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4

더좋은래일 | 2023.10.20 20:12:21 댓글: 3 조회: 243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616


14

력사시간에 배운다는것이 모두 무슨 천황, 무슨 천황... 맨 천황투성이라서 선장이는 비위가 상하였다. 참다 못하여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그 천황들은 다 무얼 먹구 삽니까?>>
김영하선생은 수업중에 별안간 이런 어둔 밤에 홍두깨같은 질문을 받고 잠시 멍청하였다. 그러나 곧 상태를 회복하고 선장이를 바라보며 싱긋 웃고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기실 김영하선생도 교과서에 그렇게 찍혀있으니까 할수없이 그렇게 가르치는것이지 자기가 그렇게 가르치고싶어서 가르치는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마지못해 가르치는 제 속도 어지간히 편치가 않던차라

<<천황이란 모두 목상같이 가만히 앉아... 무어나 신하들이 갖다주는것만 받아먹어야 한다. 그래서 일년 열두달 다른건 못 얻어먹구... 줄창 대구대가리하구 된장국만 먹구 산다.>>

이런 엄청난 말이 그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그 전거 즉 근거로 삼는 문헌상의 출처는 분명치가 않지마는 일단 선생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학생들은 무조건적으로 믿는 법이므로 선장이 역시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리로 이때부터 일본천황은 그런것을 먹고 사는걸로 믿어 의심치 않게 되였다. 김영하선생의 이 기발한 대답은 아이들의 마음눈에 비치는 천황의 존엄을 여지없이 망그러뜨렸다. 그래서 선장이에게는 일본천황이라는것이 밭가운데 서서 새들을 놀래는 허수아비같이 우습강스러운걸로 생각이 들게 되였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선생을 꺼리고 또 수업시간을 꺼려서 키들키들 웃다가 나중에 김영하선생이 저의 한 말이 저로서도 우스워서 히쭉 웃으니 아이딜은 사기가 부쩍 올라 드러내놓고 짜그르르 웃어대였다. 재미 없는 수업으로 고자누룩하던 교실안이 갑자기 우꾼해지고 들썩해졌다.

<<우리 나라 임금님은 날마다 큰상같이 잘 차린 수사상을 받으시지요?>>

한 아이가 이렇게 물어서 김영하선생이 선뜻

<<그렇구말구.>> 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그것보지!>> 하고 서로 돌아보며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일본천황은 대구대가리와 된장국밖에 못 먹는데 자기 나라 임금은 잘 차린 수라상을 받는다는 이 현수한 대비가 이들을 민족적긍지감이로 가득차게 하였다. 민족적긍지감이란 야릇한것이였다. 더구나 이족의 철제하에 신음하는 민족의 민족적긍지감이란 야릇한것이였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도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게하는 신묘한 힘을 가지고있었다. 어머어마한 싸움에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 전투적호소성을 가지고있었다.

이날 저녁 선장이와 한학급인, 별순사 즉 순사부장의 아들이 밥상머리에서 저의 애비를 보고

<<일본천황은 일년 내내 대구대가리하구 된장국만 먹지만... 우리 나라 임금님은 날마다 잔치상 같은 수라상을 받는답디다.>> 하고 자랑삼아 말하니 그 애비가 듣고 적이 놀라며

<<누가 그러던?>> 하고 다우쳐 물었다. 아들이 례사롭게

<<력사시간에... 선생님이 그럽디다.>> 하고 대답하니 별순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집에선 괜찮지만... 어디 밖에 나가선 아예 그런 말 하지 말아, 큰일난다.>> 하고 아들을 신칙하였다.

한편 한은희가 석후에 저의 누이와 함께 작은사랑 할아버지 계신 방에 나와 하나는 다리를 주물러드리겠다고 하고 또 하나는 어깨를 주물러드리겠다고 하다가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다 고만두고 고기들 좀 앉아라.>> 하고 자기앞을 가리켜서 남매가 다 할아버지앞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먼저 선희를 보고

<<네 졸업할 날이... 이제 얼마나 남았지?>> 하고 물어서 선희는

<<이제 반년두 채 못 남았에요. 할아버지.>> 하고 대답하였다.

