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4-5

3학년2반 | 2022.03.04 07:05:34 댓글: 0 조회: 48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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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8 장 녹류산장(綠柳山莊)의 괴소녀(怪小女)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 양불회는 모든 정상을 다해 그의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자기 부모들이 은이정에게 진 빚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은이정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매우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날 황혼 무렵, 그들은 영등현(永登縣)을 지나 강성자(江城子)
까지 가서 투숙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리며 앞의 큰길에서 두 필의 말이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십여 장 거리까지 달려오더니 말에서 내려 매우 공손하
게 길 옆에 서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은 사냥꾼 차림이었고 바
로 원병들을 화살로 쏴 죽였던 팔웅(八雄)중의 두 인물이었다.
군호들은 기뻐하며 모두 말에서 내려 그들을 맞았다. 두 사람은
장무기의 앞에 오자 허리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그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희 주인님께서 장교주님의 의협심을 양모해 오셨고, 거기다
여러 영웅호걸분들의 대단함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저희 주인님
께서 여러분들을 존경하는 뜻에서 소인들에게 저희의 장으로 모
셔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천만의 말씀! 그런데 귀주인을 어떻게 칭호해야 하는지.....?"

"성은 조씨(趙)이나 구명은 저희가 감히 부를 수가 없군요."

여럿은 그들이 자기 주인이 남장한 것을 얘기하자 모두 솔직한
태도에 마음이 기뻤다.

'여러분의 신기와 같은 궁술을 본 후론 그저 매일 칭찬해 왔습
니다. 이렇게 친구로 맺을 수 있다니 정말 영광스럽습니다만, 오
히려 우리가 폐를 끼쳐 드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선 당세의 영웅들이 아니십니까? 오늘 이렇게 저희
고장을 지나가는 마당에 술 몇 잔이라도 대접하고 주인된 도리로
예를 갖출까 합니다."

장무기는 마침 이 영웅 인물들과 사귀고 싶었고, 또한 의천검이
어떻게 그녀 수중에 들어갔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두 사람은 희색이 만면하여 말 위로 올라 앞장서 길을 안내했
다. 얼마가지 않아 여덟 명 중의 또 다른 두 명이 말을 타고 달
려와 말에서 내려 길가에 공손히 서서 그들을 영접했고, 또 얼마
를 가자 다시 남은 세 명이 말을 타고 달려와 그들을 영접하는
것이었다. 명교의 군호들은 그들의 빈틈없는 예의에 모두 마음
속으로 흡족해 했다.

청석으로 깔린 큰길을 따라 어느 댁 장원 앞에 당도했다. 장원
의 주위는 도랑물이 흐르고 물가엔 푸른 버드나무가 우거져 있었
다. 감량 일대에서 이런 감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
말 드문 일이었다. 장문이 열리자 다리가 놓여 있었다. 조소저라
는 주인 아가씨는 여전히 남장을 하고 성문에 서서 이들을 영접
했다.

조소저는 앞으로 나서서 포권의 예를 올리며 인사를 했다.

"명교의 여러 군웅 호걸분들이 이렇게 저희 녹류산장(綠柳山莊)
에 왕림해 주시니, 정말 영광입니다. 장교주님, 그리고 양좌사,
은 노선배, 위복왕....."

그녀는 명교의 인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기
전에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도 명교에서 지위 고
하를 따라 순서대로 부르니,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전은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저, 어떻게 저희 이름을 다 알고 계십니까? 무슨 점치는 재
주라도 있습니까?"

조소저는 미소를 지었다.

"명교의 군호들의 협명은 강호에 소문난 것인데, 누군들 다 들
었을 겁니다. 그리고 광명정에서 장교주께서 절세의 무공으로 육
대문파를 위압한 사실은 더욱 무림을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께서 중원으로 가시는 도중에 많은 무림 친구들의 접대를
받으실 것인데, 어찌 이 소녀가 접대하려고 하는 것이 무슨 대단
한 일이겠습니까?"

명교 군호들은 그녀의 말에 옳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으면서
도 겉으론 매우 겸손해 하며 신궁(神弓) 팔웅(八雄)들의 성함을
물었다. 그러자 한 키 큰 남자가 나서서 일일이 소개했다.

"소인은 조일상(趙一傷)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전이패
(錢二敗), 손삼훼(孫三毁), 이사최(李四催), 그리고 저쪽 넷은
주오수(周五輸), 오육파(吳六破), 정칠멸(鄭七滅), 왕팔쇠(王八
衰)라고 합니다."

명교 군호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 기가 찼다. 여덟 명의 성이
백가성(百家姓)에 조, 전, 손, 이, 주, 오, 정, 왕의 순서대로
돼 있는 것도 괴이하지만 이름까지도 모두 불길하지 않은가! 정
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나 강호에서는 가끔 화를 막고 원수
를 피하기 위해 가짜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아 군호들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조소저가 직접 이들을 대청으로 안내했다. 대청 위에는 <녹류산
장>이라는 네 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고, 중당에는 조맹조가 그린
팔준도(八駿圖)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여덟 마리의 말
의 자태는 모두 각각이었고 위세가 당당했다. 왼쪽 벽에는 시 한
수가 씌어져 있었고, 지은이의 이름은 조민(趙敏)이라고 씌어 있
었다. 장무기는 서예에 대해선 별로 조예가 없지만, 그러나 주구
진에게 글씨를 배운 적이 있어서 잘 쓰고 못 쓰고는 조금 알 수
있었다. 시를 보니 글씨가 조금 힘이 약한 것으로 보아 여자가
쓴 것이 분명했다. 장무기는 의서외엔 별로 읽은 책이 없었으나,
시의 뜻은 대략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소저의 이름이 민(敏)이
고 변량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께선 중주구경세가(中州舊京歲家) 출신이군요. 정말 문
무(文武)를 겸한 인재이십니다."

조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교주의 존대인(尊大人)은 은구철획(銀鉤鐵劃)이라는 호칭을
지니신 서예의 명가가 아니십니까?"

그 말에 장무기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
었으나, 아버지에게서 서예를 전혀 배우지를 못했다. 그 뒤 무공
을 익히고 의술을 배우긴 했으나 서예에 대해선 지식이 천박하였
다.

"아가씨께서 저에게 서예를 부탁한다면, 저는 사실 죽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선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배우지
못한 것이 정말 한스럽습니다."

그러는 사이 하인들이 찻잔을 올렸다. 찻잔엔 연하고 푸른 용정
차(龍井茶)가 떠 있었고, 그 은은한 향기는 코를 찔렀다. 이곳은
강남과 수천 리나 떨어졌는데 신선한 용정차가 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장무기는 이 낭자의 모든 것이 기괴하다고 생
각했다. 조민은 먼저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신 후, 군호들이 모두
차를 마시고 나자 입을 열었다.

"먼길을 오시느라 피로가 쌓였을 것인데, 별로 준비한 것이 없
어서 죄송합니다. 저쪽으로 가셔서 술과 안주를 좀 드시지요."

그러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군호들을 안내하여 복도를 지나
어느 큰 화원으로 데리고 갔다. 화원에는 기괴한 모양의 바위 덩
어리가 널려 있었고 연못의 물은 무척 맑았다. 꽃은 별로 많지
않았으나 매우 우아해 보였다. 장무기는 화원의 운치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러나 양소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화원의 주인이
용속(庸俗)한 인물이 아니며 큰 뜻을 품고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자에는 이미 주석이 마련돼 있었다. 조민은 장무기
를 자리에 안내하고 신궁팔웅들은 명교 군호들을 안내했다. 은이
정은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한 방에서 양불회가 음식을 먹이며
시중들고 있었다.

조민은 큰 잔에다 술을 채우고 먼저 한 잔을 들이켰다.

"이 술은 십팔 년이나 묵은 소흥여정진주(紹興女貞陳酒)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술맛 좀 보세요."

양소, 위일소, 은천정 등은 조소저가 의협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심성을 갖고 술잔이나 술주전자
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나 별 이상이 없는 것 같고 조소저가
다시 술 한 잔을 들이키자 그만 의심을 풀고 마음껏 먹으며 술을
마셨다.

명교 교칙에는 원래 육식을 하지 못하고 술을 마실 수가 없었으
나, 총단을 곤륜산으로 옮긴 후로는 이런 음식상의 금기는 없애
버렸다. 서역(西域)에선 야채를 구하기 힘들었고 육류보다 더 귀
하였다. 그리고 기후가 추운 곳이라 소나 양의 기름기를 섭취하
지 않으면 내력이 약한 사람들은 견디기가 어려웠던 이유에서였
다.

정자 주위의 연못엔 수선화 모양 같은 화초가 칠, 팔 그루가 있
었는데, 수선화보다는 크고 꽃은 흰색이었다. 향기가 아주 우아
했다. 군호들은 꽃향기 속에서 좋은 술을 마시며 기분이 매우 상
쾌했다.

조소저는 술을 마시며 중원 무림의 각파에서 있었던 옛날 얘기
를 했는데, 놀랍게도 은천정 부자까지도 알지 못하는 일까지 그
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림, 아미, 곤륜의 무공에 대해선 별
로 칭찬을 하지 않았으나, 장삼봉과 무당칠협 얘기가 나올 땐 무
척 추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명교의 군호들의 무
공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일일이 칭찬을
빠뜨리지 않았다. 군호들은 매우 기분 좋아하는 한편 그녀에게
탄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스승이 누구냐고 묻자 그녀
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려 버렸다.

조민은 오는 술잔마다 단번에 다 마셨고, 술이 몇 순배 돌고 안
주가 올라올 때마다 그녀는 항상 먼저 먹어 보았다. 그녀의 얼굴
이 빨개지며 취기가 약간 돌자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미인이란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았다면, 교태적인 요염한 아름다움
그 두 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이 조소저는 아름다움에 어딘가 영
웅 호걸적인 자태가 숨어 있었고, 동시에 매우 부귀 티가 나 단
정하고 근엄한 태도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이 우러나 감히
쉽게 쳐다볼 용기를 주지 않았다.

장무기가 그녀에게 물었다.

"조소저, 이렇게 후대해 주셔서 폐교 상하 모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하마 입이 열
리지가 않는군요."

"장교주, 뭘 그렇게 미안해 할 게 있습니까? 강호 사람이라면
모두 형제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여러분께서 저를 높이 봐 주신
다면 여러분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 있으신지 사
양마시고 물으십시오.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묻겠습니다. 조소저께서는 이 의천검을 어디서 얻
은 것입니까?"

조민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에 찬 의천검을 탁자에 놓으며 다시
물었다.

"여러분과 만난 후로 모두들 날카로운 눈초리로 이 검만을 쳐다
보셨는데, 무슨 이유가 있으신지 저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
까?"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이 검은 원래 아미파 장문 멸절사태의
검이었습니다. 그 검에 폐교의 많은 형제들이 목숨을 잃었습니
다. 저도 그 검이 나의 가슴을 뚫은 적이 있어서 모두 그 검에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듣자하니, 장교주께서는 무적의 신공을 지녀 건곤이위심법으로
멸절사태의 손에서 이 검을 탈취했었다는데, 이 검에 다치시다니
요? 그리고 장교주를 찌른 사람은 무공이 별로 대단치 않은 아미
파의 어느 젊은 여제자라고 들었는데, 소매(小妹)는 그 점을 정
말 이해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장무기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을 듯 말듯하
면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장무기의 얼굴이 빨개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어,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조민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 주지약이란 언니가 아름답게 생겨서 당한 것이 아닙니까?"

