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6

더좋은래일 | 2023.10.21 16:43:17 댓글: 1 조회: 292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830


16

이해 음력설밑에 원산항은 유사이래의 대동란속에 온 시내가 풍랑 만난 배처럼 뒤흔들렸다. 그것은 경찰들의 제모의 에나멜가죽끈을 내려서 턱밑에 걸고 나번드기는것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리고 또 각성한 로동자들이 대중적단결력과 전투적기세를 과시하는것으로 특징지어졌다. 문평 라이징 썬 석유회사 로동자들의 다시 시작한 파업을 신호로 오래전부터 파업태세를 갖추고있던 원산 부두로동자들이 일대 폭발을 일으킨것이다. 원산서 기차를 타고 북으로 한 10분 가면 덕원정거장이요. 덕원서 한 10분 더 가면 문평정거장이다. 문평과 원산은 상거가 불과 20리... 불똥은 당일로 튀여오고 또 당일로 튀여갈만한 거리였다. 부두로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은 련쇄반응을 일으켜 삽시간에 원산일대의 공장제조소와 모든 작업장들이 완전히 마비되여버렸다. 명석동에 본거를 둔 적색로조 즉 <<원산로동련합회>>가 총파업의 지령을 내린것이다.

한진사댁 큰사랑에서는 젊은 주인 한정희와 비서장 격이고 참모장 격인 최서사 사이에 극적인 대화가 벌어졌다.

<<최서사, 식산은행의 어음을 3천원만 떼시오>>

한정희가 짐짓 례사롭게 이렇게 말을 내니 최서사는 자기가 무슨 말을 잘못 들은줄만 알고 고개를 비틀고 젊은 주인을 쳐다보며

<<뭐라구요?>> 하고 되물었다. 한정희가 다시 언성을 좀 높여가지고

<<석산은행의 어음을 3천원만 떼라는데.>> 하고 말하니 최서사는 너무도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하다가 한참만에야 비로소 정신기가 도는 모양으로

<<그렇게 큰돈을... 무엇에 쓰실라우?>> 하고 무서운 일을 물어보듯 물어보는데 그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내 좀 쓸데가 있어 그러우.>>

<<쓸데가 있어서?...>>

<<그렇소.>>

<<무엇에 쓰실라우?>>

<<그건 지금 알것 없소. 차차 이야기하리라.>>

<<도련님, 제발 이러지 마시우. 누굴 죽이려구 이러시우. 3천원... 3천원이 뉘 집 아이 이름인줄 아시우?>>

<<잔말 말구 어서 시키는대루 하우.>>

<<도련님 미치잖았소? 인제 도련님은 이 큰 집안의 대들보요. 안팎 수십명 식구가 누굴 바라구 사는지 아시우? 일거수일투족을 왜 지망지망히 하신단 말씀이요. 제발 마시우, 제발 말아요.>>

<<최서사의 말하는 뜻은 내 다 알았소. 그렇지만 이번 일만은 여러 말 말구 시키는대루 하우.>>

<<용처를 말씀하시우. 용처를 들어봐서 꼭 써야 할 일이면... 내들어가 할아버님께 여쭈오리라.>>

<<정신이 나갔잖았소? 인감이 할아버님 문갑속에 들어있는... 할아버님을 알리잖구 그런 큰일을 어떻게 한다구 그러시오? 당초에 안될 소리!>>

<<난 주인이요! 최서사는 차인이요! 주인이 시키는대루 하는게 차인의 본분이요. 웬 잔말이 그리두 많소.>>

성정이 야박한 자기 아버지밑에서 10여년 동안 빈틈없는 훈련을 받아와서 아주 틀이 잡혀버린 최서사를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꺾어누르기가 어려울것을 짐작하고 한정희가 짐짓 야멸한 소리를 하였더니 최사서는 서러워서 대번에 눈자위가 붉어지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최서사가 아무말없이 고개 푹 숙이고 한참 앉았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푸주간에 들어가는 소걸음으로 안사랑으로 들어갔다. 무슨 수간을 어떻게 썼는지 한참만에 까만 인갑에 든 수정도장을 들고 그림자같이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저의 책상앞에 쭈그리고 앉은 최서사는 어음책을 펼쳐놓고 붓을 집어들기는 하였으나 적어넣을 생각은 아니하고 고개를 젖혀들고 멍하니 천정마 쳐다보았다.

