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5

더좋은래일 | 2023.10.25 17:24:42 댓글: 3 조회: 881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729


25

과자맛을 보고 기분이 좋아 선장이 손밑에서 갖은 재롱을 다 부리던 강아지란 놈이 별안간 몸을 뒤채더니 캥 짖고 곧 토방을 뛰여내려 사립문께로 내달았다. 선장이가 고개를 돌려 강아지 가는데를 바라보니 누나 정실이가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사립문안으로 들어오고있었다. 강아지란 놈은 짧은 꼬리를 드립다 흔들며 정실이 밭에 대들었다. 나동그라졌다 하였다.

<<누나!>>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선장이가 뛰여일어나 급한 걸음으로 누나를 맞아나가니 누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발을 멈추며

<<달려들지 말구 게쯤 섰거라. 내 몸엔 생선비린내가 흠뻑 배였다.>> 하고 손을 내저었다.

<<엄마는 왜 안 오우?>>

<<엄마 아직두 고등어 절이는데 있다. 난 아침밥 지으러 들어왔다.>>

<<그럼 아버지는?>>

<<아버진 바다에 나가셨다, 요새가 고등어철이 아니냐.>>

정실이가 머리에 이고 온 함지박을 토방에 내려놓고 몇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선장이를 새삼스레 구경스레 아래우로 한번 훑어보더니

<<어엿한 도련님 아니야.>>

놀려주고 하하 웃었다. 선장이가 쑥스레 마주보며 웃고나서 괴이쩍어

<<누나, 은희네 집에 안 있구... 집에 나와있소?>> 하고 물은즉 정실이가 아주 심상하게

<<응, 지난달에 고만두고 나왔다. 요새는 엄마하구 날따라 고등어 절이러 다녀.>>하고 대답해주었다.

<<응 그래... 난 또...>>

<<서울서는 숙자아주머니랑 아저씨랑 다 무고하시냐?>>

<<응.>>

<<너 배고프지?>>

<<내 얼른 밥해주께. 그동안에 너 가서 엄마를 보구 오나. 엄마두 너 온줄 모르구있다. 애두... 언제 도착한다구 미리 편지를 하든가 전보를 치든가 할게지.>>

<<거긴 아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많으면 어때? 일부러 돌아다니며 자랑두 할라네. 좀 좋으냐, 얼른 가. 일손이 모자라서 때식들은 다 일터에 내다 잡순다. 눈코뜰 새 없어, 요새는.>>

선장이가 잔교께로 어머니를 보러 가는데 어리숙하면서도 약아빠진 강아지란 노이 젊은 안주인하고 집에 남아있는게좋을가 아니면 새로 사귄 조무래기 바깥준인을 따라가는게 좋을가 망설이다가 선장이가 혀바닥으로 쯧쯧, 쯧쯧 소리를 내며 오라고 손짓을 하는 바람에 생각을 질정한 모양으로 짧은 꼬리를 분주스레 흔들며 쪼르르 따라나왔다. 잔교께서는 아낙네들과 굵고 잔 처녀들이 혹은 오륙명씩 혹은 칠명씩 군데군데 둘러앉아 산더미 같은 고등어를 배따고 소금치고 담아내고 쟁이고 하느라고 일손들이 한창 바빴다. 파리떼도 덩달아 바빠나서 이리 왱 몰리고 저리 왱 몰리고 하였다. 오래간만에 맡는, 코에 익은 강렬한 생선비린내가 선장이의 코를 찔렀다.

<<엄마!>>

항시 귀에 쟁쟁한 아들의 목소리가 지척에 들리는데 놀라 선정이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눈을 들었다.

<<아니 너 불시에... 온단 소리두 없이.>>

아들의 딴판 달라진 모습을 쳐다보는 선장이 어머니의 눈에 걷잡을수없이 반가운 안개가 끼였다.

<<누이하구 같이 집에 있을게지... 여긴 무엇하러 나왔냐! 오참, 어서 인사해라, 점순 엄마랑 씨동 어머니랑 누나들이랑...>>

말하고 선장이 어머니는 곧 함께 일하는 아낙네들을 돌아보며

<<우리 집 선장이녀석이요.>> 하고 뒤늦은 소개-필요 없는 소개-를 하였다. 선장이는 아낙네고 처녀고 가리지 않고 차례로 돌아가며 꾸벅꾸벅 인사를 하였다.