<<상급학교는 어디를 지망한다구?...>>

<<교장선생이 미국류학을 고려해보라구 말씀하세요. 갈 의사가 있다면... 음악대학에 소개를 해주겠대요.>>

<<아니 뭐 미국? 계집아이 혼자서 미국을 가? 그게 어디 될 말이냐! 첫째 너의 에미 애비부터 펄쩍 뛸게다.>>

선희가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다소곳하였다.

<<서울에두 무슨 하교가 있잖더냐?>>

<<리화전문학교가 있에요.>>

<<거기를 가, 거기를 가. 딴 생각 말구... 거기를 가두룩 해.>>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뉴욕 줄리아드음악대학이 서울 리화녀전 음악과로 변해버리는데 선희는 꿀꺽 소리도 못하였다.

<<왜, 싫으냐?>>

<<아니 싫을것 없에요. 할아버지 하라시는대루 하겠에요.>>

<<암 그래야지. 할애비 말을 순종해야지.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거다. 알겠느냐?>>

<<녜 알았에요. 할아버지.>>

한진사가 저녁에 반주로 약주를 한잔 한 기분에 눈이 가늘어져서 손자를 바라보며

<<은히 넌 오늘 학교에서 무얼 배웠느냐?>> 하고 물었다.

<<력사를 배웠에요. 할아버지.>>

<<력사를 배웠어, 그래 력사를 어떻게 배웠느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일본천황은 일년 내내 대구대가리하구 된장국만 먹구 산대요. 정말 그렇습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은희의 말을 듣자 허리를 잡으며 웃었다.

<<옳다. 맞았다! 정말이다. 하하하!...>>

선희와 은희도 우스워서 따라 웃으니 할아버지는 잇달아 터져나오는 웃음을 걷잡지 못하면서 은희를 보고

<<어느 선생이 그러던? 너의그 김선생이 그러던?>> 하고 물었다. 은희가

<<녜.>>

대답하니 할아버지는

<< 하하하! 너의 그 김선생이 정말 훌륭한 선생이다. 하하하!...>> 하고 더없이 좋아하였다.

어느날 오후의 일이다. 하학을 하고 교문을 나서서 뿔뿔이 흩어져갈 때 선장이가 은희를 보고

<<우리 누나 일하는데 한번 들려보잖겠니? 시내가다.>>하고 말을 내니 은희는 그리 내키지 않는 말투로

<<그런데 무슨 재미있니.>> 하고 시들한 대답을 하였다. 선장이가 얼른 다시

<<그옆이 바루 단오날 그네턴데... 거기 잔디밭에 메뚜기가 우글우글한다.>>하고 후리니 은희는 귀가 번쩍 띄여 대번에

<<그럼 가자.>> 하고 곧 덜렁덜렁 앞서 걸었다. 남산의 서쪽기슭은 잔디로 뒤덮인 민틋한 언덕인데 그 바로 밑을 한물이 스쳐지나갔다. 두 아이가 그 언덕을 가로질러가면서 씩둑꺽둑 지껄였다.

<<우리 선생님이 너의 누나를 좋아하잖니?>>

<<아니 그저 내 생각에 그렇단 말이다.>>

<<우리 누난 명년 봄에 졸업하며 서울 간다.>>

<<너의 누난 좋겠다.>>

<<루씨학교 교장선생... 너두 봤지? 그 서영녀자 말이다, 제 손으루 자동차를 몰구 다니는. 그 교장선생이 우리 누나 좋아해서 미국 음악대학에 보내주겠다는걸... 우리 할아버지가 못하게 한다.>>

<<왜?>>

<<녀자 혼자 먼 외국에 가는건 위험하다구 그러겠지.>>

<<내나 한번 가봤으면.>>

<<큰 기선의 수부가 되면 갈수 있다더라.>>

<<나 같은걸 그런 기선에서... 받아줄라구 하겠니.>>

<<아마 좀 어려울게다.>>

<<야 가을볕이 왜 요렇게 따끈따끈하냐... 사람이 구워지겠다.>>

<<정말 난로앞에 앉은것 같다. 세타 벗으까.>>

선장이가 갑자기

<<쉬!>>하고 한손으로 은희를 제지하며 허리를 구푸리고 두어발자국 앞에 있는 무엇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은희도 덩달아 허리를 구푸리고 선장이의 눈 가는 곳을 여겨보니 양지바른 둔덕 잔디 덮인 한곳에 시꺼먼 몸뚱이에 노르께한 줄무늬가 비낀 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있었다.