장무기의 얼굴은 더욱 홍당무가 됐다.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그녀는 술잔을 들어 난처한 입장을 넘기려고 술을 마시려는 순
간, 자기도 모르게 왼손이 떨리며 옷깃에다 그만 술을 몇 방울
흘렸다.

조민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소매는 이제 취한것 같습니다. 벌써 횡설수설 한 것 같아요.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바로 나오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사
양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는 포권의 예를 올리고 나서 정자 밖으로 나갔
다. 그러나 그 의천검은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다.

하인들은 부지런히 안주를 올렸다. 군호들은 한참 지나도 조민
이 돌아오지 않자, 주전이 입을 열었다.

"우리를 의심하지도 않고 의천검을 그대로 여기 두고 가다
니....."

말을 마친 주전은 자연스럽게 검을 손에 들더니 이상하다는 듯
이엇! 하고 소리쳤다.

"왜 이렇게 가볍지?"

검을 뽑자 군호들은 모두 놀라 일어섰다. 그 검은 모든 것을 잘
라 대던 날카로운 의천보검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목재검이었다.
군호들은 그 목재검에서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 검은
엷은 황색인 단향목(壇香木)으로 만든 것이었다.

주전은 당황하여 검을 검집에 다시 넣었다.

"양좌사..... 이게..... 도대체 무슨 장난이지?"

그는 평소 양소와 말다툼을 잘했지만, 사실 그는 내심 양소의
넓은 식견에 탄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당황스런 일이 생기
자 자기도 모르게 양소에게 물어본 것이다.

양소는 정색을 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교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조소저가 무슨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린 지금 어떤 위험에 처한 것 같으니, 어서
빨리 여기를 떠납시다."

주전이 장무기가 말하기도 전에 다시 말을 가로막았다.

"까짓것 어린 소녀인데 두려울 것 없어. 감히 무슨 행동을 저지
르진 못할 걸세. 우리 같은 고수들이라면 그들쯤은 모조리 해치
울 수 있다구!"

양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녹류산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론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
습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여
기에 갇혀서 항상 그들의 공격의 위험에 처해 있어야 합니까?"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좌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이제 그만 떠
납시다."

그러면서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관도인이 장무기에게 물었
다.

"그렇다면, 교주께서는 그 진짜 의천검에 대해 알아 보시지 않
으시렵니까?"

팽영옥이 그의 물음에 나서서 대답을 했다.

"제가 보기엔 이 조소저가 일부러 무슨 의혹을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무슨 곡절이 있을 테니까 우리가 그녀를 찾지 않아도 필
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겁니다."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린 지금 할일이 있으니 다른 일거리를 만들 필요
가 없습니다. 훗날 모든 것이 드러날 때 다시 해결해도 됩니다."

그들은 정자를 나와 대청으로 돌아와서는 푸짐한 대접에 감사하
다고 말을 전하고는 작별인사를 고했다.

조민이 바쁜 걸음으로 뛰어나왔다. 그녀는 벌써 엷은 노랑색 비
단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벌써 가시다니요! 이 소녀가 대접을 너무 소홀히 해서 그러십
니까?"

"아닙니다. 정말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린 급한 일이
있어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으니 훗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
지요."

조민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장원 밖까지 배웅을 했고 신궁팔
웅들은 길 옆에 서서 공손히 손님들을 보냈다.

군호들은 아무 말 없이 포권의 예를 올리고는 말에 올라타 쏜살
같이 달렸다. 산장과 멀리 떨어지자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아
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주전이 큰 소리로 비꼬았다.

"그 조소저가 무슨 나쁜 마음을 품었던 것 같지는 않았네. 그저
목검으로 교주와 장난치려고 한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이번엔
양좌사가 잘못 본 것 같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저 무조건 이
상한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오."

주전이 크게 웃었다.

"쟁쟁하던 양좌사께서 광명정에서 한바탕 싸우고 나더니, 이런
겁장이가 되다니....."

그는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몸이 비틀하더니, 그만 말에서 떨
어지고 말았다. 설불득이 그와 제일 거리가 가까워 재빨리 말에
서 내려 그를 부축했다.

"주형, 왜 그러시요?"

"별것 아닙니다. 술이 좀 과했던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좀 어지
러워 잠을 좀 자고 싶습니다."

그 말에 군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안색이 변했다. 그들도 녹류
산장을 나와 말을 달리면서 모두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술기운에 그런가 하고 모두 신경을 쓰지 않았었
다. 그런데 주전의 높은 무공과 큰 주량에 술 몇 잔 마셨다고 말
에서 떨어질 정도라니 필시 무슨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 분명했
다.

장무기는 고개를 쳐들고 내심 생각을 굴렸다. 왕난고(王難姑)의
독경(毒經)에 의하면, 일종의 무색, 무미, 무취의 독약이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
각해도 도대체 그런 독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군호들과 마찬가지로 마실 만큼 마셨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
는 갑자기 번개와 같이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는 그만
크게 당황을 했다.

"정자 안에서 같이 술 마셨던 분들은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 그
리고 조용히 정좌를 하시오. 절대 운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리고 오행기와 천응기 형제들은 사방을 둘러싸고 여러 수령들을
보호하시오. 누구든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무조건 처치해 버리시
오."

교주의 엄숙한 명령이 내리자 모두는 병기를 들고 사방으로 흩
어졌다.

"내가 돌아오기 전엔 절대로 자기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군호들은 다만 머리만 좀 어지러운 것뿐이고 별다른 이상도 없
는데, 교주가 왜 그렇게 당황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눈치들이었
다. 장무기는 다시 당부를 했다.

"아무리 어지러워 괴롭다 해도 절대 운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독이 퍼져 살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 어떻게 독이 걸렸지?"

장무기가 몸을 슬쩍 날리자 이미 십여 장 밖에서 달리고 있었
다. 그는 말을 타면 느릴 것 같아 경공을 펼치며 녹류산장으로
달려갔다. 장무기는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이번엔 극독에 당한
것이라 발작하게 되면 한 시간도 넘기지 못하고 즉사하는 독이었
다. 절대로 현음지와 같이 시일을 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
약 해약을 구하지 못하면 모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십 리 길이나 되는 거리를 눈깜짝할 사이에 달려와 장원
앞에 당도했다. 그는 몸을 날려 쏜살같이 안으로 날아들었다. 문
지기들은 그저 눈앞에 그림자가 획! 하고 지나간 듯 했으나 아무
도 사람이 들어갔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장무기는 곧 바로 후원까지 와 정자 안으로 뛰어들자, 파란색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고 왼손엔 찻잔, 오른손엔 책을 들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바로 조민이었다. 이때 그녀는 벌써 여장으로 갈
아입고 있었다.

그녀는 장무기의 발소리를 듣자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조 낭자, 소저에게 화초 몇 뿌리를 얻고 싶소!"

그러면서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몸을 튕겨 반듯이 날으며 연
못 위를 지나 정자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는 눈깜짝할 사이에 벌
써 연못 속의 수선화 같은 칠, 팔 그루의 화초를 모두 뽑아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발을 수각(水閣)에 딛는 순간 획! 획! 하는
소리와 암기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장무기는 오른손을 휘둘러
암기를 모두 소매 안으로 거둬들이고 다시 손을 휘둘러 암기를
조민을 향해 날렸다.

조민이 몸을 들어 피하자 바람소리와 함께 탁자 위에 주전자,
찻잔, 과일 접시들이 모조리 그의 소매 바람에 연못 너머로 날아
가 떨어졌다. 장무기는 몸을 세우고 화초를 살펴보니, 뿌리에 짙
은 자색의 긴 수염들이 달려 있으며, 수염마다 진주알만한 둥그
런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것은 파란색이었는데 꼭 비취
와 같았다. 그는 이미 해약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
았다. 그는 재빨리 그것을 품속에 넣었다.

"해약을 주서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떠나겠습니다."

조민이 살며시 웃었다.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울 걸요?"

그녀는 책을 팽개치고 잽싸게 책 속에서 종이장과 같이 얇고 서
리와 같이 흰 단검을 뽑아 들고 그를 덮쳤다.

장무기는 군호들의 생명이 위급해 그녀와 싸울 시간이 없어 오
른쪽 옷소매를 뻗어 소매 안에 박혔던 십여 매의 금침을 그녀를
향해 날렸다. 조민은 몸을 날려 수각 밖으로 피하며 다시 발끝을
튕겨 안으로 들어왔다. 이러기를 수차례, 장무기의 금침은 모두
연못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훌륭한 신법이군."

장무기가 그녀를 추켜올리자 그녀는 두 손을 휘두르며 장무기를
항해 두 개의 단검을 뻗었다.

'이 계집아이가 이토록 악랄하고 잔인하다니, 만약 내가 구양진
경을 터득하지 않고, 왕난고의 독경을 익히지 않았다면, 명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팔을 벌려 그녀의 검을 뺏어 버릴 자세를
취했다.

조민은 잽싸게 팔을 들어 쌍검으로 번개와 같이 장무기의 손가
락을 자르려고 휘둘렀다. 장무기는 그녀의 검을 뺏지 못하자 순
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나 그의 무공의 변화는 얼마나 오묘한
가! 그녀의 검을 뺏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녀의 양팔의 혈도를
찔렀다. 그녀는 더 이상 검을 쥐고 있을 힘이 없자 쌍검을 장무
기의 머리를 향해 힘껏 팽개쳤다. 장무기가 잽싸게 피하자 두 검
은 수각의 기둥에 꽂혀 떨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놀랐다. 조민의 무공이 양소나 은천정, 위일소
같은 인물에는 훨씬 뒤떨어졌지만, 매우 기민하고 영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검을 잡을 힘을 잃고 떨어뜨리면서도 사람을 향해
해치려고 하다니, 장무기가 조금만 늦게 피했어도 그는 이미 이
두 검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조민은 단검을 잃자 잽싸게 몸을 틀어 목재 의천검이 든 칼집을
잡아들었다. 그러나 검을 뽑지는 않았다. 그녀는 장무기를 향해
칼집을 휘둘렀다. 장무기는 잽싸게 그녀 왼쪽 어깨의 견정혈을
찌르고 그녀가 몸을 피하려고 할 때 바로 오른손으로 그녀의 목
재검을 빼앗아 버렸다. 어찌 그의 건곤이위심법을 피할 수 있었
겠는가!

조민은 몸을 가누고 나서 가볍게 웃었다.

"장공자, 그게 무슨 무공입니까? 바로 그 건곤이위신공입니까?
내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데....."

