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3-4

3학년2반 | 2022.03.03 07:17:37 댓글: 0 조회: 463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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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3 권


제 4 장 장무기(張無忌)와 의문의 소녀


장무기는 좁은 굴 속에서 기다시피 해서 수장을 걸어오자 눈앞
이 점점 밝아졌다. 조금은 더 가자 갑자기 눈이 부셨다.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 다시 눈을 떠 보니,
꽃덩굴이 우거진 취곡(翠谷)이었다. 파란 잎사이로 빨간 꽃이 엇
갈려 서로 빛을 발하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는 환호성을 터뜨리며 굴 속에서 기어나왔다. 깊은 굴속에 있
었지만 그는 가볍게 껑충 뛰어 올라왔다. 그가 밟고 있는 곳은
연한 풀잎이었다. 그의 코 속으로 꽃향기가 다가왔다. 산새들이
지저귀며 나뭇 가지에는 먹음직스런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
었다. 어두컴컴한 굴 속을 빠져 나오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
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는 상처의 아픔마저도 잊은 채 앞으로
달려나갔다. 단숨에 약 이 리 길을 달려오자 눈앞에 큰 산봉우리
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 취곡은 사방이 산
으로 둘러싸여 한 번도 인적이 닿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방엔
높은 산봉우리들이 구름을 찌르고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이 험
준한 산세 때문에 그 누구도 도저히 산을 넘어 여기까지 들어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장무기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풀밭에는 산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를 보고도 놀라거나 도망치지도 않았다. 나
뭇 가지엔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하늘이 나를 박하게 대하진 않는구나. 내가 죽을 곳을 이런 선
경(仙境)으로 택해 주다니....."

그는 서서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 저쪽에서 주장령의 목
청이 들려왔다.

"소형제, 빨라 나오게! 굴 속에서 숨이 막히지도 않는가!"

장무기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여긴 참 좋은데요!"

그는 낮은 나뭇 가지 위에서 이름 모를 과일을 몇 개 땄다. 과
일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한 입을 깨물자 맛은 정말 기가 막혔
다. 그는 과일 하나를 굴 속으로 던지며 외쳤다.

"받으세요! 맛이 기막힌 겁니다."

과일은 굴 속을 지나 절벽에 부딪치며 부서졌다. 주장령은 씨까
지도 먹어치웠다. 씹을수록 배가 더 고파왔다. 그는 다시 외쳤
다.

"소형제, 몇 알 더 던지시오!"

"당신은 굶어 죽어도 싸요! 먹고 싶으면 직접 이리로 오시요."

장무기가 이렇게 말하자 주장령이 다시 소리쳤다.

"내 몸집이 너무 커 굴 속으로 빠져나갈 수 없네!"

"몸을 두 쪽으로 가르면 되지 않소?"

그 말에 주장령은 자신의 음모가 탄로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무기가 자기를 굶어죽게 해서 복수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가
슴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죽일 놈아! 이 굴 속의 과일이 너를 평생 먹여 살릴 것 같
으냐? 나도 굶어 죽겠지만, 너도 곧 굶어 죽을 것이다."

장무기는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몇 알을 더 먹자 배가 불렀
다.

반나절이 지나자 갑자기 짙은 연기가 굴 속을 지나 안으로 들어
왔다. 그것은 주장령이 밖에서 소나무 가지를 태워 연기를 내어
장무기를 굴 속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십
수백단의 나뭇 가지를 태워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와 거짓으로 기침소리를 냈다.

주장령이 외쳤다.

"소형제, 빨리 나와! 절대로 해치지 않겠다.!"

장무기는 일부러 소리를 질러 기절한 척하고 입구에서 다른 데
로 걸어갔다. 서쪽으로 약 이 리(二里) 길을 걸어가자 절벽에서
폭포수가 힘차게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은 눈이 녹아 생긴 폭포
였다. 햇빛이 비친 폭포는 거대한 용과 같았다. 정말 장관이었
다.

폭포는 청철벽록(淸澈壁錄)의 깊은 연못에 떨어지고 있었다. 연
못에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따로 물이 흐르는 곳
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감상하고 난 후 고개를 숙였다. 손은 온통 흙먼지
와 가시에 찔려 핏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물가로 가 모자와 양
말을 벗어 발을 씻었다.

얼마 뒤, 갑자기 파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가 넘는 흰 물고
기가 뛰어 올랐다. 장무기가 잽싸게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허
사였다. 그는 자세히 물 속을 들여다보니 십여 마리의 흰 대어가
노닐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빙화도(氷火島)에서 고기잡는 법
을 익혔었다. 그는 나뭇 가지를 꺾어 끝을 뾰쪽하게 깍은 후, 조
용히 지켜보다가 물고기가 물 위로 떠 오르자 잽싸게 찔러 어김
없이 물고기를 낚았다.

그는 환호성을 지르며 날카로운 나뭇 가지로 배를 갈라 창자를
씻어 낸 후, 마른 가지를 주워 모으고 품 속에서 화도화석화용
(火刀火石火용)을 꺼내 불을 붙이고 물고기를 구었다. 그 향긋한
냄새는 정말 기막혔다. 다 익자 그는 순식간에 한 마리의 물고기
를 해치웠다. 정말 평생 이런 맛은 처음 느껴 본 것 같았다.

다음날 정오 그는 다시 물가로 가 물고기를 잡아 구어 먹었다.
그는 앞으로 살아가려면 불씨를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빙화
도에선 모든 도구를 자신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별 불편
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풀을 모아 침대를 만들고 다른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다.

저녁 때까지 일하고 난 그는 주장령이 굶어죽을까 염려되어 싱
싱한 과일을 한 아름 따 굴 저편으로 던졌다. 그는 주장령이 생
선을 먹고 나면 힘이 늘어나 굴 속으로 쳐들어 올까봐 구운 물고
기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흙으로 가마솥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갑
자기 나무 위의 원숭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
우 긴박한 듯했다. 그가 조심조심 달려가 보니, 절벽 밑에 한 원
숭이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뒷다리를 큰 돌덩이에 눌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절벽에서 실족하여 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원숭이를 일으키자 원숭이의 다리는 이미 부러져 고통
스러워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재빨리 나뭇 가지를 두 개 꺾어 다리 양쪽에다 그것을
대고 꽁꽁 묶고 나서 약초를 상처에발라 줬다. 이 계곡에서 거
기에 맞는 약초를 찾긴 힘들었지만 그의 접골 솜씨로서 부러진
다리는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원숭이는 뜻밖에도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이튿날 많은 과일을
따 그에게 가져왔다. 십여 일이 지나자, 과연 부러진 다리는 완
치되었다.

계곡 속엔 오랫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그저 원숭이들과
놀며 지냈다. 만약 몸의 한독(寒毒)이 가끔씩 발작하지만 않는다
면, 계곡 속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다. 어느 땐 산양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 잡아서 먹을 생각도 했으나, 산양들이 너무 유순하고
사랑스러워 정말 건드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과일과 물고기가
많아 먹을 것은 큰 걱정없었다. 며칠 뒤엔 꿩을 잡아 포식하기도
했다.

이런 생활도 어느덧 한 달이 흘러갔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단잠에 빠져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
기 털이 숭숭한 큰 손이 자기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는 듯한 느
낌이 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 급히 일어나 보니, 흰 고릴라 한
마리가 자기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품에는 자기와 매일같
이 놀던 원숭이를 안고 있었다. 그 원숭이는 찍찍하고 계속 외쳐
댔다. 손은 대백원(大白猿)의 흰 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무기는 문득 썩는 냄새를 맡았다. 대백원의 배를 보니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큰 종기가 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알았어 이제 보니 내가 환자를 데리고 왔구나."

대백원은 왼손에 갖고 있던 주먹만한 복숭아를 공손하게 그에게
바쳤다. 장무기는 싱싱하고 큰 복숭아를 보자 마음속으로,

'어머님께서 옛날 얘기를 해주실 때, 곤륜산에서 어느 여선왕모
(女仙王母)께서는 생일을 맞은 때마다 큰 복숭아를 차려놓고 군
선들을 초청했다고 하셨는데, 서왕모란 사람은 진짜 인물인지 아
닌지 몰라도 곤륜산에 큰 반도(蟠桃)가 난다는 것은 사실일 거
야.'

하고 생각하면서 웃으며 반도를 받았다.

"이런 걸 안 가져와도 내 병을 고쳐 줄 텐데."

장무기는 가볍게 그의 배를 들쳐보자 그만 깜짝 놀랐다. 그 종
기는 너무나 클 뿐만 아니라 너무나 딱딱한 것이었다. 그는 의서
에서 이런 지독한 종기는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이 딱딱한 것이
곪으면 정말 불치의 종기가 될 것 같았다. 고릴라의 진맥을 짚어
보니 별로 심해 보이진 않았다. 그는 배의 털을 제치고 다시 보
니 그 자라는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불쑥 튀어나왔으며 사방에
실로 꿰맨 자국이 있었다.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 틀림없었다.
고릴라가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어찌 실과 바늘을 쓸 줄 알겠는
가! 그는 그 불쑥 튀어나온 것이 혈맥의 운행을 방해해서 살이
썩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이 종기를 고치려면 뱃속에 있는 물건
을 꺼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술이라 하면 그는 호청우에게 배워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
지만, 여긴 예리한 칼도 없고 가위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약도
없고 정말 난처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큰 돌을하나 주워
다른 큰 바위에다 던졌다. 깨진 돌조각에서 예리하게 깨진 것을
골라 천천히 대백원의 실로 꿰맨 곳을 잘랐다. 그 흰 원숭이는
나이가 들어 매우 영특하였다. 장무기가 자기의 병을 고쳐주려는
것을 알고 그 극렬한 통증을 꾹 참고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그의 실밥을 잘라내자 그의 뱃속에 유포(油布)
로 된 작은 보따리가 보였다. 그는 괴이하다고 느끼면서도 보따
리를 풀어 보지 않고 다시 백원의 배를 꿰매었다. 생선뼈를 바늘
삼아 나무껍질로 실을 삼아 억지고 꿰매었던 것이다. 상처에 약
도 발랐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백원은 매
우 고통스러워 보였으나 움직이지도 않고 누워 있었다.