<<아유 몰라보게 변했구나.>>

<<한다하는 글방도련님일세.>>

<<난 박참봉네 막내손잔가 했구먼.>>

<<난 주재소 소장의 아들인가 했소.>>

<<형님은 복이 있소, 저런 아들을 다 두구.>>

<<누가 아니라우.>>

<<선장이, 너 몇살이야?>>

<<열네살? 숙성하기두.>>

<<저걸 누가 열네살루 보겠소. 열예닐굽살이래두 곧이듣지.>>

<<장가 들이면 세서방구실두 넉넉히 하겠다.>>

<<서울물이 좋긴 하다, 물구뽑은것 같구나.>>

아낙네들이 받고치기로 지껄이는중에 열두살 먹은 점순이가 저의 엄마와 작은엄마의 아침밥그릇을 종다래끼에 담아 이고 한드작한드작 걸어왔다. 종다래끼를 내려놓고 신기한듯이 선장이를 아래우로 한번 훑어보더니 감탄해한다는 소리가

<<선장이 너 컸구나.>>

이 소리를 들은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한바탕 짜그르르 웃어대는데 선장이는 열적고 기가 차서 아무 대꾸도 못하였다. 점순이 엄마가 대뜸

<<이년아, 이 주착머리없는 년아! 그래 넌 몇살이구 선장이는 몇살이냐? 오빠보구 그게 무슨 놈의 말버릇이냐? 주제넘은 년 같으니!>> 하고 저의 딸을 야단쳤다. 선장이 어머니는

<<너 어서 먼저 들어가거라, 나두 곧 들어가께. 누나보구 밥은 내오지 말란다구 해. 들어가 먹겠다.>> 하고 아들에게 말을 일렀다. 그동안에 강아지란 놈은 선장이의 늘어진 구두끈을 물고 낚아채느라고 우습강스럽게 고개짓을 하며 애를 쓰고있었다.

정실이가 아궁이에 다시 불을 대여 밥을 잦힐 때 어머니가 들어왔다. 오래 못본 아들을 눈앞에 가까이 놓고 보고싶어 일이 손에 붙지를 아니하여 모든것을 불계하고 일어나 온것이였다. 이윽고 밥상이 들어와서 어머니와 오랍누이 세식구가 둘러앉아 늦은 아침밥들을 먹게 되였는데 선장이가 보니 세식구의 받은 밥이 각각 달랐다. 제앞에 놓인것은 하얀 쌀밥이요, 어머니앞에 놓이것은 좁쌀이 반나마 섞인 상반이요, 또 누이앞에 놓인것은 새노란 강조밥이였다. 선장이가 대번에

<<밥이 왜 이렇소?>> 하고 못마땅한 어투로 따져물으니 정실이는 대수롭지 않게

<<잔소리 말구 어서 먹어.>> 하고 곧 저의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선장이가 제잡담하고 저의 밥그릇을 집어서 어머니앞에 옮겨놓고 어머니 밥그릇을 집어서 정실이앞에 놓았다. 그리고 정실이의 강조밥 담은 사발을 집어드니 정실이가 사발을 도로 빼앗으며

<<그 꼴에 또 셈을 차리니? 짓거리 말구 어서 처먹기나 해라.>> 하고 웃었다.

<<난 그동안 끼니마다 쌀밥을 먹는 바람에 인젠 물려서 쌀밥만 보면 입맛이 제쳐지우. 오래간만에 조밥 좀 먹어봅시다.>>

<<잔소리 말구 어서 그냥 먹어. 그 고귀한 아가리에 강조밥이 당하냐.>>

어머니가 쌀밥 담긴 밥바리를 도로 집어서 아들앞에 놓아주며 다정학 타일렀다.

<<어서 누이 하라는대루 해.>>

<<쩌, 정말 싫단데두.>>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구 그냥 먹어라.>>

<<내가 싫다면 싫은게지.>>

<<고 녀석, 고참.>>

실랭이질을 한 끝에 결국은 남매가 쌀밥 한바리와 강조밥 한사발을 절반씩 노나먹게 되였다. 선장이가 강조밥 한술을 입에 떠넣어보고 속으로 놀랐다. 모래를 한숟가락 퍼먹은거나 진배없이 혀에 닿는 감촉이 깔깔하였기때문이다.

(이런걸 사람이 어떻게 먹구 산담!)