<<아 뭘 하오? 빨랑빨랑 좀 못하구!>>

한정희의 독촉을 받고서야 최서사는 체포장에 서명하는 범인처럼 마지못해 몇 글자를 꺼적거렸다. 한정희가 보니 어음에다 수정도장을 찍는 최서사의 손이 신장대를 잡은것처럼 와들와들 떨렸다. 죽을상이 된 최서사가 갖다바치는 어음을 한정희가 잡아채듯이 해가지고 들여다보니 거기 적힌것은 분명히 삼백원야(参伯圆也)다. 한정희가 골이 나서 어음을 최서사앞에다 동댕이며

<<다랍게 요게 뭐요? 다시 쓰우!>> 하고 어떠한 항변도 허용하지 않을 어조로 명령하니 최서사는 대번에 방바닥에 꿇어엎드려서 이마를 조으리며

<<도련님, 이놈을 그예 감옥구경을 시켜야 속이 시원하시겠소?>> 하고 비줄비줄 울었다. 한정희가 쓴입을 다시고 최서사의 눈물이 종횡으로 얼굴과 방바닥에 떨어져있는 어음을 번갈아 바라보니 최서사는 젊은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내가 도련님의 그 맘을 모르는줄 아시우? 그래 그따의 조합인가 무엇인가에 돈을 대줘선 무얼 하실라우 거기서 밥이 나온답디까, 옷이 나온답디까? 왜 어른들이 애써 모은 천량을 보람없이 허비한단 말씀이요. 대체 3백원이 도련님, 얼만지나 아시우? 3백원이면... 백미 쉰가마예요, 백미가 쉰가마!>> 하고 울음반 지껄였다. 한정희 최서사를 더는 어찌할수 없음을 깨닫고 팔을 늘이여 일단 동댕이쳤던 어음을 다시 집었다. 거기 적힌 액면을 눈살을 찌프리고 한참 노려보다가 하릴없이 그대로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낯이 뜨뜻해서 요걸 어떻게 내놓는담.)

한정희는 속으로 왼새끼를 꼬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로동조합사무실에서 그는 전연 다른 반응을 보게 되였다.

한정희가 식산은행지점의 유리문으 밀고 들어가 해당한 창구에 어음을 들이밀었다.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마름모형무늬가 선명한 넥타이를 맨, 용모가 단정한 은행원이 눈인사를하고 어음을 받아 앞등, 뒤등을 번드쳐보더니 곧 지전 세뭉치를 꺼내주며 웃는 얼굴로

<<진사님께서 강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였다. 한정희를 부자집 젊은 주인으로 알고 하는 인사가 분명하였다. 한정희가 좀 당황하였으나 곧 례의바르게

<<아 녜 무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돈뭉치를 집어서 량쪽 호주머니에 갈라넣었다. 한정희가 은행을 나와 명석동을 향하고 얼마쯤 올라오다가 마주오는 로동자 서넛과 마주치게 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곧 양씨동이였다. 씨동이가 동행들을 돌아보고

<<앞서들 가우.>>

말하여 그 사람들을 앞서 보내놓고 싱글싱글 웃으며 한정희앞으로 다가왔다.

