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5-1

3학년2반 | 2022.03.05 07:45:17 댓글: 0 조회: 41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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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제 1 장 무당산(武當山)에 부는 회오리


뒷산의 소원과 앞에 있는 삼청전 거리는 이 리(里)정도 되었다.
그러나 그 몇 사람의 말소리는 똑똑히 전해 왔다. 필시 적들이
자기네 무공을 과시하려는 것 같았다.

유대암은 이처럼 사존을 모욕하는 언사를 듣자 화가 치밀어서,
눈에서는 마치 불을 뿜어나오는 것 같았다.

"대암아, 내가 너에게 단단히 일러둔 말을 벌써 잊었느냐? 모욕
을 참아내지 못하면 어찌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겠느냐?"

"네, 사부님의 교훈을 받들겠습니다."

"너는 온몸이 불구라 적들이 널 경계하지 않을 것이니 절대로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 만약에 내가 고심하여 창작해 낸 절예
(絶藝)를 후세에 전하지 못하면, 넌 바로 무당파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장삼봉은 몸에 지니고 있는 쇠로 주조된 한 쌍의 나한
(羅漢)을 꺼내어 유대암에게 주며 말했다.

"이 공상의 말을 견주어 보면 소림파가 이미 섬멸되었다는데,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다. 이 자는 소림파의 고수인데 그
자마저 적에게 투항하여 나를 암살하려 온 걸 보면 소림파는 필
시 큰 화를 당한 게 분명하다. 이 한 쌍의 철나한은 백 년 전 곽
양(郭襄) 곽여협께서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네가 나중에 소림의
전인(傳人)에게 돌려주어라. 이 철나한의 몸에서 소림파의 일항
절예(一項絶藝)를 유전(流轉)하기 바랄 뿐이다."

말을 하면서 큰 소맷자락을 한 번 흔들더니 문 밖으로 나갔다.

네 사람이 삼청전에 와보니, 삼청전 안에는 앉아 있거나 서 있
는 사람이 족히 삼, 사 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장삼봉은 가운데 서더니 포권하여 인사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
다. 그러자 유대암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분이 바로 저의 사존인 장진인이오. 여러분들이 무당산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장삼봉의 대명(大名)은 무림을 위진(威震)하였기에 모든 사람의
눈빛은 일시에 그의 몸에 집중되었다. 그는 더러운 회색도포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은백색이었고, 체격이 몹시 클 뿐 무슨 특
별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장무기가 이 사람들을 살펴보니, 반수는 명교 교도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앞에 서 있는 십여 명은 각각 다른 복장을 입고 있
었다. 아마 그들은 신분을 높게 보이려고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
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고왜승속(高矮僧俗) 수 백명이 진중
에 모여 있어서 일시에 각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문 밖에 있는 자가 소리쳤다.

"교주가 오셨습니다."

삼청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즉시 정숙해졌다. 앞
에 있던 십여 명은 얼른 나가서 영접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곧 뒤
따라서 나갔다. 눈깜짝할 사이에 삼청전 안에 있던 수백 명이 하
나도 남김없이 모두 나갔다.

이윽고 십여 명의 발자국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워지더니
삼청전 밖에서 멈추었다. 장무기는 전문(殿門)을 바라보는 순간
그만 깜짝 놀랐다. 여덟 사람이 황단대교(黃緞大橋)를 들고 있고
칠, 팔 명이 앞뒤로 호위하며 문 밖에 서 있었다. 그 가마를 들
고 있는 여덟 명의 가마꾼은 바로 녹류장(綠柳莊)의 <신전팔웅
(神箭八雄)>이었다.

장무기는 얼른 두 손으로 바닥에 있는 먼지를 쓸더니 얼굴에다
칠하였다. 명월은 그가 적들을 보게 되자 너무 무서워서 그러는
줄만 알았다. 그러자 자기도 따라서 얼굴을 칠하였다. 두 소도동
은 금방 조군보살(조君普薩)처럼 변해서 본래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이윽고 가마문이 열리자 소년 공자 하나가 걸어나왔다. 몸에는
하얀 도포를 입고 있었고, 도포 위에는 시뻘겋게 불길이 수 놓아
져 있었다. 부채를 살며시 흔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남장한 조민
이었다.

'모든 게 전부 그녀가 부린 재주였구나. 그러니 소림파가 전혀
수습하지 못한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삼청전 안으로 들어가자 십여 명이 따라서 들어
갔다. 그러자 체격이 우람한 남자가 한 걸음 다가서더니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교주께 아뢰오. 이 자가 바로 무당파의 장삼봉 노도이고, 이
불구자는 아마 그의 제 삼제자인 유대암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조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서
부채를 접으며 장삼봉에게 읍을 하고 다시 말했다.

"만생(晩生)은 명교를 장악하고 있는 장무기입니다. 오늘 무림
의 북두(北斗)를 뵙게 된 것은 실로 영광입니다."

장무기는 몹시 화가 났다.

장삼봉은 <장무기> 세 자를 듣자 매우 이상하게 느꼈다.

'어찌 마교의 교주가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소녀일까? 이름도
하필이면 무기와 같단 말인가?'

이윽고 합장을 하며 답례하고 나서 말했다.

"교주께서 광림한 것을 모르고 있어서, 영접하지 못한 죄 용서
해 주기 바라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지객도인 영허가 화공도동(火工道憧)을 이끌고 차를 가지고 왔
다. 조민 한 사람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수하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바른 자세를 취한 채 뒤에 서 있었다. 감히 그
녀의 곁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불순하게 보
일까 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장삼봉은 송원교 등의 생사안위가 몹시 걱정되었다.

"노도의 제자들이 주제를 모르고 귀교에 갔는데, 여태까지 돌아
오지 않았소.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장교주께서 알려 주기 바라
오."

그러자 조민은 히히! 하고 웃더니 말했다.

"송대협, 유이협, 장사협, 막칠협 네 분은 지금 본교의 수중에
있습니다. 각자 약간씩 부상을 당했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
다."

"상처를 입었다구? 아마 독에 중독되었을 것이오."

"장진인께서는 무학의 절학을 매우 자부하고 계시군요. 그들이
중독되었다고 하시니 그렇다고 하는 게 좋겠군요."

장삼봉은 제자들이 모두 일류 고수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
다. 설사 적이 많아서 역부족이라 해도 몇 사람은 피신하여 회보
(回報)할 것이라 믿었다. 만약에 정말 모두 잡혔다면 필시 적의
독약에 중독된 것이다. 조민은 그가 알아맞추자 자기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

장삼봉은 다시 물었다.

"나의 그 은(殷) 제자는 어떻게 되었소?"

"은육협은 소림파의 매복에 당해서 이분 유삼협과 똑같이 사지
가 대력금강지(大力金剛指)에 의해서 절단되었소. 죽지는 않겠지
만 움직일 수는 없겠지요."

장삼봉은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자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그 순간 가슴이 아파 오더니 왁! 하고 소리를 내며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었다.

조민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기뻐했다. 그들
은 공상의 기습이 성공되었다는 걸 알았다. 이본 무당의 고인은
이미 중상을 입고 있어서 이제는 두려운 게 없었다.

조민이 말했다.

"만생에게 좋은 충고의 말이 한 마디 있는데, 장진인께서 받아
들이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우리 몽고의 황제께서는 위력이 사해(四海)에 미치고 있습니
다. 장진인께서 만약에 순종하실 수 있다면 황제께서는 즉시 수
봉(수封)을 하사하실 겁니다. 무당파는 자연히 큰 영총을 받게
될 것이고, 송대협 등도 자연히 무사할 것입니다."

그러자 장삼봉은 고개를 들어 옥량(屋樑)을 바라보더니 냉랭히
말했다.

"비록 명교는 못된 짓을 많이 했으나 항상 몽고인과는 적대 관
계였소. 그런데 언제 조정에 투항하였소? 노도는 금시 초문이
오."

"기암투명(棄暗透明), 항상 사무에 밝은 자가 준걸이오. 소림파
의 공문, 공지 신승 이하 사람들은 모두 투항하여 조정에 진충하
기로 했소."

그러자 장삼봉의 두 눈은 똑바로 조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원인(元人)들은 잔인무도해서 많은 백성들을 가해했소. 지금
천하의 군웅들이 함께 일어나는 것은 바로 호로(胡虜)를 몰아내
고 우리의 산하를 되찾으려 하는 것이오. 모든 황제(黃帝) 손은
한결같이 달자를 몰아내려는 마음을 갖고 있소. 비록 노도는 출
가의 몸이지만 어느 것이 대의인 줄은 알고 있소. 공문, 공지는
당세의 신승인데 어찌 세력이 굴복할 수 있겠소? 낭자는 어찌 말
을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오?"

그러자 조민의 뒤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섬출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늙은이가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무당파는 눈깜짝할 사이에 전
멸될 것이다.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산에
있는 백여 명의 도인 제자들도 모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줄
아느냐?"

그러자 장삼봉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읊어 댔다.

"인생자고수무사, 류취단심조한청(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
靑)."

이건 문천상(文天祥)의 두 귀절 시(詩)였다. 문천상이 의거를
일으켰으나 뜻을 얻지 못하여 한탄하고 있을 때, 장삼봉의 나이
는 아직 젊었다. 그는 이분을 몹시 흠모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그 때 무공을 왜 연성하지 못했었나 하고 자주 한탄하였다. 지금
생사가 눈앞에 다가왔으나 자기도 모르게 읊어낸 것이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했다.

"문승상께서는 뭔가 꺼리고 있었지만 나는 오직 일편단심이다.
훗날 사서(史書)에 어떻게 적어놓든 상관하지 않겠다."

조민이 백옥처럼 흰 왼손을 살짝 한 번 흔들자 그 남자는 허리
를 굽히면서 물러갔다. 이윽고 그녀는 살짝 웃어 보이면서 말했
다.

"장진인께서 정히 이처럼 완고하시다면 잠시 그 얘기는 접어 둡
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를 따라서 함께 갑시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네
사람이 재빨리 장삼봉을 포위했다.

이 네 사람 중 하나는 체격이 우람한 남자고, 하나는 누덕누덕
기운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고, 하나는 몸이 마른 화상이고, 다
른 하나는 털이 많고 파란눈을 가진 서역의 호인(胡人)이었다.

장무기는 이 네 사람의 신법을 보고 내심 놀랬다.

'저 조 낭자의 수하에 어떻게 저런 많은 고수들이 있을까?'

장삼봉이 만약에 그녀를 따라가지 않으면 그 네 사람은 즉시 출
수할 눈치였다. 그러자 장무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방(敵方)의 고수가 너무나 많다. 이 자들은 어떠한 비열한
짓도 능히 하는 무리라서 광명정을 위공한 육대파 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내가 태사부님과 삼사백의 안전을 보호하기는 실로 어
렵다. 설사 그 중의 몇 사람을 격패하더라도 그들은 절대로 패배
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다. 이왕 일이 이
처럼 되었으니 오직 사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다. 만약에 조 낭
자를 잡아와서 상대방을 협박하게 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구
나!'

이윽고 그가 나서서 네 사람에게 호통치며 저지하려는 순간, 갑
자기 문 밖에 음산한 긴 웃음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청색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삼청전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의 신법은 마치 귀신이나 바람, 번개 같았다. 순간 그
체격이 우람한 남자의 등 뒤로 돌아가서 일장을 후려쳤다. 그 남
자는 몸을 돌리지 않고 손을 되돌려서 일장을 받아쳤다. 그와 경
공(勁功)으로 겨루자는 의도 같았다. 그 사람은 일장이 명중되기
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왼손으로 그 서역 호인의 어깨를 후려쳤
다. 그러자 그 호인은 번개처럼 피하면서 발을 날려 그의 하복부
를 걷어찼다. 그 사람은 벌써 그 수화상을 공격하면서 바로 몸을
비스듬히 해서 뒷걸음치며 좌장으로 그 누더기옷을 입은 자에게
후려쳤다. 눈깜짝할 사이에 그는 사 장을 연거푸 출수하면서 네
명의 고수에게 공격했다.

비록 일장도 적중되지 않았지만 수법의 신속함은 실로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그러자 그 네 사람은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줄 알고 각자 몇 발씩 물러나더니, 다시 태세를 가다듬고 접전했
다.

그 청의인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장삼봉에게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면서 말했다.

"명교 장교주의 좌하 위일소 후배가 장진인을 참견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위일소였다. 그는 도중의 적들을 물리치고 곧바
로 달려온 것이다.

장삼봉은 그가 <명교 장교주의 좌하>를 자칭하는 걸 듣자 그도
역시 조민 일당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가 출수하여 네 사람을
격퇴한 건 필시 다른 음모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냉랭하게 말했
다.

"위선생은 격식을 따질 필요없소. 청익복왕의 뛰어난 경공실력
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들어왔소. 오늘 직접 보게 되니 과연 헛소
문이 아니구료."

위일소는 몹시 기뻐했다. 그는 자주 중원으로 나오지 않아서 평
소에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장삼봉이 자기의 경공 실
력을 알고 있다고 하자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장진인께서는 무림의 북두(北斗)이신데, 후배가 지인에게서 칭
찬의 말을 듣게 되니 실로 영광입니다."

그는 몸을 돌려서 조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 낭자, 당신은 명교로 위장하여 본교의 명성을 더럽히는 저
의가 도대체 무엇이오? 진짜 사내 대장부라면 어찌 이처럼 음흉
악랄할 수 있단 말이오?"

"난 원래부터 사내 대장부가 아니오. 설사 음흉 악랄했더라도
당신이 어찌 하겠다는 거죠?"

"여러분들은 소림을 먼저 공격하고 다시 무당에 와서 소란을 피
우는데, 도대체 그 저의가 무엇이오? 여러분들이 만약에 소림,
무당과 원수진 일이 있다면 명교가 간섭할 일이 아니오. 하지만
여러분은 우리 명교의 이름을 도용하고 본교 교도들을 가장하고
있는데, 나 위일소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료."

장삼봉은 백 년 동안 조정과 원수지간인 명교가 몽고에게 항복
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막상 위일소의 말을 듣자 그
제서야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여자는 가짜였구나. 비록 마교의 명성이 좋지 않은 건 사실
이지만, 이처럼 큰일을 닥치게 되면 그들 역시 그냥 지나 칠 수
없겠지.'

조민이 그 체격이 우람한 남자에게 말했다.

"저 자의 당돌한 말투 좀 들어봐라.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는지
네가 한번 시험해 보아라."

"네."

그 대한(大漢)은 허리를 굽혀 대답하고 나서 허리띠를 졸라 매
더니 삼청전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위복왕, 당신의 한빙면장(寒氷綿掌) 무공을 구경하고 싶구료."

그러자 위일소는 깜짝 놀랐다.

'저 자가 어찌 한빙면장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나에게
도전해 오는 걸 보면 보통내기는 아닐 것이다.'

그 대한은 손뼉을 한 번 치더니 말했다.

"각하(閣下)의 존함은 무엇이오?"

"우리가 명교로 위장하고 왔는데 어찌 남에게 진짜 이름을 밝히
겠소? 복왕은 자신이 둔하다고 생각지 않소?"

그러자 조민의 뒤에 있던 십여 명은 일제히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군. 물어본 내가 어리석었소. 각하는 이족(異族)의 사냥개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성명을 밝히지 않아야만 조상에게
욕되게 하지 않겠구료."

그러자 그 대한의 얼굴이 상기되면서 울화가 치밀었다. 순간
휴! 하고 위일소의 가슴에 일장을 후려쳤다.

위일소는 이미 예상을 했는지 옆으로 피하면서 손가락을 뻗어
그의 배심(背心)으로 공격했다. 그는 한빙면장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그 대한의 무공 허실을 시험해 보았다. 그러자 그 대한은
좌필을 뒤로 흔들었다. 초수가 지나자 대한의 장세(掌勢)가 점차
빨라지고 장력 또한 예리해졌다.

위일소는 장삼봉 같은 대종사(大宗師) 면전에서 출수하기 때문
에 전혀 태만할 수 없어 즉시 한빙면장의 무공을 전개했다. 두
사람의 장세가 점점 느려지더니 서로 내력을 겨루는 경지에 도달
했다.

이때 갑자기 획! 하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 안으로 시꺼먼 거대
한 물건 하나가 날아와 대한에게 다가갔다. 이 물체는 쌀 한 가
마니보다 더 컸다. 세상에 이렇게 방대한 암기가 있단 말인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자 그 대한은 좌장에 운경(雲勁)하여
이 물체를 일장 밖으로 후려쳤다. 손 닫는 곳이 물렁물렁한 게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곧이어 으악! 하고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자루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자는
그 대한의 예리한 일장을 얻어 맞았으니 필시 근골이 절단되었을
것이었다.

순간 그 대한은 깜짝 놀라더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위
일소는 소리없이 그의 등 뒤로 가서 등에 있는 대추혈(大推穴)에
다 한빙면장 일기(一記)를 후려쳤다. 순간, 그 대한은 경력이 엇
갈렸다. 급히 몸을 돌리면서 위일소의 머리 위로 일장을 반격했
다.

위일소는 하하.....! 하고 웃을 뿐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한의 장력은 상대방의 천령개(天靈蓋)에 적중되었으니, 전
혀 경력이 없어서 마치 살짝 스치는 것 같았다. 위일소의 한빙면
장이 몸에 적중된 순간부터 상대방의 경력이 즉시 사라진 것이
다.

그러나 고수끼리 대전하는데 어찌 뇌문(腦門)을 강적의 손에 마
음대로 후려치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그 담력이야말로 놀
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위일소가 일생 동안 행한 일들은 모두 괴상망칙했다. 남들이 감
히 하지 못하는 것, 하기 싫어하는 것, 할 가치가 없는 일일수록
그는 골라서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대한이 잠시 방심하는 틈
을 타서 기습하는 건 광명정대한 일은 아닌줄 알았지만, 바로 뇌
문으로 상대방의 일장을 태연하게 받아내는 것 또한 지나친 것이
라 생각했다. 정말로 담력이 너무나 커서 생사를 장난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누더기옷을 입고 있는 자가 자루를 찢어서 사람 하나를 끌어
냈다. 그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돼 있는 걸로 보아 그 대한의 일
격에 벌써 죽은 것 같았다. 이 자의 흑의를 보니 바로 그들의 일
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자루에 담긴 채 던져져 들어왔는
지 아무도 몰랐다.

