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0

더좋은래일 | 2023.10.23 14:33:23 댓글: 2 조회: 249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262


20

선장이가 자신 없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마음이 조마조마한중에도 날자는 사정없이 지나갔다. 마침내 기다리고 바라던 방이 나붙은것을 보니 600 바로 다음에 다섯을 껑충 뛰여넘어 606이 나란히 나붙었지 않았는가! 선장이가 뺑덕할미는 제 실력으로 붙었지만 저는 뒤문치기로 붙었다는것을 대번에 짐작하였다. 속으로 부끄러워 귀밑이 화끈하였다. 그리고 저보다 시험을 잘 친 수험생들이 떨어져서 락심할것을 생각하니 죄를 지은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숙자아주머니는 비록 광명정대하지 못한 방법이기는 하였으나 선장이가 합격을 한것이 마음에 합당하고 또 대견하여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그 여택이 뺑덕할미에게까지 미치여

<<오 네가 약방집 곽선생네 둘째냐? 몰라보게 컸구나. 자 저리들 가자.>>하고 둘을 다 데리고 교정 안팎에 림시로 목을 보고 늘어선 로점에 가 빵 한봉지, 사이다 한병씩을 사먹였다. 빵은 한봉지에 두개씩 배를 맞붙이고 들었는데 하나는 짬빵이고 또 하나는 단팥소가 든 안빵이였다.

이날 숙자아주머니는 잠시나마 남편의 난봉부리는것도 잊을만큼 분주하였다. 선장이를 데리고 우선 공평동 보신모자점에 가 흰 줄 두줄이 둘린 보성고보의 교모를 사 씌우고 또 보성고보의 지정양복점인<<종로양복점>>에 가 교복을 맞춘 다음 다시 기독교청년회관-YMCA옆에 있는 유명한 구두방 대창양화점에 가 편상화-목달이복스구두를 맞추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화신백화점에 들리여 새 책가방 하나를 사가지고 종로 2정목 영창서관에 가 학교에서 내준 도서목록대로 새 잉크냄새가 싱그러운 신출 교과서한벌을 사넣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행사로 우편국에 들리여 원산 선정이 본가에다 전보 한장을 치는데 그 전문인즉

<<선장입시합격박>>이였다

개학을 이틀 앞둔 3월 30일날 오후에 숙자아주머니가 새 교복을 입고 새 교모를 쓰고 또 새 구두를 신은 선장이를 데리고 종로사진관에 가 입학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데 자신은 의자에 앉고 선장이는 옆에 세우고 찍었다. 그리고 인사동 조선극장에 가 영화구경을 하였다.

영화는 미국 파라마은트사의 출품인데 종교박해로 사형선고를 받은 젊은 선교사가 사자우리에 죽으러 들어가는데 그를 사랑하는 순정의 미녀가 같이 따라들어가는 내용이였다. 둘이 나란히 영화를 보면서도 느껴받는것은 제각각이였다. 박순자는 두 청춘남녀의 고상하고 슬픈 사랑에 감동되여 눈물을 흘리는 반면 선장이는 사자가 사람을 어떻게 잡아먹나 보려다가 우리로 들어가는 장면만 있고 잡아먹히는 장면은 없이 영화가 끝나는 바람에 크게 실망하였다.

4월 1일날 선장이는 처음으로 숙자아주머니 없이 저 혼자 학생승차권으로 전차를 타고 등교하였다. 그런데 공교한것은 원산서 6년 동안 한학급이던 뺑덕할미 곽복덕이와 또 한학급이 된것이였다.

<<너두 B학급이야?>>

<<너두 B학급이야?>>

두 아이는 이구동성으로 서로 묻고 앙천대소하였다. 점심시간에 곽복덕이가 넌지시 선장이를 보고

<<나 좀 보자.>> 하고 외딴데로 끌고 갔다.