<<어딜 가시우?>>

<<명석동 간다. 너는?...>>

<<난 지금 사람들하구 명석동에 지령을 받으러 갔다오는 길이요.>>

<<그래 너희 거긴 어떻니?>>

<<우리두 다 파업에 들어갔소. 임금인상, 8시간로동제이 실시, 다체계약의 확립... 난 규찰대에 들었소.>>

<<잘했다. 사기들은 높으냐?>>

<<대단하우. 위풍을 부리던 감독놈이... 초상집 개꼴이 돼버렸서.>>

<<하하, 고거 잘코사니다.>>

<<내 속이 다 후련하우.>>

<<회관패들은 어떻거구있니?>>

<<손이 맞지 않아 걱정이요.>>

<<어떻게?>>

<<파업은 다같이 했지만 명석동의 통일적인 지령은 받지 않는다니 답답하잖우.>>

이렇게 말하며 씨동이가 못마땅한듯 고개를 가로 흔드니 한정희는 고개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해보다가

<<각자이위대장(各自以为大将)이로군.>> 하고 중얼거린 다음 다시

<<그렇더라구 우린 대적을 앞에 둔만큼 최선을 다해서 포섭을 해야 해.>> 하고 타이르듯 말하였다. 씨동이는 알았다는 뜻으로 잠자코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갈라질 때 한정희가

<<너 너무 덤비지 말구 조심 좀 해.>> 하고 당부하니 씨동이는 말없이 손을 한번 내젓고 웃으며 가버렸다. 씨동이는 그동안에 일자리가 바뀌여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재소에서 목도군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정희가 명석동에를 접어드니 네거리마다 경찰모의 번들번들한 에나멜가죽끈을 턱밑에 내려건 경찰들이 독수리눈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하고있었다. <<원산로동련합회>>라는 간판이 걸린 2층건물 근처에는 각반을 친 무장경찰 네댓명이 웅긋쭝긋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트집을 잡고싶은 눈으로 감시하고있었다. 그 꼴이 흡사 제 눈깔도 카메라의 렌즈처럼 사진을 찍지 못하는것을 원통히 여기는것 같았다. 한정희가 씁쓸한 얼굴로 현관에 들어서서 복도 왼쪽에 난 사무실문을 밀어열고 들어서보니 마루바닥이 어질더분한 사무실안에는 날림치 사무책상이 네댓개 놓이고 또 역시 날림치 의자 칠팔개가 질서없이 여기저기 놓이고 그리고 출입문 량쪽 벽밑에 모를 꺾어서 역시 날림치 장의자 하나씩이 놓였었다. 동쪽으로 큼직한 창문 두개가 났는데 유리창의 아래 한장씩은 불투명유리를 끼였고 그 맞은켠 벽에 목제의 서류장 하나와 철제의 캐비네드(명색) 하나가 서있고 그리고 두 창문사이의 벽에는 일본 어느 제약회사에서 기증용으로 찍어낸 괘력 하나와 자석식전화기 하나가 걸려있었다. 창문을 꼭 닫은 방안에는 값싼담배를 태우는 연기와 난로에서 새여나오는 석탄연기가 안개 끼듯하였고 또 전화기에는 노상 사람이 붙어서서 손잡이를 돌리고는 <<모시모시>> 또 손잡이를 돌리고는 <<모시모시>> 하고있었다. 이때의 교환양 즉 교환수아가씨들은 조선녀자이건 일본년자이건을 막론하고 <<모시모시>> 불러야 대답을 하지 <<여보시요.>> 불러서는 대답을 아니하였다. 따라서 전화번호도 일본말로 불러야지 조선말로 불러서는 아니되였었다.

허술한 로동복차림을 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사무실은 교전중의 전선지휘부를 방불케 하였다. 그 분위기는 긴장과 망쇄-이 두개의 단어로 개괄을 할수가 있을것 같았다. 한정희가 들어오는것을 보자 안침진 책상뒤에 앉았던 사람이 웬 사람과하던 말을 중둥무이하고 의자에서 얼른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한정희동지.>> 하고 웃으며 손을 내미는 그 사람의 나이는 서른대여섯, 깎지 않은 수염이 텁수룩한데 크고 정기도는 두눈에는 밤잠 못 잔 피로가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하였다. 이 사람이 곧 련합회의 수뇌 주철산이다. 주철산과 무슨 일을 의논하던 허위대 큰 사람도 따라 일어나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데 이 사람은 언젠가 원산 무정부주의자들의 본거-남산동 청년회과을 습격할 때 행동대를 지휘하고 또 나중에 손수레우에 올라서서 연설을 하던 사람이다. 이름은 문호림, 주물공출신의 로조일군이다. 세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책상둘레에 솥발같이 마주 대하고 앉은 다음 한정희가 우선