그 자는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누가 감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얀 자루 하나가 머리 위로 다가왔다.
그러자 그는 얼른 기(氣)를 끌어올려 뒤로 튕기면서 이 일탁(一
卓)을 패했다. 그러자 방대한 화상 하나가 웃으면서 앞에 서 있
었다. 바로 포대화상(布袋和尙) 설불득이 도착한 것이다.

설불득의 건곤일기대(乾坤一氣袋)는 광명정에서 장무기에 의해
파손된 후, 진수의 병기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설불득은 하는
수 없이 아무렇게나 포대를 몇 개 만들어서 응용하고 있는 것이
다. 물론 원래 지니고 있던 그 도검불파(刀劍不破)의 건곤일기대
만큼은 무력이 없다. 그의 경공은 비록 위일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조예는 몹시 깊었다. 더구나 도중에서 장애물이 없었기에
바로 도착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설불득도 허리를 굽히고 장삼봉에게 인사하고 나서 말했
다.

"명교 장교주의 좌하 포대화상 설불득이 무당 장진인을 참견합
니다."

그러자 장삼봉도 답례를 하면서 말했다.

"대사께서 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소."

"폐교 교주의 좌하인 광명사자, 백미응왕, 그리고 사산인, 오기
사 등도 각각 다른 길로 무당산으로 오고 있습니다. 장진인께서
는 수수방관만 하십시오. 명교의 사람들이 남의 이름을 도용하고
파렴치한 짓을 하는 놈들을 상대해 주겠습니다."

그의 이 말들은 모두 허세였다. 명교의 대부대는 이렇게 빨리
당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민은 그 말들을 듣자 그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들이 이같이 빨리 올 수 있는 건 필시 기밀이 누설된 것이
다.'

"당신들의 장교주는 어디 있죠? 날 만나러 오라 하시오!"

그러면서 의문에 가득 찬 눈으로 위일소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위일소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교주님으로 가장하지 않는구료."

말을 마친 위일소는 사방을 살피며 생각을 굴렸다.

'필시 교주는 벌써 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을
까?'

장무기는 명월의 뒤에 줄곧 은신해 있었다. 그런데 힘있는 방수
(幇手) 두 사람이 당도하자 매우 고마우면서 위안이 되었다.

조민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독 있는 박쥐 한 마리와 냄새나는 화상 하나가 무슨 쓸모가 있
겠느냐?"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동쪽의 지붕 위에서 한 사람이 길게 웃
더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불득 대사, 양좌사는 아직 당도하지 않았소?"

이 자는 바로 백미응왕 은천정이었다. 설불득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양소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서쪽 지붕 위에서 들려왔
다.

"응왕, 한 발 먼저 당도한 걸 보면 역시 당신의 공력이 한 수
위이구료!"

그러자 은천정은 웃으며 말했다.

"양좌사, 겸손할 것 없소.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도착한 것이
니 우열을 가릴 수 없소. 아마 당신은 장교주를 봐서 양보한 것
같소이다."

"어진 일을 하는데 어찌 양보하겠소? 이 몸은 전력 질주 하였는
데도 여전히 응왕께서 한 발 앞서 온 것이오."

그들 두 사람은 도중에서 각력(脚力)을 겨루었다. 은천정은 내
력이 비교적 심후했고 양소는 걸음이 가볍고 빨랐다. 그들은 어
깨를 나란히 해서 출발하여 동시에 도착한 것이다. 두 사람은 다
시 한 번 길게 웃더니 지붕 위에서 동시에 뛰어내렸다.

장삼봉은 은천정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더구나 그는
또 장취산의 장인이 아닌가! 양소도 강호에서 대단한 명성이 있
었다. 장삼봉은 앞으로 세 걸음 다가가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은형, 양형의 대가(大駕)를 장삼봉이 공손히 영접하는 바이
오."

그러면서 내심 의아한 것이 있었다.

'은천정은 분명히 천응교의 교주인데, 뭣 때문에 <장교주의 체
면을 봐서>란 말을 하는 것일까?'

은, 양 두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은천정이 말했다.

"장진인의 청명(淸名)은 오래전부터 흠모해 왔으나, 인연이 없
어서 뵙지 못했습니다. 오늘 지안(芝顔)을 뵙게 되어서 정말 영
광입니다."

"두 분께서는 모두 일대 종사인데, 광림하신 것은 참으로 성회
(成會)라 할 수 있소."

조민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목하 명교의 고수들이 점차
많이 오고 있는데, 장무기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설불득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확실히 몰래 뭔가 무서운 진세
(陳勢)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계획한 계책은
아마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장삼봉은 중상을 입고 있었다. 이건 천 년에 한 번 맞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였다. 만약에 오늘 이 기회에 무당파를 처리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의 상처가 회복되게 되면 더욱 상대하
기 힘들 것이다.

조민은 결단을 내린 듯 새까만 두 눈을 몇 번 돌리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호의 소문에 의하면 무당파는 정대 문파라 하였는데, 안타깝
게도 소문과는 다르군요. 무당파는 몰래 마교와 내통하여 마교의
힘을 입고 있었군요. 그러니 본문의 무공을 내 세울 값어치도 없
을 거구요."

설불득이 말했다.

"조 낭자 너무나 유치한 말을 하는구료. 장진인께서 무림을 위
진(威震)할 때 아마 그대의 조부님도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
을 것이오. 어린애가 뭘 알고 있겠소?"

그러자 조민의 등 뒤에 있던 십여 명은 일제히 한 발 다가서더
니 무서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설불득은 오히려
즐거운 듯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못할 말을 했다고 생각되느냐? 나의 이름은 설
불득이지만 말하는 건 항상 멋대로 한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날
어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자 조민의 수하인 그 마른 화상이 화를 내며 말했다.

"주인나리, 소인이 저 말 많은 화상을 요리하겠소."

"좋다. 네가 야화상(野和尙)이면 나도 야화상이다. 우리가 겨루
고 있는 동안 무당 총사 장진인께서 미숙한 곳을 지적해 주신다
면, 우리가 고련(苦練) 십 년 한 것보다 더 능률적일 것이다."

말을 하면서 양손을 흔들더니 품에서 포대 한 개를 끄집어 냈
다.

그러자 조민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무당절학을 배우러 온 것이오. 무당파의 어떤
분께서 나오셔도 우리는 기꺼이 상대해 주겠소. 무당파에게 과연
진재실학(眞才實學)이 있는지, 아니면 허위적인 명성뿐인지 오늘
일전을 치루고 나면 천하가 모두 알게 될 것이오. 명교와 우리의
사소한 일들은 나중에 천천히 다시 계산해 보기로 합시다. 장무
기, 그 간사하고 교활한 귀신 같은 놈은, 내 그의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기지 않는다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할 것이다. 하
지만 그 일은 지금 서두를 것 없소."

장삼봉은 그녀의 말을 듣자 내심 몹시 이상하다고 느꼈다.

"명교의 교주 이름이 정말 장무기란 말이냐? 그런데 뭣 때문에
또 귀신 같은 놈이라고 하는 것이냐?"

설불득이 웃으며 말했다.

"본교의 장교주께서는 소년 영웅이오. 아마 조 낭자는 우리 장
교주보다는 몇 살 아래일 것이오. 차라리 우리 교주에게 시집오
는 게 어떠하겠소? 이 화상이 보기에는 아주 천생연분....."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조민의 등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뢰 같은 소리로 호통쳤다.

"허튼소리!"

"입 닥쳐라!"

"야화상, 개수작 하지 마라!"

조민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용모가 더욱 아름다왔다. 그녀의 눈
치는 별로 싫은 것 같지는 않았다. 군호를 호령하는 대수령이 삽
시간에 부끄러워하는 계집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잠시
였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더니 얼굴에는 마치 차가운 서리가
한 겹 싸여 있는 것처럼 냉정한 모습으로 장삼봉에게 말했다.

"장진인, 만약 당신이 한 수를 보이기 싫어하시면 말이라도 한
마디 남기기 바라오. 단지 무당파는 세상을 기만하는 도적 무리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박수를 치고 물러가겠소. 설사
송원교, 유연주 그 녀석들을 당신에게 돌려 준다 해도 무슨 거리
낄 게 있겠소?"

바로 이때 철관도인 장중과 은야왕이 도착했다. 얼마 후 주전과
팽영옥도 무당산에 당도했다. 명교 쪽에는 다시 네 명의 고수가
증가한 것이다.

조민은 형세를 재어보니, 쌍방이 결전을 하더라도 반드시 이기
리라는 승산이 없었다. 그녀가 제일 염려하는 건 역시 장무기가
몰래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명교의 사람들 얼
굴을 훑어보더니 잠시 생각을 굴렸다.

'장삼봉이 조정의 근심거리가 된 것은, 그의 위명이 너무나 성
해서 무림에 있는 사람들이 태산북두로 떠받들기 때문이다. 그러
나 그가 조정과 적대 관계가 된다면 중원의 무인들도 그를 멀리
할 것이다. 그는 바람 앞에 있는 촛불과 같은데 몇 년을 더 살
수 있겠는가? 오늘 구태여 그를 죽일 것까지는 없고, 단지 그에
게 한바탕 모욕을 주어 무당파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이번 걸음은 크게 성공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생각한 조민은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가 무당을 방문한 것은, 단지 장진인의 무공이 도대체 진
짜인가 거짓인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오. 만약에 명교를 섬멸하려
했으면 우리가 뭣 때문에 광명정에 가지 않고 이리로 오겠소? 또
뭣 때문에 무당산에서 무예를 겨루겠소? 세상에서는 어찌 장진인
만을 태산북두로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저에게 가인(家人)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돼지잡고 개잡는
검법을 배웠고, 하나는 거칠은 내공을 약간 배웠고, 또 하나는
다리 셋 달린 권각(拳脚)을 몇 초 배운 적이 있소. 아대(阿大),
아이(阿二), 아삼(阿三) 일어나거라. 장진인께서는 나의 이 쓸모
없는 가인 세 명만 제압하신다면, 우리는 무당파의 무공에 대해
서 나돌고 있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란 걸 인정하지요. 그렇지
않는다면 강호에서 자연히 비평받을 것이니 구태여 제가 말할 것
까지는 없지 않소?"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천천히 세 사람이 걸어나왔다.

아대는 비쩍 마른 노자였고 두 손에는 장검 한 자루를 안고 있
었는데, 바로 그 의천보검이었다. 이 자의 체격은 훤칠한 키에
비쩍 마르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것이
마치 금방 남에게 매를 맞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그의 표정
을 보게 되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려 줄 지경이었다.

아이라는 자도 같은 체격이지만 키가 약간 작았다. 머리 위가
까졌는데 머리카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양쪽의 태양혈은
반촌(半寸)쯤 안으로 오목했다. 아삼은 몹시 우람하게 생겼고 얼
굴, 손, 목덜미 등 보이는 근육마다 모두 울퉁불퉁해서 마치 온
몸에 정력이 넘쳐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의 왼뺨에는 검은 점이
하나 있고, 검은 점에는 긴 털이 많이 있었다. 장삼봉, 은천정,
양소 등은 이 세 사람의 모습을 보자 내심 깜짝 놀랐다.

주전이 말했다.

"조 낭자, 이 세 분은 모두 무림에 있는 일류고수라서 나 주전
은 그들의 상대가 못 되오. 그런데 어째서 머슴으로 가장하여 장
진인을 히롱하려는 것이오?"

"그들이 무림의 일류고수라뇨? 전 금시초문이예요. 그들의 이름
을 아십니까?"

그러자 주전은 즉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즉시 농담으로 대답
했다.

"이분은 일검진천하(一劍震天下)의 추미신군(皺眉神君)이고, 이
분은 단기 팔방(丹己覇八方)의 독두천왕(禿頭天王)이오. 그리고
이분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히히...! 바로 ..... 저..... 신권
개세(神拳蓋世)의 대력존자(大力尊者)이지요."

조민은 그가 엉터리로 지껄이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만 피! 하
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집에서 밥하고 차 끓이고 청소하는 머슴 세 사람을 무슨
신군, 천왕, 존자라 하고 있는 거요? 장진인, 저 아삼과 먼저 권
각을 겨루어 보시지요?"

그러자 아삼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장진인, 먼저 하십시오."

왼발을 한 번 내딛더니 부드득! 하고 소리가 나면서 땅에 놓여
있는 벽돌 세 장이 부서졌다. 발을 디딘 곳에 있는 파란 벽돌이
부서진 건 신기하지 않지만, 옆에 있는 벽돌 두장이 그의 각력에
울려서 가루가 되었다.

양소와 위일소는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며 내심 감탄을 했다.

그 아대와 아이 두 사람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고개를 숙이
고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무당파의 지객도인 영허는 줄곧
태사부의 상세(傷勢)를 걱정했었다. 이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우리 태사부님께서 방금 피를 토해 낸 것을 당신들도 보았지
않소? 그런데 당신들은 어째서..... 어째서.....!"

그는 울음이 터지려 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은천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진인이 부상을 입어서 피를 토했구나. 도대체 누구에게 부상
을 당했단 말인가? 설사 그가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해도 그 나이
에 어찌 이 자들 하고 권각을 겨루겠는가? 저 자의 무공을 보니
모두 강맹한 것 같은데, 내가 그를 상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윽고 낭랑한 목청으로 말했다.

"장진인의 신분으로 어찌 이런 미천한 사람과 겨루겠소. 이거야
말로 엄청난 웃음거리가 아니겠소? 장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설
사 나 자신도..... 이런 미천한 머슴은 나의 일천일각도 받을 자
격이 없소!"

그는 아대, 아이, 아삼이 절대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그들에게 모욕을 줘 자기에게 시비
를 걸어오기를 바랬던 것이다.

조민이 말했다.

"아삼, 넌 최근에 무슨 일을 했느냐? 그들에게 얘기해 드려라.
그래야만 그들이 무당파와 겨뤄도 자격이 있는지를 판가름할 것
이다."

그녀의 말은 시종일관 무당파를 물고 늘어졌다.

"소인은 최근에 별달리 한 일도 없습니다. 단지 서북도(西北道)
에서 소림파의 공성이라는 화상과 겨뤘는데, 지력(指力)대 지력
으로 그의 용조수를 격파하고 즉시 그의 수급을 잘랐습니다."

이 말을 하자 대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다. 공성신승은 광명정에서 용조수로 장무기와 겨뤄 크게 우세했
다는 건 명교 중 고수들은 모두 직접 목격했었다. 그런데 이 자
가 죽였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소림신승을 격패한
신분이라면 충분히 장삼봉과 겨룰 수 있었다.

은천정이 큰 소리로 말했다.

"좋다. 네가 소림파의 공성신승까지 타사했으니, 네가 한번 겨
루어 보는 것도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말을 하면서 얼른 앞으로 두 걸음 다가서더니 자세를 취했다.
백미(白眉)를 위로 세우니 더욱 더 위풍이 당당하게 보였다.

그러자 아삼이 말했다.

"백미응왕, 당신은 사마외도인데 나 아삼은 외도사마이오. 우리
는 한 코로 숨쉬기 때문에 자기 사람이 자기 사람을 치는 격이
되오. 당신이 정히 싸우고 싶으면 나중에 날짜를 잡아서 겨룹시
다. 오늘 주인나리의 명은 오직 소인에게 무당파 무공의 허실(虛
飾)을 시험하라고 하셨소."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장삼봉에게 말했다.

"장진인, 당신이 진정 나오기 싫어한다면 한 마디 말이라도 하
시오. 그래야만 상전에게 알리기라도 할 게 아닙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무력을 써서 강압하지는 않겠소. 무당파가 패배를 인정하
는 게 그렇게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까?"

그러자 장삼봉은 살며시 한 번 웃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만약에 새로 창작한 태극권 중에 있는
허로 실을 통제하는 상승무학 법문을 전개하면 반드시 그에게 패
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힘든 건 아삼을 격패한 다음이다. 그
렇게 되면 아이가 내력을 겨루자고 할 것인데, 그건 전혀 꾀를
쓸 수 없어서 그 일만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발
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하는 수 없이 아삼을 우선 제압해 놓고
다시 생각하자.'

이윽고 느린 걸음으로 삼청전 중심으로 걸어가서 은천정에게 말
했다.

"은형의 아름다운 뜻을 빈도는 잊지 않겠소. 빈도가 근 몇 년
동안 권술 한 가지를 창작하였는데 이름은 태극권이라 하오. 제
생각으로는 일반의 무학과는 퍽 다른 것 같았소. 이분 시주께서
기어이 무당파의 무공을 인증(印證)하려는데, 만약 은형께서 그
를 격패하면 그의 마음은 흡족하지 않을 것이오. 빈도는 바로 태
극권 중의 초수로 그와 몇 수 겨룰 것이오. 그래야만 빈도가 다
년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을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것이 아닙
니까?"

은천정은 그의 말을 듣자 몹시 기뻐했으나, 한편으로는 몹시 걱
정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태극권에 대해서 퍽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장삼봉이 어떠한 인물인가! 일단
그 말이 나온 이상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일세의 위명을 가볍게 떨어뜨릴 수가 있겠는가. 그
러나 방금 그는 중상을 입어서 피를 토했기에 권기는 비록 정오
해도 결국, 내력은 지탱하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후배는 장진인의 신기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겠소."

아삼은 장삼봉이 바람처럼 가볍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속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서 내심 생각을 굴
렸다.

'오늘 내가 이 노도하고 양패구상(兩敗俱傷)만 되더라도, 그 또
한 무림을 놀라게 하는 큰 사건이다.'