<<땅벌이다!>>

선장이가 은희를 돌아보며 속삭이니 은희도 역시 가는 목소리로

<<말벌이다.>> 하고 딴소리를 하였다.

<<말벌이 어떻게 땅속에다 집을 짓니?>>

<<왜 못 지어?>>

<<그래두 이건 땅벌이야.>>

<<아니, 말벌이 틀림없다.>>

두 아이가 한번 서로 마주보고 곧 쟁론을 고만두었다. 심판관이 없는 자리에서 둘이 아무리 다투어보았자 승부는 나지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저놈의 집을 파헤치구... 우리 꿀을 좀 내먹자.>>

<<말벌꿀두 먹니?>>

<<땅벌꿀을 왜 못 먹어?>>

<<난 그런 말 못 들었다.>>

<<땅벌은 꿀만 먹지 않구 새끼두 먹는다. 약국에서 파는 땅벌새끼는 인삼보다 더 비싸다. 먹으면 기운이 세진다구 씨름군들은 땅벌새끼라면 다들 기를 쓴다.>>

<<그렇게 기운이 세지니?>>

기운이 세진다는 바람에 기운이 약해 늘 손해를 보는 은희는 귀가 솔깃해졌다. 이들 두 아이가 낱이 놀 때 저들도 모르게 은희는 언제나-톰 소여의 역을 담당하였고 그리고 선장이는 항상-학크베리 파인노릇을 하였다. 마크 트웬의소설의 주인공노릇들을 하였다.

<<두말하면 군말이지. 어디 나무꼬챙이가 하나 없나.>> 하고 선장이가 두리번두리번하니 은희는 얼른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 나무가지를 꺾자.>>

말하고 곧 앞서서 그리고 달려갔다. 두 아이가 나무가지를 하나씩 꺾어가지고 오ㅑ서 일을 시작하려다가 은희가 문뜩

<<그러다가 벌이 쏘면 어떻거니?>> 하고 주니는 내니 선장이는 들은척도 안하고

<<저리 비켜라?>> 하고 곧 쥐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바싹 꼬부리고 나무꼬챙이를 지뢰탐지기처럼 앞으로 내들고 살금살금 땅벌지블 향하여 걸어들어갔다.

정실이가 여러 녀편네들 틈에 끼여서 부지런히 자갈추기를 하고있을 때 한눈 파는 버릇이 있는 녀편네 하나가 별안간

<<아이구 저 애들 좀 보우!>> 하고 새된 소리를 질러서 일하던 녀자들이 모두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일손들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정실이가 그 녀편네의 손가락질하는 곳을 바라보니 민틋한 언덕받이 자니밭을 책보들을 허리에 둘러띤 사내아이둘이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달려내려오고있었다. 그 다급해맞은 품이 마치 뒤에서 큰 호랑이가 주홍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금새 뒤쫓아오기라도 하는것 같았다. 두 아이가 다 죽어라 하고 허공에다 두팔으르 내두르며 달려내려오는데 그중의 한 아이는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로 울부짖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일하던 녀자들이 어찌된 영문을 몰라 눈들이 휘둥그래지며 우르르 일어서니 판자집안에 편히 앉아 출납창구로 내다보던 윤십장이 벌떡 일어서며

<<웬 수선들이야? 일은 안하구!>> 하고 게두덜거리며 널판지문을 열어젖뜨리고 밖으로 나왔다. 두 아이가 어지간히 가까이들 왔을 때 눈이 밝은 색시 하나가