<<이거 너무 약소해서 부끄럽습니다만...>> 하고 호주머니에서의 지전 세뭉치를 꺼내여 책상우에 놓으니 주철산, 문호림 두 사람의 얼굴에는 놀람과 감격의 빛이 현연히 떠올랐다. 300원은 대금이였다. 수백 사람의 캄파에 해당하는 거액이였다. 주철산이 말없이 한정희의 손을 다시한번 굳게 잡았다. 그리고 한손을 들어 저쪽구석을 가리켜보이며

<<좀 보십시오. 저렇게 쌀 두말, 감자 반마대, 북어 몇괘... 이런 캄파들이 들어와 쌓이구있습니다. 군량이 딸리면 군사들이 싸움을 계속한단 재간이 있습니까. 파업에 참가한것은 3천명이지만 그 가족들까지 합치면 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이 숱하 입가진 사람들을 굶기지 말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로심초사를 안하게 됐습니까?>> 하고 하소연하듯 말하는데 한정희가 보니 과연 그가 가리키는 구석에 그러한 캄파물자들이 수두룩이 쌓여있었다.

<<이런 처지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동지의 이 캄파는 참으루 막대한 의의를 가지구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점점 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때 전화기에서 붙어서서 쉴새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던 키가 호리호리한 젊은 사람이 반몸 돌아서서 수화기를 내들며

<<철산동지, 전화.>>하고 소리쳐서 주철산, 한정희, 문호림 세 사람은 수작을 그치고 모두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주철산이 삐걱하고 걸상을 뒤로 밀고 일어나 수화기를 받으러 가며

<<어디서?.>> 하고 물으니 수화기를 내든 젊은 사람은 간단명료하게

<<영흥, 시외전화.>> 하고 대답하였다. 한정희와 문호림은 책상을 사이두고 모꺾어 앉은채 주철산이 송화기에 대고 하는 말에 귀들을 기울였다.

<<아 나요. 응응... 뭐라구? 파업깨기군? 얼마? 150명 가량? 응응... 몇시 차? 열시? 벌써 정거장에 집결했다구? 아 알겟소. 수고들 하시오.>>

주철산의 입에서 파업깨기군 150명 소리가 나오는것을 듣자 한정희와 문호림은 저들도 모르는 사이에 의자에서 뛰여일어났었다. 주철산이 수화기를 젊은 사람에게 돌려주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일어서있는 한정희, 문호림 두사람에게 막 정황을 설명하려는데 수화기를 든 젊은 사람이 또

<<철산동지, 고워서 시외전화.>> 하고 소리쳐서 주철산은 하려던 말을 그만두고 얼른 다시 전화기앞으로 다가섰다.

<<아 나 주철산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뭐라구요? 파업깨기군? 한 100명 된다구요? 아 아 몇시 차? 열시라구요?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수화기를 넘겨주고 제자리에 돌아온 주철산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그는 먼저 한정희를 보고

<<열한시까지 적어도 이삼백명의 파업깨기군들이 원산역에 도착할것은 인제 의심할나위가 없습니다.>>

말하고 곧 다시 문호림을 향하여

<<그러니 호림동지, 즉시 각 부서에 통지해 피케를 강화하도록하구 그리구 가능한 최대한으루 응원대를 조직해서 부두파업현장으루 급파를 해주도록...>>

주철산은 말을 이르는중에 또 신고산서 일단의 파업깨기군들이 원산으로 향한다는 급한 련락이 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원산 기업주들이 파견한 앞잡이들과 <<함남로동회>>의 간부들이 야합하여 신로동자를 모집할 책동을 하고있다는 <<우나전>>즉 지급전보가 함흥에서 날아왔다. 비발치는 경보를 받고 문호림이 력량포치를 하려고 황급히 뛰여나간 뒤에 추절산이 선채로 호주머니에서 권연갑을 꺼내여 한정희에게 권하는것을 한정희가 손을 들어 밀막으며

