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9

더좋은래일 | 2023.10.23 10:26:42 댓글: 1 조회: 265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199


19

이날 점심때 밥상머리에서 숙자아주머니가 선장이에게 생활규범을 알려주었다.

<<래일부터 아침은 네 방에서 너 혼자 먹어야 한다. 아저씨는 기침시간이 일정하지 않아놔서 네 등교시간을 맞출수가 없어. 개학을 하게 되면 벤또를 사가지구 다닐테니까 점심은 물론 학교에서 먹을거구. 그리구 저녁은 대개 아마 이 방에서 나하구 같이 먹게 될게다. 아저씨는 사업상의 교제라든가 친구분들과의 추축이 많아놔서 저녁은 흔히 외식을 하시게 된다. 내 말을 알아들었지?>>

선장이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하였다. 연변호사가 옆에서

<<보성고보를 지망했다지?>> 하고 물어서 선장이가

<<녜.>>

대답하니 연변호사는

<<보성고보는 혜화동 막바지니까 전차통학을 해야겠구나.>>

말하고 곧 안해를 돌아보며

<<아마 당신이 며칠 데리구 다녀서 길을 익혀야 할걸.>>하고 말하였다. 숙자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어려울거 없지요. 겸사겸사 대학병원에 들려 진찰두 받아보구... >>하고 말하는데 선장이가 가만히 듣고있다가 지신 없는 어줍은 말로

<<그렇지만...>>하고 말을 꺼내다마니 숙자아주머니는

<<그렇지만 뭐?...>>하고 상가럽게 물으며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입학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내외가 동시에

<<입학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입학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앵무새같이 선장이의 말을 받아뇌더니 서로 돌아보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한바타 웃고나서 연변호사가 웃음기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왜들 웃는지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해 쳐다보는 선장이를 보고

<<그래 여적 네 실력으루 파스할 생각을 했었니?>>하고 물었다. 선장이가 그 묻는 말의 뜻을 잘 몰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니 옆에서 숙자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위로조로

<<념려 말아. 네 실력을 믿구... 합격도기만 바라구있겠니. 6대1이야. 쉽잖아. 너의 아저씨가 그래 어떤분이라구 외진 목에다 덫을 넣구 치이기만 기다리시겠니. 벌써 뒤구멍으루 다 주선해놓으셨지.>>하고 선장이의 어깨를 툭 쳤다.

선장이가 합격은 인제 떼놓은 당상임을 짐작하였다. 마음이 든든하였다. 연변호사의 하늘의 별도 딸것 같은 수완이 놀라왔다. 연변호사가 륙군대장같이우러러보였다.

연변호사가 사무실로 나간 뒤에도 숙자아주머니는 선장이를 데리고 앉아 여러거지로 주의를 주었다.

<<여기는 원산이 아니구 서울이야. 그러구 이 집은 너의 집과 달라서 지체가 있으니까 아무렇게나 처신을 해선 안된다. 입향순속이란 말이 있잖니. 다른 고장에를 가게 되면 그 고장의 풍솔을 따라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어멈을 부를 때는 꼭 어멈이라구 불러야지 달리 불러선 안된다. 알았니? 모르구라두 아주머니라구 부르거나 했따간... 큰 망신이다. 그러구 넌 도련님이구. 당당하구 떳떳한 도련님이야. 알았지? 인제 넌 내 아들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지체가 떨어지잖게 처신에 조심을 해야 해. 내나 아저씨의 낯이 깎일 이를 해선 안된단 말이다. 네 학비나 용돈 같은건 다 내가 맡아 챙겨줄거니까... 아저씨보군 아무 말 말아. 아저씨는 그런거까지 알음할 겨를이 없으시다.>>

숙자아주머니의 긴사설을 듣고있느라니까 선장이는 불현듯 아동독물에서 읽은 손오공의 형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십만팔천리를 눈 깜박할 사이에 날아가는 손오공도 조금만 비꾸러져나가면 머리의 금테가 당승이 주문을 외는대로 죄여들어 버릇을 톡톡히 가르치군 하였었다. 숙자아주머니가 경대서랍에서 푸르무레한 색갈의 5원짜리 지전 한장을 꺼내다 선장이를 주며

<<이거 받아둬라. 전차정기권은 한달에 1원 50전이니까 우선 먼저 사야 하구... 그 나머지는 네 한달 용돈이다. 쓰다가 모자라면... 정당한 리유만 있으면 더 보태주마. 친구들하구 휩쓸려다니다가 돈 쓸 일이 생기면 남먼저 앞서서 손을 크게 써. 사내가 돈을 쓸 때 다랍게 굴면 치뜰어서 못쓴다.>>하고 말을 일렀다. 선장이가 난생처음 엄청난 돈-5원짜리 지페와 대면을 하게 되는 바람에 주니가 나서 선뜻 받지 못하니 숙자아주머니는 손아귀에 밀어넣어주다싶이 하면서

<<너 지갑 없지? 그럼 우선 지갑부터 하나 사야겠구나. 좀 이따 나하구 같이 나가자.>>하고 말하였다.

