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2권 7~8

나단비 | 2024.02.29 23:04:19 댓글: 4 조회: 489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0826
7

의무감





어느 평화로운 10월의 오후, 앤은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는 교과서와 연습장이 가득 쌓여 있고 앞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쓰인 종이가 놓여 있지만 그것이 공부나 학교 일과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열린 부엌 문가에 막 도착한 길버트가 앤의 한숨 소리를 듣고 물었다. 앤은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그 종이를 아이들 작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내 생각을 좀 적어보려고 했어. 해밀턴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하지만 글이 재미있게 써지지 않아. 하얀 종이에 검정 잉크로, 그저 생각을 글로 옮겨놓기만 하니까 글이 생기가 없고 바보스럽게만 느껴져. 생각이란 그림자 같은 것인가 봐. 붙잡아둘 수가 없으니.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제멋대로야. 하지만 내가 계속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그 비밀을 알 수 있게 되겠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마음 놓고 글을 써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아니잖아. 아이들의 연습문제와 작문을 고쳐주고 나면 너무 지쳐서 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려.”

“넌 학교에서 아주 잘하고 있잖아, 앤. 아이들도 모두 너를 좋아하고.”
돌층계에 앉으며 길버트가 말했다.
“아니, 전부는 아니야. 앤서니 파이는 날 좋아하지 않아. 더 나쁜 건 날 존경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래, 그 애는 날 존경하지 않아. 날 경멸하지. 그것 때문에 아주 걱정이야. 앤서니가 아주 나쁜 애는 아니야. 그냥 장난기가 좀 심한 거지. 하긴 다른 애들보다 몹시 심하긴 하지.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시키면 말을 듣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전혀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듯 아주 건방진 태도로 내 말에 따라. 그래서 다른 아이들한테도 아주 나쁜 영향을 준다고. 앤서니의 마음을 바꾸어보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애도 파이 집안 아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귀여운 아인데. 난 그 애를 좋아하고 싶은데 그 애가 그렇게 하도록 해주지를 않아.”
“아마 집에서 쓸데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순전히 그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어. 앤서니는 상당히 독립심이 강한 아이거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결정한다고. 자기는 남자 선생님한테만 배웠고, 여자 선생님은 별로래. 글쎄, 인내심과 상냥함이 얼마나 해낼지 두고 봐야지. 난 어려움이 있으면 극복해내야 한다고 믿고 가르치는 일도 아주 좋아하니까. 폴 어빙을 보면 다른 아이들한테 느끼는 부족함이 모두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폴은 정말이지 귀여운 아이야. 게다가 천재이기도 하지. 난 언젠가는 그 애가 세상을 놀라게 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어.”
앤이 아주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나도 가르치는 일이 좋아. 무엇보다도 훌륭한 배움의 길이기도 하지. 몇 주 동안이지만 화이트 샌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해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배운 것 같아. 우리 모두 다 꽤 잘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뉴브리지 사람들도 제인을 좋아한다고 들었어. 그리고 화이트 샌즈 사람들도 너의 충실한 종복에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고. 하지만앤드루스펜서 씨는 빼고야. 어젯밤 집에 오는 길에 피터 블루엣 부인을 만났는데, 스펜서 씨가 내 교육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한테 알려줘야 하는 게 자기의 도리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
길버트가 말했다.
“너, 이거 알고 있니?”
앤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 게 자기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꺼내면 불쾌한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해. 왜 사람들은 기분 좋은 소리에는 말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까? H. B. 도넬 부인이 어제 학교에 찾아와서 하몬 앤드루스 부인은 내가 아이들에게 요정 이야기 읽어주는 걸 좋아하지 않고, 로저슨 씨는 프릴리의 수학 공부가 신통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내게 그걸 알려주는 게 자기 의무라고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라고 하더라. 하지만 프릴리가 석판 너머로남자아이들이나 훔쳐보면서 한눈을 팔아서 수학을 못 하는 거라고. 난 잭 길리스가 프릴리의 계산을 대신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만 그 현장을 잡지 못했을 뿐이야.”
“도넬 부인의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을 그 고귀한 이름으로 부르는 데는 익숙해졌니?”