<<무슨 일이야?>>

<<한가지 일러둘 말이 있어 그런다.>>

<<무슨 말?>>

<<너 다른 아이들한테 내 별명 퍼뜨리지 말아.>>

<<왜?>>

<<왜는 무슨 왜야? 뺑덕할미가 서울까지 올라오면 난처하니까 그러는거지. 그걸 아는게 여기선 너밖에 없으니까 너만 아가릴 닥쳐주면 되는거거든.>>

<<그럼 입씻이루 한턱 내겠니?>>

<<이 자식이.>>

<<한턱 낸다면 내 죽은 사람같이 영원히 비밀을 지켜주마. 그러잖으면 동네방네 짓떠들어서 전교 뺑덕할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놓을테다. 내겠니 안 내겠니?>>

<<내마 내마, 망할 자식! 그동안 서울 와서 배웠다는게 고작 불한당질이야?>>

<<뺑덕할미소리가 내 입에서 막 쏟아져나오기전에 말 조심해, 괜히.>>

곽복덕이가 방역진을 제때에 편 까닭에 <<뺑덕할미>>는 서울까지 따라오지도 않고 또 퍼지지도 않았다. 선장이가 한턱 얻어먹고 신의를 지킨것이다.

선장이는 난생처음 영어를 배웠다. ABC에서 XYZ까지 알파베트를 배우고 또 영어시간에는 출석을 부르는데 다른 시간처럼

<<서선장.>>하면

<<녜.>>하지 않고

<<미스터 서.>>

부르면

<<히어 써.>>하고 대답하였다.

1학년 B학급의 급장은 오월봉이라는 전라도 큰 지주의 아들인데 나이가 스무살일뿐더러 휴식시간에는 상급생들처럼 몰래 권연까지 피웠다. 선장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저보다 나이가 예닐곱살이나 우인 어월봉이를 곧잘 놀려먹었다. 오월봉이는 조혼하여 집에는 저보다 네댓살이나 우인 색시가 있고 또 아들도 형제를 두었다가 한고향 아이가 소문을 퍼뜨려 학급안에 오월봉이네 집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월봉이는 워낙 넉살이 좋아 누가 무어라고 놀려도 골을 내는 법이 없었다. 휴식시가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는 오월봉이를 일부러 찾아가가지고

<<오월봉, 느 색시 얼굴 이쁘냐?>> 하고 놀려준즉 오월봉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담배연기를 선장이 얼굴에다 훅 뿜어주고

<<느그 엄마 말이냐?>> 하고 이죽거렸다.

<<아들이 몇살이라구?>>

<<느그 형님 말이지> 니보다 두어살씩 더 먹었다. 이담에 만나거든 형님 나 사탕 좀 사주우 사주우 그래라.>>

<<너 술도 먹지?>>

<<약주 받아갖구 와 무릎 꿇구 따라올려봐라, 잡숫나 안 잡숫나.>>

<<너 없는 동안에 느 색시 바람 피우면 어떻거니?>>

<<요놈의 새깡아, 아직 꼭대기 피두 안 마른것이 벌써 고런 주둥아릴 놀려? 너두 불알이 여물라거든 어서 와 내 담배연기나 더 맡아라.>>

세상에 이렇게도 욕을 잘 타지 않는 놈을 선장이는 처음 보았었다. 오리나 거위의 털에는 기름기가 있어서 물이 와닿으면 묻지 않고 대굴대굴 방울져 굴러내린다고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오월봉이도 살가죽에 욕을 타지 않는 무슨 기름기가 있어서 욕이 달라붙지를 못하고 대굴대굴 굴러떨어지는 모양이였다.

선장이가 중학생이 되여 흰 줄 두른 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니는것이 어멈의 눈에는 사각모를 쓰고 전문학교나 대학에를 다니는것만큼이나 대단해보이는 모양이였다. 선장이가 그동안에 지내보니 학식도 없이 인물도 보잘것없는 그 어멈이 마음씨만은 일들이였다. 인간이란 잠시도 무엇을 사랑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법이다. 선장이도 살아있는 이상은 무엇이든 사랑을 해야 하였다. 먼 원산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누나, 외할머니, 씨동이, 쌍년이... 사랑하는 사람이 여럿이였다. 그러나 가까운 서울에서 당장 사랑할 시람은 둘밖에 없었다. 그 하나는 숙자아주머니고 또 하나는 어멈이였다. 의당 숙자아주머니를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리성의 목소리는 귀전에 대고 속살거렸다. 그렇건만 어찌된 일인지 선장이 마음속에서 함박꽃 같은 숙자아주머니를 옆으로 밀어내고 첫자리에 들어서는것은 언제나 실눈에 빈대코를 한 어멈이였다. 이날 밤 선장이가 제 방에서 영어복습을 하는중에 어멈이 식혜를 한대접을 들고 들어와서

<<도련님, 그 원터 스프링 원터 스프링 외는게 무슨 소리예요?>> 하고 웃었다.