한 네댓달 변호사댁에서 좋은것만 먹고 사는 동안에 가난한 배군의 아들 선장이의 입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껑충 높아졌었다. 생활수준이란 높아지는것은 잘 알리지 않아도 낮아지는것은 잘 알리는 법이였다.

<<맛이 어떠냐?>>

<<어떻긴 어때요, 그저 그렇지.>>

<<깜찍한게... 누굴 속이려구.>>

정실이는 한진사댁에서 쌀밥만 먹고 살다가 갑자기 집에 나와 강조밥을 먹오본 까닭에 그 깔깔한 맛을 잘 알고있는터였다.

아침후에 어머니가 다시 일을 나간 뒤에 정실이는 선장이를 데리고 쌍년이를 보러 왔다. 쌍년이는 시원한 마루에 퍼더앉아 슬렁슬렁 부채질을 하다가 얼른 일어나며 놀림조로

<<허, 신사량반이 광림을 하시는군.>> 하는것으로 정실이남매를 맞이하였다. 손에 들었던 미선을 데꺽 선장이 손에 쥐워주고 곧 장지문을 활짝 여러놓은 방에 들어가 미선 두자루를 더 내다가 한자루는 정실이를 주고 또 한자루는 자기가 부쳤다. 미선은 모든 일본상점에서 광고삼아 증정하는, 일본미인을 그린것들이였다.

<<그래 너 공부는 잘했니?>>

쌍년이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가지고 묻는데

<<자신없소. 락제나 안하면 다행이요.>>

선장이는 열적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긁적하였다.

<<그렇게 어려워?>>

<<아 조선팔도에서 우등생들만 죄다 모였는데 내가 어떻게 다라가우.>>

<<조선팔도에서? 그럼 말씨두 다 다르겠구나.>>

<<다르다뿐이요. 병아리를 삐가리라는게 없나, 염소를 얌생이라는게 없나... 별게 다 있소.>>

여섯 눈이 마주보며 한바탕 웃고나서 쌍년이가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다시 선장이에게 말을 물었다.

<<그래 박숙자가 너를 이뻐하니?>>

<<쌍년이누나만큼은 못 이뻐하우.>>

<<아이구 고놈의 주둥이가 어쩌면 조렇게 까졌을가.>>

<<정말이요.>>

<<오냐 그럼 정말이라구 믿어두자. 그래 변호사는 어떻냐... 변호사두 너를 이뻐하니?>>

<<쑬쑬하우.>>

옆에 앉아 웃으며 듣고만 있던 정실이가 말참녜하였다.

<<그 편지나 좀 내다보여줘라, 궁금해서 곧 죽으려구 한다.>>

쌍년이가 내다주는 씨동이의 전문 같은 편지를 한참 들여다보고나서 선장이가

<<주소가 없으니 회답은 못하겠네.>>

혼자 말하며 머리를 흔드니 쌍년이는

<<거지가 돼 집두 없이 떠돌아다니는거나 아니야?>> 하고 야릇한 얼굴을 하였다. 선장이가 고개를 외치며

<<어디 그렇소, 종적을 밟히지 않으려구 조심하는거지.>> 하고 잘라 말하니 쌍년이는

<<그렇기나 하면 또 좋게. 꿈보다 해몽이라니 그쯤 믿어둘가.>> 하고 속절없는 웃음을 웃었다.

<<씨동이형님은 칠전팔기하는 사내대장부니까 어디를 가두 념려없소.>>

<<칠전팔기가 뭐야?>>

<<여러번 실패해두 굽히지 않구 다시 일어난단 말이요.>>

<<그렇기나 하다면 작히 좋겠니.>>

<<두구보구려.>>

정실이가 옆에서 선장이를 거들어

<<선장이 말이 맞아, 지레 걱정할건 없어.>> 하고 쌍년이를 위안하였다.

셋이 어우러져 끝이 없이 웃고 지껄이다가 쌍년이가 점심대접으로 얼음을 박아서 시원한 랭면 세그릇을 시켜와 점심요기들을한 뒤에 정실이는 곧바로 일터를 나가고 선장이는 소학교동창인 홍돼지를 보러 갔다. 모처럼 찾아간 홍돼지는 집에 없었다. 그러니 다행히도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그 어머니가 선장이를 알아보았다.