“그래, 하지만 정말 힘들었어. 처음에 세인트 클레어라고 불렀을 때는 내가 두세 번을 부를 때까지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지도 모르더라고. 다른 아이들이 쿡쿡 찌를 때에야 쳐다보더라니까. 그것도 화가 난 얼굴로 내가 존이나 찰리를 불렀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건지는 전혀 몰랐다는 듯이. 그래서 한 날은 학교가 끝난 뒤 남으라고 해서 조용히 이야기를 했지. 엄마가 찾아와서 세인트 클레어라고 불러달라고 했으니 엄마 말씀에 따라야 한다고 말이야. 그렇게 모두 설명하니까 이해를 했어. 분별력은 있는 아이야.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세인트 클레어라고 부르는 건 괜찮지만 다른 녀석이 그렇게 불렀다가는 늘씬 패줄 거라고 했어. 물론 나는 그런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훈계를 했지. 그 이후로 나는 세인트 클레어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그대로제이컵이라고 부르는 걸로 일이 잘 해결됐어. 세인트 클레어는 목수가 될 거래. 하지만 도넬 부인은 그 애를 대학교수로 만들겠다고 했어.”
앤이 웃으며 말했다.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자 길버트의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한동안 둘은 자기의 계획과 소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이답게 진지하고 솔직한 그리고 희망에 찬 대화였으나, 미래란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 아닌가.
길버트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의사란 정말로 멋진 직업이야. 의사는 평생을 통해 뭔가와 싸워나가야 하잖아. 누군가가 인간을 투쟁의 동물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니? 난 질병과 고통, 무지와 싸우겠어. 이 셋은 모두가 연관이 있는 것들이지.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몫을 최선을 다해 훌륭하게 해내고 싶어. 이 세상이 시작된 뒤로 훌륭한 사람들이쌓아 올린지식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고 싶어. 나보다 앞선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놓고 갔으니 나도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이루어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길버트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너의 그런 꿈은 고귀한 거야. 난 삶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어. 이 세상에 지식을 더 보태는 일은 아니지. 난 나로 인해 사람들이 더 즐거울 수 있기를 원해.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즐거움이나 행복한 생각을 전해주고 싶어.”
앤이 꿈을 꾸듯 말했다.
“난 네가 매일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길버트가 앤에게 감탄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길버트의 말은 옳았다. 앤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 빛을 던져주는 존재였다. 누구에게나 앤은 햇빛처럼 미소와 사랑의 말을 건넸다. 그 빛을 받은 사람은 적어도 그 순간만이라도 인생을 희망과 사랑으로 보았고 선의가 넘치는 세상으로 여겼다.
길버트가 아쉬운 작별의 말을 하며 일어섰다.
“자, 이제 나는맥퍼슨집으로 달려가 봐야겠다. 무디 스퍼전이 주말이라 퀸스에서 오늘 집에 온다고 했거든. 보이드 교수가 내게 빌려줄 책을 가져다주기로 했어.”
“그래, 난 마릴라 아주머니를 위해 차를 준비해야 해. 키스 부인을 만나러 갔는데 곧 돌아오실 시간이거든.”
앤은 차 마실 준비를 마치고 마릴라를 맞았다. 장작불은 즐거운 듯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고, 서리를 맞은 듯한 하얀 고사리와 루비처럼 붉은 단풍나무 가지를 가득 꽂은 화병이 놓인 식탁은 화려했으며, 공기 중에는 군침을 돌게 만드는 햄과 토스트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마릴라는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꺼질 듯 주저앉았다.
“눈이 불편하세요? 머리가 아픈 거예요?”
앤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니, 피곤하고 걱정되어서 그래. 메리와 아이들이 말이다. 메리는 갈수록 더 나빠져만 가. 더 이상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쌍둥이는 이제 어떻게 될지.”
“아이들 삼촌한테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대요?”
“메리한테 편지가 오긴 왔다더구나. 메리 오빠는 벌목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끝장을 볼 생각이래.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봄이 오기 전에는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는구나. 봄이 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으니 아이들을 그때 데려가겠다고 겨울 동안은 이웃에게 맡기라고 했다지 뭐니. 메리는 그런 부탁을 해볼 만한 이웃도 없다고 해. 이스트 그래프턴 사람들과 특별히 친하게 지낼 기회도 없었거든. 결국 메리는 내가 자기 아이들을 돌봐주었으면 해. 말은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그런 눈치야.”
“오! 물론 그렇게 하실 거죠, 네?”
앤이 두 손을 모아 쥐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난 아직 결심하지 않았어. 난 너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서둘러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팔촌 지간은 먼 친척인데다가 여섯 살 된 두 아이를 맡아 돌보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야. 그것도 쌍둥이를.”
마릴라가 다소 시큰둥하게 말했다.
마릴라는 쌍둥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짓궂다고 생각했다.