선장이가 자기 방에 들어와 반시간이 채 못되여 화려한 나들이벌차림을 한 숙자아주머니가 친히 와 선장이는 처음 가져보는 책상과 책꽂이를 정돈하다말고 부랴부랴 벗어놓았던 학생모를 집으쓰며 일어나왔다. 연갑수법률사무소에서 남쪽으로 한 3분 걸으면 오른편에 전동시장이 나서고 그 비슥맞은편에 중앙일보사의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 바라보였다. 거기서 한 5분 더 걸으니 그 이름이 높이 난 종로네거리가 나서는데 선장이는 전차, 자동차, 인력거, 자전거에 사람까지 뒤섞여 붐비는통에 촌닭 관청에 잡아다놓은것 같이 어리둥절하였다. 숙자아주머니가 손목을 잡아이끄는대로 끌려서 화신백화점에를 들어갔다. 승강기라는것을 처음타보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마 비행기도 타는 맛은 이와 비슷하겠지?)

숙자아주머니는 선장이에게 지갑을 사주고 만년필을 사주고 세면도구와 손톱가위를 사주고 또 세타까지 사주었다. 그녀는 아이낳이를 못해본 녀인의 뿜어낼 길 없던 모성애를 이제 와서 뒤늦게 선장이에게 마구 내리쏟고있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속내를 모르는 선장이는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가 않았다. 마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걷잡을수없이 콸콸 쏟아지는것을 그저 보고만 있는것 같아서였다.

숙자아주머니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진고개 즉 혼마찌(本町)를 구경시켜주겠다고 선장이를 데리고 전차에 오르는데 이것 또한 선장이에게는 생후 처은 리용하는 교통시설이였다. 자동차는 벌써 두번을 타보았다. 한번은 아침에 서울역에서 들어올 때였고 또 한번은 여러해전 소학교 2학년 때-원산에서였다.

그해 단오날, 어머니와 정실이 그리고 쌍년이와 선장이... 이렇게 넷이서 씨름구경, 그네뛰기구경을 가는데 당시 파천황 처음으로 개업을 한 자동차부앞을 지나게 되였었다. 철 없는 선장이가 생뚱같이 엄마에게 자동차를 타도 가자고 생떼거리를 쓰니 엄마는 이따 돌아올 때 타자고 선장이를 딜래여 그냥 데리고 갔다. 구경을 다하고 돌아올 때쯤은 의례 다 잊어버리려니 생각을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선장이가 일편단심 오로지 자동차 탈것만을 명심불망할줄을. 구경이 파하기 조금전에 돌아들 오는길에 자동차부앞을 또 지나게 되였을 때 선장이가 엄마에게

<<자 이젠 탄다던 자동차 탑시다.>> 하고 약속의 시행을 요구하였다.

<<집이 엎어지면 코닿을덴데 자동차를 어떻게 타? 미치잖았니!>>

<<아까 돌아올 때 탄다고 해놓구선?>>

<<그건 그저 해본 소리지. 그러구 자동차는 아무나 타는게 아니다. 어서 걸어라, 저녁 늦겠다.>>

<<타구 갑시다.>>

<<수작 말구 어서 걸어!>>

<<타자는데.>>

<<이담에 타자, 오늘은 그냥 가구.>>

<<안 탈래?>>

<<이담에 탄다잖아?>>

선장이는 대번에 자동차부앞 땅바닥에 나뒤쳐져 대굴대굴 굴면서 울부짖고 악을 쓰고 하였다. 자동차부의 주인과 운전사들이 무슨 일이 났나 해 모두 뛰여나왔다. 비단조끼에 금시계줄을 늘인 사십객의 주인이 선장이 어머니를 보고