<<어이구 저 벌떼!>> 하고 기급을 하여서

<<벌떼? 어디?...>>

<<어머 저런!>>

비로소 다들 두 아이가 떼벌에게 쫓겨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정실이도 두 아이가 곧 저의 동생 선장이와 은희인것을 알아보고 기절하리만큼 크게 놀랐다. 먹구름장 같은 땅벌떼를 머리에 떠이다싶이 한 두 아이가 시내가로 곤두박질하듯 달려내려오는데 뭇벌이 내는 윙윙 소리가 자갈추던 녀자들의 놀란 귀에는 우뢰와 같이 무시무시하게 울렸다. 벌떼에 쫓기는 아이들이 뛰여들자 자갈추기현장은 삽시에 란장판으로 변하였다. 까닭없이 집을 헐리고 분이 난 벌떼가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쏘아제낀것이다. 사람으로 생긴것은 다 원쑤로 아는 땅벌들이 십장을 가릴리가 없었다. 다급한 녀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재빨리 치마자락을 뒤집어쓸 궁리들이나 났지만 윤십장은 기마바지를 입은 까닭에 창졸간에 뒤집어쓸래야 뒤집어쓸것이 없었다. 무방비상태의 윤십장은 맹렬한 집중공격을 받아서 누구보다도 많이 쏘인 까닭에 잠간동안에 눈이고 코고 입이고 다 참혹하게 부르터서 사람의 얼굴인지 옴두꺼비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 되여버렸다.

선징이가 강기가 있어서 하루밤 죽도록 앓고서는 이튿날은 용감히 일어나 어머니와 누이가 말리는것도 듣지 않고 등교를 하였다. 그러나 은희는 그렇지가 못하였다. 여러날 결석을 하였다. 역시 포류질이였다.

선장이가 빡빡 깎은 머리와 이마와 관자노리에 밤톨 같은 혹들이 불쑥불쑥 삐여진 까닭에 보자가 들어가주지 않아서 할수없이 맨머리바람으로 등교를 하는데... 관람료를 받지 못하는것이 원통할 정도로 구경군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길가던 사람이나 가게방에서내다보던 사람들은 아무도 일찌기 이렇게 괴상망측한 얼굴을 본적이 없었기때문이다. 선장이가 학교 대문을 들어설 때는 이미 상학종이 울린 뒬 온 운동장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량쪽 눈두덩에 다 밤톨 같은 혹들이 달린 까닭에 눈이 떠지지 아니하여 간신히 실눈을 뜨고 보며 츠응대를 한계단한계단 3층까지 더듬어 올라갔다. 쥐죽은듯 괴기한 복도를 한참 걸어서 교실문을 밀어 열고 들어선즉 교실안의 얼굴들이 모두 선장이한테 돌려졌다. 교단우의 선생님도 칠판에다 무엇을 쓰다가 분필을 손에 든채 선장이를 돌아보았다. 처음 순간은 모두들 놀라서 멍청하였다. 실내가 온통 웃음의 바다로 변하였다. 김영하선생도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얼굴만 보고는 그것이 선장이라고는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기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무슨 흉악한 탈바가지였다.

<<도대체 웬 일이냐?>>

김영하선생의 묻는 말을 선장이는 퉁퉁 부어서 바크샤주둥이가 된 입을 겨우 열고

<<땅벌에게 쏘였습니다.>>

짐작으로 알아들을만큼 대답하였다. 땅벌이 아무리 리면이 없기로서니 집에 가만있거나 조신하게 제 갈길을 가는 놈을 공연히 달려들어 저 지경 쏘았을리는 만무하므로 김영하선생은 긴말 묻지 않고

<<그래 가지구 상학이 다 뭐냐? 어서 돌아가 쉬여라.>> 하고 말을 이른 다음에 다시

<<한은희두 오늘 무단결석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어디를 앓는지...>> 하고 혼자말로 지껄였다. 선장이가 잠자코 있을수가 없게 되여

<<은희두 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김영하선생은 말끝을 채여서

<<같다니?...>> 하고 되물었다.

<<땅벌에게 쏘였습니다.>>

선장이의 대답을 듣고 교실안이 또 한바탕 웃음판으로 변하였다. 더 말 안해도 전후사연은 환히 드러났다. 김영하선생은 곧 급장을 시켜 제일 큰 아이 하나와 함께 선장이를 집까지 데라다주게하였다. 그러나 교문께까지 나와서 선장이가

<<이젠 괜찮다. 나 혼자두 넉넉히 갈수 있다.>> 하고 방색아여서 두 아이는 하릴없이 그냥 될돌아들어와 김영하선생에게 되여진일을 회보하였다. 선장이는 집에 돌아와 책보를 방구석에 내던지고 드러눕는 길로 곧 앓음소리를 하여 몹시 앓았다.