장무기는 손을 씻고 유포의 핏자국을 닦아낸 후 풀어 보았다.
그 안에는 얇은 네 권의 경서가 있었다. 유포로 워낙 단단히 싸
매어 있었기 때문에, 백원의 뱃속에 오래 들어 있었지만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겉장엔 꼬불꼬불한 글자 몇 자가 적혀 있었지만
그는 한 자도 알아보지 못했다. 안을 제쳐 보니 네 권이 모두 그
런 괴상한 글씨였다. 그러나 행간마다 깨알만한 글자가 한문(漢
文)으로 씌어져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니, 그것은 연기운공
(練氣運功)이라는 비결이었다. 그는 천천히 읽어내려 가자 정신
이 번쩍 들었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던 세 줄의 글씨가 보인 것
이다. 그것은 바로 태사부님과 유이백께서 전수하시던 무당 구양
공이었다. 그는 또 아무렇게나 다음 장을 넘겨 보니 다시 무당구
양공의 문구가 보였다. 그러나 어느 곳은 태사부님과 유이백님께
서 전수하시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경서이지? 어째서 무당구양공의 문구가 들어
있지? 그런데 또 왜 무당 본문에서 전수한 것과 틀리지? 태사부
의 부인이신 각원대사께서 구양진경의 경문을 읽으실 때 태사부,
곽양 여협, 소림파 무색대사 세 분이 각기 일부를 기억하셔서 뒤
에 무당, 아미, 소림 삼 파의 무공이 크게 진보하여 수 십 년 서
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무림에 이름을 떨치지 않았는가!그 구양
진경은 능가경의 가운데마다 적혀있다고 하셨다. 이 꼬불꼬불한
문자는 필시 범문(梵文)으로 된 능가경일 거야. 그런데 어떻게
고릴라의 뱃속에 들어 있을까?

이 경서는 정말 그 구양진경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고릴라의 뱃
속에 들어 있는지 그것은 세상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구 십여 년전, 소상자와 윤극서가 소림사 장경각에서 이
경서를 훔친 후 각원대사에게 쫓겨 화산 꼭대기까지 왔었다. 그
들은 더 이상 몸을 피할 수 없자 마침 옆에 어린 고릴라가 있는
것을 보고 의논 끝에 고릴라의 배를 갈라 거기에 숨긴 것이었다.
뒤에 각원, 장삼봉, 양과 셋이서 소상자와 윤극서를 아무리 뒤져
도 경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구양진경의 종적은 근 백
년 동안 무림의 일대 의혹이 된 것이다.

그 후 소상자와 윤극서는 고릴라를 데리고 멀리 서역까지가 누
가 먼저 경서의 무공을 익히고 자기를 죽일까 하고 견제하며 누
구도 고릴라 뱃속의 경서를 꺼내지 못했다. 뒤에 두 사람은 곤륜
산 경신봉(警神峯)에 와 서로 암습하여 양패구상을 당한 것이다.
그 후 경서는 영원히 고릴라의 뱃속에 있게 된 것이다.

소상자의 무공은 원래 윤극서보다는 한 수 위였으나, 그가 화산
에서 각원대사에게 일 권을 친 것이 그 반동의 진력으로 인해 중
상을 입어 윤극서와의 싸움에서 먼저 죽게 된 것이었다. 윤극서
는 죽기 직전에 곤륜삼성 하족도를 만나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에게 소림사 각원대사에게 그 경서가 고릴라의 뱃속에 있다고 전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기력을 잃고 숨이 넘어가
면서 희미하게 한 말소리라 경재후중(經在후中)을 하족도는 금재
유중(金在油中)으로 들었던 것이다. 하족도는 약속을 지키려고
중원에 와 금재유중이란 말을 각원대사에게 전했던 것이다. 각원
은 그 말뜻을 알 수 없었고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일장의 거대한
풍파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로부터 무림에는 무당파 아미파라는
두 파가 더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원(猿)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곤륜산에서 선도(仙桃)
를 따먹으면서 천지의 영기(靈氣)를 받아 구십 여년을 살면서 여
전히 날으는 듯이 뛰어다니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의 몸에 털은
점점 흰 색으로 변해 한 마리의 백원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뱃
속에 경서가 들어 있어서 위와 장을 꽉눌러 가끔씩 배에 통증이
오곤했다. 배에 종기도 어느 땐 괜찮다가 어느 땐 다시 생겨나곤
했다. 오늘 비로소 장무기를 만나 뱃속의 경서를 꺼내니 백원으
로선 정말 구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하며 심복대환(心腹大
患)을 도려낸 것이다.

이 기구한 곡절을 장무기보다 수십 배 더 총명한 사람이라 할지
라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장무기는 한참 동안 멍청히 있다가 백원이 준 대반도(大蟠桃)를
한 입 물었다. 그러자 싱싱하고 달콤한 과즙이 서서히 목으로 흘
러들어갔다. 계곡의 무명 과실들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장무기는 반도를 다 먹고 나서 다시 생각을 이었다.

'태사부께서 전에 만약 내가 소림, 무당, 아미 삼파의 구양신공
을 터득하면 혹시 몸 속의 음독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
지 않았던가? 이 삼파의 구양공은 모두 구양진경에서 생겨난 것
인데, 만약 이 경서가 진짜 구양진경이라면 삼파의 구양공을 나
눠 배우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겠는가! 이 계곡에서 할일도
없으니 이 경서를 따라 연습이나 해야지. 설령 구양진경이 아니
라 할지라도 배워서 나쁘진 않겠지, 또한 아무 소용도 없고 배워
서 해를 입는다 해도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세 권을 양지 바른 곳을 골라 마른 풀로
덮고 나서 돌덩어리 세 개를 그 위에다 눌러놨다. 원숭이들이 그
것을 갖고 장난치다가 찢어 버릴까 봐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는 한 권만 들고 먼저 몇 번 읽고 나서 다시 연구하며 차근차
근 터득해 나갔다.

그는 마음속으로 내가 만약 진짜 구양진경을 익히고 체내 음독
을 제거한다 해도, 이 높은 산으로 막힌 계곡을 어떻게 빠져나가
겠는가? 오늘 터득해도 좋고 내일도 좋다. 그것을 하나도 연마하
지 못한다 해도 무료한 날을 보내긴 안성마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느긋한 마음을 먹자 정말 이상하리 만치 진전이 빨랐
다. 그 짧은 넉 달 동안에 이미 한 권의 경서에 적힌 공부를 모
두 깨우치고 거기에 따라 연마를 달성한 것이다.

한 권을 끝내고 계산해 보니, 호청우가 독이 퍼져 죽을 것이라
는 날짜가 이미 지났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몸도 가벼웠고 전신
에 진기가 유동하는 것을 느끼며 조금도 병색이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시시각각으로 한독이 엄습해 오는 것으로 느꼈었는데, 지
금은 한 달 넘어 가끔 한 번씩 가볍게 느꼈다. 얼마 후, 그는 이
권의 경문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호세구양(乎세九陽) 포일함원(包一含元). 이 책의 이름은 구양
진경이니라."

그제서야 그는 태사부께서 잊지 못하시는 바로 구양진경이라는
것을 알고 기뻐하였다. 그 대백원은 자기의 병을 고쳐 준 은덕을
알고 가끔 대반도를 갖다 주었다. 그것도 원기를 북돋아 주는 것
이었다. 제 이 권의 삼분의 일 정도를 터득하자, 체내의 음독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매일 구양진경을 터득하는 일 외엔 그저 원숭이들과 장난
치며 지냈다. 그가 딴 과일은 언제나 반은 주장령에게 나눠 주었
다. 그는 아무 걱정도 없이 정말 자유자재였다. 그러나 주장령이
있는 곳은 좁은 평대(平坮) 뒤라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았다. 겨
울이 되면 사방이 눈과 얼음에 덮여 한풍이 뼈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정말 그 고초는 형용할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제 이 권을 끝내자 이미 그는 추위도 타지 않았다. 그
러나 배워 갈수록 더욱 어렵고 오묘해서 진전이 점점 느려졌다.
제 삼 권은 꼭 일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마지막 권은 더더욱 어
려워 삼 년이나 걸렸다.

그는 이 조용한 계곡에서 오 년을 지내 온 것이다. 그는 어린애
에서 어느새 몸집이 우람한 청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마지막
이 년은 원숭이들과 산벽을 타고 올라가 멀리를 내다보며 놀기도
했다. 지금의 그의 공력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계곡을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인심이 음험
하고 악독한 것을 생각하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
는 밖에 나가 걱정을 사서하며, 제 발로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늙어 죽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네 권의 경서를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마지
막 장을 넘기면서 다시 한 번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어딘가 허
무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굴속 왼쪽 벽에 다섯 자나 되는 구멍
을팠다. 그리고는 네 권의 경서와 호청우의 의경, 그리고 또 왕
난고의 독경 모두를 백원 뱃속에서 꺼낸 유포에다 싸서 안에 넣
고는 흙으로 덮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백원한테서 경서를 얻은 것은 정말 기막힌 인연이다. 훗
날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누가 다시 우연히 이곳에 와 이 세 경서
를 얻을지 모르겠군.'

그는 뾰쪽한 돌을 주워 벽에다 <장무기 매경서(張無忌埋經書)>
라고 여섯 자를 새겼다.

그는 무공을 연마할 땐 내일 과제가 있어 무료함을 몰랐는데,
이날 모든 것을 끝내고 나자 허전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 거기다
신공을 터득하고 나자 담력도 커졌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
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만약 주장령이 나를 해치러 온다고 해도
이젠 두렵지 않으니, 심심한데 저 자와 말이나 건네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올 때는 나이
가 십 오 세로 몸이 왜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십 세가 되어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 좁은 굴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는
숨을 들여 마시고 축골공(縮骨功)을 운기하자 전신의 뼈가 한데
로 모이며 뼈와 뼈 사이가 좁아져구멍이 좁다 해도 간단히 빠져
나갔다.

주장령은 돌벽에 기대어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즐
거운 꿈을 꾸고 있는지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누
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자 깜짝 놀라 깨어났다. 눈앞에 우
람한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었다. 주장령은 벌떡 일어나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외쳤다.

"너..... 너는.....!"

장무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 아저씨, 장무기예요."

그는 주장령이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는 찬찬히 쳐다 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네가 이렇게 컸구나. 흥, 왜 한 번도 나와서 나하고 말을 건네
지 않았지? 내가 그렇게 애걸복걸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다니!"

"나를 골탕 먹일까 봐 그랬죠."

주장령은 갑자기 오른손을 뻗어 금나(檎拿)법을 시전하여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날카롭게 외쳤다.

"왜 오늘은 두렵지 않느냐?"

그러자 갑자기 장심이 뜨거워 자가도 모르게 팔을 움츠리며 손
을 놨다. 가슴에 은은하게 통증이 왔다. 그는 겁에 질려 세 걸음
물러나며 멍청하게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너 이게 무슨 무공이냐?"

장무기는 구양진경을 터득하고 난 후 처음으로 무공을 시험해
본 것이다. 이런 무서운 위력이 있다니,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주장령은 일류 고수였다. 그런데 그의 신공에 튕겨져 손을 안
놓을 수 없었다니 장무기는 주장령이 놀라면서도 이상한 눈초리
를 하자 득의양양하며 웃으며 말했다.