이윽고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더니, 두 눈은 장삼봉의 얼굴
을 주시했다. 속으로 기를 몰래 돌리자 온몸의 뼈마디는 뿌드득!
하며 가벼운 폭발소리가 끊임없이 발출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
다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놀랬다. 이건 불문정종(佛門正宗)
의 최상승 무공으로 밖에서부터 안에까지는 전혀 사기(邪氣)가
없는 금강복마신통(金剛伏魔神通)이었다.

장삼봉은 그의 이같은 모습을 보자 두려움과 감탄이 일었다.

'이 자의 내력은 보통이 아니구나. 과연 나의 이 태극권이 쓸모
있으지 모르겠구나.'

이윽고 양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면서 아삼에게 출수하라고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유대암의 등 뒤에서 헝클어진 머리에 더
러운 얼굴의 소도동 한 명이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태사부님, 이분 시주께서 우리 무당파의 권기(拳技)를 견식하
고 싶다고 하셨지만, 뭣 때문에 태사부님이 대가를 수고하시겠습
니까? 제자가 몇 초 행하여 그에게 보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이 얼굴에 먼지투성이의 소도동은 바로 장무기였다. 은천정, 양
소 등은 그와 헤어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비록 지금 그의 복장
과 얼굴 모양이 전부 달라졌지만 음성을 듣자 즉시 알아차렸다.
명교의 군호(群豪)들은 교주가 여기에 벌써 와 있다는 것을 보자
모두 매우 기뻐했다.

장삼봉과 유대암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삼봉은 그가 입고 있
는 복장을 보자 청풍인 줄만 알고 말했다.

"이분 시주께서는 소림파 금강복마의 외문신통(外門神通)을 지
니고 계시다. 필시 서역에 있는 소림의 고수일 것이다. 너처럼
어린애는 일초만 맞아도 즉시 근골이 파열될 것인데, 어찌 장난
을 하려 하느냐?"

그러자 장무기는 왼손으로 장삼봉의 옷자락을 끌며 오른손으로
그의 왼손을 맞잡고 살며시 흔들면서 말했다.

"태사부님, 그 태극권법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서 성취할 것
인지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마침 이분 시주는 외가고수
(外家高手)라서 제자가 이유극강, 운허어실(以柔克剛 雲虛御實)
의 법문을 시험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고 하며 장무기는 몹시 심후하고 매우 부드러운 한 줄기 구양
신공을 손아귀에서 장삼봉의 체내로 전입했다.

그러자 장삼봉은 삽시간에 그 경력의 힘이 강맹무쌍하게 느껴졌
다. 비록 자기 내력의 정순(精純)한 것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산
뜻하면서 오랫 동안 계속되어 끊어지지 않았다. 순간 장삼봉은
깜짝 놀라면서 장무기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은은하게 한 겹의 부드럽고
밝은 느낌을 주었다. 이미 내공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
다. 그가 살아 생전 만났던 인물 중에는 오직 본사(本師) 각원대
사(覺遠大師), 대협 곽정(郭靖) 등 몇몇 사람만이 이러한 수위
(修爲)가 있었다. 당세의 고인들도 자기 외에는 다른 누구도 이
러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실로 생각하지 못했다. 삽시간에 그의
마음에는 수많은 의문이 밀려왔다.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내가 쇠약하고 우둔한데, 무슨 좋은 무공을 너에게 가르쳐 주
겠느냐? 네가 이분 시주의 절정 외가무공하고 겨루는 것도 무방
하나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는 이 소도동이 어느 파의 소년 고수가 달려와서 구원해 주는
줄 알고 말했지만 몹시 겸손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태사부님, 당신은 제게 산처럼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저
의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진다 해도 태사부님과 사백숙님들
의 대은을 갚지 못합니다. 우리 무당파의 무공이 비록 천하무적
이라 할 수 없지만, 서역 소림의 수하에 패하지는 않을 것입니
다. 그러니 태사부께서는 안심하십시오."

그의 이 몇 마디는 너무나 간절하고 진실하였다. 몇 마디 <태사
부>라고 부르는 건 너무도 자연스레 부른 것이다. 장삼봉마저 몹
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는 본문의 제자인데, 몰래 잠심수위(潛心修爲)하여
마치 옛날의 본사인 각원대사 같단 말인가?'

그는 천천히 장무기의 손을 놓아 주고 뒤로 물러갔다. 의자에
앉아서 곁눈질로 유대암을 쳐다보자 그 역시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삼은 장삼봉이 이 소도동을 출전시키는 걸 보자 자기를 극도
로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일권에 저 소도동을
타사하여 노도를 격분시킨 다음 다시 그와 겨루게 되면, 더욱 승
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장무기에게 말했다.

"꼬마야, 발초하거라!"

"제가 새로 배운 이 권술은 우리 태사부님인 장진인께서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서 창작한 것인데, 이름은 태극권이라고 하오. 후
배가 처음 배운 것이라 수련을 많이 하지 못해서 권법 중에 정오
함을 미처 깨우치지 못했소. 그러니 삼 십초 이내에는 아마 당신
을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그건 제가 무예를 잘못 배운
것이지 절대로 이 권술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란 걸 당신은 알아
두어야 하오."

그러나 아삼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더
니, 아대와 아이에게 말했다.

"큰 형님, 둘째 형님, 세상에 이처럼 광망한 녀석이 있구료."

그러자 아이는 소리를 높여서 크게 웃었다. 그러나 아대는 이
소도동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

"셋째 아우, 적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삼은 욱! 하고 일권을 장무기의 가슴에 후려쳤다. 이 일초는
번개처럼 다가갔지만 중도에서 왼손 주먹이 더욱 민첩하게 다가
갔다. 후발선지하면서 장무기의 면문을 공격했다. 초수의 교묘함
과 괴이함은 실로 보기 드문 것이었다.

장무기는 장삼봉이 태극권을 설명하는 것을 들은 후부터 한 시
간이 넘도록 계속 이 권술의 권리(拳理)를 묵묵히 생각하고 있었
다. 막상 아삼의 좌권이 공격해 오는 걸 보게 되자, 즉시 태극권
의 일초인 람작미(欖作尾)를 전개했다. 그러자 아삼의 몸은 자기
도 모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두 걸음 넘어서야 겨우 몸을 똑바로
할 수 있었다. 방관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게 되자 일제히 비명
과 탄식의 소리를 질렀다.

이 일초의 람작미는 천지간에서 오직 태극권이 처음으로 사람과
겨루는데 사용한 것이다. 장무기는 몸에 구양신공을 지니고 있고
건곤이위의 무술을 자유자재로 전개할 수 있어서, 비록 갑자기
태극권 중위 <점(點)>법을 사용했으나 마치 평생동안 연습을 한
것 같았다. 아삼은 그에게 한 번 떠밀리게 되자 자기의 일권에
있는 천만 근의 힘이 마치 망망대해에 타입(打入)된 것처럼 아무
흔적도 없었고, 몸은 오히려 자기의 권력에 끌려서 옆으로 두 걸
음을 내디디면서 넘어질 뻔했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빠른 주먹으로 연거푸 공격했다. 비영(臂
影)이 흔들거리며 마치 수십 개의 팔과 수십 개의 주먹이 동시에
격출(擊出)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광풍폭우 같은 공세를 보자 모두 놀라움
을 금치 못했다.

'저러니까 공성대사 같은 무공이 고강한 고수도 그의 손에 목숨
을 잃은 모양이군.'

조민과 함께 온 사람들 외에는 모두 장무기를 위해서 걱정해 주
었다.

장무기는 무당파의 위명을 과시하려는 심산으로 자기 본신의 무
공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매 초식마다 전부 장삼봉이 창작해
낸 태극권의 권초였다. 그는 <수휘비파(手揮琵琶)> 일초를 사용
할 때는 순식간에 태극권지(太極拳旨) 중에 있는 오묘한 것을 깨
닫게 되어, 이 일초를 마치 움직이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멋지
게 전개했다.

아삼은 상반(上盤)의 각로(各路)가 이미 모든 곳이 그의 쌍장에
감싸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전혀 피할 수 없고 전혀 저
항할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등에다 운경(運勁)하여 억지로 그
의 일장을 받아 내면서 동시에 우권을 맹렬히 휘둘렀다. 오로지
두 사람이 각각 일초씩 받아서 양패구상의 상황으로 만들 속셈이
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무기는 양손으로 원을 그리자 마치 태극을
안고 있는 것처럼 한 줄기 대단한 역도(力道)가 하나의 회오리를
만들더니, 그의 몸을 칠, 팔 바퀴 급회전을 시켰다. 마치 팽이와
나사못처럼 돌려 버렸다. 어렵게 사용한 천근추(千斤墜)의 힘으
로 고정시킨 아삼은 이미 얼굴이 온통 팽창되어 빨개지면서 낭패
의 꼴이 되었다.

그러자 명교의 군호는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이윽고 양소가
소리치면서 말했다.

"무당파의 태극권 무공이 이처럼 신묘할 줄이야. 정말로 믿어지
지가 않는구료."

주전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삼 노형, 난 당신에게 충고하고 싶소. 이름을 아전(阿轉)으
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구료."

은야왕이 말했다.

"많은 바퀴를 도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오? 옛날에도 있지 않
소. 삼십 육 착(着), 전위상착(轉爲上着)!"

설불득이 말했다.

"왕년에 양산박의 호한 중에는 흑선풍(黑旋風)이라는 사람이 있
었소. 그 선풍이란 본시 돌아야 하는 게 아니오?"

아삼은 울화가 치밀어서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성난 소
리를 한 번 지르더니 몸을 위로 솟구치면서 덮쳐갔다. 왼손은 권
또는 장으로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고, 오른손은 모두 손가락 무
공으로 다섯 손가락은 마치 판관필이나 점혈궐(點穴獗)처럼, 또
는 도검이나 창극(愴戟)처럼 공격해 오는 자세가 너무도 예리했
다.

장무기는 태극권의 권초가 미숙해서 금방 수족이 망란(忙亂)되
어 막아내지 못했다. 갑자기 지익! 하고 소리가 나더니 옷자락이
찢기고 끊어졌다. 하는 수 없이 경공을 전개하여 급히 피해다녔
다. 잠시 이 난생 처음 보는 오지무공(五指武功)을 피할 속셈이
었다. 그러자 아삼은 호통치며 쫓아다녔지만 어찌 상대방의 경공
을 따르겠는가? 연거푸 십여 초를 모두 헛치고 만 것이다.

장무기는 피해다니면서 생각했다.

'내가 피해만 다니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건 패배한 것이 아닌
가? 이 태극권은 아직 미숙하니까 잠시 건곤이위의 무공으로 그
와 겨루어야겠다.'

그는 몸을 한 번 회전하더니 양손으로 태극권의 일 초인 야마분
종(野馬分縱) 자세를 취하면서 왼손은 건곤이위의 수법을 전개했
다. 아삼은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공격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기의 왼팔을 찌르게 되었다. 순간 아픔과 함께 눈앞
에 별이 번뜩거리면서 왼팔을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양소는 장무기의 권법이 태극권의 무공이 아닌 줄 알면서 급히
소리쳤다.

"태극권은 정말 대단하구료!"

그러자 아삼은 울화가 치미는지 버럭 소리쳤다.

"이건 요법사술이지 태극권이 아니다!"

그러면서 연거푸 삼지(指)를 공격했다.장무기는 몸을 위로 솟구
치면서 피했다. 아삼의 긴 팔이 다시 뻗어오고 쌍지(雙指)가 덮
쳐 오자 그는 또다시 건곤이위심법으로 일견일인(一牽一引)했다.
순간 아삼의 두 손가락은 삼청전에 있는 나무 기둥에 똑바로 꽂
혔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깜짝 놀라면서도 몹시 재미있어 했
다.

사람들의 우뢰 같은 웃음소리에 유대암이 무서운 소리로 호통쳤
다.

"잠깐, 이건 소림파의 금강지력(金剛指力)이 아니오?"

장무기는 몸을 위로 솟구치면서 피하다가 <소림파 금강지력>이
란 말을 듣자 즉시 생각난 것이 있었다. 유대암은 소림파의 금강
지력에 의해서 부상당한 것이다. 이 십년 동안 무당산의 상하 모
두가 이 일 때문에 소림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아마
진범은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자인 것 같았다.

아삼의 냉랭한 말소리가 들렸다.

"금강지력이면 어떠냐? 뭣 때문에 호한(好漢)인 것처럼 도룡도
(屠龍刀)의 소재를 말해 주지 않았느냐? 이 이 십년 동안 불구가
된 맛이 어떠냐?"

그러자 유대암이 다시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오늘 진상을 밝혀 주어서 정말 감사하오. 내가 불구가
된 것은 당신네 서역의 소림파에서 감행한 독수구료. 그런 줄도
모르고 나의 다섯째 아우는....."

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옛날에 장취산이 자
살한 이유는 유대암이 은소소의 은침에 상했기 때문에 사형을 볼
면목이 없어서인 것이다. 사실은 유대암이 은침을 맞게 되자 은
소소가 용문표국에 부탁해서 무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은침의
상처는 달포쯤 치료하자 완쾌되었다. 그의 사지가 남에게 절단된
것은 바로 대력금강지의 독수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 때 이 진범
을 찾았다면 장취산 부부도 참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암은
사제의 무고한 죽임이 슬펐지만, 또 자기가 폐인이 된 것도 원통
하였다. 가슴에 원한이 복받치자 눈은 마치 불을 뿜는 듯하였다.

장무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 즉시 모든 원인을 알게 되었
다. 그는 어렸을 때 부친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 소림사의 화공두타(火工頭陀)가 몰래 무예를 배워서 소림
사의 달마수좌(達摩首座)인 고지선사(苦智禪師)를 격사(擊死)시
켰다. 그래서 소림파의 각 고수들은 크게 분란을 일으켰다. 그러
자 고혜선사(苦慧禪師)는 멀리 서역으로 떠나서 서역 소림 일파
를 창설했다. -----

아마도 이 자는 왕년의 고해의 의발전인인 것 같았다.

장삼봉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시주의 마음은 정말 악랄하구료. 우리는 왕년 고혜선사의 제자
중에 시주 같은 인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그러자 아삼은 사납게 웃으면서 말했다.

"고혜는 어떤 놈이죠?"

장삼봉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즉시 깨닫는 것이 있었다. 옛날
유대암이 대력금강지에 부상을 입은 후, 무당파는 사람을 보내서
소림에게 질문하였지만 소림파의 장문방장은 단호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역의 소림 일파를 의심하고 여러 해 동안 알아
보았으나, 서역의 소림은 이미 무공이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조
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 제자들은 불학만 열심히 연구할 뿐
무공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지금 아삼이 <고혜는 어떤 놈이
죠?>라는 말을 하는 순간, 만약에 그가 서역 소림의 전인이라면
절대로 개파조사(開派祖師)를 모욕하고 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윽고 장삼봉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랬었군. 시주는 화공두타의 전인이구료. 그의 무공만 배운
줄 알았더니, 그는 자기의 악랄한 성품까지 모두 전수해 주었구
료. 그 공상인지 하는 자는 시주의 사형제요?"

"그렇소. 그는 나의 사제이오. 그의 이름은 공상이 아니라 강상
이라고 하오. 장진인, 금강문의 반약금강장과 당신네 무당파의
장법을 비교해 보는 게 어떠하겠소?"

그러자 유대암이 단호하게 외쳤다.

"한참 뒤떨어졌지! 그의 머리는 우리 사부님의 일장을 맞고 벌
써 뇌가 파열됐소."

그러자 아삼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덮쳐왔다. 장무기는 태극권
의 일초인 여봉사봉(如封似封)으로 그를 막으면서 말했다.

"아삼, 흑옥단속고(黑玉斷續膏)를 나에게 주시오!"

그리고는 즉시 우장을 내밀었다.

아삼은 깜짝 놀랐다.

'본문의 접골 묘약은 극비라서 본문의 웬만한 제자는 그 이름조
차 모르는데, 이 소도동은 어디서 들은 것일까?'

그는 접곡의선 호청우의 <의경>에 묘약이 적혀 있다는 것을 모
르고 있었다. 그 의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서역에는 외가무공이 있는데 소림이 옆으로 뻗은 가지와
같다. 수법이 몹시 괴이해서 사람의 뼈를 절단시키며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 오로지 본문의 비약인 <흑옥단속고>만이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약의 배합법은 전하지 않는다. -----

장무기는 이 귀절이 생각나서 그를 시험해 본 것인데, 그의 안
색이 갑자기 변하는 걸 보니 그들은 화공두타의 제자들이 분명했
다. 그러자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어서 다오!"

그는 부모의 죽음과 유, 은 두 분 사백숙의 비참한 모습을 생각
하자 즉시 죽여 버려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삼은 방금 그와의 교수(交手)를 통해 자기의 대력금강지를 전
개하면 그는 이리저리로 피하기만 했지, 전혀 반격하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니 그의 괴상망측한 견인수법(牽引手法)에
만 조심하면 시간을 끌수록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걸
음 다가오면서 소리쳤다.

"이 녀석아, 네가 무릎꿇고 세 번 절을 하면 널 용서해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유가가 바로 표본이다!"

장무기의 속셈은 그의 <흑옥단속고>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하지
만 그의 금강지를 어떻게 대적할 것인지는 이렇다고 할 선책(善
策)이 없었다. 건곤이위심법은 비록 그를 상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를 억압하여 약을 얻어 낼 수는 없었다. 마침 고민하고 있는데
장삼봉이 그를 불렀다.

"얘야, 이리 오너라!"

"네, 태사부님."

장무기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장삼봉은 말했다.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태극의
원전(圓轉)은 끊임없이 전개되어야 한다. 마치 장강의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야 하느니라."