<<이건 영어야.>>

<<영어? 영어란게 뭐예요?>>

<<저 서양에 영국이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말을 영어라구해...>>

<<그럼 그 원터 스프링은 무슨 뜻이지요?>>

<<원터는 겨울이란 뜻이구 스프링은 봄이란 뜻이야.>>

<<어마 야릇두 해라!>>

어멈이 선장이의 식혜먹는 모양을 물끄러미 보고 앉았다가 느닷없이

<<우리 아들두 살았으면 인젠 열살이겠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선장이가 놀라 식혜대접을 입에서 떼고

<<어멈 아들이 있었수?>> 하고 물으니 어멈은

<<그러먼이요.>> 하고 눈을 씀벅거렸다.

<< 그 아들은 죽었수?>>

어멈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거다? 무슨 병으루?>>

<<페염이라나요.>>

<<언제?>>

<<다섯살 때였으니까 이젠 꼭 다섯해가 됐지요.>>

<<그럼 그 아이 아버지는 어떻게 됐수?>>

<<아이 아버지두 죽었에요.>>

<<죽었어? 어떻게?>>

<<저 마포 아시지? 우리가 마포서 살 때 층집 짓는데서 일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지 뭐예요. 그 즉시 병원엘 실려가긴 갔는데... 가니까 벌써 숨이 졌더래요.>>

<<어멈은 그때 어디 있었는데?>>

<<집에 있었찌요. 집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기별을 받는 즉시 세살 먹은 아이를 둘쳐업구 진동한동 달려가니까 벌써 얼굴에다 홑이불을 씌워놓았던걸요.>>

선장이가

<<그럼 다른 식구들은?...>> 하고 묻는것이 어멈의 신세이야기를 자아내였다.

연변호사댁에서 안잠을 자는 편아지 즉 어멈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였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나서 근근히 소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을 때 장티브스로 아버지와 어마니가 한달사이에 모두 세상을 뜨니 열한살 먹은 누나와 다섯살짜리 사내동생-남매가 고아로 되여 의지할 곳이 없게 되였었다. 파주에 사는 삼촌이 부모 없는 두 조카를 데려가기는 하였으나 그 역시 가난한 살림에 아이들을 먹여살릴 일이 난감하여 다섯쌀짜리 사내아이는 아직 하나만을 기르다가 그것도 힘에 부쳐 마침내 3년후 아지가 열네살 되던 해에 남의 집에 민며느리로 주어버렸었다. 다섯해가 지나서 시부모가 선후하여 다 죽고 시가의 나머지 식구들도 다 제각기 흩어지게 되였을 때 젊은 부부가 서울 마포에 사는 고모를 바라고 서울을 올라왔었다. 고모부의 주선으로 남편이 어느 건축회사에 들어가 처음에는 명색없이 헤드레일을 맡아하다가 나중에 기와공의 조수로 추어섰는데 그해 첫아들을 보았다. 아이가 세살이 되여 갖은 재롱을 다 부릴즈음 마른하늘의 벼락으로 생때같은 남편이 덜컥 죽어버리니 아지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모자 두식구가 우선 먹고 살기 위하여 여기서는 일을 해야겠는데 남의 집에 안잠을 자러 들어갈래도 아이가 덧거쳐서 잘되지 않으므로 아이를 시고모에게 맡기고 자신이 버는것을 다 아이의 양육비로 들이밀었었다. 이태후에 아이가 어떡하다 고뿔에 걸렸는데 그러다가 다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것이 하루밤사이에 갑자기 페염으로 번지며 사흘만에 수이 지는데 스물다섯살 먹은 홀어머니는 애가 터지게 창자가 끊어졌었다. 그후 안잠자는 집을 두집 옮겼는데 세번째로 이 집에를 오게 된것은 어떤 아는 사람의 거천이 있어서였다. 이 집은 주인이 인품이 좋아 이젠 다시 다른데로 옮길 생각이 없다는게 어멈의 신세이야기였다.