장무기가 왼손 손바닥을 벌리자 그의 손엔 한 송이 꽃이 있었
다. 바로 그녀가 머리에 꽂았던 장식이었다. 조민의 안색이 가볍
게 변했다. 장무기가 자기의 그 장식을 뽑은 것을 조금도 느끼지
를 못했던 것이다. 만약 장무기가 그것을 뽑지 않고 바로 자기의
태양혈을 찔렀다면 그녀는 지금 이미 죽어 있어야 했다. 그녀는
재빨리 정색을 하고 가볍게 웃었다.

"나의 그 주화(珠花)가 탐나세요? 그렇다면 강제로 뺏지 말고
얘기했으면 제가 그냥 드렸을 텐데....."

장무기는 그녀의 말에 오히려 난처한 입장이 됐다. 그는 왼손을
뻗어 주화를 내던졌다.

"자, 돌려 주겠소."

그러면서 그는 수각 밖으로 걸어갔다.

조민은 주화를 받으며 그를 불렀다.

"잠깐!"

장무기가 등을 돌리자 그녀는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어째서 내 주화에 꽂혀 있던 제일 큰 진주 두 알을 훔쳤죠?"

"쓸데없는 소리! 당신과 농담할 여유가 없소."

조민은 주화를 쳐들어 보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것 보세요. 두 알이 없어졌잖아요?"

장무기는 그녀가 일부러 떼어 버리고 무슨 간계를 부리는 줄 알
고 더 이상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기 싫었다.

조민은 탁자를 잡고 서서 날카롭게 외쳤다.

"장무기, 용기가 있으면 내 앞으로 삼 보 가까이 올 수 있겠어
요?"

"네 꾀에 넘어갈 내가 아니야!"

그러면서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조민은 그가 자기 꼬임에 넘어가지 않자,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만 두세요. 오늘 제가 완전히 졌어요. 더 이상 우리 스승을
뵐 면목도 없어졌군요."

그녀는 팔을 젖혀 기둥에 박힌 단검을 하나를 뽑아 들며 외쳤
다.

"장교주, 고맙습니다. 나를 이 꼴로 만들어 주어서....."

장무기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는 이미 검을 쳐들고 자
기의 가슴을 찔러 버렸다.

"당신 속임수에 넘어갈 것 같소?"

그러나 그녀는 이미 자기의 가슴을 찌르고 비명을 지르며 탁자
모서리에 쓰러지고 있었다. 장무기는 이 소녀가 이렇게 까지 성
격이 악랄할 줄은 정말 몰랐다. 몇 초식에 자기를 이기지 못하자
바로 검을 들어 자진을 하다니, 장무기는 내심 심장을 바로 찌르
지 않았다면 아직 살릴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려 그
녀의 상처를 살피려고 걸어갔다.

장무기가 탁자와 삼 보 가까이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다리 밑이 허전해지면 자기의 몸이 밑으로 떨어지
는 것이었다.

"앗! 큰일 났구나."

장무기는 운기를 하여 위로 치솟으려고 힘을 쓰며 몸이 공중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팔을 잽싸게 옆으로 뻗었다. 장무기가 손가
락 끝이라도 탁자를 건드릴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 힘을 이용해
서 다시 위로 뛰어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민은 자살한 척하
고 연극을 꾸민 후 이미 장무기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 예상을
하고 있었는지 장무기가 탁자를 건드리지 못하게 장풍을 뻗은 것
이다.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다. 쌍장이 부딪치자 장무기의 몸은 이미
반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급한 나머지 팔을 돌려 조민의 손가
락을 잡은 것이다.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미끄러워 빠지려고 하
는 찰나, 장무기는 벌써 그 힘을 빌려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
다. 자칫하면 그의 몸이 밑으로 떨어지는 강한 힘으로 두 사람이
함께 밑으로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순간 쿵! 하고 위의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컴컴한 밑으로
떨어졌다.

사, 오장 길이가 되는 함정이었다. 장무기는 발끝이 바닥에 떨
어지는 즉시 몸을 날려 벽호유장공(壁虎游墻功)의 초식을 이용하
여 뚜껑가지 올라가 뚜껑을 열려고 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철판
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건곤이위신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러나 몸이 허공에 떠 있어 땅에 서 있는 자세와는 달리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철판은 꼼짝도 하지 않
았고, 그의 몸은 이미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조민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것은 여덟개의 철근으로 걸려 있는 거예요. 아무리 힘이 세
다고 해도 그걸 열진 못할 거예요!"

장무기는 그녀의 간계에 속은 것이 화가 나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빠져 나갈 방법만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사방을 살펴
봐도 차가운 느낌뿐,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호! 호! 호! 장공자, 당신의 벽호유장공은 정말 대단하군요.
이 함정은 순전히 강철로 만들어서 빈틈없이 사방이 미끄럽기만
한데 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니 정말 놀랍군요. 호! 호.....!"

장무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도 나와 같이 떨어졌는데 뭐가 그리 우습소?"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이 계집은 너무 교활해. 함정에 필시 나가는 길이 있을 텐데.
이 계집만 혼자 빠져 나가게 할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왜 이러세요?"

"혼자 빠져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살고 싶으면 어서
빨리 뚜껑을 열어!"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 없어요. 이 안에서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걱정이 되는 것은 그들이 내가 산장을 나간 것
으로 알고 있으면 큰일입니다."

"이 함정엔 다른 출구가 없소?"

"생기시기는 똑똑하게 생기셨는데 왜 그리 답답하세요. 이 함정
은 우리가 살려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른 출구가 있겠어요?
적을 잡으려고 한 것인데, 일부러 적을 도망가게 다른 출구를 만
들겠어요?"

"그렇다면, 사람이 함정에 빠졌는데 밖에서 모를 리가 있겠소?
빨리 뚜껑을 열게 하시오!"

"내 부하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냈어요. 조금 전에 수각에서 다
른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내일 이때면 돌아올 것이니 조급해
하지 마세요. 여기서 푹 쉬세요. 조금 전에 배불리 잔뜩 드셨으
니까 배가 고플 리는 없을테니."

장무기는 화가 치밀었다. 그가 여기에 오래 있는 것은 상관없지
만, 그러나 외할아버지나 군호들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었
다. 그는 이성(二成)의 힘을 들여 손에 힘을 주며 외쳤다.

"나를 즉시 여기서 내보내지 않으면, 먼저 당신을 죽여 버리겠
소!"

"나를 죽인다면 영원히 여기서 나갈 생각을 마세요. 여보세요.
어째 여자의 손을 이렇게 잡고 있는 거예요. 빨리 놓으세요!"

장무기는 그 말에 그녀의 손을 놓고 벽에 기대고 앉았다. 이 함
정은 사방이 몇 자 되지 않아 그녀와의 거리는 한 발짝 사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조급하기도 하고 화도 치밀었다.

"우리 명교와 당신은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아무 원한도 없는데,
왜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하는거요?"

"당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처
음부터 말씀 드리지요. 내가 누군지 아세요?"

그는 그녀의 내력과 목적을 알고 싶었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천
천히 얘기를 하게 되면 군호들의 목숨은 부지할 수 없는 것이 아
닌가! 그리고 사실인지도 의심스럽고, 만약 이 여자가 시간을 끌
기 위해 거짓을 꾸며 대도 별도리 없지 않은가! 그는 그녀를 협
박해서, 뚜껑을 열게 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누군지 지금 들을 여유가 없소. 어서 빨리 사람을 불러
나를 내보내지 않겠소."

"부를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여기서 소리쳐 봤자 위에들리지
도 않아요. 못 믿으시겠다면 당신이 소리를 쳐보세요."

장무기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 왼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움켜잡
았다. 조민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옆구리에
혈도를 찍히고 말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장무기는 그녀의
목을 눌렀다.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이면 너는 죽은 목숨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그녀가 숨을 쉬기 어려워 헐떡거
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조민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장무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뚜껑을 열게 할 목적이었지 당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건 아니
요!"

"문을 안 열겠다는 것이 아니잖아요? 좋아요, 사람을 부르겠어
요! 거기 누구 없느냐? 뚜껑을 열어라! 내가 이 안에 갇혔어!"

아무리 목청을 높여 외쳐도 조용하기만 했다.

"이것 봐요, 아무 소용도 없잖아요!"

장무기는 정말 울화통이 터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다가 웃다가 그게 무슨 꼴이오!"

"당신이야말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약한 여자를 괴롭히다니요!"

"약한 여자? 교활한 간계를 따지면 남자 열 명보다 더 무서운
여자야!"

"과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무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매우 조급했다. 만약 이대로
있다간 명교 전군이 멸망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치마가 한 쪽 찢겨
나갔다. 조민은 장무기가 갑자기 엉뚱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
으로 알고 당황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나를 여기서 내보낼 것이라면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면 돼!"

"어째서요?"

장무기는 아무 말도 않고 찢겨진 옷자락에 침을 적셨다.

"죄송합니다. 이럴 수밖에....."

그는 옷자락으로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았다. 조민은 숨을 쉴 수
가 없었다. 잠시 지나자 가슴이 막혀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잠시 뒤 그녀는 몸을 꿈
틀거리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손목을 짚어보니 맥박이
희미하게 뛰고 있었다. 장무기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았던 옷자락을 떼어 버렸다. 조민은 곧 신음소리를 내며 깨어
났다.

"맛이 어떻소? 자, 이래도 나를 내보내지 않겠소?"

조민은 이를 악물었다.

"백 번을 기절해도 내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예 나를 죽이세
요!"

그녀는 자기의 입을 닦았다.

"툇! 당신의 침 냄새가 지독하군."

장무기는 그녀가 이렇게 버티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졌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무례를 저질러야겠
소. 용서하시요!"

그는 그녀의 왼발을 잡아 신발과 양말을 벗겼다. 조민은 놀라면
서도 화가 치밀었다.

"이놈아,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장무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그녀의 오른발을 벗겼다.
그리고 나서 두 손의 중지로 그녀의 발바닥 용천혈(湧泉穴)을 누
르고 구양신공을 운공했다.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용천혈에서 움
직였다.

용천혈은 발바닥 중심에 있기 때문에 바로 족소음신경(足少陰腎
經)의 기점이라 감각이 제일 예민한 곳이었다. 장무기는 의술에
통달해 이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평소 어린애와 장난칠 때도 발
바닥을 간지럽히면 참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장무기는 구양
진공의 뜨거운 기운으로 그녀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니 조민은 깔
깔 웃어 대며 참지를 못했다. 그러나 혈도를 찔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어떤 고통보다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깔깔 웃다 그만 참지를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장무기는 그녀가 가없지만 별 수가 없어 계속 간지럽혔다.

"이놈아, 이 도적놈아..... 언제던..... 내가 꼭 너를 찔러 죽
일 것이다. 좋다, 그만 나를 용서해 줘. 장..... 장공자..... 장
교주..... 엇.....엇!"

"내보내 줄 것이요. 안 내보내 줄 것이요!"

"어서 멈추..... 세요!"

"나를 용서하시요."

장무기는 그제서야 멈추고 나서 그녀의 등을 주물러 혈도를 풀
어 주었다. 조민은 씩! 씩! 거리고 있었다.