그는 방금 장무기가 적을 맞이하여 초수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는 지나칠 정도로 태극에만 너무 마음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는 무공이 너무나 강했기에 권초의 능각(稜角)이 분명해서, 태
극권이 그 원전불단(圓轉不斷)의 저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장무기는 무공이 고강해서 장삼봉의 이 몇 마디를 듣자 즉시 깨
닫게 되었다. 즉시 마음 속으로 그 태극도(太極圖)의 원전불단과
음양 변화를 그려보고 있었다.

아삼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진학무(臨陣學武)하다니, 늦은 감이 없느냐?"

"안성마춤이오. 마침 그대에게 초수를 시험할 수 있으니....."

말을 하면서 그는 몸을 뒤로 돌려 오른손을 앞으로 하더니, 아
삼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바로 태극권 중의 일초인 고탐마(高
探馬)였다. 그러자 아삼은 오른손의 다섯손가락을 합치더니 칼처
럼 후려쳐 왔다. 그러자 장무기는 쌍풍관월(雙風貫月)의 초식으
로 양손을 원형으로 만들어서 격출했다. 과연 태사부의 가르침인
<원전불단> 네 자의 정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곧이어 좌원 우원하며 원마다 하나의 원이 따라갔다. 그러자 대
원(大圓), 소원(小圓), 평원(平圓), 입원(立圓), 정원(正圓), 사
원(斜圓) 등등이 만들어졌다. 그 태극원이 하나하나씩 발출되더
니 즉시 아삼에게 씌워져서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마치 술에 취
한 것 같았다. 이에 아삼이 다섯손가락으로 맹렬하게 찍어오자,
장무기는 운수(雲手) 일초를 전개하면서 왼손은 높게 오른손은
낮게 하더니, 원 하나가 이미 그의 수필을 씌우고 있었다. 여기
에다 구양신공의 강경(剛勁)을 사용하니 뿌드득! 하고 소리가 나
면서 아삼의 오른팔 상하의 뼈가 일제히 부러졌다.

구양신공의 강경은 몹시 예리해서 아삼의 한 쪽 팔뼈는 즉시 여
러 토막으로 부러졌다.

장무기는 죽이고 싶도록 아삼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수를
끊임없이 전개했다. 그것은 마치 공중에서 구름이 지나가는 것과
같았다. 얼마 후, 뿌드득! 하고 소리가 나더니 아삼의 왼팔도 부
러졌다. 뒤이어 툭! 툭.....! 몇 번 소리가 나면서 그의 좌퇴와
우퇴마저 하나하나 부러졌다.

장무기는 평생 이처럼 가혹한 수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러
나 이 자는 부모를 헤치고 삼사백을 헤쳐서 고생시키고 있고, 육
사숙을 해친 범인이 아닌가! 만약에 그의 몸에서 <흑옥단속고>를
얻어내려 하지 않았다면 벌써 그의 생명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아삼은 으윽!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조민 수하의 한 사람이 뛰쳐나와서 그를 안고 물러섰다.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장무기의 이러한 신공을 보
게 되자 모두들 넋들이 빠져 버렸다. 명교의 고수들마저도 갈채
를 보내는 걸 잊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대머리 아이가 번개처럼 나오더니 우장으로 장무기
의 가슴을 맹렬하게 후려쳐 왔다. 장 끝이 미처 다가오지 않았는
데 장무기는 이미 호흡이 약간 곤란한 것 같았다. 즉시 일초의
<사비세(斜飛勢)>로 그의 장을 기울게 인도하였다. 이 대머리 노
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하반(下盤)을 고정시켜서 마치 땅에
다 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열심히 일장씩 후려쳤다. 내력 또한
엄청나게 심후하였다.

장무기는 그의 장로(掌路)를 보게 되자, 아삼과 일파라는 걸 알
았다. 나이를 따지면 아삼의 사형이지만 무공은 그에게 뒤졌다.
그러나 내력은 훨씬 심후했다. 장무기는 태극권 중의 점(點), 인
(引), 제(濟), 안(按) 등의 초식을 전개하여 그의 몸을 비틀어지
게 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이 자의 내력이 너무나 강해서 오히려
자기가 한 발자국 헛디디고 말았다. 장무기는 영웅심이 갑자기
일어나 내심 생각을 굴렸다.

'너의 서역 소림 내공이 예리한지, 아니면 나의 구양신공이 예
리한지 너와 한번 겨뤄보겠다.'

이때 그의 일장이 공격해 오자 자기도 일장을 후려쳤다. 마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식으로 상대를 공격했다. 쌍장이 부딪치
자 펑!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의 몸이 한번씩 휘청거렸
다.

장삼봉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내심 걱정했다.

'큰일이다. 이처럼 야만적으로 싸우면 힘이 강한 자가 이기게
된다. 이는 태극권의 권리와는 전연 반대이다. 이 대머리 아이의
내력은 무림에서도 보기 드물게 매우 심후한데, 아마 이 일장에
저 애가 중상을 입을지 모르겠다.'

바로 이때, 두 사람의 두 번째 장력이 다시 부딪치며 펑! 소리
와 함께 그 아이의 몸이 휘청하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러나 장무기는 여유있게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구양신공과 소림파의 내공은, 최고 경지까지 연마하게 되면 고
하를 분간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서역의 금강문을 창설
한 사조인 화공두타는 소림사에서 몰래 배운 무예였다. 권각과
병기는 몰래 배울 수 있지만 내공이란 체내의 기를 운행하는 것
이라 설사 남이 타좌정수(打座靜修)하는 걸 십 년쯤 본다 해도
어떻게 그가 내식(內息)을 조절하는 걸 알 수 있으며, 주천(周
天)을 어떻게 반운(搬運)하는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해서 외공
은 몰래 배울 수 있어도 내공은 도학(盜學)할 수 없는 것이다.
금강문의 외공은 몹시 강해서 소림의 정종(正宗)에게는 지지 않
는다. 그러나 내공은 한참 뒤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금강문 중의 이방인이었다. 천부적인 신력을 지니고
있어서 심후한 내공을 연서하게 되었다. 그것은 왕년의 조사인
화공두타를 훨씬 능가하게 되었다. 실로 천수(天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쌍장 삼초를 받아낸 사람은 극히 드
물었다. 그런데 장무기의 장력에 일보나 뒷걸음질 했으니, 내심
놀라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이윽고 그는 숨을 깊게 한 번 몰아쉬더니, 쌍장을 일제히 발출
하면서 장무기에게로 후려쳐갔다.

장무기는 소리를 질렀다.

"은육숙, 제가 사백님의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마침 이때 은이정은 양불회와 소조 등과 두 명의 명교 교도들에
게 들린 채 무당산에 당도했다.

장무기는 대갈일성을 지르더니 우권을 후려쳤다. 순간 펑! 하고
크게 소리나더니, 그 대머리 아이는 연거푸 세 걸음 뒤로 후퇴하
면서 두 눈이 튀어나오고 흉구의 기혈이 번용(飜慂)하였다.

"은육숙님, 사백님을 포위해서 공격한 사람들 중에 이 대머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그렇다. 이 자가 바로 우두머리다!"

이때 그 대머리 아이가 온 몸의 뼈마디를 픽픽! 팍팍! 하며 소
리를 발출하는 게 들렸다. 운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대암은 이 아이의 내력이 강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데 이렇게 운공을 하게 되면 더욱 강맹하여져 실로 막아내기가
함들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소리치며 말했다.

"도하미제(渡河未濟), 격기중류(擊基中流), 즉 강을 미처 건너
기기 전에 허리를 끊어 버려라!"

"네."

장무기는 대답하고 나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으니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아이가 쌍비를 휘둘러 대자 한 줄기 어마어마한
힘이 미처 산을 일어내고 바다를 역류하게 하는 것처럼 밀려왔
다. 그러자 장무기는 숨을 한 모금 들여마시고 체내의 진기를 유
전(流轉)시키더니, 우장을 휘두르는 한편 상대방의 장력을 부딪
쳐가면서 되돌려 보냈다. 이 두 줄기의 거대한 힘이 함께 합쳐지
자, 노자는 괴성을 지르더니 몸이 마치 발석기(發石機)로 돌을
쏜 것처럼 벽에 부딪치면서 뚫고 나가 버렸다.

사람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벽의 구명에서 한 사
람이 번개처럼 들어왔다. 그리고 아이의 몸을 땅바닥에 내려놓았
다. 그는 키가 작고 몹시 뚱뚱했는데, 마치 석고(石鼓)처럼 둥그
랬다. 생김새는 몹시 우스웠으나 신법은 너무나 민첩했다. 그는
바로 명교의 후토기 장기사 안원(顔垣)이었다. 그 대머리 아이의
양팔, 가슴, 어깨뼈는 모두 무기의 강맹하고 후심한 장력에 진단
(震斷)되었다.

안원은 아이를 내려놓고 나서 장무기에게 허리를 한 번 굽히더
니 다시 벽에 있는 구멍으로 나갔다. 왔다갔다 하는 게 마치 살
찐 들쥐 같았다.

조민은 이 소동이 자기의 수하에 있는 일류 고수 두 명을 연거
푸 격패하는 걸 보며, 진작부터 의심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안
원이 그에게 인사하는 걸 보자 즉시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녀는
속으로 자기에게 욕을 퍼부었다.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 내가 선입위주(先入爲主)하자 저 녀
석이 밖에서 수작을 부리는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도동
을 가장하여 여기서 수작을 부려 나의 큰 일을 그르치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윽고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다.

"장교주, 소도동으로 가장하다니 창피하지도 않소? 더구나 태사
부, 태사부하고 쉴새없이 부르고 있는데 정말 너무나 못났구료."

장무기는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자 낭랑한 목청으로 말했다.

"선친인 취산옹은 바로 태사부님의 좌하 다섯 번째 제자이신데,
내가 태사부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겠느냐? 그런데 뭐가
창피하다는 것이냐?"

이윽고 몸을 돌려 장삼봉에게 무릎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소인 장무기, 태사부님과 삼사백님께 인사드립니다. 일이 너무
나 다급하기에 알리지 못했으니 기만한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
니다."

장삼봉과 유대암은 놀라움과 기쁨이 엇갈렸다. 서역 소림의 양
대 고수를 격패한 소년이 옛날에 병들어서 죽은 줄만 알았던 그
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좀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은천정에게 말했다.

"은형, 이런 좋은 외손자를 얻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장진인, 이처럼 훌륭한 도손을 가르쳐 낸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조민은 투덜거렸다.

"무슨 놈의 좋은 외손자, 훌륭한 도손이람! 두 늙은이는 간사하
고 교활한 놈을 길러낸 것이다. 아대, 네가 가서 그의 검법을 시
험해 보아라."

"네."

그 인상파 아대는 즉시 획! 소리를 내면서 의천검을 뽑아 냈다.
그러자 모두의 눈앞에 파란 빛이 번뜩거리며 은은하게 한기가 스
며나오는 것이 명검임에 틀림없었다.

장무기가 아대에게 물었다.

"이 검은 아미파의 소유인데, 어찌 당신의 수중에 들어갔소?"

"이놈아, 네가 뭘 아느냐? 멸절 늙은이가 우리 집안에서 이 검
을 훔친 것이다. 지금 다시 주인에게 돌아온 것뿐이다. 의천검이
아미파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장무기는 의천검의 내력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되물어오자 말
문이 막힌 것이다. 장무기는 즉시 화제를 돌려서 조민에게 말했
다.

"조 낭자, 흑옥단속고를 나에게 주시오. 우리 삼사백과 육사숙
의 부러진 팔다리가 완치되기만 하면 지나간 허물은 탓하지 않겠
소."

"흥, 지나간 허물은 탓하지 않는다구? 말하기는 쉽겠지. 넌 소
림파의 공문, 공지, 무당파의 송원교, 유연주 등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난 모르고 있으니 낭자가 알려 주기 바라오."

"내가 뭣 때문에 네게 말해 주겠느냐?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지 않으면 옛날에 녹류장 철창에서 너에게 당한 치욕을 씻지
못한다!"

그녀는 치욕을 당했다는 말을 하자, 그날의 일들이 되살아나 그
만 얼굴이 붉어지면서 울화가 치밀었다.

장무기도 그녀의 말에 덩달아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은 그날 명
교 군호들이 독에 중독된 것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그런
치졸한 계책을 쓴 것이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발바닥을 간지럽히기는 했으나 절대로 경박
한 저의는 없었다. 하지만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하지 않았는가!
비록다급해서 그런 짓을 하기는 했으나, 그런 일은 한 번도 남
에게 얘기한 적은 없었다. 만약 사람들이 정말 자기가 소녀를 희
롱했다고 알고 있다면 그건 낭패가 아닌가! 그는 난처했지만 조
민에게 다시 따져 물었다.

그러자 조민은 예쁜 눈을 한 번 굴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흑옥단속고를 얻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 네가
나의 세 가지 조건만 들어 준다면 난 두 손으로 받치겠다."

"무슨 조건들이오?"

"지금은 아직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나거든 내가 한 가
지씩 말할 것이니 넌 따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만약에 나보고 자살하라든가 개, 돼지
가 되라 해도 당신의 의사를 따라야 하는 거요?"

"그런 일들은 없을 것이다. 히히.....! 네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어서 말해 보시오. 만약에 협의(挾義)에 위배되지 않는
일이든지,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조민은 막 말을 받아 하려다가 소조의 귀밑 쪽에 한 송이 진주
꽃이 꽂혀 있는 걸 보았다. 바로 자기가 장무기에게 선물한 그것
이었다. 그러자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다시 소조의 밝은 눈동
자며 하얀 이, 앵두 같은 입술을 보게 되었다. 비록 나이는 어렸
으나 마치 새벽 이슬을 맞은 연꽃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
다. 그러자 이를 한 번 악물더니 아대에게 말했다.

"저 장가란 녀석의 양쪽 팔을 베어 버려라!"

아대는 의천검을 쳐들고 한 걸음 다가가면서 장무기에게 말했
다.

"장교주, 주인나리께서는 당신의 양쪽 팔을 베어 오라고 했소."

주전은 울화를 오래 참고 있었으나, 이때 더 이상 참지 못하겠
는지 입을 열고 욕설을 퍼부었다.

"개수작하지 마라. 차라리 네 자신의 양팔을 잘라 버려라!"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자 주전은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베어라."

"서두를 것 없다."

장무기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의천검의 검날이 너무나 날카롭
기 때문에 어떠한 병기도 부딪치기만 하면 부러지고 만다. 대책
이라고는 건곤이위심법을 사용해서 맨손으로 그의 병기를 탈취하
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예리한 보검앞에 손을 내밀었
다가 상대방의 검초가 약간 괴이하거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다
면, 자기의 한 쪽 팔은 손가락 끝에서 부터 어깨까지 어느 곳이
든 검날이 스치기만 하면 즉시 베이고 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적을 대적해야 좋을지 몰라 몹시 주저하고 있었다. 그 때 장삼봉
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무기야, 넌 이미 내가 창작한 태극권은 모두 배웠으나 태극검
이란 게 또 있다. 괜찮다면 지금 너에게 전수하겠다. 그렇게 된
다면 이분 시주하고 겨룰 때 그걸 사용할 수가 있다."

"태사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윽고 아대에게 말했다.

"선배님, 저의 검술이 정교하지 못해서, 필히 태사부님의 가르
침을 받아야만 당신하고 겨룰 수가 있겠소."

그 아대는 처음부터 장무기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비록
자기에게는 보검이 있지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막상
그가 검초를 새로 배운다는 말을 듣자 몹시 좋아했다. 새로 배우
는 검초가 제아무리 정묘하다 해도 생소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을 했다.

검술이란 경상영동(輕翔靈動)이 일체되어야 한다. 최소한 십 년
이나 이십 년을 수련해야만 적을 맞이했을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가서 초수를 배워라. 난 여기서 기다리겠다. 두 시간이면 족하
겠느냐?"

장삼봉이 말했다.

"다른 곳에 갈 것 없다. 여기서 가르치고 배우면 된다. 즉석에
서 볶아서 바로 팔아야만 신선하고 따뜻하고 매콤하다. 반 시간
이면 태극검법을 모두 가르칠 수 있다."

그가 이처럼 말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면서 자기들의 귀
를 의심했다.

"아무리 무당파의 태극검이 오묘하고 신기해도, 어떻게 여기서
공공연히 초수를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상대방도 똑똑
히 보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장무기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대가 비웃듯 말했다.

"그렇게 해도 좋겠군요. 난 밖에서 기다리겠소."

장삼봉이말했다.

"그럴 필요없소. 나의 이 검법은 초창된 것이므로 쓸모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잘 모르고 있소. 마침 그대는 검술의 대가이니 이
검술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기 바라오."

이때 양소의 머리가 번뜩거리더니,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각하는 팔비신검(八臂神劍) 방장로였었군요. 각하는 당당한 개
방장로의 신분인데, 어찌 자청해서 남의 머슴을 하고 있는 거
죠?"

명교의 군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주전이 말했
다.

"당신은 죽었지 않소? 어떻게 다시 살아 돌아왔소? 이럴.....
이럴수가 있는 것이오?"

아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 몸은 구사일생으로 살았소. 지나간 일을 말해 봐야 무슨 소
용 있겠소. 난 벌써부터 개방의 장로가 아니오."

윗 선배들은 모두 팔비신검 방동백(方東白)은 개방의 사대 장로
의 우두머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검술이 정묘하여 강호에 명
성을 날렸다. 그는 출검(出劍)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빨라 마치
칠, 팔 개의 팔이 달린 것 같아서 그러한 외호(外號)를 얻게 된
것이다. 십여 년 전 그가 중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은 모두 애석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아직까
지 살아 있는 것이다.

장삼봉이 말했다.

"노도의 이 태극검법이 팔비신검의 지적을 받게 되어 영광이오.
무기야 너에게 검이 있느냐?"

소조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서, 장무기가 조민으로부터 갖고
온 그 목재로 된 가짜 의천검을 받쳤다. 장삼봉은 받아들고 웃으
며 말했다.