<<저 애가 왜 저러지요?>> 하고 묻는데 선장이 어머니는 술 한사발 먹은이나 진배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겨우 알아들을만큼 가는 목소리로

<<아까 자동차를 타구 가자기에 올 때 타자구 얼렸더니... 그걸 잊지 않구있다가 지금 저리지 뭡니까.>>하고 대답하였다. 주인이 선장 어머니 뒤에 서있는 처녀와 땅바닥에서 악을 쓰며 딩구는 선장이를 번갈아보고나서 다시 선장이 어머니에게

<<댁이 어디쯤입니까?>> 하고 물었다. 선장이 어머니가 집주소를 댄즉 주인은 두말 않고

<<여게 신서방.>> 하고 운전사 하나를 부르더니

<<자네 이 아주머니네 식구들을 댁까지 모셔다드리구 오게. 무료서비슬세.>> 하고 말을 일렀다. 선장이 어머니가 질겁하여

<<아니예요. 아니예요, 고만두세요.>> 하고 두손을 내흔드니 주인은 웃으면서

<<너무 사양하실것 없습니다. 아이들이 왜 자동차를 타보고싶잖겠습니까.>>

말하고 곧 선장이를 내려다보며

<<어서 일어나라. 선등으로 올라타야지.>>

말하고 한옆으로 비켜서서 차 나올 길을 터놓았다.

선장이가 눈물투성이, 코물투성이로 딩굴다가 자동차 타라는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고 후닥닥 뛰여일어나니 둘러섰던 사람들이 모두 웃는중에 선장이 어머니도 고개를 딴데로 돌리고 웃었다.

이리하여 선장이 어머니와 정실이, 쌍년이는 선장이 떼질덕에 난생처음 자동차라는것을 타보았다. 선장이 어머니는 이 장관의 무임승차사거을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고 삼았다.

서술은 다시 종로네거리에서 숙자아주머니와 선장이를 태운 전차가 진고개 입구인 조선은행앞을 향하여 달리는데로 되돌아온다. 전차의 차장이 매 정류소의 이름을 먼저 일본말로 웨치고 다시 조선말로 웨치는것이 처음 듣는 선장이에게는 신기하고 또 불쾌하였다. 그리고 차장은 분명히

<<황금정(町) 1정목(丁目)... 황금정 1정목입니다. 내리실분은 앞으루... 내리십시오.>> 하고 웨치는데 숙자아주머니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게 구리개다. 봐라 저 약방들.>> 하는것도 이상하였다.

선장이가 워낭소리 듣고 따라다니는 눈먼 망아지처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숙자아주머니가 이끄는대로 전차를 내려 얼마를 걸어가니 복도처럼 길고 좁은 길 하나가 나서는데 길 량쪽에는 상점들이 빼곡이 들어앉았었다. 눈이 부실 지경으로 화려한 진렬창들에는 선장이가 일찌기 보도 듣도 못한 가지가지의 진기한 상품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선을 보이고있었다.

(이 세상에는 이런데도 있었구나!)

선장이는 참으로 놀라왔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촌스러운 몰골이 두드러져보이는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지금은이렇게 번화해두 한국시절엔 질퍽질퍽한 고개였어. 그래서 진고개. 일본사람들이와서 거류지를 달라니... 한국정부에서 미워서... 이 제일 못쓸 땅을 그어주었었대.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불과 20년 동안에... 이렇게 몰라보게... 으뜸가는 번화가를 만들어놓았찌 뭐냐.>>

숙자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선장이는 차량통행금지로 되여있는, 사람들로 붐비는 좁은 거리를 남의 정신으로 걸었다. 경탄의 눈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아치고 부대끼며... 끝이 없이 걸었다.

이날은 선장이 열네살 평생에 가장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한, 숱한 <<난생처음>>으로 장식된 신기원적인 날이였다. 주마등같이 잇달아 바뀌는 광경에 정신이 황홀하였던 선장이가 석후에 비로소 해방을 받았다. 제 방에 물러나와 일단 진저한 뒤 처음 산 만년필-그렇게도 가져보고싶던 만년필-을 잘 써지나 안 서지나 시험해보는중에 복도에 분주히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장지가 열리며 그리로 어멈의 얼굴이 나타났다.

<<목욕물이 더웠에요 도련님, 어서 나오세요.>>

알고보니 다 끝이 난줄로 알았던 이날의 일과가 아직도 다 끝이 아니 났었다. <<난생처음>>의 주마등은 계속 돌고있은것이다. 선장이가 만년필을 얼른 내려놓고 부지런히 일어나 벽에 걸린, 새로산 목간주머니를 떼여내리니 어멈이 웃으면서 손을 내흔들었다.