"신발을 신겨 주세요!"

장무기는 그녀의 왼발을 잡고 신발을 신기며, 조금 전엔 별 생
각이 없이 한 짓이지만 이번엔 그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발의
감촉이 오자 그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민은 다리를 오그리
며 수줍음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다행히 어두워 장무기가 그 모
습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신고 나자 갑자
기 이상한 충동이 생겼다. 장무기가 다시 자기의 발을 만져 주었
으면 하는 충동이었다. 그러나 장무기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
다.

"어서 빨리 나를 내보내라!"

조민은 아무 말도 않고 벽에 그린 동그란 원을 찾아 검을 거꾸
로 들어 손잡이를 거기다 대고 몇 번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스
르르 빛이 스며들며 뚜껑이 열렸다. 원이 그려진 곳에 작은 구멍
이 있어 그녀가 암호에 따라 신호를 하니, 기관의 책임을 맡은
자가 즉시 문을 연 것이다.

장무기는 그녀가 약속대로 곧바로 문을 열어 주는 솔직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자 같이 나갑시다."

조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옆에 서 있었다.
장무기는 자기가 한 소녀를 그렇게 괴롭힌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는 읍을 올리며 사과를 했다.

"조소저, 조금 전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조민은 몸을 돌려 벽을 보며 어깨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잔인하고 교활할 때는 장무기는 그녀와 별생각 없이 상
대를 했었지만, 지금은 어딘가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녀의 가냘
프고 부드러운 뒷모습, 그리고 백옥과 같이 흰 피부, 늘어진 머
리카락..... 그는 그녀가 가련한 생각마저 들었다.

"조소저, 그만 가겠소. 실례가 많았습니다."

조민은 어깨를 살짝 움직였지만 역시 돌아서지는 않았다.

장무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벽호유장공을
펼쳐 기어올라가 몸을 밖으로 날렸다. 그러면서 그는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행여나 누가 밖에 숨어 있다가 갑작스런
기습이라도 할까 봐 대비한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는 또 다른 일이 생길까 봐 담을 넘어 명교 군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는 함정서 한참을 지체해 해는 벌써 서산
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장무기는 은천정 등 군호들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 조급해 하며
발걸음을 더 빨리 재촉했다. 잠깐 사이에 그들에게 가까이 온 그
는 그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고의 기병들이 원을 그리고 달리며 명교 군호들을 포위하고
군호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교의 수령
들이 모두 중독당해 명령을 내릴 자가 없으니 어떻게 저들을 막
아낼 것인가. 장무기는 당황하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좀더 가까이 접근하자 맑은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예금기는 동북쪽을 공격하고, 홍수기는 서남쪽으로 그들을 포
위하세요."

바로 소조의 음성이었다. 곧 예금기는 동북쪽으로 공격하고 홍
수기가 서남쪽을 공격하자 원병들은 양쪽으로 나눠 그들과 맞섰
다. 그러자 갑자기 중앙에서 황기를 든 후토기와 청기를 휘두르
는 거목기 부하들이 한복판을 뚫고 나가는 것이었다. 두 마리의
청룡과 황룡이 용솟음치는 것 같이 보였다. 원병들은 그만 혼란
을 일으키며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장무기는 몸을 몇 번 날려 군호들 앞에 떨어졌다. 모든 교인들
은 교주가 나타나자 사기가 크게 올라 소리를 지르며 병기를 마
구 휘둘렀다. 은천정, 양소, 주전 등 군호들과 오행기 장기사 모
두는 조용히 앉아 있었고, 오히려 소조가 깃발을 들고 호령을 하
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작은 언덕 위에 서서 교도들을 지휘하
고 있었던 것이다. 오행기, 천응기 교도들의 무예는 모두 높지
만, 수령들이 모두 중독(中毒)을 당하자 일시에 당황을 하고 혼
란이 생겼는데, 소조가 팔괘진으로 그들을 지휘하자 원병들이 쉽
게 공격을 못했던 것이다. 소조는 장무기를 보자 기뻐하며 외쳤
다.

"장공자, 빨리 와서 지휘하세요!"

"나보다도 네가 더 잘하는구나. 나는 군관이나 몇 명 처치 해야
겠다."

획! 획! 하고 화살이 장무기를 향해 날아왔다. 장무기는 한 교
도의 손에서 긴 창을 뺏어들었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모
두 막아내며 긴 창을 화살과 같이 날리자, 그 긴 창은 한 명의
원병 수령의 가슴을 뚫고 날아가 떨어지며 원병의 앞에 꽂혀 버
렸다. 원병들은 모두 놀라 다시 뒤로 수십 보를 후퇴했다.

갑자기 멀리서 십여 명의 기병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
다. 맨 앞에서 달려 오는 자는 바로 조민의 밑에 있던 신궁팔웅
이었다.

'이 팔인의 궁법은 매우 높은데, 만약 저들이 화살을 날린다면
많은 교도들이 당할 것이다.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만 된다.'

장무기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팔웅 중에 우두머
리격인 조일상이 금색으로 된 짧은 용머리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
쳤다.

"주인의 명령이다! 즉시 군사를 철수시켜라."

원병을 통솔하던 대장이 뭐라고 몽고 말을 지껄이더니 그만 말
머리를 돌려 달려가 버렸다.

전이패가 큰 쟁반을 안고 장무기의 앞에 걸어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저희 주인께서 장교주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쟁반에는 황금색으로 된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장무기는 그것
을 손에 쥐면서 그녀가 또 무슨 수작을 벌이는 것인가 하고 생각
했다. 전이패는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고 뒤로 물러서 말에 올라
되돌아갔다.

장무기는 상자를 소조에게 건네주고는 군호들의 병세가 위급해
상자 속에 무슨 물건이 들었는지 볼 여유가 없었다. 그는 깨끗한
물을 떠오게 하고 가져온 해약을 물 속에 넣어 휘젓고 나서 중독
된 사람들에게 나눠 마시게 했다. 수각에서 술을 마신 사람은 구
양신공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장무기만 중독되지 않았고 모두 독에
걸린 것이다. 다만 양불회는 은이정의 시중을 드느라 중독되지
않았고, 소조 역시 교도들과 다른 방에 있어서 독을 피할 수 있
었다.

반 시간쯤 지나자 군호들은 체내의 독이 해독되어 머리가 더 이
상 어지럽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피로했다. 그들은 중독된 원인
과 해약을 얻게 된 원인을 물었다.

"우린 모든 것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음식에 독이 들었었다면
즉시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조 낭자가 독을 쓴 방법은 나도 기
가 찰 노릇이었소. 이 수선화와 같은 이것은 이름이 취선영부(醉
仙靈夫)라고 합니다. 구하기는 힘들지만 독은 없습니다. 그 가짜
의천검은 바닷속의 기준향목(寄駿香木)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자체에도 독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향기가 어울리게 되면
극독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주전이 자기의 다리를 탁 쳤다.

"모두 다 내 잘못이었습니다.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그 검을
뽑아 이런 화를 당하다니!"

"그런 함정을 미리 계획했던 것이라,주형이 만지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하인을 시켜서 검을 뽑았을 겁니다."

"갑시다. 가서 녹류산장을 불태워 버립시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멀리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불길이 보
였다. 바로 녹류산장이 불에 타고 있었다.

군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
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조 낭자가 벌써 우리의 생각을 예측하고 자기가 먼저 불에
태워 버렸구나. 나이 어린 소녀가 이렇게 우리의 강적이라니!'

주전이 다시 외쳤다.

"불을 질렀어도 빨리 쫓아가 그들을 모조리 해치웁시다!"

양소가 말렸다.

"그녀가 장원까지 태워 버릴 정도면 모든 준비를 미리 다 해놓
았을 텐데, 우리가 쫓아가도 별 수 없을 거요."

"양형, 당신의 무공이야 별 것 아니지만, 계략 술수라면 그래도
이 주전보다는 한 수 위가 아니요?"

양소는 웃으며 다시 말을 되받았다.

"천만에, 주형의 신기묘상을 소제(小弟)가 어찌 따르겠소?"

장무기는 웃으며 두 사람의 입씨름을 말렸다.

"두 분 그만 참으십시오. 다행히 이번에는 큰 손상을 입지 않았
습니다. 다만 십여 명이 화살에 다쳤으니, 하늘이 도운것으로 알
고 이만 길을 떠납시다."

그들은 길을 재촉하며 어떻게 중독되었는지 그 경위를 묻자 장
무기는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어서 위일소가 말을 했다.

"소조, 그 어린 계집아이한테 이런 기공(奇功)이 있었다니 정말
뜻밖이오. 그 애가 그 위급한 상황에서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크게 당했을 텐데....."

양소는 여지껏 소조를 적이 보낸 첩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싸움에서 오히려 명교를 위해 큰 공을 세웠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조민의 내력에 대해 말하며 모두 아리송해 했다.
장무기는 그녀와 같이 함정에 빠져 그녀의 발바닥을 간지럽힌 것
이 별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웬지 그 일을 군호
들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은 잠을 자기 위해 객점을 찾았다. 워낙 인원수가
많기 때문에 일부는 절간이나 사당을 빌려 하룻밤을 신세지기로
했다. 소조는 세수물을 떠서 장무기 방으로 갖고갔다.

"소조, 소조는 오늘 큰 공을 세웠으니 이제부터는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소조는 가볍게 웃었다.

"종이든 하인이든 저는 공자의 시중을 드는 일이 제일 기쁩니
다."

그가 세수를 끝내지 소조는 황금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혹시 이 상자 속에 독벌레나 독약, 암기 같은 것이 들어있을지
도 모릅니다."

"맞아, 조심해야 돼."

상자를 탁자에 놓고 장무기는 소조와 함께 멀찌감치 떨어져 동
전 한 닢을 꺼내 상자를 향해 던졌다. 띵똥! 상자 뚜껑이 곧 열
렸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안에는 한
송이의 주화(珠花)가 들어 있었다. 바로 조민의 머리에서 뺏었던
그것이었다. 조민이 빼버렸던 진주로 된 노리개 두 개가 고스란
히 담겨져 있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보내왔
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남자라 이런 여자들의 노리개는 필요없으니, 소조 네가 갖
고 가거라."

소조는 웃으며 손을 연신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민이 공자께 준 정표인데 제가어찌 감
히....."

장무기는 주화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빙긋이 웃으며 가볍게 던
져 소조의 머리에 꼽았다. 소조는 손을 들어 그것을 떼려고 하자
장무기가 말렸다.

"그래, 너한테 선물을 주면 안 되느냐?"

소조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조소저가 보면 화를 내지 않을지 모르겠습
니다."

"오늘 네가 이런 큰 공을 세웠으니, 양좌사 부녀가 너를 다시는
의심하지 않을 거야."

소조는 크게 기뻐하였다.

"공자가 떠난 지 오래 되도록 안 돌아오자 불안해 하고 있었는
데, 원병이 또 공격해 오자 어찌 할 줄 몰라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외치게 된 겁니다. 그 때 저도 무척 무서웠습니다. 공
자께서 오행기와 천응기 여러분들에게 말씀 좀 해주세요. 이 소
조가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것을 용서 하시라구요."