"이건 목검이 아니냐? 노도는 부적을 날조하고 주문을 외워서
악마를 쫓으려 하는 게 아니다."

장삼봉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검을 쥐고 오른손으
로 검결(劍訣)을 가리키더니, 양손으로 고리를 만들면서 천천히
들어올렸다. 이 기수식을 전개하자 따라서 환두월(環두月), 대괴
성(大魁星), 연자초수(燕子抄水), 좌란소(左欄掃), 우란소(右欄
掃)..... 일초 일초씩 전개해 보였다. 제 십 삼식인 지남침(指南
針)을 전개할 때는 양손으로 동시에 원을 그리면서, 제 오십 사
식인 지검귀원(指劍歸原)을 되풀이했다. 장무기는 초식을 기억하
지 않고 오직 그의 검초에 있는 신재검선, 면면불절(神在劍先,綿
綿不絶)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장삼봉이 모두 검법을 전개했으나 한 사람도 갈채를 보내지 않
았다.

'저렇게 느리고 힘없는 검법으로 어떻게 적을 상대해서 무공을
겨루겠는가? 아마 일부러 초수를 천천히 해서 그를 이해시키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삼봉이 장무기에게 물었다.

"무기야, 유심히 보았느냐?"

"네."

"모두 기억할 수 있느냐?"

"아뇨, 조금 밖에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장무기는 고개를 숙여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장삼봉이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떠냐?"

"이미 절반 이상은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전이 소리쳤다.

"점점 더 잊어가니 큰일이구료. 장진인, 당신의 그 검법은 너무
나 심오하기에 한 번 보아서는 기억할 수 없소. 수고스럽지만 우
리 교주에게 한 번 더 해 보일 수 없겠습니까?"

장삼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소, 한 번 더 하겠소."

그러자 검을 쳐들고 출초하면서 다시 해보였다. 그러자 사람들
은 초수를 보며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두 번째 해보이는 것은
첫 번째 것과 전혀 달랐다. 주전이 다시 소리쳤다.

"큰일이군, 큰일이야. 이렇게 되면 더욱 혼돈되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

장삼봉은 검으로 원을 그리며 말했다.

"무기야, 어떻게 되었느냐?"

"아직도 삼초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장삼봉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검을 거두고 자리로 돌아
갔다.

장무기는 대전(大殿)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한참 동안 생각
에 잠겼다. 다시 천천히 반 바퀴를 돌고 나더니, 고개를 들어 얼
굴에는 희색을 잔뜩 띄우면서 말했다.

"이제야 모두 잊게 되었습니다."

"기특하게 빨리도 잊어 버렸구나. 그렇다면 팔비신검의 가르침
을 받아 보아라."

그러면서 수중에 있는 목검으로 그에게 주었다. 장무기는 허리
를 굽혀 받아 들더니 몸을 방동백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방 선배님, 시작할까요?"

주전은 귀를 후비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몹시 걱정을 했다.

방동백은 기합을 내지르며 일검을 뻗었다. 그러자 파란 빛이 번
쩍 하면서 칙칙 소리가 났다. 내력의 강맹함은 그 대머리 아이와
별차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관전했다.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 설사 의천검이 아니고 쓸모없는 쇠붙이
라 할지라도, 이같은 내력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력을 막아내
지 못한다. <신검>이란 말은 과연 뜬 소문은 아니구나.'

장무기는 왼손으로 검결(劍決)을 사인(斜引)하더니, 목검으로
반달을 그리면서 의천검의 검등에 눕혀서 걸쳐 놓았다. 경력을
전출하자 의천검은 즉시 밑으로 한 번 휘청거렸다. 그러자 방동
백은 "좋은 검법이다."라고 소리치더니, 손목을 비스듬히 하고
검을 되돌려서 왼쪽 겨드랑이 쪽으로 검 끝을 찔러갔다.

장무기는 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순간 팍! 소리가 나면서 쌍검
이 서로 부딪치더니 각각 몸이 위로 솟구쳤다. 방동백의 수중에
있는 의천검이 이처럼 한 번 울리게 되자 계속 떨면서 윙윙....!
하며 한참 동안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두 개의 병기는 하나는 보검이고 하나는 목검이다. 그러나
정면으로 부딪쳤어도 보검과 목검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장무
기의 이 일초는 자기의 둔기로 적의 예리한 칼날을 막아낸 것이
다. 실로 태극권의 정오함을 터득한 것이다. 장삼봉은 그에게 검
의(劍意)를 전수한 것이지 검초를 전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가 보게 된 모든 검초를 깨끗이 잊어야만 검의의 진수를 깨닫
게 되는 것이다. 비로소 적을 맞이할 때 자기의 뜻대로 검을 무
공무진한 변화를 시킬 수 있다. 이러한 진위를 양소, 은천정 등
의 고수들은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으나, 주전은 그들보다 한
수 아래라서 혼자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이때 삼청전 안에는 칙칙.....!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방동백의
검초는 더욱 예리하고 악랄해졌다. 심후한 내력으로 예리하기 짝
이 없는 검을 사용하니, 파란 빛이 흔들거리면서 검기(劍氣)가
자욱했다. 그러자 대전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큰 눈덩이가 몸 앞
에서 굴러다니는 것처럼 느끼면서 뼈를 좀 먹는 한기를 발출하였
다. 장무기는 목검으로 이 한 덩어리의 한광안에서 원을 하나 하
나 그렸다. 매 초마다 모두 괄호형으로 공격하고 괄호형으로 거
두어들였다. 마치 한 덩어리의 솜처럼 의천검을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백여 초를 넘기자 방동백의 검초는 점점 둔하게 보
이면서, 수중의 보검의 무게가 점점 증가되는 것 같았다. 다섯
근, 여섯 근, 일곱 근..... 열 근, 스무 근,,,,, 어쩌다 일검씩
지를 때마다 진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목검에 끌려서 몇 바퀴씩
돌곤 하였다.

방동백은 초수가 지날수록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삼백여 초
를 격무하였으나 검봉(劍鋒)은 한 번도 부딪치지 않았다. 이는
그가 평생 동안 검을 사용했지만 한 번도 당하지 못한 일이다.

상대방은 마치 큰 그물을 투망하여 빠른 속도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방동백은 연거푸 육, 칠 가지의 검술로 바꾸어가면서 공
격했다. 관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오락가락했으나 장무기
는 시종일관 검으로 원을 그렸다. 장삼봉 외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매 일초가 수비하는 것인지 공격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
었다.

이 태극권 검법의 초수를 따지자면, 오직 일초뿐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원을 그리는 초수는 영원히 끝이 없었다. 갑자기 방
동백의 대갈일성이 들리더니 머리카락을 곤두세워서 의천검으로
중궁(中宮)을 공격했다. 이는 바로 건곤일격(乾坤一擊)이었다.

장무기는 그가 맹렬하게 다가오는 걸 보자 검을 돌려서 막으려
했다. 그러자 방동백은 손목을 약간 돌려서 의천검을 비스듬하게
옆으로 공격했다. 싹!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목검의 검끝이
여섯 치쯤 잘라졌고 의천검은 도무지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이윽
고 장무기의 가슴으로 공격해 똑바로 찔러왔다.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왼손을 반대로 돌리더니 본래 검결을 하
고 있던 식, 중 두 손가락을 벌려서 의천검의 검신(劍身)을 잡으
며 오른손의 반 토막 검으로 그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비록 목
검이었지만 그가 구양신공으로 사용하게 되니 마치 강도(剛刀)와
같았다. 이윽고 방동백은 오른손에 힘을 가하여 검을 빼앗으려
했지만, 의천검은 상대방의 두 손가락에 끼여져서 꼼짝하지 않았
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오직 검을 놓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
었다.

"손을 빨리 놓으시오!"

장무기의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방동백은 오히려 이를 악
물고 손을 놓지 않았다. 바로 이 전광석화의 눈깜짝할 순간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한쪽 팔이 목검에 의해 절단되었다. 마치
예리한 검으로 잘라내는 것 같았다. 방동백이 손을 놓지 않는 건
팔을 희생시켜서라도 검을 보호하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왼손
을 내밀어서 잘린 팔이 미처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걸 얼른 잡았
다. 잘린 팔은 이미 몸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다섯 손가락은 여
전히 의천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가 이처럼
용감한 걸 보게 되자 놀라워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래서 그의 검을 뺏고 싶지 않았다.

방동백은 조민의 몸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주인나리, 소인의 무능함은 어떠한 벌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조민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늘 명교 장교주의 얼굴을 봐서 무당파를 놓아주겠소. 자, 가
자!"

왼손을 한 번 흔들자, 그녀의 부하들은 방동백과 대머리 아이,
아삼의 몸을 안고 삼청전 밖으로 나갔다.

이때 장무기가 소리쳤다.

"잠깐! 흑옥단속고를 남겨 놓지 않고서는 무당산을 내려가지 못
하오!"

그리고는 즉시 몸을 튕겨 앞으로 다가가서 조민의 어깨를 잡으
려 했다. 순간 손아귀가 그녀의 어깨에 미처 닫기도 전에 갑자기
두 줄기 무성무식의 장풍이 좌우에서 기습해 왔다. 사전에는 전
혀 기미가 없었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면서 쌍장을 동시에 되받
아쳤다. 오른손으로는 오른쪽에서 기습하는 일 장을 받았고, 왼
손으로는 왼쪽에서 오는 일 장을 받았다.

사 장이 동시에 부딪치자 기습해 오는 장력은 괴이하면서도 강
맹했다. 더구나 한 줄기 음냉하기 짝이 없는 한기가 서려 있었
다. 이 한기를 장무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어렸을 때
그가 죽을 뻔했던 현명패천장이었다.

장무기가 놀라는 순간 구양신공이 바로 생겨났으나, 갑자기 좌
우 겨드랑이에는 동시에 양적(兩敵)의 장을 공격받았다. 그러자
장무기는 윽!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내동댕이쳐졌
다. 자기를 기습한 자들은 몸이 마르고 키가 훤칠한 두 노자였
다. 이 두 노자는 각각 일 장씩 출수하여 장무기의 쌍장과 겨루
고, 나머지 일 장씩을 무영무종(無影無縱)하게 그의 몸으로 후려
친 것이다.

양소와 위일소가 함께 화를 내며 호통치면서 앞으로 덮쳐갔다.
그 두 노자는 다시 일 장씩 후려쳤다. 펑펑! 두 번 소리가 나면
서 양소와 위일소는 동시에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가슴의 피
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고 뼈를 뚫는 한기를 느꼈다. 두 노자의
몸도 모두 몇 번 휘청거렸다. 이윽고 오른쪽에 있던 자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명교의 큰 명성도 별거 아니로군."

그들은 조민을 보호하며 서둘러 산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제 5 권 1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제 2 장 반원항호(反元抗胡)의 결의(決議)


그들은 장무기가 다친 것이 염려되어 더 이상 그들을 쫓지 않고
모두 장무기를 둘러쌌다. 장무기는 별일없다는 듯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체내에 구양신공이 발동하여 현명패천장의 한기
를 몰아내고 있었다. 장무기의 머리끝이 찜통과 같이 뜨거워지더
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장무기는 웃통을 벗어버리
고 구양신공을 더욱 발동시켰다. 그러자 검게 멍든 장인(掌印)은
조금씩 자색으로 변하다가 회색으로 변하더니, 끝내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두 시간도 채 못 되는 시간에 왕년엔 몇 년
걸려도 제거할 수 없었던 한독을 지금은 흔적도 없이 몰아낸 것
이었다. 장무기는 옷을 입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위험 천만이었지만, 그래도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 큰 다행입니다."

양소와 위일소는 반나절이나 앉아서 운기를 해서야 겨우 음독을
제거할 수 있었다. 장무기는 태사부의 상세를 걱정하자 장삼봉이
말했다.

"화공두타(火工頭陀)의 내공은 아직 멀었다. 외공은 강맹하지만
현명패천장이 미치지 못해 내 상처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때 예금기 장기사 오경초가 달려와 적들을 모두 격퇴하였다고
보고를 해 왔다. 유대암이 지객도인에게 소석(素席)을 차려 명교
인들을 대접하라고 명령했다. 식사를 하면서 장무기는 장삼봉과
유대암에게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얘기해 드렸다. 그
의 지금까지의 일들을 들은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장삼봉이 입을 열었다.

"그 해에도 바로 이 삼청전에서 나와 그 노인이 일장을 겨뤘었
지. 그런데 당시에는 그가 몽고 군관 차림을 하고 있어서 둘 중
어느 노인인지 알 수가 없구나. 생각하면 창피한 일이야. 우린
지금까지도 상대의 신분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양소가 입을 열었다.

"그 조소저의 내력이 얼마나 고강하기에 현명이로(玄冥二老) 같
은 고수마저 그녀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일까요?"

모두 머리를 맞대로 의논을 했으나, 도무지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지금 두 가지 급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흑옥단속고를 빼앗
아서 유삼백과 은육숙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송
대사백님의 소식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조소저
에게서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암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미 이십 년이나 이런 꼴로 살아 왔는데, 이제는 어떤
선단 신약이 있다 해도 고치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 큰 형님이나
육제(六弟)를 구해 내는 일이 더 급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양좌사, 위복왕, 설불득 대사,
세 분께서는 저와 같이 적을 쫓아갑시다. 그리고 오행기 각파 장
기사들은 각기 아미, 화산, 곤륜, 공동 그리고 복건(複建)의 남
소림으로 찾아가 무슨 소식이라도 알아내십시오. 그리고 철관도
장, 주선생, 팽대사 그리고 오행기 부장기사들은, 여기 무당에
잠시 머무르며 나의 태사부인 장진인의 명령에 따라 작전에 임하
고 계십시오."

은천정, 양소, 위일소 등 모든 군호들은 각기 이름을 부를때마
다 공손히 일어나 명령을 받았다.

장삼봉은 장무기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군호들을 통솔할 것인가
하고 의심했으나, 지금 이 은천정 등 무림의 영웅 호걸들이 일어
나 공손히 그의 명령을 받는 장면을 보자 그는 내심 크게 기뻤
다.

'이 녀석은 나한테 태극권과 태극검을 배웠지만, 내공 바탕이
좋고 깨우침이 빨라,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것도 대견스럽지
만, 그것보다도 명교와 천응교의 이 대마두들을 정의의 길로 가
게 했으니 정말 훌륭한 일을 한 것이야. 음! 취산(翠山)에게 이
런 후계자가 있게 됐구나!'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수염을 만지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무기와 양소, 위일소, 설불득은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장삼봉
에게 이별을 고한 뒤, 조민의 행방을 찾아 산을 내려갔다. 은천
정 등은 그들을 산 밑까지 배웅을 하고 산으로 올라왔으나, 양불
회는 아버지 양소를 따라 몇 리 길까지 배웅을 나갔다.

"불회야, 이제 그만 돌아가서 은육숙이나 잘 모셔라."

양불회는 양소의 말에 공손히 대답하면서 장무기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무기 오빠, 오빠에게 몇 마디 할 얘기가 있어요."

양소와 위일소 등은 무기와 양불회가 어렸을 때부터 남매나 다
름없이 자라온 터라, 무슨 사랑의 얘기라도 나눌 것이라고 생각
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무기 오빠,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장무기의 손을 잡고 바윗덩어리가 있는 곳으로 가 앉았
다. 장무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녀와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오면서 남달리 애정을 갖
고 있었지만, 서로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항상 자
기를 본 척 만 척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
는지 장무기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간 채로 한
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말문을 열었다.

"무기 오빠, 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오빠한테 나를 잘 보살펴
주라고 부탁했었지요?"

"그랬었지."

"오빠는 천리 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괴하에서 서역까지
우리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셨어요. 그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
를 넘겼고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그 은혜 정말 잊지 못할 겁니
다. 마음 속에 늘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에게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내왔었어요."

"그게 무슨 중요한 것이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만약 내가
너를 서역까지 데리고 가지 않았었다면, 난 지금 이렇게 되지도
못하고 벌써 독이 퍼져 죽었을 거야."

"아니예요. 오빠는 인협하고 후덕한 분이라 어떤 난관도 스스로
풀리게 되어 있어요. 무기 오빠,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
고 아버지께서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해 주셨지만, 이것만큼은 아
버지한테 말씀드릴 수 없었어요. 당신은 우리의 교주이시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 나의 친오빠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날 광명정에
서 당신이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온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다만 쑥스러워 오빠한테 말씀드리지 못한 거예요.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겠어요?"

"천만에!"

"제가 소조를 잔인하게 따르는 것을 보고 무척 마음에 거슬렸을
거예요. 그러나 저의 어머니께서 너무 잔인하게 돌아가셨기 때문
에, 그 때부터 저는 악인들에겐 잔인하게 다루는 습관이 생겼던
것이예요."

장무기는 가볍게 웃었다.

"소조 그 계집아이가 어딘가 괴팍하고 이상한 데는 있지만, 내
가 보기엔 무슨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더구나."

이때 날은 이미 저물었고 가을 바람이 불어 약간 추운 기운이
느껴졌다.

양불회는 부드러운 눈초리로 장무기를 바라보며 다시 낮은 소리
로 말했다.

"무기 오빠께서는 저의 양친이 은육숙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
하지 않으세요?"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인데, 다시 얘기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아니예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오래 전의 일이라고 생각
할 거예요. 저도 벌써 열 일곱 살이나 됐으니까요. 그러나 은육
숙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어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이면서도
항상 내 손을 잡고 "효부, 효부!" 하고 불렀어요. 그러면서 "효
부! 난 이미 손 발이 모두 부러진 폐인이야. 나를 버리고 떠나지
마. 제발 빌겠어!" 하고 외치곤 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무척 격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혼수 상태에서 잠꼬대를 한 것이야. 진실이라고 할 수
없어."