"그 무공을 아직도 쓸 수 있소?"

주장령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무슨 무공이냐?"

"구양신공이요."

주장령은 크게 놀라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터득한 것이지?"

장무기는 그를 속이지 않고 모든 경위를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주장령은 그 말에 질투도 나고 화도 치밀었다. 그는 속으로 투
덜거렸다.

"난 이 절봉 위에서 오 년이란 세월을 고생했는데, 이놈은 여기
서 그 오묘한 신공을 익히다니....."

그는 자기가 그를 해치려다가 그런 고생을 하게 된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무기가 오 년 동안이나 거르지 않고
과일을 따 줘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것도 고마와 하지 않았
다. 그는 그저 장무기는 행운아이고 자기는 너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화를 꼭 참고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
다.

"그 구양진경을 나에게 좀 보여 줄 수 없나?"

장무기는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당신한텐 보여 줘도 별 탈이 없을 거야. 그가 잠깐 동안에 그
걸 다 기억할 수가 있을려구.....'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굴 속에 다 묻어 버렸소. 내일 보여드리죠."

주장령이 말했다.

"넌 이미 이렇게 컸는데 어떻게 저 굴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

장무기가 말했다.

"저 굴은 그렇게 좁지만은 않소. 몸을 움츠리고 안으로 쑤셔서
나온 거요."

주장령이 물었다.

"나도 그렇게 들어갈 수 있을까?"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같이 한 번 실험해 보죠. 안은 무척 넓은데, 여기 평대에
서 지내시느라 보통 고생이 아니었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의 어깨와 가슴, 둔부의 뼈를 누르면 그도 그 굴
속을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장령이 웃으며 말했다.

"소형제, 자네는 정말 참 착하군. 군자란 지난 일은 따지지 않
는 거야. 전에 내가 자네에게 못되게 한 것은 모두 용서해 주
게."

그는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읍을 올렸다.

장무기는 얼른 답례를 하며 말했다.

"주 아저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일 여길 빠져나갈 방법이나
생각해 봅시다."

주장령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여기를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원숭이나 고릴라들이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데, 우리
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왜 넌 여기를 벌써 빠져 나가지 않았지?"

장무기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엔 난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당할까
봐서요. 지금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태사부,
사백, 사숙님들도 보고 싶구요."

주장령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치더니,

"좋아, 좋아."

하고 외치며 뒤로 두 발짝을 물러섰다. 그러자 갑자기 휘청거리
며 앗! 하고 소리치더니 허공을 딛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렸
다.

낙극생비(樂極生悲). 기쁨이 넘치면 슬픔이 닥치는 법인가! 갑
자기 이런 변고가 생기자 장무기는 크게 놀라 몸을 수그려 밑을
보며 외쳤다.

"주 아저씨, 괜찮습니까?"

밑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장 안 되는 거리 같았다.

"다행히 밑으로 떨어지진 않았군. 다치진 않았는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절벽 밑을 살펴보니, 절벽에 마침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주장령의 몸이 그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장무기는 형세를 보아 자기의 공력으로 뛰어내려 주장령을 안고
절벽 위로 다시 올라온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긴숨을 들이 마시고 난 후 팔처럼 뻗은 나뭇가지를 조준
하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의 발끝이 나뭇 가지와 반 자도 안 되는 거리에 닿자 갑자기
나뭇 가지는 꺾어지고 말았다. 그러더니 장무기는 공중에서 조금
도 힘을 빌릴 곳이 없었다. 그가 절정의 신공을 익혔다 해도 그
는 필시 날으는 새는 아니지 않는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쳤다. 그것은 주장령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짓이었다. 그는 나뭇 가지를 꺾어 손에 쥐고 있다가 장무기가 내
려 가지에 닿으려는 순간, 나뭇 가지를 떨어뜨린 것이다.

주장령이 통쾌하게 웃어 대며,

"오늘에서야 이놈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구나. 오 년 동안의 한
을 이제서야 풀었구나. 전번에 이 동굴을 빠져 나가지 못한 것
은, 너무 서둘러서 갈비뼈가 부러진 탓이다. 그놈은 나보다 더
몸집이 컸는데도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나라고 못 빠져 나갈려
구. 내가 구양진경을 얻으면 신공을 연마해서 천하의 무적이 돼
야지. 정말 기분좋구나. 하하하.....!"

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급해 재빨리 소나무 옆의 등나무 줄기
를 잡고 절벽 위로 뛰어올라 동굴 속으로 들어 갔지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 큰데도 빠져 나갔는데, 왜 나는 못 빠져
나갈까?'

그는 장무기가 이미 구양신공 중에 축골법을 익힌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 좁은 굴 속으로
조금씩 기어나갔다. 그러나 곧 아무리 몸부림쳐도 더 이상은 앞
으로 기어갈 수 없었다.

그는 정신을 다시 차리고 안으로 긴 숨을 들이마시자 폐가 오그
라들며 조금 더 앞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폐에 더
이상 공기가 없어 점점 답답해오며 가슴이 북을 치듯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는 우선 밖으로 나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고 생
각했다. 그러나 들어갈 땐 두 발을 울퉁불퉁한 벽에 의지하고 타
고 들어갔지만, 나올 땐 힘을 빌릴 곳이 없었다. 들어갈 땐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어깨의 넓이를 줄였지만, 지금은 두 팔
이 머리 위로 한 채 암석에 끼어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전혀 힘
을 쓸 수가 없었다.

무공이 상승에 달하고 총명과 기지로 따져 일류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주장령도 이 좁은 굴 속에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장무기는 주장령의 간계에 속아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
기 자신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장무기야, 너야말로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주장령이란 인간의
간교함을 알면서도 또 당하다니 죽어도 싸다. 싸!'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며 체내의 진기를 유동시켜 힘
껏 위로 솟아오르려고 애썼다. 그의 귓가에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따끔했다. 땅 위의 흰 눈빛이 그의
눈에 비춰온 것이다.

그는 몇 장 아래에 눈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공중에서 재빨리 몸을 세 번 돌리며 그 눈더미쪽으로 향했
다. 그의 몸은 비스듬히 반원을 그리며 왼쪽 발끝이 눈더미에 닿
으면서 몸 전체가 이미 눈더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장무기는
바로 이 순간, 오 년이나 수련한 구양신공의 위력을 발휘하려 했
다. 그러나 만 장이나 넘는 절벽에서 떨어진 그 기세는 얼마나
위력적인 것인가! 그는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두 다리뼈가 부러
진 것이었다.

그는 중상을 입었으나 정신은 멀쩡했다. 마른 풀이 날리는 것이
보였다. 알고보니 눈더미는 농가에서 쌓아놓은 풀더미였다.

그는 두 팔에 함을 주고 천천히 풀더미에서 기어나와 눈속으로
굴러내려 부러진 다리를 살피고, 긴 호흡을 하고 나서 접골을 했
다. 그는 걱정이 앞섰다.

'누워서 꼼짝하지 않아도 최소한 한 달은 지나야 걸을 수 있는
데, 어떡하지? 여기서 굶어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 풀더미는
농가에서 만든 것이다. 근처에 분명 인가가 있을 것이야.'

그는 소리쳐 구원을 청하려 했으나, 세상엔 악인들이너무 많다
고 생각하며 차라리 혼자 여기 누워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렇게 삼 일을 누워 있자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부러진 뼈를 접골하고 나서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일그러진다면 평생 절름발이
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버티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
았다. 굶주림을 못 참을 땐 눈을 집어 삼켰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부터 절대로 조심해야 돼. 절대로 악인의 간계에 넘어가선
안 돼. 이번만 잘 견뎌내면 앞으로 큰일이 닥쳐도 죽음만큼은 면
할 수 있을 거야.'

사흘째 밤, 그는 조용히 운공을 하니 가슴이 맑고 온몸이 편안
해졌다.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고 하나 자신의 신공은 더 진전이
있는 것 같았다. 죽은 듯이 조용한 적막에서 갑자기 멀리서 개짖
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접근해왔다. 몇 마리의 맹견이 어떤
짐승을 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장무기는 내심 놀라며 생각했
다.

'혹시 주구진 누나가 기른 악견들이 아닐까? 그 맹견들은 주백
이 이미 다 때려 죽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또다시 길
렀단 말인가?'

그가 살펴보니 어느 한 사람이 날으는 듯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뒤엔 세 마리의 큰 개가 미친 듯이 짖어 대며 쫓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기진맥진하여 휘청거리며 몇 발짝 못 가 자꾸
스러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견(惡犬)들에게 물릴까 두려워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장무기는 자기도 수년 전 개떼들에게 쫓
기던 생각이 떠올라 가슴의 피가 들끓어 올랐다.

그는 그 자를 돕고 싶었으나 마음만 앞설 뿐이었다. 갑자기 비
명이 들리며 그 자는 쓰러지고 말았다. 개들은 그 자의 몸을 짓
밟으며 막 물어뜯었다.

장무기는 화가 치밀어 외쳤다.

"미친 개들아, 이쪽으로 와라!"

그 세 마리의 개들은 사람소리가 들리자 날으는 듯이 달려와 코
를 킁킁 대며, 미친 듯 몇 번 짖더니 마구 물었다. 장무기는 손
가락을 뻗어 한 놈씩 코에다 튕기자 세 마리의 개는 즉시 쓰러지
며 당장 뻗어 버렸다.

그는 손가락을 튕기자 세 마리의 큰 개가 즉사할 줄은 정말 뜻
밖이었다. 그는 구양신공의 위력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 자의 신음소리가 무척 희미하게 들리자, 그는 물었다.

"형씨, 개들한테 심하게 물렸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난..... 이미 끝장났소! 난... 난..."

장무기가 말했다.

"난 두 다리가 부러져 걸을 수가 없으니, 힘이 들더라도 이쪽으
로 기어오세요. 상처를 좀 봅시다."

"알았소."

그 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장무기와 일 장쯤 되는 거
리까지 오더니 윽! 하고 소리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곤 다시는 움
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비록 가까왔지만 한 사
람은 다리가 부러져 가지 못하고, 한 사람은 이쪽으로 오지를 못
하는 처지가 됐다.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형씨, 어디를 다쳤소?"

"가슴이요. 그리고 배를 개에게 물려 창자가 튀어나왔습니다."

장무기가 크게 놀랐다. 창자가 튀어나왔다면 살기는 힘들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 개들이 왜 당신을 쫓았습니까?"

그 자가 대답했다.

"밤에... 산돼지를... 농사를 망쳐 놓을까 봐 쫓으러 나왔다가
주가의 큰 소리가..... 어느 공자와 나무 밑에서 말하는 것을 보
고 가까이 가서 볼려고..... 윽.....!"