그들은 어느새 벌써 하남성(河南省) 경내에 접어들었다. 그 당
시 천하가 혼란하여 사방에서 군호들이 반란을 일으켜 놓고 관병
들의 검문이 무척 삼엄했다. 명교의 많은 교도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 불편해서 뿔뿔이 흩어져 숭산 아래서 다시 모이기로 결정
하고 소실산을 향해 떠났다. 거목기의 장기사 문창송이 장무기와
군호들의 명첩(名帖)을 들고 먼저 소림사로 떠났다.

이번에 소림사로 가게 되면 다시 서로 병기를 들고 싸우는 일이
없길 바랐으나, 결과가 어떻게될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소림사 승려들이 경우를 따지지 않고 무력을 동원한다면, 명교에
서도 상대를 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무기는 각 수령들로
하여금 먼저 소림사에 들어가게 하고 오행기와 천응기의 교도들
은 모두 절 주위를 지키라고 했다. 자기가 휘파람소리를 세 번
불면 즉시 안으로 쳐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교도들은 명령을
받고 서로 자기의 방향대로 길을 떠났다.

소림사에 당도하자 사내에서 한 늙은 승려와 문창송이 걸어나왔
다. 늙은 승려가 입을 열었다.

"본사 장문인과 여러 장로들께선 폐관정수(閉關靜修)하고 있는
중이십니다. 죄송하지만 누구도 만날 수 없습니다."

군호들은 모두 난처해 했다. 주전이 버럭 화를 냈다.

"이분은 명교의 교주이시며 직접 불원천리 소림사를 방문 오셨
는데, 노화상들이 만나 주지 않다니 너무 안중무인이 아니요!"

늙은 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
했다.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주전은 더욱 노하여 냅다 스님의 멱살을 움켜잡으려고 하자 설
불득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주형,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시오."

스님은 합장을 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만나지 못할 거라 말하지 않았소?"

팽영옥이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달마당 수좌나 나한당 수좌께서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은천정이 참다못해 벼락같이 외쳤다.

"만나 줄 건가, 안 만나 줄 건가?!"

그는 쌍장을 다짜고짜 한쪽으로 밀어 붙였다. 순간 꽝! 하고 길
옆의 큰 소나무가 반으로 뚝 부러졌다. 그 스님은 그제서야 두려
운 기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여러분께서 먼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으니 응당 예절로
맞아들여야 할 터인데, 여러 장로께서도 지금 좌선을 하고 계시
므로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십시오."

말을 마친 노승은 합장을 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는 것이었다. 그러자 위일소의 몸이 번뜩이는 것 같더니 벌써 그
스님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사의 칭호가 어떻게 되는지요?"

"소승의 법명은 밝히고 싶지 않소이다."

위일소는 그의 어깨를 두 번 툭툭치며 웃는 낯으로 다시 말했
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본때를 보여 주지."

위일소가 그 노승의 어깨를 두드리는 순간, 그 스님은 어깨서부
터 차가운 한기가 가슴까지 스며들어 온몸이 얼음장처럼 굳어지
는 것 같았다. 그래도 노승은 억지로 참으며 위일소 옆을 지나
연신 몸을 떨며 산으로 올라갔다. 위일소가 그의 뒷통수를 향해
크게 외쳤다.

"저놈은 무예를 지니고 소림사에 들어간 거야. 소림파의 내공이
아니야!"

장무기는 즉시 원진이 떠올랐다. 그도 자신의 무예를 숨긴 채
다시 소림에 입문하지 않았던가! 소림사에선 이런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위복왕께서 그의 어깨에 한빙면장(寒氷綿掌)을 전개했으니, 그
의 사조(師祖)나 사부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자, 올라가 봅시
다! 그래도 노화상들이 안 만나 주면 한바탕 벌이는 도리밖에 더
있겠소!"

모두는 일장 악투를 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림파하면 무
림의 태산북두가 아닌가! 천 년을 내려오면서 강호에 장승불패문
파(長勝不敗門派)라는 칭호까지 얻고 있었다. 오늘 만약 일장 대
전이 벌어진다면 도대체 명교와 소림파 어느쪽이 강한지 판가름
날 것이다. 모두들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며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라갔다. 소림사에는 고수들이 구름과 같이 많은데 이번 대전은
격렬할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그들은 소림사 앞 석정(石亭)에 당도했다. 장무기는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태사부를 따라 이 석정에서 소림사
삼대 신승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여기에 온 것이다.
비록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는 약하고 병이 든 어린 소년이
었는데 반해, 오늘은 당당한 명교 교주라는 높은 신분이라 격세
지감이 들었다.

석정의 두 기둥은 부러져 있었고 석탁도 쓰러져 있었다. 설불득
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림 화상들은 정말 싸움꾼들만 모인 모양이군. 부러진 지 얼
마 안 된 것으로 보아 아마 며칠 전 한바탕 싸우고 난 뒤 아직
수리를 하지 못한 것 같군."

주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 후에 승전을 하고나서 이 정자를 모두 부숴 버립시다."

군호들은 석정에서 기다리며 소림사에서 많은 고수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오면 먼저 예절로 상대한 수, 은이정
을 이렇게 만든 죄를 문책하기로 했다. 만약 화상들이 무례하게
나오면 그 땐 부득불 병기를 사용하기로 하고 반나절을 기다렸지
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또 한 참이 지나자 멀리서 사람들이
소림사 뒷산으로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흥! 저들이 무슨 매복을 하는 건가?"

장무기가 외쳤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양소, 위일소, 은천정, 은야왕, 철관도인, 팽영옥, 주전, 설불
득, 사신인 모두는 장무기를 따라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이 대
웅보전에 와보니, 불상 앞의 공탁(供卓)이 넘어지고 향로도 바닥
에 떨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었으나 사람
은 보이지 않았다. 설불득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림사에서 우리가 온 것을 알고 향로까지 쓰러뜨리고 도망가
기에 급급했다니 정말 우습구나."

장무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명교의 장무기가 소림사의 방장대사를 만나뵈러 여기에 왔습니
다!"

그의 외침은 별로 큰 소리가 아니었지만, 그의 내력이 웅후하여
대웅전 옆의 큰 종마저 내력에 울려 윙! 윙! 하고 울렸다.

양소와 위일소는 서로 마주 보며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
다.

'교주의 내력은 실로 무섭구나. 당년 양교주가 살아 있다해도
장교주를 따를 수는 없을 거야. 보아하니 오늘은 우리 명교가 이
길 것 같군.'

그러나 누구 한 명 나타나지를 않았다.

주전이 다시 크게 외쳤다.

"소림사의 화상 형제들, 어째서 숨어 있기만 하오?"

그의 말소리는 장무기보다는 더 컸으나 종이 울리지는 않았다.

군호들은 또 잠시를 기다렸으나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
다.

팽영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안은 어딘지 음침하며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주전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거요?"

철관도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엇! 여기 부러진 선장(禪杖)이 있습니다."

설불득이 앗! 하고 놀랐다.

"여기에는 핏자국이 있군."

주전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광명정에서 일전을 치른 후, 교주의 위세가 사방에 떨쳐
소림파에서 면전패(免戰敗)를 내건 모양이군. 황급하게 도망치느
라 병기마저 다 버리고 가더니."

철관도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전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것 같지 않다는 거요?"

"이 핏자국은 왜 있습니까?"

"아마 겁이 나서 자기들이 스스로 자기의 손을 잘라 버렸
나.....?"

자신도 너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주전
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이때 거센 바람이 불어와 사람들의 소매가 날렸다.

"시원하군."

하고 말하자 갑자기 서쪽에서 뿌드득! 하고 소나무 부러지는 소
리가 들려왔다. 군호들은 모두 놀라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소나
무는 한쪽 마당의 동남쪽 끝에 있었으나 마당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분명 누군가 심후
한 수법으로 부러뜨린 사람의 짓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부러진
곳이 이미 건조되어 있어 조금 전에 한 짓이 아닌 것으로 보였
다.

군호들은 사방을 살펴보았다. 역시 마당엔 격렬한 전투를 한 자
국이 역력했다. 돌상이나 나뭇 가지, 그리고 벽에는 부러진 병기
나 장풍에 맞은 흔적이 많았다. 사방에 핏자국도 널려 있었다.
일장의 악투를 벌인 게 틀림없었다. 땅에는 발자국마저 보였다.
그것은 고수들이 내공을 겨룰 때 생긴 것 이었다.

장무기가 크게 외쳤다.

"빨리 그 스님을 잡아오십시오!"

위일소와 설불득이 양쪽으로 나눠 그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그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를 않았다. 살피러 나갔던 오행
기 교도들이 돌아와, 이 사원 안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를 하며 사방에 격투를 벌인 흔적이 있다고 보고를 해왔다.
사방에 싸웠던 흔적이 있고 핏자국이 널려 있었으나, 시체는 하
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양좌사,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격투는 이삼 일 전에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림파
가 전군이 섬멸당한 것일까요?"

설불득이 다시 말했다.

"조금 전에 수십 명이 뒷산으로 도망가지 않았소?"

"그것은 아마 소림파의 적들이었을 겁니다. 여기 남아 있다 우
리가 오자 그만 도망을 간 모양입니다."

팽영옥이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아까 그 스님도 가짜였을 겁니다. 그
런데 소림파와 맞설 이런 무서운 방파가 있습니까? 혹시 개방이
아닐까요?"

주전이 다시 말했다.

"아무리 개방의 세력이 크고 고수들이 많다 해도, 일거에 소림
파를 모조리 해치우지는 못할 거요. 명교 외엔 그런 실력을 가진
파가 없는데, 그렇지만 우리 명교가 한 짓은 아니고....."

철관도인이 입을열었다.

"주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그래 우리가 한 짓을 우리가
모르겠나?"

후토기 장기사 안원이 보고를 올렸다.

"교주께 보고드립니다. 나한당의 십팔존(十八尊) 나한 불상을
누가 움직였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군호들은 안원이 토목 건축학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그가 의심이
생겼다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
한당에 와보니 벽에 핏자국이 있고 사방에 계도(戒刀)와 선장(禪
杖)이 널려 있었다.

주전이 물었다.

"안형, 이 십팔 나한상이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요?"

안원이 대답을 했다.

"누가 움직인 것 같아 뒤에 무슨 비밀 통로가 있는가 하고 제가
살펴보니, 그런 비밀 통로는 없었습니다."

양소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안원이 다시 십팔나한상을 움직였으나 뒷벽에는 아무 이상도 없
었다. 양소는 신상 위로 뛰어올라 나한상을 살펴보더니 엇! 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나한 등에 글씨가 씌어져 있군."

그러면서 나한상을 뒤로 돌려 놓았다.

군호들은 커다란 멸(滅)자를 볼 수 있었다. 깊이 새겨져 흙이
보일 정도였다.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주전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멸자라..... 무슨 뜻이지? 아! 그렇구나! 아미파에서 소림을
쳐부수고 멸절사태가 자기의 위세를 알리려고 멸자를 새겨 놨구
나!"