어멈의 신세이야기는 선장의 가슴속에 동정과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체모가 손상된다고 어멈 듣는데 원산집이야기하지 말라고 숙자아주머니가 신신당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장이는 저의 본가의 구차한 살림형편을 어멈에게 죄다 이야기해드렸다. 그리고 저의 누이도 현재 부자집에 들어가 안잠을 잔다는 말까지 다하였다. 감동한 어멈은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앉으며 선장의 손목을 덥석 잡고

<<도련님, 그저 공부만 잘하세요. 앞으루 댁 나리처럼 전문학교나 대학교만 나오면... 얼마든지 부모님 호강을 시키실수 있을테니.>>하고 말하는데 진정이 그 얼굴에 나타났다.

이리하여 선장이와 어멈은 숙자아주머니 모르는 사이에 서로 마음을 터놓는 지기로 되였다.

쌍년이가 썩후에 어머니를 보러 가려고 찬장에서 호골주 사두었던것을 꺼내는중에

<<쌍년아.>>

소리를 앞세우고 정실이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서울서 편지가왔는데... 네 문안을 했더라.>>

<<어디?>> 하고 쌍년이는 정실이가 방안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그 손에 피봉 뜯은 편지를 잡아채듯이 하였다.

<<사진두 들었어.>>

<<어디 보자.>>

쌍년이가 우선 사진부터 꺼내들고 전등불 가까이로 다가섰다.

<<아유, 이 미남자 좀 보아! 어느새 이렇게 변했어? 이젠 아주 어엿한 도련님 아니야?>> 하고 경탄하였다.

<<쌍년이누나 생각이 자꾸 납니다. 보고싶습니다. 씨동이형님이 어떻게 되였는지 몰라서 속이 탑니다. 꿈에 보입니다. 쌍년이 누나가 건강하고 또 행복하기를 비는 동시에 씨동이형님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쌍년이는 눈시울이 뜨거워나 잠시 말을 못하다가 비로소 둘이 다 방 한가운데 서있는것이 생각나서

<<우리가 왜 이렇게 장승처럼 버티구 서있다니? 어서 앉아라.>>

새삼스레 말하고 자기부터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박숙자는 한껏 가꿔놨구나.>>

<<정말 그래.>>

<<아이는 바탕이 좋겠다, 저는 돈이 있겠다. 무얼 못해? 가꿀수록 환해질텐데.>>

<<숙자아주머니두 나이보다 퍽 젊어뵈지?>>

<<왜 안 그렇겠니? 살림은 편하겟다, 화장품은 고급이겠다.>>

<<서울 물을 먹으면 검은 사람두 희여진다더라.>>

<<오잖구. 이젠 어엿한 전문학교학생이야.>>

<<뉘 집에 있다던?>>

<<뉘 집은... 기숙사에 들어갔지.>>

<<선희 오빠는 소식 있니?>>

<<소식 있는지 없는지 그건 나 잘 몰라. 그렇지만 말눈치가 아마두 바람이 잔 뒤에 슬그머니 나타날 모양이더라.>>

<<돈있구 세력있는 집 아들은 괜찮아, 경찰서에서두 다 사람봐가며 다루거든.>>

<<참 어떻게 됐니, 무슨 소식 좀 들었니?>>

<<도망치다가 총을 맞구 붙들렸다는것 하구 다시 끌려들어가 입원했다는것까진 알아두... 그밖의건 아무것도 모른다.>>

<<저걸 어떡하니.>>

<<그 집 아주머니는 노상 끓탕이다.>>

<<왜 안 그러겠니.>>

<<이놈의 집 두상은 그속에서 아주 죽어주기만 바라구있으니... 사람의 비위짱이 갈라지잖니!>>

정실이가 위로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있으려니 쌍년이는

<<아무래도 살풀일 한번 더해야 할가봐.>> 하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정실이가 딱하게 생각하여

<<그 무당 령하다던?>> 하고 물으니 쌍년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모르지, 령한지 어떤지.>> 하고 두동 진 대답을 하였다.