그는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는 말을 끝맺지는 못했지만, 장무기는 다 들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은 분명 주구진과 위벽이 밤에 몰래 만나다 농부에
게 들키자 주구진이 개를 풀어 죽이려 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불현듯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연신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는 바로 주구진이었다. 개떼를 부르
고 있는 것이었다.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며 두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에는 두 남녀가 타고 있었다. 여자가 갑자기
소리쳐 말했다.

"아니, 어째 평서장군(平西將軍)들이 다 죽어 있지?"

그녀는 바로 주구진이었다. 그녀는 기르는 개들에게 여전히 장
군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녀와 같이 달
려온 사람은 바로 위벽이었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여기 두 사람의 시체가 있는데?"

장무기는 속으로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만약 이쪽으로 와 나를 해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주구진은 농부의 창자가 튀어나오고 죽은 모습이 공포스럽고,
장무기는 옷이 떨어지고 남루하며 머리는 산발인데다 온 얼굴에
수염이 나 있고 꼼짝도 하지 않자, 개에게 물려서 죽어 있는 줄
알았다. 그녀는 위벽과 정담을 나누기 바빠 여기서 더 이상 지체
하기 싫었다.

"오빠, 가세요! 이 두 놈이 죽으면서 발버둥치느라 내 세 장군
과 같이 죽은 모양이에요."

라고 말하며 말머리를 돌려 서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위벽은 개
세 마리가 다 죽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주구진이 멀
리 달려가자 자세히 살피지 않고 말에 올라 뒤따라 달려갔다.

장무기는 주구진의 교소(矯笑)가 멀리서 들려 오는 것을 듣고
정말 화가 치밀었다. 오 년 전 그는 그녀를 하늘과 같이 받들었
었다. 그저 그녀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자기는 칼끝이나 기
름솥이라도 뛰어 들어 갔었다. 그러나 오늘 밤 보니 왠지 모르게
그녀에 대한 매력이 모두 종적을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

장무기가 그녀를 향했던 열정은 뜨겁기도 빨랐지만 식기도 빠른
것이었다. 훗날 자기의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아연 실소를 할 그
런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굶주려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
다. 그저 죽은 개 다리라도 뜯어서 먹고 싶었다. 그러나 주구진
과 위벽이 다시 돌아오면 자기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발견할 것
이고, 또 자기의 대장들을 뜯어먹은 것을 보면 자기를 죽일 것이
두려웠다. 다리가 부러졌으니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튿날 아침, 독수리 한 마리가 시체와 죽은 개들을 발견하고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내려왔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시체와
죽은 개를 뜯지 않고 묘하게도 목을 무기의 얼굴을 덮치는 것이
었다. 장무기는 손을 뻗어 독수리의 목을 잡아 간단히 비틀어 죽
였다. 그는 너무나 기뻐서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이런 아침 식사가 내려올 줄이야....."

그는 독수리의 털을 뽑아 버리고 다리를 찢어 씹기 시작했다.
날것이긴 했지만 삼 일을 굶었으니 꿀맛이었다.

독수리로 굶주린 배를 채운 장무기는 눈 위에 누워 조용히 상처
가 낫기를 기다렸다. 그의 옆에는 세 마리의 죽은 개와 시체 한
구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 겨울이라 시체가 썩지 않았다.
그는 고독한 생활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별로 고생스럽게 느껴
지지도 않았다.

그날 오후, 그는 내공을 한 번 운공해 보았다. 독수리 두 마리
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한참이 지나도 내려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한 마리가 밑으로 쏜살같이 내려오더니, 그와 약 석 장되는 거리
에서 갑자기 다시 위로 날으는 것이었다. 독수리의 몸집이 방향
을 돌릴 때의 자세는 정말 아름답고도 오묘했다. 그는 갑자기 떠
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렇게 갑자기 자세를 돌리는 것을 무공에다 사용할 수 있다
면, 적이 감히 방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일격을 명중시키
지 못하더라도, 가볍게 멀리 떨어질 수도 있으니 적이 반격하기
도 어렵겠구나."

그가 연마한 구양진경은 순전히 내공과 무학의 경지에 속한 것
이었다. 공방(攻防)의 초수(招數)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년 각원대사가 이 신공을 익혔지만, 소상자와 하족도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조금도 방어할 줄
몰라서 장삼봉은 그 자리에서 양과에게 사초(四招)를 전수받고
윤극서와 대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무기는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워서 기초가 각원이나 장삼봉보
다 뛰어났지만, 사손이 그에게 전수한 것은 순전히 권술의 결규
이었다. 실용적인 일초일식의 법문이 아니었다.

장무기는 이제서야 의부(義父)의 고심을 알 수 있었다. 의부의
무공은 너무 넓고 깊어 만약 순서대로 조금씩 점진적으로 해석하
며 전수한다면, 이십 년이 걸려도 다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는 같이 있을 날이 얼마되지 않을 것을 알고, 그저 상승 무술의
요결만 꼭 기억하게 하고 나중에 자신이 터득하라고 할 생각이었
던 것이다. 장무기가 배운 권술은 단지 부친이 뗏목위에서 전수
해 준 삼십이세(三十二勢) 무당장권(武當掌拳)뿐이었다. 그가 바
라는 것은 지금부터 계속 구양진공을 연습하고 더 정진하는 것과
자기가 연마한 상승 내공을 어떻게 해서 사손이 가르쳐 준 무술
에 융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낙엽이 떨어
지는 것이나 나무가 하늘로 치솟는 것이나 초수의 움직임, 심지
어 풍운의 변화까지 모두 무공의 초수로 생각하고 연구하였다.

이때 하늘의 그 독수리는 내려오다말다 올라갔다 하여 별의 별
자태를 나타내, 장무기는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멀리서 사람이 눈 위를 걸어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이 아기자기한 것이 여자인 듯 하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대바구니를 팔에 끼고 빠른 걸
음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눈 위에 시체와 죽은 개들을
보자, 앗! 하고 놀라며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장무기가 자세히 살펴보니 실 칠팔 세 가량된 소녀였다. 차림새
를 봐 농촌의 빈녀(貧女)였다. 얼굴이 까맣고 안면이 부어 올라
울퉁불퉁한 것이 매우 추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얼굴 모양은 꽤
예뻐 보였고 몸매도 매우 날씬했다.

그녀는 가까이 와 장무기가 쳐다보는 것으로 보고 약간 놀라면
서 말했다.

"아직 안 죽었어요?"

"아직 안 죽은 것 같소."

장무기가 말했다.

이상한 물음에 둘은 서로 잠시 생각하더니 그만 웃음을 터뜨렸
다. 소녀도 웃으며 말했다.

"죽지 않았다면 왜 여기 누워 꼼짝도 하지 않죠? 깜짝 놀라게."

장무기가 대답했다.

"난 산 위에서 떨어져 두 다리가 부러져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누어 있는 겁니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이 사람은 당신과 일행입니까? 왜 또 개 세 마리가 죽어 있
죠?"

"이 개들은 정말 악랄한 놈들이요. 이 형씨를 물어 죽였소. 결
국 자기들도 죽었지만."

소녀가 다시 물었다.

"여기 누워 있으면 어떻게 해요? 배가 고프지 않으세요?"

"물론 고프지만 어찌 합니까? 하늘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바구니에서 보리떡을 두 개 꺼내어 장무
기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하고 대답하며 그것을 얼른 받았지만 먹지는 않았다.

소녀가 물었다.

"거기에 독이 들었을까 봐 그러세요? 왜 안 먹는 거죠?"

장무기는 오 년이란 세월 동안 주장령과 가끔 동굴 사이로 말을
몇 마디 나눈 것이 고작일 뿐, 누구와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 비록 추악한 소녀였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자 매우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가 준 것이라 아까워서 안 먹는 거요."

그의 말엔 어느 정도 희롱의 뜻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항상 성실
하고 중후해서 절대로 말로 누구에게 까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 앞이고 마음이 가벼워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소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노기를 보이며 코웃음을 쳤다. 장
무기는 즉시 후회스러웠다. 그는 얼른 보리떡을 들어 입에 물었
다. 너무 급하게 먹어 사래가 들어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소녀는 다시 재미있어 하며 입을 열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이 사람을 사래가 들어 죽게 해주세요. 당
신처럼 못생기고 추악한 사람은 필시 좋은 사람이 아닐 거야. 그
래서 하늘이 벌을 내린 거야. 왜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하필 이런 당신의 다리를 부러뜨렸을까요?"

장무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오 년 동안 머리손질도 하지 않고 얼굴을 깨끗이 씻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추악해졌겠지. 그러나 너도 별로 예쁘진 않아.
우리 둘을 서로 반반이야. 누가 누굴 나무랄 수 없어.'

그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말했다.

"난 이미 여기서 구 일 동안이나 누워있었소. 다행히 아가씨를
만나 나에게 먹을 것을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내가 물었잖아요. 왜 다른 사람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당신
의 다리가 부러졌느냐고? 대답 안 하면 먹을 것을 다시 뺏어가겠
어요."

장무기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니 눈에 교활한 빛이 보여 내심
놀라며 생각했다.

'이 소녀의 눈빛이 왜 어머니를 닮았을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
기 전 그 소림사의 노화상을 속일 때 바로 이런 눈빛이었어.'

그렇게 생각하지 그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나와 울고 말았다.

소녀는 픽하고 소리내더니 말했다.

"안 뺏으면 그만이지. 울기는 왜 울어요? 이제보니 아무 쓸모
없는 바보였군요."

"당신의 보리떡이 탐나서가 아니에요. 어떤 한 가지 일이 떠올
라서였소."

소녀는 돌아서서 두 걸음쯤 걷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

"무슨 생각이예요? 당신 같이 멍청한 사람도 생각할 게 있나
요?"

장무기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가 생각난 거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말이요."

"보리떡을 만들어 주셨나요?"

"그랬었긴 하지만 그것이 생각난 게 아니라, 당신이 웃을 때 꼭
우리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서였었소."

소녀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미친 놈? 내가 그렇게 늙었단 말인가요?"

그러면서 마른 나뭇 가지를 주워 장무기의 몸을 두 번 후려쳤
다. 장무기가 그녀 손의 나뭇가지를 뺏는 것은 무척 쉬운 노릇이
었다. 그러나 그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소녀는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아름다우셨었는지 몰라. 그러
나처럼 이렇게 못 생긴 줄로만 알고 저 Ь게 화를 내는구나.'

장무기는 아무 반항 없이 두 대를 맞으면서 말했다.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만 해도 무척 아름다우셨소."

소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가 못 생겼다고 놀리는 거예요? 살기 싫은 모양이지? 다리를
잡아 당길까봐."