이튿날이 마침 일요일이여서 김영하선생이 땅벌소동의 주인공들-서선장이와 한은희를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먼저 선장이네 집에들 오니 선장이의 누이 정실이가 울안에서 빨래줄에다 빨래를 널고있었다. 윤십장이 땅벌소동에 련대책임이 있다는 구실을 붙여가지고 눈에 가시 같던 정실이를 일자리에서 쫓아낸 까닭에 정실이는 아침 일찌기 자갈추기를 나갈 대신에 밀린 빨래를 한것이였다. 김영하선생이 마당에 들어서는것을 보고 정실이는 황망히 바지랑대로 축 늘어진 빨래줄을 버티여 거침새없이 해놓고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까댁하였다. 김영하선생이 인사를 맞은 뒤에

<<선장이는요?>> 하고 물으니 정실이는 선뜻

<<녜 있어요.>>

말하고 먼저 토방으로 울라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선생님 오셨다.>>

선통하고 곧 다시 문고리를 잡은채 한옆으로 비켜서서 문길을 터놓으며 어서 듭시라는 뜻으로 김영하선생에게 목례를 하였다.

선장이가 방바닥에 편히 드러누워 그림책을 보고있다가 선생님이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부지런히 일어나 방문 맞은편에 가 떡섰다가 선생님이 방안에 들어사자 꾸뻑 경례를 하였다. 김영하선생이 자리에 앉으며 곧

<<어서 앉아라. 그런데 좀 어떠냐?>> 하고 물으며 섰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은 선장이와 방문옆에 살며시 쪼크리고 앉은 정실이를 번갈아 보았다.

<<이젠 괜찮습니다.>>

선장이가 씩씩하게 대답하는데

<<밤에는 앓음소리를 하고 몹시 앓더니만... 아침에는 일어나 제 손으로 세수도 하구 또 밥두 다 먹었에요.>>

정실이가 그 대답에 동을 달았다. 김영하선생이

<<장난이 심하면 그런 일두 더러 있지. 좋은 교훈이다.>>하고 웃으니 선장이는 제딴에 우스워 픽 웃고 정실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방싯이 웃었다. 김영하선생이 다시

<<벌집은 누가 먼저 건드렸니?>> 하고 물으니 선장이는 선뜻

<<제가 먼저 건드렸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내 그저 그럴줄 알았다. 묻지 않아두 의례 네가 앞장섰을줄 다 알구있었다.>>

<<누나가 우리 둘을 그러안구 땅바닥에 엎드리지 않았더면 물려죽었을지두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벌들한테.>>

<<누나는 또 왜 거기를 갔었니?>>

<<저희가 누나를 보러 가다가 일을 저질렀에요. 시내가루 가다가.>>

<<그럼 누나는 어떻게 무사했을가?>> 하고 김영하선생이 정실이를 돌아보니 정실이는 고개를 저편으로 돌리고 말이 없고 선장이가 저의 누나 대신

<<누나두 물리긴 좀 물렸지만 몇군데 안 물렸어요. 재빨리 치마자락을 뒤집어써서.>> 하고 대답하였다.

선장이의 아버지는 바다에 나갔고 어머니는 외가집에 다니러 간것을 물어서 안 뒤에 김영하선생이 선장이에게 조리 잘하라고 말을 이르고 남매의 배웅을 받으며 그 집을 나와 곧바로 한은희를 보러 갔다.

김영하선생이 한진사댁에를 와보니 솟을대문앞에 자동차부의 자동차 한대가 와 서서 털털거리고있는데 대문간에서는 남녀 여러 사람이 막 밖으로 나오는중이였다. 다시 보니 앞서 나오는것은 외출복차림을 한 한정희요 바로 그뒤는 한정희의 어머니인듯싶은 나이 지긋한 안뷘데... 그리고 또 그뒤가 한선희였다. 그 나머지는 최서사이하 여러 심부름하는 남녀들인상싶었다. 한정희가 김영하선생을 보자 얼른 몇걸음 앞으로 나오면서 손을 내미는데 그 얼굴이 몸시 창백하였다. 두 사람이 악수를 하는데 저의 어머니뒤에 섰던 선희는 고래만 한번 까댁하여 김영하선생에게 인사하였다.