<<아니 아니 그냥 나오세요.>>

벽과 바닥에 다 하얀 타일을 붙인 목욕간에 들어온 선장이는 우아래 안팎 옷을 하나하나 벗어서 사기옷걸이에 건 다음에 미끄러운 타일바닥을 얼음판을 건느듯 조심조심 골라 디디며 목욕통까지 왔다. 목욕통은 하얀 사기로 만든 배같이 길고 둥그렇게 생겼었다. 그리고 그 머리맡 금속선반에는 목욕수건과 비누와 거품들이 놓였었다.

선장이가 더운물속에 몸을 잠그고 비슥이 누워서 기분 좋게 피로를 푸는중에 불투명유리를 낀 목욕간의 걸지 않은 문이 밖으로 열리며 어멈이 들어왔다. 선장이가 크게 놀라 얼른 두손으로 앞을 가리며 물속에서 몸을 일으켜 꼿꼿이 앉는데 어멈은 례사롭게 물속에다 손을 잠가보고

<<너무 뜨겁지나 않으세요?>>

묻고 곧 다시

<<등을 좀 밀어드릴까요?>> 하고 선장이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상글상글하였다. 선장이가 더욱더 난당하여 두손으로 앞을 부둥키고 쩔쩔매며

<<아니 아니.>>하고 고개를 가로 흔드니 어멈은 깔깔 웃고

<<뭐가 부끄러워 그리셔? 아직두 애긴데.>>

말하고 다시

<<그럼 어서 천천히 혼자 씻으세요.>>하고 생글거리며 목욕수건을 내러서 선장이 어깨에 걸쳐준 뒤 문을 꼭 닫고 나가버렸다.

이때 박숙자와 그 남편 연갑수는 큰방에서 부부간에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허구한 날 단 두식구... 집안이 늘 썰렁하더니... 이젠 좀 화기가 돌게 됐어요.>>

<<아, 잘됐어. 아이가 아주 귀인성스럽더군그래.>>

<<그러니 당신두 이젠 좀 집안에다 마음을 붙이세요. 나이두 생각을 하셔야지요.>>

<<갑자기 나이는.>>

<<마흔이예요. 마흔... 청년이 아니란 말이예요. 혈기방장한 젊은이가 아니란 말예요...>>

<<맘 붙일 아이두 생겼구 하니 제발 이젠 바가지 좀 덜 긁어.>>

<<어느 녀편네가 바가지를 긁구싶어 긁나요? 긁게 만들어주니까 긁지!>>

<<고만하구 어서어서 자리나 보라구. 래일아침 좀 일찌기 일어나... 재판소에 출정을 해야겠어.>>

<<안해에게 미안하단걸 알아야지요.>>

<<허 그거 참.>>

이들 부부가 선장이를 데려온데는 각기 제나름으로서의 속구구가 있었다. 안해는 선장이를 빌어서 항시 들떠있는 남편의 마음을 집안에다 좀 붙잡아 매보자는 속셈이였다. 그리고 남편은 또 남편대로 안해가 아이에게 정을 붙이면 저를 좀 잊어주거나 제가 하는일에 눈총을 좀 덜 쏘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변호사는 닭의 새끼가 아니므로 발목쟁이를 붙잡아매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출장을 다니는데 사흘이면 족할것을 닷새가 걸린다고 집에다는 불려서 말해놓고 그 불린 이틀동안은 카페마담네 집에 가 파묻혀 갖은 재미를 다 보고 오는것을 집안의 녀편네로서는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남편과 관계있는 계집이 한둘이 아닌것도 짐작을 못하는바는 아니지만 사인정탐에게 위탁이나 하면 모를가 그러기전에는 아무리 눈을 밝혀도 집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박숙자는 쌍가풀진 두눈이 어글어글한 함박꽃같이 풍만한 녀자였다. 연갑수는 신수가 환하고 키가 훤칠한 신사의 풍도가 있는 남자였다. 둘은 훌륭한 배필이였다. 그렇건만 갓 지은 햇쌀밥 같이 정가로와야 할 그들의 부부생활에는 항시 재티가 날아들고 또 검댕이가 묻고 하였다. 그 좋은 소고기, 닭고기도 늘 먹으면 물려서 다른 무슨 고양이고기, 뱀고기 따위 괴이한 고기가 먹고싶어나는 모양이지? 연갑수가 군것질에 재미를 붙이는것도 아마 그와 비슷한 리치인상싶었다. 이들 부부의 결혼 당초의한두해를 제외한 나머지 10여년의 생활사를 뒤져보면 깨깨로 빠져서 방탕한 생활을 하려는 남편과 갖은 방법을 다하여 그런짓을 못하게 하려고 골몰이하는 안해사이의 공방전으로 일관하였다.