그리고 허리를 굽혀 그의 다리를 잡아당길 자세였다.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다리가 이제 다 완치되려고 하는데, 만일 이 소녀
가 잡아 당기면 큰일이 아닌가? 그는 잽싸게 눈뭉치를 움켜 쥐었
다. 만약 소녀가 자기의 다리를 잡아당기면 즉시 그녀의 매심혈
을 내리쳐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그 소녀는 자기를 겁네 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겁에 질린 모습 좀 봐. 왜 나를 놀리려고 하죠?"

"내가 만약 아가씨를 놀릴 생각이었다면, 이 다리가 다 낳고 난
후에 그랬을 거요. 다시 부러진다면 평생 절름발이가 될거요."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러면서 그의 옆에 앉았다.

"당신 어머니가 미인이었다면, 왜 나하고 비교하죠?그럼 나도
아름답다는 말씀이예요?"

장무기가 대답했다.

"나도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그저 아가씨가 우리 어머니를
닮은 것 같소. 아가씨는 우리 어머니보다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난 아가씨를 좋아하오."

소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장무기의 이마를 튕기며 웃었다.

"착한 아들, 그럼 나를 엄마라고 부르시지?"

그 말을 하고 난 소녀는 자기도 말이 좀 이상했다고 느꼈는지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참지 못하고 그녀는 웃
음을 터뜨렸다.

장무기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자 빙화도에서 자랄 때, 어머니
와 아버지가 항상 이렇게 활발하게 지내셨던 기억이 나, 갑자기
이 추하게 생긴 소녀가 청아하고 풍치가 있어 보이며 전혀 추하
게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만 멍청히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
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장무기의 멍청한 모습을 보자, 웃으며 말했
다.

"왜 나를 좋아하는 거죠?"

장무기는 한참 멍청히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르겠소. 그저 아가씨를 쳐다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아
가씨가 무조건 나한테 잘해 줄 것 같고, 나를 못학게 굴지 않을
것 같소."

"하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평생 사람을 해치는 걸
제일 즐거워하는 사람이에요."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나뭇 가지를 들더니 그의 부러
진 다리를 두 번 때렸다. 그러면서 재빨리 일어나 뛰어가는 것이
었다. 공교롭게도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부러진 부위
를 낮고 장무기는 그만 고통을 참지 못해 소리쳤다. 소녀는 깔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입을 삐죽거리며 그를 놀렸다.

장무기는 그녀가 점점 멀어짐과 동시에 자기의 통증도 점점 참
기 어렵게 아파오자 내심 생각을 굴렸다.

'여자들은 모두 사람을 해치는 여우들이야. 아름다운 여자들이
사람을 해치기를 좋아한다더니 못 생긴 것도 이렇게 골탕을 먹이
다니.....'

그는 이날 밤 몇번이고 그 소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몇번이
고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여러차레 엇갈려 꿈에 나타나니 누가
어머니인지 소녀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꿈 속의 그 얼굴
이 아름다왔던 것인지 추한 것인지도 분별할 수 없었다. 그저 자
상하고도 교활한 눈초리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기와 장난하던 것도 꿈꾸었다. 어머니는 자주 자
기를 넘어뜨리고, 자기가 넘넝져 울면 다시 끌어안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는 갑자기 깨어나 여지껏 한 번도 생각 못했던 의혹이 떠올랐
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남이 고통받는 것을 좋아했지? 의부의 눈
도 어머니가 멀게 했고, 유사백께선 그녀의 손에 불구가 되셨고,
임안부 용문표국 사람들을 모두 몰살한 것도 어머니였으니, 어머
니는 도대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이었는가?'

그는 반짝거리는 별들을 쳐다보며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그 분은 나의 어머니야.'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난 정말 그분을 무척 사랑해 드
릴 텐데.'

그는 그 소녀가 왜 아무 이유 없이 자기의 부러진 다리를 때렸
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그녀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아퍼서 소리치는 것을 보
고서 기뻐했지. 그렇다면, 그녀는 정말 사람 해치기를 좋아한단
말인가?'

그녀가 다시 오기를 기대했으나, 또 한편으론어떻게 자기를 골
탕먹일까 하고 겁이 났다.

그는 옆에 반 샬 먹다남은 보리떡을 들자 그 소녀가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아름답다면, 왜 나와 비교하시죠? 나도 아름다운가
요?>

그는 그 말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름다워, 네가 보고싶구나."

그는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또 이틀을 보냈다. 그 소녀
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오후, 그 소녀는 바구니를
끼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못 생긴 사람, 아직도 안 죽었나?"

장무기는 웃으며 대답했다.

"반은 굶어 죽었소. 나머지 반만 살아 있소."

소녀는 히히 웃으며 장무기의 옆에 앉더니, 갑자기 부러진 다리
를 걷어찼다.

"이 반쪽은 죽은 쪽인가요. 산 쪽인가요?"

장무기는 외마디 비명을 외쳤다.

"아가씨는 왜 그리 양심이 없소?"

"무슨 양심? 왜 당신을 잘 대해 주지 않느냐 이 말인가요?"

"아가씨는 삼 일전 나를 아프게 했지만, 난 조금도 미워하지 않
았소. 매일 아가씨 생각만 했소."

소녀의 얼굴이 빨개지며 화를 내려고 했다.

"누가 당신처럼 못생긴 남자에게 나를 생각해 달라고 했나요?
나를 생각했다면 좋은 일이 아닐 거야. 아마 나를 추하고 악랄하
다고 욕했을 거야."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은 추하게 생기지 않았소. 그런데 왜 남의 골탕먹는 것을
보면 좋아합니까?"

소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난 골탕을 먹이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요."

소녀는 장무기가 못마땅해 하는 모습과 아직도 반쯤 남아 있는
보리떡을 보며 말을 건넸다.

"왜 맛이 없나요. 아직도 남아 있으니."

장무기가 말했다.

"아가씨께서 준 것이라 아까워서 다 안 먹었소."

그가 삼 일 전에 이 말을 할 땐 조금은 희롱조가 있었는데, 지
금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소녀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수줍어했다.

"신선한 보리떡을 가져왔어요."

그러면서 바구니에서 먹을 것을 많이 꺼내왔다. 보리떡 외에도
닭고기, 그리고 구운 양고기까지 있었다.

장무기는 매우 기뻤다. 비린내나는 날독수리만 먹다가 향기가
코를 찌르는 맛있는 음식을 보자 뜨거운 것도 아랑곳없이 마구
먹어댔다.

소녀는 그가 정말 맛있게 먹는 것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추남자, 당신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내 기분도 좋은데요?"

장무기가 말했다.

"남이 즐거워하는 거슬 보고 당신도 즐거워하는 게 바로 진정한
즐거움이요."

소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지금은 기뻐서 당신을 해치지 않지만, 언젠가는 또 당신을
골탕먹이러 올 거예요."

장무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골탕만 먹고 살아왔기 때문에, 골탕
먹을수록 더 견고해지는 사람이요."

소녀는 냉소를 지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앞으로 두고봐요!"

장무기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내 다리만 다 나으면 멀리 떠나갈 것인데, 나를 골탕먹이고 해
칠려고 해도 그 땐 나를 찾지 못할걸?"

"그럼 지금 다시 다리를 부러뜨려, 아주 평생 여길 못 떠나게
해 버릴까요?"

장무기는 그녀의 차가운 음성에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녀의 말을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절대로 농담으로 하는 말 같
지가 않았다.

소녀는 장무기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당신같이 추남도 나한테 어울리나요?"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그가 아직 다 먹지도 않은 음식을 뺏어
멀리 던져 버리고, 장무기를 향해 침을 툇하고 뱉었다.

장무기는 그저 그녀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순간 그는 그녀가
절대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절대 자기를 천시하는 것도 아니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처참한 모습에서 말 못할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몇 마디 위안
의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소녀는 장무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외쳤다.

"이 추남아,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장무기가 물었다.

"아가씨, 왜 그리 우울해 하는지 나한테 말하면 안 되겠소?"

소녀는 그가 부드럽게 말을 꺼내자 갑자기 그의 옆에 주저 앉더
니, 얼굴을 감싸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장무기는 그녀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자,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해 낮은 소리로 물었다.

"누가 못살게 굴었나요?"

소녀는 얼마를 울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못살게 한 사람은 없어요. 내 팔자가 원래 사나워서 그런거죠.
내 자신이 못난 것을 알면서도 어느 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두다니....."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어느 젊은 남자죠? 아가씨한테 못되게 굴었죠?"

"그래요. 그 사람은 아주 영준합니다. 그러나 아주 오만해요.
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해서 평생 같이 있고 싶은데, 그 사
람은 끝까지 싫대요. 그것도 모자라 나를 욕하고 때리고 나를 돕
기까지 했어요."

장무기는 노기띤 음성으로 물었다.

"그 자가 그렇게 야만스럽다면, 아가씨는 이제 그 자를 다시는
아는 척하지 말아요."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서 그 사람이 지워지지 않아요. 그는 나를
피해 멀리 떠났지만, 난 사방으로 그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
요."

장무기는 내심 생각했다.

'남녀 간의 애정이란 인력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가씨
는 좀 못생기긴 했지만 마음만은 일편단심인 것 같다. 이 소녀의
성격이 괴팍한 것도 너무나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실망이 너무 커
서 그런 것이다. 그 남자는 과연 누굴까?'

"아가씨, 그렇게 상심할 것 없소. 세상에 좋은 남자는 많죠. 하
필이면 양심없는 악한을 그렇게 못 잊어 하시요?"

소녀는 긴 한숨을 쉬고 나서 멍청히 먼 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시종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다
시 말을 건넸다.

"그 남자는 그저 아가씨를 욕하고 때리기만 했지만, 내가 겪은
고통은 아가씨에 비하면 열 배는 넘을 거요."

소녀는 의아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왜죠? 당신도 아름다운 여자에게 속은 적이 있어요?"

".....사실 원래는, 그녀가 나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혼자서 멍청하게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바라보곤 했소.
사실 난 그녀에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녀와 그녀의 아
버지가 몰래 독계(毒計)를 써서 나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버렸
소."

그러면서 그는 옷소매를 걷어 팔뚝의 상처 자국을 보여 주었다.

"이 이빨 자국이 모두 그녀가 기른 개들에게 물린 거요."

그녀는 상처 자국을 보자 갑자기 화를 내며 물었다.

"혹시 주구진, 그 천한 년의 짓이 아닌가요?"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요?"

".....그 천한 년이 개를 키우는 것은 수백 리 안에 사는 사람
은 모르는 이가 없지요."

장무기는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소. 주구진 낭자요. 그러나 지금은 상처가 다 나았으니 아
프지도 않고, 다행히 죽지도 않았으니 이젠 그녀를 미워할 필요
도 없습니다."

소녀는 장무기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장무기의 얼굴이 담담
하고 평화스러워 보이자 그녀는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그에게 물
었다.