그의 엉뚱한 얘기에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군호들은 십팔 나한상 전부를 뒤로 놀려놓았다. 그
러고 보니 양쪽 맨 끝 두 나한상 외엔 모두 등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차례로 읽어 내려가자 모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것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 <선주소림(先珠少林) 재멸무당(再滅武當) 유아명교(惟我
明敎) 무림칭왕(武林稱王)> -----

은천정, 철관도인, 설불득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것은 죄를 우리 명교에 덮어 씌우려는 계략이다."

소림사 군승들이 이런 처참한 횡액을 당한 것을 모두 명교에 뒤
집어 씌우려고 하다니, 군호들은 모두 일일이 걱정스럽다는 표정
들이었다.

"빨리 이 글들을 지워 버려야 된다. 누명을 쓰기 전에....."

주전이 이렇게 외치자 양소가 그의 말을 받았다.

"모든 악랄한 수법을 다 쓴 것같군. 아마 이 열 여섯 자를 지
워 버린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을 걸세."

이번엔 양소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 주전이 그와 더 이상 입씨름
을 벌이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이번엔 설불득이 그의 말을 받았다.

"이 열 여섯 자가 바로 증거가 되는 걸세. 그러니 우리에게 누
명을 씌운 놈을 잡아 이 열 여섯 자와 대질시키는 거지."

양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팽영옥이 다시 물었다.

"소승 한 가지 이해 못할 일이 있어서 양좌사의 가르침을 받을
까 합니다. 이 열 여섯 자를 새긴 자가 소림파를 궤멸시킨 누명
을 우리에게 씌우려고 했다면, 밖으로 보이게 새기지 않고 왜 하
필 나한상의 등 뒤에다 새긴 것입니까? 만약 안기사께서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누가 나한상 등 뒤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알겠
습니까?"

양소는 침울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내 생각엔 누군가 다시 이 나한상을 돌려놓은 사람이 있는 것
같소. 아마 몰래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겠지요. 우린 그 사람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것 같소."

그 말에 군호들은 양소에게 또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양좌사께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응! 무슨 우여곡절이 있는지 나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
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 하고 장무기가 외쳤다.

"선주소림 재멸무당이라..... 아마 무당파에서 지금 위험이 닥
치고....."

위일소가 말을 이었다.

"빨리 무당파를 도우러 갑시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
을....."

은천정이 뒤따라 말했다.

"늦기 전에 빨리 출발하세. 그 도적놈들은 벌써 이틀 전에 그곳
으로 떠났으니까."

장무기는 송사백 등 일행이 서역에서 무당산으로 돌아왔을지 모
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들의 소
식은 전혀 들은 바 없었다. 만약 그들이 도중에서 무슨 변고라도
생겼다면 무당산을 지키고 있는 건 태사부님과 약간의 제 삼대
제자들뿐일 것이다. 삼사백 유대암은 불구가 되어서 침대에 누워
있을 텐데, 강적들이 갑자기 당도하게 되면 어찌 대항을 하겠는
가! 이러한 생각이 들자 더욱 조급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윽
고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선배 여러분, 무당파는 선친의 출신지고 태사부님이 제게 베푸
신 은혜는 산처럼 무겁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
니다. 구병(救兵)은 마치 불을 끄는 것처럼 한시라도 빨리 당도
하면 그만큼 화를 면하게 되는 것이오. 우선 위복왕과 본인이 앞
서 가서 구원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양좌사와 외할아버지의 지시
대로 곧 뒤따라 오십시오."

이윽고 포권의 예로 인사하고 나서 급히 산문(山門)을 나왔다.

위일소는 경공을 전개해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다. 군
호들의 대답하는 소리가 미쳐 나오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소
림사 밖으로 나왔다. 이 두 사람의 경공 실력은 당세에 그들을
따를 자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단숨에 수십 리를 달렸다. 위
일소는 처음에 전혀 장무기에게 낙후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
자 내력이 점점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무당산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계속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다. 더구나 강적이 앞에 있으니 전력을 너무 허비하면 안
되겠다.'

이윽고 장무기는 위일소에게 말했다.

"우리 앞에 있는 시진(市鎭)에 가서 말을 두 필 산 다음에, 잠
시 쉬었다가 갑시다."

위일소는 벌써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
다.

"교주, 말을 구입하는 일은 너무 시간이 걸립니다."

얼마 후, 앞에서는 오, 육 명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
러자 위일소는 몸을 솟구치더니 두 명의 말 탄 자들을 들어올려
서 살짝 땅에 내려놓고 소리쳤다.

"교주, 올라오시오!"

장무기는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길을 막고 말을 뺏는 일은
강도의 소행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위일소가 다시
소리쳤다.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되는 것이오. 뭣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오!"

그는 호통을 치면서 또다시 두 명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그 자들도 약간의 무공을 할 줄 알았다. 저마다 욕을 퍼붓더니
병기를 뽑아 들고 공격하려 했다. 위일소는 양손으로 말 네 필을
멈추게 하더니, 발을 날려서 그들의 병기를 모두 걷어차 버렸다.
그러자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막고 강도질하는 건 어떤 호한(好漢)의 행실이냐? 어서
말을 돌려 줘라!"

장무기는 그들을 붙들고 늘어져 봤자 못된 짓만 더할 것 같아서
얼른 몸을 튕겨 말에 올라타더니, 위일소와 각각 한 필씩 끌고
달려갔다. 그 자들은 욕을 마구 퍼부었으나 감히 쫓아오지는 못
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비록 우리가 급한 나머지 이런 짓을 했지만, 그들도 급한 일이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교주, 그러한 작은 일에 뭣 때문에 연연해 하는 겁니까? 옛날
에 명교가 저지른 일이야말로 방자하고 거리낌없이 멋대로 행동
한 게 마치 무법천지 같았습니다."

위일소는 말을 하면서 껄껄 크게 웃었다.

장무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명교를 사악한 이단(異端)으로 보는 이유가 있었구
나. 하지만 도대체 어떤 자가 올바르고 어떤 자가 사악한 것인지
는 실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장무기는 자기가 교주란 중임을 맡고 있는 것을 생각했으나 견
식이 얕아서 많은 일을 자기 주장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금방
말을 빼앗는 일만 해도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비록 무
공은 고강하나, 천하의 일들을 어찌 무공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
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자 내심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오직
하루속히 사손을 영접해 돌아오기만을 바랬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가 번뜩거리더니, 두 사람
의 수중에 모두 강장(鋼杖)을 쥔 채 길을 막아섰다.

위일소가 소리쳤다.

"비켜라!"

그러면서 채찍으로 허리를 후려치며 말을 몰고 돌진했다. 그러
자 한 사람은 강장을 들어서 채찍을 막아내고, 또 한 자는 소리
를 한 번 지르면서 왼손을 한 번 흔들었다. 위일소의 말이 놀라
서 사람처럼 일어섰다. 순간, 숲 속에서 또 다시 네 명의 흑의
남자가 뛰어나왔다. 각자의 신법을 보니 보통들이 아니었다. 그
러자 위일소가 소리치며 말했다.

"교주께서는 멈추지 마시고 가시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은 제
가 맡겠소."

이 사람들의 저의는 무당파의 원병을 막아서 끊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니 무당파의 처지는 실로 극도로 위험한 것이 분명
했다. 그는 위일소의 경공과 무공이 모두 뛰어나서 이들을 물리
치리라 믿고 있었다. 설사 이길 수는 없어도 최소한 자신을 보호
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양발로 말을 한 번 차더니 앞으로
질주해 갔다.

흑의인 두 명은 강장을 몸 앞에 가로 세우면서 길을 가로막았
다. 장무기는 몸을 밖으로 구부려서 그 자들의 강장을 탈취하여
즉시 던져 버렸다. 그러자 악! 악! 하고 비명소리와 함께 흑의인
두 명은 강장에 맞아 대퇴골이 부서지면서 땅에 쓰러졌다. 그는
위일소를 감싸고 있는 그 네 명의 무공을 살펴보니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기가 가게 되면 위일소에게는 더욱 불리할
것 같아서 즉시 그를 도와서 두 명을 처치해 주었다.

숭산(崇山)과 무당산은 비록 예(豫), 악(顎) 양성(兩省)에 나뉘
어져 있었지만, 하나는 예서에 있고 하나는 악북에 있어서 거리
가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마산구(馬山口)를 지나자 남쪽으로는
모두 평야라서 말이 달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점심때가 되자 내향(內鄕)을 지나갔다. 장무기는 허기가 저서
시장통에 있는 빵 파는 곳에서 요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 있는 말이 괴롭게 울부짖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말의
배에는 반짝거리는 칼이 한 자루 꽂혀 있었다. 순간, 그림자 하
나가 길모퉁이에서 번뜩거리더니 즉시 사라졌다.

장무기는 급히 몸을 날려서 그 자를 잡아 보니, 역시 또 흑의의
남자였다. 앞깃에는 말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장무기는 소리치며 다그쳤다.

"넌 누구의 수하냐? 어느 방회 문파냐? 너희들의 인마(人馬)들
은 이미 무당산에 당도했느냐?"

연거푸 몇 번 물어 보았으나 그 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장무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건 무당산에 도착하
면 자연히 밝혀진다는 생각이 들자 즉시 손을 내밀어 그의 대추
혈(大推穴)을 폐하였다. 그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아프면서 삼
일 동안 밤낮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다.

장무기는 즉시 말을 달렸다. 단숨에 삼관전(三官殿)으로 달려가
서 한수(漢水)를 건너 남쪽으로 계속 갔다.

배가 중류에 접어들자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그날 태
사부가 자기를 대동하여 소림사에서 구의(求醫)하고자 했으나 뜻
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한수에서 상우춘(常遇春)을
만나고 또 주지약을 구해 준 일들이 생각났다. 순간 뇌리에 그녀
의 아름다운 모습과 광명정 위에서 끊임없이 주목하는 안파(眼
波)가 나타나자 그만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한수를 지난 후, 말을 재촉해서 계속 남쪽으로 쉬지 않고 달렸
다. 이때 하늘을 벌써 어두워져서 앞이 몽롱하게 보였다. 다시
한 시간 정도 달리자 더욱 어두워졌다. 말도 너무나 지쳐서 서
있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말등을 몇 번 두드리고
말했다.

"말아, 말아, 넌 여기서 쉬고 싶은 대로 쉬었다가 네 갈 길로
가거라."

그리고는 경공을 전개하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경(四更)쯤 되자 갑자기 앞에서 말굽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이윽고 그는 발길을 재촉하여 그 사람들 몸 옆으로 스쳐갔다. 그
의 신법은 신속하고 가벼웠다. 더구나 야밤이라서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한패의 사람들의 행방도 역시 무당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십 여 인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아서 신분이나
내력을 탐지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병기를 휴대한 것
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들도 역시 무당파의 적임을 절대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서 당도하면 무당파는 침공당하지 않을 것이
다.'