“쌍둥이는 아주 재미있어요. 적어도 한 쌍둥이면요. 두 쌍둥이나 세 쌍둥이라면 문제겠지만. 그리고 제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아주머니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좋잖아요.”
앤이 말했다.
“쌍둥이를 돌보는 일이 왜 즐겁다는 건지 알 수 없구나. 걱정거리고 귀찮기만 할 게 뻔한데. 아이들이 네가 처음 왔을 때 나이만 되었어도 이렇게 심란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도라라면 그렇게 걱정할 일도 아니야.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라서. 하지만 데이비는 문제야.”
앤은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마음은 쌍둥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자기 자신이 어린 시절 돌봄을 받지 못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앤은 마릴라가 자기 의무로 믿는 일은 어디까지나 충실하게 해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마릴라의 이런 약점을 은근히 자극하는 말로 마릴라를 부추겼다.
“데이비가 짓궂은 아이라면 더더욱 교육을 잘 시켜야겠죠, 그렇죠, 아주머니? 우리가 그 아이들을 맡지 않는다면 누가 그 애들을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이들 장례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게 되잖아요. 키스 부인의 이웃이 아이들을 맡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스프로트 씨 집에서 아이들을 맡게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린드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헨리 스프로트 씨는 정말이지 상스러운 사람이래요. 그 집 아이들이 쓰는 말은 어찌나 거친지 믿을 수 없을 정도구요. 쌍둥이들이 그런 것을 보고 배운다면 큰일 아니겠어요? 아니면 위깅스 댁으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린드 아주머니 말로는 위깅스 씨는 팔아치울 수 있는 물건이라면 모두 팔아치운대요. 아이들도탈지유만 먹여 키웠대요. 아주머니의 친척 아이들이 굶주림을 당하길 원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아무리 팔촌 간이라 해도요, 그렇죠? 있잖아요, 마릴라 아주머니, 이 일은 아무래도 우리의 의무 같아요.”
“나도 그런 것 같기는 하구나. 메리에게 내가 아이들을 맡겠다고 해야겠어.”
마릴라가 암울한 표정으로 동의를 하면서도 한마디 더 했다.
“그렇게 기뻐할 것은 없다, 앤. 아이들을 데려오게 되면 너도 그만큼 일이 많아질 거야. 내 눈으로는 바느질도 할 수 없으니 아이들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은 모두 네 차지가 될 거야. 그런데 넌 바느질을 좋아하지도 않지 않니.”
“전 바느질을 싫어하죠. 하지만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게 아주머니 의무라고 생각하신다면 전 아이들 옷 바느질을 제 의무라고 여기겠어요.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책임을 다하려면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앤이 차분하게 말했다.