"이름이 뭐예요? 어디서 왔죠?"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중토(中土)에 오자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의부의 소식을
알기 위해 나를 핍박하고 기만하는 등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나
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오늘부터 장무기란 사람은 이미 죽
고 세상에 없다고 치자. 그리고 이 세상엔 누구도 금모사왕 사손
의 소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이제부터 주장령보다
열 배가 더 악독한 사람을 만난다 해도, 이젠 더 이상 그 수에
말리지 않을 거야.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내 의부를 해치게 하는
일은 다시는 없게 할 테다.'

그는 소녀에게 말했다.

"이름은 아우(阿牛)라고 하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성은요?"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성이 장,은,사 모두 안돼. 장(張)과 은(殷) 두 글자 사이의 발
음인 증(曾)으로 해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무기는 얼른 대답했다.

"증(曾)가 올시다. 소녀의 성은 무엇이오?"

소녀는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난 성이 없어요. 내 친아버지는 나를 버렸을 뿐 아니라, 나만
보면 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버지의 성을 따르겠어요?
우리 어머니는 제가 돌아가시게 했어요. 그러니 그 분의 성도 따
를 수도 없잖아요. 내가 생김새가 못났으니, 나를 추(醜)낭자라
고 부르세요."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를 죽였다구요? 어떻게 그럴 수가.....?"

소녀는 탄식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 사연을 말하자면 너무 길어요. 사실 나를 낳은 친어머니는
아버지의 정실이었어요. 그런데 애기를 낳지 못해 아버지는 다시
둘째 부인을 얻었어요. 그분은 나의 두 오빠를 낳았죠.자연히
아버지는 그 어머니만 사랑했어요.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우리 어머니를 못살게 괴롭혔어요. 그런데 후에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어요. 그런데 딸이 태어난 거죠. 그 둘째 부인과 두 오빠
는 더욱더 우리 어머니를 괴롭혔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눈
물만 흘리셨어요."

장무기가 말을 받았다.

"당신의 아버지는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바로 그거예요. 아버지가 둘째 부인만 사랑하는 것에 화가 치
밀어 제가 단칼에 둘째 엄마를 죽여 버리게 된 거예요."

장무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림에서는 싸움이나 살인
은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이런 농촌 소녀까지도 살인을 하다니 정
말 뜻밖이었다.

소녀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큰일을 저지르자 나를 데리고 즉시 도망을 쳤으
나, 두 오빠가 쫓아와 나를 잡아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나를 살리기 위해 그만 자살을 한 겁니다. 그게 바로 내가 어머
니를 죽인 것이 아니고 뭐예요. 아직도 우리 아버지는 나를 보면
죽이려고 해요."

장무기는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
렸다.

'나의 부모가 다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셨을 때 나를 얼마나 사
랑해 주셨던가! 이 소녀의 경우와 비교하면 난 정말 천 배 만 배
나 행운아였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소녀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 부드러
운 음성을 물었다.

"집을 나온 지 오래 됐소? 지금까지 혼자서 지내왔소?"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세상이 이렇게 넓으니 동쪽이나 서쪽, 아무
데나 가보는 거지요. 그저 우리 오빠를 만나지 않으면 돼요."

장무기는 갑자기 동병상린의 생각이 들었다.

"내 다리가 다 나으면 내가 아가씨와 같이 낭자가 잊지 못하는
남자를 찾아다니겠소. 그래서 도대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주겠소."

장무기가 이렇게 말하자 소녀가 말을 받았다.

"만약, 그가 또 나를 욕하고 때리면 어떻게 하죠?"

장무기는 앙연한 태도로 말했다.

"흥! 가만 두지 않겠소."

"만약 그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
다면은요?"

장무기는 아연실색해져서 할 말이 없었다. 한참 멍청히 생각하
고 나서 입을 열었다.

"힘 닿는 데까지 해보리다."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추남자, 그 사람이 당신의 말을 순순히 들어 줄 것 같아요? 그
리고 내가 아무리 찾아도 도저히 생사를 알 수 없는데, 당신도
별수 없을 거예요. 하하하.....?"

장무기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그만 얼굴이 붉어져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녀는 그가 주춤주춤하는 모습을 보자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죠?"

장무기는 자못 불쾌한 어조로 투덜거렸다.

"나를 비웃는 것은 그만 하시오."

소녀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흥! 기껏해야 한 번 더 웃은 것뿐인데, 그까짓 웃음으로 사람
을 죽이는 사람도 있나요?"

장무기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난 당신한테 호의를 베풀려고 한 것인데, 그렇게 비웃을 수 있
단 말이오?"

"다시 묻겠는데, 나한테 뭐라고 말하려고 그랬죠?"

"당신이 고독하고 갈 곳이 없는 것이 나와 처지가 같소. 나한테
는 부모형제 아무도 없소. 그 나쁜 남자가 만약 당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내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소. 서로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으니 말이오. 그런데 내가 당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소녀는 벌컥 화를 냈다.

"물론 어울리지 않아요. 그 악한은 당신보다 백 배나 더 미남이
고, 백 배나 더 총명해요. 내가 여기서 당신과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정말 재수가 없군."

그러면서 땅에 떨어진 음식을 아무렇게나 발로 걷어차더니, 얼
굴을 가리면서 쏜살같이 뛰어 나갔다.

장무기는 무안을 당했지만 왠지 화가 나지 않았다.

"정말 불쌍한 아가씨로군. 마음이 아플거야. 그녀를 나무랄 수
도 없지."

갑자기 소녀가 다시 뛰어오더니 이를 악물고 외쳤다.

"이 추남아, 내 말이 거슬리지? 나처럼 못 생긴 여자가 당신을
우습게 본다고.그렇지?"

장무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가씨의 얼굴은 별로 예쁘지 않지만, 그래서 첫눈에
반했소. 만약 아가씨가 추하게 변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옛날과
같이....."

소녀는 깜짝 놀라며 다시 외쳤다.

"당신이 어떻게 내가 그 전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죠?"

장무기가 대답했다.

"오늘 아가씨의 얼굴은 내가 처음봤을 때보다 더 무섭게 부어
올랐습니다. 피부색도 더 까맣게 변했구요. 태어날 때부터 그렇
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요?"

소녀는 더욱 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요 며칠 거울을 볼 용기가 없었는데, 그럼 내가 더 보기 흉해
졌단 말인가요?"

장무기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사람이란 그저 마음만 착하면 되지. 용모가 무슨 상관 있소.
우리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마음이 더 고
약하고, 더 사람을 잘 속이니 항상 조심하라고 하셨소."

소녀는 그의 어머니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조급하
게 물었다.

"처음 나를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추하게 변하지 않았었나요?"

장무기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그녀가 분명 상심할 것이라 생각
하고 멍청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에 동정과 연민이 충
만해 있었다.

소녀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미리 그가 대답할 말을 짐작한 듯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하더니,

"추남자, 당신이 미워! 밉단 말이에요!"

라고 소리치며 미친듯이 달려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
았다. 장무기는 또 이틀을 누어 지냈다. 밤이 되자 늑대 한 마리
가 냄새를 맡고 가까이 왔다. 장무기는 한 주먹에 늑대를 죽여
버렸다. 이 늑대는 먹을 것을 찾다 오히려 남의 먹이가 된 것이
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다리도 많이 완치되었다. 이제 약 십 여일
만 지나면 일어나 걸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심
그 촌녀(村女)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 섭섭했고 이름을 알아
두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다.

그리고 왜 점점 그녀가 추하게 변해 가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밤이 깊었을까. 잠결에 멀리서 누군가 눈 위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즉시 일어나 앉아 발걸음이 나는 쪽을 바
라보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어렴풋이 일곱 명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맨 앞의 사람은 바로 그 촌녀였다. 그런데 그녀 뒤의 여
섯 명은 부채꼴 모양으로 서서 그녀가 행여나 도망갈까 봐 방비
하는 태세인 것 같았다. 장무기는 흠칫 놀라며 내심 생각을 굴렸
다.

'혹시 그 소녀가 자기 오빠들에게 잡힌 게 아닌가?'

그 소녀와 여섯 명이 이미 가까이 왔다. 순간 장무기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여섯 명은
바로 무청영(武靑瓔), 무열(武烈), 위벽, 하태충(何太忠), 반숙
한 부부, 그리고 맨 오른쪽엔 중년 여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바로 아미파의 정민군(丁敏君)이었다.

장무기는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 소녀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과 아는 사이지? 그렇다면, 이
소녀는 무림인인가? 나의 원래 모습을 알아 보고 이들을 데리고
나를 붙잡으러 왔단 말인가! 내 의부의 행방을 알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만
화가 치밀고 말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을 굴렸다.

'지금은 내가 다리를 다쳐서 꼼짝달싹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여
섯 명은 모두 고강한 무공을 갖고 있고, 어쩌면 이 촌녀도 무공
이 무서운 소녀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들에게 굴복하고 의부를
찾아 주겠다고 한 다음 다리가 완치된 후 일일이 복수를 해야
지.'

만약 오 년 전이라면, 그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상대가 어떤 강
압과 핍박을 해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들어 머리를 쓸 줄 알았고. 거기다 구양진경의 신공을 익
혀 마음을 진정시킬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촌녀가 자기를 팔 줄은 정말 천만의 뜻밖이었다. 그
는 크게 분개하며 그만 마음이 슬퍼왔다. 그는 아예 누워 팔을
베개삼고 일곱 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소녀는 그에게 가까이 걸어와 조용히 그를 쳐다보더니, 얼마 후
다시 되돌아갔다.

장무기는 그녀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매우 낮은 소리
였으나, 애상이 가득 차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악독한 계략을 꾸미길래, 갑자기 나를 가련하게 생
각하는 거지?'

순간, 위벽이 수중의 장검을 쳐들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다는 얼굴이 저놈이냐? 행여나
잘 생긴 영준한 소년인 줄 알았더니, 이렇듯 몰골이 추악한 놈이
었구나. 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이놈은 정말 너하곤 천생의 배
필감이구나!"

촌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죽기 전에 저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저 사람에게 한 마디 묻고 싶어서였다. 대답을 듣기 전에는 죽어
도 눈을 감을 것 같지가 않았다."

장무기는 너무나 의아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촌녀의 말이 들려왔다.

"한 마디 묻겠는데, 사실 대로 대답해 주세요."

장무기가 말했다.

"나에 관한 일이라면, 물론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모르겠소."

그는 이 촌녀가 의부의 소재를 물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그렇
게 대답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날 당신이 나한테 말하기를 내가 돌아
갈 집도 없으니 나의 반려가 되고 싶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냐는
것이에요."

장무기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빛에 애상이 가득해 보였다. 장무기가 말했다.

"진심이요."

촌녀가 다그쳤다.

"정말 내 이 추한 모습이 실지 않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평생
나와 지낼 수 있나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평생이라니! 그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처
절한 모습에 그만 안타까워 입을 열었다.

