려니와 워낙 놈팽이가 병이 있어서 못 낳는답디다.>>

<<그렇겠지.>>

<<아 노상 갈보집에 가 묻혀 사는 놈이 무슨 병인들 없을라구.>>

<<보나마나 림질에 매독에 당창에 하감에... 없는것없이 다 구존했을테지.>>

<<웬 병명이 그리두 많소? 다 주어치자면 한참 걸리겠소.>>

<<매독은 뭐구 당창은 뭐요?>>

<<낸들 아우, 사내들이 술먹구 지껄이는걸... 옆에서 얻어들었지.>>

<<그 벼락맞아 뒈질 놈이 이 공사장에서두 얼굴 반반한것들을 벌써 여럿 욕을 보였다는갑디다.>>

<<그따위 놈의 말을 듣는 년이 너절한 년이지.>>

<<우격다짐으루 제끼는걸 약한 계집이 어떻거겠소.>>

<<아가리는 붙었나? 소리두 못 지르게!>>

<<누가 아니라우.>>

<<쉬, 저 자식 내다보우.>>

<<귀가 가려울게요.>>

<<이젠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저 자식 낌새 채잖게.>>

녀편네드이 받고차기로 윤십장의 흉을 보는것을 들으니 정실이는 마음이 송구해졌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을 정도로 걱정이되였다.

일이 끝나서 전표를 나눠줄 때 윤십장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저의 그 사무소-판자집안에 들앉아 출납창구를 열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다가 전표를 건네주었다. 집에 가 해야 할 일이 숱한 까닭에 다들 전표를 받아쥐기가 바쁘게 달아나는데 맨나중에야

<<서정실.>> 하고 불러서 정실이는

<<녜.>>

대답은 하면서도 전에없이 맨나중에 제 이름을 부르는데 무슨곡절이 붙어있는것만 같아 마음이 좀 떨떠름하였다. 정실이가 잠시 자저하다가 하릴없이 창구앞으로 다가서니 피둥피둥한 윤가가 전표는 줄 생각을 아니하고

<<이리 좀 들어우라구, 물어볼 말이 있으니.>> 하고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정실이가 마음을 가다듬고

<<무슨 말씀인가요?>> 하고 들어갈 의사가 없는 눈치를 보였더니 윤가는

<<잡아먹지 않을테니 어서 들어와.>> 하고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그러지 말구 어서 전표나 주세요. 집에서 기다리겠어요.>>

<<들어오라면 순순히 들어올게지 무슨 앙탈이야?>>

<<그럼 어서 말씀하세요, 여기서 들을게요.>>

<<정말 이러기야?>>

정실이가 입을 꼭 다물고 박은듯이 서있으니까 운가는 할수없이 눙쳐서

<<좋다 그럼... 이야기는 두었다 이담에 하자.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생각밖에 빡빡하구먼. 옜다 전표, 고마운줄이나 알아라.>>하고 창구로 전표를 내밀어주었다. 정실이가 근심끝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와 전표를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윤가의 소댕 같은 다른 손이 번개같이 빠른 동작으로 정실이의 손목을 덥썩 움켰다. 정실이가 덴겁하여 잡힌 손을 뿌리쳤으나 허사였다. 소래개에 채인 병아리가 파드닥거리는 폭밖에 안되였다.

<<들어오라면 들어올게지, 앙탈이 무슨 앙탈이야? 되지 못하게!>>

<<이거 놔요!>>

<<놔요? 그렇게 문문히?>>

<<소릴 지를테요.>>

<<어서 질러봐라. 누가 듣나? 헤헤>>

<<이거 놓지 못하겠어요?>>

<<말을 듣는다면 놓아주마. 듣지?>>

정실이가 악에 받쳐 최후의 수단을 썼다. 매섭게 달려들어 윤가의 우악스러운 손을 죽어라 하고 문것이다. 윤가의 입에서 아가소리가 터져나오는것과 동시에 정실이의 잡혔던 손목이 저절로 풀려났다. 정실이는 그물에서 벗어난 고기처럼, 거미줄에 걸렸던 나비가 거미줄에서 떨어진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들고뛰였다. 얼마를 오다가 생각해보니 하루 품삯 전표를 못 탔었다. 아깝고 분하였으나 어찌하랴. 소한테 물린 셈 치치.

정실이가 신작로까지 나왔을 때 마침 한정희와 씨동이도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중이였다. 정실이가 두 사람을 보자 한옆으로 비켜서며 눈인사를 하는데 씨동이가 발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너 무슨 일이 있었니?>> 하고 물었다. 정실이가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드니 씨동이는

<<그럼 왜 울상을 하구 다녀?>> 하고 재쳐물었다. 씨동이의 묻는 말에 정실이는 저도 모르게 설음이 북받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리니 씨동이가 앞으로 바싹 다가들며

<<말해. 무슨 일이야?>> 하고 다우쳤다. 정실이가 겨우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로

<<십장이...>> 하다마니 씨동이는 큰소리로

<<십장이 어쨌단 말이야?>> 하고 재쳐물으며 옆에 섰는 한정희를 돌아보았다.