다시 반 시간 정도 걷고 나니 앞에는 또다시 한패의 사람들이
무당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처럼 전후로 해서 모두 다섯패 씩이
나 만났다. 한패에 작으면 십여 명이었고 많으면 삼 십여 명이었
다. 다섯 패째 사람들을 보고 나서 그는 갑자기 또 걱정이 되었
다.

'이미 몇 패의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혹시
본파의 사람들과 이미 격전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비록 무당파의 제자는 아니지만 부친이 근본이기 때문에,
항상 무당파를 자기의 문파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되자, 달
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얼마 후 무당산에 당도했다. 다행히 적들을 다시 만나지 않았
다. 산중턱에 오르게 되자 갑자기 앞에서 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머리에 넓은 옷자락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는 승인인 것 같았다. 경공의 실력이 실로 놀라웠다. 장무기는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의 뒤를 밟으며 동태를 살펴보았다.

그 승인이 단숨에 산에 올라가 막 산꼭대기에 도착하려는 순간
한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디에서 온 친구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심야에 무당을 광림하
는 것이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위 뒤에서 양도양속(兩道兩俗) 네 사람이
섬출(閃出)했다. 바로 무당파의 제 삼, 사대 제자들이었다.

그 승인은 합장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소림 승인 공상이 무당 장진인에게 급한 용무가 있어서 찾아왔
소."

장무기는 의아했다.

'그는 소림파의 공(空) 자배(字輩)의 선배대사였구나. 그렇다면
공문, 공지, 공성 삼대신승과는 사형제 배(輩)일 것이다. 그가
고생을 무릅쓰고 무당산에 온 것은 소식을 전하려 했던 것이었구
나.'

무당파의 도인 한 명이 말했다.

"대사께서 먼길에 수고하셨으니, 걸음을 폐관(폐觀)으로 옮기셔
서 차라도 한 잔 드십시오."

말이 끝나자 즉시 앞으로 길을 안내했다. 공상(空想)은 허리춤
에 차고 있는 계도를 풀어내더니 다른 한 명의 도인에게 건네주
었다. 이는 병기를 후대하고 감히 관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예
의의 표시다.

장무기는 그 도인이 공상을 자소궁에 있는 삼청전(三淸殿)에 데
리고 들어가는 걸 보고는 얼른 창문 밖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이윽고 공상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도장께서 즉시 장진인께 알리시오! 사정이 워낙 다급해서 잠시
도 지체해서는 아니되오."

"대사께서 오신 게 공교롭지 못하십니다. 폐사조께서 세좌관(歲
坐關)에 가신 지 벌써 일 년이 넘어서 본파의 제자들도 그 어르
신네를 못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송대협에게 통보해 주시오!"

"대사백께서는 가사(家師)와 여러 사숙님을 대동하고, 귀파와
연맹하여 명교를 원정하러 가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장무기는 <명교를 원정하러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
을 듣자 내심 놀라웠다. 그렇다면 송원교 일행은 도중에서 사고
를 당한 게 분명했다.

이윽고 공상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무당파도 우리 소림파처럼 오늘의 이 폭행을 벗어나
지 못하겠구료."

"지금 폐파의 사부는 곡허자(谷虛子)사형께서 주치하고 있으니,
소도(小道)가 즉시 통보하여 대사님을 참견하시라 하겠습니다."

"곡허자는 어느 분의 제자지요?"

"유삼숙의 문하입니다."

"유삼협께서는 수족에 상처가 있지만 노승의 이 몇 마디는 알아
들이실 것이오."

"알겠습니다. 대사의 분부를 따르겠소!"

이윽고 그 도인은 안으로 들어갔다.

공상은 대청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몹시 초조한 것 같았다. 간간
이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는 게 적이 산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도인은 빠른 걸음으로 나와서 허리를 굽히고 말했
다.

"유삼숙께서 들어오시라 하십니다. 나와서 영접하지 못한 죄 대
사께서 용서하시라고 하시더군요."

이때 그 도인의 태도가 아까보다 더욱 공손해졌다. 아마 유대암
이 <공(空)>자배의 소림승이므로 그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분부한
것 같았다. 이윽고 공상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를 따라서 유
대암의 와방(臥房)으로 갔다.

'삼사백은 사지가 불구가 됐으니 귀와 눈은 배로 영민(靈敏)할
것이다. 내가 만약에 그의 창 밖에서 도청하면 아마 그에게 발각
될지도 모른다.'

장무기는 유대암의 와방에서 수장(數丈) 떨어진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차 한 잔 끓이는 시간이 지난 후, 그 도인은 황급히 유대암의
방에서 나오더니 소리를 낮추어서 불렀다.

"청풍, 명월, 이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두 명의 도동(道憧)이 그에게 다가가면서 대답했다.

"네, 사숙님."

"연의(軟椅)를 준비해라. 삼사숙께서 나오실 거다."

두 명의 도동은 대답하고 나서 급히 준비하러 갔다.

장무기는 무당산에서 여러 해를 지냈지만 그 지객도인(知客道
人)은 유연주가 새로 맞이한 제자라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청풍, 명월 두 도동은 알아보았다. 그 도동들이 연의가 놓여 있
는 상방(廂房)으로 다가가자 살며시 뒤를 따라갔다. 도동들이 방
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소리쳤다.

"청풍, 명월, 너희들은 나를 알아보겠느냐?"

두 도동은 깜짝 놀랐다. 장무기를 눈여겨보자 얼굴이 어디서 본
듯은 했지만 금방 식별하지 못했다.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
했다.

"나는 무기 막내 사숙이다. 너희들은 날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두 도동은 즉시 옛일을 회상하면서 몹시 기뻐하며 소리쳤다.

"아, 막내 사숙님! 돌아오셨군요. 병은 완쾌되었습니까?"

이 세 사람은 나이가 비슷해서 전에 자주 같이 놀았었다.

"청풍, 내가 너로 가장해서 삼사백을 모시러 가면 날 알아 보겠
느냐?"

"그건..... 그건 곤란합니다."

"삼사백께서는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걸 보게 되면,
절대로 널 나무라시지는 않을 것이다."

장삼봉 조사(祖師) 이하 무당육협들은 이분 막내 사숙을 몹시
총애하고 있다는 것을 이 두 도동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건강
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건 하늘만큼 큰 경사였다. 더구나 그가
이같은 작은 장난을 하는 건 유대암의 병에는 약이 되는 것이라
과히 나쁜 일이 아니었다.

명월은 웃으며 말했다.

"막내 사숙님의 맘대로 하세요."

그러자 청풍은 즉시 낄낄거리며 도포와 신발, 양말을 벗어서 장
무기에게 주었다. 명월은 그의 머리를 도인의 머리처럼 빗겨 주
었다. 잠시 후, 영락없는 작은 도동으로 변했다.

명월이 말했다.

"막내 사숙님은 청풍의 얼굴을 닮지 않았으니, 관중에 새로 온
소도동이라고 하세요. 청풍은 다리를 다쳐서 대신 왔다고 하십시
오."

"잘 알겠다....."

그 도인은 방 밖에서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장무기와 명월은 혀를 몇 번 내밀더니 연의를 들고 유대암의 방
으로 얼른 갔다. 두 사람은 유대암을 부축해서 연의에 앉혔다.
유대암은 몹시 정중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를 들고 있는 게 누
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말했다.

"뒷산의 소원(小院)에 계신 조사 어르신네를 만나뵈러 가자."

"네, 알겠습니다."

명월은 대답하고 나서 연의의 앞을 들었고 장무기는 뒷부분을
들었다. 유대암은 명월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고 장무기는 볼 수
없었다. 공상도 연의의 옆에 붙어서 함께 뒷산으로 갔다. 그러나
그 지객도인은 유대암이 부리지 않아서 감히 동행하지 못했다.

장삼봉이 폐관정수(閉關靜修)하고 있는 수원은 뒷산 죽림(竹林)
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밭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새소리
외에는 전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명월과 장무기는 유대
암을 들고 수원 앞까지 와서 연의를 내려놓았다.

유대암이 막 장삼봉을 부르려 하는데, 갑자기 문을 사이에 두고
장삼봉의 창로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림파의 어느 고승께서 한거(寒居)를 왕림해 주셨소? 노도가
멀리 나가서 영접하지 못한 죄 용서해 주기 바라오."

곧이어 소리가 나더니 죽문이 열리면서 장삼봉이 천천히 걸어나
왔다.

공상의 얼굴은 의혹으로 가득했다. 그는 장삼봉이 어떻게 방문
자가 소림승인 것을 알고 있을까, 몹시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까 그 지객도인이 사람을 보내서 미리 통보해 준 것이
라고 생각했다.

유대암은 사부의 무공이 날이 갈수록 더욱 정심해지는 걸 알고
있었다. 공상의 발소리만 들어도 그의 무학과 문파 무공의 깊고
낮음을 이미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윽고 공상은 합장하며 말했다.

"소승은 소림의 공상입니다. 무당의 선배님인 장진인을 참견합
니다."

장삼봉도 답례를 하고 나서 말했다.

"별 말씀을..... 자,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다섯 사람은 함께 소원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주전자 하나 찻잔
하나가 있었고,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었으며, 벽에는 목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탁상 위와 바닥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공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진인, 소림파는 천 년 만에 크나큰 참변을 당했습니다. 마교
가 갑자기 기습해 오는 바람에 본파의 방장인 공문사형을 비롯해
전사하지 않으면 포로가 되었습니다. 오직 소승 한 사람만 죽음
을 무릅쓰고 도망 나왔습니다. 마교의 대 부대는 지금 무당으로
오고 있으나, 오늘 중원 무림의 존망영욕(存亡榮辱)은 모두 장진
인 한 사람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장무기는 몹시 놀랬다. 그는 소림파가 이미 화를 당한 건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전파가 복몰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장
삼봉도 백 년이란 수위가 있다 해도 갑자기 이런 놀라운 소식을
듣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교가 이처럼 당돌하다니, 하지만 소림사에는 고수가 구름같
이 많은데 어찌 마교의 독수에 당한 것입니까?"

"공지, 공성 두 분 사형께서는 문하의 제자를 이끌고 중원의 오
대파와 결맹하여 광명정을 위공(圍攻)하러 가셨고, 산사를 지키
고 있는 제자들은 날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
루는 원정갔던 사람들이 대승하여 돌아온다는 소식을 산 밑에서
보고해 왔습니다. 방장 공문사형께서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
며 제자들을 대동하여 산문 밖으로 영접하러 갔습니다. 과연 공
지, 공성 두 분 사형께서 서정(西征)제자들을 이끌고 산사로 돌
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로 수백 명의 포로도 끌고 왔지요.
사람들이 대원(大院)에 당도하자 방장은 승리하게 된 과정을 물
어 보았는데 공지사형은 자꾸 더듬 거렸습니다. 갑자기 공성사형
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형, 조심하시오! 우리는 포로가 되
었소. 저 자들은 모두 적.....!" 이 찰나 포로들은 병기를 뽑아
들고 갑자기 달려 들었습니다. 본파의 사람들은 뜻밖에 당하는
일인데다 많은 고수가 서정에서 적의 포로가 되었으니, 본사를
지키고 있는 세력은 자연히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대원
자(大院子)의 앞뒤 출로는 이미 적들이 모두 차단해 버렸습니다.
자연 격전이 벌어졌으나 결국 모두 당하고 만 것입니다. 공성사
형은 거기서 순난(殉難)....."