"추하고 아름다운 것에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소. 만약 당신이
나를 이상히 생각치 않고 평생 같이 대화하고 웃으며 지낸다면야
나야 물론 좋소. 그러나 나를 속이고 내 입에서....."

촌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다시 다그쳤다.

"그럼 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거죠?"

장무기는 더욱 당황해 하며 한참 후에야 더듬더듬 말했다.

"난..... 한 번도 결혼할 생각을 한 적....."

하태충 등 여섯 명은 모두 크게 웃었다.

위벽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못 생긴 촌놈도 너를 맞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데,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에 살아서 무슨 재미가 있겠느
냐? 일찌감치 바위에 부딪쳐 죽는 게 나을 거다."

장무기가 여섯 명의 놀림과 위벽의 말을 듣고, 이 촌녀가 이 여
섯 명과 한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소녀를 죽
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소녀가 자기를 해치려고 사람들을 데리
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그는 마음에 따듯한 느낌이 들
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런 비참한 그녀의 모습이 안스러워 갑자기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자기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떠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달림을 받아왔는가! 이 약한 소녀는 나
이도 자기보다 어리고 신세도 자기보다 더 불행하다. 이 소녀를
상심시키고 굴욕을 당하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이 소녀가 그렇게
물을 때는 자기 자신을 꺾고 솔직한 태도였는데, 내 일생에서 부
모, 의부, 태사부, 그리고 사백, 사숙 외엔 누가 나를 이렇게 관
심있게 대해 주었던가! 서로 잘 대해 주고 목숨을 같이 의지하는
게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소녀를 보니, 소
녀는 몸을 떨며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장무기는 얼른 왼
손을 뻗어 그녀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진심으로 당신을 신부로 맞아들이겠소! 다만 내가 어
울리지 않는다고 하지 마시오!"

소녀는 그 말을 듣자, 금방 눈에서 밝은 빛을 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우 오빠, 그 말이 사실입니까?"

"물론이오. 오늘부터 나도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보살필거요.
어느 누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안전
하게 보호할 것이요. 당신이 옛날의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편안
하고 기쁘게 해 줄 것이오."

소녀는 그의 옆에 앉아 그의 몸에 기대어 나머지 한쪽 손을 잡
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 기뻐요."

소녀는 눈을 감으며 다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한 자 한 자 모두 꼭 기억하게요. 나
를 어떻게 대한다고 하셨죠?"

장무기는 그녀가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자 자신도 기뻐하며 그
녀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전해졌다.

"당신을 평생 즐겁게 해줄 것이오. 지금의 고통을 모두 잊어 버
리고 누가 괴롭힌다면 내 목숨을 바쳐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오."

소녀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기대어 부
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

"전에는 나를 욕하고 때리고 물어뜯더니 이제 와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 정말 기뻐요."

장무기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싸늘해졌다.

장무기를 자기의 정인으로 착각하고 환상에 젖이 있었던 것이
다. 그녀는 장무기의 갑작스런 태도에 직감적으로 깜짝 놀라 눈
을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
실망과 분개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아우 오빠, 나같이 못 생긴 여자를 신부로 맞이한다니 정말 감
격했어요. 그러나 벌써 몇 년 전에 내 마음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됐어요. 그 때 그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내 이
꼴을 보면 더욱 나를 모른 척할 거예요."

무청영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너를 아내로 맞이 하겠다고 했고 정담도 나눴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그 촌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우 오빠, 난 이제 곧 죽을 몸이에요. 내가 죽지 않는다 해도
절대로 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어요.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가끔씩 저를 생각해 주세요."

그녀의 이 몇 마디는 부드럽고도 달콤했다. 장무기는 가슴에 찡
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때 반숙한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제 너의 소원대로 이 사람과 만나게 해 주었으니, 너도
신용을 지켜 저 자의 정체를 밝혀라!"

촌녀가 대답했다.

"좋아요. 난 언젠가 이 사람 집에 숨었던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무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열은 안색이 확 변하며 소리쳤다.

"헛소리마라!"

위벽이 벌컥 화를 냈다.

"사실대로 말해라! 누구의 지시를 받고 내 누이 동생을 죽였는
지!"

장무기는 정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음
성으로 물었다.

"아니, 주구진 낭자가 죽었단 말인가요?"

위벽이 장무기를 노려보며 이를 갈더니 말했다.

"너도 주구진 낭자를 아느냐?"

장무기가 대답했다.

"설령쌍매(雪嶺雙妹)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청영이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며 촌녀를 향해 큰 소리로 다그
쳤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촌녀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나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곤륜파의 하태충 부부와 아미파의
멸절사태입니다."

무열이 일성대갈했다.

"이간질을 시키지 마라! 그래도 소용없다!"

그러면서 팍! 하고 촌녀를 향해 일장을 뻗었다. 그의 우렁찬 소
리와 동시에 뻗은 일장은 위력이 상당했다. 순간, 촌녀는 기묘한
신법으로 그의 장풍을 잽싸게 피했다.

장무기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 소녀는 진정 무인이었구나. 그녀가 주구진 낭자를 죽인 것
은 내가 그녀에게 속고, 또한 그녀가 키우는 개한테 물렸다는 말
을 듣고 한 짓이 분명해. 그렇지만, 내가 언제 죽이라고 시켰던
가! 그녀의 용모가 추하고 집안의 변고가 있어 성격이 괴팍하다
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주구진 낭자를 죽이다니.....!"

위벽과 무청영은 장검을 들고 좌우로 그녀를 협공했다. 그 촌녀
는 몸을 이쪽저쪽으로 비틀어 빠져 다니면서 그들을 피했다. 무
열의 웅후한 장력도 피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버들가지 같
은 허리를 옆으로 돌리더니, 무청영의 옆으로 다가가 팍! 하고
그녀의 뺨을 나서 잽싸게 왼손으로 그녀의 장검을 빼앗았다.

무열과 위벽은 크게 당황하며 그녀를 도우려고 접근했다. 촌녀
는 장검을 휘두르며 싹! 하는 소리와 이미 무청영의 얼굴에 핏자
국을 그렸다. 무청영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사실 가벼
운 상처였으나 용모를 아끼는 심정에 얼굴이 따끔하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무열은 촌녀를 향해 장풍을 휘둘렀다. 촌녀는 몸을 피하며 요란
한 금속성을 내며 위벽의 장검을 상대했다. 바로 이때 무열의 식
지(食指)가 움직이며 그녀의 왼쪽 다리의 복토(伏兎), 풍시(風
市) 양현을 찔렀다. 촌녀는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장무기의 몸에 쓰러졌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힘을쓸 수
가 없었다.

무청영은 장검을 치켜들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추녀야, 너를 속시원하게 죽일 것 같으냐? 네 두 팔과 두
다리를 잘라 늑대 밥이 되게 만들겠다!"

이렇게 말하며 촌녀의 오른팔을 향해 검을 내리치려고 했다. 순
간 무열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라! 누가 지시했는지 입을 열면 너를 속시원히
죽여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팔과 다리가 잘려서 눈위로 뒹구는
모습이 볼 만할 것이다!"

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할수 없지. 주구진 낭자가 어느 남자에게 시집 가려
고 하는데 어떤 아리따운 낭자께서도 그 남자에게 시집 가려했
지. 바로 그 여자가 나에게 은 오백 냥을 주고 주구진 낭자를 죽
이라고 부탁한 거야. 이 일은 내가 비밀을 지켜야 하는건데...."

그녀가 말을 계속 이어가려고 하자, 무청영은 이미 화가 치밀어
안색이 변하며 검을 뻗쳐 촌녀의 가슴을 향해 찌르고 말았다. 그
촌녀는 이미 무청영과 위벽, 그리고 주구진 세 사람의 관계를 알
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이렇게 무청영을 격노시킨 이유는 바
로 속시원하게 자기를 죽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갑자기 어느 무성무식(無聲無息)의 힘이 날아와 검과
부딪치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십여 장이나 날아가 떨어
졌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누구도 검이 어떻게 해서 그녀의 손에
서 떨어졌는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무청영 혼자서 내던져
다 해도 절대로 그렇게 멀리 내던질 수가 없었다. 촌녀에게 강한
후원자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여섯 명은 모두 놀라 뒤로 물러서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근처엔 바위나 나무들도 없어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그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의혹에 차 있을뿐
이었다.

무열이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청아야, 왜 그러느냐?"

무청영은 황급히 말했다.

"어떤 무서운 아미가 내 검을 튕겨나가게 한 것 같아요."

무열은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자, 촌녀를 향해
외쳤다.

"흥! 이 계집애가 한 짓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나의 일양지(一陽指)를 맞았는데, 무슨 힘이 아직 남아
있지? 이 계집아이의 무공은 정말 알 수 없군.'

그는 앞으로 나서며 손을 쳐들어 촌녀의 어깨를 향해 내리쳤다.
경력이 매우 웅맹한 일 장이었다. 그는 촌녀의 어깨를 으스러뜨
려 자기 딸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려고 한 행동이었다.

촌녀의 어깨가 으스러지려는 순간, 갑자기 촌녀의 손이 번쩍 들
렸다. 쌍장이 부딪치자 무열의 가슴이 뜨거워지며 촌녀의 장력은
마치 광풍노도와 같아 실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앗! 하는 비명과 함께 몸이 날리더니 퍽! 소리를 내며 멀리 나
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대단해 땅에 떨어지는
즉시 뛰어 일어났다. 그러나 가슴에 뜨거운 피가 들끓으며 머리
가 어지러워, 몸을 세우고 나자마자 제대로 호흡을 근절할 수 없
어 휘청거리다가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위벽과 무청영은 크게 놀라 얼른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태충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냥 내버려 둬!"

그 말에 무청영이 고개를 돌리며 노기띤 음성으로 외쳤다.

"뭐라고? 사부님이 암습을 당하셨는데, 넌 오히려 즐거워하며
놀리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태충이 말했다.

"기혈이 솟구쳤을 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좋아요."

위벽은 그제서야 말뜻을 알아차리고 사부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하태충과 반숙한 부부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서로 쳐다만 볼 뿐
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이 촌녀와 상대한 적이 있어 그녀의 초
술이 절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열에게 뻗은 일 장은 정
말 천하에 보기 드문 내력이었다.

한편, 촌녀는 이들보다 더욱 큰 의혹에 쌓여 있었다. 자신은 분
명 무열의 점혈에 당한 후 장무기의 가슴에 쓰러져 조금도 움직
일 수가 없어서 무청영이 찌르는 검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날아와 검을 튕겨내며 불덩이 같은 열기를
끊임없이 현종혈(懸鐘穴)을 통해 체내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녀는 너무나 빠른 변화에 생각할 틈도 없었다. 곧이어 무열의 장
풍이 내리쳐 엉겁결에 어깨 뼈가 으스러지지 않게 뻗은 것뿐인
데, 웬일이지 서로 장풍이 부딪치자 무열이 그 일 장에 저렇게
밀려 나가 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어리벙벙해 하며 내심 생각을 굴렸다.