<<전표를 안 떼줘요.>>

<<왜...?>>

정실이가 대답을 아니하고 고개를 깊이 숙여서 가리마가 바로 보였다. 씨동이와 한정희는 사태를 얼추 짐작하고 서로 눈짓한 뒤 씨동이가

<<가자 앞서라! 가서 찾아주마. 그런 도둑놈의 새끼!>> 하고 정실이의 팔죽지를 잡아돌려세웠다.

씨동이와 한정희가 내키지 않아하는 정실이를 억지로 뒤에서 몰다싶이 하며 시내가 자갈추기공사장에를 찾아온즉 마침 피둥피둥한 십장녀석이 사무소의 대패질 안한 널빤지문에다 자물쇠를 잠그고 돌아서는 참이였다. 십장녀석은 제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계집아이가 얼굴이 해사한 남자 하나와 거머무트름한 남자 하나를 청병해 데리고 온것을 보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나타내였다. 그러나 곧 능청맞게

<<어 정실인가? 아까 전표 떼줄 때... 암만 불러두 대답이 없더구먼.>> 하고 지껄이며 호주머니에서 전표를 꺼내는데 몹시 물려 피가 맺힌 손을 아끼느라고 왼손을 꺼내서

<<옜소.>>하고 내밀었다. 정실이가 박은듯이 서있기만 하니까 십장녀석은 두 청병중에서 무섭게 생가지 않은 한정희에게 전표를 내밀었다. 한정희가 정실이의 전표를 대신 받는 동안 씨동이는 꽁무니에서 호신용 자전거사슬을 뽑아 한끝을 쥐고 허공에 대고 윙윙 소리가 나게 냅다 휘둘렀다. 십장이 물계가 좋지 못한것을 보고 어물어물 가로 새려는것을 씨동이가 앞에 와 턱 막아섰다.

<<말 좀 물어봅시다.>>

씨동이의 거는 말은 거칠었고

<<녜 무슨 일이요?>>

십장의 받는 말은 건성이였다.

<<쟤는 내 동생인데,>> 하고 씨동이가 정실이를 한번 돌아보고나서 다시 십장을 향하고

<<다시 또 그따위 지정머릴 하겠소?>> 하고 을러메였다

<<내가 무얼?.. >>

<<뭐시 어째?!>> 하고 씨동이가 대번에 눈방울을 굴리니 십장녀석은 이내 수그러지면서

<<앞으로는 조심하리라.>> 하고 납고하였다. 씨동이가 또 무어라고 말을 하려 할즈음에 한정희가 그 어깨를 돌려세우고 대신 나서서

<<여보시우, 연약한 녀자들이 벌어먹구 살겠다구 나와서 험한일을 하는게 불쌍하지두 않으시우? 우리가 다같은 조선사람 아니요?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을 깬대서야... 어디 말이 되우? 그러니 앞으로는 그러지 말구 좀 잘하시우. 쟤는 더 말할것두 없구... 다른 녀자들에 대해서두 좀 점잖게 놀란 말이요. 일후에 쟤 말을 들어봐서... 그럴 필요가 있을 때는... 우리가 다시 당신한테 인사를 하러 오리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속에 뼈가 있는 말로 십장을 타일렀다. 십장이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녜녜 잘 알았소. 념려들 마시우.>>

말하고 사를 받은 죄인처럼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버린 뒤에 한정희와 씨동이는 정실이를 위로하여 앞세우고 집으로들 향하였다.

이리하여 정실이는 전연 생각밖에 윤십장을 잡아누르고 자갈추기를 거침새없이 계속 다니게 되였는데 밤에 쌍년이를 찾아가 도지 일을 자세히 이야기한즉 쌍년이는 십장의 손을 피가 맺히도록 물어놓았다는 대목이 너무도 깨고소하여 손벽을 치면서

<<살점을 물어뗐더면 더 좋았지.>> 하고 깔깔거렸다. 그리고 씨동이의 자전거사슬이 은을 냈다는 말을 듣고는 좋아서

<<그 녀석이 이젠 꿈에 쇠사슬 든 놈이 보일가봐 겁을 낼게다. 다시는 네게다 그따위 지정머릴 못할거니까 아무튼 일이 참 잘됐다.>>하고 생글생글하였다.

추천 (3) 선물 (0명)
IP: ♡.162.♡.163
로즈박 (♡.39.♡.172) - 2023/10/20 21:04:13

어마나..또 올려주셧네요..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당~~

산동신사 (♡.79.♡.155) - 2023/10/21 19:57:33

오랜만에 이렇게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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