<<어디 갔습니까?>>

<<왜관에 가있다.>>

<<왜관엔 가 뭐 합니까?>>

<<일본집에서 사환군노릇한다.>>

알고보니 홍돼지는 하라다라는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과자점에서 사환아이노릇을 하는데 그 집에서 먹고 자고 한달에 3원씩을 받는다는것이였다.

선장이가 방학에 내려왔다는 소식을 어디서들 주어들었는지 이튿날 초저녁때 홍돼지가 다른 아이 서넛과 함께 선장이를 보러왔다. 시원한 잔교에 나가 앉아 갈마반도와 장덕삼의 등대불이 명멸하는것을 바라보며 몇달 동안의 소경력들을 피력하였다. 홍돼지외에 세 아이들중 하나는 고바야시라는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고 또 하나는 원산중학교 급사가 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원산중학교입학시험에 락제국을 먹어 한해 더 시험준비를 하는중이였다,

<<처음 들어가니까 글쎄 이놈의 주인이 다짜고짜루... 각가지 과자들을 한광주리 그들먹이 담아다 안기면서 `어서 실컷 먹어, 어서 실컷 먹어.` 하잖겠니...>>

잔교 널판지밑에서 바다물이 출렁거리고 그리고 다리목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가운데 홍돼지가 싱글거리며 이야기를 하였다.

<<난 속으루 `이게 웬 땡이냐? 내가 팔자를 고친게 아니야?` 생각하구 드립다 먹어줬지. 먹으라구 코앞에 갖다놔주는거야 못 먹어? 그런 일등과자를 생전 어디 먹어봤니. 아마 앉은자리에서 한 서너근 잘 제꼈을거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끼니때가 돼두 내게 단 밥을 안 주지 뭐냐. 저희끼라만 처먹구 내게다는 안 주더란 말이다. 내가 주인의 눈치를 살피니까 그자가 알아차리구 내게다 하는 수작이 `아무때나 넌 그 과자를 다 먹어없애야 밥을 준다.` 는거야. 이런 제기. 할수 있니! 그래 그때부턴 밥을 얻어먹을 욕심에 그놈의 과자를 먹어제끼는데... 옹근 사흘동안 먹구 먹구 또 먹구... 나중엔 코에서 닭의 똥내가 막 나더라. 그때 그렇게 꼬박 사흘동안 과자만 먹구 산 뒤로는... 이젠 과자소리만 들어두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먹는게 다 뭐냐, 보기두 싫은데. 처밗에 그렇게 단단히 혼을 내놓잖으면 사환들이 야금야금 끝이 없이 훔쳐넉게 됀대여.>>

이와 같이 일장설화를 늘어놓고나서 홍돼지는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온 과자를 여럿앞에 풀어놓았다.

<<이거 훔쳐낸거냐?>>

<<그야 개구리운동장이지.>>

<<개구리운동장이라니?>>

<<물론이란 말이다.>>

<<너 그러다가 들키면 어떡할라니?>>

<<들키게 하니? 바보자식, 기술이 있는데.>>

<<홍돼지가 오늘 희구 젖히는군.>>

<<너는 안 먹을라니?>>

<<어서 너희들이나 먹어라. 난 쓴 약은 먹으라면 먹어두 단 과자는 못 먹는다.>>

<<이거 아주 고급과자로구나.>>

<<너의 그 왜놈주인이 애나겠다. 인쥐들이 이렇게 뒤구멍으로 잔치를 하니.>>

인쇄소에 다니는 아이는 선장이에게 편지지 대여섯책을 선사하였다. 그 아이의 그어주는 성냥불빛에 비쳐보니 그 편지지들에는 <<서선장용전>>이라는 한문자 다섯 글자가 버젓이 찍혀있었다.

<<몰래 찍은거냐 이거?>>

<<응. 거기서는 다들 이렇게 해서 막걸리사발씩이나 얻어먹는다.>>

선장이는 <<서선장용전>> 다섯자가 대견하여 입이 한껏 벌어졌다.

원사중학교에서 급사노릇하는 아이가 락제국 먹은 아이에게

<<시험지는 다 내가 맡아 등사를 하니까 당음번에 내 시험지를 미리 훔쳐내다주마.>> 하고 안심을 시키니 옆에서 홍돼지가 들었다보았다하고 곧

<<이 자식, 붙으면 한턱 단단히 내라, 너의 아버지는 돈 많잖니.>> 하고 코살을 짊어졌다.