8

쌍둥이를 데려오다





그날도 레이철 린드 부인은 몇 년 전 매슈 커스버트가 고아 아이를 데리고 언덕을 올라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부엌 창가에 앉아 침대보를 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봄철이었고 지금은 늦은 가을이었다. 숲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잎을 떨어뜨렸고 들판은 갈색으로 시들었다. 태양은 하늘을 자줏빛과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수놓으며 에이번리의 서쪽 어둑한 숲 뒤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갈색 조랑말이 이끄는 마차가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을 린드 부인은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마릴라가 장례식에 다녀오는 모양이에요.”
린드 부인이 부엌 안락의자에 길게 누워 있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토머스 린드 씨는 요즘 이렇게 부쩍 부엌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일이 전보다 늘었지만 마을 일이라면 모르는 일이 없는 린드 부인도 정작 이 일은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쌍둥이를 데려왔어요.말꼬리를 잡으려고 마차 흙받기로 몸을 숙이고 있는 아이가 데이비예요. 마릴라가 데이비를 제자리에 앉히려고 아주 애쓰고 있네요. 도라는 아주 얌전하고 꼿꼿하게 앉아 있어요. 저 애는 언제나 풀을 먹여 다림질을 해놓은 아이 같아요. 가엾은 마릴라는 올겨울 저 애들을 돌보느라 꼼짝도 하지 못할 거예요. 그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겠지요. 그리고 앤도 있으니까 도움이 돼줄 테고. 앤은 쌍둥이를 데려오게 돼서 몹시 좋아하고, 또 아이들 다루는 재주도 보통이 아니라서 매슈가 앤을 처음으로 데려오던 때랑은 상황이 많이 다를 거예요. 그때는 마릴라가 아이를 기른다는 말에 모두들 코웃음을 쳤죠. 그런데 이젠쌍둥이예요. 죽을 때까지 얼마나 더놀라야할지 모를 일이라니까요.”
그 살찐 조랑말은 린드 부인의 집이 있는 분지 시냇가 다리를 지나‘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건들건들 걸어갔다. 마릴라의 얼굴은 좀 굳어 보였다. 이스트 그래프턴에서 여기까지는 16킬로미터나 되는 거린데 데이비 키스는 뭐에 쓰이기라도 한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몸을 움직여댔다. 마릴라로서는 도저히 데이비를 얌전히 앉혀둘 수가 없었고 마차 뒤로 떨어져 목이나 부러뜨리지 않을까, 흙받기 아래로굴러떨어져 조랑말 발에 깔려 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해야 했다. 끝내는 마릴라가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고 집에 가면 회초리로 때려주겠다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데이비는 말고삐를 잡고 있는 마릴라의 품으로 기어 올라가 목에 두 팔을 두르고 꼭 껴안아버렸다.
“진짜는 아니죠? 아줌마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고 아이를 회초리질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 나처럼 어린아이는 원래 가만히 있기가 무척 힘든 거라구요.”
“난 어른이 얌전히 있으라면 시키는 대로 했다.”
데이비의 충동적인 다정함으로 마음이 부드러워진 마릴라가 엄하게 말을 하려고 애썼다.
“그건 아줌마가여자아이였으니까 그렇지요.”
데이비가 마릴라를 한 번 더 껴안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웅크리고 앉으며 말했다.
“옛날에는 아줌마도여자아이였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정말 웃겨. 도라는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정말로 재미가 없다고.여자아이는 정말이지 하나도 재미가 없어. 도라야, 내가 널 좀 재미있게 해줄게.”
데이비가 도라를 재미있게 해준다는 게 도라의 머리카락을 홱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라는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넌 어쩜 그렇게 짓궂을 수가 있니, 네 가여운 엄마가 무덤에 묻힌 날인데도 말이다.”
마릴라가 절망적이라는 듯 야단을 쳤다.
“하지만 엄마는 죽게 되어 기쁘댔어요.”
데이비가 힘주어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에요. 엄마는 아픈 게 지긋지긋하게 싫대요. 엄마가 죽기 전날 밤 나와 얘기를 많이 해서 알아요. 아줌마가 나와 도라를 겨울 동안 돌봐주기로 했으니까 착하게 굴어야 한다고도 했고. 그래서 내가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하는데,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착할 수는 없는 건가? 그리고 엄마는 항상 도라한테 잘해주고 항상 도라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도 했어요. 그래서 나도 그러려고 해요.”
“동생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동생한테 잘해줄 거라고 말해?”
“아니, 다른 애들은 절대로 못 잡아당기게 할 거야. 누가 그러기만 해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이마까지 찌푸리며 데이비가 말했다.
“그리고 난 많이 아프게는 하지 않는다고요. 도라는 여자아이라서 그냥 우는 거예요. 내가남자아이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쌍둥이라서 싫어요. 지미 스프로트는 여동생이말대꾸하면‘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아는 것도 많다고.’ 하고 말해주면 되지만 난 도라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도라는 내 말을 잘 안 들어요. 잠깐 동안만 내가 말을 몰아볼게요. 난 남자잖아요.”
마릴라는가을밤바람이 갈색 이파리들과 함께 춤을 추는 집 뜰로 들어서자 무사히 도착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앤이대문 가에 나와 맞아주었고 쌍둥이를 마차에서 내려주었다. 도라는 앤이 입을 맞추도록 얌전히 볼을 대주었고 데이비는 앤의 환영에 자기도 기꺼이 팔을 벌려 앤을 마주 안으며 ‘나는 데이비 키스예요.’ 하며 쾌활하게 마주 인사했다.
저녁 식사 중에도 도라는 꼬마 숙녀처럼 의젓하게 행동했지만 데이비의 식사 예절은 전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었다.
“난 너무 배가 고파서 예절을 따져가며 먹을 시간이 없어.”
이렇게 말하는 데이비를 마릴라가 야단치자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도라는 나만큼 배가 고프지 않을 거예요. 여기 오는 동안 내가 운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다 봤잖아요. 이 케이크는 정말로 맛있고 자두도 많이 들어 있어. 우린 케이크 먹어본 지가 정말 오래됐어요. 엄마는 너무 아파서 케이크를 만들 수 없었고 스프로트 아줌마는 우리에게 빵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위깅스 아줌마는 케이크에 자두 같은 건 넣지도 않았다고요. 한 조각만 더 먹어도 돼요?”
마릴라가 안 된다고 하려 했지만 앤이 큼지막하게 한 조각을 더 잘라주며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는 씩하고 한 번 웃더니 얼른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케이크를 다 먹고 나자 데이비가 말했다.
“한 조각만 더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말할게요.”
“안 된다. 넌 충분히 먹었어.”
마릴라가 앤에게는 이미 익숙한 끝이 어딘지를 알아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데이비가 앤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더니 탁자 너머로 몸을 숙여 도라가 겨우 한 입 먹었을 뿐인 도라의 케이크를 날름 낚아챘다. 그리고 자기 입을 벌릴 수 있는 한 크게 벌려한입에몰아넣어 버렸다. 도라의 입이 비죽거렸고, 마릴라는 할 말을 잃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앤이 한껏 선생님다운 태도를 취해 즉시 야단을 쳤다.
“어머나, 데이비, 신사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나도 신사는 안 그런다는 걸 알지. 하지만 난 신사가 아닌걸 뭐.”
데이비가 케이크를 다 삼키고 말할 수 있게 되자 한 말이었다.
“넌 신사가 되고 싶지 않단 말이니?”
놀란 앤이 물었다.
“물론 되고 싶기야 하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는 어차피 신사가 되지 못하잖아.”
“아니야, 너도 신사가 될 수 있어.”