몇해전의 일이다. 웬 일인지 남편이 출장 다니는 도수가 갑자기 줄어들고 또 그 날자도 퍽 잛아졌다. 형상화를 해 말하면 외박하는날자를 그린 그라프의 선이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것이다. 박순자는 살풀이를 한 보람으로 남편이 회시을 한줄 알고 너무도 기뻐서 전휘해 그 무당을 찾아가 고맙다고 지재지삼 치사하였다. 그리고 남이 주는건 받지 않는 일이 없고 남이 달라는건 주어본적이 없는 그 늙은 무당에게 손자 과자 사주라고 돈 2원까지 집어주고 왔다. 박순자는 남편의 마음을 저의 몸에다 단단히 붙잡아매려고 짙은 화장을 하고 화사하게 옷치장을 하고 그리고 안잠자기를 동독하여 집안을 하렘-토이기왕의 후궁들이 거처하는 방처럼 꾸며놓았다. 모든것이 신혼 당초처럼 되여가는것 같았다. 둘의 사이가 다시 찰떡과 같고 꿀과 같아지는듯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의 일이다. 박숙자가 저녁에 남편이 싱글싱글 웃으며 권하는 포도주를 서너잔 받아마시고 곤히 자다가 가위에 눌렸다. 무진 애를 쓴 끝에 겨우 눈을 떠보니 옆에 누워있어야 할 남편이 없었다. 박숙자는 공연히 가슴이 설레였다. 잔뜩 실렸던 잠이 다 달아나버리고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머리속에서 의심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참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장자를 밀어열고 복도에 나섰다. 맨발로 조심조심 색시걸음을 걸어 젊은 안잠자기가 자는 방앞에까지 왔다(그 안잠자기는 자신이 친히 보고 특히 인물이 고운것을 취택하였었다). 장지딱에 귀를 갖다대고 방안의 동정을 엿들었다. 불이 안 켠 방안에서 분명 도란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금만 더 참구 기다려, 앞으루 딴살림을 차려줄테니.>>

<<아이 이젠 고만 가세요, 아씨 깨시면 큰일나요.>>

<<내가 술을 먹였어, 깨긴 어딜 깨.>>

<<그래두요.>>

<<아들만 하나 낳아, 정실루 들여앉힐테니. 그러면 어엿한 변호사 부인이야.>>

박숙자는 정신이 아찔하여 비쓸비쓸하다가 몸이 실그러져 어두운 복도바닥에 한팔을 짚으며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뼈아픈 교훈을 살리여 박숙자가 골라들이는 안잠자기들의 첫째 조건은 박색 즉 못생긴 얼굴이였다. 그래서 지난해 봄, 지금의 안잠자기-편아지를 골라들였을 때 연갑수는

<<왜 당신이 골라들이는건 모두 저런 찌그렁바가지뿐이야? 참 신통두 하지!>> 하고 비웃었었다. 박숙자가 입을 비쭉하며

<<누굴 좋으라구요.>>하고 말대꾸하니 연갑수는

<<손님들이 올 때는 상심부름시키기 창피해 죽겠어.>>하고 혀를 쩟쩟 찼다.

<<어멈은 카페의 녀급이 아니라나요.>>

<<저 심통 좀 보지.>>

<<그럼 권번에다 전화를 걸어 일등미인 기생아가씨를 청해오리까?>>

<<제 얼굴이 돋보이라구 일부러 그런걸 골라들이는걸 누가 모를줄 알구.>>

<<좋도록 해석하시구려.>>

<<부덕이랑 첫째 어질구 유순한거야. 그런 부덕은 꼬물도 찾아볼수가 없으니... 대체 무슨 놈의 녀편네가 그 모양새야.>>

<<누가 그렇게 마들랍디까!>>

살풀이이 보람이 아니였음이 밝혀진 뒤부터 연갑수의 출장다니는 도수가 도루 잦아져 외박하는 날자를 그린 그라프의 선도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선장이가 목욕을 다하고 제 방에를 들어와본즉 어느새 누가 새 이부자리를 펴놓았었다. 어멈이 한 일이리라 짐작하고 그우에가 퍼더앉아 멀거니 천정을 쳐다보는데 살뜰한 친절을 못다 표시한 어멈이 차반에 발가우리한 차 한잔을 담아들고 들어왔다.