<<선장이 서울이야기나 좀 듣자, 고만들 지껄여라.>>

<<그래그래 서울이야기나 듣자.>>

선장이가 서울서 보고 듣고 또 몸소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신기하여 모두 귀들을 도사리였다. 매토막이 끝날 때마다 혹은 야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또 혹은 입을 딱 벌리기도 하였다. 선장이가 다음토막을

<<서울서는 먼지가 일지 말라구 길에다 물을 뿌리는데 살수차를 사용하니까 아주 편리하다.>>하고 이야기하는 중간에 홍돼지가

<<살수차란게 뭐야?>>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살수차가 물을 뿌리는 자동차지 뭐야.>> 하고 바른대로 말해주었다.

<<물뿌리는 자동차? 자동차루 물을 뿌린단 말이야?>>

<<그래여.>>

홍좨지는 선장이가 거짓말로 저를 놀리는줄 알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때 원산에는 아직 살수차는 고사하고 소방차도 없어서 불이 나면 소방대가 두바퀴 달린 무자위를 끌고곤두박질을 하는판이였다.

<<야 임마, 물을 자동차루 어떻게 뿌리니? 우릴 시굴놈이라구 맘놓구 부는거냐?>>

<<불기는 누가 불어? 자식, 정말로 하는데두 괜히. 내 말이 그렇게 미덥잖거든 뺑덕할미한테 가 물어보렴. 내가 거짓말을 하는가.>>

<<자식, 듣자듣자하니까 나중엔...>>

홍돼지가 게먹는데 다른 아이들도 주견머리없이 덩달아 가로꿰졌다.

<<이제 보니까 그 자식 서울 가서 월사금 바치구 대포 놓는 법을 배워왔구나.>>

<<멀쩡한 허풍선이 같으니라구.>>

<<임마, 우리가 어리숙하게 그따위 허풍에 속아넘어갈줄 알았니?>>

네놈이 중구난방으로 나서서 몰아세우는 바람에 선장이는 해혹을 시킬 도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살자면 정말을 하고도 거짓말쟁이소리를 듣는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선장이는 가장 무슨 철리라도 깨달은것 같아서 한편 답답은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초연한 느낌도 없지가 않았다.

동창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가리지 않고 실컷들 지껄이고 다리목 가로등밑에서 헤여질 때 무언가 뭉클뭉클한것이 와 선장이 발에 부딪쳤다. 선장이가 다시 보니 네눈박이강아지란 놈이 어디서 쫓겨와서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며 꼬리를 치고있었다.

한주일 가량 지나서 숙자아주머니가 친정나들이를 와서 갖다주는 성적표를 본즉 영어와 일어와 작문이 각각90점인외에는 모두 60점, 70점인데 대수 50-락제끗수였다. 숙자아주머니가 놀림 반 걱정 반으로

<<이렇게 락제끗수가 있어서 어떻거지?>> 하고 웃는데 선장이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괜찮아, 락제끗수가 둘이면 못 올라가두... 하나는 달구 올라갈수 있으니까요. 하나는 40점까지두 달구 올라갈수 있대요.>> 하고 넋살 좋게 대답하였다. 정실이가 옆에 앉아 듣다가

<<우등할데 대해서 하나두 알아보잖구 락제할것만 파구들어 알아본 모양이지... 저렇게 자세히 알제는? 공부 못하는 놈이 다르긴 하다!>> 하고 타박을 주어서 방안의 사람들은 물론 선장이까지 모두 웃었다. 선장이네 집에서는 모두들 숙자아주머니를 칙사대감 위하듯 위하는 판이라 선장이 아버지는 그 듣는데서

<<아주머니가 그렇게 살뜰히 보살펴주는데 명심을 하잖구... 무얼 어떻게 했기에 락제끗수가 다 있단 말이냐!>> 하고 아들을 책망하였다. 그리고 선장이 어머니는 숙자아주머니를 보고

<<말을 안 듣거들랑 꽝꽝 좀 패주께나, 버릇이 뚝 떨어지게스레.>> 하고 그 편을 들어서 위로하였다.