앤이 지금이야말로 좋은 씨앗을 뿌려볼 최고의 기회라고 여기고 얼른 말했다.
“신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싹이 트는거라고. 그리고 신사는 절대로 숙녀의 물건을 가로채지 않아. ‘고맙습니다.’ 하는 말을 잊지도 않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지.”
“신사는 별로 재미도 없네. 난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사가 될래.”
데이비가 자기 속내를 숨김없이 말했다.
마릴라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심정으로 도라에게 케이크를 한 조각 더 잘라주었다. 지금 당장 데이비를 대적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하루는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먼 길을 여행해서 지쳤다. 그 순간만큼은 엘리자 앤드루스만큼이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는 둘 다 피부가 희다는 것을 빼면 눈에 띄게 서로 닮은 데는 없었다. 도라의 길고 윤기 나는 곱슬머리는 언제나 단정했고, 데이비의 짧은 금발 고수머리는 온통 둥근 머리를 뒤덮었다. 도라의 갈색 눈은 부드럽고 얌전해 보이지만 데이비의 눈은 요정의 눈처럼 장난기가 가득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도라의 코는 곧은데 비해 데이비의 코는 분명히 들창코였다. 도라의 입은 얌전하게 다물어져 있지만 데이비의 입가는 항상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보조개도 한쪽에만 있어 웃을 때 얼굴 모양이 아주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데이비의 작은 얼굴은 구석구석이 장난기로 가득했다.
“얘들을 이제 그만 재워야겠다.”
아이들을 내보낼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 마릴라가 말했다.
“도라는 나와 같이 잘 거니까 데이비는 서쪽 방에 재우도록 해라. 데이비, 너 혼자 자도 무섭지 않겠지?”
“아니, 무섭긴요. 하지만 아직 잘 때가 안 됐어요.”
데이비가 시원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자야지.”
화가 치미는 걸 참으며 마릴라가 말했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말투였다. 데이비는 순순히 앤을 따라 2층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어른이 되면 맨 처음 해보고 싶은 일이 밤새 자지 않고 어떤가 보는 거야.”
데이비가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말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마릴라는 이 쌍둥이가‘초록 지붕 집’에 처음 온 때를 생각하면몸서리가 쳐졌다.그 후라고 데이비가 얌전하게 지내준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을 터였다. 데이비는 깨어 있는 한 항상 장난질을 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난질을 칠 궁리를 했다. 첫 번째로 기억에 남는 큰일은 데이비가 온 지 이틀 후인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상쾌한 9월의 화창한 날이었다. 교회에 데리고 가려고 앤은 데이비의 옷을 입히고 마릴라는 도라의 옷을 입혔다. 처음에는 데이비가 얼굴을 씻지 않겠다고 버텼다.
“마릴라 아줌마가 어제 씻겨주었다고. 그리고 장례식 날에도 위깅스 아줌마가 단단한 비누로 나를 박박 문질러 닦아서 일주일은 씻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깨끗한 것은 좋지 않아. 더러워야 더 편하다고.”