<<컬컬하시지?>> 하고 웃으며 어멈은 차반을 선장이 턱밑에 들이밀었다. 선장이는 사양하기가 성가시여 잠자코 그대로 맏아마셨다. 쌍년이네 집에서 마셔본 파르무레한 차는 맛이 씁쓸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달콤하였다. 선장이가 이날 일과의 피날레로 홍차를 마시것이였다.

이틀날아침 선장이가 숙자아주머니를 따라 전차를 종로에서 한번, 종로 4정목이라는 배오개에서 또 한번 갈아타고 종점인 창경원앞에서 내렸다. 큰길을 따라 노량으로 넉러 혜화동 막바지 잔산밑에 자리잡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수험표를 타러 왔다. 수험표를 탄 뒤에 숙자아주머니는 교무실에 아는 선생을 보러 들어가고 선장이는 밖에서 서성거렸다. 마침 약방집아들 뺑덕할미-곽복덕이도 수험표를 타러 와서 두 동창생은 다른 환경에서 또다시 만나게 되였다. 둘이 다 이 학교를 지망한것은 년전에 모자 찢어쓰는 류행을 원산에 갖다 퍼뜨린바 있는 이 학교의 졸업생인 곽볻덕의 외삼촌의 권유를 해서였다.

<<너 탔니?>>

<<탔다. 너는?>>

<<나두.>>

<<번호는?>>

<<재수있게 꼭 600번이다. 너는?>>

<<난 606번이다. 내것두 외우긴 쉽다.>> 하고 선장이의 대답을 듣자 곽복덕이는

<<606?>> 하고 히히 웃었다.

<<왜 웃니?>>

<<606이 뭔지 모르니?>>

<<모른다, 뭐야?>>

<<임마, 매독의 특효약이 606인것두 몰라? 촌놈!>>

<<코가 썩어 떨어지는 병이야 병... 606을 맞아야 낫는 병.>>

<<맞아? 그럼 주사약이냐?>>

<<노란 가루가 들어있는 암풀... 원 이름은 살바르산이다.>>

<<그런데 왜 606이라니?>>

<<그 약을 제조하는데... 실험을 모두 륙백여섯번을 했대. 그래서 606이라구 불러.>>

<<헤 그런 약이냐. 넌 그래 그 약을 맞아봤니?>>

<<미친 자식! 그런걸 내가 왜 맞아?>>

<<그럼 너의 아버진 맞아봤겠구나.>>

<<왜 뒈지구싶어 몸살이 나니?>>

<<너 이제 600번이 재수가 있댔지?>>

<<그랬다 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그저 그렇단 말이지.>>

<<싱거운 자식!>>

<<너 입학시험 자신있니?>>

<<그럼 없어?>>

<<난 자신 없다.>>

<<임마 넌 빽이 든든한데 무슨 걱정이냐.>>

<<저기 우리 아주머니 나오신다. 래일 또 만나자.>>

돌아오는 길에 숙자아주머니가 창경원구경을 시켜주어 선장이는 그림에서나 본적 있는 사자와 코끼리와 기린을 실물로 보았다. 그리고 산 호랑이, 산 표범, 산 곰, 산 메돼지도 다 이날 처음보았다(죽은것은 원산서도 사냥군들이 잡아온것을 보았었다)>. 선장이가 숙자아주머니를 보고

<<고기를 먹구 사는 육식수들이 초식수들보다 몸집이 도리여 작은건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으니 숙자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하고 한잠 생각해보다가

<<모르겠다 왜 그런지.>>하고 웃었다.

<<풀에 영양가치가 더 많은가?>>

<<글쎄... 설마한들.>>

<<사람두 풀만 먹구 살수 없을가?>>

<<네발짐승하구 사람이 어떻게 같니.>>

이런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 두 사람은 서로의 사이가 한결 더 가까와지는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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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23 22:37:51

하하..선장이 서울 올라와서 촌닭마냥 모든것에 신기해하는 장면에 너무 공감가네요..
저두 시골출신이기때문에요..ㅋㅋ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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