며칠 지나서 두 부자집 딸들인 박숙자와 한선희가 은희와 선장이를 데리고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데 은희는 먹을것이 든 바스케트를 누이와 번갈아 들고 가고 선장이는 먹을 물이 든 빨병둘을 량어깨에 엇메고 갔다. 십리 박새장에 푸른 잔솔밭이 띠처럼 펼쳐졌는데 발그스름하게 열매가 익어가는 해당화가 점점하여 정취가 전국술처럼 유객들을 취하게 만드는중에 7월의 폭염에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진 모래톱은 맨발로는 도저히 거닐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사람들의 해수욕장인 송도원은 영홍만의 만내이므로 호수같이 아늑하고 잔잔하지만 서양사람들의 해수욕장인 명사십리는 만외인 까닭에 호한한 동해가 가이없어 남성적인 씩씩한 기상으로 차있었다. 이국정서를 풍기는 아담한 벽장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선중에 가지각색 해수욕복차림의 백인남녀들이 점철하여 한폭의 생동한 유화를 보는것과도 같았다. 송도원의 잔잔한 파도에 비하여 명사십리의 파도는 야생적으로 게세찼다.

선장이는 부자집아들 은희와 같은 급의 새 수영복을 입은김에 헤염수단을 뽐내보이느라고 파도를 넘어넘어 바다 깊숙이 헤여들어갔다가 숙자아주머니가 이젠 고만 돌아오라고 소리를 쳐서야 비로소 여유작작한채 서서히 헤여돌아왔다. 그 바람에 헤염을 잘치지 못하는 은희는 코가 좀 납작해질라 하였다. 선희는 웃으며 은희와 선장이를 돌아보고

<<너희들 나하구 뛰기내기 해볼래?>> 하고 도전을 하여서

<<합시다 합시다, 까맣게 떨궈놓을테니.>>

선장이가 나서고

<<달음박질은 누나가 좀 잘 안될걸.>>

은희가 나서서

<<오냐 좋다, 그럼 자... 온 더 마크-겔 세트 동!>>

숙자아주머니의 깔깔 웃는 웃음소리를 등뒤에 들으며 셋이서 바다기슭의 젖은 모래톱을 죽어라 하고 달리는데 물색수영복차림의 선희의 자태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서양사람들이 여럿이 그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장이가 첫째, 선희가 둘째 그리고 은희가 셋쩨로 뛰기내기가 끝이 났다. 선희가 가쁜숨을 돌리며 선장이의 귀때기를 잡아당기며

<<요게 나보다 빠르단 말이야, 아이고 분해, 아이고 분해!>>하고 깔깔거렸다. 선희가 량손에 은희와 선장의 손목을 갈라잡고 봄날의 종다리처럼 명량해서 돌아오는중에 종아리에 털이 부시시 난 장년의 백인남자 하나가 앞으로 썩 나서면서

<<굳모닝 영 레이디.>>하고 인사를 하니 선희는 천연스럽게

<<굳모님 써.>> 하고 마주 인사를 하였다. 이어 그 남자아 선희가 몇마디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데 선장이는 하마디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선장이는 지난번 창경원 동향회에서 바이올린독주로<<찌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는것을 들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선희를 다시한번 우러러보았다. 선희야말로 대단한 녀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걷게들 되였을 때

<<누나, 이제 그 서양사람하구 무슨 말을 했소?>>

은희가 물으니

<<이따 저의 별장에 와 같이 점심을 먹재.>>

선희가 말해주었다.

<<그래 갈 작정이요?>>

<<가긴 어딜 가! 초면에 해수욕복바람으로 와 청하는데를 가?>>

<<그래 뭐라구 했소?>>

<<고맙다구 치사하구 이담에 가겠다구 얼버무려버렸지.>>

<<막 쥐였다 폈다 하는구려.>> 하고 선장이가 웃으니 선희는

<<조꼬만게!>> 하고 웃으며 선장이의 뒤통수를 톡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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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이야기연길이야기 (♡.226.♡.47) - 2023/10/25 19:10:30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그려 지는거 같습니다..

올려 주시는 덕분에 정주행 하게 되네요,
수고 많으십니다..

로즈박 (♡.101.♡.155) - 2023/10/25 23:02:31

항상 덕분에 잘보고잇답니다..
정실이와 한정희일이 너무 궁금합니다..
다음편에는 좋은 결과가 잇을가요?

산동신사 (♡.173.♡.19) - 2023/10/26 09:34:22

할아버지 고향이 평안북도라고 알고있는데 그쪽에서 벌어진 사실이라는것만으로도 더 읽고 싶어지는것 같습니다
.어떤 사투리는 아직도 쓰고 있어서 마음에 와닫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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