여기까지 말한 그는 목이 메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마교가 이처럼 악독한 계략을 감행하니 누구라도 막을 수가
없소."

공상은 등에 메고 있던 노란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자 기름천에
쌓여 있는 수급 한 개가 나타났다. 두 눈을 부릅뜨고 몹시 격분
되어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소림 삼대 신승 중의 한 사람인 공
성대사였다.

장삼봉과 장무기는 모두 공성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보는 순간
그만 아! 하고 일제히 소리쳤다.

공상은 곡을하며 말했다.

"전 죽음을 무릅쓰고 공성사형의 법체를 빼앗아 왔습니다. 장진
인, 이 원수를 어떻게 갚았으면 좋겠습니까?"

그러면서 공성의 수급을 정중하게 탁자에 올려놓더니, 땅에 엎
드려서 절을 하였다. 그러자 장삼봉도 허리를 굽히고 합장하여
인사했다.

장무기는 광명정에서 무공을 겨루던 생각을 하였다. 공성의 너
그러운 성품과 슬기롭고 뛰어난 도량은 실로 당당한 소림의 일대
종사(一代宗師)였다. 그러나 불의의 참변을 당해서 신수(身首)까
지 분리되었으니 몹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삼봉은 공상이 땅에 엎드려서 한참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자
손을 내밀어 부축하며 말했다.

"공상사형, 소림과 무당은 본시 한 집안이오. 이 원수는 꼭 갚
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펑! 하고 일성이 나더니 공
상의 쌍장이 그의 하복부를 후려쳤다.

갑자기 닥친 변고라서 제아무리 무공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장삼봉이라도 이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공상
이 너무나 비통해서 자기를 적으로 착각했다는 생각을 해보았으
나, 즉시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하복부에 적중된 장력은 소
림파의 외문신공(外門神功)인 <금강반약장(金剛般若掌)>이었다.
더구나 공상은 전신의 경력으로 장력을 끊임없이 촉진시켜 왔다.
얼굴은 마치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가에는 사나운 웃음을 짓고 있
었다.

장무기, 유대암, 명월 등 세 사람은 갑자기 일어난 변고를 보자
모두 놀라서 멍청해졌다. 유대암은 몸이 불구라서 사부를 도와주
지 못했다. 장무기는 나이가 어리고 견식 또한 부족하여 순간적
으로 공상이 일장으로 태사부를 죽여버리겠다는 의도를 깨닫지
못했다. 두 사람은 비명만 한 마디씩 질렀다.

장삼봉은 즉시 좌장을 휘둘러 팍! 하고 가볍게 소리를 내면서
공상의 천령개(天靈蓋) 위를 후려쳤다. 이 일장의 부드러움은 마
치 솜 같았고 단단함은 마치 무쇠 같았다. 이윽고 공상은 즉시
뇌골이 분쇄되어 마치 젖은 흙처럼 주저앉았다. 전혀 소리도 지
르지 못하고 즉사한 것이다.

유대암은 급히 물었다.

"사부님, 괜찮....."

그러면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 장삼봉은 눈을 감고 좌정(坐正)
하였다. 잠시 후 머리 위로 가느다란 백기(白氣)를 뿜어내면서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몇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장무기는 몹시 놀랬다. 태사부가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기 때
문이다. 만약 그가 토해 낸 것이 검붉은색의 피라면 그의 심후한
내력으로는 삼, 사일이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토한 건
선혈이고 더구나 급히 뿜어낸 듯해서 필시 장부(臟腑)에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이 순간 그의 마음은 또다시 망설여졌다.

'즉시 신분을 밝히고 태사부님을 구해드릴까? 아니면 어떻게 해
야 되는 것일까?'

바로 이때였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이 문 밖에 당도했
다. 그의 급한 걸음걸이를 들어보면 몹시 다급한 것 같았다. 그
러나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또 소리도 감히 내지 못했다.

그러자 유대암이 물었다.

"영허냐? 무슨 일이냐?"

그 지객도인 영허가 말했다.

"삼사숙님께 아룁니다. 마교의 대대가 문 밖에 당도해서 조사
어르신네를 뵙자고 합니다.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무당파를 평정
한다고 하면서....."

"닥쳐라!"

유대암은 소리쳤으나 장삼봉의 정신이 흐트러질까 봐 몹시 조심
스러웠다.

이윽고 장삼봉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말했다.

"소림파의 금강반약장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아마 삼 개월
간 정양(靜養)해도 상처가 완쾌되지 않을 것이다."

'태사부님의 상처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심하구나.'

장삼봉은 다시 말을 이었다.

"드디어 명교가 대거 산으로 올라왔구나. 그건 그렇고 원교와
연주 등이 무사한지 모르겠다. 대암아, 네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유대암은 묵묵히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산사에 남아 있는
사부와 자기 외에 삼, 사 대 제자의 무공으로는 억울한 죽음만
당할 뿐 절대로 적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일은 오직 자기가 목숨을 걸고 적들과 대항하는 동안 사
부는 피신하여 상처가 아문 다음 다시 복수하기를 기다리는 수밖
에 없었다. 이윽고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영허, 가서 그들에게 전해라. 내가 그들을 만나 볼 것이니 삼
청전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영허는 대답하고 나서 즉시 달려갔다. 장삼봉과 유대암은 오랫
동안 같이 지내서 심의가 상통되었다. 그가 이처럼 말을 하는 걸
듣자 이미 저의를 눈치챘다.

"대암, 생사승부에 너무 마음을 쓸 것 없다. 하지만 무당파의
절학은 절대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십 팔개월 동안 좌관
(坐關)하면서 무학의 정요인 태극권(太極拳)과 태극검(太極劍)을
터득한 게 있다. 지금 너에게 전수하겠다."

그러자 유대암은 멍해졌다. 자기는 불구가 된 지 오래 되었는데
무슨 권법 검술을 배우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강적들이 이미 관
에 들어왔는데 무슨 여가가 있어서 무공을 전수받을 수 있겠는
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사부님만 부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장삼봉은 지그시 한 번 웃더니 말을 했다.

"나의 이 태극권과 태극검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무학과는 판
이하게 다르다. 이건 이정제동(以靜制動) 후발제인(後發制人)을
강구한다. 너의 사부의 나이는 백 세가 넘어서 설사 강적은 만나
지 못해도 몇 년을 더 살 수 있겠느냐? 그나마 기쁜 일은 죽기
전에 이 무공을 창재해 낸 것이다. 원교, 연주, 송계, 이정, 성
곡 모두 곁에 없고 제 삼, 사 대 제자들 중에는 유독 청서만 걸
출한 인재인데, 그도 역시 산에 없지 않느냐. 대암, 넌 내가 평
생 연마한 절예(絶藝)를 전수하는 중요한 책임을 짊어졌다. 무당
파 하루의 영욕(英辱)을 뭐하러 따지느냐? 이 태극권이 후대(後
代)에 전할 수 있다면 우리 무당파의 대명은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장삼봉은 손등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서 양발을 벌리더니
바로 일초일식을 시전해 보였다. 입으로는 초식의 이름들을 불렀
다. 람작미(欖雀尾), 단편(單鞭), 제수상세(提手上勢), 백학량시
(白鶴亮市), 루슬구보(樓膝拘步), 수휘비파(手揮琵琶), 진보반난
추(進步搬欄錘), 여봉사폐(如封似閉), 십자수(十字手), 포호귀산
(抱虎歸山)........

장무기는 잠시도 눈을 굴리지 않고 열심히 관찰하였다. 처음에
는 태사부가 일부러 느리게 연출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제 칠
초 <수휘비파>를 보자, 그의 좌장은 양(陽) 우장 음(陰)으로 해
서 눈을 왼쪽팔을 주시하더니 쌍장을 천천히 합장했다. 마치 산
처럼 무겁고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윽고 장무기는 갑자기 깨우침
을 얻은 것 같았다.

'이건 느린 동작으로 빠른 걸 제압하는 이정제동(以靜制動)의
상승(上乘) 무학이다. 세상에 이처럼 고명한 무공이 있을줄이야.
정말 뜻밖이다.'

그는 본시 무공이 뛰어나서 막상 깨우치게 되니 볼수록 넋을 잃
고 있었다. 이윽고 장삼봉은 양손을 돌렸다. 매 초식마다 모두
태극식의 음양 변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건 실로 무학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신천지를 개발한 것이다.

잠시 후 장삼봉은 양손으로 태극식의 원을 그리면서 말했다.

"이 권술의 촛점은 <허령정경(虛零頂經), 함흉발배(涵胸拔背),
송요수둔(송腰垂臀), 침견추주(沈肩墜주) 열 여섯 글자에 있다.
모두가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힘을 사용하는 건 금기이다. 행
신(行神) 합일(合一)이 이 권법의 요지다."

그러면서 상세히 해설해 주었다.

유대암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때가 다급하여
질문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중간에 이해 못하는
곳이 많았으나 억지로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사부에게
예측 못할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구결(口訣) 초식들은 자기가 전
해 내려서 나중에 다시 총명한 재지지사(才智之士)가 그 안의 정
오함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많은 걸 깨우
쳤다. 장삼봉의 매 구결과 매 초식마다 초문대도(初聞大道)라 기
뻐서 어쩔 줄 몰랐다.

장삼봉은 유대암의 얼굴에서 이해 못하는 당혹한 표정을 발견하
고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이해했느냐?"

"제자가 우둔하여 겨우 삼,사 성(成)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초식과 구결은 모두 기억했습니다."

"그만한 것도 다행이다. 만약에 연주가 여기 있다면 아마 오성
(成)은 이해할 것이다. 너희들 중에 오사제의 깨우치는 능력이
최고 높았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죽었다. 만약에 그에게 삼 년만
열심히 지적해 주면 나의 이 절기는 전할 수가 있을 텐데....."

장무기는 자기의 부친을 들먹이자 그만 가슴이 찡했다.

장삼봉이 말했다.

"이 권경은 우성 사송비송(似송非송) 장전미전(將展未展) 경단
의불단(勁斷意不斷)....."

계속해서 해설해 주려는데 앞에 있는 삼청전에서 한 늙은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장삼봉 노도가 정히 나타나지 않으면, 우린 그의 제자 제손들
을 먼저 처치해 버리자."

다른 소리가 또 들려왔다.

"좋다. 우선 이 도관(道觀)을 불질러 버리자!"

"노도(老道)를 화형시키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니, 우리가
그를 잡아서 밧줄로 묶어서 각처에 있는 문파에게 구경시켜 주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무학태두(武學泰斗)가 늙어도 죽지
않는 모양을 볼 수 있게 된다."


----- 제 4 권 8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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