'그렇다면, 이 추한 남자가 무공이 상당한 대고수란 말인가?'

하태충은 더 이상 촌녀와 장력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 검을 뽑으
며 말했다.

"내가 낭자의 검법의 가르침을 받아보지."

촌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에겐 검이 없는데요?"

위벽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좋아, 내가 빌려주지."

그러면서 장검을 들어 검 끝으로 촌녀의 가슴을 조준하고 힘껏
던졌다. 촌녀는 팔을 내둘러 그의 검을 낚아채고 웃으며 말했다.

"네 무공이 너무 미천해 아직 나를 찔러 죽이지 못하는군."

하태충은 일파의 장문인인지라 체면을 생각해서 얼른 입을 열었
다.

"자, 공격해 봐라. 삼 초를 양보하고 나서 반격할 테니."

촌녀는 그의 중궁(中宮)을 향해 장검을 내찔렀다.

하태충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후배가 무례하군."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검을 펼치자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두
검이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하태충의 안색이 크게 변하며 몸이
번뜩이더니, 어느새 뒤로 반 장이나 물러섰다. 그것은 바로 무기
의 구양신공이 그녀의 체내에 전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공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두 검이 모두 부러진 것이
었다. 만약 운력을 하고 적을 대했더라면 부러진 것은 상대의 검
뿐이고, 자신의 검은 아무 이상도 없었을 것이다.

반숙한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요?"

하태충은 팔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
었다.

반숙한이 장검을 뽑아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한 번 가르침을 받아 보겠다."

촌녀도 두 손을 벌려 보였다. 쓸 만한 검이 없다는 뜻이었다.

반숙한은 그녀의 오만한 태도에 대노하여 선배의 신분 같은 것
은 아랑곳없이 검을 휘둘러 촌녀의 목을 향했다. 촌녀는 검을 들
어 막았지만, 반숙한의 검법이 매우 날렵하여 벌써 방향을 바꾸
어 촌녀의 왼쪽 어깨를 찌르려고 했다. 촌녀가 잽싸게 검을 뒤집
어 방어하자 반숙한은 어느새 촌녀의 오른쪽 늑골을 찌르려고 했
다. 이렇게 여덟 번을 바람처럼 연속으로 공격했지만, 시종촌녀
의 검과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검법의 장기를 발휘
하며 상대가 내공을 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녀
는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본시 촌녀의 검법은 반숙한을 따를 수
가 없었다. 거기다 또 부러진 검을 들고 있고, 두 다리를 움직이
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공격을 모하고 수세에만 몰려 있었다. 또
다시 수 초가 지나자 반숙한의 검 끝이 닿으면서 찍! 하는 소리
와 촌녀의 왼쪽 팔뚝에 칼자국이 나고 말았다. 곤륜파의 검법은
기회를 포착하면 상대가 잠시도 숨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반숙한의 계속되는 공격에 촌녀는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찔리고 말았다. 이때 촌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나를 돕지 않고 눈뜨고 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기만 할 것인가
요?"

반숙한은 검으로 가슴을 막으며 뒤로 물러서며 사방을 살펴보았
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검을 조금씩 떨며 검 끝에서
한기를 뿜으며 다시 촌녀를 공격해 왔다.

촌녀가 재빨리 부러진 검을 휘둘러 상대의 삼검(三劍)을 막아내
자, 상대의 검초는 점점 기괴해지는 것이었다. 자신도 번개와 같
이 막아 내고 있었다. 정말 머리카락 하나 빠져 나갈 틈도 없을
정도였다.

반숙한이 외쳤다.

"계집애, 네 수법도 제법 빠르군."

촌녀도 즉시 욕설을 뱉었다.

"이 우라질 여편네야, 너도 별로 느리진 않구나."

그러나 반숙한은 일대 명가의 검술이 아닌가! 그의 수 십년의
수양은 입으로 말을 하면서 손놀림은 조금도 늦추지 않게 했다.
반면 촌녀는 십 칠팔세의 나이가 아닌가! 명사의 가르침을 받았
다해도 반숙한과 같은 풍범(風範)을 어찌 배울수 있었겠는가! 반
숙한에게 욕설을 하며 잠깐 정신을 판 틈에 그만 손목에 짜릿한
느낌이 들면서 부러진검이 손을 벗어나고 말았다. 촌녀가 앗!
하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반숙한의 제 이 검이 그녀의 늑골을
공격해왔다.

이때 여태까지 옆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던 정민군은 이쪽의 우세
를 보고 검을 뽑았다. 그리고 추창망월의 초식으로 촌녀의 등을
향해 공격해 왔다. 동시에 무청영도 몸을 날려 촌녀의 오른쪽 허
리를 걷어찼다. 촌녀는 겁에 질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온몸이 불 속에 빠진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녀는 손가락
을 내밀어 반숙한의 장검에 대고 튕겼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등에 장풍을 맞고 허리를 걷어차이고 말았다. 그녀가 고통을 못
이겨 아야! 앗! 하는 두 마디의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정민군과
무청영의 몸이 뒤로 나가 떨어지며 반숙한의 검이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이것은 정세가 소녀에게 매우 위급해지자 장무기가 재빨리 전신
의 진기를 촌녀의 체내에 주입시킨 것이다. 그는 이미 구양진경
의 삼사성(三四成) 공력을 연마한 터라, 보통 위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반숙한의 장검이 부러지고 정민군의 두 손목과 무청영의
오른쪽 발목이 모두 부러진 것이었다.

하태충, 무열, 위벽 모두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반숙한은 부
러진 검을 땅에 팽개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 가지고 하면서 남편을 향해 화가 난 눈으로 쳐다보았
다. 남편에게 울화통을 발산하려는 듯하였다. 하태충과 반숙한은
벌써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곤륜파의 경공은 참으로 훌륭했다.
가히 무림의 일절(一絶)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벽은 한 손으로 사부를 부축하고 한 손으로 사매를 부축하면
서 천천히 떠났다. 세 사람은 촌녀가 추격해올까 몹시 두려웠지
만, 그렇다고 하태충 부부와 같이 날으는 듯이 달아날 수도 없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씩 떼어놓으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정민군
은 손목이 부러졌지만, 다리는 멀쩡해 이를 악물며 혼자 떠났다.

촌녀는 득의양양해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순간 갑자기 숨이 탁 막히며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
은 장무기가 여섯명이 모두 떠나가자 그녀의 발목에서 손을 거두
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체내에 충만해 있던 구양진기가 빠져
나가자, 전신이 허탈해지며 사지에 힘이 빠진 것이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 재빨리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그녀의 눈썹 양 옆 끝
즉사공혈(竹絲空穴)에 대고 신공을 약간 운공했다. 그러자 촌녀
는 서서히 깨어났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가 장무기의 품안에 안겨 있는 것을 알고
는 수줍어 하며 재빨리 쳐다보더니, 갑자기 장무기의 왼쪽 귀를
잡아 당기며 외쳤다.

"이 추남아, 나를 속이다니! 그런 무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
서, 왜 나한테 말 한 마디 없었죠?"

장무기는 귀가 아파 소리쳤다.

"아야! 무슨 짓이오!"

촌녀가 크게 웃으며 다그쳤다.

"왜 나를 속였죠?"

"언제 당신을 속였단 말이오? 무공을 할 줄 모른다고 하지도 않
았지만, 할 줄 안다고 하지도 않았잖소?"

"좋아요! 나를 도와준 정을 생각해 한 번만 용서해 주겠어요.
이젠 걸을 수 있나요?"

"아직은 걷지 못하오,"

그녀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착한 일을 했으니 좋은 업보가 있을 거예요. 만약 내가 걱정이
돼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를 도울 수도 없었겠지만....."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보다 재주가 좋은 줄 미리 알았다면, 내가 대신 주구진 낭자
를 죽일 필요는 없었는데....."

장무기가 물었다.

"내가 그녀를 죽이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그녀를죽였소?"

"뭐라구요! 그럼 아직도 낭자를 잊지 않고 있단 말인가요? 오히
려 내가 나쁜 사람이 됐군요.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으
니....."

장무기는 당황해 하며 급히 말을 막았다.

"주구진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오. 그녀가 아무리 예쁘다
해도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소."

촌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그것 참 이상하군요. 그렇다면, 당신을 이렇게 골탕먹인
그녀를 대신 죽였는데도 좋지 않단 말인가요?"

장무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골탕먹인 사람은 너무나 많아, 만약 일일이 다 죽인다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일 수도 없소. 어떤 사람은 나를 죽이려
고 했지만 그들도 사실 불쌍한 사람들이었소. 주구진 낭자만 해
도 그녀는 매우 불안해 하며 지냈소. 위벽이 자기와 결혼하지 않
고 무낭자와 결혼할까 봐. 그러니 어떻게 즐겁게 지낼수가 있었
겠소?"

촌녀는 노기띤 음성으로 쏘아 붙였다.

"나를 비꼬는 건가요?"

장무기는 어리둥절했다. 주구진 낭자의 얘기를 하면서 이 촌녀
의 비위를 거슬리고 만 것이다. 그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불행이 있다는 거
요.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모두 죽여야 한다는 것은 나쁜 생각이
라 이 말이오."

촌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사람을 죽이려고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라면서,
뭐하러 무공을 배웠죠?"

장무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공을 배우는 것은 나쁜 사람이 해치려고 할 때 방어하자는
목적이 있는 것이오."

그녀가 정감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훌륭하군요. 이제보니 당신은 정인군자였었군요. 정말 좋
은 사람이었어요."

촌녀가 고개를 치켜올리며 물었다.

"뭘 보는 거죠?"

장무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항상 아버지에게 말씀하시기를, 속도 없이 마
음만 좋으니 연약한 서생과 같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어머니
가 말씀하실 때 그 입 모양이 당신과 똑같아서 보는 거요."

촌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나무랐다.

"픽! 또 나를 놀리려고 그래요? 내가 당신 어머니를 닮았다면,
그럼 당신은 당신 아버님을 닮았겠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눈엔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겠소. 내가 당신을 놀렸다면 하늘이 무너지
고 땅이 꺼질 것이라고!"

촌녀가 눈을 살짝 흘기며 웃었다.

"나를 놀렸다고 무슨 큰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뭣하러 그건
맹세까지 하는 거죠?"

바로 그 때, 갑자기 동북쪽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휘파람
소리는 맑고도 길게 들려왔는데, 여자의 소리였다. 그러자 또 누
군가가 휘파람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아직 멀리
떠나지 않았던 정민군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 제 3 권 4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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