<<피우지 않습니다.>> 하고 방색하니 주철산은 더 권하지 않고 곧 권연 한가치를 꺼내물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모금 깊이 빨았다가 길게 연기를 내뿜고나서 침착한 어조로 차근차근 한정희에게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우리 이 총파업을 진압하려구 서울 총독부에서 최고관리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구 함흥 도청에서두 고급관리들이 내려왔습니다. <<함남로동회>> 아시지요? 그 추악한 일제의 어용단체 말입니다. 그자들두 지금 극히 음험하 수단으루 파괴활동에 광분하고있습니다. 우리 이 사무소두 아직까지는 구실이 없어서 저들이 수색도 못하구 차단두 봉쇄두 다 못했지만... 앞으루 사태가 가일층 긴박해지면... 겨우겨우 유지해온 법률의 가면을 벗어동댕이치구 야만적인 실력행사루 넘어갈겁니다. 그래서 우린 여차하면 지하루 들어가려구 미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토끼두 세 굴을 판다잖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두 승리는 쟁취해야지요. 우리 전체 로동자들의 사활적문제가 아닙니까. 지도부가 파괴를 당하면 일은 량패거든요. 그런데 지금 가장 우려되는것은... 우리 지도부내에 불순한 개량주의분자들이 섞여있어서... 타협의 길루 나갈 획책들을 하고있는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거 큰일 아닙니까?>>

<<큰일입니다. 사태가 점점 더 로골화돼가구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로동자들은 그들의 정체를 종당에는 간파하구야말겁니다.>>

두 사람이 책상옆에 마주서서 수작하는중에 출입문이 펄떡 열리며 로종의 간부로 보이는 장년남자 하나와 건장한 청년 둘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중의 령위인듯싶은 장년남자가 주철산을 보고

<<우린 지금 부두현장으루 나갑니다. 더 무슨 지시할 말씀이 없습니까?>> 하고 말한즉 주철산은 그 사람의 손을 굳게 잡으며

<<건투를 빕니다.>>

말하고 곧 다른 두 청년과도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비장한 결심을 한것 같은 사람들의 이러한 장행장면을 바로 곁에서 목격하는 한정희는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나는것을 느꼈다. ㄱ래서 주철산을 보고

<<저두 이분들과 함께 나가보는게 어떨가요?>> 하고 말하니 주철산은 선뜻

<<좋겠지요.>>

대답하고 그 두툼한 두손으로 한정희의 두손을 꽉 잡았다.

한정희가 세 사람과 동행하여 현관문을 막 나서는데 무장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지에 청어를 그들먹이 담아서 머리에 인 중년의 아주머니 하나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를 자배기에 담아서 인 젊은 아주머니 하나가 사무소를 향하고 부지런히 걸어들어왔다. 소박하면서도 뜨거운 계급의 사랑 담긴 캄파임이 틀림없었다.

원산항의 이 별로 보잘것없는 부두가 이처럼 세상의 이목을 끌줄은 일찌기 아무도 몰랐었다. 콩크리트 안벽과 목조잔교들에는 일본의 쯔루가(敦贺) 니이가다 등 항구에서 건너온 크고작은 화물선들이 닻을 내리고있는데 싣고 온 화물들을 부릴수도 없도 또 부두창고에 들어쟁인 화물들을 선적할수도 없었다. 바다와 물을 련결하는 가장 요긴한 매듭이 마비되여 반신불수가 되여버렸기때문이다. 부두로동자들이 소, 말, 개, 돼지 같은 로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단행하였기때문이였다. 이나 원산항의 바람 찬 부두는 힘의 대결을 위하여 적아 쌍방이 전투적력량을 속속 투입하는 대회전장을 방불케 하였다. 금전에 매수된 파업깨기군들과 자발적으로 날뛰는 파업방해분자들과 충군애국에 혈안이 된 무장경찰들이 역시 파업을 단행한 시내외 각 공장 제조소 작업장들에서 급파된 규찰대들과 응원대들과 로조일군들이 들물같이 이리로 밀려들었다. 일장의 충돌은 불가피적이였다.