김선생 모처럼 이렇게 오셨는데... 매우 유감스럽게 됐습니다.>>

<<아니 어디들 가시려구요?>>

<<녜 안변땅에 급한 볼일이 좀 있어서 어머니 모시구 지금 막 떠나는 길입니다. 우리 어머니신데...>> 하고 한정희는 반몸 돌아서서 저의 어머니와 김영하선생을 인사를 붙였다.

<<어머니, 이분이 김영하선생... 은희네 담임선생입니다.>>

<<아이구 선생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철 없는것들 데리구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웬 천만의 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는 지금 은희를 보러 오는길입니다. 잠간 만난보구 가겠습니다. 그럼 어서들 떠나시지요.>>

한정희모자와 심부름하는 사람 하나를 태운 자동차가 떠나간뒤 선희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김영하선생과 최서사는 그대로 대문간에 서서 잠시동안 수작하였다.

<<무슨 일루 저렇게 총총히들 떠나십니까?>>

<<아이구 말씀 맙시요. 큰일이 났습니다. 우리 주인량반이 안변땅에 도조 받는 일루 출장을 나가셨다가... 뇌출혈루 불시에 세상을 뜨셨답니다. 아까 아침때 전보를 받는 길루 부랴부랴 서둘러서 주인을 찾아다가... 이제야 겨우 떠나보내는 길이예요. 이런 변고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런! 그런 변고가 있는줄은 모르구 난 또... 그래 로인께선 어떻거구계십니까?>>

<<말씀 맙시오, 이런 마른하늘의 벼락 같은 참척을 보시구... 칠순 로인이 그 속이 어떻겠습니까? 그래두 워낙들 교양있는 집안이라... 평시나 다름없이 조용하지요. 이제두 못 보셨습니까? 정말루 침착들 합니다. 집안의 대들보가 끊어지는 판인데... 웬만한 여느 집들 같았으면야... 아마 지금쯥은 집안에 곡성이 진동을 할겝니다.>>

하늘같이 믿어온 주인이 급사하는 바람에 경동한 최서사가 그렇든 경황 없는중에도 주인댁의 가풍을 극구 찬송하는것을 듣고 김영하선생은 한진사의 인품에 대하여 속으로 다시한번 옷깃을 여미였다.

김영하선생이 최서사를 따라 작은사랑에 들어가 로인께 궂긴인사 여쭙고 또 선희의 안내로 슬픔에 잠기여 고자누룩한 안채에 까지 들어가 아직도 누워앓는 은희를 들여다본 뒤 다시 선희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께로 나왔다. 작별할 때 김영하선생이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그저모자를 벗고 말없이 깊이깊이 허리를 구푸리니 선희도 역시 말이 없이 마주 허리를 깊이깊이 구푸렸다.

김영하선생이 걸음을 옮기다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솟을대문앞에 호젓이 서있는 선희의 가냘픈 모습이 흡사 배꽃 한가지가 비를 맞아 떨고있는것만 같았다.

추천 (2) 선물 (0명)
IP: ♡.162.♡.163
뉘썬2뉘썬2 (♡.169.♡.51) - 2023/10/21 04:25:23

말벌새끼를 먹으면 기운이 쎄진다는말 첨듣네요.벌에 쏘여본적 없는데
벌에쏘이는 장면을 너무 생동하게 표현햇네요.이게바로 세월이 ㅈㅣ나도
남아잇는 문장의 매력인가바요.

사람으로 생긴것을 다 원쑤로아는 벌들이 십장을 가릴리가 없엇다.다급
한 여자들이 치마자락을 뒤집어썻다.옴두꺼비같고 흉악한 탈바가지같은
몰골땜에 관람료를 받ㅈㅣ못하는것ㅇㅣ 원통할 정도로 구경꾼이 많앗다.

등 표현들이 너무 생동하고 재밋네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0/21 04:28:37

읽기도 바쁜거 한땀한땀 타자하다니요.덕분에
잘읽엇어요.

더좋은래일 (♡.136.♡.131) - 2023/10/21 11:13:3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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