"아니예요. 당신은 모르지만 저는 다 알고 있어요. 그분이 깨어
나서 나를 볼 때도 그의 눈빛엔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
어요. 다만 저한테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장무기는 긴 탄식을 터뜨렸다. 그 자신 은육숙이 무공은 고강하
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기효부의 죽음이 그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또 자신은 폐인이 되자 불안감을 느끼고 있
었던 것이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흑옥단속고를 뺏어와, 삼사백과 은육
숙의 병을 고쳐 드리고 말 것이야."

양불회가 다시 말했다.

"은육숙이 나를 그렇게 쳐다볼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분
에게 죄를 지셨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무기 오빠, 저는 이미
내 입으로 은육숙에게 승낙을 했어요. 그분이 폐인이든 정상인이
든, 저는 영원히 그를 떠나지 않고 평생 같이 있겠다고....."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굳은
결의와 부끄러움, 그리고 기쁨이 역력했다.

장무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불회가 은이정에게 평생
을 약속했다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네가.....?"

"저는 이미 그분에게 굳게 약속을 했어요. 그분이 평생을 움직
이지 못하고 폐인으로 산다고 해도, 저는 항상 그의 옆에 있으며
시중을 들어줄 거예요."

"그러나, 너는....."

"저는 갑작스레 생각이 나서 그분에게 승낙을 한 것이 아니예
요. 그 동안 저는 무척 그분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 그분이
이번 상처로 죽게 된다면 저도 같이 죽을 거예요. 그 분이 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저는 무척 기뻤어요. 무기 오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처음 좋아하던 물건 외에는 끝까지 다른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만 좋아하는 고집을 잘 아실 거예요."

"그래, 그건 그랬지."

"은육숙은 제가 처음으로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예요. 이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항상 무기 오빠가
몇 번이나 내 생명을 구해 줬으니 나는 응당 평생 오빠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빠를 항상 친오빠같이 생각하고 지냈어요.
난 오빠를 존경해요. 그러나 그 분은 어딘가 좋으며 가련한 생각
이 들곤 해요. 저보다 나이가 배가 더 많은 어른이라고 남들이
웃을 것이고, 또 저의 아버지와 앙숙지간이라고 성사가 될 것 같
지 않지만, 내 마음은 결심이 섰다는 것을 오빠에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말을 마친 양불회는 더 이상 장무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일으키더니,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장무기는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그는 한참 동안 멍청히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뒤에 일
행을 뒤쫓아오자, 설불득과 위일소는 장무기의 눈가에서 눈물자
국을 보고는 양소를 향해 웃었다. 그들의 웃음엔 "축하하네, 양
좌사. 교주의 장인이 됐구만." 하는 웃음으로 보였다.

네 사람은 무당산을 내려오자 양소가 말을 했다.

"조 낭자를 앞뒤로 호위할 것이라 절대로 그녀 혼자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녀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네 갈래로 나눠서 그녀를 찾다가, 내일 정오에 곡성에서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교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곡성은 무당산의 동쪽에 있는 곳이다. 장무기는 제일 먼 방향인
서쪽 방향으로 택하고 그들에게 당부했다.

"현명이로의 무공이 매우 고강하니, 세 분 중 어느 분이든 그들
을 만나면 될 수 있으면 피해 버리고 혼자 힘으로 그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세 사람은 작별을 고하고 각기 자기 방향대로 조민을 찾아 나섰
다.

서쪽은 거의 산길이었다. 장무기는 경공을 펼쳐 얼마 지나지 않
아 이미 십안진(十안鎭)에 도착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국수 한
그릇을 사 먹으며 점원에게 노랑색 비단으로 가려진 작은 가마를
본 적이 있는지 탐문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점원은 본 적이 있다
고 알려줬다.

"약 한 시간 전에 본 것 같습니다. 상처를 입은 세 사람이 들것
에 실려 있었습니다. 황용진(黃龍鎭)쪽으로 갔습니다."

장무기는 그들이 빨리 가지를 못하니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
이 염려가 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그들을 쫓기로 했다. 그는 조
용한 곳을 찾아 한잠 자고 난 후, 일경쯤 되어 황용진을 향해 달
렸다.

그는 이경도 되지 않아 황용진에 도착했다. 길옆에 숨어 살펴
보니, 길거리엔 한 사람도 다니지를 않았다. 한 객점에만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는 몸을 몇 번 날려 지붕 위로
올라섰다. 사방을 살펴보니, 멀리 개울가 옆 공터에 큰 천막이
쳐져 있는데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경비가 삼엄해 보였다.
그는 내심 생각을 굴려 보았다.

'조 낭자가 저 천막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용모와 말
하는 것은 한인과 거의 비슷한데, 그러나 호사스럽고 오만한 행
세는 오히려 몽고인 같아.'

사실 이때는 이미 몽고인들이 중원을 점령한 지 오래라, 한인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몽고풍을 배우고 흉내내는 것을 영광으
로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창문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볍게 뛰어 내려 창문
옆으로 걸어가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상처가 고통스러
운지 낮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에는 모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저 자의 부러진 팔다리를 자기네들의 영약인 흑
옥단속고로 상처를 치료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그 약을 뺏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창문을 밀어제치고 안
으로 뛰어들어가자, 안에 서 있던 한 명이 놀라 주먹을 휘둘렀
다. 장무기는 왼손으로 그의 주먹을 움켜잡고, 오른손으로는 그
자의 연마혈(軟痲穴)을 찔렀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을 보니 바
로 아이와 방동백이 누워 있었다. 자기에게 혈도를 당한 그 자의
손엔 금침(金針)이 두 개 있었다. 아마 이 세 사람의 고통을 멈
추게 하기 위해 침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탁자 위엔 검은
병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장무기는 검은 병을 들어 뚜껑을 열어 보니, 아주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삼이 외쳐 댔다.

"누구 없느냐? 약을 강탈....."

장무기는 잽싸게 세 사람의 아혈(啞穴)을 봉했다. 그리고 나서
아삼의 붕대를 풀어보니 과연 팔 전체가 검은 색의 고약이 엷게
발라져 있었다. 장무기는 조민이 가짜약을 여기놓고 자기를 유인
하려고 간계를 부린 것이 아닌지 두려워, 세 명의 상처를 바른
검은 약을 긁어 붕대에 쌌다. 그는 병속의 약은 가짜라 할지라
도, 저들의 팔에 붙인 약은 절대 가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밖에서 경비하고 있던 자가 소리를 듣고 문을 박차고 뛰
어들어왔다. 장무기는 잽싸게 밖으로 한 명씩 걷어차 냈다.

객점은 어느새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몇 명을
걷어차며 이미 세 사람 상처에 붙인 고약을 반이나 긁어냈다. 더
이상 지체를 하여 현명이로가 달려오면 시간이 지체될 게 뻔했
다. 장무기는 긁어낸 고약과 검은 약병을 품속에 감추고 쓰러진
의원을 들어 밖으로 내던졌다. 팡! 의원이 무거운 장풍을 맞고
떨어졌다. 과연 장무기의 예상대로 밖에는 고수들이 매복하고 있
었다. 장무기는 바로 이 틈을 노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컴컴한
어둠 속에 흰 빛이 번쩍하면서 예리한 단검들이 그를 향해 날아
왔다. 장무기는 건곤이위심법을 펼쳐 혼란속을 좌충우돌하며 이
내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 조민의 진상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흑옥단속고를 얻었
으므로 장무기는 길을 재촉하며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곡성
에서 양소, 위일소, 설불득을 만날 여유도 없이 바로 무당으로
달렸다. 홍수기의 사람을 시켜 양소 등에게 산으로 돌아오게 하
라고 보냈다. 그 검은 약병은 옥으로 깎아진 것인데, 칠흑같이
검고 만지면 손에 따뜻한 촉감까지 있었다. 병만 따져도 하나의
진귀한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무당산에 도착한 장무기는 사람을 시켜 은이정을 유대암 방으로
모셔오게 하고 두 사람을 나란히 눕히게 했다.

양불회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장무기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환한 얼굴로 보아 마음 속으로 감사하는 듯
했다. 장무기가 자기를 서역까지 데려다 주고 하태충 집에서 자
기 대신 독주를 마신 은혜보다, 지금 은이정의 상처를 치료해 주
는 일이 더욱 고마운 모양이었다.

"삼사백님의 뼈는 이미 다 굳어서, 지금 치료하려면 이 조카가
다시 삼사백님의 뼈를 부러뜨리고 다시 접골해야 합니다. 그러니
고통스럽더라도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유대암은 사실 이십 년이나 폐인으로 살아온 자신이 다시 치유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보다 더 나빠지
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십 년 동안 이렇게 살아온 자신에
게 장무기가 조금이라도 자기 부모의 과실을 갚고자 하는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말고 마음대로 하라."

장무기는 양불회를 밖으로 내보내고 유대암의 옷을 전부 벗겼
다. 곧 뼈마디를 자세히 살핀 후, 유대암의 혼수혈을 봉하고 부
러져 이미 굳은 뼈마디를 다시 부러뜨렸다. 유대암은 비록 혈도
가 봉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했다.

장무기는 번개와 같이 빠른 수법으로 다시 부위를 찾아 맞추고
흑옥단속고를 바른 후 목판을 대로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통증
을 없애기 위해 금침을 놔 주었다. 은이정을 치료하는 일은 매우
쉬었다. 그는 치료를 끝내고 적을 기습을 예방하기 위해 오행기
기사들에게 차례로 경비를 서게 했다.

그 날 오후, 장무기는 저녁을 끝내고 방 안에서 간밤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청했다. 잠시 후 그는 잠결에 가볍게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그러자 소조의 낮은 음성이 밖에서 들려
왔다.

"무슨 일이예요? 교주께서 잠이 드셨는데....."

곧이어 후토기 장기사 안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은육협께서는 몹시 고통스러워 벌써 세 번이나 기절하셨었는
데, 교주께서 알고 계시는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무기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쏜
살같이 유대암의 방에 달려가 보니 은이정은 눈이 뒤집혀진채 기
절해 있었다. 양불회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온 얼굴이 눈물로 젖
어 있었다. 유대암은 이를 빠드득 갈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
는 강인한 성격인지라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장무기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은이정의 승읍
(承泣), 태양(太陽), 담중(膽中), 세 곳의 혈도를 주물러 그를
깨어나게 하고 유대암에게 물었다.

"삼사백님, 뼈가 부러진 곳이 고통스럽습니까?"

"아픈 것은 고사하고 오장육부가 간질간질해서 미치겠구나. 꼭
무슨 수만 마리의 벌레가 몸 속 사방을 뚫고 들어와 기어다니는
것 같아."

장무기도 보통 당황하는 게 아니었다. 유대암의 말대로라면 그
것은 분명 극독에 중독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육숙님은 어떻습니까?"

은이정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홍, 자, 청, 록, 황, 백 색깔이 정말 싱싱하구나. 수많은 구슬
들이 춤을 추는데 정말 아름답구나. 너도 좀 와서 봐라....."

장무기는 앗! 하고 외치며 그만 기절할 뻔했다. 그는 곧 바로
왕난고의 독경에 적힌 글자가 떠올랐다.

----- 그것은 칠충칠화고(七蟲七花膏)라는 것이다. 일곱 가지
독충과 일곱 가지의 독화(毒花)를 다져서 끓여낸 것인데, 그 독
에 걸린 자는 먼저 오장육부가 벌레에 물린 듯이 간질간질하다.
나중에는 별의별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었
다. 이 약을 배합하는 방법을 마흔 아홉 가지가 있고 그 변화는
육십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자체의 독으로 그 독을 풀 수가
있다. -----

장무기의 이마엔 땀이 빗방울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또 조민의
간계에 당한 것이다. 검은 병의 약은 가짜라 할지라도 세 명의
상처에 바른 것도 역시 가짜였다니! 두 명의 고수의 몸을 희생시
키면서까지 자기를 속이려고 했다니! 그녀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분통이 터져 재빨리 두 사람의 붕대를 풀고 나서 뜨거운
술로 두 사람의 사지를 바른 고약을 닦아 냈다. 양불회는 그 무
거운 표정으로 일이 잘못된 것을 알고 아무 말도 묻지 않은 대,
팔을 걷고 은이정 몸에 바른 고약을 뜨거운 술로 얼른 닦아 냈
다. 검은 색이 이미 살 속에 박혀 씻어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에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장무기는 두 사람에게 진통제를 먹이고 난 후, 밖으로 나와 무
섭고도 후회스러워 그만 마음이 허탈해져 무릎을 꿇고 쓰러져 울
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기 오빠, 무기 오빠!"

하고 양불회가 그를 보고 소리쳤다.

장무기는 목멘 소리로 외쳐 댔다.

"내가 삼사백님과 육숙님을 죽인 거야."

칠충칠화고의 재료가 백여 가지가 넘는데 도대체 어느 일곱 가
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독을 제거하려면 이독치독법으로 치
료해야 되는데, 조금만 약을 잘못 써도 즉시 두 사람의 목숨이
끝장나는 것이다.

장무기는 갑자기 자기 부친이 자살을 해야 했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잘못을 이미 저지르고 난 후라 자살로 속죄하는 방법밖
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천천히 일어서자 양불회가 물었다.

"정말 치료할 약이 없습니까?"

장무기가 고개를 흔들자 양불회는 그저 놀라지도 않고 태연한
자세였다. 장무기는 그녀가 은이정이 죽으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
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되면 자기로 인해 죽는 사람이 두 사
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장무기가 망연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오경초가 문 밖에서 보고
를 올렸다.

"교주님, 조 낭자가 관문 밖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그래? 마침 그녀를 찾아 나서려고 했는데 잘 됐군."

그는 비분을 참지 못하고 양불회의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소조가 자기 머리에 꽂았던 주화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공자, 이것을 조 낭자에게 돌려 주세요."

장무기는 힐끔 그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나와 조 낭자는 철천지 원수지간이라, 그녀의 어떤 물건
이라도 몸에 지닐 필요가 없지.'

그는 한 손에 꽃을 들고 관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관문 밖에는 조민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양볼이 발갛게 물든 석양 노을에 반사되어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
교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십여 장 뒤에는 현명이로가 서 있었
다. 두 사람은 세 필의 말을 잡고 있었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장무기는 몸을 날려 그녀 앞에 다가서며 두 손목을 움켜 잡고
검 끝을 그녀의 가슴에다 대고 외쳤다.

"어서 빨리 해독약을 내놓지 못할까?"

조민의 얼굴이 빨개지며 가볍게 핀잔을 줬다.

"픽! 좋아하지 마세요. 당신이 죽는 것하고 저하고 무슨 상관이
예요? 저보고 같이 죽어 달라는 거예요?"

"너하고 농담할 여유가 없다. 해약을 내놓지 못한다면 오늘이
바로 너의 제삿날인 줄 알아라!"

조민은 두 손목을 장무기에게 잡혀 있었기 때문에, 무기의 온몸
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우 격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
었다. 순간 조민은 그의 손바닥에 무엇이 붙어 있는 느낌이 들어
물었다.

"손바닥의 이게 뭡니까?"

"바로 그 주화다. 네 것이니 돌려 주겠다."

그가 손을 획! 하고 들자 주화는 벌써 그녀의 머리에 꽂혔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두 손목을 움켜 잡았다. 장무기가 손을 놓아
주화를 꽂고 다시 그녀의 손목을 잡는 동작은 정말 번개와 같았
다.

"이것은 제가 준 선물인데, 왜 다시 돌려 줍니까?"

"네가 나를 얼마나 골탕 먹였는데, 내가 너의 물건을 뭣하러 갖
고 있겠느냐?"

"내 물건을 받지 않는다구요? 그 말 진심입니까? 그렇다면 왜
저에게 해독약을 달라고 합니까?"

장무기는 매번 그녀와의 입씨름에서 이긴 적이 없었다. 그는 잠
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유대암과 은이정이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
아지려고 했다. 정말 그녀에게 사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민
이 저지른 악독한 짓을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연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 양소 등 일행은 소식을 듣고 관문을 뛰쳐 나왔다. 그러나
조민은 이미 장무기에게 잡혀 있고, 현명이로는 멀리 뒤에서 관
심이 없는 듯이 서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
모두 옆에 서서 관전만 하고 있었다.

조민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명교의 교주이며 무공이 천하를 진동하는데, 어찌 이런
작은 문제에 눈물을 흘립니까? 조금 전에 눈물을 흘렸었죠?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저는 다만 당신이 현명이로에게 맞은 장풍
의 상처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 그런데 만나자마자 사람을 못
살게 굴다니, 도대체 이 손목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겁니까?"

장무기는 조민이 그 틈을 노려 도망은 절대로 칠 수 없다고 생
각했다. 그의 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즉시 그녀를 잡을 수 있
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놔주었다.

조민은 손을 들어 머리에 꽂힌 주화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

"어째 당신은 다치지 않은 것 같군요."

"흥! 겨우 현명패천장으로 나를 다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럼 대력금강지(大力金剛指)나 칠충칠화고(七蟲七花膏)는 어
떻습니까?"

장무기는 그 말에 이를 갈았다.

"칠충칠화고가 틀림없군."

조민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장교주, 당신이 흑옥단속고나 칠충칠화고가 필요하다면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나의 세 가지 부탁을 들어줘야 합니
다. 그래야만 제가 순순히 내놓지, 강압이나 협박을 동원한다면
나를 죽이면 죽였지 해약은 절대로 얻지 못할 겁니다."

장무기는 그 말을 듣자 눈물이 글썽하던 눈에 갑자기 웃음을 나
타냈다.

"세 가지 부탁이 무엇이오? 빨리 얘기해 보시오."

장무기의 그런 표정에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울다가 갑자기 또 웃다니 창피한 줄도 모르세요? 미리 얘기해
드리지만, 지금은 갑자기 무슨 부탁인지 생각이 안 나니 지금은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승낙만 하시면 됩니다. 절대로 하늘의 별
을 따오라든가 정의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보고
죽으라는 부탁도 아닙니다."

장무기는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어려운 부탁이라
도 들어 줄 수 있다고 결심을 했다.