한정희가 로조일군들과 함께 현장으로 급행하고있을즈음 양씨동이도 긴급동원되여 다른 규찰대, 경찰대, 응원대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겨울방학동안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험공부를착실히 하고있던 서선장이도 부두에서 편쌈이 난다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둥둥이에 좀이 쑤시여 견딜수가 없어서

<<옜다 모르겠다.>>하고 집을 뛰쳐나와 두주먹 불끈 쥐고 부드를 향하여 치달았다. 도중에 맞다든 쌍년이가

<<공부 안하구 어딜 또 가니?>> 하고 소리치는것을 어디서 부는 바람이냐 들은체도 않고 장달음을 하다가 갈림길에서 이도 역시 같은 방향으로 줄달음쳐오던 한은희와 한길에 들어섰다.

<<너 어디 가니?>>

한은희가 씨근벌떡거리며 묻는 말을 서선장이도 씨근벌떡거리며

<<편쌈구경하러 간다.>> 대답하고 잇달아서

<<너는?...>> 하고 되물었다.

<<나두.>>

<<그럼 우리 같이 가자.>>

두 아이가 한창 같이 닫는중에 길가 어느 집의 부엌문이 펄떡 열리면서 그집의 게으르고 덜돼먹은 녀편네가 쌀뜨물을 훌쩍 버렸다. 선장이가 눈결에 보고 잽싸게 몸을 피하기는 하였으나 미처 피하지 못하여 바지에 부연 뜨물을 함빡 받았다. 선장이가 빨끈해

<<재수없이!>>

한마디를 뇌까리고 곧 선자리에서 서너번 공굴러 뛰여 옷에 받은 뜨물을 대강 떨어버린 뒤 또다시 닫기 시작하였다.

<<너 괜찮니? 속까지 들이젖었지?>>

<<선득선득하다. 한참 뛰면 괜찮겠지.>>

<<이제 그게 누군지 너 아니?>>

<<모른다. 누구냐?>>

<<그게 바루 홍돼지네 작은에미다.>>

<<오 그러냐?... 그럼 이담에 홍돼지를 만나면 분풀일 좀 해야겠다.>>

<<그 녀편네가 게을러빠져서 소박을 맞는다더라. 언제나 머리 이가 득실득실하대.>>

<<에이 더러운것! 그런 이꾸러기니까 뜨물도 아무데나 버리지.>>

두 아이가 씨근벌떡거리며 씩둑꺽둑 지껄이며 내처 달았다. 부두에로 부두에로 밀려가는 인파속에 김영하선생이 끼여있는것을 선장이가 먼저 보고 은희를 돌아보며

<<선생님이다.>>하고 속삭이듯 말하니 은희는

<<어디? 오.>> 하고 잇달아서

<<쫓아가자!>>

<<가자!>>

두 아이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라들의 틈을 요리조리 피하며 이 사람 팔꿈치에 부딪기도 하고 또 저 사람 발에 걸리기도 하며 담임선생에게로 쫓아왔다.

<<선생님!>>

<<선생님!>>

두 아이가 동시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김영하선생은 급히 발을 멈추고 계속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고 하면서 아이들을 돌아다보았다.

<<어 너희들... 잘됐다. 가자!>>

김영하선생은 마침 좋은 실물교육의 기회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였다.

한 선생과 두 제자가 사람들 틈에 끼여 현장에 당도를 했을 때, 겨울의 풍물시- 갈매기떼 날아설레는 원산항의 바람 쌀쌀한 부두는 산비가 오려고 루각에 바람이 가득한것과도 같은 긴박한 공기에 휩싸였었다. 파업로동자들은 자본가측의 인원들이 화물선이나 창고들에 접근을 못하도록 사람사슬로 피케라인 즉 감시선을 늘이고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는 붉은기를 지킨다