<<그 무당의 남편이 마흔 다섯에라나 여섯에라나, 나이 오십줄에... 술장수녀편네에게 미쳐서 마누라, 자식 삼남매 다 버리구... 통천을 가가지구 벌써 10년째 그 술장수녀편네하구 단둘이 산다더라.>>

<<그렇다니?>>

<<응.>>

<<늦바람에 곱새를 벗긴다더니... 그런 화상두 있었구나...>>

<<참말루 령하다면 설마 제 남편 바람 피우는것두 어쩌지 못할라구?>>

<<네 말이 맞다.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른다잖니. 그런것들한테 속는게 어리석지.>>

<<속이 답답하니까 행여나 해서들 그러는거지.>>

<<물에 빠진 놈 지푸래기에 매달린단 말 못 들어.>>

정실이가 벽시계를 쳐다보고

<<아이고 내 이 정신 좀봐.>>하고 부지런히 일어서니 쌍년이는

<<요새두 그렇게 일이 바쁘냐?>> 하고 물으며 따라 일어섰다.

<<도련님 기실 때보단 좀 낫지만 그래두 손님 끊일 날이 별루없어.>>

<<이 편지하구 사진은 두구 가라. 두구두구 실컷 좀 보게.>>

<<어서 그렇게 해.>>

<<고 녀석 여름방학에 와서 나를 못 본체만 해봐라.>>

<<너 미치잖았니...>>

<<자주 좀 들려.>>

<<녜녜...>>

정실이가 총총히 돌아간 뒤에 쌍년이는 허리앓이에 좋다는 호골주 한병 들고 어머니를 보러 갔다. 모녀 마주앉아 한동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어머니가

<<허리앓이에는 온천이 좋다는데...>> 하고 말을 내여 쌍년이는

<<좋대두 이 근방에야 어디 온천이 있어야지요.>> 하고 말을 받았다

<<제일 가깝다는게 2백 70리 금강산이니.>>

<<금강산?>>

<<외금강 말이야.>>

<<그래여.>>

<<련락선은 멀미가 나 못 탈거구, 자동차는 부대껴서 못 탈거구... 어떻게 간다구 그러오, 혼자서?>>

<<가긴 어딜 가, 그저 해보는 소리지.>>

<<엄마 팔자두 참... 아들 하나 낳았더라면 늘그막에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았지.>>

<<누가 아니라니.>>

<<인제 누우시오, 내 좀 주물러드리께.>>

<<고만두구 어서 가 자.>>

<<저 호골주 써보구 좋으면 내 몇병 더 구해오께.>>

<<고만 가서 자라는데두.>>

<<그럼 나 가요. 저녁때는 불 좀 나우 넣지... 땔나무 걱정은 하지 말란데두나.>>

쌍년이가 어머니네 오다막집을 나와 바쁜 걸음으로 집에들 돌아오는데 으스름달빛에 집모퉁이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얼른거리는것이 눈에 띄였다. 쌍년이가 공연히 마음이 섬뜩하여 발을 멈추고 낮게 헛기침 한번을 하였더니 그 사람이 곧 나직한 목소리로

<<거 쌍년이 아니야?>>

묻는것이 분명 씨동이의 목소리라 쌍년이는

<<아이고, 이게 누구야!>>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달았다. 쌍년이가 흐릿한 달빛에 드러난 씨동이의 얼굴을 똑똑히 좀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씨동이는 얼른 쌍년이의 팔꿈치를 잡아끌고 어둠컴컴한 그늘로 들어섰다.

<<쉿, 조용히 해.>>

<<대체 어떻게 나왔소?>>

<<병원에서 도망쳐나왔다. 이층에서 뛰여내려서.>>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소리가 다 소곤소곤 귀속말이 되였다.

<<거기는 지키는 사람두 없나?>>

<<왜 없어, 칼물구 뜀뛰기루 한번 또 해본거지.>>

<<그래 총맞았다는건 인제 괜찮소?>>

<<아직 덜 아물었지만 죽진 않아.>>

<<그래 집에는 들려봤소?>>

<<정신나간 소리 말야. 집에는 벌써 그놈들이 쏘구있는데... 들리는게 다 뭐야.>>

<<대관절 어떻걸 작정이요?>>

<<인젠 만주루 뛰는 밖에 다른 도리 없다. 류치장속에서 가는 길이랑 가서 찾아갈데랑 다 배워가지구 나왔다. 난 사람을 상해놔서 붙잡히기만 하면 콩밥 5년은 낙자없어.>>