“폴 어빙은 날마다 스스로 얼굴을 잘 씻는다고.”
앤이 눈치 빠르게 말했다.
데이비가‘초록 지붕 집’에 온 지 48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데이비는 이미 앤을 추앙하고 폴 어빙을 증오했다. 여기 온 다음 날부터 앤이 폴을 칭찬하는 소리를 지겹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폴 어빙이 매일 얼굴을 잘 씻는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데이비 키스도 해야 했다. 그래서 죽음을 맞게 된다 하더라도. 이런 이유로 데이비는 다른 자질구레한 몸단장 일에도 앤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끝내고 나니 데이비는 정말 잘생긴 귀공자 같았다. 앤은 데이비를 커스버트 가족 신도석으로 데려가며 엄마라도 된 듯 자랑스러움까지 느꼈다.
데이비도 처음에는 상당히 얌전하게 행동했다. 누가 폴 어빙인지 알아내려고 모든남자아이들을 은밀히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찬송가 두 곡을 부르고 성경 읽는 시간까지는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앨런 목사가 기도를 올릴 때 드디어 소동은 벌어지고 말았다.
데이비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로레타 화이트의 모습이 데이비에게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두 가닥으로 땋은 금발 머리가 레이스 프릴에 감싸여 하얀 목 양쪽으로 매달려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6개월 아기 적부터 교회에 다닌 로레타는 올해 여덟 살이 되었으며 뚱뚱하고 평범하게 생겼지만 나무랄 데 없는 행동거지를 보이는 아이였다.
데이비가 호주머니로 손을 넣어 잔뜩 성이 나 몸을 웅크리고 있는 쐐기벌레를 꺼냈다. 마릴라가 이 장면을 보고 기겁하며 데이비를 붙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데이비가 그 쐐기벌레를 로레타 목에 떨어뜨려 버린 후였으니까.