"조 낭자, 만약 당신의 해독약으로 유삼백과 은육협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이 명령만 내리면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절대
마다하지 않겠소."

조민은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격장(擊掌)으로 맹세를 해요."

"좋습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손바닥을 서로 마주쳤다.

조민은 머리에 꽂은 주화를 뽑아들고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젠 내 선물을 받겠지요?"

장무기는 그녀가 해독약을 주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그녀의
의중을 몰라 주화를 손에 쥐었다.

"다시는 계집종에게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소."

조민은 웃으면서 몸을 돌려 걸어가며 외쳤다.

"해약은 즉시 보내 줄 것이니, 장교주는 어서 돌아가세요!"

현명이로가 말을 끌고 와 그녀를 태웠다.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조민 일행이 첫 고개를 돌아가자 왼쪽 끝에있는 나무 뒤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신궁팔웅(神弓八雄)중의 전이패(錢二敗)였
다.

"우리 주인께서 장교주께 드리는 서신이니 받아 보시오!"

획! 하고 화살이 날아왔다.

장무기가 가볍게 화살을 받아들자 화살 끝에 쪽지가 달려 있었
다. <장교주께서 직접 뜯어 보십시오.> 라는 글자가 겉봉에 씌어
있었다. 그가 서둘러 펼쳐 보니 작은 글씨가 몇 줄 적혀 있었다.

----- 금색 상자 틈 사이에 영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화 속은
텅비었는데 그 속에 약방문이 있습니다. 두 가지 물건이 모두 오
래 전에 장교주 옆에 있었는데, 왜 그렇게 걱정을 했습니까? 아
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한번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인에게 주다
니, 어찌 이 미천한 여자의 소망을 저버립니까? -----

장무기는 몇 번이나 그 쪽지를 읽어 보며 놀랍고도 기쁜 한편
참회스럽기도 했다. 그는 잽싸게 주화를 살피고 꼭지를 돌리니,
과연 그녀의 말과 똑같았다. 그것을 꺼내 펼쳐보니, 거기엔 칠충
이 어느 일곱 가지 벌레이며 칠화는 어느 일곱 가지 꽃이고, 중
독되면 어떻게 해독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사실 장무기는 어떤 일곱 가지라는 것만 알면 해독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해독법이 틀림없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 어쩔
줄 몰라 안마당으로 뛰어가 해독약을 만들어 치료했다. 과연 한
시간도 채 못 지나 두 사람의 병세는 크게 호전됐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사라지고 어른거리는 색채도 사라졌다.

그는 다시 조민이 준 주화를 담았던 금색 상자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틈 사이가 보였다. 그 속엔 검은 고약이 가득 차
있었다. 냄새는 오히려 매우 향기롭고 시원한 감을 줬다.

이번에 그는 다시는 경솔을 범하지 않기 위해 개 한 마리를 잡
아와 다리를 부러뜨리고 난 후, 다시 약을 발라 붕대를 감아 주
었다. 다음날 살펴보니, 과연 개의 상처는 크게 호전 되어 있었
다.

삼일 째 되는 날 유, 은 두 사람이 완전히 해독된 것을 확인한
장무기는, 진짜 고약을 그들의 뼈 마디에 발랐다. 이번에는 조금
도 뜻밖의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흑옥단속고의 약효는
대단했다. 두 달이 넘자 은이정은 이미 두 손을 움직일 수 있었
다. 치유만 된다면 수족을 움직일 수 있겠고 무공도 별로 앓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만 유대암은 폐인이 된 지 너무 오래
라 다시 정상을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회복되는 것
으로 보아 반 년 후면 적어도 두 팔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
어다닐 수는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장무기가 무당산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가 보냈던 오행기 교도
들이 모두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보고에 모두는
그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아미, 화산, 공동, 곤륜 각파
에서 광명정에 원정갔던 소문이 퍼지기를 마교의 세력이 강해 서
역으로 갔던 고수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그 뒤로 각 문파를 멸망
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림사 스님들이 갑자기 사라진
사건에 대해 공전의 큰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번에 오행기 장기사들이 장삼봉의 신표를 지니고 가기를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각 문파에게 당할 뻔했었다.
또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강호에는 각 문파나 각 방회, 그
리고 표국, 산채, 부두 어디나 명교에서 습격해올까 두려워 경비
가 삼엄하다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은천정과 은야왕 부자도 무당산으로 돌아왔다.
천응교를 이미 명교로 개편 완료시킨 것이다. 또한 지금 동남지
방에서는 군호들이 반란을 일으켜 반원(反元)의 물결이 사방에서
일어나 천하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원군은 아직 막강했었다.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
이 서로 각기 원군과 싸우며 연합 작전을 펴지 못해, 반란을 일
으키는 고장마다 곧 원군에 의해 평정 되곤 했었다.

그날 밤, 장삼봉은 후원에다 소연(素筵)을 차리고 은천정 부자
의 환영식을 베풀었다. 식사 도중 은천정은 사방에서 거사하여
실패한 이유들을 얘기하며, 명교의 천응교 제자들도 참여를 해서
생포된 자나 살상당한 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군호들은 그의
말에 모두 탄식을 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양소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지금 천하의 백성들은 갖은 고생에 시달려 인심도 변했고, 모
두 몽고놈들을 몰아내고 다시 우리 강산을 되찾기를 바리고 있습
니다. 양교주가 살아계실 때도 밤낮으로 우리의 강산을 다시 찾
기만을 일심 고대했지만, 다만 본교에서 하는 일들이 너무 괴이
해 백 년 동안 중원 무림의 여러 분파들과 앙숙지간으로 내려와
같이 단결하지를 못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장교주 같은
분이 교주를 맡아 각 파와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씻어 냈으니, 이
제 모두 합심 단결하여 몽고놈들을 몰아내는데 힘을 합칩시다!"

주전이 양소를 비꼬았다.

"양좌사, 당신의 말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소리
에 불과하오."

양소는 그의 말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시다면 주형의 많은 지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강호에는 지금 명교에서 육대문파 고수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소문이 퍼져 명교 두 자만 들어도 치를 떨고 이를 가는데, 말이
야 합심 단결이지 실지로 그렇게 될 수 없지 않소?"

"우리가 지금은 그런 누명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겠소? 거기다 지금 장진인께서 우리의 증인
이 아니오?"

"만약 우리가 진짜 송원교, 멸절사태, 하태충 등을 죽였다면,
장진인께서 역시 그런 사실을 모르고 계실 것 아니오? 그런데 어
떻게 증인이 될 수 있소?"

철관도인이 주전을 나무랐다.

"주전, 어찌 장진인과 교주가 있는 좌석에서 그런 헛소리를 하
느냐?"

주전은 그 말에 혀를 내밀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팽영옥이 다시 말했다.

"주형의 말이 전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빈승의 생각으
로는, 우리가 대회를 열어 명교의 각 지방 수령들이 모였을 때
장교주께서 무림 각파와 우호를 맺을 것이라는 것을 공포하는 것
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 각지 사람들이 다 모였으니, 송대
협, 멸절사태 등 여러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대회 기간 알
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주전이 다시 말했다.

"송대협 등 그들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요."

"그래, 무슨 방법이오? 왜 진작 얘기를 하지 않았소?"

주전은 득의양양하여 술 한 잔을 들이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교주께서 조 낭자에게 한 마디만 물어 보신다면, 적어도 구성
(九成)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내 얘기는 조 낭자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그가 생포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요."

근래 두 달 동안 위일소, 양소, 팽영옥, 설불득 등은 여러 갈래
로 조민의 종적과 내력을 수소문했지만, 그날 관문 밖에서 장무
기와 손뼉치며 맹세를 한 후부터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
무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수하들마저도 종적을 감
추어 버렸다. 군호들은 모두 그녀가 조정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
이라고 추측했다. 그 외엔 무슨 단서를 찾아 낼 수가 없었다. 그
런데 주전이 그런 말을 하자 모두들 그를 나무랐다.

주전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대꾸를 했다.

"물론 당신들은 찾지 못할 거요. 그러나 교주께서는 자연히 만
나게 되실 거요. 교주께서는 그녀에게 세 가지 약속까지 한 것이
있는데, 악랄한 여자가 그냥 가만히 있겠습니까? 히! 히! 그녀의
아름다운 그 용모! 그렇지만 나는 생각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바
짝 설 정도로 으시으시하며 겁이 난단 말이야."

모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모두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차라리 그녀가 빨리 세 가지 부탁을 해왔으면 좋겠습니다. 빨
리 빨리 해결하고 일을 매듭짓게 말입니다. 요즈음엔 그녀가 무
슨 괴상한 부탁을 해올까 하고 그 걱정만 하게 되는군요. 팽대사
께서 조금 전에 건의하셨지만, 본교에서 각 지방의 수령들을 소
집해서 한번 실천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
신지요?"

"좋습니다. 무당산에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군호들이 모두 그렇게 대답하자 양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교주님의 생각으론 어디서 모이는 것이 좋겠습니까?"

장무기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본인이 명교 교주가 된 것에는 두 분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
니다. 한 분은 접곡의선 호청우 선생님이신데 그분은 금화파파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한 분은 바로 상우춘(常遇春) 형님이십
니다. 이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릅니다. 그래서 본교의 이번
대회는 괴북 호접곡서 거행할까 합니다."

주전이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대찬성입니다. 그 견사불구(見死不救)하던 사람은 나와 만나기
만 하면 말다툼을 했었지만, 사람은 별로 나쁘지는 않았지. 좀
괴팍한 데가 있었는데 그건 양좌사와 아주 비슷해. 죽어가는 사
람을 보고도 구해 주지 않았으니, 자기가 죽음을 당할 때도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지. 그게 바로 인과응보야. 이 주전이 그의
묘 앞에 절이라도 해줘야지."

군호들 중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바로 석달 후 팔
월 보름에 각 지방의 수령들을 소집하여 접곡에서 대회를 거행하
기로 결절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오행기와 천응교의 사자들은 하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교주의 호령을 전달했다. 각 지방의 교인 중에 향주 이상
의 계급에 있는 자는 모두 팔월 중추절까지는 호접곡으로 모여
신교주를 알현하게 했다.

아직 추석까지는 시일이 멀었고, 장무기는 유대암과 은이정의
병세가 완전히 낫지 않아 또 무슨 탈이 생길지도 몰라 잠시 더
무당산에 머물러 두 분을 간호하기로 했다. 또한 틈이 날 때마다
장삼봉에게 태극권이나 태극검에 대한 무학을 익혔다. 위일소,
팽영옥, 설불득 등은 여전히 사방으로 조민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양소는 무당산에 남아 있으라는 교주의 명령을 받고 무당산에
남았지만, 은이정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는 평상시에 방 안에
서 독서를 하며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이렇게 두 달을 지내
자, 어느날 오후 장무기가 그의 방으로 찾아와 호접곡 대회에서
교중들에게 알려 줄 일들을 상의했다. 장무기는 나이가 젊고 학
식이 비천해 갑자기 교주라는 중임을 맞자 속으로 두려워하고 있
었다. 일을 잘못 처리해 대사를 그르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양소는 교무에 매우 심통하므로, 그를 무당에 남게 해 수
시로 자문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잠시 의논을 하고 난 후, 장무기는 무심코 양소앞에
놓인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겉봉에는 명교유전중토기(明敎流
轉中土記) 일곱 자가 씌어 있었고, 밑에는 작게 제자 광명좌사
양소 공전(弟子光明左使 揚逍恭전)이라 쓴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양좌사께서는 정말 문무를 겸비하신 진짜 우리 명교의 기둥이
십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장무기가 책을 펼쳐보니, 작은 정자로 씌어져 있었고 옆에는 주
석까지 달아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 명교가 발생한 곳은 파사국인데 원명은 마니교다. 당나라
무칙천(武則天) 항후 때 우리 중국에 들어왔는데, 불다탄(拂多
誕)이라는 파사국인이 명교의 삼종경을 갖고 당나라에 들어와 중
국인들이 그 때부터 명교의 경전을 처음 보게 됐다. 당대력(唐大
曆) 때 가서야 대운광명사(大運光明寺)라는 명교 사원을 건축하
였다. 그 뒤로 태원(太原), 정주(정州), 양주(揚州), 홍주(洪州)
월주(越州)에도 사원이 생겨났다. 회창 삼년(會昌三年)에서부터
명교 교인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명
교의 교세는 크게 기울어지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명교는 금교
로 낙인찍히고 비밀교로 인식됐다.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항상 관
아의 말살 정책에 시달려 온 것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으로 행동이 자연 괴이하고 비밀스러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마니
교 마자를 마(魔)자로 오해하고 세상 사람들은 마교(魔敎)로 부
르게 된 것이다. -----

여기까지 읽어내린 장무기는 그만 긴 탄식을 했다.

"양좌사, 본교의 교지는 제악행선(除惡行善)이라 불가와 같은
뜻을 갖고 있는데, 어찌 당나라 때부터 조정의 탄압을 받게 된
겁니까?"

"석가에서는 승려들이 출가하여 세속에 신경쓰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겁니다. 도가(道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본교
에서는 향민들을 모집하여 누구든 위급한 일을 당하거나 곤란이
닥치면 모두 교인들이 나서서 돕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든 어느
고장이고 관아에서 양민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이 있
는 고장에 본교 교인들은 반드시 일어나 그들과 맞서왔습니다."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조정에서 괴롭히지 않고, 권세 있는 자들이 선량한 자
들을 못살게 굴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 명교가 왕성해질 수 있겠
군요."

그 말을 들은 양소는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바로 본교 교지의 관건을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양좌사,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양소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해야지요. 송나라 때 본교 방렵(舫獵)
교주께서 거사를 한 것도, 바로 관아에서 양민을 괴롭히지 못하
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 속에 방교주가 거사하여 천하를 진동시켰던
사실을 기재한 곳을 펼쳐 보였다. 장무기는 그것을 보면서 무척
흥분을 했다.

"정말 대장부의 할 도리를 하셨군요. 물론 순교를 당하셨지만
훌륭한 일을 하신 겁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상통하여 가슴의 뜨거운 피가 들끓었다.

양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대를 내려오면서 본교는 계속 탄압을 당해 왔지만, 한번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남송 소흥(南宋紹興) 사 년에 왕거정(王居
正)이라는 관리가 홍제에게 본교에 대한 상소문을 올린 적이 있
습니다. 교주께서 한 번 보십시오."

----- 복견 양절주현(伏見兩浙州縣)에 채식을 하며 마를 섬기는
습속이 있는데, 방립 이전에 법금(法禁)이 엄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그 습속이 왕성하지는 않았지만, 방립 이후 법금이
엄해지자 마를 섬기는 습속이 더욱 왕성해졌습니다. 신이 알기로
는 마를 섬기는 자들은 절대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나서서 돕는데 육식을 안 하니 자
연히 절약이 되고 절약을 하니 자연히 풍족스러워져 서로 더욱
도울 수 있어..... -----

장무기는 여기까지 읽고 난 후 양소에게 말했다.

"이 왕거정이란 자가 본교를 좋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본교의 교인들이 검소하며 서로서로 돕고 지냈다는 것은 알고 있
었군요. 그리고 억압이 심할수록 본교는 더욱 왕성해졌다는 얘기
는 본교가 민심을 얻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이 책은 제가
잠시 빌려 보겠습니다. 그래야 본교의 옛 현인들의 업적을 잘 알
것 같습니다."

"보신 후 교주의 지도를 바랍니다."

"유삼백과 은육숙의 상세도 많이 호전됐으니 우리도 내일 호접
곡으로 떠납시다. 그리고 양좌사에게 또 한 가지 상의할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불회매(不悔妹)에 대한 일입니다."

양소는 장무기가 자기 딸에게 구혼 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고 내
심 기뻐했다.

"불회의 목숨을 교주께서 살려 주신 겁니다. 저희 부녀는 그 은
혜 잊지 못할 겁니다. 교주께서 어떤 분부를 내리시더라도 기꺼
이 따르겠습니다."

장무기는 그날 양불회가 자기에게 털어놓은 얘기를 자세히 설명
했다. 그 말을 들은 양소는 정말 크게 놀랐다. 그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내 딸 자식과 은육협이 혼인을 맺는다는 것은 사실 양문의 영
광이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너무 나고 배분도 틀려 이 일
은....."

그러면서 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은육숙의 나이 아직 사십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제일 건
장할 때가 아닙니까? 불회가 그에게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무슨
진짜 혈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뜻이 맞아
정말 혼인이 성사된다면, 아버지 대의 원한을 풀어 버릴 수도 있
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까?"

양소는 매우 활달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기효부의 일로 인
해 항상 은이정에게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불회가 정말
그를 사랑한다면,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자기의 잘못이 속죄가
되어, 앞으로 명교와 무당파는 아무 원한 관계도 없어질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교주께서 이렇게 나서서 신경 써 주시니, 제가 먼저 교주께 감
사드립니다."

그날 밤 이 소문이 나가자, 군호들은 모두 기뻐하며 은이정에게
축하를 보냈다. 양불회는 부끄러워 방에서 나오지를 못했다.

장삼봉과 유대암도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으나, 은이정
이 좋아하는 것을 보자 그들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혼인 날짜
얘기가 나오자 은이정이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대사형님들께서 산으로 돌아오시고, 여러 형제들이 모인 후에
날짜를 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날 장무기는 양소, 은천정, 은야왕, 철관도인, 주전, 소조
등과 함께 장삼봉과 그의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괴북을 향해
떠났다.

양불회는 계속 무당에 남아 은이정의 시중을 들기로 했다. 당시
에는 남녀지간의 규율이 엄했으나 이들은 모두 무림인들이라 별
로 그런 작은 예의 범절에 구애받지 않았다.

일행은 낮에는 걷고 밤에는 야영을 하며 동북쪽으로 길을 재촉
했다. 그들이 지나오는 고장은 무척 황폐했고, 백성들은 굶주려
있었다. 원래 연해의 몇 성은 무척 풍요로운 지방들이었다. 그러
나 지금은 모두 매우 어렵고 굶주려 있었다. 군호들은 악랄하게
약탈당한 백성들을 생각하며 개탄을 했다.