우렁차게 <<적기가>>를 부르며 기세를 올리고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누비듯이 로조일군들이 분주히 오가고 또 규찰대들이 감시하는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슬슬 돌아다녔다. 자본가의 앞잡이들과 파업방해분자들은 담장같이 둘러선 무장경찰의 힘을 배경으로 담력을 북돋우고 들이덤빌 기회를 노리며 서성거리고있었다. 안벽에 선복을 붙이고 닻을 내렸거나 잔교에 선복을 대고 닻을 내린 일본화물선의 선원들은 모두다 갑판우에 올라와 배전란간에 붙어서서 서로 무어라고 수군거리며 관전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테두리밖에서 어느 한편을 동정하거나 어느 한편이 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멀직이 둘러서서 서로 떼밀고 떼밀리며 또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찰의 호통을 들어가며 구경들 하고있었다.

김영하선생은 싸대치는 사람들 틈에서 두 아이를 놓치지않으려고 오른손에 선장이를, 왼손에 은희를 꼭 붙들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치한 쌍방의 인수는 자꾸 불어났다. 멀직이 둘러선 구경군들의 수효도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한낮이 가까와 전주의 그림자들이 한껏 짧아졌을 때 불시에 일단의 괴물들이 겹겹이 둘러선 사람들을 기세 사납게 좌우로 마구 헤가르며 눈사태같이 투쟁마당으로 쏟아져들어왔다. 기업주들이 그 앞잡이들을 시켜 금전을 미끼로 외지에 나가 그러모은 망나니들-파업깨기군들이였다. 그 망나니들은 계획적으로 모두 재빛의 목출모를 썼는데 개개 다 전을 턱밑까지 내려당겨 썼었다. 목출모란 방한모의 일종으러서 털실이나 목실로 짠것인데 전을 접으면 그냥 모자가 되고 또 전을 내려당기면 두눈만 빠끔히 내놓고 얼굴 전체가 푹 덮싸이는 용수갓 모양의 모자였다. 눈만 내놓는다고 해서 목출모라고 부르는데 이날 파업깨기군 망나니들이 일제히 그런 모자를 쓰고 덤비는데는 몇가지 리유가 있었을것이다. 그 첫째는 란투중에 저의 편을 알아보기 위한것이고 둘째는 저들의 더러운 몰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것이고 또 셋째는 상대편을 공동하자는걸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그자들의 그러한 장속은 미국의 흑인 배철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KKK>>의 무시무시한 흰 가운, 흰 복면(覆面)을 방불케 하였다.

이 조선식<<kkk>>가 입장을 하자 기업주의 앞잡이들과 파업방해분자들은 갑자기 사기가 올라 괴상한 소리들을 지르며 기뻐날뛰였다. 이에 맞서는 파업로동자들은 재빨리 모여들어 팔과 팔을 꽉 끼여 스크람을 짜고 횡대로 늘어서서 자신들의 몸으로 장벽을 이루었다. 이 일촉즉발의 광경을 지켜보고 선장이가 너무도 긴장하여 저도 모르게 김영하선생에게 잡힌 손에 힘을 주니 김영하선생도 긴장해 선장이의 손을 마주 꽉 쥐였다. 파업깨기군대오의 앞선자가 먼저

<<자!>>하고 소리를 지르니 뒤에 선자들이 일시에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파업로동자들의 장벽-방어선으로 달려들었다.

공방전의 막이 열렸다. 주먹질, 발길질이 비발치듯하였다. 그러나 파업로동자들의 장벽은 끄떡없이 일차 공격을 견뎌내였다.