앨런 목사가 한창 기도를 올리고 있는 중에 귀청을 찢는 비명 소리가 울렸다. 목사도 기도를 멈추고 놀라 눈을 떴다.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들었다. 로레타 화이트는 미친 듯이 옷 뒤를 잡아당기며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악…… 아악…… 어, 엄마…… 이, 이것 좀 떼어줘…… 빨리…… 빨리…… 떼어줘, 저 나쁜 애가 내 목 뒤에 벌레를 넣었어. 아, 아악…… 엄마, 더 내려가…… 아아아악…….”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화이트 부인이 미친 듯이 날뛰는 로레타를 데리고 교회 밖으로 나갔다. 로레타의 비명 소리가 저 멀리로 사라지자 앨런 목사는 예배를 계속했다. 하지만 모두들 그날 예배는 이미 망쳐버렸다고 믿었다.
그날 처음으로 마릴라는 성경책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앤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릴라는 데이비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온종일 나오지 못하게 했다. 점심도 차와 빵과 우유 외에는 주지 않겠다고 했다. 앤이 식사 쟁반을 들고 가자 후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먹는 데만 열중하던 데이비도 슬픈 얼굴로 바라보던 앤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폴 어빙이라면 교회에서 여자아이목 안에쐐기벌레를 밀어 넣는 짓은 하지 않겠지?”
데이비가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그럼, 물론 폴은 그런 짓을 하지 않지.”
앤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짓을 한 것이 후회되긴 해. 하지만 그쐐기벌레는 정말 커서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다고. 교회에 들어갈 때 계단에서 주웠지. 그여자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게 너무 재미있지 않았어?”
화요일 오후에는 부인회 모임이‘초록 지붕 집’에서 열렸다. 앤은 마릴라를 도와주려고 학교에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도라는 검은색 장식 띠가 둘러진 흰색 드레스를 말끔하게 다림질까지 해서 입고 단정하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부인들 틈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말을 시키면 얌전하게 대답을 할 뿐 그렇지 않을 때는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디로 보나 모범생이었다. 데이비는 헛간 뜰에서 온통 더러운 모습으로 흙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 흙장난을 하는 게 짓궂은 장난질보다 낫지 않겠니. 흙장난이야 더러워지기밖에 더하겠어. 우리 먼저 식사를 하고 데이비는 나중에 주면 된다. 도라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해도 되지만 데이비는 절대 부인회 회원들과 식탁에 같이 앉힐 수 없지.”
앤이 부인회 회원들에게 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려고 응접실로 갔을 때 도라가 보이지 않았다. 재스퍼 벨 부인이 데이비가 현관문에서 불러 나갔다고 알려주었다. 얼른 마릴라에게 알려 어찌할지 상의한 결과 둘 모두 나중에 밥을 먹이기로 했다.
그런데 식사가 절반쯤 끝났을 때 끔찍한 모습을 한 것이 식당으로 뛰어들어 왔다. 마릴라와 앤은 너무 놀라 멍하니 서로 바라만 보았고 손님들 입도 딱 벌어졌다. 저게 도라란 말인가……. 흠뻑 젖은 채 훌쩍거리는 저 아이가! 마릴라가 새로 만든 동전무늬 깔개 위로 아이의 옷이며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라,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앤이 자기 가족에게는 절대 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재스퍼 벨 부인에게 민망한 눈길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데이비가 나더러 돼지우리 울타리를 걸어보라고 했어. 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놀렸어. 그래서 돼지우리로 떨어져 옷이 모두 더러워져 버렸어. 돼지가 나를 막 밟고 다녔어. 데이비가 펌프 아래 서 있으면 더러워진 옷을 물로 씻어주겠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데이비가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옷은 하나도 깨끗해지지 않고 내 예쁜 허리띠와 구두까지 망쳐버렸어.”
마릴라는 도라를 2층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혀야 해서 남은 식사 시간 동안 앤 혼자서 손님 접대를 했다. 데이비는 혼이 났고 밥도 얻어먹지 못한 채 방에 갇혔다.
땅거미가 질 무렵 앤이 방으로 올라가 심각한 얼굴로 데이비를 타일렀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고, 사실 그 결과가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앤은 데이비의 행동으로 몹시 마음이 상했다고 얘기해주었다.
“지금은 나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내가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도라는 내가 흙 파이를 만드는 걸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어. 옷을 망치기 싫다면서. 그래서 화가 났어. 폴 어빙이라면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 동생에게 돼지우리 울타리 위를 걸어보라고 하지는 않겠지?”
“안 그러고말고, 그런 일은 꿈도 꾸지 않지. 폴 어빙은 아주 완벽한 꼬마 신사거든.”
데이비는 눈을 꼭 감고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그런 다음 앤에게 기어 올라와 앤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그 작은 얼굴을 묻었다.