이날 그들은 호접곡과 가까운 계패집(界牌集)에 당도하여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병기가 부딪치며 소리 지르며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군호들이 채찍질 하며 말을
달려 나무숲을 빠져 나오자, 천여 명이 좌우 두 열로 나눠 한 산
채(山寨)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산채 위엔 빨간색 불길을 그린 큰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것은 바로 명교의 깃발이었다. 인원수가 부족해 전세가 불리해
보였다. 그러나 절대로 굴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몽고군의 화
살은 비오듯 했다.

"몽고의 역적들아,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주전이 외쳤다.

"교주, 몽고군을 해치웁시다."

"좋소. 먼저 졸병들을 통솔하는 군관을 처치합시다."

군호들은 모두 뛰쳐나가 적진을 뚫고 장검을 휘둘렀다. 백 명을
통솔하는 백부장(百夫長)이 말에서 떨어지고 곧이어 은야왕의 단
칼에 천부장(千夫長)이 쓰러지자, 원병들은 우두머리를 잃고 일
대 혼란을 일으켰다.

산채에서는 후원이 생기자 환호성을 질렀다. 산채문이 열리자
검은 옷을 입은 한 대한이 긴 창을 들고 앞장서서 뛰쳐 나왔다.
두목을 잃은 원병들은 도저히 그 예봉을 꺾지 못했다. 사방에서
원병들이 말에서 뜨러져 나가자 그만 겁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군호들은 위풍이 당당하고도 날카롭고 마
치 산신과도 같은 대한을 보자 모두 찬사를 보냈다.

"정말 훌륭한 장군이도다!"

이때 장무기는 벌써 그 대한의 모습을 보고 바로 상우춘 형님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쌍방의 싸움이 치열해 바로 뛰어가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쪽에서 협공을 받은 원병은 사상
자가 오,육 백이나 생기자 나머지는 그만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
지기 바빴다.

상우춘이 긴 창을 들고 크게 웃으며 외쳤다.

"어느 파의 형제들이 우리를 도왔는지, 나 상모(常某)는 진심으
로 감사드립니다!"

"상대형, 바로 소제입니다."

장무기는 그렇게 외치고 나서 뛰쳐나가 상우춘의 손을 잡았다.

상우춘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교주님, 내가 비록 형이지만 교주의 부하가 되다니 정말 기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상우춘은 명교 중에서도 거목기에 속하였었다. 그는 벌써 장기
사 문창송에게 장무기가 교주가 된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명
교의 형제들을 이끌고 장무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원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상우춘은 수가 부족
한 것을 알고 원군을 산채까지 유인해 일거에 섬멸하려고 하던
찰나에 장무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산채문을 열고 뛰쳐나
온 것이다. 그는 명교에서 직책이 높지 않아 양소나 은천정 등
군호들에게 일일이 알현했다. 그들도 상우춘이 교주와 의형제 사
이라 직책을 떠나서 그를 따뜻하게 대했다.

상우춘은 구호들을 산채로 모시고 소, 돼지들을 잡아 주연을 크
게 베풀었다. 그 동안 상우춘은 형제들을 모아 산적질을 하며 여
유있게 지냈다. 그러다 산채에 금은보화가 쌓이면 빈민들에게 금
은보화를 나눠 주곤 했다. 원군이 몇 번이나 그들을 공격했었지
만, 매번 실패할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산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상우춘과 함께 다시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 후 그들이 호접곡에 당도하자, 먼저 도착한 교도들은 교주
가 당도한 것을 알고 길 옆에 나와 그를 환영했다.

이때 거목기 교도들은 미리 와서 계곡에 많은 초가집을 지어 놓
고 대회에 참가하는 교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일소, 팽영옥,
설불득 등도 이미 먼저 와 있었으나 조민의 소식을 알아 내지는
못했다.

장무기는 각 지방의 교도들을 만나본 후, 제수품을 준비하여 호
청우 부부와 기효부의 묘에 제사를 올렸다. 당시 자신이 처절하
게 이 계곡을 떠났던 일을 회상하니 감개무량했다. 지금 여기 다
시 돌아온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격세지감마저 들었다.

삼 일이 지나자 바로 추석이었다. 접곡에는 높은 단을 만들고
가 앞에 큰 불까지 피워 놓았다. 장무기는 단상에 올라 여러 문
파와 원한을 씻고 단결하여 반원항호(反元抗胡)하자고 선포했다.
그리고 교규도 선포했다. 교중들은 모두 자기 앞에다 작은 향불
을 피우며 교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는 맹세를 했다. 불꽃이
하늘을 찌르며 향내가 사방에 퍼져 역대에 없는 일대 성황을 이
루었다. 연로한 교도들은 이 왕성한 기상을 보며 십여 년 전 명
교가 사분오열(四分五裂)했던 생각이 떠올라 그만 기뻐 눈물까지
흘렸다.

오후가 되자 홍수기에서 보고를 올렸다.

"홍수기의 제자 주원장(朱元璋)과 서달(徐達)이 당도했습니다."

장무기는 기뻐하며 직접 나가 그들을 환영했다. 주원장과 서달
은 탕화, 등유, 화운, 오랑, 오정을 데리고 밖에서 장무기가 나
오자 모두 허리 굽혀 인사를 올렸다. 장무기는 항상 서달이 자기
목숨을 구해 주었던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고 양손으로 서달과 주원장의 손을 잡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때 주원장은 이미 환속을 하여 승려 차림을 하지 않았다.

"저희들은 교주의 영지를 받고 일찍 접곡에 도착하려고 했으나,
도중에 매우 좋지 않은 자를 만나 그 일을 쫓느라 대회 날짜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교주님께 용서를 바랍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겼었습니까?"

주원장이 대답을 올렸다.

"유월 중순께였습니다. 우리는 교주님의 영지를 받고 다들 기뻐
서 형제들이 모여 교주님께 어떤 축하 선물을 갖고 갈까 하고 상
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 괴북 지방은 황량한 곳이라 별로 좋
은 물건도 없었고, 다행히 대회 날짜가 아직 멀어 형제들과 산동
으로 선물을 구하러 갔습니다. 우린 관병의 이목을 피해 마부로
변장하고 제가 마부 두목으로 변장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화남
귀덕부에 도착해 산동으로 가 서쪽 손님을 맞아 길을 가고 있었
는데, 갑자기 여러 명이 칼을 휘두르고 흉악하게 덤벼들더니 마
차 속에 있는 손님들을 쫓아내고 자기네 손님을 모시라는 겁니
다. 그 때 화형제가 그들과 싸우려고 하자 서형제가 눈짓으로 그
를 말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고 난 후 싸워도 늦지 않
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 마차를 모두 어느
골짜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열 몇 대의 마차가 대
기하고 있었는데, 땅에는 화상들만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모두들 화상들만?"

"그렇습니다. 그 화상들은 모두 풀이 죽어 힘이 하나도 없어 보
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몇 명은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오고
몸집도 우람했지요. 서형이 저에게 몰래 알려 주더군요. 이 화상
들은 모두 고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그 흉악
한 자들은 화상들을 모두 마차 속으로 가둬 놓고 우리를 북쪽으
로 끌고 갔습니다. 우린 그들의 정체를 알려고 했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행동이 수상했고 우리 앞에선 절대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오량 형제가 용기를 내어 창가
에 가서 엿들었습니다. 사, 오일 밤을 엿듣고 나서야 겨우 이 화
상들이 모두 숭산의 소림사 승려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장무기는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아!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량 형제가 그들 중에 한 명이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
다. "주인님의 신기묘산(神機妙算)에 정말 탄복했습니다. 소림,
무당 육파의 고수들을 모두 수중에 넣었으니, 지금까지 그 누구
도 이런 큰일을 해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하자, 또 다
른 한 명이 "그것보다도 마교의 여러 마두들을 이 일에 관련시킨
것은 더욱 훌륭했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논했습니
다. 이 일이 우리 명교와 관련됐다니 꼭 무슨 일인지 알아내야겠
다고 말입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주원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모두 북쪽으로 다시 떠나면서 멍청한 사람인 척했습니
다. 탕화 형제와 등유 형제는 서로 돈 오푼 때문에 싸우는 등 무
공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척하고 연극을 하자, 그들은 깔깔 대고
웃으며 우리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첨을 떨었
지요. 처음엔 오정 형제가 마약을 구해와 그들을 마취시키고 소
림화상들을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지금 그들이 무
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들의 무공이 모두 상당
한 것이 분명해, 잘못하여 실수라도 한다면 오히려 대사를 그르
칠까 염려스러워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간부(河間
府)에 당도하니 거기에도 여섯 대의 마차가 와 있었는데, 그 안
에도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이번엔 모두 일반 속인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는 도중에 한 소림 승려가 새로 온 사
람들을 향해 "송대협께서도 여기에 왔군요." 하는 소리를 들었습
니다."

장무기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송대협이라고?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떠했습니까?"

"가냘픈 몸집에 키가 크고 나이는 약 오, 육십 세 정도로 보였
고, 세 갈래 수염을 기르고 매우 조용한 인상이었습니다."

장무기는 놀라면서도 기뻤다. 또 다른 사람들의 인상을 묻자,
과연 생각했던 대로 유연주, 장송계, 막성곡도 거기에 끼어 있었
다.

그는 다시 다그쳐 물었다.

"부상을 입었거나 무슨 쇠사슬에 묶인 자는 많았습니까?"

"그렇지는 않고 보통사람과 똑같이 보였으나, 다만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어가는 것도 휘청휘청해 보였습니다.
송대협이라는 사람은 그 소림 승려의 말을 듣자 그저 쓴웃음만
지어 보였고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림 승려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한 흉악한 놈이 그를 끌고 갔습니다. 그 후로
는 두 패가 십여 리나 떨어져 한 번도 같이 숙식을 하지 않아 우
리는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칠월 삼일에 소림
승들을 태우고 대도(大都)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대도에? 내 생각대로 과연 조정의 짓이었구나. 그래서
또 어떻게 했습니까?"

"그 흉악한 놈들이 우리를 소림 승려들과 모두를 서성(西城)쪽
에 있는 한 사원으로 데리고 가, 우리까지 모두 그 절간에서 자
게 했습니다."

"그래, 그게 무슨 절간이오?"

"우리가 들어갈 때 정문을 쳐다보니 만안사(萬安寺)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 바람에 한 놈에게 채찍질을 당했지요. 그날 밤,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놔주지 않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죽일 것
이 분명해 몰래 도망을 쳤습니다."

"그 흉악한 놈들이 뒤쫓지 않기를 천만다행이군요."

탕화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주대형께서도 미리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미리 짜 놨었
습니다. 우리 근처에 역마행에 가서 마부 일곱 명을 잡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그들을 모두 죽이고 얼굴을 못 알아보게 피투성이
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온 큰 마차의 마부도
죽이고 은덩어리를 땅에다 버려서, 서로 돈 때문에 싸운 것처럼
위장해서 그들이 의심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 말에 장무기는 놀라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서달은 죄책감
이 드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등유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
다. 탕화는 득의양양해 하며 설명하는데, 주원장만큼은 아무렇지
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이 자는 정말 잔인하고도 무서운 사람이구나.'

그는 참다못해 말했다.

"주형, 당신의 계책은 훌륭했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무고한 사람
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교주가 훈시를 하자 그들은 모두 일어나 허리 굽혀 명을 받았
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주원장, 서달, 등유, 탕화 등은 교주의 훈시대로 싸움터
에서나 어디서나 절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아, 결국 민
심을 얻고 일대의 대업을 성공시키게 되었다.

장무기가 다시 물었다.

"여러분께서 소림, 무당의 고수들의 행방을 알아낸 것은 정말
큰 공을 세운 겁니다. 거사할 일을 상의하고 나서 대도에 가서
두 파의 고수들을 구출하겠습니다."

그날 밤 장무기는 교도들을 소집하여 불을 피우고 향을 태우면
서, 모두 합심하여 원나라를 쓰러뜨리자고 호소했다. 그러기 위
해서는 각 지방의 수령들은 사방에서 호응하여 거사를 일으켜 원
군이 정신을 못 차리게 혼란하게 만들어야 대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계획이 짜지자, 장무기는 양소와 위일소에게는 총단을
집행하게 하고, 전교의 총수로 임명했다. 백미응왕 은천정에게는
천응기를 이끌고 강남에서 거사를 하게 하고, 주원장, 서달, 탕
화, 등유, 화운, 오량, 오정은 상우춘의 산채인마와 회합하여 손
덕애 등과 괴북과 호주에서 거사를 하게 했고, 설불득은 한산동,
유복통, 두존도, 라문소, 성문우, 왕현충, 한교아를 통솔하여 하
남 정천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팽영옥은 서수휘, 추보
왕 명오 등을 통솔하고 강서성 일대에서 거사를 일으키고, 철관
도인은 포삼왕, 맹해마 등을 통솔하여 상(湘), 초(楚), 정(停),
양(襄) 일대에서, 주전은 지마리, 조군을 이끌고 서(徐), 숙(宿)
풍(豊), 패(沛) 일대에서 거사를 일으키고, 냉겸은 서역의 교도
들과 서역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는 몽고병의 원군을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오행기는 총단의 명령에 대기하며 어디든 위급한 곳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계책은 거의가 양소나 팽영옥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이다.
장무기가 이렇게 선포하자 교도들의 환호성은 천둥과도 같았다.

장무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개 본교의 힘으로는 백 년이나 된 원의 뿌리를 뽑기란 힙듭
니다. 그러니 천하의 모든 영웅 호걸들과 힘을 합쳐야 성공을 거
둘 수 있습니다. 지금 중원 무림의 많은 수뇌들은 원나라 조정에
나포되어 있습니다. 총단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구출해 낼
것입니다. 내일이면 형제들은 방방곡곡으로 분산되는데, 기회가
생기면 몽고놈들을 해치우십시오. 총단에서도 중원 무림 인물들
을 구출하러 빨리 대도로 떠날 겁니다. 내일이 지나면 우리는 또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오늘은 마음껏 놀고 즐깁시다.
형제들은 자기의 이익을 따지지 말고 의리를 중하게 여겨야만 대
사를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누구든 서로 살상을 하는 그런 의스
럽지 못한 일을 저지를 시에는 총단에서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
입니다."

와! 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때는 팔월 추석이라 밝은 달은 대낮과도 같았다. 모든 교도들은
맨 바닥에 앉아 총단에서 그들에게 나눠주는 채식으로 된 둥근
떡을 받았다. 동그란 원병은 꼭 달과 같은 모양이라 교도들은 모
두 그것을 월병(月餠)이라고 불렀다.

후세에 한인들이 팔월 추석에 월병을 나눠 먹으며 몽고병을 죽
이자는 계획을 세웠다는 전설을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장무기는 다시 선포를 내렸다.

"본교에서는 역대를 전해 오며 술과 육식을 금했는데, 그러나
지금은 도처가 황패하니 먹을 것이 생기면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
습니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같은 대
사를 앞에 두고 만약 먹을 것을 가린다면, 모든 형제들은 기력이
없어 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음식 금기를 해제
하지만, 교도들은 더욱 처세를 올바르게 하기를 바랍니다."

다음날 아침 각 지방 교도들은 교주에게 작별을 고했다. 앞으로
거사를 하면 죽을지 살아 남을지 몰라 모두들 이별을 섭섭해 하
며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자기의 목적지로 떠났다. 떠들썩하
던 호접곡은 다시 조용해졌고 양소와 위일소, 그리고 주원장 등
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장무기는 만안사의 위치와 그 흉악한 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듣
고 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주형, 지금 이 호사(濠泗) 일대에 일대 혼란이 일고 있으니,
이 좋은 거사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나와 함께
대도에 갈 필요없으니, 여기서 그만 작별합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성공을 거두기를 빕니다."

주원장, 서달, 상우춘 등은 장무기와 작별을 하고 계곡을 떠났
다.

장무기가 다시 양소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이제 그만 떠납시다. 소조야, 넌 사슬에 매어 있어서
행동이 불편하니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거라."

소조는 억지로 대답을 하고 난 후, 여전히 계곡 밖까지 그들을
배웅나갔다. 몇 리 길을 배웅하고 나서도 그녀는 일행과 떨어지
기 싫어했다.

"소조야, 점점 멀리 나오는구나.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장 공자님, 대도에 가시면 그 조 낭자를 만나시겠죠?"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럼 그녀를 만나면 그녀에게 제 부탁 한 가지만 전해 주세
요."

"그래, 무슨 부탁이냐?"

"조 낭자에게 의천검을 빌려와 나의 이 쇠사슬을 좀 잘라 주세
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평생 이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이 매우 가련해 보였다.

"여기까지 빌려 와야 하는데, 그녀가 빌려 줄지 모르겠구나."

"그러시면 저를 그녀 앞까지 데려다 주시면 되잖아요?"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결국은 어도 대도까지 가겠다는 얘기구나. 양좌사, 소조를 데
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양소는 장무기가 이 말을 물어올 때는 마음속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대답했다.

"상관은 없습니다. 또 교주의 차 시중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다만 땡그랑! 하고 소리가 나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겁니다. 이렇게 합시다. 환자인 척하고 마차 안에 있게
하지요. 평소에는 절대로 나오지 말고."

소조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공자님, 그리고 양좌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일소를 보고 웃으며 다시 그에게도 감사드렸다.

"위법왕님, 감사합니다."

"하! 하! 하! 나에게 감사해서 뭐하느냐? 조심이나 하거라. 내
병이 발작하면 네 피를 빨아먹을지도 모르니깐!"

그러면서 입을 벌려 흰 이를 드러내 보이고는, 귀신 얼굴을 하
며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

소조는 뒤로 물러서며 우물우물 거렸다.

"겁을 주지 마세요. 무섭습니다."


----- 제 5 권 2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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