돌파에 실패를 한 파업깨기군 망나니들이 일단 뒤로 물러나 대가리들을 한데 모으고 작전계획을 고쳐 짤즈음 홀제 배우에서 날카로운 호르래기소리가 나며 여태껏 치안유지를 포방하고 정관 즉 고요히 관찰하는 태도를 취해오던 경찰대가 행동을 개시하였다. 진압이 시작된것이다. 한번 충돌에서 대립한 쌍방의 여러 사람이 깨지고 터지고 피가 흘러 이미 상회죄, 소요죄를 구성하였다는 구실이 생겼기때문이다. 인제는 강력을 발동하여 시위자들과 이른바 강점자들을 해산시킬수도 있고 또 상해죄, 공부집행방해죄로 구금을 할수도 있는것이다. 담벽처럼 정렬하고 대기하던 무장경찰대가 호령일하에 와르르 풀리자 파업깨기군들은 주인의 추김을 받은 개처럼 넋들이 올라 재차 돌격에 앞장섰다. 이번 돌격은 사실상 무장경찰대와의 협동작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파업로동자들이 과연 어떻게 당해낼것인가. 바로 이대다. 안벽에 선복을 붙이고 정박한 <<쯔루가마루(敦贺丸)>>라는 화물선의 갑판우에서 관전을 하고있던 일본선원들이 별안간 고함을 지르며 발들을 굴렀다. 그들이 웨치는 소리를 들을라 치면

<<스또 반자이!>>

<<교오다이다찌 감바레!>>

이것을 우리 말로 옮겨놓으면

<<파업 만세!>>

<<형제들 버텨라!>>

이것을 신호로나 한듯이 안벽에 정박한 다른 기선-<<니아가다마루>>와 <<노도2호>>에서도, 또 잔교에 정박한 <<사도마루>>, <<마이즈루6호>> 및 <<미야즈마루>>에서도 일본선원들의 응원시위가 벌어졌다. 그리고 잇달아서 <<쯔루가마루>>를 필두로 각 기선들이 일제히 우렁찬 기적들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때아닌 뭇기적의 긴 울음은 그러지 않아도 물정이 소연한 원항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파업깨기군들과 무장경찰들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서 일순 모두 멍청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유분수지, 내지인(일본인)이 불령선인의 편을 들다니! 이와는 반대로 파업자들은 그 뜻하지 않은 힘진 성원에 크게 고무가 되였다. 전세계의 프로레타리아는 다 한편이라는것을 실물교육을 통하여 다시한번 깨닫게 되였다. 파업자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여태까지의 수동적인 방어에서 일변하여 능동적인 방어에로 넘어갔다. 방어를 위한 공격에로 넘어간것이다.

선장이는 기선우에서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굴러대는 일본선원들을 바라보며, 귀청이 떨어질듯, 부두가 떠나갈듯 울리는 배고동 소리를 들으며 한동아 넋을 놓았다. 도대체 이것은 어찌된 일일가.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야 알수가 없는 일이였다. 일본사라이 조선사람의 편을 들다니! 선장이는 입에다 물어깰수 없는 무슨 땅땅한 덩어리를 문것만 같았다. 열서너살 먹은 아이의 이발로는 물어깬다는것이 무리였다.

그동안에 부두에서는 란투가 벌여졌다. 판가리싸움이 벌어졌다. 치고 차는 소리에 호령과 고함 소리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였다. 씨동이가 자전거사슬을 냅다 휘두르며 이놈 치고 저놈 치고 번개같이 날뛰는것을 선장이는 보았다. 한정희가 처음에는 적들의 주먹질, 발길질을 이리 막고 저리 막고 막기만 하다가 나중에 목출모를 푹 뒤집어쓴 뚱뚱한 놈에게 옆구리를 몹시 걷어채이고 분이 나 홱 돌아서는결에 그놈을 어퍼컷으로 제기는것을 선장이는 보았다. 싸움이 백열화되였을 때 참다 못한 김영하선생이 땀이 나도록 꼭잡았던 두 아이의 손을 뿌리치듯이 놓고 모자를 푹 눌러쓰며 총알같이 싸움의 소용돌이속으로 뛰여들어가는것을 선장이는 보았다.

이날, 성원의 배고동소리가 성벽같이 늘어선 부두창고의 양철문짝들을 찌렁찌렁 울리는중에 원산의 부두로동자들은 원쑤들과의 싸움에서 영웅성을 발휘하였다.

추천 (3) 선물 (0명)
IP: ♡.136.♡.131
로즈박 (♡.39.♡.172) - 2023/10/22 19:26:39

헉..파업은 저때도 잇엇군요..
그게 지금까지도 계속 대대로 내려온거네요..
암튼 대단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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