“누나, 내가 폴처럼 착한 애는 아니더라도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주면 안 돼?”
“널 좋아하고말고.”
앤이 진심으로 말했다. 어떤 면에서 데이비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썽꾸러기가 아니라면 난 너를 더 많이 좋아할 거야.”
“내, 내가 오늘 뭘 했는데, 말하기가 엄청 무서워. 화내지 않을 거지? 그리고 마릴라 아줌마한테 이르지 않을 거지?”
데이비가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마릴라 아줌마한테 얘기해야 할 거야. 하지만 네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또 모르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응, 이젠 절대로 안 해. 올해는 더 이상 그런 놈을 찾아낼 수도 없을 테니까. 내가 지하 저장실 층계에서 잡았어.”
“데이비,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
“내가 마릴라 아줌마 침대에 두꺼비를 집어넣었어. 원한다면 가서꺼내버려도좋아. 하지만 누나, 거기 그대로 두면 정말 재미있지 않을까?”
“데이비 키스!”
앤이 데이비의 팔을 풀어내고 벌떡 일어나 복도를 지나 마릴라의 방으로 달려갔다.

침대가 약간 구겨져 있었다. 앤이 얼른 이불을 들추자 정말로 두꺼비가 베개 밑에서 눈을 껌벅이며 앤을 쳐다보았다.

“저 끔찍한 것을 어떻게 치우지?”

앤이 몸을 떨며 신음 소리를 냈다. 부삽이 눈에 띄었다. 마릴라가 부엌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동안 앤은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두꺼비를 아래층으로 가져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꺼비가 세 번이나 뛰쳐나가 버렸고 한 번은 복도에서 잃어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겨우 벚꽃나무 과수원에 두꺼비를 풀어주고 나서야 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만일 마릴라 아줌마가 이 일을 알았더라면 다시는 마음 놓고 침대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야. 이 꼬마 죄인이 미리 참회를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어머나, 다이애나가 창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네. 학교에서는 앤서니 파이, 집에서는 데이비 키스, 두 말썽쟁이 때문에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 기분 전환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1 07:10:00

빨간머리앤이 2권까지 잇나요?등장인물도 많고 내용이참 풍부하네요.

나단비 (♡.252.♡.103) - 2024/03/01 07:15:56

빨간 머리 앤이 8권까지 있어요. 너무 많죠?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1 08:20:41

그많은거 소장하구 잇다구요?

나단비 (♡.252.♡.103) - 2024/03/01 08:24:29

종이책 소장도 하고싶어요.전자책이에요. 다 올리려면 한참 걸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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