<<만주? 만주가 오랑캐땅 아니요?>>

<<그래여.>>

<<미쳤소, 그런데를 가게!>>

<<그럼 여기서 붙들려서 머리 빡빡 깎구 전중이옷 입구 다섯해동안 콩밥을 먹으란 말이야!>>

<<설마한들 다섯해씩이야.>>

<<줄잡아서 다섯해야. 까딱 잘못하면 칠팔년... 외상섮어.>>

<<그럼 이 일을 어떻거면 좋다우?>>

<<어떻거기는 ... 뛰는거지.>>

<<난 어떻거구?>>

<<기다려. 내 가서 자리잡아놓구 데려갈테니.>>

<<아이고 하느님 맙소서.>>

<<여기서 어물어물 더 지체하다간 큰일 나. 쌍년이를 한번 보구 말을 이르려구 예까지 오는데두 살얼음판을 건느듯이 했어.>>

<<그렇지만 그냥 이렇게 갈라질수야 없잔아.>>

<<그럼 어떻게 갈라질테야. 우리 집에다 말이나 가서 좀 잘 전해. 그리구 선장이는 어떻게 됐니?>>

<<선장인 서울 갔소. 보성고보란델 들어갔다오. 고대 편지가 왔는데... 씨동형님의 일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 속이 탄다우. 꿈에두 보인대.>>

<<보성고보라는 학교?>>

<<그렇다오.>>

<<그럼 나 간다, 잘 있어.>>

<<아니 잠간 좀.>>

<<또 무슨 할 말이 있니?>>

쌍년이가 얼른 왼손 무명지에 낀 반지를 뽑아내여 씨동이 손아귀에 밀어넣어주었다.

<<이게 뭐야?>>

<<반지야. 갖구 가. 객지에서 로자 한푼 없이 어떻걸 작정이요?>>

<<놈들이 수배를 할테니까 기차는 못 타는거구. 류치장속에서 선배들이 다 가르쳐주더라. 집에두 들리지 말구. 그러니 하는수있니, 빌어먹으면서라두 걸어가는수 밖에.>>

<<그럼 잠간 좀 기다리우.>>

쌍년이가 재빨리 저의 집 마당으로 뛰여들어가더니 이내 득장지 밀어 여는 소리가 나고 또 곧 이어 방안에 불이 켜졌다. 잠시후에 쌍년이가 도로 뛰쳐나오는데 그손에 보퉁이 하나가 들렸었다.

<<그게 뭐야?>>

<<옜소, 이속에 갈아입을 내복가지하구 양말나부랭이가 들어있소. 그리고 미시가루하구 떡부스레기, 과자부스레기두 좀 들어있구. 어서 갖구 가오.>>

쌍년이가 다시 다른 손에 쥐고 나온, 녀자들이 쓰는 작은 지갑하나를 씨동이 손에 쥐여주면서

<<이속에 쓰다남은 돈 몇원 들었소. 이럴줄 미리 알았더라면 달리 변통을 좀 해보았을걸... 불시에 이 밤중에... 누가 알았어야지.>> 하고 안타까와하니 씨동이는

<<나 다 주구 넌 어떻게 살라니? 반지하구 지갑은 싫다. 보퉁이만 이리 다우.>> 하고 보퉁이만 받아들고 반지와 지갑은 도로 돌려주려 하였다.

<<괜한 소리 마오. 천리길을 가야 할 사람이 집에 편히 앉아있는 놈 걱정을 하오?>>

<<그럼 나 간다, 잘 있어.>>

<<부디 몸 조심해요. 나 기다릴게.>>

쌍년이가 혼나간 사람처럼 씨동이의 보이지 않는 뒤그림자를 점도록 바라보고 섰다가 무거운 발을 끌다싶이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태산같은 근심걱정에 지지눌리여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걷잡을수없이 솟아서 흐르는 눈물은 베고 누운 베개를 함빡 적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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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0.♡.81
산동신사 (♡.173.♡.19) - 2023/10/23 15:20:56

이렇게 재미있게 소설을 읽은지가 꽤나 오래된거 같습니다.요즘은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볼려고 산 책들도 그대로 둔것도 몇권있는데하여튼 덕분에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로즈박 (♡.39.♡.172) - 2023/10/23 22:57:59

아..씨동이가 살아잇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총에 맞앗으니 잘못된줄 알앗는데..마지막까지 쭉 살아잇엇으면 좋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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